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양자역학의 방정식들을 이용해서 원자가 공간에 전자를 방출하는 실험(이는 실제 실험으로 베타 붕괴라고 불린다)를 기술할 수 있다. 이상적인 실험에서 전자는 명확한 스핀을 갖는다. 스핀은 위 방향이거나 아래 방향이다. 그러나 스핀의 값이 무엇이 될지 사전에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각각의 확률의 50 50이다. 만약 당신이 실험을 1000번 하거나 동시에 원자 1000개로 실험할 경우, 당신은 전자 500(여기서 몇 개를 더하거나 뺀 값일 수 있다)의 스핀이 위 방향이고 나머지 전자 500개의 스핀이 아래 방향임을 발견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전자 하나를 골라 스핀을 측정한다면, 당신은 전자를 들여다보기 전까지 그 전자의 스핀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다.


(59)

그저 당신이 입자를 찾을 때 전자가 마치 입자인 것처럼 행동하고, 당신이 파동을 찾을 때 전자는 마치 파동인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전자가 입자 또는 파동이거나 입자이자 파동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당신은 그저 당신이 보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고, 당신이 보는 것은 당신이 무엇을 볼지에 대해 내린 선택에 의존한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전자와 원자 같은 양자적 개체들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또는 이 개체들이 그 누구도 이들을 측정하지 않을 때-혹은 누구도 이들을 바라보지 않을 때-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62)

반쪽 상자는 당신의 실험실에 그대로 두고, 나머지 반쪽 상자는 화성으로 가는 로켓에 실어 보내자. 보어에 따르면 전자가 연구실에 있는 상자나 화성에 있는 상자에서 발견될 확률은 50 50이다. 이제 당신의 실험실에서 상자를 열어보자. 당신은 전자를 발견하고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둘 중 어떤 경우에도 파동함수는 붕괴한다. 만약 열어본 상자에 전자가 없다면 전자는 화성에 있다. 이는 전자가 이 반쪽 상자 또는 저 반쪽 상자에 항상 있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코펜하겐 해석은 실험실에서 상자 안의 내용물을 검토하는 경우에만 파동함수의 붕괴가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EPR ‘역설과 슈뢰딩거의 유명한 죽어 있으면서 살아 있는 고양이에 관한 퍼즐의 근저에 있는 핵심 개념이다.


(100)

각각의 스위치는 비트(bit)로 알려져 있고, 비트가 많을수록 컴퓨터는 더 강력해진다. 8개 비트는 1바이트가 되고, 오늘날 컴퓨터 메모리는 수십억 개의 바이트 즉 기가바이트(GB)를 통해 측정된다. 우리가 이진법을 다루고 있으므로 엄격하게 말하면 1기가바이트는 2^30바이트이지만, 대개 그대로 받아들이다. 그러나 양자컴퓨터 속에 있는 각각의 스위치는 중첩된 상태들로 있을 수 있는 개체다. 대개 이들은 원자들이지만 당신은 이들이 스핀 값을 위 방향 또는 아래 방향으로 가질 수 있는 전자들이라 생각할 수 있다. 차이는 바로 중첩 상태로서 전자들의 스핀은 위 방향이자 동시에 아래 방향이라는 것, 0이고 1이라는 것이다. 각각의 스위치는 큐비트(qubit)라고 불린다.


(127)

양상블 해석은 코펜하겐 해석에 대한 최초이자 가장 단순한 대안이며 아인슈타인이 선호했던 해석이다.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양자이론적인 기술을 개별적인 계들에 대한 완전한 기술로서 생각하고자 하는 시도는 부자연스러운 이론적 해석으로 귀결된다. 만약 우리가 양자이론적인 기술을 개별적인 계들이 아니라 계들의 앙상블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해석을 수용할 경우, 앞서 언급했던 해석은 곧장 불필요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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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로봇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 우리교육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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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이작 아시모프란 사람은 엄청 유명한 SF 작가란다.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로 유명한 아서 클라크, <스타십 트루퍼스>로 유명한 로버트 하인라인과 함께 SF 3대 거장에 손꼽는다고 하더구나. 얼마 전에 읽은 키두니스트 님의 <고전 리뷰툰 2>에서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 <파운데이션>을 소개해 주었어.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그 전부터 읽어보겠다고 1권을 사두었는데, 키두니스트 님의 책을 읽고 이 시리즈를 올해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단다. 그런데 <파운데이션>을 읽기 전에 먼저 <아이, 로봇>을 읽어야 한다는 키두니스트 님의 조언에 따라 <아이, 로봇>을 이번에 먼저 읽게 되었단다.

<아니, 로봇>은 로봇에 관한 단편들을 엮은 것이지만, 각 작품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중복되어 나오고 한 로봇 회사에서 만든 로봇들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연작 소설이라도 해도 괜찮을 것 같구나. 이 소설은 시작하기 전에 로봇의 3원칙에 관한 내용이 나온단다.

1원칙.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2원칙.

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3원칙.

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로봇 자신을 지켜야 한다.

이 세가지 원칙은 로봇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원칙으로 이번에 읽은 <아이, 로봇>에 나오는 모든 로봇들은 이 세가지 원칙을 준수하여 만들어졌단다. 그런데 이 세가지 원칙이 서로 충돌하여 생기는 에피소드도 있고, 이를 다르게 해석하기도 하는 에피소드도 있단다. 이 책을 읽는 동안은 로봇의 3원칙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구나. SF이긴 하지만 고전의 반열에 들어서서 읽기 고루하고 재미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모든 작품들이 읽기 쉬우면서도 재미있더구나. 아빠가 먼저 읽고 나서 너희들에게 추천해 주었지만, 너희들은 숙제가 많구나.ㅠㅠ


1.

이 작품은 1950년에 출간한 책이란다. SF 소설이니만큼 1950년 기준으로 미래를 그린 소설이야. 때는 2057. 75세인 수잔 캘빈이라는 로봇 심리학 박사는 인터뷰를 하였고, 자신이 50여 년간 몸 담았던 US 로보틱스 회사에서 겪었던 로봇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는 형식으로 책은 구성되어 있단다.

첫 번째 작품 <소녀를 사랑한 로봇>에 등장하는 로비라는 로봇은 초창기 모델로 음성 지원 기술이 적용되지 않은 로봇이란다. 로비는 유모 역할을 대신하는 로봇인데, 어린 글로리아는 로비를 무척 따르고 좋아하는데, 엄마인 웨스턴 부인은 한낱 기계인 로비에 너무 의존하고 좋아하는 딸이 걱정되어 로비를 떼어놓으려는 이야기란다. 로비를 강제로 떼어놓으니, 글로리아는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웨스턴 부부는 이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단다.

두 번째 작품 <술래잡기 로봇>에서는 수성으로 셀레늄이라는 광물을 채취하러 로봇과 함께 떠난 로봇기술자 파웰과 도노반의 이야기란다. 함께 떠난 로봇은 로봇 3원칙에 따라 만들었는데, 이 로봇이 로봇 3원칙을 모두 지키려다 보니 제대로 동작하지 않고 엉뚱하게 동작하게 되어 파웰과 도노반은 위기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란다.

이후 작품들에서도 파웰도 도노반은 자주 등장한단다. 그리고 기술이 점점 발전하면서 로봇들도 점점 진화를 하게 된단다. 생각하는 로봇이 등장하거나, 다른 부하들을 거느린 로봇도 등장하고, 마음을 읽는 로봇도 등장한다. 심지어 자존심이라는 개념까지 학습하게 된 로봇은 자존심이 상해서 사라지기도 했어.

로봇 기술이 발전하면서 나중에는 사람인지 로봇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의 로봇까지 나와서 <바이어리_대도시 시장이 된 로봇>에서는 로봇이 시장까지 되었단다. 하지만 다들 바이어리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그가 잠도 거의 자지 않고 일하자, 반대 진영에서는 그가 로봇이라고 이야기했고, 로봇이 시장이 될 수 없다면서 선거전에서 이를 이용했지만, 결국은 로봇이라는 것을 밝히지 못하고, 바이어리는 시장이 되었고, 그는 가장 훌륭한 시장 중에 한 명이 되었단다. 미래에는 시장 역할을 잘 만들어진 AI 로봇이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정치인들이야 늘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다 보니 보여주기식 정책이 많으니 말이야. 지금도 알게 모르게 세금 낭비가 얼마나 심하니… AI로 대체되어야 할 가장 시급한 직업은 바로 정치인.

이 소설에서 나오는 로봇들 모두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었단다. 그로 인해 모든 작품들이 재미있었고 말이야. 그래서 각 작품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도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너희들도 본, 윌 스미스 주연의 <아이, 로봇>이 있단다. 제목에서 보듯이 이 책을 영화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지만, 로봇의 3원칙이라는 설정은 가져왔지만 소설의 줄거리랑은 관련이 없는 영화였지. 그래도 재미는 있었잖니.

이제 <아이, 로봇>을 읽었으니 <파운데이션> 시리즈도 도전해봐야겠구나. 모두 7권인데 천천히 읽어봐야겠구나. 검색하다 보니 <파운데이션>이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특정 OTT에서 서비스하고 있어서 볼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기회 되면 보는 것으로 하고

오늘 독서 편지는 이상 간단히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공책에 적힌 내용을 살펴보았다.

책의 끝 문장: 지난달에 여든 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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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뉴욕으로 돌아온 오펜하이머는 러더퍼드가 자신을 불합격시켰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오펜하이머는 러더퍼드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브리지먼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 내 경력 역시 그의 눈길을 끌지 못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러더퍼드는 오펜하이머의 지원서를 J.J. 톰슨(1856~1940)에게 넘겼다. 톰슨은 러더퍼드 이전에 캐번디시 연구소의 소장을 맡았던 저명한 물리학자였다. 69세의 톰슨은 전자를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06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1919년에 그는 행정 업무에서 완전히 손을 놓았고, 1925년 무렵에는 실험실에 띄엄띄엄 나오며 가뭄에 콩 나듯 학생을 받고 있었다. 오펜하이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톰슨이 자신을 받아 주기로 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서는 크게 안도했다. 그는 물리학을 직업으로 선택했고, 물리학의 미래와 함께 자신의 미래 역시 유럽에 있다고 확신했다.


(93-94)

오펜하이머는 프루스트의 소설을 처음 읽은 지 10년이 지난 후에도 잔인함을 논하는 구절을 외워 슈발리에를 놀라게 했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이 남에게 주는 고통에 무관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사악함이 그토록 드물고, 비정상적이며, 소외된 상태가 아니고 심지어 그 안에서 편히 쉴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와 같은 무관심을 지칭하는 단어는 여럿 있지만, 결국은 끔찍하고 영구적인 형태의 잔인함이라고 할 수 있다.”

코르시카에서 오펜하이머는 이 글을 외울 정도로 반복해 읽으면서 자신이 남에게 끼치는 고통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의식했을 것이다.


(105)

나중에 MIT 총장까지 오르게 될 콤프턴은 당시 오펜하이머의 박학다식함에 기가 눌리는 것 같았다. 그는 과학 분야에서는 오펜하이머의 맞수가 될 수 있었지만, 이 젊은이가 문학, 철학, 심지어 정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전혀 대응할 수가 없었다. 오펜하이머는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괴팅겐에 와 있는 미국인들은 대개 프린스턴 대학교나 캘리포니아에서 온 기혼자 대학 교수들이야. 그들은 물리학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지만, 교양 교육은 전혀 받지 못한 것 같아. 그들은 독일인들의 섬세하고 잘 조직된 지적 활동을 부러워하고 있고, 그와 같은 물리학을 미국으로 이식하고 싶어 하지.”라고 썼다. 이는 확실히 콤프턴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113)

양자 물리학은 확실히 젊은이들의 과학이었다. 젊은 물리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이 새로운 물리학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것을 그의 시대가 지나갔음을 알리는 신호라고 생각했다. 몇 년 후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아인슈타인을 만난 오펜하이머는 실망한 채로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오만방자하게도 아인슈타인은 완전히 맛이 갔어.”라고 썼다. 하지만 1920년대 말까지만 해도 괴팅겐의(그리고 보어의 코펜하겐의) 젊은이들은 여전히 아인슈타인에게 그들의 양자 이론을 설득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118)

괴팅겐은 성인이 되어 가던 젊은이로서 오펜하이머가 처음으로 진정한 승리를 거둔 곳이었다. 오펜하이머는 과학자가 된다는 것이 터널을 통해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라고 비유한 적이 있다. “터널 반대편이 계속 위쪽으로 이어져 있는지, 아니면 출구가 있기는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양자 혁명의 끝자락에 걸쳐져 있던 젊은 과학자에게 특히 그러했을 것이다. 오펜하이머는 물리학의 대변동에서 참가자라기보다는 오히려 증인에 가까웠지만, 자신이 물리학을 평생 직업으로 삼을 만한 지적인 능력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짧은 9개월 동안 그는 학문적 성과와 성격의 변화를 이루었고, 그 결과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단지 1년 전만 해도 그의 생존까지 위협했던 불안한 감정 상태는 이제 상당한 학문적 업적과 그에 따르는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 세상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156)

1929년 오펜하이머는 동생에게 모든 남자들은 여성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어 하지. 그런 욕망이 꼭 허영심만은 아니야. 하지만 그와 같은 매력은 가지고 싶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사람들은 멋진 취향이나 행복을 갖고 싶어 하지만 의지만으로 그것들을 얻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 그것들은 한 사람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들이야. 행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무런 설계도 없이 기계를 만들려는 것과 같을 테니까.”라고 썼다.


(188)

오펜하이머는 1954년 심문관들에게 “1936년 무렵에 나의 관심사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나는 독일에서 유태인들이 겪는 일에 대해 지속적이고 사무치는 분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독일에 친척들(고모와 사촌들 몇 명)이 있었고, 나는 그들이 미국으로 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나는 대공황이 나의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적절하지 못한 직장을 구할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 아예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들을 통해 나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사건들이 인간의 삶에 이토록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공동체의 삶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244-245)

요점을 말하자면 오펜하이머는 항상 스스로 자유롭게 사고하고 스스로의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어떤 대의에의 헌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올바르게 균형 잡힌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매카시 시기의 가장 해로운 특징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오펜하이머의 정치적 편력에 대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가 1930년대에 미국의 사회, 경제적 정의를 위해 헌신했다는 것이고,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좌파의 편에 서기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273)

오펜하이머는 양자 역학을 책만 읽어서는 배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설명하는 과정에서 언어를 가지고 씨름하는 것 자체가 이해에 이를 수 있는 첩경이었다. 그는 같은 강의를 두 번 하지 않았다. 와인버그는 그는 자신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청중의 얼굴을 보고 어떤 부분에서 이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파악하고는 즉석에서 설명 방법을 완전히 바꾸기도 했다. 한번은 단 한 명의 학생의 관심을 자극하기 위해 강의 시간 전체를 특정한 문제를 설명하는 데 집중하기도 했다. 수업이 끝나고 그 학생은 오펜하이머에게 달려가 그 문제를 자신이 풀어 봐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오펜하이머는 좋아, 그것이 내가 오늘 세미나를 한 이유라네.”라고 대답했다.


(284-285)

오펜하이머는 이와 같은 정치적 덤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1941 10 13일자 그의 편지는 예의 바르고, 재기 넘치며, 풍자적이다가, 마지막에는 날카로운 빈정거림으로 끝맺었다. 오펜하이머는 인권 선언이 급진적인 신념을 가질 권리뿐만 아니라, 그 신념을 익명으로(with anonymity)” 말 또는 글로 표현할 권리까지 보장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는 공산주의자이거나 공산주의 동조자인 교수들의 활동은 회합을 가지고, 그들의 의견을 밝히며, 그것들을 (주로 익명으로) 출판한 것으로, 이러한 것들은 인권 선언에 의해 구체적으로 보장된 행동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썼다. 그는 이 편지를 다음과 같이 도전적인 문장으로 마무리했다. “신성한 체 하는 애매함과 빨갱이 사냥으로 점철된 당신의 성명서를 보고 나서야 나는 당신이 의장을 맡고 있는 위원회를 둘러싼 감언이설, 협박, 오만함에 대한 소문들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327)

한때 괴짜 이론 물리학자이자 장발의 좌파 지식인이었던 오펜하이머는 이제 대단히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일류 지도자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윌슨은 그에게는 품위가 있었습니다. 그는 매우 똑똑한 사람이었지요. 그는 우리가 그의 약점이라고 지적했던 것들을 단 몇 달만에 말끔하게 털어버렸습니다. 게다가 행정적인 절차들에 대해서도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의구심은 깨끗이 사라졌습니다.”라고 말했다. 1943년 여름 무렵이면 윌슨은 그와 함께 있으면 내 능력 이상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오펜하이머의 사람이 되었고, 그를 매우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419-420)

바이스코프는 보어가 자신에게 폭탄은 무서운 물건일지 모르나, 또한 위대한 희망이 될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그 당시 보어는 자신의 우려하는 바를 알리는 글을 오펜하이머에게 보내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1944 4 2일 무렵에 그는 만족할 만한 초고를 완성할 수 있었다. 보어는 일이 어떻게 진행되더라도 우리는 이미 인류의 미래에 깊은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한 과학과 기술의 위대한 쾌거를 손에 넣은 것이 확실하다.”라고 주장했다. 가까운 미래에 유례없는 무기가 만들어져 전쟁의 성격을 완전히 뒤바꿀 것이다.” 이것은 좋은 소식이었다. 나쁜 소식 역시 명징하고 예언적이었다. “우리가 빠른 시일 내에 이 새로운 물질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일시적인 이익보다 그것 때문에 인류가 받게 될 영구적인 생존의 위협이 훨씬 커질 것이다.”


(443)

오펜하이머는 로스앨러모스의 무시무시한 비밀을 세계가 알지 않고서는 전쟁을 끝낼 수 없다는 주장을 전개함으로써 설득에 성공했다. 이것은 모두에게 중요한 순간이었다. 보어의 논리는 오펜하이머의 동료 과학자들에게 특히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 앞에 서 있는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 역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윌슨이 그 순간을 회고했듯이, “내가 당시 오펜하이머에게 느꼈던 것은, 이 사람은 천사처럼 진실하고 솔직해서 잘못된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를 믿었습니다.


(462)

만약에 오펜하이머가 히로시마 폭탄 투하 전에 대통령이 일본인들은 평화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을 인지했다면, 그리고 대도시를 대상으로 한 원자 폭탄의 군사적 이용이 8월에 전쟁을 끝내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알았다면, 그가 어떻게 반응했을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전쟁이 끝난 후 자신이 속았다고 믿게 되었고, 이로 인해 그가 정부 관료들이 하는 말이면 뭐든지 의심하게 되었음을 알고 있다.


(501)

몇 분 후, 뜨거운 뉴멕시코의 태양을 받으며 단상 위에 앉아 있던 오펜하이머는 그로브스 장군으로부터 감사장을 받기 위해 일어섰다.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그는 앞으로 연구소의 작업에 참여했던 모두가 자부심을 가지고 그들의 성취를 돌아볼 수 있기를 기원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 그는 말했다. “오늘 그 자부심은 깊은 우려와 함께해야 합니다. 원자 폭탄이 무기고의 신무기에 불과한 것이 된다면, 인류가 로스앨러모스와 히로시마의 이름을 저주할 날이 올 것입니다.”


(506)

나중에 누군가 대통령이 손에 피라니, 제길. 그는 내 손에 묻은 피의 절반도 묻히지 않았어. 그걸 아프다고 떠들고 다니다니.”라고 중얼대는 것을 들었다. 그는 나중에 애치슨에게 나는 두 번 다시 저 개자식을 만나고 싶지 않아.”라고 말했다. 1946 1월까지도 이 일은 그의 마음에 각인되어 있었고, 그는 애치슨에게 오펜하이머를 “5~6개월 전에 내 사무실로 찾아와 손을 비비면서 원자력 에너지를 발견하여 자신들의 손에 피를 묻혔다고 말한 울보 과학자라고 표현했다.


(571)

그래도 오펜하이머는 연구소가 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까지도 아루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굳게 믿었다. 연구소에 대한 그의 강연에서 오펜하이머는 과학자들이 과학 자체의 특성과 결과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수학자들은 불과 몇 명만이 그의 의견에 동의를 표했을 뿐이었다. 노이만은 자신의 분야만큼이나 고대 로마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오펜하이머처럼 시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이 연구소를 인간의 삶이 처해 있는 상황들을 총체적이고 다면적으로 이해하는 데 관심을 가진 과학자, 사회 과학자, 그리고 인문학자들의 안식처로 만들고 싶어 했다. 이는 그가 청년 시절부터 동등하게 관심을 기울여 왔던 과학과 인문학을 화합시킬 수 있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그런 의미에서 고등 연구소는 로스앨러모스의 정반대이자 심리적 해독제였다.


(576-577)

1949년 보어가 프린스턴을 방문했고, 아인슈타인의 70회 생일을 축하하는 논문집에 에세이를 쓰기도 했다. 보어가 아인슈타인은 서로 만나는 것을 즐겼다. 하지만 오펜하이머처럼, 보어 역시 아인슈타인이 왜 그토록 양자 이론을 혐오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기념 논문집의 초고를 보고 아인슈타인은 칭찬만큼이나 독설이 많다고 논평했다. 그는 이것은 나를 기념하는 책이 아니라 규탄서 같군.”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생일인 3 14일이 되자, 프린스턴의 강당에는 오펜하이머, 라비, 위그너, 그리고 바일을 비롯한 저명한 학자 250명이 아인슈타인 생일 기념 강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동료들이 얼마나 아인슈타인과 의견을 달리했던 그가 강당 안에 들어서자 공기 중에는 기대감으로 전류가 흐르는 듯했다. 순간적인 침묵이 흐르고 나서, 모두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로 기억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을 사람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


(684)

1953년 무렵이면 냉전은 워싱턴과 모스크바가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의 선택지를 협소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핵의 지니 요정을 호리병 속에 가두려 했던 오펜하이머의 노력은 미국 내부에서의 정치적 기류로 인해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이제 공화당 출신의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 정치 기류는 오펜하이머를 병에 가둬 바닷속으로 던져버리려 했다.


(701-702)

그는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두 강대국들이 상대방은 물론이고 인류 문명 전체를 끝장낼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다만 자국의 파멸까지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오펜하이머는 우리는 유리병 속에 든 두 마리의 전갈과 같습니다. 서로 상대방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그러려면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지요.”라고 덧붙여 청중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721)

1953년 가을에 워싱턴은 마녀사냥에 사로잡혀 있었다. 수백 명의 공무원들이 사소한 혐의 때문에 공직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그 누구도, 심지어 대통령조차도 매카시 상원 의원에 맞서려 하지 않았다. 1953 11 24일에 매카시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애처로운 유화 정책을 펴고 있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다음날 잭슨은 <뉴욕 타임스>의 제임스 레스턴에게 자신은 매카시가 대통령에게 전쟁을 선포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레스턴은 이 말을 익명의 백악관 관계자의 이야기라며 자신의 칼럼에 인용했다. 한 아이젠하워 보좌관은 기사를 읽고서 잭슨의 발언은 매카시와 그의 동지들이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하기 어렵게 만들 뿐이라며 비난했다. 잭슨은 매카시의 공격에 아무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아연실색했다. 그는 자신의 일기에 내가 지난 몇 달 동안 지도력의 부재에 대해 걱정하던 느낌들이 이번 주에 기어코 현실화되고 말았다. 나는 두렵다라고 썼다. 그는 대통령 수석 보좌관 셔먼 애덤스에게 자신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최소한 매카시가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대통령 보좌관들의 생각이 바뀌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746)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폴드 홀 사무실로 걸어가면서 오펜하이머가 있던 방향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의 조교에게 저기 나르(nar, 바보)가 간다.”라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은 물론 미국이 나치스 독일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펜하이머가 도망쳐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매카시즘에 크게 놀랐다. 1951년 초에 그는 자신의 친구인 벨기에의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편지를 써서, 이곳 미국에서 수년 전 독일에서의 재앙이 다시 반복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악의 세력들에게 저항도 하지 않은 채 묵종하고 그들과 보조를 맞추고 있습니다.”라고 썼다. 그는 오펜하이머가 정부의 보안 위원회에 협조함으로써 자신을 굴욕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유해한 과정 자체에 정당성을 부여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811)

개리슨은 이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본 청문회에서는 오펜하이머 박사만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합중국 정부 역시 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개리슨은 이 나라를 휩쓸고 있는 걱정에 대해 말하며 은근히 매카시즘에 대한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트루먼과 아이젠하워 행정부 시기에 창궐했던 반공 히스테리로 인해 미국의 국가 안보 기구들은 이제 공산주의라는 단일한 세력이 훌륭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처럼행동하고 있었다. “미국은 자국민들을 먹어 치워서는 안 됩니다.” 개리슨은 그레이 위원회가 사람 전체를 판단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것으로 최종 변론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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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외딴 성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서혜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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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요즘 책을 고를 때 순전히 아빠가 읽을라고 하는 책도 있지만, 너희들과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도 고른단다. 우연히 책소개를 읽고 나서 너희들과 함께 읽으면 좋겠다고 작년인가 주문한 책이 있는데 <거울 속 외딴 성>이라는 책이란다. 그리고 두어 달 전에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도 들었단다. 아빠가 애니메이션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소설이 애니메이션으로 개봉을 한다고 하니, 재미가 있으니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을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읽어보고 싶더구나. 그리고 재미있으면 너희들에게 추천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어.

얼마 전에 월악산 자락으로 캠핑 갔을 때 이 책을 읽으려고 가지고 갔으나, 책은 많이 못 읽었구나. 그래도 아침에 살살 부는 바람에 파란 하늘 아래서 잠깐 읽었는데 그 행위 자체가 힐링이 되더구나.

지은이는 츠지무라 미즈키라는 작가인데 아빠는 처음 보는 작가로구나. 일본에 책 관련 상들이 꽤 많은 것 같구나. 일본 작가의 책들을 보면 무슨무슨 상을 받았다는 책들이 많은 것 같았어. 이 책은 2018년 서점대상을 받은 책이라고 하는데, 수상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했단다. 괜한 선입견만 생기니까 말이야.


1.

중학교에 처음 들어간 고코로는 집단 괴롭힘을 당하게 되었단다. 집단 괴롭힘이라는 것이 특별한 이유가 없어. 그런데 그 집단 괴롭힘을 주도했던 것이 선생님들한테는 모범생으로 알려진 학급회장 미오리라는 아이였어. 결국 고코로는 학교에 가지 않게 되었어. 고코로의 부모님은 고코로의 의견을 존중하여 이유도 묻지 않고 당분간 학교에 보내지 않았어. 그 시간이 길어져서 고코로와 같은 아이들의 적응을 도와주는 스쿨이라는 곳에 가기로 했는데, 고코로는 그곳에 가는 것도 쉽지 않았어.

스쿨에 가기로 한 첫날 갑자기 배가 아파서 집에서 쉬기로 했단다. 첫날 그렇게 틀어지자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가지 않았어. 고코로의 부모님은 그런 고코로를 기다렸지만, 간혹 인내를 참지 못하고 고코로에게 잔소리를 하기도 했단다. 부모님은 모두 일을 하시기 때문에 출근을 하시고 나면 집에는 고코로 혼자 있게 된단다. 어느날 혼자 방에 있는데 고코로의 방 안에 있는 전신 거울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고 그 거울에 손을 댔더니 쭉 하고 빨려 들어갔단다.

고코로가 꿈을 꾸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꿈이 아니었단다. 그 거울 속에서 늑대의 탈을 쓴 소녀를 만났어. 늑대의 탈을 썼다고 하니 늑대의 탈을 쓴 인간이라는 말이 생각나서 나쁜 이미지로 생각될 수 있으나, 그런 이미지를 가진 사람은 아니란다. 책의 앞 표지에 보면 늑대의 탈을 쓴 소녀가 빨간 드레스를 입은 그림이 있는데, 딱 그 이미지란다. 늑대 탈도 착해 보여. 그 소녀는 자신을 늑대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어.

고코로가 빨려 들어간 거울 속은 성 같이 생겼어. 이해 가지? 소설 제목이 거울 속 외딴 성이잖아. 늑대님이 말하길, 그곳에서는 게임이 진행된다고 했어. 고코로를 포함하여 7명의 아이들이 그 게임에 참석하는데 다음해 3 30일까지 소원 열쇠를 찾는 게임이라고 했어. 그 소원 열쇠를 찾아 소원방에 가면 딱 한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지. 소원 열쇠는 딱 한 개. 그러니까 일곱 명 중에 한 명만 그 소원을 빌 수 있는 거지. 그런데 지금은 5월인데 내년 3월까지 시간을 준다고? 3월말이 일본에서는 한 학년이 끝나는 시점이란다. 4월에 학년이 시작하고 말이야. 그러니까 다음 학년이 올라가기 전까지 게임은 계속 되는 거야.

그 거울 속 성에는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머무를 수 있다고 했어. 5시가 되어도 안 돌아간다면 늑대에게 잡혀 먹힌다고 했단다. 그 말이 하나도 믿어지지 않지만, 고코로는 진지하게 들었단다.  그렇게 거울 속 외딴성에 모인 아이들 일곱 명은 고코로, 마사무네, 스바루, 아키, 후카, 오레시노, 리온 이렇게 일곱 명이었단다. 다들 중학생이고, 학년도 골고루 있었단다. 아키, 후카, 고코로 이렇게 세 명은 여학생이고 나머지는 남학생들이었단다. 그들은 이곳에 처음 알게 된 사이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모두 고코로처럼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했어. 이유는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말이야. 그래서 그들은 아침 9시 이후에 언제든지 그 성으로 올 수 있었단다.

….

마사무네와 스바루는 남학생들답게 전자 게임기와 집에서 안 쓰는 TV 브라운관을 들고 와서 게임기를 설치해서 게임을 했단다. 고코로도 게임을 좋아해서 함께 게임을 하면서 친해졌단다. 고코로는 게임으로 남학생들과 친해지고, 아키, 후카 등 여학생들만의 연대감을 느끼면서 친해졌단다. 그곳에서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어. 다른 곳에서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거울 속 세상에서는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거지. 어차피 거울 밖에 나가면 그들을 만나지 않을 테니 말이야. 예전에 PC 통신이 처음 생겼을 때 유행했던 채팅과 비슷하구나. 서로 모르는 익명의 사람들이 채팅방에 모여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거야. 그곳에 있는 이들이 간혹 오프라인에서 만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 채팅방에서 이야기하고 끝이거든. 그러다 보니 닉네임 뒤에 본모습을 숨기고 자신의 비밀을 더 쉽게 털어놓기도 했단다..

이 소설의 거울 속 세상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한 것 같아. 그리고 책을 읽다 보니,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예상도 되더구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이 모여서 자기들만의 세상에서 서로 대화도 나누고 협력도 하고 게임도 하면서 성장해간다는 스토리그래서 일년이 지나면 비록 열쇠는 못 찾아도 내면으로 부쩍 성장해서 학교에 다시 갈 수 있게 된다는 그런 스토리가 예상되더구나. 그런 예상을 하면서 페이지를 넘겨 갔단다.


2.

아빠의 예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자주 만남을 가지면서, 거울 밖 세상을 이야기하기도 했어. 밖에서는 괴롭힘도 당하고 친구들과 제대로 사귀지도 못했지만 이곳에서는 서로 잘 어울렸단다. 그리고 우연히 한 아이의 학교 이름이 나왔는데, 리온을 제외하고 다들 놀랬어. 왜냐하면 자신이 다니는 유시키나 5중학교였거든. 그런데 밖에서는 다들 모르고 있었다니. 그만큼 여기 모인 친구들은 교우관계가 넓지 않았던 거야.

리온은 제외라고 했잖아, 리온은 하와이에 살고 있다고 했어. 거울을 통해서 그들과 함께 있는 거고. 그런데 리온도 일본에 있었다면 유시키나 5중학교에 다닐 예정이었다는 거야. 그 이야기는 모두 같은 지역에 있는 아이들이었던 거야.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떤 장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서로 알기도 하고, 같이 알고 있는 선생님들도 있었어.

그들은 그곳에서 서로 지내면서 내적 성장을 했단다. 고코로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이젠 자신이 학교에 다니지 않은 이유도 엄마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단다. 엄마는 자신에게 이야기해준 고코로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더욱 고코로의 편이 되어 주었단다. 고코로를 비롯한 거울 속 친구들은 하와이에 있는 리온을 제외하고 다같이 용기를 내어 학교에 가자고 했어. 오랜만에 가는 학교이니까 교실에 갈 용기가 없으면 양호실로 모이자고 했단다. 그 아이들에게 학교에 간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단다.

그렇게 약속한 날, 큰 마음 먹고 학교에 갔으나, 고코로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단다.

교실에 가는 것은 어려워서 양호실에 갔지만 고코로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단다. 그렇게 힘겨운 등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고코로. 거울 속에 들어가 보았어. 그런데 모두들 학교에 갔다고 했어. 그리고 모두들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고 했어. 이게 무슨 일? 아빠는 어느 정도 예상을 했었단다. 이미 거울 속 세상인데 그보다 더 놀랄 일이 일어나지 않을 법이 없겠니. 아이들은 모여서 이 현상에 대해서 분석했어. 어떤 친구가 이야기하기를 평행우주론을 이야기했단다. 이 세상에는 수 많은 우주가 있고, 각자 살고 있는 우주가 다르고 거울 속 세상은 각각의 우주를 연결해 주는 세상이라고 말이야.

그럴 듯한 생각이었으나, 그것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단다. 그럼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답은 쉽게 추측할 수 있을 거란다. 나중에 너희들도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들이 왜 아무도 학교에서 만나지 못했을까? 에 대한 답을 추측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소설의 끝은 예상했듯 거울 밖 세상에 잘 적응하는 그런 아이들이 된단다. 해피 엔딩이지. 약간은 식상한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따뜻한 아이들의 이야기도 나쁘지 않았단다.

우리나라도 학교 직단괴롭힘 문제가 끊이지 않고 뉴스에 나오곤 한단다. 십대 아이들은 아직 뇌가 성숙하지 못해서 그런 나쁜 짓을 할 수도 있다고 이해하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된다고 생각해. 당하는 아이들은 그 상처가 정말 오래갈 수 있으니까 말이야. 엄격한 처벌 조항을 두어서라도 미인간적인 행동을 제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이 소설은 주인공들이 너희들과 비슷한 연령대라서 너희들도 읽어보면 공감을 갖지 않을까 싶구나.

오늘은 그럼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커튼을 친 창문 너머로 이동판매차의 선전방송이 들린다.

책의 끝 문장: 마주앉은 고코로와 아키를 그 빛이 조용히, 부드럽게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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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3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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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정희진 님의 글쓰기 시리즈 3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를 읽었단다. 정희진 님의 이 시리즈는 책 제목을 참 잘 짓는 것 같구나. 1권은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2권은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이번에 읽은 3권은 제목으로 봤을 때는 가장 좋았단다.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편협이라는 단어는 원래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뜻을 가진 좋지 않은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란다. 그런데 책 제목에 의도적으로 썼다는 것은, 그만큼 지은이와 이 책의 정체성을 알 수 있다는 것이란다. 1, 2권을 읽은 이들이라면, 지은이가 읽은 편협한 장르는 여성학과 페미니즘이라 생각할 것이다.

지은이는 자신이 편협하게 읽는 책들은 자신을 소생시키는 책으로 마음의 평화를 깨고 스트레스와 자극을 준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그런 책들이라고 하는구나. 아빠의 책읽기와는 사뭇 다른 책읽기구나. 아빠는 재미있거나 뭔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책을 주로 읽는데 말이야. 정희진 님이 읽으신 책들은 쫌 거리가 있는 책들인 것 같구나. 그래서인지 이번 3권에서 소개해준 책들 27권 중에 아빠가 읽은 것은 단 한 권도 없구나. 1, 2권에서는 그래도 두어 권씩 있었는데, 이번에 읽은 3권에서는 단 한 권도 없다니 아빠의 독서 범위가 얼마나 좁은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기회였단다. 읽은 것은 둘째 치고 책 제목을 들어본 것도 많지 않더구나. 아빠의 독서 범위를 좀더 넓혀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 책에서 소개된 책들 중 몇 권을 리스트에 올려 놓았단다.

지은이 정희진 님은 편협하게 읽고 나서 치열하게 쓰신다고 했단다. 책을 읽고 나서 가볍게 책 리뷰를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또 다른 이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서평을 치열하게 쓰시는 것이지. 서평은 또 하나의 창작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말이야. 그래서 정희진 님의 글은 서평이라고 하지만 책에 대한 소개보다 정희진 님의 생각을 읽는 느낌이었어. 그런데 정희진 님이 치열하게 쓰신 글들이 아빠에게는 읽기 쉽지 않은 글들이라서 천천히 정독하곤 했단다. 그래서 글 속에 숨어 있는 진정한 의미를 캐치하지 못한 경우도 많아. 아빠가 책 읽고 쓰는 것은 서평이라고 말할 수 없겠구나.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기억의 보조 수단으로 쓰다 보니 줄거리 요약이나 간추린 글정도로 해야 할 듯싶구나.


1.

정희진 님은 사회적 약자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신단다. 그 전에도 그렇게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글도 많이 쓰셨고 말이야. 사회적 약자를 약자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단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는 평생 자신을 사랑하는 문제와 투쟁한다고 하더구나. 사회 구성원들이 약자인 그들의 몸을 자꾸 보려고 하기 때문에다른 이들이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할 일은 무엇? 그들의 몸에 대해 적게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하는구나. 그들도 모두 우리와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 생각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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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9)

사회적 약자는 평생을 자신을 사랑하는 문제와 투쟁해야 하는 이들이다. 성별, 인종, 계급, 나이는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사회적 해석이다. 성별, 인종, 계급, 나이는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사회적 해석이다. 몸의 영역에는 쉽거나 작은 실천이 없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을 알고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매일 밤 야식을 두고 사투한다. 타인의 시선을 상대하는 용기, 나이 듦을 인정하는 것, 아픈 상태도 인생의 소중한 부분이라는 인식, 남의 몸에 대해 되도록 적게 말하기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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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드라마 <모범 택시>를 봤단다. 제목은 모범 택시지만, 복수대행서비스라는 말이 붙어 있단다. 법이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흉악범에 대해 대신 복수해 주는 그런 드라마로, 속이 시원해지는 그런 드라마란다. 우리 사회는 흉악하고 비인간적인 범죄를 저질러도 법은 자꾸만 관대해지는 것 같구나. 가끔 뉴스에서 흉악범의 판결 내용을 보면, 말을 잃을 정도로 가벼운 경우가 있어. 피해자들은 그들을 용서하지 않았는데, 법이 용서한 것 같은 기분.

평생 남을 상처를 받은 이들이 가해자를 쉽게 용서할 수 있을까. 아빠가 그런 일을 당해도 절대로 용서를 할 수 없을 것 같구나. 누군가는 용서를 해야 한다고 하고, 실제로 가해자를 용서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뉴스가 나오기도 한단다. 그런데 정말 용서를 할 수 있을까? 그런 피해자들을 곁에서 직접 많이 만나 보신 정희진 님은 용서는 할 수 없다고 했어. 단지 잊혀지는 것이지.. 하지만 평생을 가도 잊혀지지 않는 상처도 있단다. 그런 용서에 대한 솔직한 글이 좋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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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내게 용서는 저절로 잊히는 것이지, 용서를 위해 고민하거나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내겐 용서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스트레스고 참을 수 없는 부정의다. 내가 생각하는 용서는 관련된 사건을 잊는 것이다. 사건을 무시한다.(ignore). 살기 위해 나 자신에게 몰두하고, 그 일을 잊는다. 물론 가해자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고 다시는 접촉하지 않는다. 나의 경우가 일반 법칙이 될 수는 없다. 나의 완벽주의 성향, 결벽증, 비사회성에 상응하는 능력은 없지만, 일중독과 자기 몰입 성향이 용서따위를 잊게 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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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정희진 님은 페미니즘에 대한 책들도 많이 읽으시고 글도 많이 쓰신단다. 이번 책에서도 페미니즘 관련된 책들을 많이 다루셨어. 지은이 정희진 님은 왜 페미니즘에 대해 읽고 쓰실까. 페미니즘이 지은이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준다고 설명하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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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52)

내가 생각하는 지식으로서 페미니즘의 가장 큰 매력은 나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준다는 점이지만, 페미니즘의 정수는 스스로 내파와 파생을 거듭하는 지식이라는 데 있다. 이 변화는 멈출 수가 없다. 왜냐하면 여성의 현실, 그리고 현실의 운동이 끊임없이 언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해 유행을 타는 공부가 아니다. ‘한물가거나’ ‘이제는 필요 없는페미니스트는 있을지 몰라도 페미니즘 자체가 그럴 일은 절대 없다. 이 과정이 진화다. 아직도 혁명과 개량, 진화와 일정을 이분법적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있다면 어쩔 수 없다. 페미니즘은 불편함, 혁명, 폭동, 똑똑해서 미친 여자들의 병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상처럼 인류 문명의 수많은 소산 중 하나이며 진화, 즉 적응해야 하는 인간의 모습을 반영한다.

============================

아빠도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읽어보려고 하지만, 좁은 의미의 페미니즘에 대한 책들은 읽기 쉽지 않더구나. 넓은 의미의 페미니즘으로 재미있는 소설로 직간접적으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그런 책들로 만족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곤 있단다.

...

이 책은 다시 생각해보니 책을 선정하여 그에 맞는 정희진 님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희진 님의 생각들을 이야기해주기 위해서 그에 맞는 책을 고른 것은 생각이 들었단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아빠가 이 서평집을 읽으면서 어렵겠지만 관심이 간 두어 권을 리스트에 적어 두었으니, 언젠가 한번 읽어보려고 해. 그리고 그때 이 책그 책에 대한 부분만 다시 읽어보고 정희진 님의 생각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정희진 님의 글쓰기 시리즈는 모두 5권이란다. 조만간에 4권을 읽어봐야겠구나. 4권의 책 제목은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로 되어 있구나. 이번에는 책이 아닌 영화 이야기인 것 같구나. 역시 책 제목은 또 환상이구나. 영화이야기이니 좀 읽기 편할 것을 기대해 보면서, 오늘 독서 편지는 이만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1656년 스피노자는 다음과 같은 파문 선고를 받았다.

책의 끝 문장: 다시 말해 이 책은 여성들데 대한이야기가 아니라 한국 사회 남성성에 대한 질문으로 보아야 한다.


문학과 지성? 말할 것도 없이 문학(writings)은 인간의 ‘최고의’ 지적 활동이다. 우리는 현실의 고통을 말할 수 없을 때 픽션의 힘을 빌리고자 한다. ("이건 소설로 써야 돼.", "제 이야기를 좀 소설로 써주세요.") 문학은 재현의 재현, 비유의 비유라는 점에서 언어를 생산하는 공장이자 끊임없는 사전(辭典) 활동이다. 문학은 현실에 대해 말하되, 현실을 다르게 보이게 만든다. 하나의 비유는 열 개의 해석을 낳는다. 비유를 통해 기존 개념은 이동하고 분화한다. 전이(轉移), 전의(轉意, 轉義)다. 은유(metaphor)는 meta(over) + phora(carrying)를 합친 단어로서 ‘뜻을 나른다’는 의미다. 시인과 소설가들은 오만할 자격이 있다. - P15

모든 글쓴이들도 나와 같다고 생각한다. 쉬운 글은 있을지 몰라도 쉽게 쓰인 글은 없다. 글쓰기는 체력, 재능, 돈, 정치, 좌절과의 싸움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글을 존중하고, 책을 쓰고 만든 이들을 존경한다. (특히 내게 번역은 어려운 일이다. 번역은 우리말 능력을 시험하는 과정이다.) 비평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타인의 글을 다루려면 자신의 윤리와 정치적 판단에 관한 여러 번의 점검이 필요하다. 이것이 여성학자 사라 러딕이 말한 "비판이 실천적인 개입"인 이유다. - P18

거듭 말하지만 "내 몸은 나의 것이다."가 아니라 "내 몸이 나다." 우리의 정신이 몸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이 바로 나다. 정신은 몸에 속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몸에 대한 생각은 곧 자아관이 된다. 문제는 이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자기 몸을 긍정하기 어려운 사회인데, 과학 기술의 발달로 자아만 팽창한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에는 모든 ‘비극’이 있으며, 동시에 이러한 책이 절실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 P47

미국 정신의학자 어빈 얄롬은 이렇게 위로한다(그가 실존주의자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모든 이들은 혼자 태어나서 혼자 죽는다. 그러나 배에 혼자 타고 있더라도 다른 배들의 불빛을 가까이 할 수 있다면 한결 안심이 된다." 조금 다르게 쓰면 삶의 유일한 위안은 우리 모두 비록 깜깜하고 추운 밤바다를 혼자 표류하고 있지만, 반짝이는 등대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나마 소통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는 이 등대마저 ‘민영화’했고, 모든 불을 꺼버렸다. 인간은 철저히 각자(各自)가 되어 좌충우돌하기 시작했다(다른 말로 하면 "IT, 4차 혁명의 시대를 열렸다"). 혼자라는 상황은 갑을 관계로 이동했다. 혼자임의 조건이 몹시 악화된 것이다. - P86

이러한 과정, 다시 말해 감정의 기계화와 매개화 과정을 거쳐 저자는 감정이 전통적인 의미에서 몸의 생각이라기보다는 재현(emotions –as- representations, 옮긴이의 용어로는 ‘표상’)이라고 본다. 문화 산업은 석화(石化)된 방식으로 추상화된 감정을 사용한다. 추상적 대표적인 예는 연대가 아니라 연민, 동정(pity)이다. 동정하지만 공감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탈감정사회는 대립 없는 사회다. 현대의 문제는 문화적 빈곤이 아니라 감정적 빈곤인데, 문화는 넘치고 대가로 감정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재현된 상품이 된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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