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기본적인 것들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보람만 강요하는 행위는 문제를 외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보람이라는 듣기 좋은 말로 일을 미화함으로써 당연한 것이 전혀 당연하지 않은 비참한 현실을 눈속임하고 있다.

(20)

야근이란 계약으로 정해진 시간을 넘겨서 일한다는 의미다. ,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것으로 규정해야 한다.

이 예외적인 것이 가끔일어난다면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하는 야근은 예외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의 매일같이야근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나는 입사하고서 야근하지 않고 돌아간 날이 단 하루도 없어. 칼퇴근은 도시 전설이야라며 자신의 비참한 근무 환경이 마치 어엿한 훈장이라도 되는 듯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을 보면서 참 안쓰러웠던 적이 있다.

(51)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지 않아도 좋다. 회사를 옮겨다니는 것 또한 하나의 생활 방식이다. 딴 길로 새지 않고 대학을 졸업하는 시점에 곧바로 회사에 취직해 그대로 정년까지 성실하게 일하는 삶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인생의 레일이 딱 하나뿐이고, 그 레일을 벗어났다고 해서 갑자기 삶이 어려워진다면 이 사회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제도상 설계 실수다.

(73)

만약 회사없이 자기 인생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회사에 지나치게 의견하고 있는 것이다.애사심을 갖는 것이야 괜찮지만, 기댈 속이 사라졌을 때 자신이 무너져내리지는 않을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86)

어떤 중대한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를 놓고 다툰다.”월급을 받는 이상, 책임을 지고 일하다고 주장하면서도, 정말 누군가가 책임져야 하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면 그 책임을 남에게 덮어씌우느라 분주하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책임이란 단어를 아주 어중간하고 모호하게 써먹고 있다.

책임의 범위를 정확히 설정하면 누구 책임인지를 두고 다툴 일도 줄어들고 무한한 책임을 짊어질 일도 사라진다. 각자의 책임 범위를 넘어선 일에는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고 분명히 선을 그을 수도 있다. , 자신의 책임 범위에 속한 일은 프로로서 완벽하게 수행할 것이 요구된다. 이처럼 책임의 범위를 정확히 정하는 것은 일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88)

아무리 경영자 마인드로 일해도 종업원은 어디까지나 종업원, 어차피 고용된 처지다. 경영자 마인드를 갖춰 경영자에 버금갈 정도로 일한다 하더라도 월급은 당연히 고용된 처지에 맞는 수준으로 받는다. 월급은 고용자 수순인데 일은 경영자와 똑 같은 마음가짐으로 하라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을 하라는 소리와 무엇이 다른가?

종업원이 경영자 시선을 갖고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애당초 경영자는 왜 있는가? 설마 고용한 종업원에게 할 일을 전부 떠맡기고 경영자는 놀러 다니려는 속셈일까? 그렇다면 어디 일할 마음이 들겠는가.

(98)

일이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닌 자아실현을 위한 수단이다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이나 사회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사회와의 연관을 통해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다.”

초등학교 직업교육에서 자주 듣는 말이야. 직업교육의 핵심인 현장 방문, 직업 체험 때도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이나 사회공헌같은 측면만 강조한다. ‘일에 보람을 느끼며 노력하는 어른들의 모습이나 이 사회에 공헌함으로써 돈 이외의 기쁨을 얻는 어른들의 모습을 잔뜩 보여주면서 어린 학생들에게 일은 돈을 벌기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구나라고 느끼게 한다.

(137)

만약 좋아하는 일을 내 직업으로 삼았더라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하는 것과 업무로 하는 것에는 당연히 차이가 있다. 회사의 방침이나 고객의 사정에 맞춰 자기 의사와 반대되는 방식을 억지로 고수해야만 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오히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탓에 적절하게 맺고 끊지 못해 괴로워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141)

일을 하다보면 너무 괴로워서 전부 내던지고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궁지에 몰릴 때가 있다. “그럴 때야말로 성장할 기회야. 절대 도망쳐서는 안 돼.” 이렇게 설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사고방식은 매우 위험하다. 괴롭다못해 이제 한계다 싶을 때는 무리하지 말고 도망쳐야 한다. 이것은 어린애처럼 응석을 부리는 것과는 다르다.

보통 도망친다는 행위를 꼴불견에 형편없는 짓이라고 여기는데, 도망치는 행위는 사실 일종의 안정장치. 괴로워서 더는 무리라고 느끼는 상황이 오래 이어지면 사람은 쉽게 무너진다. “괴로워도 도망치지 않고 노력한 덕분에 성장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들 뒤에는 괴로운 상황을 버티지 못하고 몸과 마음이 무너진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다. 매년 일 때문에 수많은 직장인의 몸과 마음이 황폐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사람이란 궁지에 몰리면 너무도 연약해지는 존재다.

(166~167)

중요한 것은 세상의 평가기준이 아니라 나의 평가기준이다. 세상의 평가가 아무리 높더라도 나의 평가기준에 비췄을 때 높이 평가할 수 없는 대상이라면 괜히 거기에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 반대로 세상에서 낮은 평가를 받더라도 나의 평가기준에 비췄을 때 높이 평가할 수 있는 대상이라면 내게는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다. 내 인생은 나 이외에 그 누구도 살아줄 수 없다. 내 행복은 나의 주관으로 판단하면 된다. 블랙 기업이나 좀비형 사축은 우리에게 가치관을 억지로 강요하려 할 거시다. 그런 타인의 가치관 따위는 무시하고 나 자신의 가치관에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괴롭다고 생각하면 그건 괴로운 것이다.

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면 그건 무의미한 것이다.

내가 재미없다고 생각하면 그건 재미없는 것이다.

내게 가치관을 강요하는 회사도 상사도 동료도 어차피 타인다. 타인의 삶을 사는 행위는 인생의 최대 낭비다. 자신의 가치관에 솔직해지자. 좀더 나 자신을 위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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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밥상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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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공지영의 에세이는 많이 읽지 않았지만, 아빠가 읽은 그의 에세이 중에 <지리산 행복학교>라는 아주 인상적인 책이 한 권 있단다. 아빠가 워낙 지리산을 좋아해서, 아빠가 예전부터 친구들한테 나중에 지리산에 가서 살겠다고 떠들고 다녔는데, <지리산 행복학교>라는 책이, 그것도 아빠가 좋아하는 공지영 작가가 썼다고 하니 냉큼 읽었던 기억이 있단다. 그런데, 그 책이 벌써 6년이나 지났다니아빠가 읽은 것은 얼마 전 같은데 말이야. <지리산 행복학교>에는나중에가 아니라지금지리산에 내려가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가 그려졌단다. 그리고 6년이 지나고, 공지영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이야기해주었단다.

지리산의 멤버들 중에 버들치 시인으로 부르는 박남준 시인이 있어. 공지영 작가의 친구들 중에 요리 잘하기로 소문난 버들치 시인의 밥상 이야기와 그의 지리산 친구들 이야기가 한 가득 담겨 있었단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버들치 시인의 시들도 담겨 있는데, 그가 지리산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그의 시에서 지리산 향기가 나는 듯 했단다. 작가의 말에서 버들치 시인이 심장수술을 받았고, 이 책을 쓴 목적에 그를 도우려는 목적도 솔직히 이야기했단다. 목적이 어쨌든, 그들의 부러운 삶을 담백정갈한 공지영 작가의 글로 만나 무척 좋았단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아빠도 밥을 좀 가볍게, 자연 친화적인 식단으로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작가의 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찻물에 밥을 말아, 김치 하나 놓고 먹어 봤는데, 김치 본연의 맛을 제대로 맛볼 수 있어 좋았고. 구수한 밥 향기도 느낄 수 있어 좋았단다. 무엇보다 거북함 없는 든든함마저 기분을 좋게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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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요리를 먹은 후(어쩌면 내 나이 탓도 있겠지만) 나의 밥상도 변하기 시작했다. 소박한 것이 점점 좋아진 것도 그와 1년을 함께 한 탓이리라. 오늘 나는 찻물을 우리고 밥을 말아서 들기름에 볶은 김치랑 단출히 아침을 먹는다. 땅에 뿌리박은 모든 것들은 땅에서 길어 올린 것들을 도로 내놓고 땅으로 돌아간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는 사람이다. (326)

===========================================

 

1.

 “나는 다르게 욕망할 뿐이다.” 라고

이 말이 아빠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강한 문구로 남았단다. 아빠의 가슴에도 깊이 새기고 싶었어. 그들은 돈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 그들은 그들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더구나. 그들은 누구보다 여행을 많이 하고, 누구보다 계절을 즐긴다고 하는구나. 아빠는 바쁜 회사일에 계절의 변화조차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그들의 생활 패턴을 바꾸면 즐기고 있어. 그들의 삶이 비록 단순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풍요로운지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아빠는 무엇인가 잘못된 삶을 살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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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르게 욕망할 뿐이다.”

그렇다 그들은 시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흘려보내기를, 저 산과 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욕망한다. 그들은 누구보다 여행을 많이 떠나고 누구보다 계절을 깊이 즐긴다. 봄이면 야생 달래와 냉이 그리고 산나물을 먹고 여름이면 천렵한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인다. 가을이면 송이버섯 열 개로 친구들과 풍성한 파티를 벌인다. 나는 지리산에 갈 때마다 삶이 단순할수록 얼마나 풍요로운가를 절감한다. 그리고 똑 같은 양으로 내가 얼마나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인가도 말이다.

가장 경이로운 것은 이들이 소유한 것의 양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이가 의신마을 최도사다. 그는 계절별로 두어 벌의 옷을 소유하고 있다. 아마도 언제든 어깨에 달랑 지는 바랑 하나에 짐을 챙겨 그는 먼 길을 떠날 수 있으리라. 내 주변의 많은 성직자, 수도자분을 보았지만 최도사만큼 적게 소유하고 있는 이는 보지 못했다. 스스로내비도의 교주라고 하는 것이 이해가 가긴 간다.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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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작가는 잘 나가는 작가란다. 아마 돈도 많이 벌 거야. 그런데 버들치 시인을 비롯한 지리산 친구들은 가난한 친구들이란다. 공지영 작가는 생각한다. 나중에 자신이 돈을 많이 벌어 지리산 한편에 땅을 사서 친구들 같이 편히 살게 하겠다고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지리산 식이 아니라고, 할 거라고 덧붙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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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지리산이야, 꽁지야. 친구들이 와서 지붕 다 고치고 지네들이 고기 사 와서 먹고 갈 거야. 넌 글이나 쓰라니까.”

그래, 거기가 지리산이었다. 소유가 전부가 아닌 곳, 욕망이 다다른 곳, 지혜가 다른 곳. 나는 문득 또 생각했다. ‘알았어. 내가 책 팔아 돈 많이 벌어서 지리산 한편에 땅이라도 살게. 그래서 다들 편히 살다가 갈 수 있게 할게라고. 아마도 친구들은 또 지청구를 할지도 모르겠다.

“글쎄, 그게 지리산 식이 아니라니까.” (239)

===========================================

 

2.

이 책을 읽다 보면 또 지리산에 가고픈 생각이 들더구나. 아빠가 작년 겨울에 지리산 등반을 한 적이 있어. 그렇게 지리산 등반을 하는 것도 좋지만, 그냥 지리산 자락에 며칠 그들처럼 머물러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지리산이 뒤에서 든든히 지켜주고, 앞으로는 섬진강 강이 내다보이는 그런 곳. 그런 곳에서 지리산에서 나는 나물을 먹으며, 전통 차 한잔 하면서 좋아하는 책을 읽다 보면, 영혼에 찌든 때가 모두 씻겨 나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지난 번 <지리산 행복학교>를 책이 인기를 끌면서, 사람들이 그 책에서 나온 지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어 지리산 주변의 땅값이 올랐다면서, 지리산 친구들이 투덜거렸다고 하는구나. 이러다 그곳에서도 쫓겨나는 것 아니냐고 말이야. 그런데 이번에 또 <시인의 밥상>을 내고 이 책이 인기를 끌면서 또 지리산 땅 값이 올라가는 것 아닌가 모르겠구나.^^

이 책에는 지리산 지인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지리산 주변이 아닌 다른 동네에 이야기도 나왔는데, 전주의 <새벽강>이라는 술집에 한번 가보고 싶더구나. 그리고 작년 여름에 너희들과 함께 놀러 갔던 거제도의 몽돌해변에 관한 이야기도 여러 번 이야기되어 반가웠단다.

 

 3.

본명보다 별명으로 더 많이 등장하는 버들치 시인 박남준. 아빠는 사실 그를 공지영 작가의 책을 통해서만 들어본 시인이란다. 그의 글들을 이 책에도 실려 있는데,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그의 글들은 담백하고 지리산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 그래서 그의 책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이 책의 실려 있는 그의 글들 중에서 아빠가 가장 좋게 보았던 글을 발췌하면서, 오늘 편지는 마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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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물락 쭈물럭

단단하던 감들이 만지면 만져줄수록

쪼글쭈글 시들어간다

축축 늘어진다

사람의 모난 마음도 쓰다듬고 어루만져주면

둥글게 두리동동 동그래질 것이다

감을 깎다가 익거나 으깨져서 물러진 부분들

서걱 베어낸 곶감이 있다

그 베어진 상처 쪼물락 쭈물럭 조심스럽게 만져주었더니

그러니까 상처가 씻기고 치유되어서

동글동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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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르게 욕망할 뿐이다."
그렇다 그들은 시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흘려보내기를, 저 산과 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욕망한다. 그들은 누구보다 여행을 많이 떠나고 누구보다 계절을 깊이 즐긴다. 봄이면 야생 달래와 냉이 그리고 산나물을 먹고 여름이면 천렵한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인다. 가을이면 송이버섯 열 개로 친구들과 풍성한 파티를 벌인다. 나는 지리산에 갈 때마다 삶이 단순할수록 얼마나 풍요로운가를 절감한다. 그리고 똑 같은 양으로 내가 얼마나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인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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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창세기 28 10~15절에 나오는 야곱의 돌베개이야기는 내가 결혼 일주일 만에 남기고 떠난 내 아내에게 일군(日軍)탈출의 경우 그 암호로 약속하였던 말이다. 마침내 나는 그 암호를 사용하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대륙에 발을 옮기며 내가 벨 돌베개를 찾는다고 하였다. “어느 지점에 내가 베어야 할 그 돌베개가 나를 기다리겠는가?”라고 썼다. 그 후 나는 돌베개를 베고 중원 6천 리를 걸으며 잠을 잤고 지새웠고 꿈을 꾸기도 하였다. 나의 중원 땅 2년은 바로 나의 돌베개였다. 아니, 그것이 나의 축복받는 돌베개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77)

, 불로하, 말 없는 강, 안으로 안으로 모든 것을 가라앉혀 비록 그 바닥에서는 물결이 거세어도 수면은 언제나 잔잔히 흐르기만 하는 강, …… 너 마르지 않고 너 나타나지 않는 그 강심을 나는 여기서 배우리라.”

어느새 이국의 태양은 머리 위에 올랐고 강물 위엔 쏟아진 햇볕이 물결을 덮으며 웅장한 음악이 강 밑으로 흐르는 것이었다. 우리의 소망과 새로운 각오를 위해 강은 흘렀다.

우리는 목욕을 마치고 군복을 입었다. 서로서로를 돌아보며 새 결의를 다짐했다. 모두 새사람이 되었다. 진정 우리는 새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조국 광복, 이 깊고 긴 강처럼, 크고 깊은 긴 일을 마침내 나는 찾아낸 것이다. 이제 우리는 떳떳한 조국의 아들이 다시 되었다. 기쁨과 감격은 이 아침을 신비롭게 하였다.

우리는 동북쪽의 조국을 향하여 경건하게 머리를 숙였다. 이글대는 태양을 마주하고 가로로 한 줄을 만들어 서서 이 가슴의 감격을 조국에 고하고자 했다. 김준엽 동지, 윤경빈 동지, 김영록 동지, 홍석훈 동지 그리고 나, 이렇게 차례로 서서 조국을 향한 배례를 한 것이다.

(188)

밤이슬에 젖고 땀에 젖으며 또 새벽서리에 젖는, 청색 무명 군복 한 벌은 충칭을 찾아가는 긴긴 수천 리 길 바람에 마르곤 하였다.

조국이 무엇이기에 이 길을 가는 것이냐.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이 옮겨질 때마다 발걸음을 옮기게 하는 우리의 그 줄기찬 의지에 몇 번이고 우리는 스스로 감격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막을 가는 낙타처럼 무의식으로 내딛는 발걸음이 아닐진대, 발걸음이 무거워질수록 우리의 신념은 더욱더 굳어져야 했다. 낮이면 폴싹폴싹 일어나는 황토의 흙먼지, 밤이면 마치 흔들리는 등불처럼 우리의 발걸음은 줄기찬 하나의 신앙이었다. 그것은 분명히 우리만의 의사가 아닌, 보다 큰 어떤 의사의 발현만 같았다.

 

(223)

, 조국 없는 설움이여.

우리의 조상이 못난 때문에 우리가 이 설원의 심야를 떨며 지새워야 하는가. 아니, 조금도 조상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돌린다는 것은 나의 비겁이다.

나의 조상은 또 조상을 가졌고, 그 조상은 또 못난 조상을 가졌다. 앞으로도 우리는 못난 조상이 되어야 하겠는가?

무수한 밤별이 울어주는 듯, 나의 눈에 들어오는 별빛이 어른거렸다.

또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입술을 깨물고 나는 폭발하려는 나의 가습을 막아야만 했다.

치미는 분노와 막아야 하는 입술의 의지가 격렬한 투쟁을 벌였다.

나는 혁명적인 나로 나 스스로를 지향시켜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파촉령의 설원에서 내 스스로에게 맹세한 이 결의를 위해 나는 투쟁할 것을 다짐했다.

나의 신념, 차디찬 결의는 이때부터 나를 지배했다.

 

(226)

송곳으로 쑤시는 듯한 아픔이 정강이에서 허벅지로 기어올랐다.

육중한 대지가 기울어, 우리가 그 속에 깔린 듯이 이 밤을 머리에 이고, 초침을 마음속으로 세고 있다.

, 이 은세계의 시련은 나에게 신념을 주기 위해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야. 나의 신념이, 나의 생활의 철학이 이제야 생성되기 위해 나는 이 죽음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냐?

나는 밤하늘의 원망을 짓씹으며 어서 날이 새어 그 밝은 태양이 내 가습에 떨어지길 빌었다.

이 밤에 우리가 동사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저 떠오르는 정열의 햇덩이를 가슴에 삼키고 이 설원을 가로 달려가리라.

가리라. 가서 또다시 우리는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이 몸에 불을 붙이리라. 그것이 혁명이면 이 붉은 정열을 혁명에 태우리라.

아름다운 희망이 동녘을 트면서 우리에게 기어왔다.

, 죽지 않고 살았구나!

 

(263)

길지 아니한 단 10여 일 동안, 그동안 우리의 눈에 비친 임정은 결코 우리가 사모하던 그 임정과 다른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잘못 본 것이라면 용서하십시오. 진정으로 여러 선배 선생님께서 이곳 이 땅에서 임정을 사랑하고 있다고 저희에게 생각되지 아니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랑한다는 것과 탐욕을 내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탈출해서 기나긴 행군으로 오면서 그리던 임정은 모두 일치단결되어 있는 완전한 애국투쟁의 근본이라고 여겼습니다. 이곳에 오기만 하면 그 단결된 힘으로 오직 잃은 나라 찾는 데만 목숨 바쳐 일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 그 기대는 지나친 하나의 환상이 아니었나 하는 회의를 품게 되었습니다. 이 회의는 누가 준 것입니까?

조국을 잃고 망명한 입장에서 임정을 세웠기에 임정이 하는 일에는 파쟁이 개재되어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이것은 저희가 잘못 본 것입니까? 아니면 사실입니까?

 

(341)

나는 차례로 이들의 표정을 눈여겨보았으나, 한평생 생애를 다 바쳐 투사가 되신 그 위엄 앞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 수송기의 소음이 나에게 이런 생각을 갖게 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굳어지는 안면근육의 움직임으로 무쇠 같은 의지와 신념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더 무슨 말을 나누리오. 오직 조국의 앞날과 조국의 땅이 한 치씩 한 치씩 다가오는 그 시공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요란한 심장의 고동을 좀 더 강하게 느끼면서 그 어떤 희열을 체감하는 것, 이것이 보람이 아니고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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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순간들 - 2002년 노무현 대선승리의 기록
구술자 12인 지음, 노무현재단 엮음 / 생각의길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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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노무현 재단은 노무현 대통령님의 삶, 정책, 철학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해서 책으로 엮는 일도 한단다. 그래서 많은 책들을 냈고, 아빠는 그렇게 만들어진 책들을 즐겨 읽는단다. 노무현 대통령님을 책을 통해서 만나는 거지. 아빠가 이번에 읽은 책도 노무현 재단이 펴낸 책이란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고의 순간을 담은 책.

2002. 민주당 경선을 거쳐 대통령 후보가 되고, 지지율이 곤두박질 치고 다시 일어나고, 정몽준과 극적인 단일화를 이루어내 결국 대통령 선거에서 이긴 그 드라마 같은 일 년노무현과 함께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란다. 그들은 노무현과 함께 하면서, 힘들지만 행복한 날들을 보냈을 거야. 그들이 이야기하는 그때의 순간들로 인해 아빠도 그 시절로 돌아갔단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시의 영상들을 다시 찾아보곤 했단다. 경선 때마다 울려 퍼진 노무현의 명연설들지금 다시 들어도 감동이 다시 아빠의 몸을 휘감는구나. 이 책의 구술자들은 각자 노무현과 처음 만난 게 된 이야기와 2002년 노무현과 함께 한 이야기를 했단다. 아빠에게도 노무현을 처음 알게 된 때와(아빠는 만난 건 아니니까) 그리고 아빠의 2002년을 이야기해 보라면 어떻게 이야기할까? 생각해 보았어.

한번 짧게 줄여서 이야기해볼께. 아직도 모든 것들이 생생하구나. 아빠가 노무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1988년 청문회 때야. 아빠가 그때는 어려서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정도만 알았지, 그가 왜 뉴스에 오르내리고 그랬는지도 몰랐단다. 그 이후 아빠는 학창시절을 거치면서 정치에는 담을 쌓고 살았단다. 대학 시절에는 정치에 관심을 둘 만도 했는데, 아빠는 그때도 정치에 관심이 없었어. 무책임한 청년이었지. 그러다가 사회 초년생 때 우연히 책을 한 권 읽었단다. 강준만의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이 책을 읽고 나서 아빠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어. 노무현의 팬이 되어서 노사모에 가입을 했고, 노사모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는 죽돌이가 되었단다. 노무현이 팬이 되고 나서야 우리나라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단다. 노무현이 정치인이니까 말이야. 그러면서 우리나라에도 괜찮은 정치인들이 몇몇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민주당 경선이 시작되었단다. 정말 극적인 순간들이 아닐 수 없었단다. 제주부터 시작해서 주말마다 전국을 순회하명서 진행된 경선.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었어. 그래서 가급적 주말 약속을 잡지 않고, 집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경선 결과 방송을 보곤 했단다. 그리고 극적인 순간들을 함께 했지. 광주에서 승리는 정말 최고였어. 가끔 주말 약속이 있으면 결과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어. 당시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접속해서 간단한 뉴스를 문자를 제공받을 수 있었는데, 그 데이터 요금이 비쌌던 시절이었지. 그런데 아빠는 경선 결과 궁금해서 결과가 기사로 나올 때까지 몇 번을 접속했는지 모른단다. 결과를 보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환호했단다. 그렇게 민주당 경선에서 최종 승리를 한 노무현. 그 때부터 아빠는 지인들에게 노무현에 대한 홍보를 했어. 지금 생각해보면 지나칠 정도로 이야기했던 것 같구나. 보통 회사에서는 정치에 관한 이야기는 조심하는 편인데, 당시 아빠는 철모르던 젊은이였기 때문에 대놓고 지지를 호소했었단다. 그러다가 반대편 지지자들을 자리를 함께 하게 되면, 설전을 벌이기도 했어. 당시에는 상대방 진영을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고 틀리다고 생각했었거든. 그렇게 노무현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칠 때나 좋을 때나 한결같이 그를 응원했단다. 그리고 운명의 정몽준과 노무현의 단일화. 그 결정이 정해진 날, 아빠는 중국 출장에 가 있었어. 중국에서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아직도 그 장소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기억나는구나. , 이제 대통령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선거 하루 전 속 좁은 정몽준의 지지 철회. 누군가는 절망을 했을 지 모르지만, 이상하게 아빠는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깟 일로 하루 아침에 지지자를 쉽게 바꾸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승리를 장담했어. 그래서 그 승리의 순간을 축하하려고, 아빠는 친구, 후배들과 함께 술자리에 함께 했어. 한 잔 하면서 6시 출구 조사 결과를 지켜봤단다. 그리고 결과는 노무현 대통령이 승리하는 것으로 나왔어. 그때 다시 한번 다함께 환호성을 보냈지. 선거 결과도 출구 조사대로 노무현 대통령의 승리로 끝났단다. 정말 아직도 생생한 2002년 일 년이구나.

 

1.

요즘도 친노라면서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아빠는 왜 친노가 비판의 대상이 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단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노무현 대통령님한테 열등감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아빠처럼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은, 친노가 되고 싶어 안달이거든. 그런데, 이 책의 구술자 중에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가 이야기했단다. 친노는 없다고그저 노무현의 시대정신을 실천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 그 말에 일리가 있었단다. 노무현 대통령의 열등감에 취해 비판하지 말고, 노무현이 어떤 시대정신을 가지고 정치를 했나 잘 생각해보고, 시대정신에 헌신하는 자라면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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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이 걸어갔던 길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결국은 어떤 시대정신을 가지고 가장 어려운 사람과 더불어서 가장 전면에, 일선에서 자기 모든 걸 던진 사람이에요. 그런 걸 가진 사람이 노무현의 후예가 되지 인간적으로 가깝다고 되는 거? 난 그런 거 없다고 봐요. 그래서 친노라고 마친 큰 세력이 있는 것처럼 해서 연일 싸우는 사람도 고스트(ghost)와 싸우는 거고, 또 하나는 친노 적자는 없다, 내가 볼 땐, 오히려 시대정신에 헌신하는 자가, 그 사람이 노 대통령의 후계자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기존의 질서를 뒤집어엎는 그런 사람이 반드시 또 탄생한다. ? 서민들이 봉하마을에 오는 걸 관찰해 보면, 삶이 힘들면 힘들수록 더 많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기성 정치에 염증을 내면 낼수록 찾아옵니다. 그 공통분모를 믿는 사람이 또 탄생한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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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2002년 노무현의 당선을 기적이라고도 하고, 한 편의 드라마라고도 하고, 하늘이 선택한 것이라고 하기도 한단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란다. 그리고 노무현이 2002년이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는 유시민의 말도 동의한단다. 오늘날이었다면 아마 대통령이 되지 어려웠을 거야. 유시민은 상당 기간 동안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캐릭터를 가진 분이 안 생길 거라고 했어. 그런데 아빠는 유시민도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정치인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그가 정치를 할 때는 언젠가는 대통령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그는 정치를 그만두고, 전직 작가가 되었단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빠도 유시민이 정치를 하지 않는 것은 국가적인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그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의 뜻도 존중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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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정치인이, 그 개인의 경력으로 보나 사회적 기반으로 보나 정치적 기반은 비주류의 비주류고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요소가 없어요. 근데 그 시기에 사람들로 하여금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를 가진 분이었어요. 사람들이 나름대로,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노무현이라는 이 캐릭터에서 어느 한 대목인가를 자기 마음에 들어 하고그래서 난 노무현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준 사람이에요. 많은 결점과 더불어서 많은 미덕을 가진 분이었잖아요. 이분이 지금 대선에 나온다면 안 된다고 봐요. 또는 그전에 나왔더라도 역시 안 됐으리라고 봐요. 이거는 그때 딱 일회적으로 벌어진 사건이었어요. 그리고 그런 캐릭터를 가진 분이 대통령이 되는 일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안 생길 거라고 봐요. 우리나라 같은 조건에서는 대통령이 될 수 없는 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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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얼마 전에 <무현, 두 도시 이야기>란 영화를 봤단다. 영화를 보면서, 아빠는 몰래몰래 눈물을 흘렸는데, 옆 좌석 어떤 아저씨는 대놓고 펑펑 울고 있더구나. 최근 우리나라 최악의 대통령으로 온 백성들이 분노하는 시절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것 같더구나. 그 영화에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더구나.

그나저나 그 분은 왜 물러나지 않고, 온갖 욕을 다 드시고 계시는지 모르겠구나. 욕을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는 생각을 하고 있나? 그래도 오늘 간만에 기분 좋은 소식이 여의도로부터 들려왔더구나. 하지만 이럴수록 방심하지 말아야 한단다. 그 날까지 고고.

 

 

 

 

 

 

 

 

노 대통령이 걸어갔던 길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결국은 어떤 시대정신을 가지고 가장 어려운 사람과 더불어서 가장 전면에, 일선에서 자기 모든 걸 던진 사람이에요. 그런 걸 가진 사람이 노무현의 후예가 되지 인간적으로 가깝다고 되는 거? 난 그런 거 없다고 봐요. 그래서 친노라고 마친 큰 세력이 있는 것처럼 해서 연일 싸우는 사람도 고스트(ghost)와 싸우는 거고, 또 하나는 친노 적자는 없다, 내가 볼 땐, 오히려 시대정신에 헌신하는 자가, 그 사람이 노 대통령의 후계자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기존의 질서를 뒤집어엎는 그런 사람이 반드시 또 탄생한다. 왜? 서민들이 봉하마을에 오는 걸 관찰해 보면, 삶이 힘들면 힘들수록 더 많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기성 정치에 염증을 내면 낼수록 찾아옵니다. 그 공통분모를 믿는 사람이 또 탄생한다고 봐요.

노무현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정치인이, 그 개인의 경력으로 보나 사회적 기반으로 보나 정치적 기반은 비주류의 비주류고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요소가 없어요. 근데 그 시기에 사람들로 하여금 ‘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를 가진 분이었어요. 사람들이 나름대로,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노무현이라는 이 캐릭터에서 어느 한 대목인가를 자기 마음에 들어 하고 ‘그래서 난 노무현’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준 사람이에요. 많은 결점과 더불어서 많은 미덕을 가진 분이었잖아요. 이분이 지금 대선에 나온다면 안 된다고 봐요. 또는 그전에 나왔더라도 역시 안 됐으리라고 봐요. 이거는 그때 딱 일회적으로 벌어진 사건이었어요. 그리고 그런 캐릭터를 가진 분이 대통령이 되는 일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안 생길 거라고 봐요. 우리나라 같은 조건에서는 대통령이 될 수 없는 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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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2015년판) -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지금까지 김영하의 소설은 네 권을 읽었단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열광적인 팬이 되기에는 아빠의 기대치에는 약간 못 미친 책들도 있었어. 그래도 기회 되면 읽어볼 만한 작가 명단에는 포함되는 그런 작가란다. (아빠 기준으로 그렇다는 것이야). 그런데, 그의 산문집은 어떨까? 하고 한번 집어 들어보았단다. 이 책은 <보다>, <말하다>, <읽다>로 이어지는 김영하 산문 삼부작의 마지막 책이라고 하는구나. <보다>, <말하다>는 아직 읽지 않았어. 연재 소설도 아니고 순서야 중요하지 않겠지. 이번에 읽은 <읽다>라는 책은 책에 관한 이야기였단다. 특히 소설에 관한 이야기들이야.

요즘 많은 사람들은 책을 읽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하더구나. 아빠도 그러고 싶긴 한데, 낯가림도 있고, 여유도 없으니, 그런 것을 너희들에게 독서편지를 쓰면서 대신하고 있는 것이란다. 아빠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이 책은 작가 김영하가 일방적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그런 책 토론회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 이 책에 소개된 책들 중에서 아빠가 읽은 책들이 꽤 있었단다. 김영하가 이야기하는 것을 읽어보면서, 아빠가 읽었던 느낌을 떠올리게 할 수 있었어. 어떤 부분은 격하게 공감을 하는 부분도 있었고, 어떤 부분은 아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새로 알게 되기도 했단다. 예를 들어 아빠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일리아드>를 그저 스토리만 쫓아가면서 읽었는데, 김영하의 설명에 따르면 작가의 구성력이 돋보였다고 하더구나. 원래 그 이전부터 전래되어 내려오던 이야기를 지은이가 새롭게 구성을 해서, 독자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주었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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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아>를 쓴 호메로스처럼 소포클레스 역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이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할 필요를 느꼈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연대기적 서술을 포기합니다. 게다가 그가 쓰려고 했던 것은 몇 시간 안에 끝을 내야 하는 연극의 대본이었으니 과감한 압축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래서 연극이 시작되면 우리는 이미 왕좌에 오른 오이디푸스를 보게 됩니다. 이런 서사기법을결정적 순간의 바로 직전에서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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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이야기나, 위인들에 대해서도 많은 작가들이 그 나름대로 소설로 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생각이 나더구나. 소설은 스토리 뿐만 아니라 구성력으로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거야.

책 이야기를 하면서, 책이 가득 모여있는 도서관 이야기를 하면서, 장클로드 카리에르의 말을 인용했는데, 그의 말에 아빠는 공감을 했단다. 많이 꽂혀 있는 책만 바라보는 것만으로 무언가가 느껴진다는 그 말. 아빠가 요즘은 책을 읽는 것보다 모으는 것에 더 뿌듯함을 느끼거든. 너희들이 웃으면서, 아빠 읽지 않으면서 왜 또 책을 사냐고 묻기도 했잖아. 그런데, 그 책을 읽지 않고 책장에 꽂아두고 바라만 봐도 뿌듯함을 느끼곤 했는데, 그것이 아빠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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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다시피 도서관은 책을 모아놓은 곳입니다. 누구라도 그곳에 들어가면 어떤 신성함을 느끼게 됩니다. 많은 저자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책등은 묘비처럼 느껴집니다. 그곳은 죽은 이와 산 자가 가장 평화롭게 공존하는 공간이고 엄밀한 의미에서 저자가 죽어 있는지 살아 있는지 신경쓰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작가는 자기가 쓴 책에 묻힌다는 말의 의미를 가장 실감할 수 있는 곳도 바로 도서관일 겁니다. 움베르토 에코와 대담을 하던 장클로드 카리에르가내가 책이 많이 있는 어떤 방으로 가서 그중 한 권도 손을 대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한답니다. 그러면 무어라고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를 받게 돼요. 그것은 어떤 강한 흥미라고도 할 수 있고, 어떤 안도감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라고 말할 대, 책을 사랑하는 우리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 단박에 짐작할 수 있습니다.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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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에서 소개한 책들은 대부분이 우리가 보통 고전이라고 부르는 책들이란다. 고전이라고 하면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책이 아닐까 생각한단다. 장르로 보면 고전 소설과 비소설 고전이 있을 거야. 이 책에서는 소설 장르의 고전을 소개해 주었어.

사람들은 고전은 왜 읽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한단다. 무엇인가 거창한 답변이 있을 수도 있고, 고전 작품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거야. 그리고 읽기도 전에 고전은 어려워서 도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평균적으로 봤을 때, 아빠가 생각하기에도 고전이 오늘날 소설보다 읽기가 어려운 것은 맞는 것 같아. 그럼에도 아빠가 고전을 읽는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구나. 몇몇 고전을 읽으면서 재미를 발견한 이후로 고전에 대한 편견을 깼어. 간혹 어려운 고전을 만나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다들 재미를 가지고 있었단다. 그래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게 아닐까 생각한단다.

누군가 아빠한테 고전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이 책에서도 소개한 <돈 키호테>, <마담 보바리>도 포함될 것 같구나. 그리고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일순위로 뽑고 싶더구나. 아빠가 읽은 고전 소설 중에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거든결론은 아빠는 고전을 읽기 전에 늘 이 책은 또 어떤 재미를 줄까? 기대를 하면서 첫 장을 넘긴단다. 그런데 소설이 아닌 고전의 경우는 재미를 기대하는 것보다, 과연 내가 얼마나 이해를 할 수 있을까? 를 생각하거나 얼마나 어렵게 써 있나? 를 생각하면서 책을 편단다. 지은이 김영하는 고전이라는 것에 당대의 진부함을 깨는 것들이 고전이 된다고 했단다. 그렇게 당대 시대를 뛰어넘는 작품이 되고, 그것이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게 된 거라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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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고전이 진부할 것이라 지레짐작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래 살아남은 고전은 처음부터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웠는데 지금 읽어도 새롭게 다가옵니다. 다시 말해 지금 읽어도 새로운 것은 쓰인 당시에도 새로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전이라고 해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 역시 당대의 진부함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고전은 당대의 뭇 책들과 놀랍도록 달랐기 때문에 살아남았고 그렇기에 진부함과는 정반대에 서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낡거나 진부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책들은 살아남았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후대로 전승되었을 겁니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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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은이 김영하는 책 마지막 부분에서 정리하면서, 책 읽는 것을 아주 거창하게 정리하였단다. 책을 읽는 것은 우주에 접속하는 거라고 말이야. 세상에 수많은 책들을 다 읽기에는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단다. 그리고 고전이라고 부르는 책들은 그 생명력 또한 무척 길단다. 그 책을 쓴 작가나 그 책들이 초판본을 읽은 이들은 이 세상에 모두 사라졌지만, 그 책은 여전히 살아남아서 새로운 독자들을 만난단다. 그래서 우주와 같다는 거야. 이 광활하고 오랜 역사를 가진 우주 속에서 우리는 아주 좁은 지역에 잠시 살다가 사라지니까 말이야. 우리가 삶을 마감해도 도 다른 사람들은 <돈 키호테>를 읽고, <오딧세이아>를 읽고 <마담 보바리>를 읽을 테니 말이야. 거창한 비유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적절한 비유인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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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독자로 산다는 것에 현실적 보상 같은 것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짧은 생물학적 생애를 넘어 영원히 존재하는 우주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 잠시나마 그 세계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독서의 가장 큰 보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별들이 수백 수천 년 전에 보내온 빛이 이제야 우리 망막에 와닿듯이 책 역시 시공을 초월해 우리에게 도달하고 영향을 미칩니다. 밀란 쿤데라의 통찰처럼, 비록 우리 현대인의 시야가 마치 요제프 K의 그것처럼 좁아져 있고 모두가 세속적 이해와 단기적 전망으로 아웅다웅하며 살아가고, 세계가 돈키호테와 같은 모험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에게는 이 좁은 전망을 극적으로 확장해줄 마법의 문이 있습니다. 바로이야기의 바다로 뛰어들어책의 우주와 접속하는 것입니다.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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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요즘 바빠서 우주에 접속을 잘 못하고 있는 것 같구나. 그리고 우주 여행을 하고 다녀와서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는데, 그것 또한 시간을 내기 어렵구나. 그래서 이렇게 한 밤 중에 눈을 비비며, 잠을 쫓아 가며 쓰고 있단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이 글은 거의 비몽사몽에 썼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야.^^ , 이제 아빠도 잠을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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