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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넘는 한국사 - 경계를 넘나들며 만들어낸 한국사의 단단한 궤적
박광일 지음 / 생각정원 / 2024년 10월
평점 :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에 그치지 않고,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의 선택을 돕는 지침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역사 속 사건의 배경과 흐름을 살피면 그 안에 숨은 인간의 욕망과 도덕성, 국가와 사회의 본질과 운영 원리를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 박광일은 현재 역사여행 전문기획사 (주)여행이야기와 역사 콘텐츠를 만드는 공간 역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다수의 TV 프로그램, 라디오, 유튜브 등에 출연해 역사 대중화에 앞장서왔다.
그는 긴 호흡으로 한국사를 바라보는 것을 권한다. 선사 시대부터 현대까지 아우르는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기존에 선을 그었던 한국사의 경계선을 넘어, 새로운 시각에서 한국사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1부와 2부는 ‘한반도’라는 영역의 선을 넘어 중국과 북방 유목민족, 그리고 일본과의 국제 관계 속에서 한반도의 국가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쇠퇴하면서 오늘날의 한반도 지형을 만들었는지를 살핀다.
3부와 4부는 한국사에 영향을 준 ‘경계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반도의 한국인’이라는 선을 넘어 한국사에 큰 영향을 준 외국인과 세계 곳곳에 거주하며 한국을 알린 한국인 이야기를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5부는 동서양과의 교류 속에서 만들어낸 가장 한국적인 문화를 담았다.
전곡리 유적, 세계 구석기 연구의 틀을 깨다
경기도 연천 전곡리 유적은 1978년 주한미군 그렉 보웬 상병이 한탄강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주먹도끼를 발견함으로서 밝혀졌다. 보웬은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했기에 이를 프랑스 전문가와 서울대 김원룡 박사 등에게 확인을 받으면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임을 확인했다.
이 발견으로 인해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구석기 문화가 인도 및 유럽, 아프리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구석기 문화에 관해 기존에 형성된 편견의 선을 무너뜨렸던 것이다. 이후 2000년에 일본인 후지무라 신이치는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 유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내부자의 제보와 집요한 마이니치 신문의 취재로 사기임이 밝혀졌다. 그는 몰래 유물을 묻어 놓고 자신이 발굴한 것처럼 떠들었던 것이다.
고구려는 중국사가 아니다
고구려라는 나라는 오늘날 중국 동북부와 한반도 북부에서 시작되었다. 동아시아의 강국이다 보니 고구려의 영토를 자신들의 역사에 편입하려는 국가들이 몇몇 있었다. 거란족이 고구려의 계승자라며 고려를 침략해 왔고, 현 중국은 동북공정에서 고구려를 지방정권으로 왜곡까지 하고 있다.
이런 일이 자행될 수 있는 이유는 고구려의 역사적 사료가 부족해서 벌어지는 촌극이다. 역사 전공자일지라도 고구려 전체 역사를 자세하게 알기엔 어려움이 있다. 남과 북의 단절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주변 국가들의 터무니없는 역사 논쟁을 일거에 제압하는 사건들이 있었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고구려의 평양 천도이다.
고구려는 도읍지를 졸본성에서 국내성으로 그리고 평양성으로 이전했었다. 한 국가가 수도를 옮길 때는 이에 따른 의미가 수반되기 마련이다. 국내성 천도의 경우는 고구려가 한사군을 축출하고 한반도를 아우르는 나라임을 알리는 계기였다.
고구려는 처음 졸본(중국 요령성 환인 지역)에서 건국했다. 건국 직후부터 평상시 거점이 되는 도시와 비상시 군사 목적의 산성山城으로 구성된 도성都城체계가 있었다. 환인 분지의 고지대에 위치한 오녀산성이 군사 목적의 산성이다. 이곳 현지인들의 증언 또한 고구려 산성이라고 말한다. 평시엔 그 동쪽 혼강江 근처의 평지에 조성된 도시에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리왕 21년, 제사용 돼지가 도망치는 일이 발생하지 이를 찾아나선 신하가 '국내 위나암'에 이르렀을 때 지세地勢와 물산物産의 풍부함을 목격하고 이를 왕에게 보고했다. 이로 인해 고구려는 졸본에서 국내로 천도하여 위나암 성을 쌓았다. 대체로 이곳을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지로 본다.
다만 도읍지엔 2개의 중심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현 ‘산성자 산성’으로 고구려 때 환도성으로 불렸던 곳인데, 고구려 역사에서 불행한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동천왕 때 위나라 관구검의 군대에게 함락되었고, 고국원왕 때는 선비족의 모용씨가 세운 전연前燕의 군대에 함락되었던 고구려의 도성이다. 둘레가 약 7km의 거대한 산성으로, 동남쪽에서 궁궐터가 발견되었다.
다른 하나는 평지에 쌓은 둘레 2.7km 정도인 국내성이다. 평지인 탓에 개발과 훼손으로 인해 옛 모습을 거의 분간하기 어렵다. 국내성의 축성시기는 동천왕 또는 고국원왕 때로 연구자가 갈리지만, 산성인 환도성을 보완하고 대체할 목적이었다는 공통된 의견이다.
국내성을 도읍지로 삼은 기간은 약 423년으로 미천왕, 소수림왕, 광개토대왕, 장수왕으로 이어진다. 고구려 전체 역사 704년 중 약 60%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 고구려는 전략의 요충지인 서안평을 점령하면서 대륙으로 확장하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한반도에선 한사군을 완전히 내몰았다.
장수왕은 다시 천도를 구상, 평양을 도읍지로 정했다. 평양은 대동강을 통해 서해를 이용하기 좋고, 내륙의 평야지대와도 쉽게 연결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평양성은 668년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무너질 때까지 200여 년동안 고구려의 도읍지였다.
천도 1기(427~586년)엔 둘레 약 2.5km, 38만 제곱미터 면적의 안학궁과 그 뒤로 대성산성에 행궁을 둔 구조였다. 즉 평시와 비상시에 번갈아 가면서 사용했던 것이다. 이후 불편함을 느낀 양원왕이 축성을 시작해 평원왕 때까지 새로 조성된 천도 2기 도읍지가 바로 평양성이다. 586년에 안학궁이 평양성 내에 위치하게 된 셈이다.
윤동주가 태어나고 자라고 묻힌 곳
일제강점기에 중국 길림성의 용정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윤동주 시인이다. 최근엔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많은 한국인들이 이곳을 찾아 방문한다. 그런데, 시인의 생가터 앞에 커다란 표석 때문에 당황하게 된다. 이렇게 적혀있다.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 윤동주 생가’
한국인이라면 ‘조선족 윤동주’라는 낱말에 충격을 받게 된다. 지난 과거의 역사를 이렇게 조작하는 중국 공산당의 뻘짓에 분노를 느끼게 한다. 독립유공자들의 국적과 명예를 회복하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분들의 정체성을 찾아드리는 일이고, 조국을 위해 헌신한 그분들께 예의를 갖추는 일이다.
34번째 민족대표라 불리는 사나이
3.1운동과 제암리 학살 사건 당시 사진을 찍어서 일본의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린 스코필드 박사. 34번째 민족대표라 불리는 그는 서울대 수의과대학에서 교수로, 고아원 등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한국과 인연을 이어갔다. 그리고 1970년 4월, 국립의료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서거하기 1달 전, <조선일보>에는 그가 보낸 ‘한국민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글이 실렸다.
“‘1919년 당시의 젊은이와 늙은이들에게 진 커다란 빚을 잊지 마시오.’ 이 몇 마디는 내가 오늘의 조선 청년들에게 주고 싶은 말이다. 국민은 불의에 항거해야만 하고 목숨을 버려야만 할 때가 있다. 그럼으로써 일종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고 조금은 광명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독립운동가였던 스코필드 박사의 묘지는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으로 정해졌다.
동아시아 불교 네트워크가 만들어낸 세계기록유산
6.25 전쟁 때는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당시 작전권을 가지고 있던 미군이 폭격기 조종사였던 김영환 대령에게 해인사 폭격을 명령했다. 그러나 김 대령은 해인사 뒷산 너머 적군의 보급품 저장소만 공격하고 돌아왔다. 이에 명령 불복종으로 상부에 호출되었지만, 그는 당당하게 말했다.
“영국 사람들은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바꿀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팔만대장경은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보물 중 보물인데, 전쟁으로 이것을 불태울 수 없었습니다.”
김영환 대령의 대답에 미군은 수긍을 했다고 한다.
역사에 대한 올바른 관점
저자는 이 책을 열린 마음으로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태도를 가지라도 제안한다. 선을 넘는다는 것은 우리들이 내면에 지닌 편견과 경계를 짓는 우월의식에서 벗어나 더 넓고 깊은 시각을 갖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지금의 삶도 모두 역사이다. 역사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므로 바르게 배워야 한다.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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