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밀레니엄 북스 99
한비자 지음, 김동휘 옮김 / 신원문화사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책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한번 읽고서 다시는 쳐다 보지 않는 것이 있는가 하면 내 옆에 가까이 두고서 반복해서 읽고 싶은 것도 있다. 이 책이 바로 후자에 속한다 하겠다. 읽을수록 책에 담긴 敎訓들이 현재 또는 장래에 닥칠 수도 있는 위기상황에 훌륭하게 대처할 수 있는 通察力을 강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중국 戰國時代의 7 雄 중 제일 쇠약한 나라가 韓나라였다. 韓非는 한나라왕 安의 庶公子인데, 부국강병책은 오직 法術의 채용에 달렸다고 왕에게 건의하지만 끝내 채택되지 않았고 이후 韓나라는 秦나라에 의해 멸망당하고 만다.
기원전 4 세기 秦나라는 상앙의 法治주의를 도입하여 變革의 힘으로 국력이 크게 강화되어 통일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진나라왕 政( 이후 진시황이 됨 )은 측근이 전해준 한비의 저작물을 읽은 뒤 크게 감명받아 한비를 만나길 원하고, 중간에 연결하는 사람이 바로 李斯이다. 한비와 이사는 荀子밑에서 동문수학한 동창이었다. 그러나, 한번만 볼 수 있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던 진시황과 이사는 한비를 초빙해 놓고는 감옥에 가둔 뒤 독약을 마시게 해 죽이고 만다. 아이로니하게도 한비의 思想만은 고스란히 이들이 접수하여 나날이 커져가는 진나라의 통치 철학에 한껏 활용한다.

" 重臣이란 자는 이 네 겹의 성벽 속에 그 정체를 감추고 있다. 또 임금은 네 겹의 성벽에 가로막혀 있어 중신의 정체를 알아낼 수가 없다. 이리하여 임금은 눈이 가려지고 중신의 實權은 점점 커져만 간다. " ( 고분편, 78 쪽 )
" 머리를 쓰는 사람이 많아지면 법의 권위는 없어지고, 힘을 다하는 사람이 적어지면 나라는 가난하게 된다. 이것도 또한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원인이다. " ( 오두편, 320 쪽 )

史記의 저자 사마천은 [노자,한비자 列傳]에서 食餘桃와 逆鱗를 인용하면서 한비는 君臣관계의 비정함을 밝히려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은 이 우화가 미묘한 인간관계를 묘사하는 데 자주 인용된다.

미자하란 美少年이 위나라 임금 영공에게 총애를 받고 있었다. 소위 동성애자다.
어느날 밤, 어머니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접하고 미자하는 임금의 命이라 속이고 임금의 수레를 타고 나가 어머니를 간호하고 돌아 온다. 당시 국법에 의하면 임금의 수레를 몰래 타면 발이 잘리는 형벌을 받게 되어 있었지만, 왕은 오히려 미자하의 극진한 효성을 칭찬한다. 또 한번은 임금과 함께 과수원을 거닐다 복숭아 하나를 따서 맛을 보니 너무도 단 맛이라 한 입 베어 물고 남은 복숭아를 임금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매우 불경한 행동임에도 왕은 미자하가 입맛까지 포기하면서 자신을 사랑해준다고 치하합니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을 붙잡지 못하기에 나이가 든 미자하의 美色은 사라졌습니다. 이에 왕의 사랑도 식으면서 임금은 앞서 한 일들을 괘씸죄로 다스린다.

미자하가 한 행동은 하나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앞에서는 칭찬을 받고 뒤에서는 죄를 쓰게 되었다. 단지 영공의 사랑이 미움으로 바뀐 때문이다. ( 세난편, 110 쪽에서 )

한비는 인간의 이기심을 섬세하고 날카롭게 간파한 다음 이를 제왕학의 권술이론으로 발전시켰는데, 그의 이론은 깨어있는 시대의식을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그대로 적용한 결과물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비극적인 최후를 면키 어려웠던 것이다.

사마천도 열전에서 한비자의 비극에 대하여 깊은 동정심을 표한다. 또한, 동문수학한 친구를 모함하여 친구를 죽이는 이사의 삿된 행동을 통해 비열한 인간관계에 대해 감회도 표출하고 있다.
" 한비가 [說難]을 썼으면서도 그 자신의 화를 면하지 못한 것을 나는 슬프게 생각한다. " ( 112 쪽 )

한비는 인간관계의 내면을 족집게처럼 속속들이 지적하고 비정한 인간관계로 부터 받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듯 아플 정도로 그 내면을 헤집었다. 이 불세출의 학자는 법가학파의 종합판이었는데, 그의 중심사상은 " 군주는 막강한 권력을 지녀야 하며 인민의 원망에도 아랑곳할 필요가 없다. 그저 상벌이 엄격하고 분명하면 나라를 만능으로 만들 수 있다. " 는 것으로 임금의 신하통솔법을 " 術 " 이라 하고, 술의 바탕이 되는 것이 法에 의한 " 賞과 罰 " 의 실시라는 刑名參同인 것이다.

이 책엔 모두 14 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병편]에선 신하를 통솔하는 법을, [십과편]에선 열 가지의 교훈을,[고분편]에선 법술 채택의 필요성을, [세난편]에선 신하의 입장에서 행하는 설득술을, [화씨편]에선 군권강화를 주창, [망징편]에선 망하는 징조를 열거하고, [비내편]에선 왕의 여자를 경계할 것을, [설림편]에선 옛날의 일화나 사화를 소개하고, [내저설편]에선 칠술과 육미를, [외저설편]에선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설화를, [난편]에선 기성 도덕에 대한 논쟁을, [오두편]에선 나라를 좀먹는 다섯 부류인 학자, 유세가, 협객, 측근, 상인과 직공을 비판하는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또한 食餘桃, 역린지화, 守株待兎, 화씨벽, 망국의 음악, 脣亡齒寒, 관포지교, 矛盾 등의 이야기도 소개되고 있어 재미를 더해준다.  

저주받은 秘記를 남긴 悲運의 思想家 말더듬이 한비자는 약소국 한나라의 비애를 고스란히 끌어안고 산화한 諸子百家의 마지막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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