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보내는 상자 - 믿고, 사랑하고, 내려놓을 줄 알았던 엄마의 이야기
메리 로우 퀸란 지음, 정향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0년 음력 단오, 아버지가 별세하셨다. 그 해 설날 허리가 몹씨 아파 불편하다는 말씀에 종합병원에서 진찰한 결과 척추뼈 한 곳이 함몰되었다는 진단이었다. 병원에선 간단한 수술이라 일주일 정도의 입원을 예상했다. 하지만 수술후 허리가 계속 아파 퇴원이 늦어졌다.

 

담당의사의 긴급면담 요청을 받고 불길한 마음에 서울에서 대구로 급히 내려갔다. 의사의 소견으로는 암이라는 설명을 하면서 평소에 통증이 심해 힘들어한 적이 없냐고 물었다. 의사는 아버지의 경우 다발성 암으로 온 몸에 이미 전이된 상태라 손 쓸 방법이 전혀 없다는 의학적 판단을 내렸다. 결국 입원한지 약 3개월만에 돌아가셨다. 의사가 예상한 것보단 더 오래 살았다.

 

이 에세이의 저자는 최근 엄마를 여의었다. 이후 엄마가 남긴 '갓 박스'를 발견했고, 이 상자에 담긴 작은 메모들에 대한 그녀의 소회를 피력하고 있다. '갓 박스'란 하느님께 보낸 쪽지들을 보관한 비밀 상자였다. 즉 그녀의 엄마는 메모지, 영수증, 포스트잇 등에 하느님께 기도문을 손수 적어 이를 보관해왔던 것이다.

 

 

 

"사랑한다. 넌 항상 내 갓 박스 안에 있을 거야" 

 

 

2006년 5월 29일 그녀의 엄마는 뇌졸증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다. 엄마의 이름은 메리다. 그녀는 엄마와 이름이 같다. 둘 다 섹시한 구두와 공포영화를 좋아했다. 또한 둘 다 광고 분야에서 일했고, 허풍쟁이를 싫어했다. 여러 모로 많이 닮았지만 빨간 곱슬머리는 남동생 잭이 물려받았다. 오랫동안 둘은 비밀 번호를 공유했다. '손을 대고'였다. 이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항상 함께 한다는 의미였다.

 

그녀의 엄마는 치료가 불가능한 희귀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골수섬유증', 이 병은 적혈구와 백혈구의 생성이 원활하지 못해 몸이 허약해지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다. 이후 약 20년 동안 각종 수혈과 약물 치료를 견뎌내며 의사가 예상한 것보다 더 오래 생존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그녀의 엄마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이를 기도로 승화시켰다. 가족들의 문제 외에도 다른 사람들의 고민도 상담했다. 고민거리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그녀의 엄마는 기도문을 종이에 적어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며 이를 상자 안에 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상자의 위치는 절대 비밀이었다.

 

장례식 전날 밤, 그녀는 그녀의 엄마 방에서 일곱 개의 상자를 발견했다. 이 속에 무려 20년 전부터 작성된 쪽지들이 쏟아져 나왔다. 첫 번째 쪽지는 1986년 8월 7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거의 모든 쪽지들이 볼펜으로 휘갈겨 쓴 것이지만, 첫 번째 것은 타자기로 깔끔하게 작성되어 있었다.

 

하느님.

부디 제 건강과 저의 눈, 우리 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을

보호해 주십시오.

 

잭이 회사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보살펴 주세요.

메리 로우와 조를 직장에서 보호해 주시고, 특히 그들이

뉴 호프에 집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십시오.

 

우리 가족에게 내려주신 축복에 감사드립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사랑을 담아서, 메리가 .....

 

"엄마가 남긴 것은 우리 가족의 일대기이자,

우리 가족에게 보내는 소중한 연애편지와도 같았다" 

 

"엄마는 마치 펜팔 친구에게 쓴 것처럼 하느님께 편지를 썼기 때문이다.

엄마의 솔직하고 다정한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는 방식이다" 

 

 

갓 박스를 찾는 것은 마치 엄마의 마음을 읽으려는 것과도 같았다. 상자를 통해 엄마의 믿음이 얼마나 확고했는지 알아가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쪽지들을 읽어보면 하느님에 대한 엄마의 무조건적인 믿음이 생생히 느껴졌다. 오랜 세월 동안 엄마의 딸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던 저자가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 그대로였다.

 

엄마의 쪽지를 읽을 때마다, 그녀는 엄마가 처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주던 어린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하느님, 부디 엄마와 아빠, 잭과 저를 보살펴주시고...."로 시작하던 기도문은 마지막에 쾌활하게 "아멘!"을 외치고 침대로 기어 올라가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엄마는 남동생 잭이 샌디와 결혼한 후, 잭이 다시 성당으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쪽지를 많이 남겼다. 샌디는 '일반인'이었다. 이 말은 카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을 가리키는 그녀의 가족들이 사용하던 은어인 셈이었다. 그녀의 엄마는 며느리 샌디를 몹시 아꼈지만 한 번도 카톨릭을 전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손녀들에겐 약식으로 세례를 베푼 듯하다.

 

그녀의 엄마는 하느님에게 정말 헌신적이었고, 자신의 가장 비밀스러운 소원들까지도 모두 적어 상자에 넣어 두었다. 엄마는 친구들이나 친척들이 고민을 상담하려고 전화를 걸어오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갓 박스에 넣어 줄게" 

 

2010년 3월 초, 새벽이 동 트기 전 그녀의 아빠가 쓰러졌다. 신장암으로 시작된 종양이 아빠의 뇌까지 퍼져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아빠에게 이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절망감을 느끼며 사실이 아니길 바랐다. 저녁식사 후 베란다에서 아빠는 솔직한 답을 원했다.

 

"얼마나 남았대?"

"6주요" 

 

아빠는 나날이 야위어갔지만 유머감각만은 잃지 않았다. 힘들었던 만큼 아빠와 함께 한 신성한 시간은 남동생 잭과 그녀에겐 너무나 소중했다. 그녀는 엄마가 했던 것처럼 쪽지에 기도문을 적어 엄마의 예전 갓 박스에 이를 집어 넣었다. 모르핀에 의지하는 날이 많아지던 4월의 어느 오후 그녀의 아빠는 평온한 영면을 취했다.

 

"이런 부탁을 드릴 거라곤 상상도 못했지만....

부디 아빠를 천국의 당신 품으로 데려가주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