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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년 내력의 중국 황실 건강법 - 어의에게 듣는 생로병사의 비밀
자오양 지음, 이설영 외 옮김 / 살림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문명이 발달하고 시대가 복잡해짐에 따라 질병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이에 못지 않게 치료가 어려운 난치병과 옛날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질병들이 발생하고 있다. 의식주 생활이 윤택해지는 반면, 각종 공해와 스트레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건강에 위협을 받고 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건강하게 일생을 보낼 수 있다면 큰 행복이라 할 것이다.
" 재산을 잃으면 인생의 1/3 을 잃은 것이요, 가족을 잃으면 인생의 1/2 을 잃은 것이요, 건강을 잃으면 인생의 전부를 잃은 것이다. " 란 말처럼 건강은 생을 영위함에 있어 기둥이 되고 대들보가 되는 원천이기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것이다.
서구에선 해부학을 토대로 한 실험위주의 서양의학이 발전해 왔다. 이에 비해 동양에선 동양철학을 근간으로 동양의학이 발전해 왔다. 동양의학인 합방의 치료방식은 매우 독특하면서도 인체와 자연의 조화를 추구하는 치료법으로 서양의학과 비교해 조금도 손색이 없다. 최근엔 서양의학에서도 침술에 의한 치료 등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 책은 중국의학의 발전을 지탱해온 황실 어의들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춘추시대에 세상 사람들이 神醫라고 칭송한 편작의 일화로 시작하여 서태후의 보양, 미용법에 이르기 까지 책장을 넘기는 내내 흥미진진한 내용이었다. 저자 자오양은 중국농업대학과 중국인민대학의 겸임교수인데, 그는 책머리에서 황실 어의들의 삶과 그들의 신묘한 처방을 소개하려 한다고 취지를 밝히고 있다. 책은 모두 9 개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 후미에 첨부된 특별한 내용은 더욱 흥미롭다.
# 御醫의 태동
고대 중국 夏, 殷, 周 시대는 의학과 관련된 기록이 매우 적다. 殷墟에서 출토된 甲骨文을 살피면 여기에 " 疾小臣 " 이란 단어가 자주 나온다. 전문가의 견해에 따르면 " 疾小臣 " 은 당시 궁중 의약관리를 담당한 의관으로서 중국역사 최초로 출현한 御醫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당시엔 무당이 국가의 命運을 좌지우지하였기에 그 지위는 미약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 중국의 名醫들
병이 골수에 미쳤기 때문에 齊나라왕 桓侯의 병을 고치기 힘들다는 진단을 내린 扁鵲은 불행하게도 그의 능력을 시샘한 秦나라 武王의 어의에 의해 살해 당하고 만다.
우울증에 걸린 제나라왕을 치료하기 위해 오히려 환자의 화를 돋우는 소위 " 격노법 " 을 이용한 文摯도 왕의 증세를 완치했지만 그가 행한 무례때문에 솥에서 산 채로 삶겨 죽는 안타까운 죽음을 당한다.
그 밖에 피부절개술이란 파격적인 치료법을 도입한 楚나라 武왕의 어의 兪부, 왕에게 올바른 성생활을 충고한 秦나라 景公의 어의 和, " 병입고황 " 이란 고사의 주인공인 秦나라 어의 緩, 齊나라 宣왕의 여드름과 齊나라 惠왕의 치질을 치료한 구 등도 당대에 명성을 떨친 명의들이다.
또한, 얼굴 빛만 보고도 병을 맞친 五色診法의 창시자 淳于意는 후한시대의 명의였으며, 漢 武帝 시절 진맥과 의약에 통달한 역사상 최초의 女侍醫 淳于衍은 정치적 유혹에 빠져 임신한 허황후에게 附子를 사용해 죽게 만들어 불명예스런 참수형을 당한다.
한편, 전한 和帝 때 유명한 의학자 곽옥은 貴人들을 치료하는데 어려운 이유 네 가지를 열거하기도 했다. 즉, 의사를 믿지 않고, 전심전력으로 몸보양하길 경시하고, 몸이 허약해 약기운을 이기지 못하며, 그리고 편안함만 추구해서 노동이라곤 전혀 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황실 인사의 치료가 매우 어려움을 토로했다.
조조의 專擔侍醫 왕숙화는 寸口診脈法을 처음으로 고안하여 맥학연구의 최초 서적인 [脈經]을 저술했다.
특이한 家門도 있었다. 徐氏 집안은 7 대에 걸쳐 서도도, 서문백, 서지재, 서지범 등 열 두명의 명의를 배출한 家門이다.
당태종의 어의 견권은 낡은 공기를 뱉어내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 마시면 폐사 깨끗해지고 건강하게 수명을 연장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양생술을 제창했다.
陳나라 시절( 557 - 589 년 ) 허윤종은 당시 진나라 유태후의 중풍을 치료하여 이름을 날렸다. 오늘날의 霧化吸入療法의 전신격인 훈증요법을 이용했던 것이다.
隋나라 文帝시절 장안일대에 몰아 닥친 瘟疫의 비참한 상황을 목도한 손사막은 의학에 뜻을 세우고 정진하여 의술의 경지가 상당했지만 주로 민간의술 활동을 하다가 자주 궁중에 초대되어 질병 치료를 하기도 했다. 그는 [懸絲診脈]( 팔을 실로 묶어서 진맥하는 방법 ) 이라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한 인물이다.
# 산해진미로 망가진 몸
唐나라 의종의 딸 同昌公主가 위보형과 결혼한다. 그런데, 공주는 산해진미를 포식하는 정도가 보는 사람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매일 먹고 운동은 하지 않아 시집간 이래 사흘이 멀다하고 병에 걸리면서 건강이 점점 나빠졌다. 한편, 공주의 주치어의 십 여명은 병상을 떠나지 않고 극진히 치료했지만 결국 사망한다. 그러나, 위씨집안은 가문에 떨어질지도 모를 화를 면하고자 모함하여 어의들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모두 죽게 만든다. 어의들의 불안한 운명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 武則天의 젊음 유지 비결
81 세까지 장수를 누린 중국 역사상 첫 번째 여황제인 무측천은 보양을 매우 중시한 여성이다. 익모초로 얼굴이 윤기나게 하는 미용법을 처방했는데, 외용으로 얼굴에 바르면 피부가 검은 것을 치료하고 얼굴의 반점과 주름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한다.
또한, 面首 ( 귀부인의 南色 상대인 美男子 ) 를 길러 고대 방중술에 의한 장수를 추구했다 한다.
# 먹거리의 올바른 도리
宋대의 저서 [성제총록]에 의하면 음식은 응당 五穀이 먼저이고, 五肉으로 더하고, 五果로 보조하고, 五菜로 채운다고 했다. 五穀은 기장, 마, 콩, 밀, 쌀 등 곡물, 오과는 대추, 오얏, 은행, 밤, 호두 등 열매와 견과류, 五肉은 소, 개, 양, 돼지, 닭 등 가축, 五菜는 아욱, 부추, 염교, 콩잎, 파 등 채소를 말하는데 실용적인 먹거리의 올바른 도리라고 하겠다. 이 견해는 음식과 밀접한 상관관계에 있는 당뇨병, 고지혈증, 고혈압 등의 질병에 여전히 유효하다고 하겠다. 먼저 먹거리를 다스리고, 그 다음에 다시 약으로 치료하는 방법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 심리 치료법
明나라 嘉靖시대의 어의 고정방은 조정에 나가 있으면서 서로 속고 속이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그래서, 그는 이들 관리와 귀인들의 심리를 진지하게 분석하고 연구하여 심리질병에 대한 관찰법을 제기했다. 이러한 심리적 스트레스 하에선 많은 사람들이 질병에 걸리기 쉽다고 생각했다. 官界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주 " 熱中 " 이라는 증상을 앓았다. 이런 종류의 열중병은 화기가 복부에 쌓여 중풍을 일으키고 근육에 경련을 일으키는 증세로 각종 낭종과 종양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500 여 년 전에 고정방이 이런 분석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라 하겠다. 그는 이런 심리적 이론의 제기와 함께 심리치료를 강조했다.
" 상급치료는 마음을 치료하는 것이고, 중급치료는 형태(몸)를 치료하는 것이며, 그 아래로는 이치를 따지지 않는다. " 라고 하면서 병을 치료하는 것은 심리부터 치료하는 것이 최고의 경지라고 말했다.
# 건륭제의 장수비결
건륭제( 1711 - 1799 년 ) 는 60 년 동안 황위에 있었으며 89 세까지 장수했다. 그는 활쏘기, 사냥, 기마 등 스포츠를 매우 좋아해서 건강체를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구령주와 송령태평춘주 등 다양한 종류의 養生酒를 즐겨 마셨고 시를 읊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내면의 마음을 다스렸다 한다. 음식에도 매우 조심하면서 林産物을 즐겨 먹었다 한다.
# 서태후의 건강비법
서태후( 1835 - 1908 년 ) 는 淸代 역사상 가장 장수한 태후 중 한 사람이다. 그녀는 평생 장수를 위한 섭생법을 추구하여 74 세의 고령까지 장수했다. 서태후의 양생 비방은 네 종류가 있었다. 즉, 건강음료를 마시고, 특이한 보건 고약을 배꼽에 붙이며, 장수선단을 복용하고, 그리고 자양강장식품을 복용했다. 그녀는 1 년 내내 사람의 젖을 마시고 진주 가루를 먹어 청춘의 아름다움을 유지했으며, 어의가 만든 八珍고라는 간식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서태후는 화장하는 것을 몹시 좋아했지만, 반면 머리카락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고지방 식품을 즐겨 먹었기에 두발에 기름기가 비교적 많으면서 머리카락도 잘 빠졌다고 한다. 그래서, 어의들은 머리카락을 보호하는 세발제를 제조하여 두발에 영양을 공급했다고 한다. 국화, 박하, 약초 등을 이용하여 만든 탕약에 머리를 감게 했다니 놀랍기도 하다.
누가 세월을 이길 수 있겠는가 ?
1908 년 10월 중순부터 노쇠 현상이 시작되면서 온 몸의 관절이 힘이 없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열이 오르며, 잦은 기침을 동반한 오한과 발열 증상이 나타났다. 수면 상태도 좋지 않아 자주 잠들다 깨다를 반복하였다. 매일 먹는 것이 적어 지면서 아침에 죽 반 그릇밖에 먹지 못했다. 자주 기침하여 옆구리 밑이 아팠다. 이런 진료 기록으로 판단해 볼 때 서태후의 사망 원인은 만성 기관지성 폐렴인 것이다.
어의들의 역사를 시대별로 나누어 그들의 에피소드와 그들의 업적 등 중국의학의 발전에 미친 영향등을 이 책은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황실의 양생 비결과 처방법 등도 수록하고 있어 중국의학사의 길라잡이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
책장을 덮는 순간, 우리나라 한의학사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두 사람의 醫聖이 떠올랐다.
龜岩 허준은 방대한 의학 자료를 정리하고 편찬하여 민족의학을 확립했을 뿐만 아니라 민초들을 질고에서 구해준 임상대가이다.
東武 이제마는 기존의 방대한 의학토양을 뒤흔든 반란자이며, 사상의학이라는 제 3의 의학을 개발한 창안자로 새로운 의학의 지평을 연 개척자이다. 동양의학의 역사가 비록 중국에서 출발했다 하더라도 우리의 선조가 이룩한 업적은 부족함이 없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