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상당한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낸 후, 국내에서 유일무이한 타이탄 전공자가 되어 대학원을 졸업했다. 물론 모든 박사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남의 연구를 그대로 따라 하는 사람에게 주는 학위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유일무이하다고 감시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한국에서는 타이탄에 관심을, 학위논문 주제로 삼을 만큼의 관심을 갖는 자가 나 이후로는 아직까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내 연구가 그렇게 지루해 보였나. 하하, 난 괜찮으니 혹시 지금 안쓰럽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면 거두길 바란다. 국내 천문학계는 대단히 좁은데, 천문학의 범위는 천문학적으로 넓어서 관심을 줄 대상이 너무 많다. 그리고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는 것은 외롭지만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50)

76년마다 돌아오는 핼리혜성도 우리나라 사료에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989년 고려 성종 때의 기록을 시작으로, 조선시대 말인 1835년까지 매번 핼리혜성을 관측하고 기록했다. , 성실한 공무원들이요. 우리 세대도 선조들 못지않게 훌륭하다.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 데이터베이스에는 <조선왕조실록>을 위시하여 수많은 사료가 인터넷으로 무상 제공되고 있다. 본래의 기록은 한자로 된 것이었지만 아주 많은 부분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주제별로 열람할 수도 있고 검색도 할 수 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숙제로 내기 딱 좋다.


(55)

학생들은 대학에 학문을 배우러 오지 않는다. 초등학교 다음 중학교 다음 고등학교에 간 것과 같이 고등학교를 마쳤으니 대학에 진학할 뿐이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의 학비보다 열 배는 비싼 등록금이요, 모두가 입어야 하는 교복 대신 모두가 가져야 하는 스펙을 등에 업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의 젊음은 싸구려 술과 술값보다 비싼 커피와 크고 작은 성추행과 미필자조차 향유하는 선배들의 군대식 갑질, 전공과목 들을 시간을 뺏는 교양 강의와 대학생다운 교양을 쌓을 틈을 주지 않는 전공 강의, 토익 시험과 한국사 시험과 각종 컴퓨터 자격증과 크고 작은 기업의 공모전과 인턴 경력에 소모된다. 과제로 수많은 보고서를 작성하지만 제대로 된 글쓰기를 연습할 기회는 별로 없다. 대신 비문으로 A4 용지 다섯 장을 채워내는 끈기, 남의 것을 베끼되 표절 여부를 자동으로 검사하는 프로그램에 걸리지 않게 몇몇 표현을 바꿔치기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그 비용과 시간과 어처구니없는 문화와 그 젊음은 대체 무엇을 위한 제물인가.


(59).

학자들은 교류를 통해 지식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자신을 기록을 발표한다. 지역적으로 가까운 사람들끼리만 학문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멀리 있는 학자들과도 교류하기 위해서 편지 형식을 취했던 것이 오늘날 논문의 전신이다. 논문에서는 과거 다른 사람이 발견하고 연구하고 논했던 내용을 정확히 밝히며 인용한다. 남의 업적을 내 것인 양하는 태도는 국가나 가족에 대한 긍지를 느낄 때나 쓰는 것이요, 남의 글 베끼기는 타자 연습할 때나 하는 일이다.


(107)

부모 중 누군가가 본인의 일을 잠시 포기하면서까지 아이를 위해 달려가는 것은 양육자로서의 의무다. 아이가 아플 때 엄마가 일을 포기하고 달려가는 건 누군가는 가야 하는데 남편이 안 혹은 못 달려가기 때문이다. 현실이 그런 걸 누가 비난할 수 있겠나. 비난의 대상은 아픈 아이도, 달려가는 엄마도, 못 달려가는 아빠도 아니다. 갈 수 있으면서 안 달려가는 아빠가 있다면 그를 비난할 수 있을 뿐이고, 그런 경우엔 그게 아빠가 아니라 엄마라도 비난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남의 가정 일에 비난할 자격과 기회가 있다면 말이다.


(131)

요즘은 우주탐사선 자료를 쓰고, 직접 관측하더라도 CCTV를 보며 원격으로 망원경에 명령을 보내기 때문에 그렇게 온몸으로 관측하는 일이 드물다. 심지어 망원경을 미국에 설치해놓았더니 시차 덕을 본다. 대낮에 내 연구실에 앉아 미국의 밤에 뜬 달을 관측하니까 밤을 지새울 필요도 없다. 그래도 하늘이 유난히 맑은 날이면, 노을도 차분히 지고 공기가 신선한 날이면 나는 관측하기 딱 좋은 날이네하고 중얼거린다. 그러고는 관측자의 일과를 상상한다.


(143-144)

촌극은 그렇게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몇 주 뒤 인터뷰가 실린 호가 출판되자 국내 여러 언론과 매체에서 연락을 해왔다. 내가 <네이처>가 선정한 젊은 달 과학자 다섯 명에 들었다나.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니 흥미로웠다. <네이처>에서 무슨 엄청난 심사나 평가를 거친 것도 아니고 그저 기자가 여기저기 묻고 물어 몇몇 나라의 연구자들과 인터뷰를 했을 뿐인데, 그리고 기사를 읽어보았다면 엄청난 실력자를 골라내려는 목적의 인터뷰가 아니라는 것을 알 텐데, 대단한 침소봉대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하필이면 당시 나는 대학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일하고 있었다. 이 직급의 이름 풀이를 해보자면 호봉이 높은 박사후연구원이요, 연차나 경험은 조금 더 많지만 비정규 계약직 연구전담 인력이기는 매한가지라는 뜻인데 그걸 언론에서 약칭해 교수로 부르자 갑자기 설국열차의 꼬리 칸에서 앞칸으로 옮겨 탄 효과가 났다. 어이쿠야.


(180)

우주 탐사에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데, 당장 상업적으로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아이템은 아니기 때문에 대기업이 돈을 대는 일은 드물다.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그러려면 정부에 우주 탐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그것이 국가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비전을 제시해주는 자문단이 필요하다. 그 조언을 바탕으로 정책을 만드는 전문가, 이를 승인하는 최고결정권자와 국회, 그리고 그 실무를 담당하는 수많은 공무원이 현장을 방문하고, 공문서를 작성하고 낸 세금을 기꺼이 우주 탐사에 쓰도록 허락하고, 공감하고, 지지하고, 애정 어린 눈길로 지켜봐주는 국민이 필요하다. 당신이 꼭 필요하다. 천문학자가 아니라도 우주를 사랑할 수 있고, 우주탐사에 힘을 보낼 수 있다. 우주를 사랑하는 데는 수만 가지 방법이 있으니까.


(244-245)

뉴호라이즌스의 책임연구자 앨런 스턴 박사는 요즘도 명왕성을 행성이라 칭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가 명왕성을 행성이라 부르든 왜소행성이라 부르든 134340이라 부르든, 사회에서 의도적으로 따돌림받고 소외당하며 존재 자체를 위협받는 자의 심정을 명왕성에 이입시켜려 하든 말든 명왕성은 상관하지 않는다. 그 멀고 어둡고 추운 곳에서, 하트 무늬처럼 보여 지구인에게만큼은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얼음평원 스푸트니크를 소중히 품은 채 태양으로 연결된 보이지 않는 중력의 끈을 잡고 있을 뿐이다. 그 곁에 오랫동안 지켜온 위성 카론은 명왕성의 위성으로 보기에는 너무 덩치가 커서 위성이 아니라 명왕성과 이중행성계를 이루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카론 역시 자신을 무엇이라 부르든 개의치 않는다. 명왕성, 그리고 자신보다 더 작은 여러 위성 친구들과 서로 중력을 주고받으며 아주 오랫동안 멈추지 않을 자신들만의 왈츠를 추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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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2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 그럼 오늘은 <파친코> 2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2권은 1953년부터 1989년까지 한 세대가 넘는 기간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그 만큼 속도감 있게 전개된단다. 그러나 그로 인해 좀 다 자세히 다뤄졌으면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런 것이 이 소설의 조금 아쉬운 점이었단다. 책의 앞 표지에는 이 책의 부제가 적혀 있지 않아 눈 여겨 보지 않았는데, 책 차례에 보니 부제가 적혀 있더구나. 2권의 부제는 조국(motherland)’더구나. , 1권의 부제는 뭐였지? 1권의 차례를 열어보니 1권의 부제는 고향(hometown)’으로 되어 있더구나. 고향과 조국. 모두 그리움의 대표적인 말인 것 같구나.

<파친코> 2권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생각하는 조국의 의미는 서로 달랐을 것 같구나.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에 와서 정착한 이들. 일본에서 태어난 그들의 아이들. 또 그 아이들의 아이들. 그런 아이들은 이제 완전히 일본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아빠는 생각했어. 하지만 여전히 일본에서 그들은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놀랐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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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

일본은 절대 변하지 않아. 외국인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내 사랑, 넌 언제나 외국인으로 살아야 할 거라고. 절대 일본인이 되지 못해. 알겠어? 자이니치(조선인)는 여행을 떠날 수 없는 거 알지? 하지만 너만 그런 게 아냐. 일본은 우리 엄마 같은 사람들도 다시 받아주지 않아. 나 같은 사람들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지. 우리는 일본인인데도 말이야! 난 병에 걸렸어. 오래된 무역회사를 운용하는 어떤 일본이 남자한테서 옮은 병이야. 그 남자는 죽었어. 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 여기 의사들도 내가 떠나버리기를 바라고 있어. 잘 들어, 솔로면, 넌 여기 머물러야 해. 미국으로 돌아가서는 안 돼. 네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아야 해. 부자가 되면 무엇이든 원하는 걸 할 수 있어. 하지만 아름다운 솔로몬, 저들은 우리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절대 하지 않아.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하나가 솔로몬을 노려보았다. “내가 말한 대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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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의 습성상 외국인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을 보고, 지난 올림픽에서 일본인들이 외국인을 대할 때, 배려하지 않는 장면들을 영상으로 보고 이상했던 느낌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들에게 올림픽을 위해 자신의 나라에 온 외국인 선수들이, 손님이 아니라 그냥 잠시 방문한, 조금은 귀찮은 외국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어. 그러니 올림픽 선수촌 시설이 그 모양이지


1.

, 그럼 <파친코> 2권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꾸나. 1953년 오사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단다. 노아는 성실한 청년으로 자랐어. 열심히 일하면서도 자신이 목표로 한 와세다 대학을 준비하고 있었어. 그와 반해 노아의 동생 모자수는 전형적인 문제아가 되었어. 십대 중반이었던 모자수는 사고도 여러 번 치고 결국 학교도 그만두었어. 그리고는 파친코 가게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곳이 적성에 맞았는지 모자수는 정말 열심히 일을 했단다.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파친코 사장도 그를 신임하고, 모자수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는 파친코의 한 지점을 운영하게 했어. 모자수는 같은 동포 유미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고 결혼도 했단다. 어렸을 때 방황하고 사고만 치던 모자수였는데, 파친코라는, 남들이 보기에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업이지만, 잘 정착해서 다행인 것 같구나.

노아는 결국 와세다 대학에 합격을 했어. 식구들 모두 큰 기쁨이었고, 고한수도 무척 기뻐했어. 사실 노아가 고한수의 아들이었잖아. 그 내막은 1권에서 이야기 해주었으니 오늘은 생략. 고한수는 자신이 노아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하겠다고 했어. 와세다 대학에서 노아는 행복했단다.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도 열심히 하고, 아키코라는 사랑하는 사람도 생겼어. 고한수와는 한 달에 한번씩 만나 같이 식사도 했단다. 자신을 지원해주는 고마운, 돈 많은 동포라고 생각하면서 나중에 그 은혜를 갚겠다고 생각했지, 그가 자신의 아버지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어느날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그 사실을 받아들일 만 한데 노아는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당황했어. 엄마와 가족들에게도 모두 속았다고 생각했어. 결국 노아는 그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그렇게 좋아했던 와세다 대학교도 그만두고, 잠적을 했단다. 어디에 정착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가끔 엄마인 선자와 고한수에게 돈을 보냈어. 고한수에게 보낸 돈은 자신이 지금까지 받은 돈을 갚은 것이라며 했어. 노아는 어디로 갔냐고? 노아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나가노라는 곳에 갔고, 그곳에서 노아도 파친코 게임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단다.

과거의 일은 과거의 일. 노아가 조금만 마음을 열었어도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렇게 자신을 스스로 망가뜨리려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는데 말이야. 좀 안타깝더구나.

….

노아와 모자수의 큰아버지인 백요셉 생각나지? 나카사키로 갔다가 불구가 되어 돌아온 백요셉. 불구로 돌아온 백요셉은 10년 넘게 병마와 싸우고 있었고, 그를 위한 치료비가 무척 많이 들어가고 있었단다. 인생사 쉽지 않구나.


2.

1965년 유미는 몇 번 유산을 하고 나서 드디어 첫 아들을 낳았단다. 아들의 이름은 솔로몬으로 기었어. 모자수의 아버지 백이삭이 목사였고 다들 신실한 기독교도였기 때문에 아이들의 이름은 성경에 나오는 이름에서 따와서 지은 것이란다. 노아, 모자수, 솔로몬모자수는 행복했어. 사랑하는 아내 유미가 있고, 아이도 생겼고…. 그리고 파친코 게임장도 잘 되고 있었어. 그런데 그의 행복도 오래가지 못했단다. 솔로몬이 세 살 남짓 되었을 때, 유미가 그만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어. 지은이께서는 너무 슬픈 에피소드로만 이야기를 만드는 것 같구나. 꼭 유미를 그렇게 죽게 만들었어야 했나.

솔로몬은 그 이후 할머니 선자가 키웠단다. 선자는 여전히 고한수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어. 수십 년 전 자신에게 배신감을 준 것이 아직 마음의 앙금으로 남아 있었거든. 그런 고한수의 나이도 어느덧 일흔. 전립선암도 생겨서 고생하고 있었지. 선자는 완전히 마음을 열어 준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 만나고는 했단다. 그리고 사라진 노아를 찾는데 고한수에게 도움을 많이 부탁했어.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끔씩 노아로부터 편지가 온다는 사실. 노아는 자신의 과거를 모두 버리고 일본인 행세를 하면서 나가노에 정착을 했단다. 결혼도 하이고 아이도 생겼어. 그러던 어느날 한수와 엄마 선자가 찾아왔어. 이제 세월이 어느 정도 흘렀으니 마음의 짐을 덜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한수와 엄마가 자신을 찾아온 날 극단적인 선택으로 삶을 마감했단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부분은 다 받아들 수 있지만, 노아의 계속된 극단적인 선택들은 공감을 할 수 없더구나. 지은이가 노아에 대한 캐릭터 설정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화해와 사랑의 아이콘으로 설정해도 괜찮을 법 한데 말이야.

….

유미를 교통사고로 잃은 모자수. 여전히 파친코 사업도 번창했어. 모자수는 세금도 잘 내고, 모범적으로 사업을 운영했단다. 그것이 어쩌면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면서, 일본에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은 다행히 올곧게 잘 자랐단다. 공부도 잘 해서 뉴욕으로 유학을 갔고, 공부를 마치고는 일본 지사의 미국계 은행에 취업을 했어. 미국에서 만난 한국계 여자 친구 피비도 함께 왔어. 남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사는 듯 했지만, 사소한 실수, 그것도 솔로몬의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때, 그는 해고당하고 말았단다.도쿄에 있는 은행이긴 했지만, 이 은행은 미국계 은행인데 일본의 다른 기업처럼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있었던 거야. 솔로몬은 일본에서 태어났는데도 말이야. 솔로몬은 현실을 받아 드리려고 했지만, 친구 에쓰코는 일본의 이런 차별을 비난했단다.

=====================

(327-328)

솔리, 솔리. 그러지 마. 변명할 필요 없어. 조선인들에게는 일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 너희 아버지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파친코를 선택한 게 분명해. 아마 훌륭한 사업가겠지. 네 포커 기술이 무에서 나왔다고 생각해? 네 아버지는 후지나 소니에서 일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회사에서는 조선인을 고용하지 않잖아. 알지? 어이, 컬럼비아 대학생 청년, 사실 너도 고용해줄지도 의심스러워. 일본의 많은 곳에서는 아직도 조선들을 교사와 경찰, 간호사로 고용하지 않아. 넌 돈을 많이 버는 데도 도쿄에서 방을 빌릴 수도 없잖아. 빌어먹을 1989! , 네가 그 모든 것을 공순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잘못된 거야. 난 일본인이지만 멍청하지 않아. 미국과 유럽에서 오랫동안 살았어. 일본인들이 이 땅에서 태어난 조선인들과 중국인들에게 하는 짓은 미친 짓이야.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야. 너희들은 혁명을 일으켜야 해. 그런데 그다지 항의를 하지 않잖아. 너와 네 아버지는 이 나라에서 태어났어.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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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은 미국에서 온 피비의 눈에도 이상하게 비쳐졌어. 피비도 어떻게 보면 솔로면과 비슷한 입장이었거든. 부모님이 미국으로 건너왔고, 피비는 미국에서 태어나서 미국인으로 모든 권리를 가지고 생활하고 있었거든. 하지만, 일본에서 태어난 솔로몬은 일본인으로 살지 못하고 한국인으로 차별을 받으며 살고 있고 심지어 남한 여권을 가지고 다닌다고 말이야. , 누군가는 그것이 문화 차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일본의 그릇이지 않을까 싶구나. 그런데 문득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있다는 생각을 해보니 속이 불편해지는구나.

=====================

(314-315)

미국에서는 강꼬꾸징(韓國人)이니 조센징(朝鮮人)이라는 게 없었어. 왜 내가 남한 사람 아니면 북한 사람이 돼야 하는 거야? 이건 말도 안 돼! 난 시애틀에서 태어났어. 우리 부모님은 조선이 분단되지 않았을 때 미국으로 갔고.” 피비가 그날 하루 동안 편협한 대우를 받았던 일들 가운데 하나를 소리 높여 이야기했다. “왜 일본은 아직도 조선인 거주자들의 국적을 구분하려고 드는 거야? 자기 나라에서 4대째 살고 있는 조선인들을 말이야. 넌 여기서 태어났어. 외국인이 아니라고! 이건 완전 미친 짓이야. 네 아버지도 여기서 태어났는데 왜 너희 두 사람은 아직도 남한 여권을 가지고 다니는 거야? 정말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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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솔로몬은 은행에서 해고 당한 이후 그는 아버지를 도와 파친코 일을 하기로 결심한단다. 모자수와 솔로몬의 가족은 그런 속에서 가족끼리 의지하면서 행복과 희망을 찾으면서, 소설은 줌 아웃 하듯 끝을 맺게 된단다. 이 책은 1989년에서 끝이 났고, 그로부터 또 30년의 시간이 흘렀구나. 그 사이에 일본은 많이 변했을까? 지난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에 대한 비판 기사를 쏟아내는 것을 보니 크게 변한 것 같지 않더구나. 그런데, 그 기사들에서 아빠는 일본의 열등감마저 보이더구나. 아이처럼 떼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안쓰럽기까지 하더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나라는 군자처럼 그런 떼쓰기를 받아주는 것은 어떨까 싶기도 하더구나.

….

1권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이야기했지만, 또 하나의 아픈 우리 역사이자 현실을 본 것 같구나. 슬픔을 더 크게 하려고 몇몇 소설의 설정들이 아쉽긴 했지만, 재미있게 잘 읽었단다. 미국에 있는 재미 교포 이민진 님이 영어로 쓴 소설.. 미국 사람들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이상.


PS:

책의 첫 문장: 돈 걱정에 잠을 못 이루던 선자는 내다 팔 설탕과자를 만들려고 한밤중에 일어났다.

책의 끝 문장: 경희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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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07 00: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이렇게 마지막이 1989년에서 끝나는 군요
이 시기면 일본 거품 경제로 폭삭 하던 시절인데,,,,

작가가 후반부로 갈 수록 급하게 마무리 한것 같은,,,
그럼에도 미국에서 많이 팔려서 드라마로 제작 된 다고 하니
드라마는 좀 다르게(각 인물들의 모습) 보여 줬으면 좋겠네요. ^.^

bookholic 2021-09-07 07:45   좋아요 3 | URL
소설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드라마에서 해주기를..^^

mini74 2021-09-07 09: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윤여정배우님도 나온다던데 ㅠㅠ 읽고싶은데 도서관 예약이 가득이더라고요. 확 사버려하며 벼르고 있습니다 *^^*

bookholic 2021-09-07 23:25   좋아요 0 | URL
ㅎㅎ 깨끗한 중고로 자주 보이던데요~~^^
 














(22)

두 남자는 미소지으며 산책길을 따라간다. 그 모든 일이 그들 뒤로 아주 멀리 있다. 둘 중 한 사람은 이십오 년간 교직에 있었다. 대략 2500명의 학생들을 가르쳤고, 그중 상당수는 심각한 난관에 처한 학생들이었다. 두 남자는 저마다 가정을 꾸린 아버지다. 그들은 선생님이 그랬어……”라는 말의 의미를 잘 안다. 열등생이 지루한 푸념 속에 들어앉히는 희망, 그래 그거다…… 선생님의 말이라 급물살을 타고 추락하는 강물 위에서 공부 못하는 학생이 붙잡고 매달리는 부표일 뿐이다. 열등생은 선생님이 한 말을 반복한다.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고, 규칙을 구현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순간적으로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놓여나기 위해하는 말이다. 아니면 사랑받기 위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47)

나를 구해냈던 그리고 나를 교사로 만들었던 선생님들은 그 일을 위해 양성된 게 아니었다. 그들은 나의 무능한 학교생활의 기원에 대해서는 괘념치 않았다. 원인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도 않았거니와 나에게 설교를 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저 위기에 빠진 청소년을 마주한 어른이었다. 그들은 절박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며 몸을 던졌다. 그들은 나를 놓쳤다. 하지만 매일같이 다시 몸을 던지고 던지도 또 던졌다…… 그리고 마침내 나를 거기서 건져냈다. 나와 더불어 다른 많은 아이도 건져냈다. 말 그대로 우리를 낚아올린 것이다. 우리는 그분들에게 생명의 빚을 지고 있다.


(82)

선생이라는 직업이 필연적으로 사라질 때까지 다시 시작하는 일. 만일 우리가 한 명의 학생을 우리 수업의 직설적 현재에 정착시키는 데 실패한다면, 우리의 앎과 그것의 활용에 대한 안목이 이 아이들에게 미치지 않는다면, 그들의 실존은 식물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막연한 결핍의 늪지에서 질척거릴 것이다. 물론 우리 선생들만이 그런 갱도를 파낸 것도 아니고, 그걸 메울 줄 몰랐던 것도 우리 책임만은 아니지만, 그때 그 아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 혹은 몇 년의 어린 시절을 우리 앞에 마주앉아 함께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망쳐버린 학교생활 일 년은 하찮은 게 아니다. 어항 속에서는 영겁의 세월이다.


(96-97)

하지만 선생이 거짓말을 모른 척하는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좀더 깊숙이 숨겨진 이유인데, 명석한 의식에 비춰보자면 대충 이런 거다. 즉 그 아이가 교사라는 내 직업의 실패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를 발전시키지도 공부시키지도 못한 채, 그저 내 반에 들여놓고 그 아이가 여기 있다는 것만으로 안심하는 것이다.


(98)

지쳐버린 수많은 부모들은 사람의 진을 빼는 이런 거짓말을 받아들이는 척한다. 우선은 그들 자신의 고통을 잠시나마 진정시키기 위해(1515년 마리냐노 전투 같은 극소량의 진실은 진통제 역할을 한다), 그 다음엔 가족의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그리하여 저녁식사 시간이 비극으로 선회하지 않도록, 제발 오늘 저녁은 아니기를, 각자의 마음을 찢어놓은 고백의 시련을 늦추기 위해, 요컨대 틈틈이 편지함을 살펴보던 당사자에 의해 다소 교묘하게 위조된 학기말 성적표를 받아들고, 사실  별로 놀라워하지도 않으면 학교생활의 재앙의 범위를 가늠하게 될 순간을 밀어내기 위해서다.

내일 생각해보자.

내일 생각해보자고……


(110-111)

우선 짚고 넘어갈 사실이 있다. 알다시피 어른과 아이는 시간을 동일하게 지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십 년 단위로 계산하는 어른의 눈에 십 년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이 오십이 되면 십 년은 금세 지나간다! 그렇게 빠른 속도감 때문에 어머니들은 아들의 장래를 근심하며 괴로워하는 것이다. 오 년 후면 벌써 대학 입시네, 아니 이제 금방이잖아! 이 어린 것이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근본적으로 뭐 그리 변할 수 있겠어? 그런데 아이에게 그 시절의 일 년은 천 년과도 같다. 아이의 눈에 자신의 미래는 뒤 이은 며칠 안에 몽땅 달려 있다. 아이에게 장래를 이야기하는 것은 무한을 센티미터로 재라고 요구하는 꼴이다. ‘되다라는 동사가 아이에게 주눅들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것이 어른들의 걱정이나 질책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장래란 최악의 상태의 나를 말하며, 바로 그것이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던 선생님들의 말에서 내가 대충 이해한 바였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시간이란 게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조금도 생각해내지 못했고, 그냥 순진하게 영원히, 언제나 바보일 거라는 그들의 말을 믿었다. ‘영원히언제나는 상처받은 자존심이 열등생에게 시간을 헤아릴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단위였다.


(133)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생이란 놀랍고도 짧구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렇게 한마디로 말할 수 있겠는걸. 예를 들자면 한 젊은이가 우연히 맞닥뜨린 불행한 사고는 제쳐놓는다 해도 별 탈 없이 흘러가는 평범한 나날조차도 나들이를 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는 점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떻게 옆 마을로 말을 타고 나설 작정을 할 수 있는지,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으로 말이다.”

이자벨은 존경심을 표하며 그 작가의 이름을 말했다. 프란츠 카프카.


(158)

망쳐버린 시간이 나를 기진맥진하게 했다. 나는 지치고 화가 난 채로 교실에서 나왔다. 그 화는 하루종일 학생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위험이 있다. 자기불만에 휩싸인 선생은 누구보다 재빨리 학생을 야단치기 때문이다. 얘들아, 조심해라, 바짝 기어라, 선생이 자기바하에 빠져버렸으니 맨 처음 걸려든 사람한테 불똥이 튈 거다! 그날 저녁은 집에 가서 숙제 검사 같은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피로와 불쾌한 의식은 좋은 충고자가 될 수 없다! 아니, 그날 저녁은 숙제 검사도, 텔레비전도, 외출도 그만두고 잠자리로 직행! 선생의 첫째 자질은 수면이다. 일찍 자야 착한 선생이 된다.


(275)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막시밀리앵은 젊음만능주의라는 동전의 이면이다. 우리 시대는 젊음의 의무로 이루어져 있다. 젊어야 하고, 젊게 사고해야 하고, 젊게 소비해야 하고, 젊게 늙어야 하고, 유행은 젊고, 축구도 젊고, 라디오방송도 젊고, 잡지도 젊고, 광고도 젊고, 텔레비전도 젊은이로 가득하고, 인터넷도 젊고, 사람들도 젊고, 살아 있는 베이비붐 세대의 마지막 사람들도 젊게 남아 있고, 우리의 정치인들마저 마침내 다시 젊어졌다. 젊음 만만세! 젊음에 영광을! 젊어야만 한다!


(281)

이때 담임선생님의 질문.

신발은 걸어다니는 데 쓰이고, 상표는 뭐에 쓰이지?”

교실 구석에서 터져나온 돌발 발언.

뽀다구 내는 데요!”

모두의 폭소.


(323-324)

모든 점을 잘 따져보면 이 세 분의 선생님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그들은 모른다고 하는 우리의 고백에 속아넘어가지 않았다. (철자법의 결함을 이유로 내세우며 지 선생님은 내게 얼마나 여러 번 논술문을 다시 쓰게 했던가? 발 선생님은 내가 복도에 멍하니 있거나 자습실에서 몽상에 잠겨 있었다는 이유로 얼마나 여러 번 보충수업을 시켰던가? “시간이 있으니까 우리 한 십오 분만 더 사학을 해보면 어덜까? 페나키오니? , 십오 분만 해보자……”) 익사 위기에서 구해내려는 그 몸짓의 이미지, 자살하려는 몸짓을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저 위로 나를 끌어올리려는 그 손목, 내 옷자락을 단단히 움켜쥔 살아 있는 손의 생생한 이미지, 이런 것들이 바로 그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맨 처음 떠오르는 모습이다. 그들의 현존 안에서 그들의 과목 안에서 나는 나 자신의 모습에 눈을 떴다. 수학자인 나, 역사가인 나, 철학자인 나로. 그러한 나는 이 스승들을 만날 때까지 진정으로 여기 있다는 느낌을 방해했던 나를 한 시간 동안 잠시 잊고, 나를 괄호 속에 집어넣고, 나로부터 나를 치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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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1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재미 교포인 이민진 님이라는 분이 계셔. 우연히 유튜브에서 그 분의 인터뷰 동영상을 보고 그 분이 쓴 <파친코>라는 소설이 읽고 싶어졌단다. 그 전부터 <파친코>라는 소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제목만 보고, 아빠의 관심사와 먼 이야기했구나, 하던 책이었거든. 그런데, 이민진 님의 인터뷰를 보고, 이 책을 자세히 찾아보고 관심이 생겼단다. 이 책은 슬픈 우리나라 역사의 단면을 담고 있었어. 얼마 전에 이규정 님의 <사할린>이라는 소설을 이야기했잖아. 사할린 땅에 어쩔 수 없이 가서 그곳에 정착해 생활하는 우리 민족의 이야기. <파친코>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일본 땅에 갔다가 영원한 이방인이 되어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이야기들을 그리고 있단다. 그래서 <파친코>를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은 <사할린>도 자주 떠오르더구나.

지은이 이민진 님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하자면, 서울에 태어나 부모님의 결정으로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했어. 미국에 이민을 간 다른 한국인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이민진 님의 부모님 역시 헌신적이었고, 그런 부모님 밑에서 이민진 님은 잘 자라서, 잘 나가는 변호사가 되었대. 그런데 건강이 악화되어 변호사를 그만 두고 글 쓰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일본계 미국인 남편을 만나서, 일본에 살고 있는 있는 한국인들을 부르는 자이니치라는 말을 알게 되었고, 남편 회사 때문에 4년간 일본에 살 기회가 생겨 그때 취재 및 탐사를 한 것을 바탕으로 <파친코>를 쓰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이 책은 미국에서 영어로 출간된 것인데, 이미정 님이 우리말로 옮겨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되었단다. , 그럼 오늘은 <파친코> 1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1.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이 소설은 강렬한 첫 문장으로 시작했단다. 어찌 보면 자조적인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긍정적인 것으로 보이기도 했어. 이야기는 19세기말 부산 영도에서 시작한단다. 훈이라는 아이가 태어났는데, 언청이에 다리가 기형이었어. 훈이 부모님은 하숙집을 운영했는데, 하숙집에 잘 되어 집안은 넉넉했단다. 하지만,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혼하기 힘들었는데, 가난한 집에 착한 딸 양진과 짝을 맺을 수 있게 되었어. 둘은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았는데, 훈이의 장애 때문인지 아이들이 어렸을 때 모두 죽었어. 그렇다가 넷째 아이 선자가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었단다.  

선자가 열세 살이 되었을 때 훈이는 죽고 말았어. 비록 장애를 가진 훈이였지만, 선자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였단다. 훈이가 선자를 지극히 아끼고 사랑해주었거든. 양진은 이제 어린 선자를 데리고 혼자 하숙집을 운영했어. 그로부터 3년 뒤 배이삭이라는 손님이 찾아왔어. 배이삭은 목사였는데 10년 전 자신의 형이 이 하숙집에 머물렀는데 착한 주인들이라면서 추천을 해주어 자신도 일본으로 형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잠시 이 하숙집에 머무르려고 왔다는 거래. 그런데, 그곳에 있으면서 백이삭은 어렸을 때 앓았던 결핵이 재발해서 잠시가 아니고 한 동안 머물러야만 했어. 죽음의 위기도 있었는데, 양진과 선자가 잘 보살펴주어 회복할 수 있었단다.

그때 선자의 나이 열여섯 살이었는데, 6개월 전부터 알게 된 생선중매상 고한수와 사랑을 하고 있었단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이 임신을 한 것을 알게 되었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단다. 어차피 고한수와 결혼하면 되니까 말이야. 선자는 자신의 임신 소식을 이야기하니, 고한수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거야. 자신은 오사카에 아내와 아이가 셋이 있다고 말이야. 하지만, 선자를 사랑하니 선자와 뱃속의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하겠다며 했어. 그러니까 한수는 선자를 첩으로 생각한 것이야. 선주는 이 이야기를 듣고, 깊은 배신감을 느끼고 헤어져버렸어. 선자는 자신의 임신 소식을 엄마 양진에게 이야기하고 엄마는 자세한 것은 묻지 않고 선자를 그저 걱정했단다.


2.

죽음의 위기까지 갔다가 겨우 살아와 건강을 되찾은 백이삭 목사. 우연히 선자의 사연을 듣고, 자신이 선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했어. 그것이 기독교의 희생 정신이고, 자신을 살려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어. 원래 백이삭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병약해서 오래 살지 못할 거라 생각해고, 평생 결혼하지 않을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구나.

백이삭과 선자는 결혼을 하고, 백이삭의 형님이 살고 있는 일본 오사카로 갔단다. 이 때가 1933년이었어. 백이삭의 형님 백요셉과 아내 경희 부부는 백이삭과 선자를 환대해주었어. 선자의 과거를 알고 있지만, 형님 부부는 정말 따뜻하게 맞아주었어. 특히 경희는 일본땅에서 말이 통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답답했는데, 말이 잘 통하는 선자를 동생처럼 대해주었고 금방 친해졌단다. 백이삭은 교회에서 평목사로 일하기 시작했고, 얼마 뒤 선자는 아들을 낳았고 이름은 노아로 지었단다. 백노아. 백이삭과 선자뿐만 아니라 아이가 없었던 백요셉과 경희도 모두 노아를 사랑으로 키웠단다.

시간을 흘러 1939, 노아가 어느덧 여섯 살이 되었고, 그새 백이삭과 선자는 아들을 하나 낳았고 그 아이의 이름은 모자수였어. 1939년 일본은 전운이 감돌았고, 그에 따른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엄격하고 어둡고 그랬어. 백이삭이 다니는 교회에서 일하는 라는 사람이 신사참배를 거부한 일이 있는데, 이 사소한 일로 가 경찰서에 붙들려갔고, 후를 변호하려고 경찰서에 갔던 백이삭 마저 경찰서에 갇히고 말았어. 그게 끝이 아니라, 경찰서에 갇힌 후 백이삭의 소식은 전혀 들을 수 없었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몰랐어. 식구들은 원래 건강이 좋지 않았던 백이삭의 건강을 걱정했지만, 백이삭의 상황을 알 수 없어서 더 답답했단다.

백이삭의 뒷바라지를 하려다 보니 돈이 필요했고, 백요셉이 벌어오는 돈으로 부족해서 선자와 경희는 김치 장사를 시작했단다. 이 일에 대해 백요셉이 크게 화를 내면서 반대했어. 백요셉은 상당히 가부장적이고 유교적인 가장이었어. 그래서 경희는 집에서 김치를 만들기만 하고, 선자가 밖에서 김치를 팔았어. 그들의 김치가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큰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창호라는 동포로부터 자신의 식당에 전속으로 김치를 공급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어. 그래서 이제 안정적인 수입을 얻게 되었단다. 하지만 여전히 백이삭의 소식은 알 수 없었어.


3.

또 시간이 흐르고 1942. 어느날 폐인이 된 백이삭이 돌아왔어. 죽을 것 같으니까 경찰서에 풀어준 것 같았어. 식구들이 열심히 백이삭을 간호하고 보살펴 주었지만 결국 백이삭은 죽고 말았단다. 백이삭이 죽고 2년쯤 지난 뒤에 고한수가 선자를 찾아왔어. 고한수는 일본인 장인어른과 함께 대금업을 해서 큰돈을 벌고 있었어. 사실 그동안 선자 식구들을 몰래 도와주고 있었어. 김치를 팔아준 김창호도 고한수의 수하였고, 김창호가 선자네 김치를 산 것도 고한수가 시켜서 그런 것이었어. 선자는 고한수의 도움을 거부하려고 했지만, 그의 도움을 마냥 피할 수는 없었단다. 전쟁으로 일본의 경제 사정이 안 좋아지자, 백요셉은 나가사키로 돈 벌러 갔단다. , 하필 나가사키였을까. 그곳은 얼마 후에 핵폭탄이 떨어지는 곳인데 말이야.

고한수는 어디서 정보를 입수했는지 얼마 안 있으면 큰 전쟁이 난다면서, 오사카를 피해 시골 농장으로 피해야 한다면서 선자 식구들을 설득해서 그들 모두 농장으로 이사 갔단다. 정말 전쟁으로 오사카는 폐허가 되어서 당분간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어. 전쟁이 끝나고 백요셉이 돌아왔는데,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으로 반신불구가 되어 돌아왔단다. 목숨을 건진 것이 다행이었는데, 이후 백요셉은 신경질을 자주 부르고 예민해져서 식구들이 무척 고생했단다. 특히 경희가 무척 힘들어했어.

….

고한수는 부산에 가서 선자의 엄마 양진을 모셔왔어. 양진과 선자는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단다. 1949, 그들은 다시 오사카로 왔어. 고한숙의 도움으로 다시 집을 지었단다. 그들은 조선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그쪽의 사정이 좋지 않아 일단 여기 있으라는 고한수의 설득에 머무르기로 했어. 선자의 아들 노아도 부쩍 커서 노아의 교육도 생각해야 하지 않냐고 했거든

여기까지 <파친코> 1권의 이야기란다. 소설 속 시간의 흐름의 빠르게 전개되더구나. , 원래 시간이란 것이 엄청 빠르게 흘러가니까선자 식구들은 일단 일본에 머무르기로 결정을 했는데, 과연 조국에 돌아갈 수 있을까. 2권에서 그 뒷이야기들을 해줄게.


PS:

책의 첫 문장: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책의 끝 문장: 김창호는 경희를 사랑하는 고통을 끝낼 수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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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04 01: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2부에서는 자손들의 이야기가 시작 되나 봅니다

수년전 킨들로 휘리릭 읽었는데 첫문장만 기억 하고 있습니다 ㅎㅎ

작가의 부모님도 실향민 출신이고 남편분이 일본계 미국인이라고 하네요 ^ㅅ^

bookholic 2021-09-04 06:24   좋아요 4 | URL
네.. 첫문장이 강렬하긴 하죠..^^
2부에서는 말씀하신 것처럼 자손들의 이야기가~~
즐거운 주말 되시고요!!!
 















(13)

임진왜란은 1592 4 13일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700여 척의 배가 부산 앞바다에 나타나면서 시작되어 1598 11월 종결되기까지 동아시아를 뒤흔들었다. 그 영향도 지대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전란이 끝난 뒤 명과 일본 모두 왕조나 정권이 교체되었다는 것이다. 그전부터 침체했던 명은 참전 뒤 더욱 허약해졌고 결국 멸망했다. 일본에서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막부를 수립했다. 도쿠가와 막부는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무너질 때까지 250여 년간 존속하면서 일본의 중세를 이끌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전쟁터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조선은 쓰러지지 않았다. 전쟁 이후 조선은 체제를 수습했고, 그동안 지내온 것보다 더 오랜 기간을 존속했다.

 

(20)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낙관에는 일본 군사력에 대한 낮은 평가도에 꽤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얼마 전에 선조가 신하들을 불러서 의논을 했대요. ‘일본이 진짜 침략할 것 같나?’ 그랬더니 한 신하가 웃으면서, ‘일본은 배 한 척에 100명밖에 못 싣고, 배는 많아봐야 100척 밖에 동원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대요. 그런데 실제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에 동원하도록 지시한 배는 2000척 가까이 됐던 거죠. 조선은 이렇게 일본의 군사력을 한참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즈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국서를 보내왔어요. 그런데 조선 입장에서는 그 국서의 내용이 굉장히 오만방자하게 느껴졌던 거죠. 여기 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가 태몽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를 태양의 아들이라고 칭한 부분도 있고, 또 자기가 전쟁을 하면 지는 일이 없다면서 자신감을 넘어 오만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거든요.

 

(26)

일본인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성격을 이야기할 때 항상 하는 얘기가 있죠. 어떤 사람이 두견새를 선물로 줬는데 이 새가 울지를 않는 거예요. 그러면 이 새를 어떻게 할까에 대해 일본에서 유명한 장군 세 명, 즉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답이 다 달라요. 1번 울지 않으면 죽여버린다. 2번 어떻게든 울게 만든다. 3번 울 때까지 기다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어디에 해당할까요?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면 2번 아닐까요? 어떻게든 울게 만든다.

맞습니다. 정답은 2번이에요. 어떻게든 울게 만든다는 말이 그의 성향을 굉장히 잘 보여 주죠. 새 앞에서 재롱을 부리든 새를 놀라게 하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새를 울게 만드는 거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목표가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것을 이루고 마는 집념의 소유자였다고 해요.

재미있는 문제네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성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인물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아요. 그러면 나머지 두 명은 어떻게 대답했어요?

오다 노부나가는 1울지 않으면 죽여버린다에 해당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49)

송상현이 동래부사로 부임한 게 임진왜란 1년 전인 1591년입니다. 동래부사는 지금으로 치면 부산시장 정도 되는 자리죠. 송상현은 부임과 동시에 성 주변에 나무를 심습니다. 나무가 성책(城柵) 역할을 하도록 한 거죠. 송상현은 또 군사 훈련을 철저하게 시켰다고 합니다. 이때가 꽤 평화로운 시대였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조치죠. 그러므로 송상현은 일본군의 침략을 예견했거나 적어도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유능한 인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91)

어떤 면에서 이순신 장군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쟁을 준비해요. 조금이라도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있으면 곤장을 때리기도 했고요. 당시 이순신 장군의 부하들은 불만을 가졌을지도 몰라요.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왜 우리한테 맨날 전쟁 준비시키고 함부로 곤장 때리고 그러냐?’ 이런 불만이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 그런 걸 보면 이순신 장군은 확실히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 같아요.

 

(92)

두 사람은 사실 처음부터 관계가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허균의 책을 보면 두 사람이 같은 동네 출신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원균은 부친이 수군절도사까지 지낸 무반 가문 자손이고, 이순신은 할아버지 때까지 굉장히 잘 나가던 문반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서로 어울리기 어려운 상황이었죠. 두 사람의 무과 합격 시기도 10년 이상 차이가 납니다. 이순신이 한참 늦게 합격했죠. 그런데 임진왜란 직전에 이순신이 종6품인 정읍 현감에서 정3품 전라좌수사까지 일곱 품계가 오르는 초고속 승진을 하고, 계속 승승장구하잖아요. 본래 이순신보다 훨씬 높은 직급에 있었던 원균으로서는 그런 이순신이 탐탁지 않았겠죠.

 

(106)

의병은 경상도 지역에서 가장 많이 일어났죠. 우선 경상도 3대 의병장으로 곽재우, 정인홍, 김면이 있습니다. 호남 의병장으로는 고경명, 김천일 등이 있고, 지금의 충청도 지역인 호서 의병장에는 조헌, 영규가 있죠. 금강산에서 활약한 사명대사 유정과 함경도의 정문부 장군도 빼놓을 수 없고요. 이렇듯 의병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 일본군에게 타격을 가했어요. 그러므로 의병의 봉기는 수군의 승리와 더불어 전쟁의 흐름을 바꾼 핵심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54)

그 재조지은이라는 말을 들으면 너무 화가 나요. 대체 누가 나라를 구했습니까? 나라를 구한 건 조선의 백성들이에요. 그러면 백성을 섬겨야지 이게 무슨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그런 걸 보면 선조는 그토록 참혹한 전쟁을 치르고도 배운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전쟁 후에도 제대로 된 국가 시스템을 만들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어요.

 

(166)

류성룡과 이순신은 언제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가요?

어린 시절부터 관계가 있었다고 합니다. 흔히 두 사람이 친구라고 생각하는데 류성룡이 세 살 많아요. 사실 류성룡은 이순신 장군의 형님과 친구였어요. 이순신 장군은 사형제 중 셋째인데, 제일 윗형님 이름이 복희씨의 신하, 희신입니다. 그다음에 중국 제일의 성인으로 치는 분이 요 임금, 순 임금이죠. 그래서 바로 윗형님 이름이 요신이에요. 이 형님하고 류성룡이 친구 관계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순 임금의 신하라는 뜻으로 순신이죠. 그러나 이순신 장군 동생 이름은 뭘까요?

이순신 장군의 동생도 있어요?

, 요순 다음으로 하나라의 우임금이 유명하죠. 치수(治水)를 잘했던 분이요. 이 우임금의 신하라는 뜻에서 동생 이름은 우신이에요.

 

(168-169)

손바닥도 하나로는 소리가 나지 않잖아요. 이순신이 그토록 큰 전공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 덕분이었습니다. 하나는 경상도 지역의 의병이죠. 곽재우를 비롯해서 김면, 정인홍 등이 낙동강 지역을 굳게 지킴으로써 왜적들이 진주를 거쳐 전라도로 진출하는 것을 저지했고, 덕분에 후방 기지를 든든하게 확보할 수 있었죠. 두 번째는 류성룡이 조정에서 든든한 지원자 역할을 해 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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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01 17: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이책에 언급된 인물들중에 저의 집안 선조가 ㅋ ㅋㅋ 나라를 지켰냈다는 뿌듯함 북홀릭님 페어퍼에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네요 ^^

bookholic 2021-09-01 19:52   좋아요 3 | URL
ㅎㅎ 누굴까요? 궁금~~^^
scott 조상님~~ 나라를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