아Q정전 밀레니엄 북스 39
루쉰 지음, 우인호 옮김 / 신원문화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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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근대 소설은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되었던 이광수의 [무정]이며, 비로소 한국 근대 문학의 장이 열렸다. 중국에는 루쉰이 있었다. 1918년 최초의 근대 소설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 중국 문학계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다.

루쉰은 1881년 중국 절강성의 선비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 났다. 아버지가 중병에 걸려 갑자기 집안이 몰락하는 불운을 당하기도 했다. 남경에 위치한 강남수사학당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가 강남육사학당으로 전학했고 이후 일본으로 유학을 갔지만 의학전문학교를 자퇴하고 문예지 [신생]을 창간하려다 실패하고 1909년 귀국하여 학교 선생님이 된다. 이 책 첫머리에서 만나는 [자서]와 책말미의 작가연보를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아Q는 未莊이란 마을에 살고 있는데 이름과 본적이 애매하며, 그의 행적도 분명치 않은 인물이다. 조씨집에 얹혀 지내며 집안의 허드렛일도 맡아서 한다. 기거는 동네 祠堂에서 해결한다.
그러나, 아Q는 자존심이 강해서 마을사람 따위는 안중에도 없으며 또한 城內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경멸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나창파(부스럼으로 생긴 대머리)라는 신체적 결함이 있어서 대머리를 연상시키는 그 어떤 말에도 화를 내었고 심지어는 욕을 하거나 기운 약한 놈은 때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마지막엔 그가 항상 당했다. 한마디로 동네에선 왕따 신세였던 것이다.

이런 아Q가 어느 날 마을 유력 인사인 조 나리에게 따귀를 맞고 난 후 유명해졌다. 이후 여러 해 동안 그는 우쭐거리는 행동을 했다. 그도 사람이기에 매우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거지 왕털보와 전 나리의 장남이었다. 전 나리의 아들은 서양학교에도 다녔고 일본 유학생 출신이라 그런지 변발을 짤라 버렸다. 그래서 아Q는 그를 양놈의 앞잡이라고 불렀다.

아Q가 한번은 女僧을 놀리면서 그녀의 볼을 꼬집고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바보인 그가 비로소 여자를 알게 된 사건이었다. 하루는 조 나리댁에서 하루 종일 쌀방아를 찧다가 식모인 오마에게 수작을 걸었다가 이 때문에 혼찌검을 당했다. 이 사건 이후 마을 사람들의 행동에 변화가 생겼다. 마을 여자들이 아Q를 보기만 해도 도망치고, 남자들도 이상한 눈초리를 보내며, 술집에선 외상술도 주지 않았다. 더욱 심한 것은 친하게 지냈던 사당지기조차 자신을 내쫓으려는 것 같았다. 이젠 동네 날품일도 뚝 끊겨 버렸다. 할 수없이 그는 城안으로 들어갈 결심을 한다.

아Q가 다시 未莊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중추절 직후였다. 마을에선 볼 수 없는 귀한 물건을 갖고 나타났기에 동네 여인들은 이 물건에 흥미를 느끼며 그를 만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가 좀도둑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잠시 동안의 인기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1911년 9월 14일, 조씨댁 나루터에 한 척의 배가 들어 왔다. 혁명당을 피해 몰래 들어온 성내의 실력자 거인 나리의 배였던 것이다. 아Q도 혁명당이란 말은 벌써부터 듣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혁명당을 무서워하기에 그는 막연히 혁명당이 자신의 편일 것으로 생각한다. 동네 인심은 나날이 안정돼 갔다.

아Q는 혁명당에 가입하려고 전씨의 아들, 가짜 양놈을 찾아간다. 그런데, 그날밤 조씨 나리의 집이 누군가에게 약탈을 당했다. 아Q는 자신을 내쫓은 조씨에게 좋은 감정이 있을리 만무다. 그는 약탈현장을 실컷 구경만 했다.

未莊 사람들 대부분 통쾌해 하면서도 두려웠다. 아Q도 마찬가지였다. 나흘 후 그는 조씨댁을 약탈한 장본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밤중에 체포된다. 조사중 그는 생전 처음 붓을 들고 서명 대신에 동그라미를 그린다. 형장으로 끌려 가면서 그는 구경꾼 무리속에서 오마의 모습을 발견한다. 총살형을 당한다.

여론에 의하면, 아Q의 죽음에 대해 미장에서는 별 이의가 없이 한결같이 "나쁜 놈"이라고 욕을 했다. 그러나, 성안의 여론은 반대로 나빴다. 그들 대부분은 총살에 불만이었다 한다.

루쉰은 어리석고 불쌍한 아Q를 통해 근대화 과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국 민중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일본 유학 기간에 학업을 중단하고 문예지를 통한 계몽활동을 펼치려 한 그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 그 필름을 본 뒤부터 의학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리석고 약한 국민은 비록 체력이 튼튼하고 오래 산다 해도 고작 보잘 것 없는 본보기나 구경꾼 노릇만 할 뿐 아닌가. " (12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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