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창세기 28장 10~15절에
나오는 야곱의 ‘돌베개’ 이야기는 내가 결혼 일주일 만에
남기고 떠난 내 아내에게 일군(日軍)탈출의 경우 그 암호로 약속하였던 말이다. 마침내 나는 그 암호를 사용하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대륙에 발을
옮기며 내가 벨 ‘돌베개’를 찾는다”고 하였다. “어느 지점에 내가 베어야 할 그 ‘돌베개’가 나를 기다리겠는가?”라고
썼다. 그 후 나는 ‘돌베개’를 베고 중원 6천 리를 걸으며 잠을 잤고 지새웠고 꿈을 꾸기도 하였다. 나의 중원 땅 2년은 바로 나의 ‘돌베개’였다. 아니, 그것이 나의
축복받는 ‘돌베개’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77)
“너, 불로하, 말 없는 강, 안으로 안으로 모든 것을 가라앉혀 비록 그 바닥에서는
물결이 거세어도 수면은 언제나 잔잔히 흐르기만 하는 강, …… 너 마르지 않고 너 나타나지 않는 그
강심을 나는 여기서 배우리라.”
어느새 이국의 태양은 머리 위에 올랐고 강물 위엔 쏟아진 햇볕이 물결을 덮으며 웅장한 음악이 강 밑으로 흐르는
것이었다. 우리의 소망과 새로운 각오를 위해 강은 흘렀다.
우리는 목욕을 마치고 군복을 입었다. 서로서로를 돌아보며 새 결의를
다짐했다. 모두 새사람이 되었다. 진정 우리는 새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조국 광복, 이 깊고 긴 강처럼, 크고
깊은 긴 일을 마침내 나는 찾아낸 것이다. 이제 우리는 떳떳한 조국의 아들이 다시 되었다. 기쁨과 감격은 이 아침을 신비롭게 하였다.
우리는 동북쪽의 조국을 향하여 경건하게 머리를 숙였다. 이글대는 태양을
마주하고 가로로 한 줄을 만들어 서서 이 가슴의 감격을 조국에 고하고자 했다. 김준엽 동지, 윤경빈 동지, 김영록 동지, 홍석훈
동지 그리고 나, 이렇게 차례로 서서 조국을 향한 배례를 한 것이다.
(188)
밤이슬에 젖고 땀에 젖으며 또 새벽서리에 젖는, 청색 무명 군복 한
벌은 충칭을 찾아가는 긴긴 수천 리 길 바람에 마르곤 하였다.
조국이 무엇이기에 이 길을 가는 것이냐.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이
옮겨질 때마다 발걸음을 옮기게 하는 우리의 그 줄기찬 의지에 몇 번이고 우리는 스스로 감격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막을 가는 낙타처럼 무의식으로 내딛는 발걸음이 아닐진대, 발걸음이
무거워질수록 우리의 신념은 더욱더 굳어져야 했다. 낮이면 폴싹폴싹 일어나는 황토의 흙먼지, 밤이면 마치 흔들리는 등불처럼 우리의 발걸음은 줄기찬 하나의 신앙이었다. 그것은
분명히 우리만의 의사가 아닌, 보다 큰 어떤 의사의 발현만 같았다.
(223)
아, 조국 없는 설움이여.
우리의 조상이 못난 때문에 우리가 이 설원의 심야를 떨며 지새워야 하는가. 아니, 조금도 조상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돌린다는 것은 나의 비겁이다.
나의 조상은 또 조상을 가졌고, 그 조상은 또 못난 조상을 가졌다. 앞으로도 우리는 못난 조상이 되어야 하겠는가?
무수한 밤별이 울어주는 듯, 나의 눈에 들어오는 별빛이 어른거렸다.
“또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입술을 깨물고 나는 폭발하려는 나의 가습을 막아야만 했다.
치미는 분노와 막아야 하는 입술의 의지가 격렬한 투쟁을 벌였다.
나는 혁명적인 나로 나 스스로를 지향시켜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파촉령의
설원에서 내 스스로에게 맹세한 이 결의를 위해 나는 투쟁할 것을 다짐했다.
나의 신념, 차디찬 결의는 이때부터 나를 지배했다.
(226)
송곳으로 쑤시는 듯한 아픔이 정강이에서 허벅지로 기어올랐다.
육중한 대지가 기울어, 우리가 그 속에 깔린 듯이 이 밤을 머리에
이고, 초침을 마음속으로 세고 있다.
아, 이 은세계의 시련은 나에게 신념을 주기 위해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야. 나의 신념이, 나의 생활의 철학이 이제야 생성되기
위해 나는 이 죽음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냐?
나는 밤하늘의 원망을 짓씹으며 어서 날이 새어 그 밝은 태양이 내 가습에 떨어지길 빌었다.
이 밤에 우리가 동사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저 떠오르는
정열의 햇덩이를 가슴에 삼키고 이 설원을 가로 달려가리라.
가리라. 가서 또다시 우리는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이 몸에
불을 붙이리라. 그것이 혁명이면 이 붉은 정열을 혁명에 태우리라.
아름다운 희망이 동녘을 트면서 우리에게 기어왔다.
아, 죽지 않고 살았구나!
(263)
길지 아니한 단 10여 일 동안, 그동안
우리의 눈에 비친 임정은 결코 우리가 사모하던 그 임정과 다른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잘못
본 것이라면 용서하십시오. 진정으로 여러 선배 선생님께서 이곳 이 땅에서 임정을 사랑하고 있다고 저희에게
생각되지 아니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랑한다는 것과 탐욕을 내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탈출해서
기나긴 행군으로 오면서 그리던 임정은 모두 일치단결되어 있는 완전한 애국투쟁의 근본이라고 여겼습니다. 이곳에
오기만 하면 그 단결된 힘으로 오직 잃은 나라 찾는 데만 목숨 바쳐 일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 그 기대는 지나친 하나의 환상이 아니었나 하는 회의를 품게 되었습니다. 이 회의는 누가 준 것입니까?
조국을 잃고 망명한 입장에서 임정을 세웠기에 임정이 하는 일에는 파쟁이 개재되어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이것은 저희가 잘못 본 것입니까? 아니면 사실입니까?
(341)
나는 차례로 이들의 표정을 눈여겨보았으나, 한평생 생애를 다 바쳐
투사가 되신 그 위엄 앞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
수송기의 소음이 나에게 이런 생각을 갖게 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굳어지는 안면근육의 움직임으로 무쇠
같은 의지와 신념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더 무슨 말을 나누리오.
오직 조국의 앞날과 조국의 땅이 한 치씩 한 치씩 다가오는 그 시공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요란한 심장의 고동을 좀 더 강하게 느끼면서
그 어떤 희열을 체감하는 것, 이것이 보람이 아니고 무엇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