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보내는 상자 - 믿고, 사랑하고, 내려놓을 줄 알았던 엄마의 이야기
메리 로우 퀸란 지음, 정향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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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음력 단오, 아버지가 별세하셨다. 그 해 설날 허리가 몹씨 아파 불편하다는 말씀에 종합병원에서 진찰한 결과 척추뼈 한 곳이 함몰되었다는 진단이었다. 병원에선 간단한 수술이라 일주일 정도의 입원을 예상했다. 하지만 수술후 허리가 계속 아파 퇴원이 늦어졌다.

 

담당의사의 긴급면담 요청을 받고 불길한 마음에 서울에서 대구로 급히 내려갔다. 의사의 소견으로는 암이라는 설명을 하면서 평소에 통증이 심해 힘들어한 적이 없냐고 물었다. 의사는 아버지의 경우 다발성 암으로 온 몸에 이미 전이된 상태라 손 쓸 방법이 전혀 없다는 의학적 판단을 내렸다. 결국 입원한지 약 3개월만에 돌아가셨다. 의사가 예상한 것보단 더 오래 살았다.

 

이 에세이의 저자는 최근 엄마를 여의었다. 이후 엄마가 남긴 '갓 박스'를 발견했고, 이 상자에 담긴 작은 메모들에 대한 그녀의 소회를 피력하고 있다. '갓 박스'란 하느님께 보낸 쪽지들을 보관한 비밀 상자였다. 즉 그녀의 엄마는 메모지, 영수증, 포스트잇 등에 하느님께 기도문을 손수 적어 이를 보관해왔던 것이다.

 

 

 

"사랑한다. 넌 항상 내 갓 박스 안에 있을 거야" 

 

 

2006년 5월 29일 그녀의 엄마는 뇌졸증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다. 엄마의 이름은 메리다. 그녀는 엄마와 이름이 같다. 둘 다 섹시한 구두와 공포영화를 좋아했다. 또한 둘 다 광고 분야에서 일했고, 허풍쟁이를 싫어했다. 여러 모로 많이 닮았지만 빨간 곱슬머리는 남동생 잭이 물려받았다. 오랫동안 둘은 비밀 번호를 공유했다. '손을 대고'였다. 이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항상 함께 한다는 의미였다.

 

그녀의 엄마는 치료가 불가능한 희귀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골수섬유증', 이 병은 적혈구와 백혈구의 생성이 원활하지 못해 몸이 허약해지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다. 이후 약 20년 동안 각종 수혈과 약물 치료를 견뎌내며 의사가 예상한 것보다 더 오래 생존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그녀의 엄마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이를 기도로 승화시켰다. 가족들의 문제 외에도 다른 사람들의 고민도 상담했다. 고민거리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그녀의 엄마는 기도문을 종이에 적어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며 이를 상자 안에 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상자의 위치는 절대 비밀이었다.

 

장례식 전날 밤, 그녀는 그녀의 엄마 방에서 일곱 개의 상자를 발견했다. 이 속에 무려 20년 전부터 작성된 쪽지들이 쏟아져 나왔다. 첫 번째 쪽지는 1986년 8월 7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거의 모든 쪽지들이 볼펜으로 휘갈겨 쓴 것이지만, 첫 번째 것은 타자기로 깔끔하게 작성되어 있었다.

 

하느님.

부디 제 건강과 저의 눈, 우리 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을

보호해 주십시오.

 

잭이 회사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보살펴 주세요.

메리 로우와 조를 직장에서 보호해 주시고, 특히 그들이

뉴 호프에 집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십시오.

 

우리 가족에게 내려주신 축복에 감사드립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사랑을 담아서, 메리가 .....

 

"엄마가 남긴 것은 우리 가족의 일대기이자,

우리 가족에게 보내는 소중한 연애편지와도 같았다" 

 

"엄마는 마치 펜팔 친구에게 쓴 것처럼 하느님께 편지를 썼기 때문이다.

엄마의 솔직하고 다정한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는 방식이다" 

 

 

갓 박스를 찾는 것은 마치 엄마의 마음을 읽으려는 것과도 같았다. 상자를 통해 엄마의 믿음이 얼마나 확고했는지 알아가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쪽지들을 읽어보면 하느님에 대한 엄마의 무조건적인 믿음이 생생히 느껴졌다. 오랜 세월 동안 엄마의 딸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던 저자가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 그대로였다.

 

엄마의 쪽지를 읽을 때마다, 그녀는 엄마가 처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주던 어린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하느님, 부디 엄마와 아빠, 잭과 저를 보살펴주시고...."로 시작하던 기도문은 마지막에 쾌활하게 "아멘!"을 외치고 침대로 기어 올라가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엄마는 남동생 잭이 샌디와 결혼한 후, 잭이 다시 성당으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쪽지를 많이 남겼다. 샌디는 '일반인'이었다. 이 말은 카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을 가리키는 그녀의 가족들이 사용하던 은어인 셈이었다. 그녀의 엄마는 며느리 샌디를 몹시 아꼈지만 한 번도 카톨릭을 전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손녀들에겐 약식으로 세례를 베푼 듯하다.

 

그녀의 엄마는 하느님에게 정말 헌신적이었고, 자신의 가장 비밀스러운 소원들까지도 모두 적어 상자에 넣어 두었다. 엄마는 친구들이나 친척들이 고민을 상담하려고 전화를 걸어오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갓 박스에 넣어 줄게" 

 

2010년 3월 초, 새벽이 동 트기 전 그녀의 아빠가 쓰러졌다. 신장암으로 시작된 종양이 아빠의 뇌까지 퍼져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아빠에게 이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절망감을 느끼며 사실이 아니길 바랐다. 저녁식사 후 베란다에서 아빠는 솔직한 답을 원했다.

 

"얼마나 남았대?"

"6주요" 

 

아빠는 나날이 야위어갔지만 유머감각만은 잃지 않았다. 힘들었던 만큼 아빠와 함께 한 신성한 시간은 남동생 잭과 그녀에겐 너무나 소중했다. 그녀는 엄마가 했던 것처럼 쪽지에 기도문을 적어 엄마의 예전 갓 박스에 이를 집어 넣었다. 모르핀에 의지하는 날이 많아지던 4월의 어느 오후 그녀의 아빠는 평온한 영면을 취했다.

 

"이런 부탁을 드릴 거라곤 상상도 못했지만....

부디 아빠를 천국의 당신 품으로 데려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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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식인종 추장에게 운동화를 팔았다 - 20여 년 동안 110여 개국을 돌아다닌 야생 영업맨이 알려주는 해외영업의 모든 것
전권열 지음 / 황금부엉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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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상에서 '지구촌 보부상 개성상인'이라는 필명으로 세계 각국의 유명 장소에 관한 정보와 볼거리를 제공했던 저자는 지난 20여 년간 해외영업을 하며 이 분야의 노하우를 제대로 정립한 인물이다. 현재 프리랜서 중계무역을 하고 있는 그는 1인 소상공인 무역상과 중소기업체 수출입 중개 등을 도와주고 있다.

 

그의 첫 직장은 태광CMC라는 유명 운동화 OEM 제조업체였다. 주로 아디다스, 퓨마, LA기어, 휠라 등 세계 유명 브랜드 운동화를 제조 판매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할 당시엔 무역회사의 인기가 상종가를 치던 때였다. 자신의 전공인 영어를 살리고자 신문에 공고된 공채에 합격하여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다. 이후 다른 회사에서도 계속 해외영업 담당자로 일해왔다.

 

해외무역을 20여 년 경험했다는 것은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뀐 세월이다. 자신이 현장에서 직접 체득한 해외영업 실무 노하우를 무역초보자, 1인 기업 소상공인, 그리고 보따리 장사 등에게 고스란히 전하고자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아랍으로 가다

 

아랍인들은 오랜 세월 목축민족이었기에 시간을 중시하지 않는다. 이들은 5번의 기도 시간을 기준으로 약속을 정하기도 한다. 기도 시간은 새벽 4시 반, 정오, 오후 3시 반, 저녁 6시 반, 8시 경이다. 따라서, 아랍상인들과 일할 때면 가급적 이 시간대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미팅중에도 이 시간이 되면 슬그머니 나갔다가 20여 분 지나 미팅에 합류하곤 한다. 또한, 약속 시간보다 1시간 쯤 늦는 것은 다반사다.

 

'부크라', 인샬라'

 

이들의 시간 개념은 '부크라(내일)' 또는 '인샬라(신의 뜻대로)'라는 말로 정의할 수 있다. 대금 결제가 언제 가능하냐고 질문하면 정확하게 답하지 않고 항상 '인샬라'라고 답한다. 말 그대로 신이 그렇게 해주시길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부크라'는 '내일'이란 뜻인데, 내일이 아닌 다음 주, 다음 달, 내년 등을 뜻하기도 한다. 관공서에 좀 늦은 시간에 방문하면 아랍인들은 '부크라'라고 말한다. 이 말은 꼭 내일이 아니라 다음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아랍국 상인들과 상담할 때엔 그들의 보디랭귀지를 잘 살펴야 한다. 그들은 감정을 말보다는 제스처로 표현하는 게 습관화되어 있다. 가볍게 고개를 상하로 끄덕이며 눈을 끔벅이는 것은 긍정의 뜻이다. 눈썹을 치켜 세우며 입술을 오므리고 혀 차는 소리를 내면서 머리를 위로 약간 쳐들면 부정의 뜻이다.

 

이들은 질보다 양이 먼저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수입 수량을 물으면 무조건 컨테이너 단위로 답한다. 이 말에 속아 가격을 깎아주고 쾌재를 불렀다가는 낭패를 본다. 이들은 대량구매시엔 가격을 인하해주는 걸 알기에 그렇게 유도한다. 결제조건이나 가격을 꼼꼼히 살펴본 뒤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따라서, 이들을 유치원생 다루듯 살살 어르고 칭찬하면서 유혹해야 한다. 몇 백 달러 현금을 상납하면 유리한 계약을 할 수 있다.

 

처음 시작하는 거래라면 반드시 돈을 먼저 받거나 선수금을 최대한 많이 받은 뒤 선적해야 한다. 특히 운임까지 부담하는 외상 거래는 절대금지다. 에이전트 커미션은 보통 3~5%가 대부분이고, 많아도 10%다. 현지 에이전트가 더 높게 요구한다면 사기일 가능성이 높다.

 

바이어가 무슨 말을 하든 물러나지 마라. 바이어 중에는 나를 쫓아내기 위해 여러 이유를 들어 거절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마다 그 말을 믿고 물러난다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바이어가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게 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해외영업은 노력해도 성과를 못 거두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아프리카에 가다

 

삼성전자, LG상사 등 대기업이 아프리카의 모로코, 이집트, 알제리 등을 대상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며 선점하고 있다. 2015년까지 대기업의 아프리카 수출 규모는 연 수십억 달러 이상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은 주로 정유 공장 및 석유 저장 시설을 건설하고, 통신망 확충 공사와 송유관 건설에 참여하는 등의 사업을 진행한다. 아프리카 2위 산유국인 앙골라에서는 조선소, 철도, 항만 등 산업 전반에 걸쳐 '경제개발 프로젝트'를 맡아 하고 있다.

 

반면, 최근 카메룬에 진출한 CNK 회사가 주가조작을 위해 엄청난 양의 다이아몬드가 매장되어 있다고 거짓 홍보하면서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일도 있었다. 무분별한 진출의 부작용을 효율적으로 차단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나이지리아를 방문하면 입국 및 세관 심사가 매우 까다롭다. 편하게 입국하려면 돈 몇 푼 챙겨줘야 한다. 출국 심사도 마찬가지로 까다로워 공항에 지인이 없으면 애먹기 쉽다. 공항 내 면세점을 돌아다니다가 안전 요원에게 잘못 걸리면, 온갖 조사를 받다가 비행기를 놓치는 경우도 생긴다. 이들은 비행기를 놓치든 다음 비행기를 예매하든 신경도 안쓴다. 라고스는 1991년까지 나이지리아의 수도였기에 시설은 잘 되어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 여러 나라 중 치안이 제일 안되어 있어 노상강도도 많은 편이다.

 

저자는 1990년대 말 라고스 현지법인에 근무할 당시, 일주일간 피랍당한 적이 있다. D건설 숙소에 물건을 빌리러 갔다가 침입한 무장 강도에게 납치되었던 것이다. 또한 주의해야 할 지역은 니제르델타이다. 이 지역은 해방운동이라는 무장단체가 활동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위험 지역을 피해야 한다.

 

아프리카에서의 비즈니스시 유의할 점

 

브로커나 고위 공무원이 만능 해결사는 아니다.

한 박자 쉬어가는 여유가 필요하다.

아프리카를 존중해야 한다.

아프리카 사람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2000년대 중반에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로 아프리카의 차드 적도기니가 거론되었다. 실제로 차드는 62%, 적도기니는 28%의 경이적인 성장을 이룩했다. 아프리카 최빈국 차드는 산유국 대열에 진입함으로써 호기를 맞았다.

 

아프리카 최대산유국인 나이제리아를 필두로 앙골라, 가봉, 콩고, 카메룬, 적도기니, 수단, 차드, 베냉 등이 산유국 대열에 진입했고, 새로운 유전 개발을 위한 탐사와 시추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석유를 둘러싸고 미국과 프랑스의 경쟁도 점점 심화되고 있다.

 

코트라(KOTRA) 단계별 활용 방법

 

1단계 : 인터넷 포털 무역 사이트 등록

2단계 : 해외시장 조사 대행 활용

3단계 : 해외시장 개척단 참가

4단계 : 해외 전시, 박람화 참가

5단계 : 개별 해외 세일즈 출장 및 동행 요청

6단계 : 해외 무역관 중소기업 지사화 사업 참가

 

남아공에는 아무 것이나 수출할 수 없다. 진출하기 힘든 품목은 중고 타이어, PVC 등인데, 이는 반덤핑 혐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05년 WTO가 조사한 바로는 총 덤핑 관세 부과 건수가 80건으로 무역 규제가 심한 나라이다. 한국산 수출품의 경우 승용차 타이어 등 현재까지 30개 품목이 반덤핑 관세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남아공 현지 상황에 맞지 않는 품목도 있다. 한국에 수요가 많지만 남아공 자국 내에서 수요가 부족해 수출하기 어려운 품목이 바로 부탄가스를 사용하는 휴대용 소형 가스렌인지다. 남아공 요리는 주로 튀김이나 찜인데 일반 흑인 가정에서는 부탄가스보다 값싼 파라핀 액체 원료를 이용해서 요리한다.

 

라틴아메리카에 도전하다

 

과테말라는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자유무역 지대를 설정해놓았다. 입주 업체에 대하여 생산 활동에 필요한 수입 상품의 관세와 법인세를 면제해주는 등 다양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섬유, 봉제 산업의 경우 현지 진출 업체가 많고 연관 산업이 발달해 있지만 여타 제조업의 경우 매우 취약하다. 투자 유망업종으로는 미국과 중미 시장을 대상으로 봉제업. 부자재 생산업, 플라스틱 제품 제조업, 전자 제품 조립업, 자동차 부품 생산업, 식품 가공업 등이 유망하다.

 

트리니다드토바고는 석유 및 가스 등 에너지 분야를 집중 개발하고 있다. 주택 및 도로 등 인프라 건설도 활발하다. 향후에도 에너지 개발과 고속도로 건설 프로젝트 등으로 건설 붐은 지속될 듯하다. 이에 따라 하이드롤릭 브레이커, 콤팩터, 시어, 크러셔 등 건설 중장비의 수요가 예상된다. 현재 캐터필러가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세계가 시장이다. 어느 사회든 저마다 다른 풍습이 있다. 이중에는 다른 문화권 사람들이 보기에 이해되지 않는것도 있다. 폴리네시아인은 손님을 환영할 때 상대방에게 코를 비벼댄다. 뉴기니의 파푸아족은 코에 뼈로 만든 장식을 꿰고 이를 아름답게 여긴다. 우리에게 그들의 풍습이 이상하게 보이듯, 우리의 악수하는 풍습이 그들에게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에티켓이란 본디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의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라는 표지판이었다. 에티켓은 사회나 문화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예절이다. 과거엔 사회마다 그 차이가 매우 심했지만, 글로벌화된 오늘날에는 서로 다른 문화의 전통과 예절을 이해하고 지키는 것이 상식이다. 그곳에 맞는 에티켓을 지키자.

 

저자는 처음 해외시장에 도전할 때 지구 최후의 원시 국가인 파푸아뉴기니 원시인들에게 신발을 팔러 갔다. 현지에서 사업하는 한국인의 말에 의하면, 아직도 식인종이 있으며 풍토병이 있어 위험천만한 나라라는 설명이었다. 수도인 포토모르즈비에 도착하자 여러 가지 고난들이 닥쳐왔다.

 

세관 검사부터 걸림돌이었다. 샘플로 가져간 운동화 몇 켤레에도 세금을 부과했다. 실랑이 끝에 세금을 적게 내는 쪽으로 합의하고 입국 심사장으로 갔더니 비자 때문에 공항에 잠시 구금되었다. 수입에 절대 의존하는 나라라서 환율이 미국 달러보다 높았다.

 

당시 한국은 신발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어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로 생산 공장을 이전하는 때였다. 저자가 근무하던 회사도 운동화 생산을 중단하느냐 아니면 다른 사업을 시작하느냐 기로에 서 있었다. 그래서 재고품을 팔려고 파푸아뉴기니로 갔던 것이다.

 

파푸아뉴기니에는 부족이 700개이고 언어도 700개이기 때문에 부족끼리도 서로를 적으로 생각한다. 각 주의 경계선을 통과할 때 검문을 한다. 검문을 하다가 왜 운동화가 많냐고 따지면서 무허가 영업 아니냐고 시비를 건다. 억울하지만 돈 몇 푼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다. 간혹 가방을 조사하면서 말도 없이 운동화 샘플을 슬쩍하는 경우도 생긴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사업가와 손을 잡고 일괄 판매를 했다. 물품 판매 대금의 환전이 어려워 한국에 와서 환전하는 방법을 택했다.

 

우리나라 벤처 기업이 중국 내에 진출한 현황을 살펴보자. 차이나 미디어넷이 보유하고 있는 자료에 따르면, 중국에 진출했거나 진출 예정인 기업은 모두 150여 곳이 있다. 한국 기업이 당면한 어려움은 시장에 대한 사전 준비 부족과 성급한 계약 체결 때문이다.

 

중국은 무늬만 세계의 공장이지 관리는 빵점 수준이다. 중국 공장과 거래할 경우엔 현지의 공장 상태와 생산 공정 등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또한 품질은 직접 가서 확인하는 것이 좋다. 한편, 제품 불량에 대한 클레임 조항을 계약서에 명기하더라도 중국인들은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제라도 마음이 안들면 바로 거래를 중단하기 때문이다. 상황 판단을 잘해서 선수를 쳐야 한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바라보라

 

소규모 1인 무역업을 할 경우 한 가지 품목만을 취급해야 한다.

해외 각 나라의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성향에 맞는 제품을 찾아야 한다.

다양하게 취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고생하게 될 것이다.

삼성반도체도 반도체 단일 품목으로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다.

 따라서, 품목을 찾을 때엔 지금보다는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앞으로 수십 년간 먹고살 것을 해야 한다"

 - 이건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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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한비자 법法 술術로 세상을 논하다 만화로 재미있게 읽는 고전 지혜 시리즈 1
조득필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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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에는 정치를 통해 배우고, 느끼고, 깨닫게 될 교훈들이 너무나도 많이 담겨 있다. 정치가 나라의 벼슬아치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가정, 직장, 그리고 소속 단체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가 바로 정치다. 굳이 거창한 목표가 아니더라도 미래의 발전을 위한 교훈을 이 책에서 찾아보자.

 

한비韓非는 기원전 3세기 초 한나라 왕 안安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서공자庶公子였다. 서공자란 공자가운데서 모친의 신분이 낮은 사람을 가리킨다. 비록 왕족일지라도 그는 왕족으로서 충분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한나라는 전국 7웅 중 국토가 제일 작은 약소국가라 서쪽 국경에 접한 진秦나라가 가장 위험한 존재였다.

 

젊은 한비는 상앙의 법치주의를 채택하여 부국강병을 이룩한 이웃 진나라를 동경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대표적인 학자였던 순자荀子가 있는 나라로 유학을 갔다. 순자의 제자 중 나중 진나라의 재상이 된 이사李斯가 있었다. 이사도 한비의 뛰어난 재능에 감탄했다. 한비는 언변이 없고, 말더듬이라 자신의 의견을 글로 표현했다. 이를 모은 것이 한비자 55편이다.

 

한비의 정치사상은 법法과 술術로 요약된다. 법가사상은 진나라의 상앙과 한나라의 신불해 등이 한비보다 앞서 펼쳤던 것으로 상앙의 '법'과 신불해의 '술'을 종합하여 집대성한 인물이 바로 한비이다. 그는 이를 국가 통치의 근본이라고 주창했다.

 

'술'이란 왕이 신하를 조종하는 방법이다. 임금과 신하는 본디 각자의 이익을 위해 이루어진 관계이기 때문에 인의나 인정으로 다스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술'로서 신하를 조종하고 아울러 그들이 일을 잘 하는지 늘 경계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신하 조종법

 

엄격한 근무 평점의 기준을 세워 계획서를 제출하게 한다

실행결과를 계획과 대비하여 일치하면 상을 주고, 일치하지 않으면 벌한다.

계획 대비 결과가 훌륭한 경우라도 처벌한다.

 

한비는 한나라의 부국강병을 위해 법술을 적용해야 한다고 자신의 의견을 상주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이로니하게도 진나라의 군주가 그의 글을 읽고 감탄하자, 이사가 꾀를 내어 그를 진나라에 오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진나라 왕은 그를 대면한 후 등용하지 않고 오히려 독약을 내려 죽게 만들었다. 기원전 233년이었다.

 

 

 

 

진시황이 그토록 감탄했다는 '고분편孤憤篇''오두편吳蠧편' 두 편을 살펴보도록 하자.

 

진실을 아는 사람은 언제나 외롭다. 진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불리한 일을 당하기 때문이다. 한비는 항상 고립되어 있었다. 그의 진실이란 법과 술에 의한 정치였다. 이를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임금을 둘러 싼 중신들이다. 한비는 울분을 품고 그들을 규탄한다.

 

좀은 남의 속을 파먹는 벌레다. 아무리 큰 나무라도 좀 벌레가 다 파먹고 나면 필경 손가락 하나로 밀어도 넘어가게 된다. 나라에도 이런 좀 벌레가 자리 잡고 있다. 한비는 이 좀 벌레에게 속이 썩어가고 있는 나라의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중신重臣의 해害

 

대부분의 신하들은 임금의 명에 의해 나랏일을 하고, 법에 따라 맡은 일을 수행한다. 그런데, 중신重臣들은 임금의 명 없이도 자기마음대로 행동하며, 법에 아랑곳하지 않고 개인의 이익을 도모한다. 국력이 기울든 말든 자신의 부를 채우기 위해 임금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다. 술을 알고 법에 통달한 인물이 임금의 신임을 얻으면 기존의 중신은 법에 따라 처결될 것이다. 그들은 중신과 같은 배를 결코 타지 못하는 원수지간이 된다.

 

나라 안팍의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중신의 앞잡이가 된다. 다른 나라의 임금들도 그를 통하지 않고선 교섭도 안된다. 나라안 벼슬아치는 모두 중신에게 매달린다. 임금의 측근 시종들도 중신의 미움을 받게 되면 좌천되므로 그들의 나쁜 짓을 눈감아 준다. 임금의 눈은 가려지고 중신의 권력은 더욱 강해진다.

 

요새 주말 연속극 <무신>이란 프로그램이 있다. 고려의 무신정권이 주무대다. 고려 의종 때 일어난 정중부의 난 이후 경대승, 이의민, 최충헌으로 수습되면서 60여 년간 집권을 이어갔다. 왕이 있었으나 허수아비에 불과했고, 왕의 폐위도 마음대로 했다. 이것이 바로 중신의 해이다.

 

임금과 신하의 모순

 

원래 신하와 임금의 이익은 서로 다르다. 임금은 유능한 인물을 쓰는 것이 이익이지만, 신하는 무능력해도 일을 맡아야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임금은 공이 있는 사람에게 작록을 주는 것이 이익이지만, 신하로서는 공이 없어도 부를 얻는 것이 이로울 것이다. 임금에겐 걸출한 인물이 능력을 발휘하도록 해주는 것이 이익이지만, 신하는 패를 만들어 서로 덮어주는 것이 이로운 것이다.

 

나라가 침략당해도 개인은 번영하고, 임금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도 대신의 권위는 높아만 간다. 이리하여 임금은 권력을 잃고, 신하가 나라를 빼앗는다. 신하가 임금을 속여 자기의 이익을 꾀하는 것은 이런 결과를 바라기 때문이다. 신하가 죄를 지었는데 이를 임금이 내버려두는 것은 커다란 실책이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의 무리에는 인자仁者가 적다 

 

 

한비는 한나라가 번창하려면 법술을 채택하여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유일한 길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수차에 걸쳐 그는 법술을 주장했지만 한나라에서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이론적으로 해석하고 정리한 내용이 '고분편'에 실려있다.

 

 

수주대토守株待兎, 토끼를 기다리다

 

송宋나라의 어느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다. 그 때 토끼가 달려오다가 밭 가운데 있는 그루터기에 머리를 부딪혀 죽었다. 이를 본 농부는 밭일을 그만 두고 매일 그루터기만 쳐다 보았다. 오늘은, 오늘은 오겠지? 그러나, 토끼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 농부는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선왕先王의 정사를 흉내내는 것으로 백성을 통치하는 것은 토끼를 기다리는 농부와 같다.

 

송양지인宋襄之仁

 

송나라 양공은 제환공이 죽자 제나라를 공격해 효공을 즉위시키고 자신은 맹주가 되었다. 그해 가을 강국인 초나라가 양공의 행동이 불손하다며 그를 포로로 잡아갔다. 이후 겨울에 용서받아 송으로 귀국한 그는 정鄭나라가 초楚나라와 내통하자 정나라를 공격했다.

 

초나라가 정나라를 구하기 위해 출병했다. 양공은 초나라의 군대를 맞아 홍수에서 싸우기로 계획했다. 초나라 군대는 강을 건너면서 진용이 많이 흩트러졌다. 이에 부하들이 공격하자고 건의했지만, 양공은 군자는 상대의 약점을 노리지 않는다면서 이를 거절했다. 결국 양공은 크게 패하고 허벅지에 상처를 입어 이듬해 5월에 죽고 말았다. 후세 사람들은 쓸모없는 인정을 '송양지인'이라 불렀다.

 

나라를 좀 먹는 다섯 가지 벌레

 

어지러운 나라는 다음과 같은 꼴이 된다. 첫째는 학자로 선왕의 도라고 칭하여 인의를 빙자하며 용모와 복장을 꾸미고 변설을 교묘하게 하여, 현행의 법에 의혹을 품게 함으로써 군주의 마음을 어지럽힌다는 부류다. 둘째는 논객, 논객은 거짓과 간사한 일컬음으로 외국의 힘을 빌려서 사복을 채우고 국가의 이익을 저버린다. 셋째, 협객으로 칼을 차고 무리를 모아 의리를 내세우며 자기들 이름을 드러내나 군주의 금령을 어긴다. 넷째, 측근들로, 측근들은 뇌물을 받아 사태에 축적하고 유력자의 청탁은 들어주면서도 싸움터 병사들의 공로는 돌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상인과 장인들로, 일그러진 기물을 만들어 부정한 돈을 모아 두었다가 때를 기다려 이를 팔아치움으로써 농부의 이익을 가로챈다.

 

이 다섯 가지는 나라를 좀먹는 벌레들이다. 임금이 이를 몰아내지 않으면, 그리고 절도 있는 인물을 기르지 않는다면 망하는 나라와 몰락하는 조정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한비는 옛 성인의 이상을 찾는 상고商古주의를 부정함으로써 첫째 벌레인 유학자들의 이론적 근거를 깨부수었다. 첫째의 비판은 나머지 네 종류를 비판하기 위한 전제였다. '오두편'은 사회 내부를 파헤쳤다는 데 그 의의가 크다.

 

 

한비가 주장한 법과 술은 인간의 내면에서 사작되는 이기적 사고를 극복하고, 나라의 해를 없애고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한 필요한 원칙들이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처럼, 우리의 삶이 고단하고 지칠 때 고전의 가치와 힘은 더욱 빛남을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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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간적인 인간
브라이언 크리스찬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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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매년 인공지능 학계에서는 이 분야에서 화제를 몰고 다니는 연례행사가 열린다. 바로 튜링 테스트라는 경기다. 이는 말 그대로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의 이름에서 따왔다. 1950년 그는 오래된 한 가지의 물음에 답하려고 시도했다. 컴퓨터가 생각한다고, 고성능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저자는 이 경기에 참석하고 있다. 최고의 인공지능 프로그램들과 맞서 경쟁하는 네 명의 인간 연합군 중의 한 명이다. 최고의 점수를 얻은 프로그램은 그해의 '가장 인간적인 컴퓨터'라는 타이틀을 차지한다. 가장 높은 확신도를 획득한 연합군 참가자에겐 '가장 인간적인 인간'이라는 타이틀이 수여된다.

 

뢰브너상이라고 알려진 이 특별한 대회의 주최자는 휴대용 디스코 댄스플로어 제작자인 발명가 휴 뢰브너이다. 그는 왜 이런 대회를 조직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게으름을 꼽았다. 즉 미래의 세계는 지능 있는 기계에게 인간의 노력과 근면성을 모두 양도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또 한 사람을 소개한다면,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의 심리학자인 로버트 엡스타인 박사다. 그는 <튜링 테스트의 해부>의 편집자로 휴 뢰브너와 함께 뢰브너상을 만든 인물이다. 그는 4개월 동안 이바나라는 러시아 여성과 서신을 교환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녀는 바로 컴퓨터 프로그램이었다.

 

18세기 중엽 이래로 컴퓨터(계산기)는 흔히 여성이었다. 그녀들은 기업체, 은행 등에 고용되어 계산 업무를 수행했으며 때로는 초보적인 계산기를 이용해 수리적 분석작업도 했다. 인공지능 분야가 오늘날의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앨런 튜링의 논문 <계산 기계와 지능>덕분이었다.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다니엘 길버트는 자신의 학문이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인간은 oo하는/한 유일한 동물이다"와 같은 인간에 대한 명제를 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는 거짓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한때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는 유일한 동물로 간주되었지만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굳이 특별한 존재여야 한다고 느끼는 이유는 뭘까? 인간만이 지능을 가졌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수학을 잘한다면, 우리는 이로 인해 인간 활동의 한 영역을 빼앗긴 셈이다. 대신 인간이 자유를 얻었다고 위안할지 모르나 미래를 상상한다면 결코 매력적인 반론이 못된다.

 

 

 

 

이 책은 인공지능에 관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삶에서 점점 컴퓨터의 역할이 커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영화 <매트릭스>의 경우처럼 그들이 우리를 파괴하려 하고, 우리 또한 그들을 파괴해야만 하는 강력한 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우리를 이기려 하지만 경쟁의 주목적이 게임의 수준을 높이는 데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 상대일 뿐이다.

 

대회가 열리기 몇 달 전부터 저자는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 인간답다는 것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란 핵심적인 물음에 관해 전문가들과 대화를 통해 스스로 많이 연구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튜링 테스트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 성찰도 했다. 이제 그를 따라가보자.

 

브라이튼 센터로 입장하여 뢰브너상 경연대회가 열리는 곳으로 향했다. 대회장에는 이미 자리 잡은 관객들이 몇 명 보였다. 조직위원장의 안내를 받아 커튼 뒤의 연합군 방으로 들어갔다. 연합군 네 명은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준비된 노트북 네 대가 놓여 있었다.

 

연합군의 구성은 캐나다의 언어학자 더그, 산디아 국립연구소의 미국인 기술자 데이브, 메스워크 회사의 남아공 사람 프로그래머 올가,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브라이언 크리스찬이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쉴 새없이 지껄이면서 게걸스럽게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바로 휴 뢰브너였다.

 

연합군 네 명은 노트북의 깜박이는 커서를 응시했다. 마치 그들은 모두 서부의 총잡이처럼 키보드 위에  손을 맴돌리고 있었다. 갑자기 화면에 글자가 나타났다. "안녕?" 마침내 튜링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이상하리만치 이 장면이 엉뚱하게 느껴졌다.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에 벌어진 20세기 최대의 대결은 1997년 5월 맨해튼의 이퀴터블 빌딩 35층에서 벌어진 체스 세계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와 슈퍼컴퓨터 딥블루 간의 대결이었다. 이 대결의 승리자는 컴퓨터였다. 이 결과에 대한 해석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인공지능의 역사적 이정표라는 생각이고, 또 다른 부류는 꼭 그렇지만 않다는 것이다.

 

체스는 15세기 유럽에서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왕들의 게임', 12세기 기사들이 '승마, 수영, 활쏘기, 권투, 매사냥, 시 쓰기'등을 배운 다음 의무적으로 배워야하는 훈련과목, 나폴레옹, 제퍼슨 같은 정치가들과 패튼, 슈바르츠코프 같은 장군이 즐기던 게임 등의 명성을 얻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 이 시합은 인류 전체의 방어전이다. 컴퓨터는 사회에서 어마어마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컴퓨터는 도처에 있다. 그러나 컴퓨터가 넘어서면 안 되는 경계

또한 존재한다. 컴퓨터는 인간 창조성의 영역 안으로 넘어 들어오면 안 된다"

 - 게리 카스파로프

 

카스파로프는 첫 번째 게임에서 패배했지만 역습에 성공했다. 뒤이어 벌어진 다섯 번의 게임 중에서 세 판은 이기고 두 판은 비겼다. 전체적으로 4대 2이라는 점수로 완승했던 것이다. 이후 1997년에 새롭게 수정된 강력한 기계와 여섯 판의 대결을 펼쳐, 마지막 판이 벌어지는 날 아침 둘의 점수는 무승부였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패배하고 말았다. 마침내 기계가 인간을 무찌르는 순간이었다. 세기적 대결이 끝나자 IBM은 개발팀의 연구지원금을 끊고, 기술자들은 원위치시키고, 딥블루는 해체되었다. 학자들도 무시하는 논평을 했다. 당사자인 카스파로프도 딥블루가 이긴게 아니라고 항변했다.

 

"순수하게 수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체스는 하찮은 게임이다"

 - 존 썰/캘리포니아대학교 교수, 철학자

 

'7-38-55 규칙'이 있다. 이는 1971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심리학 교수 앨버트 메라비언이 처음 밝혀낸 의사소통의 요소이다. 누군가 소통할 때 상대방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55%는 신체언어로, 38%는 목소리로, 7%는 우리가 선택한 단어로 전달한다는 것이다.

 

튜링 테스트는 일종의 거짓말탐지기를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컴퓨터가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은 대부분 거짓말이다. 자신이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를 알아야만 거짓말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소프트웨어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튜링 테스트에서 인간은 이방인이다. 느리고 소리도 나지 않는 소통 매체를 통해서만 대화할 수 있으며 시간도 많지 않다.

 

2009년의 '가장 인간적인 컴퓨터'상은 데이비드 레비에게 돌아갔다. 그는 일찌기 1980년대에 컴퓨터 체스계에서 두각을 보였던 인물이다. 그는 박수갈채를 받으며 휴 뢰브너가 수여하는 상을 받았다. 브라이언 크리스찬은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가슴 졸였다. 더그가 수상할 것으로 예측했다.

 

"여기 쪽지에는 심사위원들이 '가장 인간적'이라고 평가한 인간이 누구인지도 적혀 있습니다. 그는 바로 '1번 연합군'인 브라이언 크리스찬입니다"

 

 

대화로봇들이 모방게임에서 종종 승리하는 까닭은 로봇들이 점점 더 인간을 닮아가기 때문이라기보다 우리 인간이 점점 더 기계를 닮아가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인간과 기계가 대화를 통해 누가 더 인간적인지를 경쟁한다는 대결 상황을 통해 참된 인간다움의 의미가 무엇인지 성찰하는 유익한 기회가 되었다. 

 

인간다움의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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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세상을 더듬다
저우쭝웨이 글, 주잉춘 그림, 장영권 옮김 / 펜타그램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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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쳤다. 맑고 깨끗한 하늘을 보려고 산책 복장으로 집을 나섰다. 동네 개천길 옆 산책로는 지난 밤 내린 비의 흔적들로 지저분하다. 개천길 산책로를 피해 다시 언덕을 올라 학교길로 접어드는 순간 길바닥에 달팽이들이 지천으로 늘려있다. 이 놈들이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다행인 것은 이 길은 여학생들 등교길이라 차가 다니지 않는다. 또한, 오늘은 일요일이라 학교도 휴무다. 누가 뭐라든 느릿느릿 제 갈 길로 한걸음 한걸음 달팽이는 기어간다. 지켜 보는 내 마음이 더 무겁다. 혹 자전거라도 지나간다면 영락 없이 비명 횡사수에 걸리기 십상이다.

 

이 책은 주잉춘의 이미지 작업과 저우쭝웨이의 글이 만나서 탄생한 작품이다. 두 사람은 이미 <나는 한 마리 개미>란 작품으로 국내에 알려진 작가들이다.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달팽이는 뭔가에 쫓기듯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유쾌한 성찰의 기회를 만들어준다.

 

"내 이야기가 궁금하더라도 참고 기다려야 해요.

서두르다간 내 모습을 지나치고 말 테니" 

 

 

 

 

이 책이 돋보이는 이유는 달팽이를 기르며 관찰하는 데 1년, 그림 작업에만 1년, 그리고 편집과 디자인, 제작 등에 걸린 시간이 또 1년. 특히 잠자리 한 마리 그리는데 꼬박 이틀이 걸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일일이 수작업으로 그리다 보니 완성하기까지 3년이 넘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치 작가들이 달팽이가 된 느낌이다.

 

"느리다 느린 걸음걸이.

게으름 피우는 건 결코 아니고

연약한 몸으로 태어났기에

껍데기를 등에 지고 천천히, 천천히 기어갈밖에."

 

길 위에 나선 달팽이를 따라가며 이 책은 시작된다. 습관처럼 굳어진 느린 걸음걸이. 길을 걷는다는 건 이토록 무미건조한 일이지만, 멈춰 서면 오히려 더 갑갑해. 길가에 펼쳐진 찬란한 풍경에도 내 마음은 늘 갈피를 잡지 못한다. 느리게 살라는 조상들의 가르침은 이미 DNA로 내 몸에 각인되어 한 점의 의문도 가져본 적이 없다. 길에서 만난 동료는 무참히 밟혀 찌부러져 있다. 덜덜 떠는 그 모습에 가슴이 철렁한다. '느림'은 그를 구해주지 못했다. '산다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했다. '느림'이 아니라면 '빠름'이 진리일테지.

 

'빠른 삶'을 살자고 맘먹었더니 개미, 애벌레, 무당벌레 등등, 주위엔 온통 빠른 선수들이다. 그렇지. 말벌은 이들보다 더 빠르다. 입이 딱 벌어지는 말벌의 비행술. 아차 너무 빨라서인가? 거미줄에 체포되고 말았다. 그것도 눈 깜짝할 사이에. 휴, 느린 나는 오히려 다행이다. 차라리 느리니까 좋은 점을 생각해 봐야겠다.

 

다시 느릿느릿 나아간다. 신음소리가 들린다. 할머니 달팽이가 쓰러져 있다. 깨진 껍데기 속을 헤집고 개미들이 살점을 물어뜯는다. 불쌍한 할머니 맥없이 당할 뿐이다. 위로의 말을 전했다. 우리는 위로의 말로 관심을 표현한다. 위로란 남을 속이는 일이요, 자신을 기만하는 일임을 알지만 진실과 마주할 용기가 없다. 마지막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늙은 달팽이. 느림을 탓할 게 아니라 느려서 생겨난 나약함을 고쳐야 하는 것이다.

 

속이 텅 빈 매미 허물의 날카로운 발톱에 할퀴고, 분을 삭이며 가다보니 집게벌레의 주검을 만난다. 몸집이 크지만 전혀 두렵지 않다. 지금은 개미에게 뜯어 먹히는 신세일 뿐이다. 휴식을 취하려 잎사귀 그늘에 들어갔다. 하늘에서 날아온 뿌연 안개. 농약 냄새가 코를 찌른다. 경계 태세 돌입. 껍데기 속으로 몸을 숨기려는데 쥐며느리가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다. 뒤집어진 채로 바둥거린다. 더듬이를 뻗어 당겨주었다. 뒤집기에 성공한 쥐며느리는 친구가 되었다. 농약 때문에 숱한 곤충들이 죽었다. 살아남은 우리는 감사할 일이 뭔지 깨달았다.

 

억수같이 퍼붓는 비가 그칠 줄 모른다. 밤이 찾아왔다. 칠흑같은 어둠 속. 빗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죽음이 이리도 가까운 곳에 있음을 처음 느꼈다. 시간이 한 백 년쯤 흐른 것 같았다. 마침내 폭우가 멎었다. 비 갠 밤은 한없이 아름다웠다. 황홀한 광경에 넋을 빼앗겼다. 그건 반딧불이의 불빛이었다. 그들은 달팽이의 천적, 꼼짝 않고 지나가길 기다렸다.

 

"불쌍하게도 사람들은 자기가 너무 '느리다'고 마뜩잖아 한다.

무슨 수를 써서든 조금이라도 '빨리'하려고 한다.

자동차를 발명했으나

그들이 미처 몰랐던 건,

차가 암만 빨라도 저 우주의 '무상'을 앞지르진 못한다는 거다.

나는 이렇게 살아남았지만

저 빨리 뛰는 생명들은 오히려 피해를 모면하지 못했다.

재난 앞에서,

뜻밖에 그들은 느림보 달팽이만도 못했던 거다.

대자연의 이 농담 같은 현실은 아무래도 너무 심했다"

 

큰물이 빠져나가고 다시 지상으로 내려왔다. 천천히, 천천히 기어갔다. 견딜 수 없이 외로워도 여전히 세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 가진 게 없을 때라도 세상 만물을 선하게 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참된 '사랑'이다. 평안함. 그게 바로 행복이다.

 

만慢

나는 계속 느릿느릿 길을 걸었다.

마음 가는 대로,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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