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망막에 도달한 빛은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각 세포층을 거치면서 여러 가지 작용을 일으키고 뇌에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신호를 생성한다. 망막의 세포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반응하느냐에 따라 뇌에 전달되는 시각 정보가 결정된다. 가령 원추세포가 빛의 삼원색인 빨강 초록 파랑에 각각 반응하는 세 가지 세포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도 우리가 무수하게 많은 색채를 인식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세 가지 세포들이 얼마든지 다양하게 조합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색채를 부르고 표현하는 언어에 한계가 있을 뿐 색채는 무한하게 존재한다. 눈은 단순히 빛의 신호를 수용하고 전달하는 기계적인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세포의 유기적인 얽힘과 신호의 재배치를 통해서 다양한 기표와 의미를 만들어내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37)

특히 사람마다 원추세포와 간상세포의 상대적 민감도가 다른 것도 색채의 차이를 불러오는 요인이 된다. 가령 원추세포의 민감도가 높은 사람은 어떤 이미지를 볼 때 색의 차이에 더 주목하게 되고, 간상세포의 민감도가 높은 사람은 빛의 양이나 조명 효과와 같은 정보를 더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그 결과 두 사람은 같은 대상을 보면서 서로 다른 색이라고 지각하게 된다.


(42)

뉴턴은 일곱 가지 무지개색을 원행 다이어그램에 배열한 색상환을 만들면서 세 가지 원색인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의 맞은편에 보완이 되는 색을 배치했다. 빨간색의 맞은편에 초록색을 배치했고, 노란색의 맞은편에 보라색을 배치했다. 이는 대조되는 색의 상호보완이 시각적인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뉴턴의 색상환은 1708년 프랑스 화가 클로드 부테에 의해 확장되어 삽화로 그려졌는데, 이것이 오늘날 색상환의 시초가 되었다.


(65-66)

점묘법은 태양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고흐는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프랑스 아를에서의 짧은 시간을 정리하고 파리 근교를 돌아오면서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그려냈다. 연이은 우울한 사건들로 불안정한 심리 상태였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를 지녔던 그의 붓질은 점묘법에 기반을 두면서도 훨씬 더 크고 불규칙한 점에 물감을 두텁게 바르는 임파스토(impasto) 기법을 더해 그 효과가 더욱 강화되었다. 불안감에 잠식되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은 강렬한 색의 대비도로 곧잘 드러났다. 노란색과 파란색의 대비는 꿈틀거리는 듯한 붓질로 인해 더욱 생동감을 더하고, 태양의 강렬한 빛에 지배받은 주변 경환의 시간에 따른 변화 역시 더할 나위 없이 잘 표현되고 있다.


(66-68)

뉴턴에 본다는 것이 하나의 자연현상이라면, 괴테에게는, 괴테에게는 인간의 심리적 작용이 더해진 인식 활동이었다. 고흐와 같은 미술가들은 그 영역을 더 확장해 우주와 인간 내면의 탐구를 더하고 재해석해 다시 우리 눈앞에 가져다주었다. 광학이 밝혀낸 시각 작용과 색채 원리에 화가들의 집요하리만큼 열정적인 탐구심이 더해져 탄생한 미술 작품들을 보면서 본다는 것의 의미는 분명 빛에서 출발하지만 빛이 닿지 못하는 인간 심연의 어떤 곳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130-131)

매타물질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제3의 특성을 구현하기 위해 빛의 파장보다 훨씬 저 작은 크기의 금속이나 유전체 등과 같은 물질을 복합적으로 섞여 설계되었으며, 메타원자는 새로운 물질 단위 요소의 주기적인 배열로 이루어졌다. 메타원자는 새로운 광학적 값을 가지는 새로운 개념의 인공원자이다. 1968년 러시아 물리학자 빅토르 베셀라고가 메타물질의 가능성을 처음 제시했으며, 영국 물리학자 존 펜드리 경이 투명망토처럼 빛을 완벽하게 투과시킬 수 있는 음의 굴절률 원리를 소개하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190-191)

폴로늄(Po)과 라듐(Ra)을 발견하여 방사선에 관한 연구를 더욱 발전시킨 공로로 1903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마리 퀴리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과학에 위대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연구실 과학자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마치 동화처럼 자신에게 감명을 주는 자연현상 앞에 선 어린아이기도 하다.” 마리 퀴리를 비롯해 모든 과학자는 눈으로부터 출발해 자연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궁극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불변의 법칙과 진리를 밣겨내기 위해 노력한다. 마리 퀴리는 이 과정에서 과학자들이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갖고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6)

과학자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이루고 있는 원자를 이해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증명하는 것을 반복했다. 빛을 탐구하고 욕망하며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얻고 보폭을 맞춰왔던 미술가들 역시 더 낮은 차원의 단순한 세계로 들어가 자연의 본질에 다가가고 그것을 화폭에 옮겼다. 과학자들의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라는 질문과 미술가들의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다시 한 번 만나 자연현상 너머의 본질에 관한 탐구로 수렴되었다.


(226)

곤살베스는 양자 중첩을 시각화하기 위해 인지적 착시라는 도구를 활용했다. 왼쪽에는 긴 여행을 시작하는 여행자가 바다 위 고정된 다리 위에서 자동차를 타고 길을 나선다. 희미한 자동차 불빛과 덩그러니 뜬 달이 외로운 여행자의 마음을 대변한다. 그런데 길을 따라 시선을 오른쪽으로 옮기면 어느 순간 수평선이 시작된다. 오래된 돛단배들은 수평선 너머에 있을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탐험을 암시한다.


(228)

양자역학의 등장은 기존의 고전물리학으로 대변되는 과학사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었는데, 이는 예술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결정론과 인과율의 사고방식에 젖은 사람들에겐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양자역학의 세계관을 받아들여 새로운 예술적 감수성으로 숨을 불어넣었다. 그러곤 자연과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을 근원적으로 바꿔놓는 작품을 통해 사람들을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려 있는 양자역학의 세계에 참여하도록 이끌었다. 양자역학이 과학과 예술을 통해 동시에 던져준 자연과 인생에 대한 무수한 질문과 그 답을 찾아가는 발걸음이 지금도 온 우주를 환하게 밝히고 있다.


(244)

최근에는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극도의 검정이 등장하기도 했다. ‘반타블랙(vantablack’)이라는 물질인데 빛을 99.965퍼센트 흡수해 사실상 우리가 눈으로 인지할 수 있는 수준에서 완벽한 검정을 구현한다. 이 극도의 검정은 빛을 모두 흡수해버려 산란과 반사가 없으므로 물질의 입체감을 완벽하게 없애버리고 2차원의 평면으로 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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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아빠는 조지 오웰이라는 작가를 좋아한단다. 얼마 전에 고세훈 님의 조지 오웰의 전기를 통해서 그가 살아온 삶의 흔적과 그의 생각을 좀더 폭넓게 알게 되었는데, 고뇌하는, 진보적이면서 자유주의를 가진 지식의 모습이랄까, 그런 이미지의 조지 오웰을 만나게 되었어. 그래서 아빠는 더욱 조지 오웰을 좋아하게 되었단다. 그 동안은 조지 오웰들의 소설들만 읽었는데, 고세훈 님의 <조지 오웰>을 읽고, 오래 전에 사 둔 조지 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도 언젠가는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얼마 전에 유시민 님과 조수진 변호사님이 진행하는 <알릴레오>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이 책을 소개해 주었단다. 그 영상을 보고 더욱 이 책이 읽고 싶어졌단다. 오래 전 다른 공간을 산, 지식 충만한 사람이 쓴 에세이라고 해서 읽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해서 이 책 읽기를 좀 망설였는데, 유시민 님과 조수진 변호사 님, 그리고 게스트님께서 잘 소개를 해주어 아빠도 읽어볼 만하다는 생각을 하고 이 책을 펼쳐 들었단다.

이 책은 조지 오웰의 에세이 29편을 시대순으로 엮은 것이고, 책 제목 <나는 왜 쓰는가>는 그 중에 한 편이란다. 그러니까 책 전체가 글쓰기에 관한 내용은 아니라는 점.... 각각 독립적인 29편의 에세이라는 점... 그래서 유시민 님께서 이야기한 것처럼 어느 곳을 펼쳐서 읽어도 좋겠더구나. 29편 모두 조지 오웰의 글솜씨와 그의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사상을 엿볼 수 있었어. 하지만 아빠가 당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쉽게 읽히지는 않는 글도 있었단다. 하지만, 조지오웰의 부러운 필력을 느낄 수 있었고, 그의 소설보다 더 많은 그의 삶과 생각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았단다.

 

1.

조지 오웰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영국의 식민지였던 버마에서 경찰을 하기도 했었는데, 제국주의 국가에 대한 비판을 하고, 인종 차별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하면서도 자신이 식민지 경찰을 하는 모순성에 마음이 무척 불편해했단다. 그런 자신의 처지에 대한 글도 이 책에 실려 있는데, 조지 오웰의 괴로움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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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이 모든 것들이 당혹스럽고 언짢았다. 왜냐하면 그 무렵 나는 제국주의가 사악한 것이니 어서 직장을 때려치우고 그로부터 멀어질수록 좋다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나는 이론적으로는(물론 남몰래 그랬다) 전적으로 버마인들 편이었고, 그들의 압제자인 영국인들을 전적으로 적대시했다. 내가 하고 있던 일에 대해서는,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그 어떤 정도보다 지독하게 혐오했다. 그런 일을 하다보면 제국의 추악한 짓거리들을 지근거리에서 보게 된다. 악취 지독한 철창에 처박혀 있는 불쌍한 죄수들, 장기 재소자들의 겁먹은 얼굴, 대나무로 매질을 당한 사람들의 터진 엉덩이. 이 모든 게 견딜 수 없는 죄책감으로 나를 짓눌렀다. 하지만 난 그럴싸한 내 나름의 관점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 나는 아직 어린데다 부실한 교육을 받았고, 동양에 가 있는 영국인이라면 누구나 그랬듯 내 문제를 철저히 함구한 채 혼자 해결해야 했던 것이다. 심지어 나는 대영제국이 저물어가고 있다는 것도 몰랐고, 그것을 대체해가는 신생 제국들보다는 영국이 훨씬 낫다는 건 더더욱 몰랐다. 내가 알았던 것이라곤 섬기던 제국에 대한 나의 증오와, 도무지 일을 할 수 없게 만들려던 악독하고 자그만 인간들에 대한 나의 분노 사이에 내가 끼어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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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이 제국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자신의 모국인 영국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갖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 그런 글들은 곳곳에서 볼 수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만 소개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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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영국은, 자주 인용되는 셰익스피어의 구절처럼 보배 같은 섬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괴벨스 박사의 묘사처럼 지옥인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집안을, 상당히 고루한 빅토리아 시대의 집안을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골칫덩이가 많진 않아도 찬장마다 해골이 넘쳐나는 집안 말이다. 이 집안에는 비굴하게 아첨을 떨어야 하는 부자 친척도, 끔찍이 들러붙는 가난뱅이 친척도 있으며, 집안의 수입원에 대해 함구한다는 단단한 공모가 있다. 또 젊은 사람들은 대체로 좌절을 겪고, 실권은 대부분 무책임한 삼촌들이나 몸져누운 숙모들 손에 있다. 그래도, 집안은 집안이다. 나름의 언어가 있고, 공통의 기억이 있으며, 적이 다가오면 단결한다. 엉뚱한 식구들이 살림을 주무르는 집안-영국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게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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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좌파로 분류되는 지식인이었는데, 아빠는 예나 지금이나 좌파 지식인들에 호감이 더 가더구나. 신문이나 언론을 바라보는 시선도 비슷한데, 그것 또한 지금이나 예나 별 차이가 없는가 보구나. 조지 오웰은 당시 언론의 주요 매체인 신문이나 라디오의 거짓 정보를 비판하는 글들이 여럿 있었단다. 그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면이건 앞으로도 영원히 고쳐지지 않는 것이란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니, 희망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구나. 더 이상 언론과 싸우지 말고, 언론을 무시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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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진실은 밝혀질 수도 있겠지만, 거의 모든 신문이 사실을 워낙 거짓으로 알리기 때문에, 거짓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어거나 나름을 견해를 갖추지 못한다 해서 일반 독자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정보가 전반적으로 불확실하기 때문에 황당한 믿음을 고수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무엇 하나 입증되지도 반증되지도 않기에, 더없이 엄연한 사실도 뻔뻔히 부인해버리는 게 가능해진다. 더구나 민족주의자는 세력, 승리, 패배, 복수에 대해 끊임없이 골몰하면서도 실제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선 다소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그가 바라는 바는 자기편이 상대편보다 앞서고 있다고 느끼는것이며, 사실이 뒷받침되는지 확인하기보다는 상대편을 묵살해버림으로써 더 쉽게 그럴 수 있다. 모든 민족주의 논쟁은 토론반 학생들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어떤 논쟁 참가자든 자신이 이겼다고 믿어버리기 때문에 수준을 넘지 못한다. 어떤 논쟁 참가자든 자신이 이겼다고 믿어버리기 때문에 결판이 나는 법이 없다. 그리고 어떤 민족주의자는 정신분열증 환자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실제 세계와 아무 상관이 없는 세력과 정복을 꿈꾸며 제법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

….

이 책을 읽다 보면 조지 오웰의 글쓰기 영역은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단다. 그만큼 세상 돌아가는 것에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것 같아. 그리고 그런 세상의 이슈에 대해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늘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일반적인 사람들의 시선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로 보는 것이 좋았단다. 당시 신뢰가 점점 쌓여가는 과학 교육에 대해서도 무조건 좋다는 것이 아니고, 그것에 대한 반대 입장도 생각해서 적었는데, 오늘날 과학 맹신에 가져오는 부작용에 대한 경고처럼 아빠에게는 읽혀졌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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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219)

확실히 과학교육은 합리적이고 회의적이며 실험적인 사고의 습성을 심어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어떤 방식’, 즉 부닥치는 어떤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는 방식을 습득하는 것이어야지, 사실을 잔뜩 축적하는 것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말을 과학교육 옹호론자에게 하면 대게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라고 하면, 언제나 과학교육이란 정밀과학에, 달리 말해 더 많은 사실에 주목하는 일이라는 식의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과학은 한 덩어리의 지식에 불과한 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생각은 현실에서 강한 반발에 부닥친다. 그렇게 된 데에는 순전히 직업적인 시기심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과학이 단순히 하나의 방식이나 태도라면, 그래서 사고방식이 충분히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의미에서 과학자라 할 수 있다면, 지금 화학자나 물리학자 등등이 누리고 있는 엄청난 위세는 어찌 되며 아무튼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현명하다는 주장은 또 어찌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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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가 세상사에 비판에 대한 글들을 쓴다고 해서 그의 글에 감성과 순수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단다. 봄이 찾아오는 것에 대해 적은 그의 글을 보면, 그의 순수한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단다. 하지만 평범한 순수함은 아니고 남들과 다른 독특한 것에서 봄을 느끼는 것이 평범하지 않은 순수함 같아서 좋았단다. 남들 같으면 새싹이 돋아나거나 봄바람이나 봄꽃에서 봄이 오는 것을 주로 느낄 텐데, 조지 오웰은 두꺼비로부터 봄을 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는구나. 조지 오웰의 남다른 시각을 닮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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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제비보다 먼저, 수선화보다 먼저, 아네모네보다 조금 늦게, 두꺼비는 봄이 다시 찾아온 것에 대해 나름의 경의를 표한다. 지난 가을부터 들어가 누워 있던 땅속 구멍에서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적당한 물웅덩이 쪽으로 최대한 빨리 기어가는 것이다. 무언가가(땅속의 어떤 떨림인지 아니면 그냥 온도가 몇 도 올라서인지 잘은 모르지만) 두꺼비에게 깨어날 때가 되었다고 말해준 것이다. 그런가 하면 몇 마리는 내내 잠만 자다 한 해를 아예 빼먹기도 하는 것 같다. 한여름에 땅을 파다가 멀쩡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두꺼비를 몇 번이고 본 적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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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으로 뽑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에서는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한 조지 오웰의 생각이 담겨 있었단다.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그리고 정치적 목적이라고 이야기했단다. 각각의 자세한 설명도 있어서 그 글을 읽다 보면, 아빠가 지금 이 리뷰 편지를 쓰는 이유도 그 중에 하나에 속한다는 것을 알겠더구나. 조지 오웰이 이야기한 글쓰기의 이유 중에 정치적 목적은 조지 오웰과 같은 영향력 있는 지식인라면 더욱 정치적 목적이 크다고 생각이 든단다. 그 또한 어떤 글이든 정치적 성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고, 잘 쓴 글들은 여지없이 정치적 목적이 담겨 있다고 이야기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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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으로 게으르며, 글 쓰는 동기의 맨 밑바닥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책을 쓴다는 건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거역할 수 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귀신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한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아마 그 귀신은 아기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마구 울어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본능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기만의 개별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는다면 읽을 만한 글을 절대 쓸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이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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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좋은 글들이 많이 실려 있어서 너희들에게 더 소개해 주고 싶지만, 밀린 독서 편지를 보니, 되도록 짧게 마치고 또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구나. Shon이 이 책의 표지를 보더니, 참 재미없을 것 같다는 평을 냈는데, 지금이야 그렇겠지만 나중에 커서는 너희들도 조지 오웰을 좋아했으면 좋겠구나. 그래서 이 책도 읽어봤으면 좋겠어. 글의 내용 뿐만 아니라, 조지 오웰이 어떤 식으로 글을 써 내려갔는지도 살펴보면서 말이야.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늦은 오후였다.

책의 끝 문장: 그러나 그를 정치인으로만 볼 때, 그리고 우리 시대의 다른 유력 정치인들과 비교해볼 때, 그가 남긴 향기는 얼마나 많은가!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나 지금 우리 사회와 같은 곳에 살면서 변화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본성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버마에서 영국 제국주의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목격했고, 영국에 와서는 빈곤과 실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나로서는 그런 시스템에 맞서 싸운다는 게, 주로 독서 대중에서 영향을 끼쳤으면 하는 책들을 쓰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계속해서 그렇게 하겠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는 책을 쓰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사태의 진전이 점점 빨라지고 있으며, 한때는 한 세대 뒤의 위험 같아 보이던 것들이 우리를 정면으로 노려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적극적인 사회주의가 되어야 한다. 사회주의에 공감하는 데 그쳐서도 안 되고, 언제나 활발한 적들의 술수에 놀아나서도 한 된다. - P64

애국주의, 즉 국민적 충심이 갖는 압도적 힘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오늘의 세계를 제대로 볼 수는 없다. 애국주의는 상황에 따라 무력해질 수도 있고, 문명의 어느 단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힘으로서 그에 필적할 만한 것은 없다. 기독교와 국제 사회주의는 애국주의에 비하면 지푸라기처럼 연약하다.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그들의 나라에서 권좌에 오른 가장 큰 비결은, 그들은 이 사실을 파악했고 그들의 적들은 그러지 못했다는 데 있다. - P88

군대 생활의 본질적인 공포는(군인이 되어본 사람이라면 군대 생활의 본질적 공포라는 게 무엇인지 알 것이다) 어떤 성격의 전쟁에서 싸우게 되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군기 같은 것은 어떤 군대든 궁극적으로는 마찬가지다. 명령은 복종해야 하고 필요하면 처벌로써 강요되며, 장교와 사병의 관계는 상급자와 하급자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 같은 책들에 나오는 전쟁 묘사는 대체로 정확하다. 총탄은 맞으면 아프고, 시체는 썩어 악취를 풍기고, 총격전이 벌어지면 너무 무서워 바지를 적시기도 한다. 어떤 군대가 만들어지게 된 사회적 배경이 그 군대의 훈련과 전술과 전반적인 능력에 영향을 끼치며, 정의 편이라는 의식이 사기를 북돋우는 것도 사실이다. - P134

기록된 역사 대부분은 어떤 식이든 거짓이라는 말이 유행인 건 나도 안다. 나는 역사가 대체로 부정확하고 편향된 것이라는 말을 기꺼이 믿는 쪽이다. 한데 우리 시대에 와서 특이한 점은, 역사가 진실하게 기록될 ‘수도’ 있다는 개념 자체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자기 글을 무의식적으로 윤색하거나, 실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진실을 애써 추구했다. 단 어느 쪽이든 ‘사실’은 존재하며, 어느 정도 밝혀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을 만한 사실이 늘 상당 부분 있었다. - P148

문명의 역사는 대체로 무기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주장은 이제는 흔한 말이 되어버렸다. 특히 화약의 발명과 부르주아에 의한 봉건제 전복의 연관성은 누차 지적된 바 있다. 물론 예외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규칙이 일반적인 사실로 판명될 것이라 생각한다. 즉, 가장 강력한 무기가 싸고 단순한 시대에는 서민들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예컨대 탱크나 전함이나 폭격기는 본질적으로 압제적인 무기인 반면에, 소총이나 머스킷총이나 긴 활이나 수류탄은 본질적으로 민주적인 무기인 셈이다. 복잡한 무기는 강자를 더 강하게 만들고, 단순한 무기는(보복이 따르지 않는 한) 약자에게 갈고리발톱이 된다. - P210

언제나 강자가 약자에게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미덕은 이기는 데 있었다. 즉, 미덕이란 남들보다 더 크고, 강하고, 잘생기고, 부유하고, 인기 좋고, 세련되고, 거리낌 없는 데 있었다. 달리 말해 남을 지배하고,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고, 바보 같아 보이게 하며, 모든 면에서 남보다 앞서는 데 있었던 것이다. 삶이란 본래 위아래가 있어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 자체가 옳은 일이었다. 강자가 있어 그들은 이겨 마땅하고 언제나 이겼으며, 약자가 있어 그들은 져 마땅하고 언제나, 끝없이 지기만 했다. - P419

정치에선 둘 중 어느 쪽이 덜 악한지를 판단하는 것 이상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악마나 미치광이처럼 행동해야만 가까스로 탈출할 수 있는 상황들이 있다. - P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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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인간은 원래 물에서 살았대, 아주 먼 옛날에는 말이야. 쇄골은 아가미가 있던 흔적이고 갈비뼈는 지느러미가 떨어지고 생긴 무덤이야. 그런데 인간은 결국 어떤 이유로 퇴출당한 거야. 육지는 해상의 유배지였던 셈이지. 그래서 물에 사는 것들은 육지에서 걸을 수 없지만 육지에 사는 것들은 유전자가 가진 태초의 기억으로 수영을 할 수 있어. 물로 몸을 씻어내는 것도 육지의 죄를 닦아내는 행위에서 비롯된 거야.


(251)

인간의 치아는 음식을 씹어 삼키기 위해 존재한다. 인간의 내장은 피부보다 연약해 씹히지 못한 덩어리를 소화시킬 능력이 없었으므로, 어쩌면 인간의 창조주가 인간이 지구상의 모든 걸 다 집어넣지 못하도록 해놓은 장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은 음식을 먹지 않는다. 씹을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왜 치아를 만들었을까. 눈을 보호할 필요가 없는 진에게 속눈썹과 눈꺼풀은 왜 필요한가. 손등의 미세한 털과 귓바퀴의 굴곡, 복사뼈까지도. 그렇다면 이 모든 걸 같은데 인간은 쉽게 죽고 자신은 쉽게 죽지 않는 이유가 무석인가. 그 모든 질문의 끝에 진은 한 마디 더 덧붙이고 싶었다. ‘자신은 왜 이 질문을 하고 있는가.’


(259)

기존의 우리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깨는 것이 오류로부터 벗어나는 첫걸음이었지. 이성적 사고에는 형태가 분명히 존재해. 바보 같이 우리는 그걸 몇 천 년 동안, 인류가 생각난 이후로 계속 동식물을 포함해 살아 숨 쉬는 생명체들이 가장 강하게 가지고 있는 차이점은 형태였지. 두 다리, 두 팔, 그 둘을 연결시키는 허리. 발가락의 관절과 심장과 폐를 감싸는 갈비뼈 하나하나 전부가 이성의 실체였어. 모든 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인간은 은하야. 구성된 물질은 서로 떨어져 있는 듯 하지만 결국 다 하나의 항성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거지. 인간적인 사고 능력을 가지려면 인간처럼 생겨야 해. 사소한 것 하나까지 전부. 인간만의 특권이라 여긴 직립보행이 실마리였어. 서로 다른 개체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라는 아주 단순한 결론을 옆을 두고 그렇게 긴 시간을 헤맨 거야. 인간은 휴론의 생각이 데이터를 통한 판단이라 여겼고 이름과 개성이 성격을 종합해 낸다고 믿고 있어. 내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인간과 똑 같은 형태를 가진 존재라고 하더라도 그 개체에게는 자유로운 이성적 사고가 불가능하다고 믿지. 나는 인간들에게 이 진실을 말하고 싶지 않아.”


(329)

사랑은 이제 끊임없이 생명에게 기생해 수 세기를 살아남은 질긴 바이러스다. 그것은 자신이 어떻게 해야 버려지지 않는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 생명의 생각을 조종하는 것이다. 뇌를 커다랗게 감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막을 만들어 때에 맞춰 심장을 뛰게 하고 체온을 높이고 시각을 둔화시켜 현실의 객관성을 잃게 만든다. 상대방이 없을 때에는 기관지의 크기를 줄여 답답함을 느끼게 하고 잠들지 못하게 생각을 깨우며 상대방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최악의 망상을 반복해 함께 있음에도 갈증을 느끼게 만든다.


(419)

개인의 비극은 행성을 파괴할 수 있는 슬픔을 가지고 있다. 섞이거나 나눌 수 없다. 인간은 개인이 하나의 행성이므로, 각자의 비극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결국 그 파괴의 에너지가 은하수 전체에 퍼질 테니. 연쇄적 비극은 언젠가 모든 것을 태초의 상태로 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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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비티 익스프레스 - 중력의 원리를 파헤치는 경이로운 여정 익스프레스 시리즈 2
조진호 글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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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너희들이 과학에 흥미를 느끼고 좀더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만화로 중력을 이야기하는 <그래비티 엑스프레스>를 샀단다. 그런데 너희들이 보기에는 아직 책이 좀 어려운 것 같았어. 오히려 과학을 좀더 쉽게 접하고자 하는 어른에게 맞는 책 같았단다. 이 책은 지은이 조진호 님께서 출간한 익스프레스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데, 디자인이 일단 멋지단다. 이 시리즈가 모두 네 권인데 이 네 권을 함께 모셔두면 책장이 폼이 나더구나. 천천히 한 권씩 읽어봐야겠구나. 너희들도 좀 더 크면 읽어보면 좋겠어.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재미있는 것은 아니지만, 만화로 중력과 중력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을 잘 그려냈단다.


1.

이 책은 인류가 중력을 원리를 알아가는 과정을 그렸다고 할 수 있단다. 지구 상의 물체는 왜 떨어질까에 대한 고민을 오래 전부터 해봤단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달과 태양의 정체는 무엇인지 고민들을 많이 했단다. 기원전 600년 전 아낙시만드로스라는 사람은 이 세상이 둥글게 휘어져 있다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어딘가에 지탱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윗부분은 둥그렇게 생겼지만 아래쪽은 원통 모양이라고 생각했다는구나.

피타고라스는 세상 만물을 수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지구와 우주를 모두 구 모양이라고 생각했대. 지구와 태양은 우주의 중심으로 돌고 있고, 우주는 규칙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규칙성은 수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어. 지금 와서 보면 피타고라스는 대단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던 것 같구나. 기원전 5세기 아낙사고라스라는 사람은 달이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것이라고 했다는구나. 이 분의 추측도 정확하게 맞았구나.

기원전 300년대에서 200년대를 살던 아리스타르코스라는 사람이 있었어. 그는 지구가 하루 한번 스스로 돌고, 지구가 공전한다고 주장을 했어. 태양은 우주의 중심이라고도 주장을 했는데, 이것은 그의 생각일 뿐 증명은 하지 못했단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했다고 했어. 그리고 그는 우주의 크기를 측정하려는 시도도 했다는구나. 이런 사람들의 생각들과 연구가 점점 쌓이다 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더 훌륭한 사람들도 출현한단다.

에라토스테네스라는 기원전 2세기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과학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사람으로 아빠도 이름이 어렴풋이 기억나는구나. 그의 이름은 어렴풋이 기억하지만 그가 한 일은 아주 정확히 기억한다. 그는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하고 기둥의 그림자를 이용해서 지구의 반지름과 둘레를 구한 사람으로 유명하단다. 그가 사용한 이 방법은 수학적으로도 올바른 방법으로 그가 잰 지구의 반지름은 실제와 10%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하는구나. 예전에 너희들이 지구의 크기가 얼마냐고 물어봤을 때, 아빠도 에라토스테네스의 방법대로 지구의 반지름을 잴 수 있다고 설명해 준 적이 있는데, 기억들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에라토스테네스는 월식을 이용하여 달의 크기가 지구의 약 4분의 1이라는 것도 구했단다. 그것뿐만 아니라 달까지의 거리, 태양의 크기, 태양까지의 거리도 구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로구나.


2.

여러 가지 증거들을 보면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 하지만 그들이 갖는 한가지 의문점이 있단다. 지구가 둥글면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라는 의문점이야. 그냥 다 떨어지고 아무도 살지 않나? 그리고 지구도 그렇게 둥근 상태로 떠 있다면 어딘가로 떨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도 갖게 되었어.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체가 떨어지는 낙하 현상을 근본 원소들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는 본성이라고 설명했단다. 그리고 우주의 중심은 지구라고 했고, 지구 상의 물체가 지구로 떨어지는 것은 지구가 중심이기 때문이라고 했어. 그렇다면 별이나 태양은 왜 안 떨어질까? 그것에 대한 설명은 지상 세계와 천상 세계는 다른 규칙을 가지고 있다고 했고, 그것에 대한 것을 모두 논리적으로 설명했다고 하는구나.

프톨레마이오스라는 사람은 지구가 중심이고 하늘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하는 천동설을 주장하였는데, 그는 이 천동설의 설명을 위해 하늘의 별과 태양과 달의 움직임도 설명했어. 천동설에 짜 맞추려다 보니, 예외적으로 움직이는 별들이 많았지만 말이야. 그렇게 예외적인 것들이 많다면 자신의 주장이 잘못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면 좋았을 텐데프톨레마이오스의 주장은 아주 오랫동안 정답으로 이어졌단다. 중세 코페르니쿠스와 임페투스가 지동설을 주장할 때까지 이어졌단다. 하지만 여전히 물체가 낙하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지 못했단다. 행성 운행의 3 법칙으로 유명한 케플러는 낙하하는 물체의 원리가 질량자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그리고 뒤이어 점점 위대한 과학자들이 출현한단다.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개조해서 목성의 4개 위성을 관찰하게 되면서, 지구가 태양 주변을 공전한다는 것을 증명하게 돼. 낙하하는 물체에 대해서도 연구를 하는데, 그는 낙하속도가 높이와 시간 사이의 규칙성을 발견하게 된단다. 관성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정의하게 되는데, 후에 뉴턴이 정의한 관성과는 조금 다르지만, 갈릴레이는 모든 운동을 하는 물체는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는데 그것이 관성이고, 그 관성 때문에 행성들이 원운동의 궤적을 따른다고 했어. 그러니까 지구나 행성이 태양의 주변을 돌고 있는 것을 관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단다.

드디어 뉴턴이 등장하여 중력에 대해 정확하게 정리한단다. 만유인력 법칙이라는 것으로 중력을 정의하고 지구 상에 모든 물체는 떨어진다고 할 때 항상 의문이었던 달은 왜 안 떨어지는가?’에 대한 질문에, 뉴턴은 달도 지구로 떨어진다고 설명하였단다. 뉴턴이 중력의 정체를 풀어내고, 역학 법칙을 정립했지만 결국 중력이 어떻게 전달되는지는 풀지 못했다고 하는구나.

현대로 넘어오면서 과학자들은 빛에 대해 연구를 하기 시작하는데, 이 책의 후반부는 그런 빛에 관한 과학자들의 연구를 설명한단다. 왜 중력 이야기를 하다가 빛의 이야기까지 할까? 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것은 뉴턴의 상대성 이론을 이야기하기 위한 전채라 볼 수 있단다. 빛 마저 중력에 의해 휘어지는 것을 설명하고, 시공간도 구부러진다는 상대성 이론 말이야. 상대성 이론은 이전에도 여러 번 이야기해서 오늘은 생략할게.

…..

이 책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를 했단다. 너희들이 좀 커서 중력에 관심이 있다면, 오구리 히로시 님의 <중력, 우주를 지배하는 힘>와 오정근 님의 <중력파>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물론 이번에 아빠가 읽은 <그래비티 익스프레스>도 좋고


PS:

책의 첫 문장: 쪼로록

책의 끝 문장: 이것 또한 멋진 꿈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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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권여름 지음 / &(앤드)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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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얼마 전에 박균호 님의 <오십, 나는 이제 다르게 읽는다>라는 책을 읽었어. 그 책에서는 소설과 인문서를 짝지어 소개시켜주었는데, 그 책에서 소개해준 준 소설 중에 가장 최근에 출간된 소설 권여름 님의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란 책이 있었어. 책 제목부터 재미있을 것 같아 책 소개를 찾아 읽어보았단다. 2021년 제 1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책이라고 하고, 지은이 권여름 님은 이 책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하는구나.

다이어트.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결심이 다이어트가 아닐까 싶구나. 아빠는 결심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늘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 다이어트란다. 적당히 먹으면서 운동도 틈틈이 하면서 천천히 몸무게를 줄이겠다는 마음. 하지만, 생각과 달리 나이를 먹어서 기초대사량이 줄어서 그런지, 예전과 비슷하게 먹고 비슷하게 운동한다고 생각하는데, 몸무게는 조금씩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 속상하구나. 아무튼 아빠도 적극적인 다이어트는 아니더라도 다이어트에 관심이 있단다. 이번에 읽은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는 제목만 보면, 유쾌한 다이어트에 대한 이야기처럼 생각했는데, 재미는 있지만 좀 무거운 내용의 소설이었단다.


1.

주인공 봉희는 상업고등학교를 다닐 때 성적이 일등이었단다. 그래서 졸업을 하게 되면 은행에 취직하는 것은 따놓은 당상인 줄 알았지. 하지만, 그러지 못했어. 은행은커녕 취업을 아예 하지 못했어. 무엇이 부족했던 걸까. 봉희 자신도 눈치채고 있었지. 남들보다 몸이 통통했던 거야. 외모가 능력인 사회에서 봉희는 취업을 못했던 것이란다. 학교 성적은 자신보다 한참 떨어진 친구들도 취업을 하는데 말이야.

봉희는 단식원에 들어가게 된단다. 유리 단식원. 유리 단식원은 원장의 이름을 따서 지은 단식원인데, 봉희가 처음 갔을 때만 해도 어떤 건물의 2층을 빌려서 운영하고 있었는데, 점점 번창하게 되어 시외에 5층짜리 건물을 새로 짓고 이름도 구유리 건강 힐링 센터로 바꾸었단다. 봉희는 단식원 회원으로 왔다가 다이어트에 성공한 이후 코치로 일하게 되었단다. 코치가 하는 일은 담당 회원들의 다이어트를 담당하는 것인데, 담당 회원들의 다이어트 성적이 바로 코치의 성적이 되어 코치의 랭킹도 공개하는 그런 치열한 경쟁 사회였단다. 봉희의 애제자로 할 수 있는 소운남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이름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여자였단다. 운남은 인기 유튜브 채널에서 라이브 방송의 주인공으로 참석 예정이었는데, 방송하기로 한 그날 아침에 사라지고 말았단다. 봉희는 단식원 건물을 다 뒤져 찾아보았지만 없었어. 전날 운남이 화장실에서 구토하는 것을 보고 운남을 걱정해주기 보다, 도대체 운남이 먹지 말아야 할 무엇을 먹었는지 밤새 신경을 쓴 점이 마음에 걸렸어.

원장은 봉희에게 무조건 운남을 찾아내라고 해서, 봉희는 무작장 운남의 빈 방을 살펴 보았어. 운남은 모든 짐이 사라져 있었어. 손톱 깎기 하나만 남겨 두고그것은 지리산 산채비빔밥이라고 써 있는 거 봐서 그 식당에서 받은 것 같았어. 봉희는 서울에서 김서방 찾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을 했을까? 직접 지리산 산채비빔밥이라는 식당을 찾아 나섰단다.


2.

운남이 그곳에 왔을라고그런데, 그곳에서 운남의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단다. 운남의 성씨가 라는 희귀 성씨라서 찾을 수 있었던 듯… ‘지리산 산채비빔밥은 오래 전에 서울 가든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고, 운남의 본명은 강미라는 것을 알게 돼. 운남, 아니 강미의 어머니는 운남이 단식원에 들어간 줄 모르고 계셨어. 차마 운남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봉희는 다시 단식원으로 돌아왔단다.

그 사이에 인기 유튜브의 라이브 방송에 참가자로는 아이돌 연습생인 안나가 운남을 대신하기로 했어.

봉희는 운남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몰랐고, 계속 운남에게 메일을 쓰는 것밖에 할 것이 없었단다. 그렇게 계속 메일을 보내던 어느날 운남으로부터 아주 짧은 답변이 왔단다. 하지만 그것으로 운남이 어디에 있는지 감을 잡지 못했어. 단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안도감? 봉희는 운남의 소지품에서 마약 성분의 식욕 억제제를 발견하게 돼. 이건 불법 금지 약물인데 이걸 운남이 어떻게 갖고 있었을까. 봉희는 보건 코치와 원장에게 이야기했지만, 잔소리만 들었단다. 그건 운남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자신은 책임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어. 이 일이 있고 나서 봉희는 원장과 사이가 안 좋아졌단다.

운남 대신 촬영한 안나의 방송은 성공을 넘어 대박이 났어. 유뷰트 라이브 시청자도 어마어마했단다. 가장 힘든 사람은 그 촬영을 하고 있는 안나였단다. 안나의 마지막 촬영은 단식원 뒷산을 등산하는 것인데, 이미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안나가 그 등산을 한다는 것에 무엇인가 사고가 터질 것 같더구나. 그런데 봉희는 뒷산 등산로 초입에 있는 폐교에서 얼핏 지나가는 사람을 보았는데 그 사람이 운남인 듯 보였어. 봉희는 유튜브 촬영을 도와주고 있어서 지금 당장 폐교로 확인하러 갈 수 없었지만, 나중에라도 찾아가 볼 마음이었지.

그리고 촬영은 막바지.. 안나가 산 정상을 얼마 앞두고 있는데, 산 정상에 누군가 나타났어. 그가 누군지 알고 다들 깜짝 놀랐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운남이었단다. 안나도 그런 운남을 보고 놀래서 쓰러지고, 운남도 정신을 잃고 쓰러졌어. 둘 다 무리한 다이어트로 인해 쓰러진 거였어. 그 장면들이 유튜브 라이브 방송으로 많은 사람들이 봤단다. 이 사건이 일어나서 원장은 피해를 입을 것 같았지만, 여론을 조종해서 위기를 벗어나게 되었단다.

하지만 봉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어. 고민 끝에 단식원에서 불법으로 식욕 억제제를 사용했다는 동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업로드했단다. 이 동영상은 삽시간에 많은 논란을 일으키게 되었어. 원장은 어떤 식으로 책임을 져야 할 거야. 그리고 봉희는 다시 지리산을 찾았고, 꿈에서 운남을 만나게 되었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

아빠도 뚱뚱한 몸보다 균형 잡힌 몸을 좋아하고, 너희들도 그렇게 균형 잡힌 몸매를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겉으로 보이는 외모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그보다는 균형 잡힌 몸이 건강한 몸이라고 생각을 해서였거든. 우리 사회는 여전히 살찐 이들보다 아름다운 몸을 가진 이들을 선호하는 것을 부정하지 못하겠구나. 그러니까 여전히 소설 속의 단식원 같은 것들이 현실 사회에도 많지.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진 그런 생각들이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구나. 하지만 편견을 갖지 말아야 하는 것은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

이것 저것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소설이었단다.


PS:

책의 첫 문장: 새벽 세 시, 개운하게 눈이 떠졌다.

책의 끝 문장: 봉희의 눈이 질끈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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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0-12 2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벽 세시! 전 다섯시 그리 개운하게 눈은 안떠져도 저절로 기상!^^

bookholic 2022-10-13 18:31   좋아요 0 | URL
늦게 주무시는 것 같은데, 다섯 시에 일어나시면...
건강을 위해 푹 주무시길...^^

그레이스 2022-10-14 1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문장 끝 문장에 의도가 담겨있네요^^

bookholic 2022-10-14 23:30   좋아요 1 | URL
그러고 보니, 두 문장이 연관성이 있네요...^^
작가의 멋진 의도를 그레이스 님께서 알아채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