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아가씨 페이지터너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남기철 옮김 / 빛소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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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들을 얼마 읽지는 않았지만, 읽은 책들이 모두 괜찮아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들을 하나 둘 사두었는데, 얼마 전 신간 코너에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새로운 책을 알게 되었단다. 책 표지는 또 어찌나 매혹적인지매혹적인 사진과 잘 어울리는 책 표지는 지은이가 슈테판 츠바이크임을 몰라도 구매욕구를 잔뜩 당기는 디자인이란다. 그래서 저절로 지갑이 열렸고, 정신을 차려보니 책이 집에 도착해 있었단다. 그리고 바로 읽었는데, 먼저 읽은 이들의 평점이 almost ten인 이유를 알겠더구나. 이야기의 전개가 깔끔하면서도, 베껴 쓰고 싶은 글들이 여기저기 포진하고 있으면서도 아빠가 읽은 츠바이크의 책들 중에 가독성이 가장 좋았단다.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마무리 부분열린 결말이라고 생각해도 좋겠지만, 츠바이크 님이 이 소설의 마무리를 짓지 못하신 것 같구나.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슈테판 츠바이크는 스스로 삶을 마감했단다. 그가 세상을 등지고 나서 이 원고가 발견이 되었고, 한참 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가 그가 떠난 지 40년이 지난 1982년 독일에서 먼저 출간되어 큰 히트를 치고, 그 이후 전세계로 퍼져나갔단다. 그가 스스로 삶을 마감하지 않았다면 이 소설의 이야기는 어떻게 마감이 되었을까, 궁금하구나. 소설 밖의 이야기는 아쉽지만 읽는 이들의 몫으로아무튼 이 소설을 읽고 슈테판 츠바이크의 찐팬이 되기로 했단다.


1.

1926년 오스트리아. 1914년부터 1918년 세계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같은 편이었단다. 그들은 전쟁에서 지고 말았어. 전쟁의 패배는 오스트리아를 폐허로 만들었고, 경제 등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이 무너졌단다. 오스트리아 전체에 걸쳐 푹 내려앉은 분위기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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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5)

관료주의 특권계급이 신성시하는 이 사무 공간에서는 눈에 띄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성장쇠퇴라는 영원한 법칙이 이곳에서는 관료주의의 높은 장벽에 가로막혀 적용되지 않는다. 우체국 건물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자. 나무들은 봄에 꽃을 피우고 가을이 되면 앙상한 가지만 남는다. 아이들은 자라고 나이가 들면 백발이 되어 죽음을 맞이한다. 건물이 낡으면 허물어져 새 건물이 들어선다. 그런데 이 나라 관료주의는 항상 똑 같은 것만 고집하고 세속의 권력을 과시하고 있다. 우체국 비품이 소진되었거나 분실되었거나 변형되었거나 훼손되었으면 상급 관청에 요청한다. 그러면 역시 빠르게 변해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막강한 권력의 본때를 보여주는 것이다. 내용이 되는 알맹이는 없고, 형식이라는 껍데기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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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은 모두 가난과 싸우며 하루 먹거리를 걱정하며 살아갔단다. 주인공 크리스티네도 마찬가지였어. 전쟁 전에는 유복한 집안에서 지냈지만, 전쟁이 집안을 모든 것을 뒤바꾸어 놓았단다. 오빠는 참전했다가 전사하였고, 그 충격인지 아버지도 1917년 갑자기 돌아가셨어. 언니는 결혼하여 빈에서 살고 있었고, 크리스티네는 병든 엄마와 단둘이 시골에 좁은 집에서 살고 있었단다. 아는 사람을 통해서 우체국에 다니고 있었지만, 크리스티네의 낙은 아무것도 없었어. 그저 집과 우체국을 왔다 갔다 할 뿐이야. 28, 한창 꾸미고 다닐 나이였지만, 우중충한 옷으로 시체처럼 지내고 있었단다.

그런데 어느날 미국에 사는 이모가 스위스에 여행 왔다면서 엄마에게 놀러 오라고 했으나, 편찮으신 엄마는 갈 수가 없었어. 그 대신 크리스티네에게 다녀오라고 했어. 엄마도 딸이 자신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는 것에 보기 안쓰러웠겠지. 클레르 이모는 미국에서 사업을 남편과 살고 있었고 무척 부자였다는 것만 알고 크리스티네는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단다. 그렇게 크리스티네는 우체국에서 일하면서 처음으로 휴가를 쓰고 처음으로 여행을 하게 되었단다. 그 동안 쓰지 않은 휴가가 쌓여 2주 동안 스위스에 지내기로 했어.

크리스티네는 기차를 다고 스위스에 있는 호텔에 도착을 했는데, 그곳은 딴 세상이었단다. 자신이 입고 온 옷은 너무 누추해서 눈에 띠었어. 난생 처음 조카를 만난 이모와 이모부는 반갑게 맞아주었고, 크리스티네는 휴가 동안 묵을 자신의 방을 보고 깜짝 놀랐단다. 추레한 자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하고 큰 방이었어. 이모는 크리스티네를 데리고 가고 옷도 새로 입히고, 화장품도 새로 사주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도 다듬게 했단다. 이런 봉사를 받는 것이 얼마만인지 그리고 변신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단다. 크리스트네는 그렇게 꾸미고 나니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어. 그리고 원래 얼굴도 좀 예뻤거든.

그날 저녁 식사 연회의 주인공은 크리스티네였단다. 연회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젊고 예쁜 뉴페이스 크리스티네에게 관심을 가졌어. 춤을 청하고 잘 보이려고 했어. 크리스티네는 하루 만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된 자신에 놀라면서도 행복했단다. 이모부와 이모의 성이 반 볼렌이었는데, 사람들은 크리스티네가 그들 일가인 것으로 알고 크리스티네 반 볼렌으로 알았다가 크리스티아네 판 볼렌으로 부르기 시작했단다. 노신사 앨킨스 경과 독일 엔지니어 등 크리스티네에게 구애하는 이들도 있었단다.

이런 급변한 상황에 대해 크리스티네는 약간은 당황하면서도,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았어 며칠 전만 해도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던 우체국 여직원이었는데 말이야. 이곳에서 생활은 크리스티네를 새로 태어나게 했단다. 사교계에 잘 적응하여 누구와도 잘 지내고 이 순간을 잘 즐겼어. 그리고 지금의 이 모습이 자신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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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149)

도대체 나는 누구지? 수년 동안 사람들이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나쳐 갔지. 오래도록 시골 마을 우체국에 앉아 있었는데도, 아무도 뭐 하나 챙겨주거나 걱정해 주지 않았잖아. 고향 사람들 모두 너무 가난하다 보니 빈곤함에 지쳐 의심만 늘게 된 걸까? 아니면, 내가 갑자기 매력적인 여자로 변했나? 지금까지 밖으로 표출되지 못했던 매력이 이제야 나타났나? 내가 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예쁘고 똑똑하고 매력적인데 다만 그렇게 믿을 만한 용기가 없었던 것 아닐까? , 나는 누구인가? 진정한 나는 어떤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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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너무나 즐거운 나머지 엄마에게 안부를 전하는 것까지 잊고 있었단다. 그로 인해 이모로부터 질책을 받기도 했어. 엄마한테 온 편지들도 읽지 않았다가 그제서야 편지를 꺼내 보았어. 엄마가 아프셔서 편지도 이웃에 사시는 분이 대신 보내주었단다. 크리스티네는 엄마에게 편지를 써야지, 다짐하였는데 또 다시 유혹에 빠져 야밤에 외출하고 술을 먹고 늦게 들어왔단다.


2.

사교계에 갑자기 떠오른 별과 같은 크리스티네, 그녀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왜 없었겠니. 비슷한 나이 또래의 여자들이 크리스티네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내기 시작했어. 그녀의 성()은 알려진 것처럼 판 볼렌이 아니고, 상류층이 아닌 하류층의 사람이라는 소문들 퍼뜨렸어. 이런 소문이 퍼지는 것은 삽시간, 다들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어. 이모도 이런 소문을 모르고 있다가 앨킨스 경이 찾아와 소문에 대해 알려주었단다. 이모는 솔직히 이야기를 했어. 전쟁 전까지는 잘 살았는데, 전쟁 이후 어렵게 살고 있다고그리고 자신의 친조카는 맞다고 했단다.

앨킨스 경은 그녀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잘 대해주었지만, 소문은 가라앉지 않고 안 좋게만 커져갔단다. 이미지를 중요시 생각하고, 이모의 숨기고 싶은 과거까지 밝혀질까 봐 이모는 결국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수 없다고 생각했어. 그러면서 이모부와 함께 인터라켄으로 갈 테니, 크리스티네에게 이제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단다. 원래 2주간의 휴가였으니 집으로 조금 일찍 가는 것이 이상한 것도 아닌데, 그동안 크리스티네는 많이 변해서 갑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진거야.

집으로 가는 것은 곧 죽음이라는 생각이 든 크리스티네는 자신에게 호감을 가졌던 독일 엔지니어를 찾아가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지만, 거절 당했단다. 그도 소문을 들은 거지결국 다음날 올 때 입고 왔던 추레한 옷을 입고 집에 들어왔단다. 여행을 가기 전에 겉모습과 같은데, 더 이상 예전의 자신이 아니었단다. 하지만 암울한 현실은 여전히 같았어. 간발의 차이로 임종을 보지 못한 엄마는 돌아가셨어. 그녀가 오자마자 장례식을 치렀어. 언니, 형부, 올케 등이 왔는데 장례식 끝나자마자 엄마의 유품을 나누자는 이야기에, 가난에 대한 증오로 치솟았단다. 폭발 직전. 하지만 크리스트네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어.

예전의 우체국 아가씨 생활을 시작했지만, 참을 수 없었어. 이것이 자신의 본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 거야. 자신의 본모습은 스위스 호텔에 있는 그 모습이라는 거지. 주변 사람들에게 이유 없이 화를 내고, 사소한 일에 짜증을 내고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 이 숨막힘을 참지 못한 크리스티네는 무작정 빈으로 갔단다. 이 시골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으로스위스에서 이모부가 준 현금이 조금 있었는데, 그 현금을 들고 무조건 빈으로 갔단다. 빈에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지만, 크리스티네는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없었어. 집에 오는 길에 언니 집에 들렀는데, 형부 프란츠의 옛 전우 페르디난트가 우연히 찾아와 크리스티네도 함께 자리를 했단다. 형부와 페르디난트는 여자들이 싫어하는 이야기 1위인 군대 이야기, 전쟁 이야기로 이야기 꽃을 피웠단다.

언니에 집에서 나와서 집에 돌아가야 했지만, 크리스티네는 페르디난트와 좀더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어. 이후 일요일마다 그들은 데이트를 시작했단다. 가난한 연인들이라고 할 수 있었지. 만나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어. 카페에서 만나거나 같이 길을 걷거나


3.

그러던 어느날 우체국으로 찾아온 페르디난트. 헤어지자고 폭탄 선언을 했어. 사실 자신의 미래는 암울하고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없기 때문에 자살하려고 했대.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크리스티네도 자신의 미래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같이 자살하자고 했단다. 그 대신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최고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자살하자고 했단다.

그날 저녁 퇴근 시간에 맞춰 다시 우체국으로 온 페르디난트. 크리스티네가 큰 돈을 다룬다는 것을 알고는 새로운 제안을 했단다. 죽지 말고 그 돈을 갖고 가서 새로운 세상에서 살자고 말이야. 크리스티네는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고, 그것은 나쁜 짓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페르디난트는 죽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고, 자신들이 이렇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국가이니, 그 책임도 국가에 있다고 이야기했어. 그리고 자신들이 훔치려는 이 돈도 국가의 돈이니, 그 보상을 스스로 받아내는 것이라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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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289)

그래, 우리는 참 불행한 시대에 태어났어. 어떤 의사도 6년간의 젊음이 육체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을 치료할 수는 없어. 누가 내 젊음을 보상해 주지? 국가가? 그 고위층 사기꾼들이? 그 고위층 도둑놈들이? 40명이나 되는 장관 가운데 단 한 사람만이라도 대봐. 법무부 장관? 복지부 장관? 산자부 장관? 공정하게, 사리사욕 없이 정말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고급 공무원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이름을 대봐. 그들은 우리를 전쟁으로 몰아넣고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하고, ‘황제 만세!’를 외쳤어. 물론, 지금은 다른 걸 들려주고 있지. 진흙탕에서 보니, 세상이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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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이 틀린 것 같지 않았어. 하지만 크리스티네는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며칠을 고민 끝에 페르디난트의 계속에 동의했어. 페르디난트는 완전범죄를 꿈꾸기 위해서, 사전에 알리바이도 충분히 만들고 어떻게 훔칠 것인가, 훔치고 나서 어떻게 움직이고 행동하는지 아주 세세하게 계획표를 만들었단다. 일명 우체국 현금 절도 계획서라고 해서 분량이 꽤 되는 계획서를 만들었단다. 알고 봤더니 페리디난트, 이 사람 엄청 꼼꼼한 사람이구나.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잘 할 것 같은데, 그의 말대로 국가가 잘못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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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

나도 그걸 알면 좋을 텐데. 계획서는 빠진 것이 있을 거야. 모든 범죄에는 구멍이 있지. 하지만 어디에 허점이 있는지 미리 알 수는 없어. 아무리 꼼꼼한 범죄자라도 예외 없이 사소한 실수를 하게 마련이야. 문서란 문서는 전부 없애버리고는 어리석게도 여권을 남겨놓는다든가 하는 실수 말이야. 온갖 장애물을 다 고려하지만 가장 분명하고 틀림없는 장애물은 간과하게 되지. 뭔가 한 가지를 꼭 잊어버려. 아나 나도 가장 중요한 사항을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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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테도 그 계획서가 마음에 들었고, 다시 한번 함께 이 일을 하자고 하면서 소설을 끝이 났단다.

아빠가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지 못해서 아빠의 편지만 읽고는 이 소설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안 들지 모르지만, 아빠는 읽는 내내 재미있었단다. 아빠가 책 추천을 잘 안 하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까지 했단다. 아빠는 사실 이 작품이 미완성으로 추정되는 유작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읽었어그래서 책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야기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이상하다 싶었단다. 뒤늦게 역자 후기를 읽어보고 이 작품이 유작이고 미완성으로 추정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만약 지은이 슈페탄 츠바이크가 그 뒷이야기를 이어갔다면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갔을까? 궁금하구나. 그리고 이 작품이 나온 지 꽤 되었는데, 다른 작가가 이 이야기의 속편을 써 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크리스티네는 충분히 매력적인 주인공인데, 이 뒷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어떤 뛰어난 작가가 이 소설의 속편을 함 출간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아빠는 뒷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한번 생각해 봐야겠구나. 나중에 너희들도 이 책을 읽게 되면, 크리스티네와 페르디난트의 뒷 이야기를 한번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구나.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오스트리아의 마을 우체국은 어디를 가나 비슷하다.

책의 끝 문장: “좋아, 한번 해보자!”


웅장한 대자연을 바라보며 여자는 마치 땅을 갈아엎는 쟁기처럼 인간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 여행의 힘을 실감했다. 여행은 일상의 삶에 익숙해져 단단하게 굳어버린 영혼의 껍질을 단번에 벗겨버리고, 저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변신을 향한 욕망에 언젠가 열매가 열릴 씨앗을 심어놓는다. - P60

곧 자명종이 울릴 거야…… 다시 잠들면 안 돼…… 책임감! 책임감을 잊어선 안 돼! 당장 일어나자. 여덟 시에 업무가 시작되잖아. 그전에 일어나서 불 피우고 커피 끓이고, 우유와 빵 사 오고, 방을 정돈하고, 어머니 붕대를 갈아주고, 점심 식사 준비도 해놓아야 하잖아? 오늘은 해야 할 일이 더 있었는데…… 아! 맞아. 식료품 가게 여주인이 어제 외상 갚으라고 했었지…… 안 돼, 자면 안 돼. 정신 차리고 자명종이 울리면 일어나야 해…… 그런데 오늘은 무슨 문제가 있나? 자명종이 울리질 않아…… 고장 났나? 태엽 감아 놓는 걸 깜빡했나? 자명종 어디 있지? 방 안에 빛이 벌써 환한데…… - P112

심장은 격렬하게 고동쳤고, 언제라도 날아오를 듯이 상쾌했다. 끊임없이 부풀었다가 가라앉는 가슴은 마치 감전된 듯한 전율을 손가락 끝까지 전해주었다. 이상하고, 강렬하고,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호기심에 이끌려 이제는 오히려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들었고, 갑자기 몰아닥친 강풍에 날리듯 여기저기로, 안으로 밖으로, 위층과 아래층으로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계단을 오를 때도 한 번도 한 계단씩 오르지 않았다. 뭔가를 잊은 사람처럼 마음이 들떠 늘 세 칸씩 뛰어올랐다. 놀고 싶은 충동과 애정과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너무 강해, 손은 늘 사람이든 물건이든 무언가를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따금씩 양팔을 활짝 펼치고 먼 곳을 향해 터져 나오는 웃음과 환호를 가까스로 참아야 했다. - P141

정상에 선 사람은 세상을 제대로 내려도보지 못하고, 행복에 겨운 사람은 남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법이다. 실제로 고생해본 사람만이 어떤 일에나 방심하지 않고, 늘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렇게, 직감적으로 위협을 감지하는 능력이 생기고 남보다 더 영리한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다. - P176

어떤 물질이든 외부에서 가해지는 열에 의해 온도가 올라갈 때 그 물질 고유의 임계점이 있다. 그 지점을 지나면 아무리 열을 가해도 온도가 올라가지 않는다. 물이 끓는 비등점이 있고 쇠가 녹는 용해점이 있듯이, 정신도 똑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행복감 역시 절정에 이르면 더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고통, 절망, 굴욕, 혐오,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그릇에 물을 부을 때 가득 차면 더는 부을 수 없는 것과 같다. - P234

여자는 매일 아침 증오심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여자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보는 것은 연기에 그을린 다락방 천장의 대들보였다. 낡은 침대, 싸구려 누비이불, 등나무 의자, 깨진 물주전자가 놓여 있는 세면대, 벗겨진 벽지, 판자가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모든 것이 지지리도 궁상맞고 흉측했다. 차라리 눈을 감고 캄캄한 어둠 속에 파묻혀 있고 싶었다. 하지만 자명종 소리는 여자의 귓전을 때리며 그런 작은 바람조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일어나 신경질적으로 옷을 입었다. 해진 속옷, 역겨운 검은색 원피스…… 원피스의 소매는 이미 오래 전에 찢어졌지만, 귀찮아서 내버려 두었다. - P253

"나는 누구한테도 불평하지 않았어.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쉬지 않고 불평했던 사람은 언니였어. 그리고 스위스는…… 내가 누리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접 내 눈으로 똑똑히 봤기 때문에 내게도 할 이야기가 있는 거야. 나는 우리가 무엇을 빼앗겼는지를 이제야 알았어. 내가 그것을 보지 못했다면, 전쟁이 내게서 무엇을 빼앗아 갔는지, 우리를 어떻게 망가뜨렸는지조차 모르고……"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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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그는 도서관의 고서 보관실에서, 칠레가 1810년에 독립하면서부터 이민자들에게 문호를 활짝 개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백 명이나 되는 이민자들이 태평양을 끼고 길고 가느다랗게 뻗어 있는 그 나라에 정착했다. 영국인들은 상인이나 무기상을 하며 많은 돈을 벌었으며, 그중 많은 사람들은 가족들과 함께 그곳에 정착했다. 영국인들은 자기들만의 관습과 신앙, 신문, 클럽, 학교, 병원까지 갖추어, 칠레 안에 자그마한 국가를 형성했다. 그렇지만 괄목할 만한 좋은 성과를 이루었기 때문에, 반감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오히려 문명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들은 태평양의 해상 교통을 장악하기 위해 발파라이소에 정착했으며, 발파라이소는 공화국 초반기만 해도 별다른 발전도 없이 가난한 한 시골 부락이었지만 2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중요한 항구로 변모했다. 그곳에는 남미 최남단에 위치한 혼 좃을 거쳐 대서양에서부터 들어오는 범선들이 정박했으며, 나중에는 마가야네스 해협을 통과하는 증기선들도 정박했다.


(82)

엘리사, 나는 남자들과 똑같이 자유를 누릴 수만 있다면 내 인생을 절반이라도 뚝 잘라서 주겠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자고 지긋지긋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단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나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얼마 되지 않는 걸 이용해서 최대한 이익을 뽑아내는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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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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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랜만에 유시민 님의 신간이 나왔단다. 지금까지 쓰신 책들과 결이 다른 책이었어. 책 제목에 이미 어떤 책인지 알려주는구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아빠는 처음에 제목을 슬쩍 봐서, <문과 남자의 이과 공부>인줄 알았단다. 나중에 다시 책을 검색을 해보니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더구나.

유시민 님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다녔단다. 지금과는 다르겠지만, 서울대 경제학과를 들어가려면 문과이긴 하지만 수학과 과학도 공부를 꽤 잘해야 할 것 같은데, 유시민 님은 수학과 과학은 잘 못했다고 하더구나. 그래도 시험은 잘 봐야 하니까, 많은 문제를 풀어 패턴을 외워서 시험을 풀었다고 했어. 난관이 있으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해결책을 찾으셨구나. 유시민 님의 부인되시는 한경혜 님은 유시민 님이 그렇게 취약하다고 한 수학을 전공하셨다고 하는구나. 그것도 박사까지 밟으셨대. 이번 책의 기획은 그런 아내 분께서 제안을 해서 시작했다고 하는구나. 유시민 님께서 과학 분야의 책들도 여럿 읽었으니 그런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보라고 말이야.

아빠가 생각하는 유시민 님의 장점은 어떤 내용에 대해서 먼저 자신이 이해를 하고 그 내용을 논리적으로 쉽게 잘 전달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단다. 유시민 님께서 과학 분야는 잘 모른다고 했지만, 읽으신 과학 책에 대한 내용은 잘 정리해서 이야기해줄 거라 생각했단다. 이 책에서 소개한 교양 과학책들 중에는 아빠도 읽은 책들도 여럿 있었단다. 아빠는 그 내용만 이해하려고 노력을 했는데, 유시민 님께서는 그 내용을 인문학적 영역으로 확장해서 설명을 해주셨단다. 역시 유시민 님이구나.

그냥 과학책의 리뷰로 끝났다면 다른 독서 리뷰책과 다를 바 없었을 텐데, 유시민 님의 색깔을 덮여 놓으니 색다른 장르의 책이 하나 나온 듯싶었단다. 이번에는 과학과 인문학의 콜라보였는데, 다음에는 또 다른 분야, .. 예를 들어 예술과 인문학의 콜라보이런 소재로도 책을 써보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1.

예전에 인문학 교양을 겸비한 엔지니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들이 있었단다. 그런데 그 반대로 과학 교양을 겸비한 인문학자는 좀 낯설구나. 유시민 님은 인문학의 위기를 과학 공부를 하는 인문학자가 없다는 데서 보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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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인문학이 진짜 위기에 빠지는 경우는 단 하나뿐이다.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은 때다. 나는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가 아닌지 의심한다. 이 말을 하고 싶어서 굳이 과학 공부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인문학 위기론을 꺼냈다. 나는 인문학자가 과학을 공부하지 않고 과학자들이 찾아낸 사실을 활용하지 않는 데서 인문학의 위기가 싹텄다고 본다. 운명적 문과로서 인문학 책만 읽으며 살았던 내가 요즘은 인문학 책이 재미없다. 강력한 지적 자극을 받은 경우가 드물다. 무엇인가를 새로 아는 즐거움을 주거나 오래된 생각을 교정하도록 격려한 것은 과학 책이었다. 설마 나만 그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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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과학 공부를 하는 가이드도 함께 이 책을 통해서 주었단다. 우리 같이 일반 사람들은 과학 전공까지 볼 필요는 없다고 하고 교양 과학 서적과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의 유튜브만 봐도 충분하다고 하셨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분야는 순서대로 뇌과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수학 순으로 이야기를 주고 있단다. 뇌과학에서는 나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뇌과학 측면에도 이야기를 해보았단다. 뇌과학 측면에서는 나는 내일 바뀔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단다. 그리고 아빠와 같은 나이에서는 점점 퇴화하고 있다고 하는구나. 살아온 날이 많아지는 만큼 데이터는 쌓이지만 뇌는 어리석어진다고…. 늘어나는 데이터와 어리석어지는 뇌를 잘 조합해야 꼰대가 되지 않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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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100)

뇌과학자들이 내게 용기를 주었다. ‘뉴런은 서로 연결함으로써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만들어내고, 사람의 생각과 행동과 거꾸로 뉴런의 연결 패턴에 영향을 준다.’ 자아가 뇌에 그저 깃들어 있는 게 아니라 뇌를 형성하고 바꾼다는 말이다. 물질이 아닌 자아가 물질인 뇌를 바꾼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내 뇌는 매순간 퇴화하고 있다. 내 자아는 날마다 어리석어지는 중이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조금이라도 덜 어리석어지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내 뇌의 뉴런이 순조롭게 다양한 연결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책을 읽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공감하고 세상과 연대하며 낯선 곳을 여행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뇌에 새로운 데이터를 공급하는 것뿐이다. 어리석어지는 속도를 늦추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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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생물학 분야에서는 생물학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책인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대해서 이야기를 한단다. <종의 기원>은 우리가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과학적 고찰인데 정치인들은 이것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려고 했단다. 우파는 <종의 기원>을 오남용해서 약자들을 그냥 두라고 이야기하고 극단적인 우생학을 만들어내기도 했고, 좌파는 <종의 기원>을 배척했는데 그 이유는 우파가 <종의 기원>을 지지했기 때문이라고 하더구나. 다윈주의를 제대로 이해할 생각은 하지 않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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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다윈의 이론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보다 더한 시련을 겪었다. 누구는 진화론을 오용(誤用)해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질렀고, 누구는 진화론을 사회에 나쁜 영향을 준 이론이라 비난하고 배척했다. 오용한 쪽은 우파’, 배척한 쪽은 좌파. 우파와 좌파를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다윈주의와 관련해서는 그나마 수월하게 구별할 수 있다. 우파는 생존경쟁을 피할 수 없는 자연법칙으로 간주하고 격차와 불평등을 발전의 동력이라고 옹호하며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정책에 반대하는 개인과 집단이다. 좌파는 사회적 약자, 착취당하는 사람들,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인가 하려는 개인과 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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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 관련해서 소개한 또 다른 책은 <이기적 유전자>란 책이야. 이 책은 아빠도 예전에 읽어봤는데, 번역이 좋지 않은 판본으로 읽어서 안 좋은 기억만 남았는데, 그 책의 요점은 유전자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를 조종한다는 내용이야. 유전자 자신들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 몸은 유전자의 생존 기계라는 것이지. 유전자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소수의 희생도 감수한다고 것도 기억이 나는구나. 이런 유전자의 가설에 있어 유전자들이 모인 개체들이 간혹 취하는 이타주의를 입증해야 하는데 그것도 유전 연관도라는 내용으로 증명을 했다고 하는구나. 그러니까 개체가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도 유전자 입장에서는 이득이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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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오해할까 봐 다시 강조한다. 유전자는 친족이타주의를 설계하지 않았다. 유전자는 그 무엇도 설계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를 복제할 뿐이다. 일꾼개미와 여왕개미의 분업은 유전적 우연과 자연선택이라는 필연의 산물이다. 대부분의 동물이 출산과 양육을 위해 헌신하도록 진화한 것은 자식을 잘 돌보도록 하는 유전자를 가진 개체의 번식 성공률이 그렇지 않은 개체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자연선택은 어떤 종 어떤 개체한테도 특권을 주지 않으며 진화는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식을 돌보는 것과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이 훌륭해서 우리가 그렇게 하도록 진화한 것이 아니다. 해밀턴은 그 모든 형태의 친족이타주의에 유전 연관도라는 생물학적 기초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나는 그 이론에서 물질의 증거를 토대로 대상의 보이지 않는 실체에 다가서는 과학의 매력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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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원소와 원자라는 의미가 헛갈리곤 하는데, 유시민 님도 원소와 원자가 헛갈리셨나 보구나. 원소와 원자의 차이를 정의해 주었단다. 그러면서 원소는 호모 사피엔스, 원자는 한 사람으로 비유하셨는데,

적절한 비유로구나. 나중에 원소가 호모 사피엔스였는지 원자가 호모 사피엔스였는지 헛갈리면, 원자(原子)의 한자에 아들(사람)을 의미하는 한자가 있으니 원자가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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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170)

우주의 모든 물질은 원소(元素)’로 이루어져 있다. 결합해서 어떤 물질의 분자를 이루는 원소는 보통 두 종류 이상이지만 산소, , 다이아몬드처럼 원소가 하나인 물질도 많다. 더 작게 나누면 고유의 성질을 잃는다는 의미에서 물질의 기본 성본인 원소는 원자(原子)와 같고 또 다르다. 물리학 책에는 주로 원자가 나오고 화학 책에는 원소와 원자가 뒤섞여 나온다. 한참을 헤맨 끝에 나름대로 이해했다. 원자는 원소의 한 단위다. 생물학 언어로 하면 원소는 호모 사피엔스, 원자는 한 사람이다. 물질의 성질과 변화를 연구하는 화학자에게는 원소가 중요하고, 미시세계의 역학을 탐구하는 물리학자에게는 원자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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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분야에서는 주기율표에 얽힌 이야기와 탄소와 관한 이야기도 해주었어. 기후 위기로 탄소 농도가 점점 높아져서 골치가 아픈데, 생명체를 이루는 요소에도 탄소는 아주 중요한 원소란다. 아마 우주에서 다른 생명체가 발견된다면 그 생명체도 탄소가 주요 원소일 것이라고 하더구나.

물리학 부분은 주로 현대 물리학에 관한 이야기를 했단다. 현대 물리학의 두 가지 거대한 이론인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 유시민 님이 양자역학의 대중화에 힘을 쓰신 김상욱 교수님과 친분이 있으시니, 양자역학에 대해 더욱 잘 설명해 주시는 것 같았단다. 아빠도 두 분이 함께 나오는 TV 프로그램이나 유튜브를 좀 봤는데 서로 존경하는 눈빛을 보내는 것 같았어.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을 하나로 모으려는 통합이론에 관한 이야기도 있는데, 이 통합이론 또는 통일장이론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언제쯤 밝혀질까. 일반인인 아빠도 무척 궁금하구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아빠도 관심이 많아 다른 책 이야기할 때 여러 번 했으니 오늘은 생략할게.

이 책에서 마지막으로 이야기해준 것은 수학 분야란다. 간단한 수식으로 표현하는 수학의 정리들은 아빠가 봐도 아름답더구나. 예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식이라 부르는 오일러의 공식은 아빠도 인정한단다. 그런 간단하고 공식을 찾고자 많은 수학자들이 있었나 보구나. 수학자들 중에는 특히 괴짜가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하나의 수식, 하나의 증명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이들도 참 많단다. 유시민 님들은 그 중에 몇 명의 수학자들을 소개해 주었는데, 너희들은 수학자가 안 되었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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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

수학을 모르면 우주의 철학을 알 수 없다고 했던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을 받고 피렌체 변두리의 시골집에 갇혀 고통스러운 말년을 보냈다. 수학자들이 가우스에 버금가는 수학 천재로 인정하는 뉴턴은 다른 과학자들과 숱한 연구업적다툼을 벌였다. 가우스는 냉담하고 무지한 아버지 때문에 어린 시절을 고달프게 보냈고 어른이 된 후에는 아내와 두 자녀를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오일러는 백내장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서 생애 마지막 15년 동안 앞을 보지 못했다. 갈루아는 프랑스대혁명에 가담했다가 스무 살에 감옥에 갇혔고 스물한 살에 결투를 하다 목숨을 잃었다. 라마누잔은 우울증으로 자살을 기도했고 극단적 채식으로 건강을 해쳐 서른세 살에 죽었다. 칸토어는 마흔도 되기 전에 우울증에 걸려 수학 연구를 그만두었고 극심한 망상 증세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가 정신병원에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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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짧은 지식으로 과학과 인문학이 잘 어우러진 이런 책의 독서편지 쓰기는 역시 어렵구나.


PS,

책의 첫 문장: 2009년 봄이었다.

책의 끝 문장: 인생의 막바지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이런 아쉬움을 느끼는 문과가 없기를  바라면서 과학에 관한 인문학 잡담을 마친다.


공부에는 너무 늦은 법이 없다는 말, 수학에는 통하지 않는다. 두뇌가 원활하게 돌아가던 젊은 시절에도 되지 않았던 수학 공부가 노년에 접어드는 지금 될 리 없다. 그런 나를 세이건 선생과 도킨스 선생이 격려해 주었다. ‘수학을 몰라도 돼. 내가 인간의 언어로 말해 줄게.’ 나는 그들의 말을 일부 알아들었다. 용기를 북돋워 주는 문장도 만났다. "과학은 단순히 사실의 집합이 아니다. 과학은 마음의 상태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며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실체를 마주 하는 방법이다." 문과라도, 나이를 먹었어도, 과학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 P31

‘나는 나를 알아!’ 흔히 하는 착각이다. 나도 한때는 착각했다. 나는 조용히 방에서 혼자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한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불편하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하다. 내게 잘해주는 사람도 좋지만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이 더 좋다. 부자한테 세금을 거두어 가난한 시민을 돕는 데 찬성한다. 화력발전과 핵발전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육성하는 데 필요하다면 전기요금을 더 낼 의향이 있다.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려고 배달 음식 주문을 삼간다. 외모를 꾸미는 데 돈 쓰기를 주저한다. 기도를 들어주는 신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후 세계, 지옥과 천국, 윤회, 육체와 분리된 영혼, 구원, 영생 같은 것을 믿지 않는다. 지성을 뽐내는 사람은 부러워하지만 돈과 권력을 자랑하는 사람은 경멸한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나는 안다. 그러면 나를 아는 것인가? - P45

어느 대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직원 평균 연봉의 1000배를 가져가는 것은 그 사람이 자기 연봉을 스스로 결정할 권한이 있기 때문이지 생산에 1000배 더 기여해서가 아니다.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똑 같은 작업을 하는 원청 소속 노동자의 절반 수준 시급을 받는 것은 중간착취와 불평등을 허용하는 제도 때문이지 생산 기여도가 낮아서가 아니다. 한계생산력분배이론의 오류는 신경세포의 작동 원리를 물리법칙 형식으로 만들어 신경세포와는 무관한 경제현상에 적용한 데서 생겼다. 아름다운 수학을 썼다고 해서 진리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경제학자들은 여전히 그 이론을 강단에서 가르치고 대중에게 전파한다. 부자가 좋아하는 우화를 퍼뜨리면 보상이 따라온다는 것 말고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 P62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인문학자들은 오랜 세월 인간 본성을 두고 논쟁했지만 어떤 합의도 이루지 못했다. 논쟁을 종결하려면 사실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인문학자는 하지 못했던 그 일을 신경과학자들이 해냈다. 1992년 이탈리아 파르마대학교 연구진은 특정한 행동을 할 때 발화하는 원숭이 두피질의 일부 뉴런이 다른 원숭이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도 발화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후속 연구자들이 인간의 뇌에도 같은 기능을 하는 뉴런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거울신경세포’라는 멋진 이름을 얻은 그 세포는 세상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마음을 읽는 세포’라거나 ‘문명을 만든 뉴런’이라고 명예로운 별명도 생겼다. - P85

유전자는 특정 종의 생존에 관심이 없다. 모든 종의 모든 개체에 서식하고 있으니 어떤 종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기후위기와 환경오염에서 지구를 구하자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에게 공감하지만 전적으로 공감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지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없을 때도 지구와 생물은 존재했다. 인류가 사라진다고 해도 지구에는 아무 문제 없다. 기후위기와 핵폭탄에서 우리 자신을 구하려면 인류 전체가 협력해야 하는데, 호모 사피엔스가 그 일을 해낼 것이라고 확신할 근거가 없다. 그래도 무언가 하긴 해야 한다. 우리 자신 말고는 누구도 우리를 구할 수 없으니까. - P159

엔트로피 법칙은 우주의 묵시록이다.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 나는 러셀의 말에 공감한다. 신을 믿어야 할 이유는 없다. 엔트로피 법칙은 영원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말한다. 이 우주에는 그 무엇도, 우주 자체도 영원하지 않다. 오래간다고 의미가 그 무엇도, 우주 자체도 영원하지 않다. 오래간다고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존재의 의미는 지금, 여기에서, 각자가 만들어야 한다. 우주에도 자연에도 생명에도 주어진 의미는 없다. 삶은 내가 부여하는 만큼 의미를 가진다. 길든 짧든 시간을 조금 덜어 이 책을 썼다. 쓰는 동아 즐거웠다. 남들과 나누면 더 좋을 것 같다. 그게 전부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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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석사과정중 2023-10-04 06: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상당히 동의하지 못하는 내용이 있어서 댓글 답니다.

˝우파는 생존경쟁을 피할 수 없는 자연법칙으로 간주하고 격차와 불평등을 발전의 동력이라고 옹호하며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정책에 반대하는 개인과 집단이다??? 좌파는 사회적 약자, 착취당하는 사람들,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인가 하려는 개인과 집단이다????˝

우파 정책에서도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메시지와 정책이 얼마나 많은데, 한쪽 진영을 약자보호를 경멸하는 개인과 집단으로 매도하시는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여러 댓글을 보며 예측해보건데 40~50대로 보이고, 님의 아들 딸은 저랑 비슷한 20대인것같습니다. 아들 딸에게 메시지를 남긴다고 하셨으니 자녀 세대로서 한마디 드리겠습니다.
되도록이면 편향적이고 편협한 얇은 지식이 아닌, 넓고 본받을 만한 지식을 다음세대에 전수해주는 것이 올바른 어른이자 부모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대들이 정해놓은 사회적 틀안에 저희세대를 가두려는 시도를 멈춰주시고 저희세대는 이것을 강력히 거부합니다.
좌파 우파 그거 모릅니다. 관심없습니다. 다만, 한쪽 진영만이 사회적으로 약자를 돌보고 평등을 추구하는 선한집단, 반대집단은 기득권을 놓치않은 악의 집단이라는 아주아주 좁디좁은 사고의 틀을 제발 그쪽 세대에서 끊어주세요. 그러한 유산을 저희 세대는 강력히 거부합니다.
 
80일간의 세계 일주 - 개정판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4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 쥘 베른. SF 소설도 많이 쓴 쥘 베른의 대표작 중에 하나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읽었단다. 이 소설은 너무 유명한 작품이라서, 영화나 만화로도 여러 번 제작이 되었고, 어린이용으로도 많이 판본이 있단다. 이 소설을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훨씬 많을 듯. 그런데 아빠는 이 소설을 읽은 적이 없었단다.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 동화로 편집된 책도 읽은 적이 없는 것 같아. 워낙 유명한 작품이고, 책 제목처럼 어떤 사람이 80일 동안 세계 여행을 하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했단다. 80일간 이어지는 세계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왜 재미있을까? 이런 생각도 했지. 읽고 났더니 왜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지 알겠더구나. 너희들도 예전에 짧게 동화로 편집된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읽었으니 대충 줄거리를 알겠지만, 아빠가 한 번 더 이야기해줄게.

1.

1872년 런던에 필리어스 포그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엄청 꼼꼼하고 시간은 철저하게 지키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계획을 치밀하게 세웠단다. 하인이 면도할 물의 온도를 30도가 아닌 29도로 가지고 와서 그 하인을 자를 정도로 칼날 같은 사람이었어. 그렇다고 아주 구두쇠는 아니었다고 하는구나. 그는 혁신클럽에 가입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80일 안에 세계일주를 할 수 있다 없다로 논쟁이 벌어졌고, 포그는 할 수 있다고 주장했어.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내기를 하자고 했단다. 그렇게 80일간 세계 일주에 대한 내기를 하게 되었단다. 금액은 무려 2만파운드를 걸었어.

포그는 그날 바로 출발하기로 했단다. 얼마 전에 하인을 해고했다고 했잖아. 새로운 하인으로 프랑스 출신 장 파스파르투를 고용했고 그와 함께 여행을 출발했단다. 포그의 머릿속에는 각 구간별 소요되는 시간이 다 들어 있었고, 그 구간별 시간만 지키면 정확하게 80일만에 다시 런던에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했어. 포그가 떠나고 런던에서는 그의 성공 여부에 대한 또 다른 내기가 벌어졌고, 언론에서도 그의 소식을 전하고 포그에 대한 주식도 생기기도 했단다. 얼마 후 어떤 언론에서 그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면서 냉철하게 분석한 기사를 썼는데 사람들이 그 기사를 보고 대부분 실패한다는 쪽에 돈을 걸었단다.

픽스라는 형사가 있었어. 그는 거금의 은행 돈을 훔친 은행절도 용의자의 용모가 포그와 똑같다면서 포그의 뒤를 쫓게 된단다. 픽스는 아직 포그에 대한 체포영장을 받지 못해서 그를 체포하지는 못하고 일단 추격만 했어. 픽스는 런던경찰청에 전보를 보내서 영장을 요청했지만, 그 당시에는 영장은 우편물과 함께 오다 보니 시간이 한참 걸렸단다. 포그는 런던을 출발하여 지중해와 아랍 지역을 통과하여 인도까지는 오는데 아무런 사고도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계획보다 2일이나 앞당기게 되었단다.

그런데 인도를 횡단하는 기차길이 80km나 끊겨 있었단다. 아직 공사가 진행되지 않은 구간이야. 그런데도 기차표를 팔다니….  일정이 지연되었지만 앞서 2일이나 벌어 놓은 것이 있어서 문제가 없었어. 지은이 쥘 베른이라는 분은 80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모양이구나. 세계 일주도 80일간 하고, 인도 기차길 끊긴 거리고 80km이고아무튼 포그와 파스파르투는 80km를 마차를 타고 가기로 했단다.

가는 길에 이상한 부족의 이상한 장례 풍습을 보게 되었단다. 서티라고 하는 풍습인데 죽은 남편을 따라 아내를 불에 태우는 잔인한 풍습이었단다. 마침 아우다라는 젊은 부인이 서티를 앞두고 있었단다. 포그는 이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파스파르투와 동행하던 프랜시스 크로마티 경이라는 사람과 함께 아우다 부인을 극적으로 구출해 주었단다. 알고 보니 아우다 부인은 어렸을 때 유럽에서 공부를 해서 영어도 잘 했어.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늙은 부자에게 시집을 갔다가 이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고 했어. 아우다 부인은 일단 갈 곳이 없어서 동행하기로 했고, 아우다 부인은 홍콩에 있는 친척 집으로 가겠다고 했어.

….

캘커타에 도착한 포그는 사원의 물건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해서 구류 8일을 선고 받았단다. , 80일은 아니지만 이번에도 8이네…. 쥘 베른이 8을 좋아하나? 중국 사람도 아니면서아무튼 구류 8일이면 80일간의 세계일주는 물 건너가게 되는 거야. 사실 이런 일은 픽스 경찰이 영장이 올 때까지 그들을 억류시키려고 했던 거란다. 하지만 포그는 거금을 주고 보석으로 풀려났단다. 그리고 제시간에 홍콩에 도착을 했단다.

2.

아우다 부인을 친척 집에 데려다 주려고 했는데, 친척은 유럽 여행을 갔다고 했어. 이런, 어쩔 수 없지아우다 부인도 다시 유럽까지 동행하기로 했단다. 이미 아우다 부인과 포그 사이에 썸을 타고 있어서 그들은 내심 좋았했단다. 픽스는 어떻게 하면 포그를 잡을까 고민하다가 포그의 하인인 파스파르투에게 접근하여 이야기하기로 했단다. 파스파르투는 이미 포그의 인간미에 반해서 무조건 충성을 외치는 사람인데, 픽스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단다. 그러자 픽스는 파스파르투에게 마약을 주어 정신을 잃게 했단다. 사실 포그 일행이 타기로 했던 배 시간이 앞당겨졌고, 그 사실을 파스파르투가 알고 있었는데, 픽스가 마약을 주어 파스파르투를 정신 잃게 하여 배를 놓치게 한 것이란다.

그렇게 포그 일행은 배를 놓치고 말았고, 다음 배는 일주일 있다 출발한다고 했어. 그렇다면 80일은 물 건너가는 것인가. 어떤 일이 일어나도 포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단다. 그들이 홍콩에서 일본 요코하마에 도착하여 미국행 배를 타려고 했던 것인데 알아 보니 그 배의 출발지는 요코하마가 아니라 중국 상하이라는 거야. 그러니까 상하이에서 출발 요코하마를 경유해서 미국으로 가는 배지. 그리고 아직 상하이에서 그 배는 출발하지 않았고 말이야. 포그는 파스파르쿠가 걱정되긴 했지만, 일단 상하이로 가기로 했단다. 픽스는 이 사실을 알고 자신도 미국에 간다면서 같이 가자고 했단다. 아직 영장이 오지 않아서 픽스는 포그를 계속 추격을 해야 했거든. 포그는 거금을 주고 홍콩에서 상하이에 태워준다는 배를 구했고, 픽스, 아우다 부인과 함께 상하이에 간신히 시간 맞춰 도착했단다. 그렇게 상하이에서 배를 타고 요코하마로 향했단다.

한편 마약으로 정신을 잃었던 파스파르투는 아편에 비몽사몽하면서도 배를 무조건 타야 한다는 생각으로 제 시간에 배에 탔단다. 나중에 정신이 들자 자신이 혼자 탔음을 하고 자책을 했단다. 그렇게 포그와 파스파르투는 다른 배를 탔지만 둘 다 요코하마에 도착을 했고, 그곳에서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나게 되었단다. 픽스 형사는 요코하마에서 드디어 영장을 받기는 했지만, 그곳은 영국령이 아니라서, 체포를 할 수 없었고 그래서 다시 포그를 쫓아가야 했단다. 그리고 이제는 포그가 빨리 영국에 도착하는 것이 픽스에게 가장 베스트였단다. 그래야 그를 영국에서 합법적으로 체포할 수 있으니 말이야. 그래서 픽스는 이제 포그가 영국에 빨리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했단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후 그들을 기차를 타고 뉴욕으로 가기로 했어. 하지만 가는 길에 인디언의 습격으로 파스파르투가 납치당했단다. (인디언으로 악인으로 설정한 것은 마음에 들지 않더구나. 인디언들의 유럽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저항을 하고 있는 것 뿐인데…) 포그는 이제 더 이상 80일은 생각하지 않았어.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파스파르투를 구하기로 했단다. 얼마 후 포그가 파스파르투를 안전하게 구출해 왔지만, 기차는 이미 떠나고 말았단다. 픽스는 이제 포그를 도와주기로 했잖아. 당시는 겨울이었는데, 픽스는 오마하까지 눈썰매를 타고 가자는 아이디어를 냈어. 오마하에서 뉴욕에 가는 기차가 있다고 했어.

그렇게 그들은 오마하에 출발하여 시카고를 거쳐 뉴욕에 도착했단다. 하지만, 또 안타깝게도 45분 전에 이미 리버풀행 여객선이 떠나고 말았단다. 그런데 이번에는 80분이 아니고 45분이구나

3.

포그는 여전히 당황하지 않고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어. 프랑스 보르도가 가는 화물선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 그는 거금을 주고 태워달라고 했고, 포그 일행은 화물선으로 일단 유럽으로 가기로 했단다. 배에 타자마자 포그는 선장을 가두고 배를 리버풀로 경로를 바꿨단다. 하지만 가는 길에 석탄을 써버려서 배를 움직일 연료가 없었어. 포그는 다시 선장과 협상을 했어. 포그는 선장이 놀랠 정도의 거금으로 배를 사겠다고 했어. 선장은 오케이를 했고, 그러자 포그는 배의 갑판 등 나무들로 되어 있는 부분을 뜯어서 연료를 쓰기 시작했단다. 포그는 그냥 뜯어낸 것이 아니고 배를 큰 돈 주고 산 다음에 갑판을 뜯었다는 것은 그가 정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단다.

다행히 제 시간에 리버풀에 도착을 했단다. 그런데 픽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포그를 체포했단다. , 이리 허망한 일이 있나. 아빠가 포그 같았으면 항의하거나 잡아가더라도 잠깐만 시간을 달라고 했을 것 같은데 포그는 순순히 잡혀 들어갔단다. 몇 시간 뒤 픽스는 포그에 미안하다고 하면서 풀어주었어. 며칠 전에 진범이 이미 잡혔다는 거야. , 이런아직 시간이 남았나. 포그는 얼른 약속장소인 혁신클럽으로 갔단다. 하지만 약속 시간인 8 45분보다 5분이 늦은 8 50분에 도착하고 말았단다. , 이것으로 포그는 2만 파운드를 날리게 되었단다.

그렇게 돈은 날렸지만, 그는 사실 사랑을 얻었단다. 썸을 타던 아우다 부인이 포그에게 청혼을 했고, 포그도 좋다고 했어. , 돈을 잃고 사랑을 얻었으면 됐지. 그런데 픽스만 아니었으면그에게 가서 분풀이라도 하지영국 신사 포그는 모든 것을 받아들였단다. 그런데, 다음날 저녁에 파스파르투가 급하게 달려왔어. 아직 80일이 안되었고 말이야. 포그는 약속했던 날보다 24시간 먼저 도착했던 것이라고 했어.

시간을 그렇게 철저하게 지키고 계획적인 포그가 날짜를 헛갈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철저했던 포그도 한가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어. 그들이 세계일주를 할 때 지구의 동쪽으로 이동을 했는데 그러면서 날짜변경선을 지나면서 하루가 뒤로 가게 되었는데 포그가 그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거야. 시간을 보니 8 45분까지 7분이 남았단다. 포그는 달리고 달려서 8 45 3초전에 극적으로 약속 장소에 도착을 했단다. 그렇게 2만 파운드를 벌었단다. 그런데 여행을 하면서 쓴 것이 1 9천파운드였으니 큰 돈은 벌지 못했겠구나.

마지막까지 재미있는 반전이 있어 좋았단다. 그리고 소설 속 주인공 포그가 참 매력이 있더구나. 특히 어떤 어려움이나 경황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냉정하면서 차분하게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은 본 받을 만 하지만 절대로 쉽지는 않겠구나.

….

아빠가 읽은 쥘 베른의 소설은 이번이 두 번째란다. 아주 오래 전에 <해저 2만리>를 읽었고, 이번이 두 번째야. 그의 다른 책들도 좀더 읽어봐야겠구나. 너희들도 예전에 동화본으로 짧게 편집된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읽었는데 풀버전으로 한번 읽어봐도 좋을 것 같구나. 일단 지루하지 않는 건 보장하니까. ,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1872, 벌링턴 가든스의 새빌로 가 7번지.

책의 끝 문장: 사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하찮은 것을 위해서라도 세계일주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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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나라는 외채 때문에 빚더미에 올라 오늘내일 하는 지경인데, 엄청난 예산을 들여 잔치를 벌이고 외국 사신을 초청하고, 그 때문에 새로 영빈관을 짓고, 광화문 네거리에 비각을 세웠다. 광화문 비각에는 이런 글이 새겨 있다. 신민의 간절한 소망에 부응하여 원구(圓丘)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제위에 오른 뒤 천하를 소유할 칭호를 대한이라고 하고 연호를 광무라 하였다 이 얼마나 좋은 글귀인가. 대한이 천하를 소유하고 무()에 빛났다 하여 연호를 광무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글귀와는 한참 동떨어져 있었다. 1897년에 조선왕조가 허울 좋은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겉으로는 면모를 일신한 것처럼 보였으나 6년 만에 1902(광무 6) 마침내 외채 위기를 맞게 되고 2년 뒤 러일전쟁 발발, 그리고 을사조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81)

(김옥균)는 우선 조선의 불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일찍 들으니, 외국 사람이 우리나라에 왔다 가면 반드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조선은 산천이 비록 아름다우나 사람이 적어서 부강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보다도 사람과 짐승의 똥오줌이 길에 가득하니 이것이 더 두려운 일이다라고 한다. 이것이 어찌 차마 들을 말인가? 우리나라는 관청에서부터 민가의 마당에 이르기까지 물이 번지고 도랑이 막혀서, 냄새가 사람을 핍박하여 코를 막아도 견디기 어려움의 탄식이 있으니, 실로 외국의 조소를 받을 일이다.”


(94-95)

런던은 1904 3 12일자 일기에서는 한국인의 왕성한 호기심을 지적했다.

한국인의 특성 가운데 비능률적인 점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두드러진 특성은 호기심이다. 그들은 기웃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말로는 구경이라고 한다. 한국 사람들에게 구경거리는 우리 서양 사람들에겐 일종의 연극관람이며 회의참석이며 강론경청이며 경마구경이며 동물원 나들이며 일종의 산책과도 같은, 그러니까 그 외에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것의 아주 큰 이점은 값이 싸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구경거리는 최고의 즐거움이다. 아주 사소한 어떤 사건이라 할지라도 구경거리에 해당되므로 몇 시간이 걸려도 기웃거리느라고서 있거나 구부리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132)

2007 8월 한승동은 우리는 아직도 걸핏하면 동아시아 안정을 들먹이는 가쓰라, 태프트들이 주도권을 쥔 세계에 살고 있다고 개탄하면서 당시의 망언들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가쓰라는 대한제국 정부의 잘못된 행태가 러일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해괴한 주장을 폈다. 그는 한국 정부를 방치해둘 경우 또 다시 타국과 조약을 맺어 일본을 전쟁에 말려들게 할 것이니, 일본은 한국 정부가 다시는 다른 외국과의 전쟁을 일본에 강요하는 조약을 맺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놨다. 태프트는 한국이 일본의 보호국이 되는 것이 동아시아 안정에 직접 공헌하는 것이라며 맞장구쳤다. 사실 태프트는 가쓰라가 그런 주장을 읊조리기 전에 먼저 필리핀에서 일본의 유일한 이익은 자신의 견해로는 미국과 같은 강력하고도 우호적인 국가에 의해 필리핀이 통치되는 데 있으며, 이 군도가 자치에 부적합한 원주민의 잘못된 정치 아래 놓이거나 비우호적인 몇몇 열강의 수중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159-160)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퇴궐한 이근택은 집안 사람들을 불러모아놓고 조약체결 광경을 설명하면서 내가 오늘 을사5조약에 찬성을 했으니 이제 권위와 봉록이 종신(終身)토록 혁혁(赫赫)할거요라고 자랑하였다. 순간 부엌에서 식칼로 도마를 후려치는 소리가 나더니 한 계집종이 마당으로 뛰쳐나오며 이 집 주인놈이 저렇게 흉악한 역적인 줄도 모르고 몇 년간 이 집 밥을 먹었으니 이 치욕을 어떻게 씻으리오라고 호통을 치고 나서 그 길로 집을 나가버렸다. 계집종에 이어 오랫동안 같이 지내오던 침모(針母)도 집을 나가버렸다. 조약체결 이듬해 2월 이근택은 취침 중 자객들의 습격을 받고 13군데나 찔리는 중상을 입었다.


(165)

을사늑약의 부당성은 조약 체결 즉시 제기됐다. ‘을사늑약이 완전히 무효라는 첫 번째 주장은 1906년 프랑스 파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이며 국제법학자인 프랑시스 레이(Francis Rey) <대한제국의 국제법적 지위>라는 논문이었다. 레이는 두 가지 문제를 지적했는데, 하나는 한국 정부 측의 동의 표시의 결함, 다른 하나는 일본 측이 한국에 대해서 확약하였던 보장 의무의 위반이었다. 레이의 주장은 1927년 미국 국제법학회가 하버드대학교에 국제법 법전화작업을 의뢰하여 1935년에 조약법을 정리, 공포하게 되었을 때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253-254)

저는 왜 자꾸 그런 소설이 시험에 나는지 모르겠어요. 참 부끄럽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혈의 누>를 보면 평양성 안에 살던 김옥련이라는 처녀의 어머니 최 씨 부인이 청일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시내를 헤매다가 어떤 남자한테 겁탈당하려는 찰나에 일본 헌병이 이 부인을 구해주는 내용이 나옵니다. 소설을 그냥 읽으면 아, 참 재미있다,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여자가 구해졌구나 하고 박수를 치겠지요. 그런데 그것은 다 의도된 내용이에요. 왜 다른 사람도 많은데 하필 일본 헌병이 구해주느냐 말입니다. 이것은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무장해제시키는 거예요. 그 다음에 그 딸 김옥련이 어머니, 아버지, 가족을 다 잃고 헤맬 때 이를 구출해주는 사람도 역시 일본 군의관입니다. 일본 군의관이 데려다 친딸처럼 잘 대해줍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일본 군의관이 데려갔으면 첩으로 두었겠지 친딸처럼 대해겠어요?”


(283)

1907 1 29, 대구지역의 갑부 서상돈(1851~1913)이 지역 유지들 모임인 문회에서 나랏빚을 갚아 국권회복을 도모하자며 즉석에서 800원을 내놨다. 이에 인쇄소인 광문사 김광제 사장도 석달치 담백값 60전과 의연금 10(당시 80kg들이 쌀 한 가마 6)을 선뜻 내놨으며 모임에 참석했던 다른 회원들도 동참해 이날 하루 만에 2000원이 모였다. 그해 2 21, 대구 시내 북후정(현 시민회관)에서 수천 명이 모인 군민대회가 열렸다.


(303)

이와 관련해 노주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제 정세에 어두워 러일 비밀협상이 진행 중인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고종은 니콜라이 2세와 러시아의 변함없는 우정만 믿고 3인의 밀사를 파견했던 것이다. 결국 밀사들은 황제접견은커녕 외무장관도 만나보지 못했다. …… 지금까지 러시아가 적극 후원한 헤이그 밀사 파견이 일본의 집요한 방해공작에 의해 무산됐다는 학설과는 달리 헤이그 밀사 사건은 대한제국과 만주, 몽골을 맞바꿔친 러시아의 냉혹한 국제외교의 부산물이었음이 증명된 것이다.”


(366)

이처럼 <황성신문>을 비롯한 다른 신문들은 시종일관 의병을 폭도(暴徒), 비도(匪徒)’라고 다루었지만, <대한매일시니보>의병이라고 불렀으며 의병을 소극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에 섰다. , 1909 10 26일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했을 때도 <대한매일신보>는 연일 기사를 냈고, 이듬해 3월 안중근이 사형당했을 때는 호외까지 발행하여 사회 여론을 환기시켰다.


(368)

이승원은 “’를 통해야만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시대였다. 피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피를 흘리느냐 마느냐가 중요했고, 그 흘린 피를 머금고 세상은 격변하기 시작한 것이다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은 피바람의 회오리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선생들이 학생들 앞에서 솔선하여 단지를 하고, 그 피로 혈서를 썼다. 학생들은 선생의 뒤를 따라 단지의 대열에 합류했다. 일본 헌병들은 학교를 예의 주시하며 감시했고, 단지를 한 학생을 의병 관련과 내란선동죄로 잡아들였다. 그러나 한 번 흩뿌려진 피는 그칠 줄 몰랐다. 학생들은 계속해서 단지동맹을 결성했고, 그들이 흘린 피가 전국을 붉게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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