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47)
19세기의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전 세계 물리학자들에게
가장 큰 크리스마스 선물을 선사한 것이다. 그의 이론은 1901년 1월에 독일의 유명 학술지 <물리학연보>에 게재되었는데, 이 논문에서 막스 플랑크는 자신이 도입한 상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이 상수는 에너지와 시간이 곱해진 단위를 갖고 있으므로 에너지요소 hv와 구별하기 위해 기본작용양자(elementary quantum
action) 또는 작용요소(element of action)라 부르기로 한다.”
이로써 1900년 12월 14일은 양자혁명이 촉발된 날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그러나 정작 플랑크
자신은 E=hv가 고전물리학 체계를 송두리째 바꾸리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47)
막스 플랑크는 통계적 방법을 이용하여 고정된 에너지 요소를 진동자에 할당하면서 그 물리적 의미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은 플랑크도 수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원자나
분자가 실제로 존재한다 해도 그는 에너지가 복사와 물질 사이에서 연속적으로 흐른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을 것이다.
플랑크는 복사 공식을 유도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에너지가 양자화되어 있다는 발상을 처음 도입했지만, 그의 강연록이나 논문 어디를 뒤져봐도 이 사실이 분명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
(62)
러더퍼드는 실험 결과를 면밀히 분석한 끝에 “원자 질량의 대부분은
중심부에 있는 원자핵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보다 훨씬 가벼운 전자들이 마치 태양계의 행성처럼 그 주변을
공전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모형에 따르면 원자의 내부는
거의 텅 빈 것이나 다름없었다. 요즘 출간되는 물리학 관련 서적을 보면 원자의 내부 구조를 그림으로
표현할 때 러더퍼드의 태양계 모형을 그려 넣곤 한다. 궁극적으로 맞는 모형은 아니지만, 원자의 구조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이것만큼 적절한 그림을 찾기 어렵다.
(110)
그 후 폴 디랙은 “전자의 스핀 방향이 두 가지이기 때문에 원자의
각 궤도에 두 개의 전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이론을 제안했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궤도에 들어가는 두 개의 전자는 스핀 방향이 반대여야 한다는 뜻이다. 스핀이 반대인 한 쌍의 전자들이 짝을 이루어 궤도를 채우면, 그
궤도는 더 이상 다른 전자를 수용할 수 없다.
이것은 이론물리학의 커다란 진보였지만, 여전히 문제점은 많이 남아
있었다. 고전물리학에서 팽이처럼 자전하는 물체의 자전축은 임의의 방향을 향할 수 있는데, 전자의 자전축은 외부 자기장이 걸렸을 때 왜 두 가지 방향으로만 나타날까? 이런
제한 조건이 전자의 양자적 특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심증만 있을 뿐 그 누구도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135-136)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생각을 요약하여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내왔다.
“양자역학은 매우 인상적인 이론이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양자역학이
물리적 세계를 정확히 예견한다 해도, 자연의 비밀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신은 주사위놀음 같은 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은 탁월한 천재성과 직관으로 양자역학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결국에는 양자역학을 가장 극렬히 반대하는 쪽에 서게 되었다. 보른은 아인슈타인의 냉담한
반응에 크게 당황했다. 그 뒤 물리학계는 양자 수준에서 ‘실체란
무엇인가?’를 놓고 과학 역사상 가장 격렬한 논쟁을 벌이게 된다.
(147)
많은 부분에서 의견이 엇걸렸지만, 하이젠베르크는 보어와 자신이 같은
결과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안개상자 속에서 나타나는 전자의 궤적처럼 지극히 간단한
현상조차 다루기 어렵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행렬역학에서는 궤적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반면에 파동역학은
시간이 흐를수록 넓게 퍼지는 물질파의 개념을 이용하여 안개상자 속을 지나가는 전자의 궤적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개상자 속에서 전자가 남긴 궤적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전자가 입자라는 주장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었다.
(153)
아인슈타인은 그 점을 인정하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물론 물리학 이론의 본분은 관측 가능한 양을 예측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도 알다시피 관측이라는 것은 매우 복잡한 과정입니다. 우리가
관측 장비 안에서 또 다른 사건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관측 장비의 내부에서는 또 다른 과정이
진행되고, 이것이 복잡한 단계를 거쳐 관측자에게 인식되는 것입니다. 순수한
자연현상에서 뇌의 인식 작용에 이르는 이 모든 과정으로부터 우리는 자연이 작동하는 방식을 알아내야 하며, 현실적인
언어로 자연의 법칙을 서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무언가를 관측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158)
여기서 하이젠베르크의 설명을 들어보자
“”현재를 정확히 알면 미래를 예견할 수 없다”는 것은 고전물리학의 결론이 아니라 가정이다. 현재를 정확히 아는
것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관측된 모든 것은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결과’가 아니라 수많은 가능성들 중 하나가 우연히
선택되어 나타난 것이다. 양자역학의 통계적 특성은 부정확한 지각(知覺)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므로, 우리가 인식하는 통계적 세계의 저변에
‘진짜’ 세계가 숨어 있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런 식의 가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물리학의
본분은 관측된 사이의 상호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좀 더 정확히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즉 모든 실험과 관측은 양자역학의 법칙을 따른다. … 그러므로
양자역학은 인과율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포한 최후의 법정이다. 그 이상의 판결 기관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175-176)
보어는 이렇게 말했다.
“양자역학은 고전물리학의 개념들을 원자 규모에 적용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비로소 그 특성을 드러낸다. 그런데 관측장비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 고전적인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양자역학에서는 매우 생소한 결과들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
(182)
실증주의든 실용주의든 간에, 보어는 명백한 ‘반-실존주의자’였다. 그는 자신의 관점을 정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양자역학은 관측 장비가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의 물리적 실체에 대해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으며, 앞으로 이론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감춰진 실체의 지금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다. 일상적인 물리학적 관점에서 말하는 ‘독립적 실체’는 눈앞에 나타난 현상이나 관측 방식과 무관하다.”
(263)
1947년에 오펜하이머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을 계기로 물리학자들은 죄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깨달았다. 다른 지식은 모두 잊어버려도, 이것만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338-339)
서버는 이것이 말도 안 되는 생각임을 인정했다. 전하가 분수인 입자가
존재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겔만은 서버가 찾는 것이 완전히 어불성설이라며, ‘코크(quorks)’라는 이상한 단어를 갖다 붙였다. 그 뒤 이어진 강연에서 이 단어를 몇 차례 언급하기도 했다. 서버는
겔만이 지어준 이름을 ‘쿼크(quirk, ‘기발함’이라는 뜻의 명사)’로 알아듣고, 분수
전하가 존재한다는 것이 그만큼 말도 안 되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345)
자발적 대칭성 붕괴는 고체물리학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양자장이론이나
입자물리학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었다. 대부분의 이론물리학자들은 스스로를 ‘자연의 가장 근본적인 단계에서 물리학적 원리를 찾아내는 순수주의자’로
생각했기에, 고체물리학들을 한 수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고체물리학을 “쓸데없이 복잡하기만 한 시스템을 몇 개의 가정으로 단순화시키는 작업”쯤으로 생각했다. 머리 겔만도 고체물리학을 “너저분한” 물리학이라고 비아냥거리곤 했다.
(417)
새뮤얼 팅과 버튼 릭터의 발견이 알려진 뒤 물리학자들은 소립자가 두 종류의 ‘세대(generation)’로 존대한다고 생각했다. 각 세대는 두 개의
렙톤과 두 개의 쿼크로 이루어져 있고, 그 밖에 이들 사이에서 힘을 매개하는 매개 입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입자의 족보가 완성될 듯했다. 전자와 전자뉴트리노 그리고 위쿼트와 아래쿼크는 제1세대에 속하고, 뮤온과 뮤온뉴트리오,
맵시쿼크와 야릇한쿼크가 제2세대에 속한다. 제1세대와 제2세대 입자들은 일대일로 대응되며, 세대 간의 차이점은 질량뿐이다. 그 외에 광자는 전자기력을 매개하고 W 입자와 Z 입자는 약학 핵력을,
색전하를 갖는 글루온은 쿼크들 사이에서 강한 핵력을 매개한다.
(434)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물질은 대부분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의
중심부에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핵이 자리잡고 있으며, 파동이면서 입자이기도 한 유령 같은
전자가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또한 양성자와 중성자는 위쿼크와 아래쿼크로 이루어져 있다. 쿼크와 전자, 전자뉴트리노는 스핀이 1/2인 페르미온이며, 이들은 표준모형에서 ‘1세대 물질 입자’에 속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물질세계를 서술할 때에는 이 세 종류의 입자로 충분히다.
(438)
이 모든 체계의 저변에 신비하게 깔려 있는 것이 바로 힉스장(Higgs
field)이다. 힉스장은 우주 공간의 진공 속에 골고루 퍼져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질량이 없는 입자가 힉스장(또는 힉스 ‘응축물’)과 상호작용을 하면 질량을 갖게 되는데, 이때 획득한 질량은 입자와 힉스장 사이의 결합강도(coupling)에
따라 달라진다. 힉스장의 장 입자는 스핀=0인 힉스 보존으로, 표준모형에서는 모든 입자에 질량을 주여하는 ‘신의 입자(God particle)’로 알려져 있다.
헤라르트 토프트는 자신의 저서에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힉스 입자는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지만 힉스장의 존재는 모든 곳에서
느낄 수 있다. 만일 힉스 입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표준모형의 대칭성이 너무 커서 모든 입자들이 거의
똑같이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