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2
이규정 지음 / 산지니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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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사할린> 2권을 해줄게. 일제시대 사할린은 일본말인 가라후토로 알려져 있었다고 하는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가끔 가라후토라는 말이 나오는데, 사할린과 같은 지명이라고 생각하면 돼. 해방은 되었지만, 나라꼴은 가장 최악의 경우로 흘러갔단다. 해방이 되고 누가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남과 북이 갈리고 왕래도 점점 어려워졌어. 주인공 이문근은 최숙경을 찾기 위해 최숙경이 되돌아 올 수 있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어. 어느덧 그의 나이 서른 다섯 살. 부모님뿐만 아니라, 절친 강화중의 계속된 설득으로 결국 강화중의 동생 복희와 결혼하기로 했어. 그래도 생사를 모르는 최숙경이 있는데, 더 기다려야 했다고 봐.. 10년도 안되었는데

결혼 전 속죄라도 하듯 최숙경의 친정에 처음으로 인사 드리러 갔단다. 이문근과 결혼을 끝내 반대했었잖아. 그래서 한번도 찾아 뵙지 못한 장인어른과 장모님그 분들께 최숙경의 소식을 알리고 잘못을 빌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야. 그리고 만의 하나 최숙경이 친정이 있는 개성에 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하지만 그의 바램은 바램일 뿐이었어. 최숙경의 친정도 최악이었단다. 숙경의 부모님은 몇 년 전에 전염병으로 돌아가셨고, 부잣집이었던 가세도 많이 기울었고, 숙경의 동생들은 일하러 나가고 집은 숙경의 할머니 혼자 지키고 계셨단다. 문근은 차마 숙경의 일을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숙경의 집을 떠났단다.

….

다시 집으로 돌아온 문근. 어느 날 보도연맹에 가입하라고 연락이 왔어. 보도연맹이 무엇인지 짧게 설명한다면, 과거에 좌익이었지만 지금은 전향한 사람들을 증명하기 위해 가입하는 단체였어. 그래야 나중에 무슨 일이 있을 때 좌익으로 몰리지 않는다고 말이야. 그런데 이게 자발적으로 가입하는 것 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고발로 반강제적으로 가입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었어. 문근도 그런 사례였단다. 가입을 거부한다면 자신은 좌익이었고 전향하지 않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거든. 그런데 문근은 좌익도 우익도 아니었고, 자신은 민족주의자라고 생각했어. 도대체 누가 문근을 리스트에 올리게 했을까. 아마 척을 두고 있었던 (1권에서 이야기했던) 그 초등학교 교장이었었을 거야. 문근은 고민 끝에 가입을 거부하는 것보다 가입하는 것이 그나마 나을 것 같아서 가입했단다. 절친이자 학교 동료 선생인 강화중도 똑 같은 입장이었고, 그도 가입을 했어. 강화중의 여동생 복희와 결혼을 얼마 앞둔 1950 6월 하순정말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단다.

1.

전쟁. 북한에서 결국 전쟁을 일으켜 남으로 밀고 내려온 것이야. 해방 5년도 안되어 우리나라는 역사상 최악의 전쟁을 일으키고 말았단다. 어느 날 강화중이 찾아와 이상한 이야기를 했어. 우리나라 경찰들이 보도 연맹에 가입한 사람들을 놀래 끌고가 총살시킨다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지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좌익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가입한 단체인데하지만, 어떤 흉악한 놈의 결정인지 모르겠지만, 그건 사실이었단다. 실제로도 그렇게 죽은 사람들이 엄청 많았어.

이문근도 그날 밤 집을 떠나 일단 피하려고 했단다. 바로 그날 경찰들이 찾아올 줄 꿈에도 몰랐지. 옷도 챙겨 입지도 못하고 경찰서로 끌려간 이문근. 이미 많은 사람들이 끌려와 있었어. 문근은 도망갈 틈을 보았지만 쉽지 않았어. 몇 명 도망가려고 시도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총에 맞고 죽었단다. 그들이 끌려간 곳은 어느 산골짜기그들 앞엔 깊이 파인 구덩이가 있었어. 수십 명씩 총알세례를 받고 죽었단다. 얼마나 억울할까. 하라는 대로 하고, 오라는 대로 왔을 뿐인데, 가족들한테 연락도 못하고 항변 한번 못하고 죽어야 하니까 말이야. 문근은 그 총알 세례에 정신을 잃고 죽은 줄 알았어. 하지만 기적적으로 그는 살아났단다. 그 총알 세례가 문근을 피해갔던 거야. 이렇게 소설뿐만 아니라 실제 그런 무서운 경험을 했던 사람들 중에 이렇게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들이 있었단다. 정말 아프고 부끄러운 역사로구나.

기적적으로 살아난 문근은 무조건 도망을 갔단다. 어떤 절에 들어가서 스님의 도움으로 승복을 입고 승려 행세를 하기도 하고, 미군을 만나 한동안 미군 통역으로 일하고 하고, 인민군 포로가 되었다가 우연히 처남 친구를 만나기도 했어. 그 처남 친구는 이문근의 사연을 듣고 허가증을 주었어. 이문근이 최숙경을 찾기 위해 사할린을 가기 위해 북쪽으로 가겠다고 했었거든. 그의 신분을 보장해는 그런 허가증이었어. 이문근은 그렇게 북으로 가서 함경도 땅까지 갔지만 그곳에서 사할린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어.

방법으로 찾아보려고 평양으로 왔단다. 평양에서 우연히 경성사범학교의 동창과 문근의 친척 형님인 준근을 만났어. 하지만 그들도 사할린으로 가는 방법을 잘 몰랐어. 그나마 가장 좋은 방법이 일본을 통해서 가는 방법이라고 해서, 문근은 다시 부산까지 내려와서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갔단다. 부산으로 가면서도 그는 고향집에는 들르지 않았어. 그는 이미 보도연맹 사건으로 죽은 것으로 되어 있고, 살아 왔다면 다시 끌려가 죽을 수도 있으니 말이야.

2.

문근이 이렇게 동분서주하고 있는 동안 최숙경은 1951년 집에 돌아왔단다. ,,, 엇갈리는 운명문근이 조금만 더 똑똑해서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고향집에 밤에 몰래 다녀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집에 돌아온 최숙경을 기다리고 있던 소식은 문근의 사망 소식이었어. 그렇게 힘들게 오랜 시간을 기다려 집에 돌아온 이유는 문근이었는데, 그가 죽고 없다니삶의 의미가 사라졌단다. 최숙경은 자살 시도를 했다가 실패하기도 했어. 남은 인생 아무 의미도 없이 살다가 1971년 이른 나이에 삶을 마감했단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불쌍한 삶을 살았지만, 아빠가 생각하기에 가장 불쌍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구나.

3.

이젠 사할린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해방 후에도 6만명의 조선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고, 해방이 되고 5~6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5만명 이상이 그곳에 살고 있었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그들은 결국 그곳에서 정착할 수밖에 없었어. 그들은 그곳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았단다.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최악이었어. 전쟁이라니, 같은 민족끼리 전쟁이라니.. 완전히 미쳤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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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특히 조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이야기는 그들 모두 남조선 출신이지마는 남조선 당국에 대하여 심한 욕을 퍼부었다. 6만 명 가까운 조선 사람들을 이 사할린에 팽개쳐 둔 채 전쟁을 일으켜 북침을 하다니, 조국의 통일도 중요하지만 조국이 불행했던 시절에 외지에 끌려나와 온갖 수모를 당하고 있는 조선 사람들을 구해 갈 생각은 하지 않고 전쟁 놀음이나 벌이다니! 해방 전에는 왜놈들로부터 갖은 구박과 수모를 당했더니, 해방이 되자 로스케 놈들이 건너와, 들어온 놈이 동네 팔아먹는다고 오래전부터 살아온 조선 사람들을 얼마나 천대하고 멸시했는가. 왜놈들이 조선을 조센징이라고 멸시했듯이 이놈들도 조선 사람들에 대하여, 까레이 혹은 까레스키, 하면서 천대와 구박을 마음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을 생각하면 최해술은 말할 것도 없고, 나이 젊은 허남보 같은 사람도 울분과 슬픔으로 절로 주먹이 불끈불끈 쥐어지면서 눈물까지 고였다.

특히 조선 사람들이 하나같이 남조선에 대하여 적의를 품게 된 이유는 북조선 사람들의 입김과, 그 입김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는 소련 당국의 영향이 무엇보다도 컸다. 남쪽에서 불법 북침을 했다는 것도 북조선에게 전해진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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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할린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상황에 이상한 사람이 한 명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어. 조선 사람 한 사람이 사할린에 왔다는 거야. 그래, 이문근이 일본에 갔다가 선박회사에 취업한 후 끝내 사할린에 도착한 거야. 사할린에 와서 문근은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서 아내 최숙경을 찾아보았어. 최숙경을 아는 사람들도 만났어. 1권에서도 나왔던 최해술, 박판도이 문근에게 숙경의 소식을 알려주었어.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말이야. 힘들게 왔지만….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방법은 쉽지 않았어. 그는 일단 사할린에 있으면서 돌아갈 길을 알아보기로 했어.

최해술, 박판도 등 사할린에 정착한 이들은 사할린 조선 민족 학교를 세우기로 했는데, 이문근은 이 일에 많은 도움을 주었단다. 그렇게 사할린에 있으면서, 이문근은 조선 귀국을 위해 소련 정부에 탄원서를 보내는 등 방법을 찾았지만, 여기서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어.

..

일본 정부는 사할린에 억류된 일본인들의 국내 귀환을 위해 소련 정부와 협상하기도 했어. 여기에 기대를 하고 일본 정부에 조선인 귀환도 요청했지만, 매몰찬 답변만 돌아왔단다. 이제 너희들 정부가 있으니 그쪽에서 알아서 알 것이라고 말이야. 어느덧 시간은 흘러 1960년에 들어섰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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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

일본에 있는 사할린 억류 귀환 한국인회에서는 혼신의 힘을 다쏟아 일본 정부에 재사할린 조선인의 귀환을 교섭했지만 일본 정부 당국자의 변명을 이러했다.

당신들의 고충이나 간절한 희망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이 일은 정부가 수립되어 당당한 독립국이 된 당신네들의 나라 한국정부에서 맡아 할 일이거나 한국 국민 전체가 나설 일이 아니겠소. 당신들의 소망이 이처럼 절절한데 당신네들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가 왜 말 한 마디 없겠소.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일한 간에 관계가 좀 더 본궤도에 올라 정상 가동되면 당신들의 희망은 보가 전향적으로 고려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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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할린> 2권의 이야기가 끝이 났단다. 소설이 소설로 끝이 아니고 실제 일어난 일들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안타깝고 무능했던 옛 우리 정부를 생각하니 참 답답했단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3권의 이야기도 해줄게

PS:

책의 첫 문장: 1949년 겨울방학, 문근은 화중과 함께 경부선 기차를 타고 개성으로 가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조선동포들이 연명으로 소련 서기장 브레즈네프에게 보낸 탄원서도 헛수고, 김형개가 애지중지 키운 딸로, 자신의 명예는 물론 조선 민족의 자존심과 영광까지를 생각하던 김형개의 꿈도 헛수고, 늦게야 아내를 얻어 인생살이의 또 다른 행복을 맛보겠다던 정상봉의 꿈도 모든 것이 헛수고로 끝나고 말았다.


"나는 북조선 편을 드는 조총련에도 가입하지 않았네. 사실은 무슨 주의, 무슨 주의 그런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거네. 미국과 소련이 없으면 자본주의도 없고 공산주의도 없는 거네. 우리에게는 무슨 주의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하면 사람이 사람답게 잘 살아 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 아니겠는가. 미국의 자본주의는 죄가 얼마나 많으며, 소련의 공산주의 또한 죄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통일이 돼도 나는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그런 통일이 돼야 한다고 보네. 자네 생각은 어떤까?"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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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1
이규정 지음 / 산지니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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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이번에 읽은 <사할린( 3)>이라는 책은 몇 년 전에 녹색평론에서 추천하여 알게 된 책이란다. 슬픈 역사가 가득 담긴 일제 시대 사할린으로 끌려가서 돌아 오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헤어져 끝내 만나지 못한 부부의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고 했어. 아빠가 잘 알지 못하는 역사의 한 쪽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읽어보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단다. 그리고 소설이라고 하니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읽고 싶은 목록에 추가했다가 이번에서야 읽은 것이란다.

일제 시대 강제 징용이라고 하면 일본 땅이랑, 동남아와 중국 등으로 끌려가 전쟁과 위안부로 고생하신 것만 떠올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할린 땅으로 끌려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어. 지금이야 러시아 땅이지만, 당시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사할린의 남쪽 지역을 차지하였고, 그곳에는 많은 탄광에 끌려가 노예처럼 일했던 우리 조상들이 있었던 것이야. 해방과 동시에 그들을 아무도 챙겨주지 않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그 수가 수 만 명에 이루고, 그들의 후예들이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단다. 이 안타까운 일들이 100년도 안된 과거에 일어났던 일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들의 이야기조차 잘 알지 못하고 있구나.

지은이 이규정이라는 분은 대학교수이면서 여러 책을 쓰신 작가이면서,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 등 민주화에도 힘쓰신 분이란다. 그가 1991년 사할린 강제 징용을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기로 마음먹고, 직접 사할린에 취재를 하고, 그 바탕으로 1996 <먼 땅 가까운 하늘>이라는 소설을 출간하셨단다. 그리고 20년이 흐르고 재출간한 것이 바로 <사할린>이란다. 머리말에 쓰신 이규정 님의 글을 읽어보니, 이런 역사관을 가지신 분이라면 존경할만하다는 생각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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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부산의 일본 영사관 앞에 앉힌 위안부 소녀상 문제로 지금도 일본과는 껄끄러운 관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과 한 마디 없이, 10억 엔을 주었으니 이제 아무 소리 말고 소녀상도 철거하라는 일본 당국자를 텔레비전에서 볼 때마다 그 낯짝에 오물을 뒤집어씌우고 싶습니다. 2015년 말에 일본 당국자와 서툰 협상을 벌여 일본에 꼬투리를 잡힌 등신 같은 우리 정부 당국자가 한없이 원망스럽습니다. 우리 정부의 총체적 능력의 한계를 보는 듯한 비애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무능하면 그것은 국가의 위상 추락은 물론, 국가 존망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대한제국 정부의 무능이 결국 나라를 망친 것은 역사의 교훈입니다. 위안부 문제 협상은 반드시 다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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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이규정이라는 분을 처음 알게 되어 이규정이라는 분을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더니, 안타깝게도 2018년 돌아가셨다고 하는구나. 뒤늦게 이규정 님의 명복을 빌어보았단다.

1.

모두 세 권으로 이루어진 <사할린>. 그 중에 오늘은 1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일제 시대 경성사범을 다니던 이문근은 인근에 있는 여자 고등학교에 다니는 최숙경이라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대시를 했고, 최숙경도 이문근을 마음에 들어 했어. 이문근과 최숙경은 결혼을 약속했지만, 개성의 잘나가는 부잣집이었던 최숙경의 부모님이 반대를 했단다. 시골 출신 이문근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지. 최숙경은 부모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이문근과 함께 절에서 조용히 결혼식을 올리고, 이문근의 시골집에 와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단다. 그런데, 이문근이 담을 쌓는 일을 하다가 담이 무너지면서 중병에 걸리고 말았어. 이문근의 병 치료를 위해서 돈이 필요했는데, 조선 땅에서는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자원하여 사할린으로 향했단다. 그때가 1943년이었다.

당시 사할린은 강제 징용으로 끌려간 사람도 있었지만, 최숙경처럼 일제시대 말기에 혹해서 짧은 기간에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원해서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는구나. 당시 고등학교까지 다닐 만큼 배운 사람이고, 똑똑했던 최숙경인데 사할린을 가더라도 좀더 알아보고 갈 일이지…. 비극의 서막은 그렇게 시작했단다.

사할린에 도착한 숙경은 비행장에서 일하다가 탄광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탄광 노동자의 밥 짓는 일을 했단다. 약속한 돈보다 훨씬 적은 돈을 받으면서 말이야. 그렇다고 돌아갈 수 없는 일.. 그 돈이라도 이문근의 집으로 보내고 자신은 어렵게 생활했단다. 조금만 참으로 다시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최숙경이 보내준 돈은 시댁 생활의 밑천이 되었고, 이문근도 건강을 되찾아 다시 학교에 복학할 수 있게 되었어.

사할린에는 많은 탄광들이 있었고, 각 탄광에는 강제 징용으로 끌려온 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있었어. 그들은 학교에서 집에 오는 길에 끌려오기도 하고, 밭에서 일하다 끌려오기도 했어. 그렇게 끌려온 그들은 온갖 착취를 당하며 살았단다. 일본인 관리인들에게 폭행당하여 죽기도 하고, 의료 시설이 없어 병에 걸려 제대로 치료 받지도 못하여 죽기도 하고, 탄광이 무너져 땅속에 갇혀 죽기도 했단다.

….

지은이가 이 소설을 쓰기 전 직접 취재를 하고 쓰셨다고 하니, 이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이 이름은 다르겠지만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프구나. 만약 아빠가 그렇게 끌려가서 돌아오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니 끔찍하기도 하고몇몇 등장인물들을 소개해줄게.

김형개.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집에 가는 길에 잡혀서 집에 연락도 하지 못한 채 끌려온 곳이 사할린이었단다. 사할린에 와서야 편지로 집에 소식을 알렸어. 고향에 두고 온 애인 점옥이에게 알리지 못했는데, 그 점옥이 또한 정신대로 끌려갔다고 소식을 듣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김상문, 김상식, 김상주 삼형제는 독립운동가인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다른 이들보다 빠른 1933년에 사할린 우글레고르스크에 정착했어. 우애가 깊은 그들은 사할린에서 함바식당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갔단다. 그들은 집안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삼형제의 아이들 중에 가장 똑똑했던 김상주의 아들 종규를 도쿄로 유학 보내기로 결정했단다. 그래서 김상주 식구들은 도쿄로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그것이 그들 형제와 마지막이었어. 해방 이후 김상주 식구들은 어렵게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사할린에 있는 가족들은 돌아오지 못했거든

2.

드디어 해방이 되었단다. 사할린에도 그 소식이 전해졌어. 그리고 그 소식과 함께 감쪽같이 사라진 일본 사람들. 탄광 노동자들은 고향에 돌아갈 걱정보다 그동안 받지 못한 임금 걱정이 앞선단다. 그리고 그들의 귀향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까? 일본은 지네 나라 챙긴다고 거들떠 보지도 않았단다. 언제는 한 국민이라고 하더만, 이제 와서는 비일본인 취급이었어. 하기야 자신의 국민이라면 그렇게 혹사시킬 수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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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이것을 다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최초의 각서(SCAPIN 822)에 이미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구일본인 점령지의 일본인 귀환 및 일본으로부터의 비일본 귀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및 동국의 지배하에 있는 영토로부터의 일본인 포로 및 일반 일본인의 귀환과 더불어 북위 38도 이북의 북조선 재일 조선인의 귀환에 관하여 본 협정을 체결한다.”

이러한 협정을 보면 사할린에 있는 조선인의 귀환은 처음부터 귀환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게다가 소련 지배하의 사할인 여러 항구에서 일본 귀국선에 승선시키는 일체의 권한과 책임은 소련관헌에게 있었다. 일본의 강제연행에 의해 사할린까지 끌려온 수많은 조선인들은 당연히 일본 정부가 책임을 지고 조선에까지 귀국시켜야 함에도 일본은 이를 깨끗이 외면했다. 패전 전까지만 해도 조선인을 법적으로는 일본인과 같이 보았고, 국적은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이었다. 그것뿐인가. 종전 직후 사할린의 조선인들은 연합군 총사령부로부터 일본 국적을 가진 비일본인으로 취급되어 전범자로 처벌된 사례까지 있었다. 그러니 당시의 조선인은 이리 걸면 벌받아야 할 일본인이었고, 저리 걸면 절대로 귀국 대열에 끼지도 못하는 특수 일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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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방 조국이 그들을 챙길까. 해방은 했다고 하지만, 어수선한 국내 분위기에 남북으로 나뉘어지려는 혼란멀리 사할린의 사람들을 챙길 이성들이 없었어. 그렇다고 러시아 사람들이 그들을 도와줄까? 그들 눈에는 일본인이나 조선인이나…. 다 이방인. 결국 사할린 사람들은 각자 도생할 수 밖에 없었단다. 최숙경도 함께 있던 말숙과 함께 사할린을 떠났단다. 최숙경은 일단 일본으로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어. 다행히 일본인들 틈에서 일본행 배를 탈 수 있었단다.

해방이 되고 여러 탄광들에서는 무서운 일들이 일어났단다. 어떤 탄광에서는 해방 소식을 먼저 접한 일본 경찰들이 조선인들을 구덩이에 몰아넣고 모두 총살해 버리는 사건도 있었단다. 이 사건은 극적으로 살아난 최해술이라는 사람에 의해 알려졌어. 최해술은 민족운동가인 아버지가 경찰에 잡힌 다음,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징용을 자원해서 사할린에 왔던 것인데, 이렇게 극적으로 목숨을 구하게 된 거야. 하지만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할린에 발이 묶이고 말았단다. 또 다른 탄광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질 뻔했는데, 그곳에서는 다행히 착한 일본인이 한 명 있었어. 이시무라라는 사람으로 전쟁 전에 천주교 신부였어. 이시무라는 평상시 알고 지내던 조선인 천주교 신자인 정상봉과 김형개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려주었고, 정상봉과 김형개가 조선인 노동자들에게 알려주어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단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사할린을 벗어날 수 있을까.

3.

조선에 있는 최숙경의 남편 이문근의 이야기를 해줄게. 이문근은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했단다. 해방이 된 이후 최숙경이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걸고 있었어. 그런데 오히려 해방이 된 이후 최숙경의 소식이 끊겼어. 그리고 돌아가는 국내 정세가 답답했단다. 나라는  둘로 쪼개졌지. 자신이 존경했던 민족주의자들이 하나 둘 암살당했지일제시대 그 모진 세상도 이겨내신 분들인데 말이야. 해방된 지 이삼 년이 되어도 최숙경의 소식이 없자, 부모들은 최숙경을 잊고 재혼하라고 성화였단다. 하지만 이문근에게 최숙경이 어떤 사람인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하고, 자신의 병을 고치겠다고 사할린까지 자원해서 간 사람 아닌가. 인간의 도리가 아니지끝내 혼자 살더라도 끝까지 기다려야지. 이문근은 동료 선생님 중에 자신과 뜻이 같고 마음도 통하는 강화중이라는 선생님이 있었어. 이문근과 강화중은 교장 선생님한테 찍혀서 신변의 위협을 받는 테러를 당하기도 하고, 별 이유 없이 경찰서에 불려가기도 했단다. 경고이자 협박이었지나라와 학교 교장이 하는 말에 고분고분 잘 따르라고 말이야. 이문근은 과연 최숙경을 만날 수 있을까. 2권에서 더 이야기해줄게.

해방 정국을 배경으로 한 책을 읽다 보면, 자꾸 속상하고 화가 나더구나. 왜 피해국인 우리나라가 둘로 갈려야 했는가 말이야. , 억울하고 속상하고지금 억울하고 속상해도 과거가 바뀌지는 않지만, 그 때 잘려진 분단이 너무 오래가는구나. 오늘은 이만 할게.

PS:

책의 첫 문장: 이렇게 순 한문으로 된 포창문의 주인공 경주 최씨는 철환의 양모였다.

책의 끝 문장: 어디선가 컹컹컹 개 짖는 소리가 식은 밤공기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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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그러니까 보통 우리가 운동이라고 하면, 물체가 움직이는 위치를 계속 눈으로 추적하면서 위치가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건 우리가 위치를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만약 위치를 알 수 없는 대상에 대해서는 운동을 어떻게 기술할 수 있느냐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그 대상으로부터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것만 가지고서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는 건데, 원자의 경우에는 그게 바로 이런 숫자들이라는 겁니다.


(47-48)

본다는 것은 빛이 물체에 부딪혀 튀어나온 후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빛이 물체에 부딪히는 공안 교란이 전혀 없을 수는 없어요. 물론 대부분 물체는 너무 무거워서 빛에 맞더라도 별 영향을 받지는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죠. 아이스크림을 맛 볼 때에도 아이스크림을 교란하지 않을 방법이 없는 것처럼, 어떤 물리량일지라도 측정을 하려면 그 대상을 아주 조금이라도 교란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60)

관측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그 존재 여부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은 과학의 기본 전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보지 않은 걸 믿지 않는 거죠. 이게 그냥 과학자들의 믿음 같은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아요. 양자역학, 아니 우주가 그렇게 굴러간다는 겁니다. 과학자들도 이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무슨 관념론 같잖아요. 사실 처음엔 저도 거부감이 좀 있었습니다. 무언가 우리의 의식이나 의지 같은 게 거기에 관여하는 것 같은 느낌이 약간 있어서 그래요.


(76)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양자역학이 이상한 것은 단지 아직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기 때문이다. 우주는 결정되어 있는데, 아직 우리가 모르지만 우주는 아미 알고 있는 무엇인가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것을 알게 되면 양자역학의 측정문제 따위는 필요 없다는 거죠.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모르는 그 무엇을 숨은변수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숨은변수라는 말의 의미를 아시겠죠? 우주에는 우리가 모르는 아직 숨어있는 그런 것이 있는데, 이것이 결정론으로 된 것이라는 겁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숨은변수를 찾는 것뿐이죠.


(89)

하나는 국소성이고 다른 하나는 실재성입니다. 말이 무척 어렵죠? 하나씩 풀어봅시다. ‘국소성이라는 건 빛보다 빠른 정보 통신이 가능하지 않다는 겁니다. 상대성이론의 가정을 말하는 거지요. ‘실재성은 아인슈타인이 이야기한 대로 측정하기 전에 물리량이 결정되어 있다는 겁니다. 국소성과 실재성을 가정하면, 이것이 아마도 아인슈타인이 생각한 그런 숨은변수이론이 아니겠냐는 생각입니다.


(121)

실체(實體)나 실재(實在)라는 단어도 상황에 따라 어려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종교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또는 어떤 철학적 배경이 있는지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겁니다. 과학자들이 실재성 논쟁에서 염두에 두는 것은 오직 물리량이 측정 전에 정의되어 있으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선 물리량으로 표현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없어요. 측정하기 전 물리량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을 두고서 실제로 존재가 없는 거냐고 물으면 그건 다른 문제라고 답해드리겠습니다. 존재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잖아요? 빨간 알약인지 파란 알약인지 전혀 알 수 없을 때, 적어도 알약은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 적어도 색은 존재하는 것인 것 하는 질문을 할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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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7)

19세기의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전 세계 물리학자들에게 가장 큰 크리스마스 선물을 선사한 것이다. 그의 이론은 1901 1월에 독일의 유명 학술지 <물리학연보>에 게재되었는데, 이 논문에서 막스 플랑크는 자신이 도입한 상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이 상수는 에너지와 시간이 곱해진 단위를 갖고 있으므로 에너지요소 hv와 구별하기 위해 기본작용양자(elementary quantum action) 또는 작용요소(element of action)라 부르기로 한다.”

이로써 1900 12 14일은 양자혁명이 촉발된 날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그러나 정작 플랑크 자신은 E=hv가 고전물리학 체계를 송두리째 바꾸리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47)

막스 플랑크는 통계적 방법을 이용하여 고정된 에너지 요소를 진동자에 할당하면서 그 물리적 의미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은 플랑크도 수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원자나 분자가 실제로 존재한다 해도 그는 에너지가 복사와 물질 사이에서 연속적으로 흐른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을 것이다. 플랑크는 복사 공식을 유도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에너지가 양자화되어 있다는 발상을 처음 도입했지만, 그의 강연록이나 논문 어디를 뒤져봐도 이 사실이 분명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


(62)

러더퍼드는 실험 결과를 면밀히 분석한 끝에 원자 질량의 대부분은 중심부에 있는 원자핵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보다 훨씬 가벼운 전자들이 마치 태양계의 행성처럼 그 주변을 공전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모형에 따르면 원자의 내부는 거의 텅 빈 것이나 다름없었다. 요즘 출간되는 물리학 관련 서적을 보면 원자의 내부 구조를 그림으로 표현할 때 러더퍼드의 태양계 모형을 그려 넣곤 한다. 궁극적으로 맞는 모형은 아니지만, 원자의 구조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이것만큼 적절한 그림을 찾기 어렵다.


(110)

그 후 폴 디랙은 전자의 스핀 방향이 두 가지이기 때문에 원자의 각 궤도에 두 개의 전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이론을 제안했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궤도에 들어가는 두 개의 전자는 스핀 방향이 반대여야 한다는 뜻이다. 스핀이 반대인 한 쌍의 전자들이 짝을 이루어 궤도를 채우면, 그 궤도는 더 이상 다른 전자를 수용할 수 없다.

이것은 이론물리학의 커다란 진보였지만, 여전히 문제점은 많이 남아 있었다. 고전물리학에서 팽이처럼 자전하는 물체의 자전축은 임의의 방향을 향할 수 있는데, 전자의 자전축은 외부 자기장이 걸렸을 때 왜 두 가지 방향으로만 나타날까? 이런 제한 조건이 전자의 양자적 특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심증만 있을 뿐 그 누구도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135-136)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생각을 요약하여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내왔다.

양자역학은 매우 인상적인 이론이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양자역학이 물리적 세계를 정확히 예견한다 해도, 자연의 비밀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신은 주사위놀음 같은 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은 탁월한 천재성과 직관으로 양자역학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결국에는 양자역학을 가장 극렬히 반대하는 쪽에 서게 되었다. 보른은 아인슈타인의 냉담한 반응에 크게 당황했다. 그 뒤 물리학계는 양자 수준에서 실체란 무엇인가?’를 놓고 과학 역사상 가장 격렬한 논쟁을 벌이게 된다.


(147)

많은 부분에서 의견이 엇걸렸지만, 하이젠베르크는 보어와 자신이 같은 결과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안개상자 속에서 나타나는 전자의 궤적처럼 지극히 간단한 현상조차 다루기 어렵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행렬역학에서는 궤적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반면에 파동역학은 시간이 흐를수록 넓게 퍼지는 물질파의 개념을 이용하여 안개상자 속을 지나가는 전자의 궤적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개상자 속에서 전자가 남긴 궤적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전자가 입자라는 주장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었다.


(153)

아인슈타인은 그 점을 인정하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물론 물리학 이론의 본분은 관측 가능한 양을 예측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도 알다시피 관측이라는 것은 매우 복잡한 과정입니다. 우리가 관측 장비 안에서 또 다른 사건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관측 장비의 내부에서는 또 다른 과정이 진행되고, 이것이 복잡한 단계를 거쳐 관측자에게 인식되는 것입니다. 순수한 자연현상에서 뇌의 인식 작용에 이르는 이 모든 과정으로부터 우리는 자연이 작동하는 방식을 알아내야 하며, 현실적인 언어로 자연의 법칙을 서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무언가를 관측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158)

여기서 하이젠베르크의 설명을 들어보자

“”현재를 정확히 알면 미래를 예견할 수 없다는 것은 고전물리학의 결론이 아니라 가정이다. 현재를 정확히 아는 것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관측된 모든 것은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결과가 아니라 수많은 가능성들 중 하나가 우연히 선택되어 나타난 것이다. 양자역학의 통계적 특성은 부정확한 지각(知覺)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므로, 우리가 인식하는 통계적 세계의 저변에 진짜세계가 숨어 있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런 식의 가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물리학의 본분은 관측된 사이의 상호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좀 더 정확히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즉 모든 실험과 관측은 양자역학의 법칙을 따른다. … 그러므로 양자역학은 인과율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포한 최후의 법정이다. 그 이상의 판결 기관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175-176)

보어는 이렇게 말했다.

양자역학은 고전물리학의 개념들을 원자 규모에 적용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비로소 그 특성을 드러낸다. 그런데 관측장비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 고전적인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양자역학에서는 매우 생소한 결과들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


(182)

실증주의든 실용주의든 간에, 보어는 명백한 -실존주의자였다. 그는 자신의 관점을 정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양자역학은 관측 장비가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의 물리적 실체에 대해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으며, 앞으로 이론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감춰진 실체의 지금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다. 일상적인 물리학적 관점에서 말하는 독립적 실체는 눈앞에 나타난 현상이나 관측 방식과 무관하다.”


(263)

1947년에 오펜하이머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을 계기로 물리학자들은 죄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깨달았다. 다른 지식은 모두 잊어버려도, 이것만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338-339)

서버는 이것이 말도 안 되는 생각임을 인정했다. 전하가 분수인 입자가 존재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겔만은 서버가 찾는 것이 완전히 어불성설이라며, ‘코크(quorks)’라는 이상한 단어를 갖다 붙였다. 그 뒤 이어진 강연에서 이 단어를 몇 차례 언급하기도 했다. 서버는 겔만이 지어준 이름을 쿼크(quirk, ‘기발함이라는 뜻의 명사)’로 알아듣고, 분수 전하가 존재한다는 것이 그만큼 말도 안 되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345)

자발적 대칭성 붕괴는 고체물리학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양자장이론이나 입자물리학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었다. 대부분의 이론물리학자들은 스스로를 자연의 가장 근본적인 단계에서 물리학적 원리를 찾아내는 순수주의자로 생각했기에, 고체물리학들을 한 수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고체물리학을 쓸데없이 복잡하기만 한 시스템을 몇 개의 가정으로 단순화시키는 작업쯤으로 생각했다. 머리 겔만도 고체물리학을 너저분한물리학이라고 비아냥거리곤 했다.


(417)

새뮤얼 팅과 버튼 릭터의 발견이 알려진 뒤 물리학자들은 소립자가 두 종류의 세대(generation)’로 존대한다고 생각했다. 각 세대는 두 개의 렙톤과 두 개의 쿼크로 이루어져 있고, 그 밖에 이들 사이에서 힘을 매개하는 매개 입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입자의 족보가 완성될 듯했다. 전자와 전자뉴트리노 그리고 위쿼트와 아래쿼크는 제1세대에 속하고, 뮤온과 뮤온뉴트리오, 맵시쿼크와 야릇한쿼크가 제2세대에 속한다. 1세대와 제2세대 입자들은 일대일로 대응되며, 세대 간의 차이점은 질량뿐이다. 그 외에 광자는 전자기력을 매개하고 W 입자와 Z 입자는 약학 핵력을, 색전하를 갖는 글루온은 쿼크들 사이에서 강한 핵력을 매개한다.


(434)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물질은 대부분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의 중심부에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핵이 자리잡고 있으며, 파동이면서 입자이기도 한 유령 같은 전자가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또한 양성자와 중성자는 위쿼크와 아래쿼크로 이루어져 있다. 쿼크와 전자, 전자뉴트리노는 스핀이 1/2인 페르미온이며, 이들은 표준모형에서 ‘1세대 물질 입자에 속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물질세계를 서술할 때에는 이 세 종류의 입자로 충분히다.


(438)

이 모든 체계의 저변에 신비하게 깔려 있는 것이 바로 힉스장(Higgs field)이다. 힉스장은 우주 공간의 진공 속에 골고루 퍼져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질량이 없는 입자가 힉스장(또는 힉스 응축물’)과 상호작용을 하면 질량을 갖게 되는데, 이때 획득한 질량은 입자와 힉스장 사이의 결합강도(coupling)에 따라 달라진다. 힉스장의 장 입자는 스핀=0인 힉스 보존으로, 표준모형에서는 모든 입자에 질량을 주여하는 신의 입자(God particle)’로 알려져 있다.

헤라르트 토프트는 자신의 저서에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힉스 입자는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지만 힉스장의 존재는 모든 곳에서 느낄 수 있다. 만일 힉스 입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표준모형의 대칭성이 너무 커서 모든 입자들이 거의 똑같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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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통권 179호 - 2021년 7월~8월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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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녹색평론 179 2021 7~8월호를 읽었단다. 녹색평론에서 창간 이래 계속 경고했던 기후변화에 대한 대처를 하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보고 있는 올 여름인 것 같구나. 세계 곳곳에서 대홍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사상 최고의 기온을 찍은 더위로 난리고, 우리나라도 예년과 달리 짧은 장마와 함께 일찍 시작한 무더위는 끝을 모르고 극성을 부리고 있으니 말이야. 이런 일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심해질 테니 더욱 걱정이구나. 진작에 기후변화에 온 세계 사람들이 대처를 했어야 했는데지금 와서 후회하느니 지금이라도 늦었지만 노력하면 좋겠지만, 말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인류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무슨 일을 하더라도 제대로 된 방향으로 일을 추진해야 하는데, 가장 쉬운 방향으로 하는 것이 안타깝구나. 탄소중립을 위해 재생 에너지원을 사용한다고 농촌마다 깔아놓은 태양광 전지가 대표적인 예란다. 농업과 태양광 전지는 상극인 거야. 태양광 전지를 하려면 농업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말이야. 우리는 죽어가는 농업도 살려야 하는 의무가 있거든. 뿐만 아니라 산을 깎아서 태양광 전지를 깔아 놓은 경우도 있는데, 산도 죽이고 폭우가 한번 오면 태양광 전지도 쓸려 나가고미관상 보기도 좋지 않고 말이야. 태양광 에너지는 그런 곳에 설치하는 것이 아니고, 고속도로 변이나 철도변 못쓰는 땅에 설치하는 것이 효율적인 것이야. 이건 아빠도 예전에 다른 책에서 본 내용이란다. 유럽의 태양광을 앞서 개발하는 나라들이 고속도로변에 태양광을 설치했다고 봤거든그걸 처음 봤을 때는 참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어. 못된 것들은 선진국 것을 잘 따라 하면서 이런 건 또 왜 안했을까? 어떤 사람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것일까. 참 안타까운 일이구나.

얼마 전에 전국에 있는 나무들에 베어지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단다. 이런 일이 진보 진영이 정권을 잡고 있던 시기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일까. 아빠는 무슨 사연이 있을 거라고 이해해 보려고 했단다. 하지만 탄소 중립을 위해서 베어버린다고 하니 더욱 이해가 힘들었단다. 탄소 중립을 위해서라면 나무를 심어야지, 나무를 베어 버린다고? 어떤 연구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30년된 나무들은 탄소 중립에 도움이 안되고 어린 나무들이 탄소중립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나? 그래서 30년된 나무들을 베어버리고 다시 나무를 심는다고언뜻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 일이로구나. 조금만 더 살펴보면 30년된 나무들이 더 많은 산소를 만들고 이산화탄소를 없앤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데 말이야. 어떻게 결정된 것인지 모르겠구나. 지금이라도 국민청원을 해서 이 일을 막아야 되는 거 아닌가 싶구나.

….

이런 무대뽀 개발의 역사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란다. 많은 환경 단체와 시민 단체가 반대했던 새만금 간척 사업. 아빠는 새만금 간척 사업을 어렸을 때부터 들어본 것이라, 이미 다 끝난 줄 알고 있었단다. 하지만 여전히 진행 중이고 언제 끝날 지  모른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단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아직 언제 끝날지 모를 일이고,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갈 지 모른다면, 지금이라도 복원을 하든, 그것이 안되면 현 상태에서 멈추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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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새만금 간척사업은 유사 이래 우리나라 최대의 토건사업으로 30년째 진행 중인 사업이다. 2050년까지 사업을 계속한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의 계획대로 새만금사업이 진행된 역사가 없다. 앞으로 50년이 걸릴지 10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현재 새만금사업은 인간의 탐욕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사업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최초에는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이후에는 동북아 경제 중심지로, 한중 경협특구로, 현재는 그린뉴딜 1번지로,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로, 그동안 제대로 된 개발 없이 새만금사업은 표류해왔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전북도민들의 탐욕을 부추기고 기대감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업이 계속되는 한 시민사회의 새만금살리기 활동도 계속될 것이다. 새만금 살리기운동의 짐이 미래세대에게로 계속해서 이어질 전망이다. 개발과 성장 중심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인간과 자연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평화로운 새만금이 언제 온 수 있을지, 걱정과 함께 기대를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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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서는 하는 일들은 대부분은 엄청 큰 돈이 들어간다. 물론 돈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야. 아빠가 하고 싶은 말은 나라에서 어떤 큰 사업을 하겠다고 할 때, 그것도 좋은 의도로 하겠다고 할 때는 좀더 신중했으면 좋겠다는 거야. 돈도 많이 들어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니 처음 시작 단계에서 좀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좀더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그렇게 결정하라는 것이란다. 국가 대형 정책에는 국민들이 의견을 듣고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단다.


1.

녹색평론을 만드시고 키우신 김종철 님께서 돌아가신 지 어느덧 1년이 되었단다. 늘 그렇듯 1년이라는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가는구나. 갑작스런 김종철 선생님의 비보에 놀랬던 것이 엊그제 같았는데, 1년이 흘렀더니김종철 선생님께서 그렇게 갑자기 가시고, 녹색평론이 제대로 갈까, 걱정을 했으나, 녹색평론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담론 그대로 잘 이어지고 있어 다행이구나. 하지만 여전히 김종철 선생님의 부재는 녹색평론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커다란 손해로구나. 이번 녹색평론 179호에서는 김종철 선생님 1주기 기념으로 그의 사상에 대한 글들이 여럿 편 실려 있단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 옛날부터 오늘의 이 엉망인 세상을 예견하였다는 점이 놀랐고, 당시 그의 말을 따라 세상이 움직였다면, 오늘날 기후 위기나 전염병 팬더믹이 오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어. 환경, 농업, 민주주의그가 지난 수십 년간 이야기한 것들의 핵심적인 말들이란다. 녹색평론 창간사부터 농업 중심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셨지. 남들 모두 농촌을 떠나 도시가 가는 모습을 모두 얼마나 답답해 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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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농민 중심의 민중 자치는 근본적으로 흙(지구)과의 건강한 관계를 기초로 한다. 그것은 농민이 볼 때 가장 낮은 곳에 있는 흙이 만물을 살려내는 기본 바탕임을 직관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한 톨의 곡식처럼 한 줌의 흙도 소중하다. 이런 겸허한 자세가 전제되지 않으면 공동체는 어렵다.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을 실천할 수 있어야”(<녹색평론> 창간사) 좋은 삶이나 공동체의 전망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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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를 이런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그것도 서울대 영문학과라고 하는 우리나라 최고 대학에 입학한 그를아직 그의 삶을 그린 평전이나 자서전이 출간되지 않았는데, 그의 삶을 그린 책이 나오면 한번 읽고 싶더구나. 그에게 영향을 준 것이나 준 사람이 많이 있을 텐데, 이번 녹색평론 179호에서 소개된 사람 중에 낯익은 이가 있었단다. 몇 달 전에 읽은 올가 토카르추크의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에서 소개되었던 시인 블레이크였단다. 아빠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책에서 시인 블레이크를 처음 알게 되었다고 했는데, 김종철 님도 그 시인에게 많은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구나. 다시 시인 블레이크라는 사람이 궁금해지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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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시인 지망생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1965년 서울대 영문학과에 입학하는데 영문학에 큰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선생의 문학론집 <대지의 상상력>(2019) 서문에 따르면, 서양적인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 그리고 영어를 익히면 큰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 같다는 맹목적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영문과의 한 연구실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줄 강력한 언어와 만납니다. “새장에 갇힌 한 마리 로빈 새는/온 하늘을 분노로 떨게 한다. / 주인집 대문 앞에 굶주려 쓰러진 한 마리 개는 / 제국의 멸망을 예고한다.” 다름 아닌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였습니다. 그날 이후 영문학도는 블레이크의 근원적 상상력과 철저한 민중성, 그리고 예언자적 풍모(정직성)에 사로잡힙니다. 선생이 보기에 블레이크는 민중적 전통에 입각해 억압적 부르주아체제에 대하여 가장 근본적인 비판에 도달한 근대 최초의 지식인이자 사상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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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선생님의 글과 사상을 읽다 보면 하나하나 마음에 새겨 할 것들이 많았어. 이 지구에서 우리가 오랫동안 생존하기 위해서는 다같이 가난하게, 하지만 품위 있고 행복하게 살아가자고 하시는 말씀. 언제부터 왜 사람의 유전자에 욕심과 탐욕이 새겨져 버렸을까. 그로 인해 스스로 삶의 터전을 망가뜨리면서까지 그 욕심을 채우는 종족이 되어 버렸을까. 김종철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공빈론은 공감이 가면서, 실천하기 어려운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빠를 포함한 세상 사람들의 욕심과 탐욕의 DNA가 너무 강력해서 말이야. 그래도 마음으로는 계속 그런 삶을 생각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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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김종철 선생은 가난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다. 그것은 물론 물질적 결핍이 아니라 깨끗하고 품위 있는 가난으로, 그런 가난이야말로 우리의 인간성을 고양시키는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물 마시고 나물 먹고 그러면서 달을 희롱하는 따위의 안빈낙도하고는 다르다. 선생이 말하고자 한 것은 늘 어울려 일하고 즐기는 삶의 중요성이었다. 물론 우정과 환대에 기초한 그런 삶을 꾀하더라도 생태학적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 가난은 그 조건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의미에서 필수적이다. 말하자면 공생공락의 혹은 공생공락을 위한 공빈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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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이번 녹색평론 179호는 김종철 선생님의 글과 생각에 관한 글들이 있어 좋았단다. 그렇게 그의 1주기를 그리는 특집도 좋았고 말이야. 여전히 그의 부재가 믿기기 않지만 말이야.


2.

오늘날 스마트폰과 인터넷이라는 편리함을 우리는 많은 정보를 얻고 있다고 생각한단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란다. 하지만 더 많은 정보를 우리는 누군가에 주고 있단다. 여기서 말하는 누군가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회사야. 물론 우리나라의 네이버나 다음 같은 회사도 마찬가지이고알게 모르게 우리는 감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거야. 하지만 그 편리함을 이기지 못하고 오늘도 열심히 스마트폰을 터치하고 있구나. 아빠는 그 동안 편리함을 얻고 우리의 정보를 주는 것이 윈윈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이번 녹색평론에서 감시자본주의에 대해 정형철님은 좀 다르게 생각하시는구나.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고객은 우리가 아니고, 광고주들이라고 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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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여기서 주의할 점은 감시자본의 고객은 많은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사용자인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마땅히 우리 자신이 고객의 지위를 누려야 할 것처럼 생각하지만 감시자본의 고객은 따로 존재한다. , 감시자본의 고객은 사용자의 행동잉여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만들어진 맞춤형 광고를 사가는 광고주이다. 구글은 사용자의 서비스 개선에도 데이터의 일부를 활용하지만 이보다 훨씬 많은 양의 데이터를 광고에 활용한다. 조금 거칠게 표현하면 구글과 같은 감시자본에게 사용자는 행동잉여 데이터라는 원재료를 무상으로 공급해주는 자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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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감시자본은 우리의 경험과 행동을 데이터화하여 도구화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전혀 관심 갖지 않는다. 감시자본의 대상이 되는 순간부터 사용자 개인은 인간으로 존재하지 않고 데이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극단적 무관심과 타자화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여기서 말하는 극단적 무관심이라는 것은 감시자본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주체인지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같은 의미에서 감시자본주의하에서 우리는 자유의지와 존엄한 가치를 지닌 인간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감시자본의 입장에서 우리는 그저 매 순간 구글의 검색창에 정보를 입력하고 페이스북의 좋아요를 누르며 인스타그램에 자신해서 사진을 올리는, 생체정보를 지닌 유기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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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들이 틀린 말들은 아닌데,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너무 극단적으로 평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나. 그래도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선한 기능도 있고, 그것으로 행복과 기쁨의 호르몬이 만들어지는 것도 사실이긴 한데그저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내가 좋아요를 클릭하고 구글 검색 창에 검색어를 입력한 것들이 데이터화되어 이용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던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냥 너희들과 소통하고, 새로운 지식을 찾는데 지금처럼 디지털 기기들을 잘 사용해 보련다.


3.

우여곡절 끝에 도쿄 올림픽이 개최되었단다. 후쿠시마의 안전성을 온 세상에 알리고 부활해 보겠다는 의지가 담긴 일본의 뜻과 달리, 올림픽은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제대로 되는 것은 없고, 일정에 따라 운동 경기만 펼쳐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구나. 처음부터의 후쿠시마의 안전성을 알리겠다는 일본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지. 후쿠시마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니 말이야. 그것이 숨긴다고 숨겨지고 가린다고 가려지겠니, 두 손으로 태양을 가리는 격이지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처하는 일본 정부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한 글도 이번 호에 실려 있었어. 이와 관련된 글은 자주 실리는데, 이번에 올림픽에 맞춰 다시 한번 실은 것 같구나.

<야생초 편지>의 지은이로 유명한 황대권 님은 감옥에서 나오신 후 조용히 보내려고 했지만, 그가 정착한 마을에 핵폐기물이 들어오게 되면서, 그를 조용히 지내지 못하게 했나 보구나. 그는 오랫동안 활동한 고준위 핵폐기물 반대 투쟁에 대한 역사도 실려 있단다. 고준위 핵폐기물의 위험성은 전에도 여러 번 이야기했던 것 같아서 오늘은 생략할게. 한 가지만 이야기하면, 이번 정부 초기에 신고로 5, 6호기 건설을 계속 할 것인가? 중단할 것인가? 에 대한 공론회를 구성한 적 있어. 이 공론회에서 패배한 것이 아빠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던 일 중에 하나였는데, 탈핵 운동하는 분들도 그랬던 것 같구나. 그 일이 있고 나서 탈핵 진영의 조직들이 와해되는 후폭풍이 있었다는구나. 그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던 것 같아. 그 일로 고준위 핵폐기물 반대 투쟁도 많이 힘들어졌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기분이라고 하니, 많이 관심을 가져주어야겠구나. 정부가 바뀌어도 막강한 핵마피아들그들과 힘들게 싸우고들 있으니 말이야.

….

몇몇 주제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 있었는데, 오늘은 이 정도에서 마칠게.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유독 긴 올 여름 무더위가 얼른 끝나기를그 무더위가 끝나는 날 코로나는 이유 없이 사라지기를…. 이상.


PS:

책의 첫 문장: 기후위기라는 의제가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다.

책의 끝 문장: ‘아픔을 마중하는 세계가 바로 그런 다정한 세계라고 믿는다.


감시자본은 우리의 행동을 수집하고, 분석하고, 예측하여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시 우리의 행동을 유도하고, 조종하고, 통제해나간다. 우리는 구글에서 자신이 필요한 것을 검색한다 생각하지만, 실상은 역으로 우리가 구글에 의해 검색당하는 것이다. 감시자본 아래에서 우리는 자유의지를 지닌 주체가 아니라 수집, 분석, 추출의 공정에 던져진 재료로서 존재한다. 감시자본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데이터로 전락한다.
감시자본의 이러한 도구주의적 권력 속성은 "인간에게서 반성적 의미 작용을 빼앗아 동물적 존재로 격하시키"고 "민주적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인간의 능력과 자기이해를 갉아먹으며 내부로부터 민주주의를 허물어뜨리"는 데까지 나아간다.
- P72

‘풀뿌리 민주주의’ 개념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풀과 뿌리는 비바람과 폭설에 쓰러지고 파묻히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생명력이 있다. 5월의 신록조차 한겨울과 초봄의 갈색 잎들 사이로 풀뿌리가 뿜어내는 기운을 받아 하나씩 새잎을 튀운 결과다. 새 손톱이 헌 손톱을 멀어내는 손톱갈이를 하듯, 새 잎사귀가 헌 잎사귀 사이로 돋아나며 해마다 산천갈이를 한다. 그러나 헌 잎사귀는 단지 새 잎사귀로 교체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썩어 거름이 됨으로써 새 에너지원이 된다. "희생 없이는 우정도 없다"던 선생의 말처럼 지난가을 낙엽들이 거름이 됨으로써 풀뿌리와 신록을 살려낸다. 나아가 풀뿌리 그 자체는 서로 얽히고설켜 아무리 뜯기고 짓밟혀도 한두 가닥 살아남아 한사코 일어선다. 바로 이런 면들이 우리가 그토록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까닭이다. - P135

"<녹색평론>은 이른바 ‘발전’ 혹은 ‘진보’의 이름 밑에서 인간생존의 사회적 자연적 토대를 끊임없이 훼손하는 일체의 움직임, 논리, 사고, 제도, 관행을 비판하는 데 있어서는 늘 비타협적인 자세를 취했고, 동시에 어떻게 하면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고 공정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구축할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 왜 우리가 민주주의의 심화라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지를 끊임없이 이야기해왔다." 선생이 단호한 어조로 밝힌 <녹색평론>의 정체성과 지향점은 곧 김종철 문학의 그것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선생의 문학은 전환의 문학이었습니다. 근대문명을 넘어 생태문명으로 전환하는 모든 과정과 부문에 적극 개입하는 모든 형태의 문학. - P147

독재로부터 벗어나 선거대의제로 목소리를 찾게 된 민중이 느끼는 환희에 대해서는 언제나 언론에 크게 보도가 된다. 그러나 혹은 나중에 이들 가운데 실망감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은 뉴스가 되지 못한다. <이코노미스트>(2009년 11월 4일 발행)의 한 기사는, 대부분의 공산주의국가들이 몰락하고 20년이 지난 뒤 시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사해보았더니 오직 절반만이 서구식 ‘자유와 자본주의’로 전환된 것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그러한 전환으로 인해 혜택을 본 것은 보통사람들보다 기업과 정치 엘리트들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있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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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8-06 13: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녹색평론을 구매해 읽은 적이 있는, 유익한 책으로 아는 1인입니다.
지난호를 저렴하게 팔기도 하던데 언제 구매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bookholic 2021-08-06 22:18   좋아요 0 | URL
녹색평론이 사정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여러번 들었습니다... 같이 읽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