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 체인지 - 디지털 기술은 우리의 뇌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가
수전 그린필드 지음, 이한음 옮김 / 북라이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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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5년 전 내가 파리에서 일할 때, 한 동료가 수상쩍은 취향의 스웨터를 입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남성이 전면에 나온 신문을 보여주었다. "녹색 운동을 하는 사람이래" 그는 괴짜처럼 보이는 그 사람을 조롱하면서 비웃었다. 당시 내게도 '녹색' 운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별스러워 보였고, '기후 변화'라는 말도 그랬다. 지금 그 개념은 많은 공공 정책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고, 개인의 생활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는 비록 시기는 수십 년 차이가 나지만, 기후 변화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시사하기 위해 책 제목을 <마인드 체인지>(마음 변화)라고 지었다. 둘 다 세계적이고 논란을 일으키고 유례가 없으며 다면적이다. 하지만 기후 변화가 피해를 줄이기 위한 행동을 요구하는 반면, 마음 변화는 21세기에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시킬 가장 흥미진진한 가능성을 보여줄 수도 있다. 물론 어떤 유형의 세계에서 살고 싶은지, 아니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실제로 어떤 유형의 인간이 되고 싶은지를 논의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을 때, 그렇게 될 것이다. - '서문' 중에서

 

 

디지털 기술은 우리의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침에 눈을 떠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무엇인가? 아마도 바로 머리맡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일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이메일을 확인하고, 인터넷 기사를 훑어보며 출근한다. 출근 후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켜고 업무 내용을 화면에 띄우겠지만, 그런 한편으로 트위터를 열고서 당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뭘 하고 있는지 계속 주시하고, 새로운 소식을 놓치지 않기 위해 페이스북 화면도 띄워놓고 있을 것이다. 또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를 계속 살펴보면서, 오늘 먹은 점심식사 사진을 재빨리 찍어 업로드하며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고 댓글을 단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평일 하루 평균 3시간 사용한다. 휴일도 별 차이가 없다. 19~29살 중엔 하루 5시간 이상 사용하는 사람이 절반이나 된다. 스마트폰으로는 통화(72.7%)보다 카카오톡·페이스북 등 이른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이용과 이메일 송수신을 더 많이 하는 것(74.9%)으로 나타났다. 그다음은 인터넷 검색(59.7%), 게임 등 여가활용(24.7%) 순이었다. 사람들은 평균 7개 전화번호를 기억했는데, 흥미롭게도 20대는 6개에 그친 반면 40~50대는 8개를 암기했다. -<중앙선데이> (2015년 11월8일)중에서
 

 

일을 하면서 동시에 이렇게 멀티태스킹을 하느라 지친 우리들은 집에 돌아와 최신 방송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보면서 휴식을 취할 것이다. 온라인으로 생필품을 주문하고, 인터넷 쇼핑을 하면서 기분 전환을 하기도 한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워 다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 잠이 든다.

 

익숙하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직장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풍경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온라인' 상태로 보내고 태블릿 기기가 유아기 아이들의 학습과 놀이에 흔히 쓰이는 시대.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는 '컴퓨터 화면 앞의 생활'이 '현실 생활'을 위협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초래한 생태계는 지금까지 인류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환경이다. 적자생존의 명령에 따라 지금까지 진화해온 인간에게 이러한 디지털 환경은 어떤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가?

 

 

 

책의 저자 수전 그린필드는 파킨슨병 및 알츠하이머병 연구의 일인자이자 최고 권위자이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고, 1977년 약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옥스퍼드 대학교 생리학, 해부학, 유전학과, 파리의 콜레주 드 프랑스, 뉴욕의 NYU 랭곤 의학 센터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다. 1998년부터 2010년까지 영국 왕립 연구소 소장과 옥스퍼드 교수직을 겸임했다. 현재 옥스퍼드 링컨 칼리지 선임 연구원이자, 신경퇴행 질환과 관련된 뇌 메커니즘을 연구한 성과를 토대로 새로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생명공학 기업 '뉴로-바이오'의 CEO/CSO로 재직하고 있다.

 
지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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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의 요령
와다 히데키 지음, 김정환 옮김, 유상근 감수 / 김영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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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의 감수를 맡겠다고 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사람이 쓴 이 책이 그동안 내가 읽은 모든 공부법 책들 중에서 우리나라 입시의 본질을 가장 잘 꿰뚫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대학 입학시험과 공부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가장 적은 돈과 시간을 들여서 대학 입학시험을 정복할 수 있는 정확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 <공부의 신> 저자 유상근

 

 

입시는 암기와 요령이 좌우한다 

 

구조를 바꾸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이 경쟁 구조 속에서 어떻게 하면 잘못된 학원과 거짓 공부법에 속지 않고 제대로 성적을 올릴 수 있는지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통해 경쟁이 조금 더 행복하고 가치 있는 과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능 시험은 기본적으로 암기력 테스트다"라는 저자의 주장은 독자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한다.

 

저자 와다 히데키는 놀라운 통찰력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 입시의 본질과 공략법에 대해 모든 환상을 벗겨내,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1960년 오사카에서 출생하여 1985년 도쿄대학 의학부를 졸업했다. 도쿄대학 의학부부속병원 신경정신과 연구원과 미국 칼 매닝거 정신의학학교 국제연구원을 거쳐 현재 국제의료복지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히토쓰바시대학 경제학부와 도호쿠대학 의학부에서 강의하며 가와사키고병원 정신과 고문 등을 담당하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로, 심리학을 비즈니스에 접목시킨 비즈니스 심리 분야의 일본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으며, '와다 히데키 마음과

 

 

돌아가지 마라! 삽질하지 마라! 다 방법이 있다!  

 

 

암기와 요령이 중요하다

 

대학 입시를 암기력 테스트라고 생각하면 대책은 단순하다. 사고력을 키우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출제되는 부분만을 요령껏 통째로 암기하면 된다. 번뜩이는 영감으로 가득한 천재적인 답안보다 모범 답안과 일치하는 답안이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입시에서 천재적인 답안은 계산 실수 등으로 답이 틀리면 0점이지만 모범 답안은 답이 틀리더라도 부분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모범 답안은 사고력이 없어도 해답을 통째로 암기하면 누구나 적어낼 수 있다.

 

입시에서의 요령은 무엇일까? 출제되는 부분을 효율적으로 철저히 외워서 암기의 축적량을 늘려나가는 것이다. "입시는 암기다"라고 말하면 수험생은 "그걸 누가 모르나?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네"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정말로 암기를 철저히 하고 있는지는 스스로 잘알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숙제를 하고, 노트 정리를 깔끔하게 하고, 학원에 다니는 것도 모두 암기와는 무관하다. 

 

 

수학, 이는 진정한 암기 과목이다

 

입시와 관련된 새빨간 거짓말 중 하나는 수학은 다른 과목과 달리 암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뿌리 깊은 미신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수학에는 유연한 발상과 센스가 필요하며, 이것을 키우려면 문제를 풀어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한다. 이런 망언을 매년 수십만 명의 수험생이 믿고 있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대다수가 잘못된 사실을 믿고 있는 덕분에 나 같은 요령 좋은 사람이 상위권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분명히 수학에는 유연한 발상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대학에 들어가서 배우는 고등수학에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 매년 비슷한 문제가 출제되는 대학 입시에는 수학적 감각이 전혀 필요없다.

 

 

 

 

공부량을 기준으로 계획을 세워라

 

시간을 기준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은 수험생뿐이다. 기업은 매출이나 이윤 등 양을 기준으로 계획을 세운다. 판매원도 매출을 어떻게 늘리느냐라는 계획을 세우지 몇 시간 일할 것이라는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공부량 중심의 계획은 먼저 대략적으로 세운다. 예를 들어 이번 달 안에 영어는 <경선식 영단어>나 <듀오 3.0> 절반을 암기한다든가, 수학은 행렬과 벡터를 끝낸다는 식이다.

 

그리고 큰 틀의 계획을 실천할 수 있게 되면 점점 하루 일정도 양으로 계획한다. 가령 영어 숙어 30개와 수학 10문제, 메모장 30장 복습 같은 식으로 하루의 목표량을 정하면 된다. 만약 소화하지 못했다면 하루의 목표량을 수정해도 상관없다. 처음에 세웠던 큰 목표의 양을 달성하는 데 주력한다.

 

 

 

 

자신 없는 과목을 극복하는 작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그 과목이 자신 없는 이유는 단순히 공부를 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재능 문제가 아니라 암기량이 적기 때문이다. 자신없는 과목을 극복하려면 철저한 암기 전술이 중요하고, 이때 자신 없는 과목은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높은 과목이라고 생각하면 공부에 의욕이 솟는다. 그 과목에 자신이 없는 이유는 아직 머릿속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백지를 칠해나가는 것은 쉽다.

 

알리바바를 창업한 마윈은 수학을 못해서 계속 대학 입시에서 낙방하다가 세 번째 입시 도전에선 수학의 기본 공식을 무조건 암기한 후 시험을 치룬 덕분에 겨우 과락을 면해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만약에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다면 지금의 알리바바 신화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최단거리로 공격하라

 

화학, 생물, 사회의 색인과 주석은 암기 보강에 활용한다. 저자는 화학, 생물, 사회 등의 과목은 마지막에 있는 색인에 주목했다. 참고서를 끝까지 읽은 다음 색인을 훑어보고 모르는 단어가 없는지 확인했다. 대부분의 수험생은 색인을 무시하는 일이 많지만 암기형 입시 공부를 할 때는 최고의 체크리스트가 된다. 

 

또 자신 없는 과목의 참고서나 문제집을 볼 때도 책 가장자리에 작은 글자로 적혀 있는 사항에 주의하는 게 중요하다. 이 부분은 본문에 담지 못했지만 꼭 언급하고 싶은 내용, 즉 누락된 중요 사항일 때가 많다. 왜냐하면 입시 참고서나 문제집은 스타일이 정해져 있어 공간 제약이 있기 때문에 본문에 중요 사항을 모두 담기 어려울 때가 있기 때문이다.

 

비록 글자가 작더라도 내용은 크고 중요한 것이다.

 

 

입체화로 공략하라

 

역사입체화 전략으로 능률적이고 체계적으로 통암기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같은 교재를 세 권 준비한다. 한 권은 재편집용, 다른 한 권은 중요 사항 확인용, 마지막 한 권은 읽기용이다. 재편집용 교재는 일단 한 장 한 장 뜯어서 1세기 단위로 철을 한다. 가령 16세기라면 동양사와 서양사를 전부 한 묶음에 모아놓는다. 이렇게 하면 첫째, 역사의 횡적 관계가 한눈에 들어온다. 둘째, 세기별로 분책되어 있으므로 수험생을 괴롭히는 연도, 가령 1867년은 19세기의 '67년'과 같이 마지막 두 자리만 외우면 되므로 암기의 부담이 한결 가벼워진다.

 

이처럼 100년 단위로 편집하면 연도의 마지막 두 자리만 암기해도 된다. 

 

 

 

 

입시는 요령이다

 

요령을 많이 알고 있으면 대학 입시도 운전면허 시험 수준의 암기력 테스트가 된다. 그러나 대다수의 수험생은 요령이 너무 없다. 고지식하게 입시 공부를 한다. 학원에 다니고, 예습을 하고, 정리 공책을 만들고..... 이런 것들은 전부 입시의 본질과는 무관하다. 근성도, 재능도, 모의고사 등수도 입시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우라는 말도 새빨간 거짓말이다. - 와다 히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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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다 1 - 이미지와 스토리텔링의 신화 여행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다 1
토마스 불핀치 지음, 노태복 옮김, 강대진 해설 / 리베르스쿨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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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알지 못하면 영어로 쓰인 아름다운 문학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하기가 어렵답니다. 이를테면 시인 바이런은 로마를 가리켜 '여러 나라의 니오베'라고 부르거나, 베네치아를 두고 '바다에 갓 올라온 키벨레 같다'고 해요. 신화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표현이 천 마디의 자세한 묘사보다 ?신 더 생생하고 감동적으로 다가오지요. 하지만 신화를 모르는 사람들은 고개만 갸우뚱할 뿐입니다. - '머리말' 중에서

 

 

불핀치의 신화를 보다

 

신화집 중에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판본은 토머스 불핀치가 59세에 발표한 <신화의 시대>다. 그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신화들을 체계적이고 간결하게 구성함으로써 풍성한 내용임에도 비교적 읽기에 쉬워 청소년이나 고전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에게 적합하다. 이미 많은 번역본이 나왔지만 원문에 있는 영시를 생략하거나 원문에 없던 묘사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은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기존 번역본의 아쉬움을 최소화하고 <신화의 시대>

 

그는 1796년 건축가 찰스 불핀치의 아들로 태어났다. 보스턴 라틴 스쿨, 필립스 엑스터 아카데미를 거쳐 1814년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였다. 같은 해에는 모교인 라틴 스쿨 교사로 취임했다. 1825년 보스턴으로 돌아와 여러 가지 사업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1837년부터 보스턴 머천트 은행의 행원으로 지냈다. 1867년 가족 없이 독신으로 지내다 사망하였다.

 

 

 

 

 

신들의 세계

 

올림포스 산에 살았던 신들을 실제로 믿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무수히 많은 신들은 오늘날의 문학과 예술 속에 굳건히 살고 있다. 왜냐하면 지금도 많은 작가와 시인, 그리고 이야기꾼들이 신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그리스인들이 바라보던 우주의 구조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리스인들은 지구가 평평한 원圓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자기 나라가 그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고 믿었다. 이 한가운데는 신들의 거처居處인 올림포스 산이거나 아니면 신탁神託으로 유명한 델포이 산이라고 여겼다. 원반 모양인 지구의 동서동서로 큰 바다가 흐르며 양분하고 있으며, 이를 지중해라고 불렀다. 그리고 흑해까지 그리스인들이 아는 바다 이게 전부였다.

 

신들의 거처는 올림포스 산 정상에 있었다. 계절의 여신인 호라이들이 구름의 문을 지키고 있는데, 천상의 신들이 인간계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올 때 이 문을 열어 주었다. 모든 신들은 거처가 제각각 따로 있었다. 하지만 신중의 신 제우스의 호출이 있으면 모두 제우스의 궁전으로 향했다. 거처가 땅이나 지하인 신들도 예외가 없었다.

 

천상계와 인간계의 일을 의논하면서 신들은 넥타를 들이키고 음악의 신 아폴론은 리라를 연주해 흥을 돋우고 뮤즈들이 노래를 불렀다. 신들도 해가 지고 나면 모두 각자의 처소로 돌아가 잠을 잤다. 여신들이 입는 화려한 옷은 지혜의 여신 아테나와 미의 여신들인 카리테스가 짰다고 한다. 대장장이 신인 헤파이스토스(불카누스)는 건축가이자 갑옷과 전차도 만들었다.

 

신들은 하늘이나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황금 신발을 신었는데, 이 또한 헤파이스토스의 작품이다. 황금 신발을 신으면 이곳저곳을 바람처럼 빠르게 다닐 수 있었다. 하늘을 달리는 천마天馬의 발굽에 청동 편자를 달았는데, 이 덕분에 신들의 마차는 하늘이나 물 위를 마음껏 질주했다.

 

제우스의 아버지는 크로노스(사투르누스), 어머니는 레아(옵스)이다. 둘은 모두 티탄족에 속했다. 티탄족은 우라노스(하늘)와 가이아(땅)의 자식이며, 우라노스와 가이아는 카오스(혼돈)에서 태어났다. 물론 티탄족에는 다른 신들도 있었다. 오케아노스, 히페리온, 이아페토스, 오피온 등의 남신들과 테미스, 므네모시네, 에우리노메 같은 여신들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구세대 신들인 셈이다.

 

제우스는 형제자매와 힘을 합쳐 아버지인 크로노스를 포함한 티탄족을 공격해 물리치고 실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제우스는 하늘을, 포세이돈(넵투누스)은 바다를, 하데스(플루톤)는 죽은 자들의 셰계를 차지했다. 그리고 지상과 올림포스는 공동으로 소유했다. 이리하여 제우스는 인간과 신의 왕으로 등극했던 것이다. 제우스의 무기는 번개와 무적 방패 아이기스였으며, 독수리를 애지중지했다.

 

헤라(유노)는 제우스의 아내이자 신들의 여왕이었다.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가 그녀의 시녀이자 전령이었다. 명장 헤파이스토스가 바로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 태어날 때부터 절름발이에다 못생긴 얼굴 때문에 하늘나라에서 추방됐다. 전쟁의 신 아레스(마르스)도 제우스와 헤라의 아들이다. 음악의 신 아폴론은 제우스와 레토(라토나) 사이에 태어났다.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베누스 또는 비너스)는 제우스와 디오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바다의 파도 거품에서 나왔다는 말도 있다. 물결에 밀려 키프로스 섬에 도착, 여기서 계절의 여신들이 아름다운 옷을 입혀 신들이 모인 궁전으로 안내했다. 모든 신들은 그녀의 미모에 반해 아내로 삼고자 했다. 하지만 제우스는 번개를 만들어준 공로로 아들 헤파이스토스의 아내로 정했다.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 가장 못 생긴 신의 배우자가 되고 말았다. 사랑의 신 에로스(큐피드)가 바로 아프로디테의 아들이다.

 

 

 

불을 훔치다

 

세상에는 질병, 다툼, 시기, 원한, 불만 등등 온갖 해로운 것들이 많다. 오늘날의 과학과 문화는 이에 대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해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신들이 세상을 다스리던 시대에는 전혀 다른 답변이 존재했다. 최초엔 신들만 존재하다가 인간이 만들어지면서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시대가 열렸는데, 인간들은 프로메테우스가 흙을 반죽해 만들엇던 것이다.

 

그런데, 프로메테우스는 태양 마치의 불을 횃불에 옮겨 붙여 이를 지상의 인간들에게 전했다. 인간은 불 덕분에 추위를 이길 수 있어 아무 곳에서나 살 수 있었고, 땅을 경작할 농기구를 만들고, 공예품을 만들고 상거래용 돈까지 만드는 등 감히 다른 동물들이 넘볼 수 없는 존재로 성장했던 것이다.

 

한편, 제우스는 이를 벌하려고 여자를 만들어 프로메테우스 형제에게 보내고 아울러 인간계에도 보냈다. 최초의 여자는 바로 판도라였다. 천상에서 만들어졌을 때의 판도라는 완벽함을 추구했다. 그래서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움을, 헤르메스는 설득력을, 아폴론은 음악적 재능을 모두 판도라에게 주었다.

 

이런 능력을 가진 판도라는 지상에서 내려와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로 가 그의 아내가 되었다. 이에 형인 프로메테우스는 동생에게 제우스의 계략일지 모르니 조심하라고 했다. 에메테우스의 집에는 상자가 하나 잇었는데, 이 속에는 온갖 해로운 것들이 가득했다. 즉 인간에게는 아무 쓸모가 없는 것들을 담아 두었던 것이다. 호기심이 많은 판도라가 이 상자를 열고 만다. 순식간에 온갖 재앙이 빠져나왔다. 놀란 판도라가 급히 상자를 닫았지만 오직 한 가지만 남았다. 그것이 바로 '희망'이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는데,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다. 온갖 재앙들만 가득한 상자에 어떻게 희망이 공존할 수 있었겠나 말이다. 제우스는 인간을 축복하려고 판도라를 내려보냈는데, 상자엔 결혼 선물이 담겨 있었다. 이는 다른 신들이 저마다 축복을 준 것이었다. 하지만 판도라가 경솔하게 상자를 여는 통에 다른 축복이 모두 빠져나가고 희망만 남았다는 거다. 아무튼 인간계는 행복이 넘치는 '황금시대'였다. 이때는 진실과 정의가 가득한 봄날이었으며 강에는 우유와 포도주가 넘치고 나무에선 꿀이 흘러나왔다.

 

이후 제우스는 봄을 짧게 만들고 여러 계절을 만들엇다. 이에 사람들은 더위와 추위를 견뎌야 했고 집이 필요해 동굴에서 숲 속으로 은신처를 옮겼다. 곡식들은 기르지 않으면 자라지 않았으므로 씨앗을 뿌리고 힘들게 쟁기를 끌어야만 했다. 점점 사람들의 성품이 거칠어 지고 싸움이 잦았다. 심지어 범죄가 발생하고 진실과 겸손은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대신에 사기와 속임수, 폭력이 난무했다. 가족들도 서로를 믿지 못했고 자식은 유산 욕심에 빨리 아버지가 죽기를 바랐다. 땅은 살육의 피로 젖었다. 이에 함께 살던 신들은 하나둘 떠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모두 떠나고 말았다.

 

제우스는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 엄청 화가 났다. 번개를 내리치려다 하늘나라까지 불길이 번질지도 모를 위험성 때문에 세상을 물로 멸망시키기로 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계속 쏟아졌다. 이 물로도 성이 안 차서 제우스는 동생 포세이돈에게 강을 범람시켜 땅이 아예 잠기도록 했다. 이울러 지진으로 땅을 뒤흔들자 바닷물이 뭍으로 밀려왔다. 사람과 가축, 그리고 집들이 한데 휩쓸려 떠내려갔다.

 

 

 

예로부터 시인들은 프로메테우스의 인간친화적인 행동 때문에 그를 주제로 자주 다루었다. 제우스가 인간에게 크게 화냈을 때도 그는 인간의 편을 들었다. 인간에게 문명과 기술을 전하다 보니 제우스의 뜻을 거역한 셈이 되고 말았다. 제우스는 그를 카우카소스 산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어 놓고 독수리를 보내 그의 간을 쪼아 먹게 했다. 하지만 그 간은 또다시 생겨났기에 그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천상에서 불을 훔친 자처럼

그대는 괴로움을 견디려는가?

끝내 용서받지 못한 자처럼

독수리와 바위의 고통을 겪으려는가?

 

바이런, <나폴레옹 보나파트르에게 부치는 송시> 중에서

 

 

변신 이야기, 조각품이 예쁜 여인으로 환생하다

 

우리 모두 가끔은 변신을 꿈꾼다. 나비가 되어 연인의 침실로 은밀히 잠입하려는 18금 상상을 하거니 인어가 되어 바닷 속 보물선을 찾아 내기를 바란다. 물론 비현실적인 몽상일 뿐이다. 하지만 고대 신화 속의 세상에선 이런 일이 가능했다. 세상 만물은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서로의 형태로 자유롭게 넘나들며 바뀔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변신 이야기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스토리가 아마도 피그말리온과 처녀 조각상일 것이다. 조각가 피그말리온의 눈에는 여자의 결점만 들어왔다. 그래서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기로 맘 먹었다. 그런데, 그는 뛰어난 솜씨로 세상에 견줄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냈다. 정말 살아있는 여자를 빼다 박은 모습이었다. 그의 눈에 마치 수줍음을 타는 아리따운 처녀로 비쳐졌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감탄하다가 급기야 그 조각 여인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가끔씩 혹시 살아 있는 것은 아닌지 만져보면서 확인까지 했다. 때론 껴안기도 하고, 젊은 아가씨들이 좋아할 만한 선물도 주곤 했다. 반짝이는 조개껍질, 반질반질한 조약돌, 작은 새, 온갖 빛깔의 꽃, 구슬과 호박 등을 말이다.

 

심지어 그 정도가 지나쳐 이젠 조각상에 실제로 여인의 옷을 입히고, 손가락엔 반지를 끼우고, 목엔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귀에는 귀걸이를, 가슴엔 진주 장신구를 걸쳐 주었다. 이런 패션들이 조각상에 너무나도 잘 어울려 옷 맵시가 아름다웠다. 이렇게 치장한 조각상을 소파에 누이고는 아내라고 불렀다.

 

아프로디테 축제가 다가오자 키프로스 섬은 분주했다. 제물을 바치고, 제단에 연기를 피어올려 향내가 공중에서 진동을 했다. 피그말리온은 이 장엄한 의식에 참여해 자신의 역할을 다 한 다음, 제단 앞에서 조심스레 기도를 했다. "저능한 신들이시여, 기도 드리오니 제게 아내를 주세요"

 

차마 상아 조각상 처녀를 달라고 지목하진 못했다. 하지만 축제에 들른 아프로디테는 그의 말을 듣고서 그 속셈을 이미 헤아렸다. 그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표시로 제단의 불꽃을 세 번 공중으로 솟구치게 했다. 피그말리온은 집으로 돌아오자 그 여인상을 보러 갔다. 예쁜 조각상에 입을 맞추자 놀랍게도 온기가 돌았다. 입술을 포갠 채 팔다리를 손으로 만져 보았다.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피부의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오마이갓, 기도의 효험이 나타났던 것이다. 처녀는입맞춤을 느끼면서 낯빛이 붉어졌던 것이다.

 

그 옛날, 넘치는 정열과 갈망으로

피그말리온이 돌을 끌어안아

마침내 차가운 빛깔의 대리석에

감정의 빛이 감돌게 한 것처럼

나도 젊은 열정을 다하여

빛나는 자연을 시인의 가슴에 안노라.

숨결과 따스함과 생명의 약동이

조각상에서 솟아 나왔던 것처럼.

 

- 독일 시인 실러, <이상> 중에서

 

 

모험 이야기, 황금 양털과 아르고 원정대

 

 

신화에서 흥미진진한 대목이 바로 모험 이야기이다. 이는 거룩한 과제를 짊어진 젊은 영웅이 머나먼 길을 떠나 갖은 역경과 고난을 다 이겨 내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함으로써 함께 길을 따라 나섰던 독자들에게 무한한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하기 때문이다. 아르고 원정대는 영화를 통해 많이 소개되었는데, 황금 양털을 찾아 나선 모험을 다룬다.

 

영웅을 태운 아르고 호는 테살리아를 떠나 트라키아로 갔다. 현인 피네우스의 말에 의하면 흑해 입구는 작은 바위섬 두 개로 막혀 있는데, 서로 충돌하기 때문에 다시 벌어지는 순간에 재빨리 노를 저어 통과하라는 것이었다. 이아손과 부하들은 그 말대로 해서 무사히 위험천만한 물길을 통과했다.

 

마침내 흑해 동쪽 끝에 있는 코르키스 왕국에 상륙해 이아손은 자신의 미션인 황금 양털을 구하러 왔다고 알리고 이를 허락받는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청동 발을 지난 불을 뿜는 두 마리 황소를 끌고 쟁기질하여, 카드모스가 죽인 용의 이빨들을 땅에 심어 달라는 조건이었다. 그 전에 이아손은 왕의 딸인 메데이아에게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고 여신의 제단 앞에서 결혼을 맹세하여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다.

 

메데이아는 유능한 마법사였다. 그녀의 도움으로 마법의 약을 사용해 용을 잠에 빠뜨린 뒤 황금 양털을 낚아챈 이아손은 메데이아를 데리고 급히 아르고 호로 돌아갔다. 그리곤 곧장 테살리아로 향했다. 이후 축하연이 열렸지만 이아손은 몸이 불편한 아버지가 참석 못해서 기분이 별로 였다. 이에 그는 메데이아에게 아버지의 수명을 늘리는 마법을 요청한다. 그녀는 신비한 마법의 약초들을 이용해 회춘하도록 만들어준다.

 

가마솥 주변을 돌지 빙빙

독 품은 내장을 던지자 첨벙

늪에 사는 뱀을 싹둑싹둑

끓이자 보글보글 볶자 지글지글

도용농 눈알 개구리 발가락

박쥐의 털 개의 혓바닥

살무사의 혀 발없는 도미뱀의 독니

도마뱀의 다리 올빼미 새끼의 날개

게걸스러운 상어의 밥통

밤에 캔 독미나리 뿌리, 몽땅 집어넣자.

 

- <맥베스>, 제4막 1장

 

그러나 배은망덕하게도 이아손은 코린토스의 공주와 결혼하려고 그녀를 버린다. 그래서 그녀는 신들에게 복수를 허락해 달라고 빌고서 독이 묻은 옷을 신부에게 선물로 보낸다. 그리고 자기가 낳은 자식들을 모두 죽이고 궁전에 불을 지른 후 아테나이로 도망을 친다. 그곳에서 테세우스의 아버지 아이게우스 왕과 결혼한다. 이처럼 메데이아는 독부毒婦로 등장한다. 위의 사진은 이아손과 함께 코르키스를 탈출할 때 자신의 동생 압시르토스를 죽여 바다에 던지는 장면이다. 아버지의 추격선이 바짝 뒤따르자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르게 하고 유유히 도망쳤던 것이다.

 

 

신화 여행을 떠나보자

 

'세상은 신들의 놀이터'에서부터 '인간이자 신이었던 천하장사'까지 모두 19편의 신화 스토리텔링이 소개된다. 그림과 함께하는 불핀치의 신화 여행을 통해 인문학 소양과 예술적 소양을 동시에 함양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아직도 그리스로마신화를 읽지 못한 이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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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노후 미리 준비하는 은퇴설계 - 영화 같은 노후 드라마 같은 은퇴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최성환 외 지음 / 경향미디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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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보는 재미가 있어야 하고 책은 읽는 재미가 있어야 하듯 노후에는 노는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저희는 이 책에서 영화와 소설, 대중가요와 같은 우리의 삶을 그린 이야기 속에 담겨진 노후의 지혜를 찾아보고자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딱딱한 재무 위주의 설계와 강의를 벗어나 건강과 가족, 일거리와 여가 등 즐겁고 행복한 노후를 위해 꼭 갖추어야 할 5F(Fitness, Finance, Field, Fun, Friends)를 쉽게 풀어냈습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은퇴는 즐겨야 할 대상이다

 

한화생명 은퇴연구소는 2012년 출범 이후 전 국민이 밝고 긍정적인 노후를 설계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 왔다. 2014년 보험 및 금융 연구 분야를 통합하여 고령화가 진행되는 한국의 현실을 보다 정확하게 진단하고 바람직한 은퇴 모델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행복한 노후를 위해 필요한 것은 막연한 걱정이 아닌 지금 바로 준비하는 것이다.

 

이 연구소는 '은퇴는 설레임'이라는 슬로건 하에 긍정적인 은퇴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런 탓에 이 책은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을 엮어 노후를 알기 쉽게 풀이하고 있다. 은퇴와 노후는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현실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 모두 영화 속 해피엔딩처럼 책을 통해 즐길 수 있는 은퇴와 노후를 배워보자.

 

책은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우리 모두 불안하게만 느껴지는 은퇴를 행복한 노후로 만들기 위한 102가지 지혜를 다양한 소재로 전해준다. 준비된 노후 새로운 청춘, 도전하는 뉴시니어, 멋지게 나이 드는 법, 가족과 함께 하는 은퇴설계, 은퇴 후 30년 시나리오, 아름다운 마무리 웰다잉 등 순으로 전개된다.

 

"은퇴에 관한 글은 잘 전달되고, 기억에 오래 남아 이를 실천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 은퇴의 주요 사항을 영화와 드라마 등에 비유한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탁월하다" -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소장 김경록 

 

 

 

공양미 삼백석은 얼마일까?

 

책은 고전 소설 <심청전>을 들고 나온다. 태어난지 7일 만에 엄마를 여의고 눈 먼 아비를 모시다가 그 아비의 눈을 뜨게 하려고 인당수에 자신의 몸을 내 던진 효심 가득한 심청의 스토리를 우리 모두 안다. 그런데, 청이가 지금의 한국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화두를 우리들에게 던지는 셈이다.

 

청이는 열 살이 넘자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바느질과 길쌈으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진다. 아버지가 눈이 멀어 특별한 경제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은 안마 기술을 배워 안마사로 소득 활동을 할 수 있겠지만 농경 사회인 당시엔 앞이 보이지 않아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당연히 어린 청이가 돈벌이에 나섰지만 아마도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쳤을 것이다.

 

어느 날 심봉사가 딸을 마중나갔다가 개울에 빠져 죽을 고비를 맞는데, 마침 여기를 지나던 스님이 그를 구해준다. 그의 딱한 사정을 들은 스님은 몽운사에 공양미 삼백석을 시주로 올리고 지성으로 기도하면 두 눈을 뜰 수 있다고 얘기한다. 이에 심봉사는 눈을 뜨고 싶은 욕망에 덜컥 약속을 한다. 딸이 동네 품을 팔아 겨우 입에 풀칠하는 처지에 어떻게 공양미 삼백석을 구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렇다면 쌀 300석은 과연 얼마나 될까? 책은 현재 가치로 약 5억 4,800만 원이라고 추정한다. 척관법에 따르면 1석石은 144kg이므로 300석은 43,200kg이 된다. 쌀 한 가마니 80kg의 시세를 20만 원이라고 볼 때 공양미 300석은 540가마니에 상응하므로 1억 800만 원이 된다. 하지만 그 당시엔 쌀이 매우 귀한 것이기에 이렇게 추정하면 곤란하다.

 

따라서,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 의하면, 세종 시절 관리들의 녹봉은 돈이 아니고 현물인 쌀, 보리, 콩으로 지급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1품(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은 쌀 11석 2두斗와 콩 6석을 지급받았다. 이를 모두 쌀로 환산하면 총 83.2석이 된다. 2014년 기준 국무총리의 연봉이 1억 5,200만 원이므로 이를 대입하면 300석의 현 가치는 약 5억 4,800만 원으로 산출된다.

 

심청이 어릴 적에 심봉사는 젖동냥에 의존했는데, 지역에 살던 젖엄마들은 돌아가며 청에게 젖을 물렸다. 좀 커서 청이 밥을 빌러 갈 때도 덩네 주민들의 인심은 밥에다 김치, 장까지 아끼지 않고 나눠 주었다. 모두 여유롭지 못한 삶의 상태이었지만 남의 딱한 사정을 결코 외면하지 않고 내 일처럼 여기고 도와주었다. 건강하게 작동하던 조선의 사회 시스템을 엿볼 수 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금은 어떤가?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앞집,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잘 모를 뿐 아니라 아예 관심조차 없다. 홀로 사는 할머니가 죽은 지 여러 달이 지나도 이를 모르고 살다가 여름철 악취 때문에 겨우 관심을 기울인다. 보건복지부의 자료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는 2011년 682명, 2012년 719명, 2013년 878명, 2014년 1,008명으로 매년 늘고 있다.

 

고을마다 효자, 효녀비를 세워 효행孝行을 장려하던 우리 선조들의 의식이 나날이 희석되어 요즘처럼 변한 현실을 우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심청과 심봉사가 살던 조선 시대는 지금보다 훨씬 가난하고 여러면에서 부족하고 열악한 삶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신의 밥그릇을 덜어가며 가난한 이웃을 도울 수 있었을까?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바꿔 놓았을까?

 

 

 

행복幸福을 밟지 마라

 

최고 시청률 40%를 웃돌았던 KBS 주말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 3남매의 아버지 차순봉은 남은 시간동안 가족들과 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를 작성한다. 홀로 3남매를 키운 헌신적이며 자상한 아버지 차순봉은 위암 말기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자식들에게 가족의 소중함을 깨우쳐주려 한다.

 

우리 모두 행운幸運을 가져다 준다는 네 잎 클로버를 찾으려고 무수히 많은 세 잎 클로버를 짓밟으며 나아간다. 나폴레옹이 특이한 네 잎 클로버를 보려고 고개를 숙인 덕에 자신을 향한 총알을 피해 목숨을 건졌다는 일화에서 유래되었다는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세 잎 클로버는 무엇일까?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다. 차순봉의 자식들은 명예, 신분 상승, 돈 등의 네 잎 클로버를 찾아 헤매다 정작 '가족'이라는 세 잎 클로버를 밟고 그냥 지나쳤던 것이다.

 

차순봉의 버킷 리스트

 

1. 3개월 동안 가족이 아침에 함께 모여 식사하기

2. 하루에 한 번씩 자식들이 자신에게 전화해서 안부 묻기

3. 노처녀인 큰 딸, 3개월간 맞선 10번 보고 시집보내기

4. 직장 없이 떠도는 막내로부터 용돈 100만 원씩 받기

5. 처가에 살고 있는 아들 내외랑 3개월 동안 함께 살기

 

굳이 죽음을 앞두고서야 버킷 리스트를 작성한다는 것은 너무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없는 것보다야 훨씬 낫겠지만 말이다. 지금은 신년 벽두이다. 작심삼일로 끝나기 쉬운 거창한 계획보다 소박한 3개월짜리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 가족들과 함께 한다면 얼마나 보란찬 일이겠는가. 깨달음을 얻은 나도 오늘부터 매일 아침 시골에 홀로 계신 노모에게 안부전화를 하기로 했다.

 

"물러나는 은퇴隱退가 아닌 빛나는 은퇴銀退를 준비하라"

 

 

나도 꽃보다 할배, 할매

 

tvN <꽃보다 할배>에서는 평균연령 76세의 할배들이 유럽여행을 떠났다. 멋진 후드티와 검정색 선글라스가 잘 어울리는 대표 할배들이 유럽에 떴다. 누구나 꿈꿔봤을 법한 이야기가 방송에서 리얼하게 펼쳐진다. 이게 바로 <꽃보다 할배>다. 북한 주민들이 몰래 시청하고선 자유롭게 유럽으로 여행 다니는 남한 할배들을 부러워한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사실 경비도 경비려니와 좀처럼 유럽여행을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다.

 

평균연령 76세의 꽃할배들은 9박 10일 간의 배낭 여행을 떠났다.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 할배 4인방은 시대를 풍미한 명연기자로 50년 이상의 연기 내공을 자랑한다. 맏형인 나이 팔십의 이순재에서 부터 나이 칠십의 막내 백일섭까지 이들의 좌충우돌 배낭여행기에서 우리들은 대리만족을 넘어 잔잔한 감동을 받게 된다.

 

은퇴 준비에 필요한 4가지 FACT

 

Friends~ 가장 소중한 재산은 오래된 벗이다

Adventure & Communication~ 모험을 즐기고, 부족함은 소통으로 채우자

Travel~남은 인생에 여행을 선물하자

 

은퇴하고 나면 남는 게 시간이다. 여유가 생긴다. 따라서 노후 소득이 안정되고 건강만 챙긴다면 우리도 누구나 <꽃보다 할배, 할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모아 놓은 돈이 부족하고 약간 몸이 불편하더라도 지레 포기하지 말자. 여전히 소년, 소녀 같은 설레는 마음을 간직한다면 충분히 맞설 수 있을 것이다. 여행, 이는 은퇴의 훌륭한 선물이다.

 

 

100세 시대, 사랑하는 방법도 바뀐다

 

요즈음은 가는 곳마다 <백세 인생>이라는 노래가 흘러 나온다. 세월에 따라 유행하는 대중가요는 바귀게 마련이다. 북한산 둘레길을 다니다 보면 배낭을 메고 가벼운 산책이나 산행을 즐기거나 한강 고수부지 도로를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는 신중년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음악을 크게 틀고서 듣는 노래가 바로 "내 나이가 어때서~"였다. 2014년 한국 애창곡 1위에 올랐다고 한국 갤럽에서 발표할 정도였다.

 

방송에서 고령의 연기자들이 황혼에 배낭여행을 다니는 꽃할배를 보게 되니 이젠 여행지에서 청바지를 멋지게 차려입고 여행하는 신중년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지역복지센터에서 컴퓨터, 외국어 등도 열심히 배우고 심지어 자신의 재능을 나누는 자원봉사를 기꺼이 하는 신중년도 많다. 100세 시대, 이젠 사랑하는 방법도 바뀐다.

 

 

  

   

행복한 은퇴, 인생 5계計

 

생계生計~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신게身計~ 병치레에 대비하자

가계家計~ 지금부터 가족과 함께하라

노계老計~ 경제적으로 당당하게 자립하라

사계死計~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재취업

 

통계청의 조사에 의하면 60세 이상 어르신의 1위 어려움이 경제적 어려움이라고 밝혀졌다. 예로부터 나이가 들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4고苦가 있다. 병고病苦, 빈곤고貧困苦, 독고獨苦, 무위고無爲苦 등이 바로 그것이다. 빈곤고는 구직을 통해 일자리를 얻게 되면 어느 정도 해소가 가능하다. 재취업은 오히려 생활의 리듬과 활력을 만들어주므로 건강 유지에도 좋다.

 

재취업 성공 핵심 키워드

 

1. 고백하라

2. 도움을 청하라

3. 자존심을 버려라

4. 적극적으로 배워라

5. 끈기 있게 도전하라

6. 과거는 잊어라

7. 소득의 많고 적음을 생각하지 말라

 

 

은퇴 후 창업, 철저히 준비하라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2014년) 창업 후 3년 미만 폐업률이 59.5%이다. 이는 개인 사업체의 생존기간이 매우 짧다는 것을 말해준다. 특히, 2013년에는 자영업의 진입보다 퇴출이 처음으로 더 많게 나타났다. 그만큼 자영업 시장이 타격을 받고 있음을 시사한다. 은퇴자의 경우 창업 후 실패하면 회복할 기간이 별로 없어 실로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이 든 은퇴자에겐 재테크의 방법으로 주식투자를 권하지 않는 게 상식이다.

 

실패한다면 그나마 조금 모아 둔 퇴직금을 한 방에 다 날려버리게 되는 셈이다. 만약에 타인으로부터 빚까지 얻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따라서 실패 확률을 사전에 줄이고 인생 2막의 성공을 거두려면 은퇴 전부터 미리 장기간 체계적으로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세심힌 관찰과 함께 철저히 공부를 해야 한다.

 

 

 

미리 준비하자

 

책은 친근한 사례들, 즉 드라마, 영화, 노래 등에 전문가의 구체적인 자료와 조언이 더해진다.노후 준비가 거창하게 대비해야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우리 생활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일임을 느끼게 된다. 마음의 준비가 바로 첫 번째 노후 설계인 것이다. 30년 일하고 나머지 30년은 은퇴 후 노후 생활로 보내야 한다. 준비만이 즐길 수 있는 노후를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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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읽는 중국사 2 - 삼국시대에서 당 왕조까지 만화로 읽는 중국사 2
류징 글.그림, 이선주 옮김 / 레디셋고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한漢 왕조가 400년 넘게 통일을 유지했던 중국은 다시 400년 동안의 분열 시대에 접어든다. 이 기간은 잦은 내란과 외적 침입으로 인해 중국 역사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질서를 회복할 강력한 중앙정부가 없었기에 지역의 세력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군사들을 키웠고, 이로 인해 귀족 세력이 강해졌다. - '서문' 중에서

 

 

위, 촉, 오 삼국시대에서 당 왕조까지

 

불안 심리가 극도에 달하면 사람들은 자신을 의지할 뭔가를 찾는다. 대개는 종교에 기대 구원을 얻고자 한다. 국가이념이었던 유가儒家는 한 왕조의 몰락과 함께 쇠하게 되었다. 유가를 추종하던 관리들은 마음의 평화를 찾아 현학玄學 운동을 시작했다. 현학이란 철학 사조를 말한다.

 

중국 북쪽 지방을 정복한 이민족 통치자들은 그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인도에서 유입된 불교를 이용했고, 중국 귀족들은 불교에 맞서 도교道敎를 확립했다. 전쟁이라는 혼란의 시기를 거치면서 인간들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답을 구하려고 했다. 그러면서 사상은 다양해지고 중국 문화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 들었다.

 

오랜 분열이 계속되다가 6세기에 수隋 왕조가 중국을 통일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그 뒤를 당唐 왕조가 이었다. 당의 통치자들은 제국을 재건하고 국경을 튼튼히 했다. 건국한 지 40년 만에 당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이 되었다. 반면 당시의 유럽은 중세 암흑기에 빠져 있었다.

 

당나라의 황금기도 그리 길지 않았다. 제국의 경제와 인구의 규모가 커지면서 황실이 이를 제대로 통치할 능력을 갖추기 못했기 때문이다. 갈수록 늘어난 현안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요구되는 리더십의 부재가 가장큰 원인이었다. 즉 중앙정부는 복잡하게 파벌이 얽혀있어 행정 마비 상태였던 것이다.

 

자연재해가 발생하자 이미 쇠약해진 나라는 백성들을 구호할 힘도, 반란군과 싸울 힘도 없었다. 25년간 끊임없이 반란이 일어났고, 이 와중에 수백만 명의 백성들이 죽어 나갔다. 귀족 사회의 붕괴와 함께 천년 전통도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통일 제국 당 왕조도 결국 '왕조 순환의 이론'을 피하지 못하고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분열의 시대(220~589년)

 

184년, 중국 북쪽에서 번진 전염병, 황허의 범람, 기근과 무거운 세금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다. 반란의 리더 장각은 중국의 민간신앙에서 차용한 요소들로 신흥종교인 '태평도太平道'를 만들었다. 당시의 핍박한 삶을 감안할 때, 세상을 치유하고 더 좋은 곳으로 만든다는 태평도는 충분히 먹혀 들었다.

 

한나라 황실은 온 국력을 동원해 6개월 만에 주요 반란 세력을 진압했지만, 이후에도 소규모 봉기는 21년 동안 계속되었다. 질서 회복이 최대 현안이었던 한나라 영제(156~189년)는 지방 통치자들에게 권력을 위임했다. 즉 세금을 걷어서 반란군에 맞설 군대를 양성해 맡은 지역을 다스리라는 것이다.

 

영제가 죽자 황후 가족과 환관들이 후계를 놓고 다툼을 벌였다. 국경에 나가 있던 동탁이 군대를 이끌고 수도에 진입해 황실을 장악했다. 그러자 한나라 13개 지역 통치자들은 연합을 형성해 동탁에 맞섰다. 이후 동탁은 수도를 창안長安으로 옮기면서 뤄양洛陽은 완전 전소시키고 말았다. 2년 후, 동탁은 자신의 심복 장수 여포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로써 반동탁 연합도 끝나고 무주공산이 된 국토를 군벌軍閥들이 각각 차지해 나라를 세우기 시작했다. 이후 30년 동안 이들은 서로 갈등을 빚으며 무려 120번이 넘는 전쟁을 치렀다.

 

 

 

삼국 시대에서 남북조시대까지

 

우리들이 익히 삼국지를 통해 알고 있는 위나라, 촉나라, 오나라의 삼국이 대립하는 국면이 진행된다. 이 중 조조가 이끄는 위나라가 가장 넓은 영토와 인구를 거느리며 제일 강성했다. 유비가 이끄는 촉나라의 국력이 제일 약했다. 촉은 손권의 오나라와 동맹을 맺고 위나라 공격을 위해 16차례나 원정을 떠났다. 아래를 참고하면 이해가 쉽다.

 

  

 

"화설천하대세話說天下大勢, 분구필합分久必合, 합구필분合久必分"

- 소설 <삼국지연의>의 첫 문장

 

이 말은 '세상이 돌아가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오랫동안  나뉘어 있었다면 반드시 합쳐질 것이고 오랫동안 합쳐져 있었다면 반드시 나뉠 것이다'라는 뜻이다. 위, 촉, 오 삼국의 대결에선 결국 위나라가 촉나라를 정복한다. 그러나 위나라는 내부 문제로 붕괴되는데 265년 사마염 장군이 황위를 찬탈해 진晉나라를 세웠던 것이다. 280년, 진이 오나라까지 멸명시킴으로써 삼국시대는 막을 내렸다.

 

사마염, 즉 진나라 무제(236~290년)는 군인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고 집집마다 약간의 땅을 지급해 수확량의 반을 나라에 세금으로 납부하도록 했다. 귀족과 관리들은 평민보다 최소 10배가 넘는 땅을 받았지만 세금은 적게 내거나 아예 내지도 않으면서 사치스런 생활을 즐겼다.

 

무제가 죽자 나라는 파벌 싸움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새 황제의 아내와 섭정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8명의 진나라 왕자들은 서로 황실을 차지하려고 다투었다. 황제의 자리는 하나인데, 자식이 많으니 시끄러울 수밖에. 덩달아 지방 귀족들도 편이 나뉘어 각자 원하는 왕자를 지지하면서 싸움을 키웠다. 내전이 15년 동안 이어졌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이민족 유목민이 311년에 뤄양과 316년에 창안을 점령하면서 진나라의 황제를 포로로 붙잡았다. 이에 진나라 황실은 북을 포기하고 남으로 후퇴함으로써 마침내 서진 시대는 막을 내렸다. 317년, 진나라 황족이 황제에 올라 새로운 동진 시대를 선포했다. 북의 귀족들은 잠시 고향을 떠난다고 생각했지만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동진은 북쪽 땅을 찾기 위해 100년 넘게 13차례의 군사작전을 펼쳤지만 유목민들은 강했다. 오히려 그들은 남쪽 중국 왕조를 크게 위협했다. 376년, 저족은 새로운 왕조 전진前秦을 세우며 중국 북쪽을 통일했다. 383년, 전진과 동진은 비수에서 만났다. 군사력이 압도적인 우위였던 전진은 동진의 유언비어 살포에 힘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대패하고 말았다. 이 전쟁이 유명한 비수대전이다. 이후 전진은 작은 나라들로 분열되고 만다. 북위, 후량, 서진, 후진, 서연, 후연 등이 그것이다.

 

비수대전 후, 대승리를 거둔 장군은 420년 스스로 황위에 올라 나라를 송宋(유송)이라 칭했다. 439년, 선비족이 위나라(북위)를 세워 중국 북쪽을 통일했다. 남과 북 모두 자기들이 중국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통치자라고 주장했다. 이 시기를 바로 '남북조南北朝'시대(420~589년)라고 말한다.

 

 

 

불교의 전파

 

중국 대륙의 북쪽에 사는 수백만 백성들은 늘 위협에 시달렸다. 전쟁과 군대 징집, 무거운 세금의 부과, 힘든 노동 때문에 괴로음이 만연되어 있었다. 이처럼 삶이 팍팍해지면 상대적으로 종교가 더 번창하게 되는 법이다. 이때 인도에서 들어온 불교는 기존의 중국 문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해결책을 제시했다.

 

불교는 중국의 신념체계에는 없었던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었다. 기존의 유교는 아직도 삶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죽음에 대해 알겠느냐는 입장이었고, 이후 등장한 도교는 연금술과 명상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주장했으나 연금술에 필요한 약물이나 광물 등에 소요되는 비용이 커서 부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반면, 불교는 열심히 수련하면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쳤던 것이다.

 

     

 

중국 남쪽의 양무제(464~549년)는 유교, 도교, 불교를 정치철학의 단계에 따라 다르게 활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젊을 때는 이민족의 침략을 물리치고, 내전에서 승리를 거두어 나라를 세우는데 군사력을 이용했고, 치국을 위해선 유교의 원칙으로써 사회질서를 구축했으며, 이후엔 도교의 철학을 통치 철학으로 수용했었다. 쉰 살이 넘어선 불교에 눈을 떠 이를 국가 종교로 채택했다. 그는 여러 차례 사찰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집무와 명상을 병행했다.

 

그런데, 양나라에 투항했던 북쪽 출신의 무장 후경이 변심해 548년 양나라의 수도를 공격함으로써 양무제는 궁궐에서 포위되고 말았다. 그 기간이 6개월 이상 이어지자 수도에 살던 주민 12만 명 중 불과 2천 명만 살아남았다. 후경은 궁궐로 침입해 최후의 공격을 했지만, 양무제의 "전투가 정말 오래 계속됐군. 피곤하지 않나?"라는 말에 퇴각하고 만다. 몇 달 후 양무제는 86세의 나이로 굶어 죽었다.

 

이후 내란이 뒤따랐고 남북간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북쪽 나라들은 남쪽을 침략할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양나라는 분열 시대 중 가장 긴 40년 동안 번영한 나라였다. 그런데, 후경이란 인물이 불과 4년이란 짧은 기간에 이를 완전히 붕괴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557년, 양나라의 옛 장군이 양나라의 남은 지역을 장악해 새로운 진陳왕조를 건국했다.

 

 

수나라의 탄생(589~618년)

 

     

 

선비족과 다른 유목민족들은 몇 대에 걸쳐 중국 북쪽의 한족들과 결혼함으로써 결국 한족으로 동화되었다. 오늘날의 한족은 중국 인구의 92%, 세계 총 인구의 20%를 차지한다. 이는 지구촌에서 가장 큰 규모의 민족 집단인 셈이다. 581년, 새로운 혈통의 한족인 문제(541~604년)가 중국 북쪽에서 수나라를 세웠다.

 

588년, 수나라는 51만 8천 명의 군대를 소집해 남쪽의 마지막 남은 나라 진陳을 굥격했다. 진은 저항하기에 너무나도 벅찼다. 589년, 마침내 수나라는 약 400년 간 지속되어 온 분열의 시대를 종식시키며 중국 대륙을 통일했다. 수 왕조는 강력힌 중앙집권을 위해 이전 왕조들의 통치제도를 개선했다. 만리장성의 축조와 인공 수로인 대운하 건설이라는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나라의 지형을 바꿔놓았다.

 

수나라의 외부환경

 

북~ 트르트족

북서~ 비단길을 지배하는 토욕혼(선비족의 분파)

서~ 티베트족

북동~ 고구려, 거란족

남~ 참파족(현재의 베트남)

 

국경을 확보한 수나라는 이웃 국가들의 항복을 모두 받아냈지만 유일하게 고구려만 항복하지 않았다. 수나라 황제는 고구려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영토나 군사력에 있어서 비교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구려가 다른 민족들과 동맹을 맺고 수나라의 국경을 급습하자 수나라는 598년 3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공격했다. 그러나, 악천후와 전염병이 불리하게 작용했고 고구려의 매복 작전에 유린당하며 완패하고 말았다. 사상자는 90%에 달했다.

 

두 번째 황제 양제(569~618년)는 복수를 위해 612년 100만 대군을 이끌고 전쟁에 나섰다. 30만 5천 명의 별동대가 고구려 영토에 진입, 수도 평양으로 진군했다. 이들은 넓고 평평한 계곡에 위치한 살수에 도달했다. 정찰병은 강의 유속도 느리고, 깊이 또한 얕음을 확인햇기에 도강을 감행했다. 이 날이 바로 그들의 제삿날이었다. 미리 강 상류에 제방을 쌓고 물을 가두고 있었는데 수나라군이 도강을 하자 이를 무너뜨렸던 것이다. 갑자기 빨라지고 높아지는 강물에 허둥댈 때 고구려 기병대가 맹렬히 공격했다. 겨우 2천7백 명만 중국으로 되돌아갔다. 이후에도 양제는 고구려 공격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자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황실경비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당나라의 재통일

 

수 양제의 사촌인 이연(566~635년)이 어지러운 수나라의 수도를 점령하고 당나라를 세웠다. 반란 세력들과의 전쟁이 이어지다가 결국 10년 만에 모두 격퇴하고 중국을 재통일했다. 수나라 시절 펼쳣던 군사작전 덕분에 주변의 유목민 세력은 이전보다 훨씬 약해져 있었기에 당나라는 순조롭게 출발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는 데 40년이나 걸렸다.

 

          

 

그러나 당나라 초기에 일반 백성들의 삶은 녹록하지 않앗다. 도시와 농촌 간의 격차는 컸다. 나라는 농부들에게 경작할 땅을 주었으나 이들은 곡물, 옷감, 노동력 등의 세금을 납부해야만 했다. 그리고 땅을 받은 이상 다른 곳으로 쉽게 이동할 수도 없었다. 반먼 도시에선 상류층이 관직의 95%를 차지하면서 옷감, 도자기, 술, 설탕, 소금 등 수익성 좋은 사업들을 운영했다. 법에 의한 불평등은 점점 커졌다. 그래서 색깔로 계층을 구분했다.

 

 

 

 

무측천(624~705년)의 등장

 

중국 역사에서 무측천, 즉 무조의 이야기는 빼놓을 수가 없다. 그녀는 태종 이세민의 후궁이었는데, 태종이 죽자 황위를 이은 고종(628~683년)의 마음을 얻어 나랏일을 돌보게 되었다. 고종은 건강 때문에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무측천으로 선택한 셈이다. 이후 고종이 죽자 나라의 모든 실권은 그녀가 장악하고 있었다. 실질적인 통치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당의 많은 충신들은 무측천의 도덕적 결함을 이유로 그녀의 통치를 반대했다. 이에 그녀는 비밀경찰을 조직해 반대 세력들을 조직적으로 고문하고 처형하면서 혹독하게 다루었다. 이후 그녀는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받기 위해 불교를 이용했다. 대부분의 황족들은 도교를, 나라의 관리들은 유교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유기의 주인공 현장(602~664년)은 중국으로 귀국한 후 오랫동안 무측천의 후원을 받았다.

 

65세에 그녀는 아들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황위에 올라 주周 왕조(690~705년)를 선포했다. 자신은 이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 온 부처의 환생이라고 주장했다. 불교 국가의 이미지를 높이려고 그녀는 불교 사찰에 의료, 교육, 숙박, 대출, 자선 등 엄청난 특권을 부여했다. 또 불교 경전의 표준화를 위해 대규모 간행 사업도 후원했다. 현존하는 중국 최초의 목판 인쇄 책은 이때에 탄생했다.

 

 

 

705년, 팔십 세의 무측천이 병에 걸리자 관리들은 쿠데타를 일으켜 그녀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복구된 당의 왕조는 계속 성장했다. 현종의 통치하에 경제, 문화, 둔사, 인구 등에서 최고의 번영기를 누렸다. 705년 3,700만 명이던 인구가 754년 5,200만 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특히, 그는 문화를 사랑했는데 악기를 연주하며, 작곡까지 했다. 궁궐에는 약 1만 명의 예능인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가 아끼던 양귀비(719~756년)는 가수, 무용수, 음악가, 작곡가, 시인이었다.

 

군사령관들이 나랏돈으로 사병을 얻어 세력을 키움에 따라 황실과 군사령관들 간에 갈등이 점점 커졌다. 커진 갈등은 폭발할 수밖에 없다. 755년, 투르크족 장군 안녹산(703~757년)이 반란을 일으켜 16만 4천 명의 정예병이 당나라 수도로 진격했다. 후퇴를 하던 현종에게 황실 경비대가 반기를 들었다. 이후 황태자 이형(711~762년)이 스스로 숙종이라 칭하며 황제에 즉위했다. 숙종은 외세인 위구르족의 도움을 받아 창안을 되찾았다. 8년 만에 안녹산의 난은 평정됐다.

 

황실은 반란군 진압에 조력한 40여 명의 군사령관들에게 자치권을 부여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다스리는 땅에서 왕처럼 행동했다. 황실이 지방의 정치와 경제에서 손을 떼자 지방은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당나라 말, 나라는 분열된 채 쇠약해졌다. 859년부터 수십 년간 계속 폭동이 발생했다. 최악의 폭동은 '황소의 난'이었다. 귀족이 무너지면서 당나라도 종말을 맞이했다.

 

 

 

 

또다시 분열의 시대로

 

당나라의 멸망 후 중국은 또다시 분열의 시대로 들어섰다. 북으로는 침략해오는 유목민을 막기 위해 전쟁을 해야 했고, 남으로는 예전의 당나라 군사령관들과 지방 군벌들이 12개의 왕국을 세웠다. 그럼에도 당 이후의 분열 시대는 이전의 369년에 비해 비교적 짧은 53년 동안 이어졌다.

 

960년, 중국 북쪽의 장군 조광윤이 중국 대부분을 통일했다. 새로운 왕조의 탄생이다. 이 왕조는 과학, 기술, 경제, 도시화 등에서 상당한 진보를 이루었다. 얼마나 어떻게 진보했을까? 3권이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또한 생동감 넘치는 그림으로 주요 사건과 인물들을 생생하게 그려냈기에 중국 역사를 처음 배우는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도 제대로 배울 수 있게 도와준다.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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