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품명품 수집 이야기 - 쓰레기? 나에겐 추억
전갑주 지음 / 한국교과서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수집을 즐기는 사람들을 두고 '수집광'이라고도 이른다. 수집, 그것은 마약과도 같은 중독성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열광하며 스스로 그것을 자신의 관념과 생활 속에 넣어 두길 원한다. 마치 아름다운 새가 럭셔리한 새장 속에서 아침마다 자기를 깨우기 위해 노래를 부르는 것을 즐기는 새의 주인과도 같이, 이 같은 공유에는 낯선 이가 방해할 수 없는 깊은 골이 있다. 

 

 

어느 수집가의 32년 수집 여행 이야기

 

책의 저자 전갑주교과서 출판인이다. 예전 문교부 산하 기관 국정교과서(주)에서 19년, 자신이 창업한 한국교과서(주)에서 16년 지금까지 총 35년을 교과서 출판 일에 종사하고 있다. 그는 IMF 외환 위기 시절, 알거지 신세로 전락한 후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실업계 고등학교를 살리겠다는 포부로 실업계 전문 교과서 회사인 한국교과서(주)를 창업했다.

 

한편, 그는 23살 때부터 지금까지 32년째 수집광狂으로서 옛 교과서와 교육자료, 6.25 전쟁 흔적 자료, 역사사료, 근현대 생활 사료 총 20만여점을 수집했다. 이제 그는 영인본 출판, 전시회, 추억을 파는 문화 장사꾼이다. 추억장사 마수걸이 상품으로 자신의 32년 수집이야기를 담은 이 책을 출간했다. 책에는 '쓰레기? 나에겐 추억'이라는 부제副題가 달려 있다.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은 아니다" - 유한준, <석농화원> 중에서

 

자신에게 유용한 것, 기쁨을 주는 것을 사모하고, 그것을 따라 삶을 영위해 나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수집가의 자질을 지닌 사람이다. 수많은 사람이 수집가가 되려고 한다. 담배를 수집하는 사람에 대해 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한다. 즉 담배 수집가들은 진귀한 담배를 금쪽같이 여기지만, 흡연을 경멸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쓰레기일 뿐이다.

 

저자는 문교부(현, 교육부) 산하 국영기업체인 국정교과서(주)에 근무하는 행운을 누리게 되어 매년 발행되는 교과서와 교육 자료들을 남들보다 쉽게 수집할 수 있었다. 이렇게 돈 걱정 없이 한두 권씩 모은 지 30년이 훌쩍 넘어 다른 수집품들과 함께 이제 많은 양이 되었다. 오죽하면 수집품 창고에 들어갔다 나오기만 하면 그의 아내는 머리가 아프다고 할 정도란다.  

 

이 책에는 우리들이 쉽게 만날 수 없는 개화기 최초 3종 국어 교과서, 1948년~1951년 사이에 간행된 '바둑이와 철수(국어1-1)'4종 교과서, 한석봉 천자문, 조선어독본, 최남선 소년잡지, 6·25 한국 전쟁 당시 전시 교육 체제 교과서 9종 등 다양한 희귀 국내 교과서들을 소개한다.

 

 

 

 

교과서를 수집하다

 

교과서는 교육의 도구이다. 저자는 처음에 '교과서는 중요하다'고 판단해 무작정 교과서 위주로 수집 활동을 했다. 교과서 한 권 한 권은 그 시대의 상황을 나타내는 조각이다. 각 시대에 발행된 교과서의 과목, 편찬자(저자), 내용과 문투, 편집, 제책 형태 등을 종합해 공통점을 추리면 그 시대의 통치 교육 이념, 교육 행정 방향 등을 알 수 있다.

 

올해는 근대 교과서 탄생 120주년이다. 1895년 당시 학부(교육부) 편집국의 <국민소학독본>을 기준으로 해서다. 통합형 국어 교과서인 셈이다. 이듬해 <신정新訂 심상소학尋常小學>엔 '김지학'과 '박정복'이란 어린이가 등장한다. 그런데 1922년 조선총독부 발간 <보통학교 조선어독본>의 첫 페이지에 소牛가 나온다. 이는 조선인을 마치 순종하는 소처럼 일본의 식민지 노예로 세뇌하려는 의도로 느껴져 분개가 치밀어 오른다.


 

조선총독부의 <보통학교 조선어독본>(1922년) 

 

'너는 소다. 너는 소다. 소는 주인에게 순종한다. 소는 주인에게 순종해야 여물도 많이 받아먹고 귀염을 받는다. 너는 소다. 너는 소다'


문교부는 1948~1951년 사이에 <바둑이와 철수(국어1-1)> 4종을 발행했다. 저자는 이중 2종을 수집했지만 나머지는 수집못한 상태였다. 그는 전국을 찾아 헤맨지 30여 년 만에 건축가이자 수집가인 사람으로부터 나머지 2종을 품에 안을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수집은 기다림과 인내심의 결정체이다. 일제가 교과서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김지학과 박정복이 철수와 영이로 새롭게 탄생한 셈이다.

 

조선 시대에도 <명심보감>, <동몽선습>, <삼륜행실도>, <이륜행실도>, <오륜행실도>, 그리고 <천자문> 등이 교육용 교재로 있었다. 물론 당시엔 신분제도가 철저했기에 누구나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1583년, 선조는 당대 명필 석봉 한호를 궁 안으로 불러 천자문을 쓰게 하고, 어제御製 초간初刊 천자문을 1601년 목판본으로 간행했다. 이것이 바로 '석봉 한호 어제 천자문'이다. 아직까지 초간본은 국내에서 발견된 적이 없다.

 

  

 

기타 사료들

 

일제의 암흑기를 지나 해방을 맞았지만 이후 한국전쟁이란 불행한 사건을 겪으며 한국 사회에는 글을 미처 깨우치지 못한 문맹자들이 많았다. 특히,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기 때문에 당시의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배움의 기회가 훨씬 적었다. 1954~1958년, 정부는 전국 문맹 완전퇴치 계획을 결의했다. 교육부, 내무부, 국방부, 공보실, 농림부, 보사부 등이 교육을 주관했고, 기독교계도 이에 동참했다. 1961~1962년에는 국가재건운동본부가 이를 주관했다.

 

개화기開化期 이래 각종 잡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읽을 수 있는 각종 교육자료, 생활사 물품도 모았다. 공습을 알리는 사이렌과 학도병들에게 지급된 목총, 전쟁통에 사용된 이동용 책상 등 정말 다양하다. 새마을운동과 혼분식 장려 관련 포스터, 쥐잡기 운동에 동원된 쥐덫도 있다.

 

가족계획 관련 포스터는 시대별로 다르다. '알맞게 낳아 잘 기르자', '덮어 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벗는다(1960년대),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신혼 부부 첫 약속은 웃으면서 가족계획'(1970년대),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1980년대), '사랑으로 낳은 자식 아들 딸로 판단말자'(1990년대) 등의 표어가 그 때를 대변하는 듯하다.

 

수집품 중에는 한국전쟁 때 발간한 '전시戰時 똥지 교과서'도 있다. 거무튀튀한 재질에 제본도 안 된 책이다. 국민학교 1~2학년용 교과서의 제목도 <탕크>, <비행기>, <군함>이다. 전쟁통에 질이 나쁜 인쇄용지를 부르는 속어인 '똥지'를 사용했다. 문교부는 제본도 못한 상태로 학생들에게 보급하며, 학부모에게 직접 제본하여 사용하라고 안내했다. 그는 문교부가 1951년에 임시 발행한 전시교과서 12종을 30년에 걸쳐 수집했다.

 

 

 

문맹퇴치운동 포스터(위)

1950년 6월 국어교과서 (아래 왼쪽)

 

 

향후계획과 꿈

 

이제까지 여러 종류의 수집품을 사들이는데 들어간 돈이 빌딩 한 채 값이란다. 수집품이 넘쳐나 시골 폐교를 사들여 10개 교실을 꽉 채워도 모자라 회사 창고 세 곳과 사무실에도 수집품을 갖다 놓았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아무리 어려워도 '수집품은 생명'이라며 하나도 팔지 않은 그는 한국의 성공신화를 보여주는 60~70년대 마을을 만들고, 비무장지대에 분단과 6·25 전쟁을 기억할 수 있는 평화통일 문화 공간을 짓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모두 20만여점 됩니다. 수집은 무수히 흩어진 기억의 편린을 모으는 재미입니다. 수집품들은 삶의 곡절마다 나를 지탱해준 버팀목이었고, 깊고 마르지 않는 삶의 이야기입니다", 이는 저자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수집가에겐 돈과 열정과 시간이 있어야 한다. 이 세가지보다 중요한 것은 아마도 인내심이 아닐까. 최소한 10년은 인내해야 수집가라고 불릴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21세기는 꿈과 감성과 이야기를 사고파는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저자의 꿈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수집은 역사를 모으는 놀이다"

- 야나기 무네요시, <수집 이야기>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송동훈의 그랜드투어 : 지중해 편 - 사람, 역사, 문명을 거닐고 사유하고 통찰하는 세계사 여행 송동훈의 그랜드투어
송동훈 지음 / 김영사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명의 시원을 찾아 그리스 터키 스페인을 가다

 

쪽빛 바다 지중해는 유럽의 문명과 깊은 연관성을 가졌다. 지중해에 얼굴을 맞대고 있는 그리스, 터키, 그리고 스페인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매우 의미있다. 그리스는 서구 문명의 발상지다. 터키는 수많은 문명을 잉태하고 길러낸 보고寶庫다. 스페인은 번영과 쇠락이 반복되면서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창조해낸 땅이다.

 

최근 그리스스페인은 TV 미디어의 단골 손님이다. 재정 위기로 유럽발 세계 경제 위기의 주범들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무능하고 무책임하며, 국민들은 게으르고 분수넘는 과소비를 일삼는다고 낙인 찍혔다. 그러나, 바람은 언젠가 지나가기 마련이다. 늘 그래왔다.

 

이 책의 저자 송동훈은 국제정치학을 전공하고 10년 넘게 기자생활 하다가 문화 콘텐츠 사업체 풍월당風月堂을 창업하여 여행과 역사에 관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5년에 걸쳐 유럽 3부작을 완성했는데, 이 책은 세계사 여행 그랜드 투어 - 서유럽편, 동유럽편에 이어 마지막 3부 지중해편이다.

 

 

  

 

 

그리스는 태양의 나라다. 찬란한 빛 때문에 대지는 밝고 활기차다. 특히, 봄은 더욱 그러하다. 어딜 가나 꽃들이 가득하고 향기가 진동한다. 그리스에서의 여행은 눈부시고 취한다. 이중에서도 절정은 아테네다. 이 위대한 도시는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창조한 곳이다.

 

터키는 풍요로운 땅이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평원은 옥토 그 자체다. 이 풍요로움이 문명을 낳았고, 고대의 히타이트 제국과 리디아 왕국이 대표격이다. 이 풍요로움은 이웃 나라들을 자극해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그리고 로마 제국이 이 땅을 정복했던 것이다. 터키이스탄불이 있다.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 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이 도시는 언제나 활력 넘치고 시끌벅적하다. 수백 개의 모스크와 현대적 건물이 조화를 이루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펼친다.

 

스페인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투우, 플라멩코, 오렌지와 올리브, 스페인 전통 햄 하몽, 스페인 식 볶음밥 파에야, 그리고 축구 등을 얘기한다. 어떤 이는 예술가의 나라로 기억한다. 돈키호테의 세르반테스, 천재 건축가 가우디, 현대 미술의 거장 피카소, 달리, 미로 등을 떠올릴 것이다. 스페인마드리드바르셀로나로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나라다. 난공불락의 도시 톨레도, 기독교 왕국 카스티야의 수도 부르고스, 8백년 동안 이슬람 세력의 지배하에 있었던 남부지역 안달루시아 등 우리나라보다 다섯 배나 큰 땅이다. '대항해시대'의 문을 연 세비야는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었고 스페인은 제국이 되었다. 

 

 

아테네에 가면, 먼저 프닉스PNYX를 찾으라

 

아테네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아크로폴리스다. 관광객은 대개 아클로폴리스만 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프닉스를 건너뛴 아테네 여행은 의미가 없다. 먼 예옛날 아테네의 시민들은 언제나 프닉스에 모여 민회를 열고, 국가의 대소사를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결정했다. 그렇다. 여기가 바로 민주주의의 탄생지다!

 

2,600년 전 민주주의 방향을 제시한 사람은 현인 솔론(BC 640~560)이다. 그는 아테네 왕족의 후손이다. 고대 아테네는 오래전 왕정이 끝나면서 부와 권력이 귀족들에게 넘어갔기에 대다수의 왕손은 여전히 귀족으로서 떵떵거리며 부유하게 살았다. 그러나, 솔론의 집안은 예외였다. 그의 아버지가 대부분의 재산을 자선사업에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타인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삶 자체를 수치로 여겼기에 젊어서부터 외국과 장사를 했다. 그가 해외무역을 업으로 선택한 것은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여러 세상의 지식과 경험을 쌓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그는 부와 함께 지혜를 얻었다. 그리스의 현인 7인에 꼽힐 정도였다.

 

그가 한창 상인으로 활동하던 시대에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의 폴리스들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너무도 지나쳐 공동체의 안정적인 번영을 더 이상 기대할 수가 없었다. 기득층의 반대에 부딪혀 아무런 조치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불만 세력과 체제 유지 세력들 간에 혁명과 반혁명이 되풀이되었다. 이 시절에 질서와 안정을 구실로 뛰어난 독재자가 정권을 장악하는 참주정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생계 유지에 실패한 소농들이 처음엔 부유한 귀족에게 땅을 잡히고 돈을 차용했다. 빚이 쌓이면 땅은 몰수되었다. 그 다음엔 자신의 몸을 저당잡혔다. 끝내 빚을 갚지 못한 농민들은 귀족의 노예가 되거나 해외로 팔려나갔다. 심지어 해외로 도주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기원전 594년 아테네는 솔론을 당시 최고 행정직인 '아르콘'에 선출했다. 그는 전광석화처럼 개혁을 단행했다. 첫째, 빚 때문에 노예가 된 아테네 시민을 모두 해방시켰다. 둘째, 빚을 탕감하고 잃어버린 토지도 회복시켜주었다. 또한, 정치적 혁명도 이끌어냈다. 귀족과 더불어 상인계급에서도 최고 권력자를 배출할 수 있도록 했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곡물 재배를 포기하고, 올리브와 포도 등 특화작물의 생산에 주력했다. 그의 농업 정책은 부수적인 효과도 가져왔다. 올리브유와 포도주를 생산하는 제조업, 운반 용기인 도자기를 제조하는 산업, 조선업, 해운업 등이 덩달아 성장했던 것이다.

 

이처럼 그는 아테네를 죽음 직전에서 구원했다. 아울러 이테네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업그레이드시켰다. 아테네가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초석을 깔고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불의와 탐욕을 미워하며, 사람을 사랑하고 정의를 굳게 믿었다. 그의 개혁 이후로 민회의 개최를 알리는 연기가 프닉스 언덕에 피어오르면, 아테네 시민들은 이곳으로 모였다. 민주주의 성지, 프닉스를 결코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매듭의 비밀을 풀어라, 폐허에서 만난 진정한 정복자 

 

발굴과 복원 작업이 한창인 '고르디온의 유적'을 찾아간다. 프리지아 왕국의 수도, 전설적인 거부 미다스 왕의 도시 고르디온. 한때 풍요로움과 부유함의 상징이었던 이 도시는 폐허 속에 뒹굴고있다. 이곳으로의 여행 목적은 역사 속의 한 남자를 만나기 위함이다.

 

"이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지배자가 될 것"

 

그는 겨울 한 때를 이 도시에서 지냈다. 그 때 그의 머릿속은 온통 동방 정복으로 가득했다. 그는 누구도 가보지 못한 세상 끝까지 가보고자 했다. 그리고 누구도 세우지 못한 거대한 제국의 건설을 꿈꾸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앞에 거대한 매듭이 버티고 서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잠시 생각하더니 칼을 섬광처럼 내리쳤다. 매듭이 풀렸다. 어느 누구도 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시아의 지배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의 이름은 알렉산드로스다.

 

그는 기원전 356년 마케도니아의 수도 펠라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최고의 선생들에 의해 철저하게 왕으로 키워졌다. 그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는 가장 훌륭한 교육이야말로 아들에게 물려줄 가장 값진 유산임을 알고 있었다. 대표적인 선생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다.

 

기원전 336년 아버지가 암살당하자 그는 스무 살에 마케도니아 왕위에 올랐다. 그는 왕위보다 더 큰 꿈을 갖고 있었다. 첫 번째 꿈은 '페르시아 정복'이었다. 알렉산드로스를 얕보고 테베아테네를 중심으로 반 마케도니아 연합이 결정되자, 그는 신속하게 진격하여 테베를 멸망시켰다.

 

기원전 344년 봄, 그리스를 평정한 그는 3만 명의 보병과 5천 명 이상의 기병을 이끌고 동방으로 향했다. 그의 원정대에는 수많은 학자, 연구원, 기술자, 건축가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원정은 단순한 군사적 목적을 뛰어넘어 꿈과 희망을 찾는 과업이었던 셈이다. 

 

터키 땅에 들어선 알렉산드로스와 군대는 동쪽으로 향했다. 기원전 334년 초여름, 그라니코스 강변에서 첫 충돌이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를 앞세운 마케도니아는 압승하며 아나톨리아를 정복했다. 그해 겨울 그는 아나톨리아의 중앙에 위치한 프리지아 왕국의 수도 고르디온에서 지냈다. 이 때 '고르디온의 매듭'일화가 탄생했던 것이다.

 

 

아름다움에 한숨짓고 숨겨진 역사에 탄식하다

 

일몰 후의 알람브라 궁전이 너무 멋있다는 글귀들을 여러 책에서 읽은 터라 이곳은 꼭 가보기로 작정했다. 워낙 석양을 좋아하는 아내이기에 결혼 20주년 기념 여행을 스페인으로 택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알람브라 궁전 때문이기도 했다. 이 궁전의 전망에 제일 좋다는 장소가 바로 성 니콜라스 광장이다. 석양에 물든 알람브라는 형형색색이다. 자석처럼 끌리는 입맞춤.

 

 

 

 

그라나다 왕국은 나시르 왕조의 지배하에 있었다. 시조 무하마드 1세는 작은 도시 아르호나의 토호였다. 1232년 4월, 그는 스스로 술탄이라 칭하고 권력의 세계에 발을 내딛었다. 당시 스페인의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안달루시아와 북아프리카를 지배하던 알모하드 제국이 1212년 기독교 국가 연합군에게 치명적인 패배를 당해 붕괴되고 있었다. 안달루시아에 권력 공백기가 도래했던 것이다. 수많은 야심가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칼을 뽑았다. 나시르 가문무하마드 1세도 그런 사람이었다.

 

무하마드 1세는 탁월한 정치가였다. 수많은 지방 귀족과 손을 잡아 세력을 확장했고, 안달루시아의 중심 도시인 그라나다를 정복해 자신의 수도로 삼았다. 이후 안달루시아를 위협하는 카스티야 왕국과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왕국 사이를 능수능란하게 오가며 왕국의 기초를 다졌다. 카스티야 왕국페르난도 3세를 그라나다 왕국의 상왕으로 인정하면서 안정을 도모했다. 나아가 1248년 페르난도 3세를 도와 무슬림의 도시인 세비야를 함락시켰다. 그 대가로 그라나다 왕국은 안정과 번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무하마드 2세 치하에서 더욱 발전했으며, 5세 치세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문화, 학문, 예술, 경제가 찬란한 꽃을 피었고, '알람브라'는 바로 그 열매였다.

 

 

15세기에 들러 고작 여섯 살인 무하마드 8세가 왕위를 계승하자 당파간 권력다툼이 치열했다. 1419년 삼촌뻘인 무하마드 9세가 왕위에 올랐는데, 내분의 수준이 피를 동반할 정도였다. 무하마드 9세는 일생 동안 왕위에 오르내리기를 무려 4번이나 반복했다. 이 혼란으로 나라는 갈기갈기 찢어졌다. 카스티야에 강력한 군주 이사벨 1세가 출현,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을 통일한 후 스페인 남부에 자리 잡은 무슬림의 마지막 근거지 그라나다 왕국을 공격했다.

 

당시 그라나다의 지배자는 물라이 하산이었다. 1482년 7월, 왕의 장남 보압딜이 아버지의 원정을 틈타 반란을 일으켰다. 스스로 왕에 오른 그는 무모한 군사원정에 나섰다가 아라곤페르난도 2세에게 체포되고 만다. 자신의 안위를 보장 받는 대가로 왕국 대부분을 스페인에 넘기기로 협정을 맺었다. 이후 풀려난 보압딜은 아버지를 상대로 싸웠고, 아버지 사후에는 삼촌 엘-사갈과 싸웠다. 그라나다 동부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용맹한 자' 엘-사갈카스티야 - 아라곤의 공격을 견디지 못해 자신의 영토를 모두 넘기고 북아프리카로 자진 망명했다. 이리하여 그라나다 왕국은 수도 그라나다 시를 제외한 모든 지역이 카스티야-아라곤 왕국의 수중에 들어갔다. 마침내 1492년 1월 2일 그라나다 시의 성문도 열리며 800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이슬람 세력의 최후 보루가 무너지고 말았다.

 

 

알람브라, 빛과 공간 그리고 물과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면서 나그네들을 맞이한다. 사방에서 흩날리는 꽃향기는 후각을 자극하고 분수에서 뿜어져나오는 물소리는 청각을 때린다. 시원한 바람은 피부를 간질이며 촉각을 일으켜 세운다. 헤네랄리페의 분수는 오늘도 지친 여행객들에게 청량한 기운을 제공해준다.

 

 

저자 송동훈이 안내하는 '21세기 그랜드투어'는 여행을 통해 세계사를 배우고, 세계사를 통해 여행을 즐기는 프로그램이다. 역사가 시작되고 문명을 꽃피우며 아름다운 예술이 탄생한 그 역사적인 현장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그 현장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나아가 미래를 생각하도록 질문을 던진다. '100년, 20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박 향기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박향기가 나는 물고기가 있다. 바로 은어銀魚다. 조선시대 임금의 진상품으로 올려지기도 했던 이 물고기는 민물에서 부화하여 바다로 나갔다가 산란을 위해 다시 민물로 찾아오는 회귀성 어류이다. 몸길이가 약 15cm로 강바닥에 자갈이 많은 맑은 하천에서 서식한다.

 

경북 안동은 예로부터 산과 물이 좋아 은어 서식지로 유명한 고장이다. 이 지방의 은어는 진한 수박향과 담백한 맛 때문에 조선시대에 임금에게 진상되었다. 보물로 지정된 안동 석빙고 바로 왕실 진상용 은어를 보관하기 위해 축조된 건축물이다. 안동의 전통 음식으로 은어구이와 은어를 삶아 육수를 낸 건진국수가 유명하다.

 

도서 제목 때문에 진한 수박향이 나는 안동은어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여름철의 별미음식인 건진국수를 많이 먹고 자랐기 때문이다. 또한, 수박 때문에 원두막도 생각났다. 먹거리가 많지 않았던 어린 시절, 여름 밤엔 동네 아이들과 함께 수박서리를 다녔다. 달빛이 환한 어느 날, 원두막 보초에게 들켜 도망치다 넘어져 얼굴을 다쳤다. 외할머니가 왠 상처냐고 물었지만, 수박서리는 절대 말하지 않았다. 

 

 

 

 

 

이 책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다. 수박향기, 후키코 씨, 물의 고리, 바닷가 마을, 남동생, 호랑나비, 소각로, 재미빵, 장미 아치, 하루카, 그림자 등 11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11편의 이야기 모두 어린 시절의 기억을 얘기하고 있다. 그것도 여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먼저 에쿠니 가오리의 단편 '수박향기'를 만나보자. 아홉살 소녀의 여름은 끔찍했다. 그녀는 엄마가 출산을 앞두자 숙모 집에서 방학을 보냈다. 숙모 부부는 젊고 친절했지만 슬하에 아이가 없어 집안 분위기가 차분하고 무미건조했다. 그녀는 이불 속에서 매일 울었다.

 

서랍장에서 지갑을 훔쳐 집을 뛰쳐나갔다. 첫 도둑질이라 정신없이 달렸다. 강 건너 자그마한 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오라는 듯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두 무릎으로 마루를 기어서 방문 안을 들여다 보았다. 세 평 정도 되는 방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이 보인다. 등 뒤에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의 엄마였다.

 

아줌마의 고함 소리와 함께 남자아이의 모습이 나타났다. 순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이 둘은 윗몸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도 그녀를 보자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소름 끼쳤다. 일단 방으로 들어오라는 아줌마의 목소리는 불길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온 집안의 덧문을 꼭꼭 닫았다. 앉은뱅이 밥상에 양파가 든 된장국, 계란 후라이, 그리고 두부와 밥이 차려져 있었다. 그녀는 먹을 수가 없었다. 아줌마는 징그러울 정도로 상냥하게 웃으며 이것 저것 물어왔다. 내일 숙모집에 안전하게 데려다 준다며 안심을 시켰지만 그녀는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식사후 아줌마는 수박을 내왔다. 쟁반에 수북하게 잘린 수박이 쌓여있다. 한 아이가 수박을 집으려고 손을 뻗는데 새까만 개미가 꼬여 있었다. 쟁반에 고인 수박 물에도 개미들이 꼬물거렸다. 그래도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수박을 베어 물었다. 개미가 툭 터지면 시큼한 맛이란다.

 

세 평짜리 방에 이부자리 두 채를 깔고 넷이서 잤다. 겁이 날 정도로 조용하고 후덥지근했지만, 신기하게도 푹 잤다. 덧문 두드리는 소리와 이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줌마도 아이 둘도 없었다. 덧문을 여니 경찰관과 숙모 부부가 서 있었다. 숙모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침 일찍 한 여자가 이 집에서 여자아이 소리가 난다며 경찰서에 신고했단다. 이 집은 오래 전부터 비어 있던 집이란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동생을 낳았다. 그날 밤의 일은 숙모에게도 부모에게도 비밀로 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은 언제나 에쿠니의 비밀로 가득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에쿠니의 비밀'을 읽고난 후에 독자들은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질 것 같다.

비밀을 들은 후에는 역시 자신의 비밀도 털어놓고 싶어진다.

친밀한 비밀의 주고받음.

에쿠니의 비밀은 어쩌면 그렇게 긴밀하고 예쁘고 애처로울 수 있을까

 

 - 가와카미 히로미(작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하숙생 후키코 씨의 이야기를 하는 소녀, 달팽이를 밟아 죽이고 죄책감을 느끼는 소녀, 한여름에 치르는 남동생 장례식 얘기를 하는 소녀, 신칸센에서 만난 낯선 여자와 도망치려는 소녀, 이혼한 엄마와 옆집 삼촌을 이상하게 여기는 소녀 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인공이 소녀이지만 내용은 오히려 괴이하고 섬뜩하다.

 

여름의 과일은 수박이다. 무더운 여름의 친구는 더위를 잠재워 줄 괴기, 공포, 스릴 등일 것이다. 그래서, 수박향기는 여름에 잘 어울리는 단편소설이다. 아울러, 에쿠니의 화려한 글솜씨는 11명의 소녀들이 갖고 있는 기괴한 비밀이나  끔찍한 기억들을 오히려 예쁘게 표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마치 나의 비밀을 공개하라고 압박하는 듯 하다.

 

 

무더운 한 여름 밤, 마당 한가운데 놓인 평상에 누워 반짝이는 별과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는게 심심할 즈음 외할머니는 팔뚝에 닭살이 돋는 얘기 보따리를 펼치기 시작했다. 캄캄한 공동묘지, 살쾡이 소리, 음산한 바람, 하얀 소복, 길다란 머리카락 등을 하나씩 끄집어 낼 때마다 나는 비명을 질러댔다. 더위가 싹 가셨다. 에쿠니의 이야기 보따리는 외할머니를 떠올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장들과의 저녁만찬
존 번 지음, 유지연 옮김 / 타임비즈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주식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과의 점심식사가 263만 달러에 낙찰된 적이 있다. 물론 이 낙찰액은 전액 기부금으로 사용된다. 우리 돈으로 무려 26억원이 넘는 비용을 지출하면서까지 해당분야의 거장 또는 고수들로부터 한 수를 배우고자 한다니 놀랍기가 그지없다.

 

이렇게 비싼 식사를 하게 된다면, 도대체 무엇을 배워야 할까? 이 책의 출간은 바로 이와같은 단순한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애플의 스티브 잡스, 홀푸즈의 존 매키, 버진 그룹의 창업자 리처드 브랜슨, 델 컴퓨터의 창업자 마이클 델,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 등 쟁쟁한 스무 명의 경영 대가들로부터 경영수완을 배워보자.

 

 

 

 

'자기 손으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도발적인 기업을 세우고 키운

위대한 기업가들과 저녁만찬을 즐기며,

진짜로 알고 싶었던 비즈니스의 정수를 물을 기회가 생긴다면?' 

 

 

 

홀푸즈마켓의 창업자 존 맥키

 

홀푸즈는 북미와 영국에 300개가 넘는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연매출 100억 달러(약 12조 원)를 넘지만 월마트에 비하면 작은 회사다. 창업자 존 맥키는 소비자들의 식생활을 변화시켰고, 미국인들의 식품 생산, 구입, 소비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문)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이 정도로 성공하리라 예상 했습니까?

(답) 아니오

 

(문) 처음 시작할 때도 지금과 같은 목적의식을 갖고 있었나요?

(답) 아니오

 

홀푸즈의 출발은 두리뭉실했다. 단지 몸에 좋고 환경에 더 이로운 건강식품을 팔아서 먹고살자는 것이었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이 목적은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맨 처음 세웠던 추상적인 목적의 유효기간은 대략 1985년까지였다. 매장이 6개로 늘자 신규 매장의 수익이 마이너스가 되었다. 창업 이래로 첫 손실이 생기자 '먹고살자'는 목적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비전 명시화 과정'을 시작했다. 이는 매출을 재점검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재점검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 목적과 비전을 재검토했다. 이 과정을 통해 홀푸즈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나아가 고객들에게 유익한 가치를 제공한다는 의지를 확보했다.

 

5대 핵심가치

 

'질 좋른 자연식품과 유기농 식품을 판매한다'

'고객을 만족시키고 기쁘게 한다'

'회사 구성원의 행복과 성과를 지원한다'

'이윤과 성장을 통해 부를 창출한다'

'공동체와 환경을 위한 훌륭한 일원이 된다' 

 

이후 홀푸즈의 목적은 다시 진화하여 '공급자들과의 제휴관계는 철저히 쌍방의 이익을 목표로 이루어진다''이해당사자들 모두를 위해 건강한 식생활 교육에 힘쓴다'라는 두 가지의 핵심가치를 기존의 5개에 더 추가하게 되었다.

 

(문) 기업을 하는 데 목적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답) 목적은 의욕을 고취합니다. 목적은 창의성을 발휘하게 만들죠.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 오로지 돈을 벌고 먹고 싸기 위함이라면 얼마나 삭막하겠나. 누구의 가슴도 뛰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기업의 목적이 이윤추구 내지는 이윤극대화라고만 말한다면 대다수의 사람에게 의미를 주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회사의 목적에 진심으로 열정을 기울이면, 더욱 일에 헌신하고 높은 수준의 창의성을 보여줄 것이다. 이는 회사에도 그리고 회사에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도 분명 좋은 일이 된다.

 

월마트가 유기농 식품을 취급할 거라고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이제 홀푸즈가 끝났다고 말했다. 이는 홀푸즈의 고객들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홀푸즈의 고객들 대부분은 월마트에서 쇼핑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월마트의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30년간 줄곧 홀푸즈의 시장점유율은 늘어가고 있다. 

 

 

버진 그룹의 창업자 리처드 브랜슨

 

전 세계에 수백 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연간 100억 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이는 버진 그룹. 십대에 리처드 브랜슨은 어느 날 갑자기 사업가가 되어 있었다.  그가 부를 일군 장르는 음악 산업이었다. 할인점에서 떨이 레코드를 무더기로 사서 트렁크에 싣고 다니며 팔기 시작했다.

 

'다른 영국 내 소매업체들보다 무조건 싸게 판다'

 

1972년 그는 '버진 레코드'라는 레이블을 만들었고, 독특한 컨셉의 아티스트들과 연이어 계약하면서 빅 히트를 거두었다. 음악계의 큰 손이 되었다. 1992년 항공사가 파산 위기에 처하자 그는 이 음반사를 EMI에 매각하여 사태를 진정시키기도 했다.

 

그의 대담성은 한때 쇼걸로 활동했던 어머니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안데스 상공을 비행하는 최초의 항공기 승무원으로 일한 적도 있는 그녀는 그 시절 남성만 입교할 수 있는 글라이더 파이럿 양성 프로그램에 남자로 변장하여 참가할 정도였다. 변호사인 그의 아버지도 모험을 장려했다고 한다. 2011년 7월, 그는 우주비행 희망자로부터 총 440건의 예약을 받아 5,800만 달러를 예치했다고 발표했다. 그의 모험정신은 끝없이 진화하고 있다.

 

(문) 창업가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답) 재빨리 움직이는 능력

 

그는 항공사 최초로 180도로 퍼지는 평상형 좌석을 도입코자 했다. 이때 브리티시에어라인은 그의 아이디어를 알아채고 훨씬 좋은 평상형 좌석을 도입했다. 그러자, 평상형 좌석을 짜는데 1억 달러가 들어갔지만 그는 12개월도 안되어 이를 모두 철수해버렸다.

 

(문) 임원도 내부 승진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 이유는 뭡니까?

(답) 전문가란 사람을 밖에서 데려와 자격이 충분한 사람 위에 앉히면 사기를 떨어뜨리죠.

 

생존과 실패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생존하기 위해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워야 된다. 통계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기 인생의 80%를 일에 투여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뭔가 열정을 품을 만한 일을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아무튼 뭘 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분야에서 일인자가 되도록 남보다 훨씬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 

 

 

홈데포 창업자 아서 블랭크와 버니 마커스

 

1978년 4월 14일 가정용 건축자재 소매업체 핸디 댄의 경영주 샌디 시골로프(별명 '무자비한 밍')는 CEO 버니 마커스와 재무 담당 부사장 아서 블랭크를 자신의 사무실로 호출했다. 전략 미팅인 줄 알고 갔더니 그들의 예상은 빗나가고 급작스런 처형식이 거행되었다.

 

"자넨 해고야!"

 

이 해고는 그들 인생의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시내 커피숍에서 정기적으로 회합을 가지며 훗날 홈데포가 될 회사의 사업계획을 짰다.  밑에서는 실행에 옮길 수 없었던 모든 일들을 끌어모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가정용 건축자재 소매업체의 계획을 수립했던 것이다.

 

기존의 매장과는 달리 엄청난 양을 선반 천장까지 가득 쌓아올린 창고형 할인매장이었다. 그들은 제조업체로부터 직접 물건을 구입해 현장에 훈련된 전문가를 배치해 개보수에 관한 문제들을 친절하게 대응토록 했다. 핸디 댄에 기투자했던 벤처투자가에게 회사지분 55%를 주는 조건으로 초기 자본금 2백만 달러를 조성하고, 은행을 설득하여 대출한도를 5백만 달러까지 확보했다.

 

1979년 6월 22일, 애틀랜타에 첫 번째 홈데포 매장 두 개가 오픈되었다. 그러나, 고객들이 홈데포의 존재를 알게 되기까지는 몇 개월이 걸렸다. 2만 5천품목의 상품이 진열된 매장임을 알게된 후에는 열광했다. 6개월도 안되어 홈데포 매장은 3개, 직원 2백명, 매출 7백만 달러로 성장했다. 첫해엔 약 1백만 달러의 적자였지만 1980년엔 흑자 850만 달러로 전환했다. 

 

(문) 홈데포를 창업했을 때, 두 분 나이가 어떻게 되셨죠?

(답) 아서는 34세, 버니는 48세였어요.

 

(문) 어떤 자신감으로 사업을 시작한 겁니까?

(답) 자신감이 아니라 오히려 절박함에 가까웠죠.

 

버니는 직장을 잃자 모아둔 돈이 없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시기라 절망적이었다. 오십이 다 된 나이에 어떻게든 성공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아서는 공인회계사 자격증이 있어서 어디라도 취직할 수 있었지만 버니는 할 수 있는 일이 그것 뿐이었다.

 

사실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박리다매였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그들이 실패할 거라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업계의 마진이 워낙 적었고 규모를 늘려 구매 비용이 높아지면 절대 성공을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매장에 전문가 직원이 상주해야 하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후 그들은 DIY 비즈니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홈데포의 비즈니스 모델은 제조업체로부터 제품을 직접 공급받지 못하면 절대 성공할 수 없었다. 처음엔 제조업체 80%가 그들에게 제품을 공급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도매업자를 통해 훼방을 놓기도 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자 이젠 거래하지 않는 제조업체가 거의 없다.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페덱스의 프레드 스미스 등 세계적인 스타급 기업가들을 저녁 자리에 초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요리를 준비하든 간에 절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이를 해결해주고 있다. 그들의 독창적인 아이디어, 그들의 사고방식, 또한 그들의 영향력 등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스무 명의 대가들, 그들의 속내를 들춰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더기 점프하다
권소정.권희돈 지음 / 작가와비평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점점 아날로그 추억들을 먼지 속에 묻어 버린다. 빛 바랜 졸업 앨범을 들춰보면 그리운 얼굴과 함께 그 시절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찢어진 우산을 쓰고 집으로 가는데 뒤따라오며 우산을 받쳐주던 마음씨 고운 순이, 감을 따겠다고 용감하게 나무위에 올랐다가 떨어져 팔을 부러뜨린 돌이, 이웃 동네와 투석전을 벌일 때 맨앞에 나섰다가 눈에 피멍이 들었던 짱구도 모두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시절 연필에 침 발라가며 꾹꾹 눌러썼던 '부모님전상서', 크리스마스 씰을 붙여 국군아저씨에게 보내던 '위문편지', 사진만 보고 사귀던 펜팔친구에게 보내던 '연애편지', 군에 입대해서 처음 부모님에게 보내던 '안부편지' 등은 아날로그 시대의 소중한 추억들이다.

 

우리에게 소중한 아날로그 감성을 일깨워주는 책이 있다. 아버지와 딸이 서로의 글을 통해 세대간의 차이를 발견하고, 이해하며, 그리고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또한, 미국에 유학 다녀온 딸은 전공인 미술을 살려 책 곳곳에 예쁜 그림들을 싣고 있어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진다.

 

책을 펴내며

 

아버지와 딸이 함께

이 책을 펴내기로 한 순간부터

아버지는 딸을 다시 발견하고

딸은 아버지를 다시 발견하였습니다.

 

 

 

도서 제목이 독특하다. 구더기 점프하다. 난 구더기가 점프 하는 걸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구더기는 여름철 시골 화장실에서 많이 보는 흉물스러운 애벌레다. 연노란 색갈을 띠고 고물고물 기어다니는 모양이 하도 징그러워 신발에 밟힐까 봐 피해다니던 그런 벌레다.

 

파리는 알에서 애벌레, 번데기를 거쳐 파리로 변태한다. 즉 네 번의 탈바꿈을 해야 한다. 이런 고통을 겪으면서 자손을 보존하려는 그들의 지혜는 놀라울 따름이다. 파리는 호박꽃에 알을 낳는다. 꽃이 수정하여 열매를 맺으면 알은 자연히 열매의 중심부에서 애벌레로 변태한다. 구더기가 열매 속에 살면 그 부분은 썩게 마련이다. 썩어서 약한 부분을 뚫고 나와 번데기가 되고, 이후 파리가 되어 날아오르게 된다.

 

택배가 왔다. (중략) 아내는 호박죽을 한다며 곧바로 단호박을 쪼개기 시작하였다. (중략) 첫번째 호박을 갈랐다. 그런데 때깔 좋은 황토 빛 속살에 호박씨는 한 개도 보이지 않고 구더기가 바글바글 슬었다. (중략) 갑자기 열린 세상에 눈이 부시었을까. 잠시 후 그중 한 마리가 힘껏 점프를 하며 호박 속에서 나왔다. 나머지 구더기들도 덩달아 점프를 하였다.  

 

 

외롭고 빛바랜 플라스틱 빗과 컵

 

가족 .. 아빠의 일회용, 사실은 수십회용 ... 면도기

30년은 된 싸구려 녹색 플라스틱 빗.

그리고

솔이 부스스해져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칫솔들 ...

 

 

아빠는 청주대 현대문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정년 퇴임했다. 아마도 어느 유명 백화점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듯한 그 컵 안에는 가족들의 시간이 들어있다. 전기 면도기에 좀처럼 익숙해지지 못하고 계속 사용하는 1회용 면도기는 안쓰럽기만 하다. 이젠 버릴 때도 되었건만 솔이 부스스한 치솔도 마치 가족인 듯 쉽게 버리질 못한다. 아니다, 버리면 안 될 물건들이다.

 

2년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들을 정리할 때, 나는 욕실에서 펑펑 운 적이 있다. 피부병으로 고생하던 아버지를 모시고 일본으로 온천여행을 갔을 때 가정에서 사용하는 온천입욕제를 선물로 주었다. 그런데, 개봉도 않고 이를 욕실정리대에 모셔두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이를 사용하고 나면 없어질 추억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추억은 함부로 버리는 것이 아니다.    

 

 

가난한 불빛이 아름답다

 

이사를 왔다. 짐을 푼 곳은 좁고 꼬불따란 골목들이

사람과 숲의 경계를 이루는

언덕꼭대기 집이다.

마치 하늘 아래 첫 지붕 밑에서 사는 것만 같다.

 

요즈음 우리들이 사는 동네는 대개 아파트다. 옆 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누가 이사를 드는지 나가는지 관심이 있으랴. 소위 부촌은 더 할 것이다. 그런데, 좁고 길다란 골목이 꼬불꼬불한 동네는 일반주택이다. 비록 가난할 지언정 정이 있는 곳이다. 노인들의 기침소리, 아이들의 투정소리, 부부가 다투는 소리 등 사람 냄새가 넘친다. 인기척이 스칠 때마다 뿌연 빛을 내뿜는 전봇대조차 정겹다. 가난한 불빛이 더 아름답다.

 

 

내 인생의 양념들

 

요리할 때 달콤한 설탕만이 쓰이는 것은 아니다.

쓴맛, 짠맛, 단맛, 신맛, 매운맛,떫은 맛.

부엌에 있는 갖은 양념들을 보다가 엉뚱하게도

내 인생에 쓰디 쓴 맛을 보게 해준 사람들이 생각날 때가 있다.

 

살다 보면 인생에 단맛을 준 사람보다 쓴 맛을 보여준 사람이 생각난다. 더구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처럼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면 속이 더욱 쓰리다. 회사의 자금업무를 맡겼더니 믿었던 책임자가 돈을 횡령하고 해외로 도주해버렸다. 가정 방문을 했더니 남편은 가출 중이고 별거한지 이미 오래 되었다는 아내의 말이 돌아서는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다양한 양념처럼 내 인생에도 골고루 맛이 베여야 할 것 같다.

 

 

비교적 허물없는 부녀지간이었지만 출간 작업을 하면서 자주 대화하고 서로의 작품에 대해 비판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딸의 그림은 아버지의 감각이라는 필터를 통과해야 했고, 아버지의 글은 딸의 감각이라는 필터를 통과해야만 했다. 포탈사이트 마이클럽에 딸 권소정씨의 글과 그림이 연재되면서 독자들과의 소통과 공감이 인기를 끌면서 결국 이 출간으로 이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