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칼리버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3 아서 왕 연대기 3
버나드 콘웰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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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버나드 콘웰의 <아서왕 연대기시리즈 그 마지막 이야기, <엑스칼리버>를 이야기해줄게. 엑스칼리버라고 하면… 아서왕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칼의 이름이란다. 아서왕에 관한 책을 읽지 않은 이들도 엑스칼리버에 대한 이야기는 알 거야. 바위에 박혀 있던 엑스칼리버. 아무도 빼내지 못했는데그걸 어린 아서가 뽑아냈다는 이야기. 아서왕 시리즈라면 누구나 그 장면을 기대했을 텐데, 버나드 콘웰의 아서왕 시리즈는 그 장면이 나오지 않았단다. <아서왕 연대기> 시리즈 1 <윈터킹>의 시작 부분에 이미 아서가 엑스칼리버를 가지고 있었어. 멀린이 회상을 하면서 아서가 엑스칼리버를 뽑아냈다고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구나. 그것도 사실은 멀린이 마술을 부려서 그랬던 것이라고 했어. 그래서 아서가 엑스칼리버를 가지고 있도록 말이야. 기억나니그 엑스칼리버가 브리튼의 보물 중에 하나였잖아.

 

1

2 <에너미 오브 갓>에서 란슬롯과 귀니비어의 반란이 있었지만 실패로 돌아갔었잖아. 그 반란의 여파로 귀니비어와 산쉼주교는 감금되었고, 란슬롯은 색슨족 케르디치 왕에게 도망을 갔단다. 아서는 이 반란의 중심에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 귀니비어가 있었다는 것에 무척 괴로워했어. 여전히 귀니비어를 사랑하니더 괴로워했던 것이고 말이야. 한편멀린은 바다 건너 브로셀리앙드의 왕자 가웨인을 데리고 왔어. 그리고 가웨인에게 브리튼의 보물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겼어. 브리튼의 보물을 모두 모은 멀린... 이제 브리튼의 신을 불러내는 의식을 위해 마이뒨이라는 곳으로 향했단다. 그 의식을 소환식이라고 했고, 1년을 마무리하는 사민 전야에 해야 한다고 했어. 그리고 멀린은 아서에게 엑스칼리버를 빌렸단다. 왜냐하면 그 엑스칼리버도 브리튼 보물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야. 그렇게 멀린은 니무에와 함께 마이뒨에서 소환식 준비를 했단다.

색슨족에는 두 명의 왕이 있다고 했었지. 동북쪽 지방에 앨레가 있고케르디치가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었어. 아서는 케르디치를 칠 계획을 세우고 있었어. 란슬롯이 케르디치에게 도망을 간 것도 있지만케르디치와는 계속 사이가 좋지 않았어. 그에 반해앨레는 데르벨의 아버지였잖아. 그리고 앨레는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어. 아서는 데르벨에게 사자 자격으로 앨레에게 보냈단다화의를 청하기 위해서…

그런데 앨레을 만나는 자리에 케르디치와 란슬롯이 이미 와 있었어. 그들이 먼저 연합을 제의하기 위해 왔던 것이야.. 데르벨이 아서의 사자라는 것을 알고 다들 데르벨을 죽이라고 했는데, 앨레는 자신의 아들을 죽일 수는 없다고 했어. 그 대신 대결을 하라고 했고색슨족에서는 리오바라는 자가 결투를 했고, 데르벨이 승리를 거두었단다. 하지만 앨레는 케르디치와 약속을 이유로 아서의 화의 제안을 거절을 했단다.

 

 

2.

멀린과 니무에가 준비한 소환식.. 그날 아서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소환식을 보기 위해 마이뒨에 모였어. 아서와 데르벨은 뒤늦게 소환식에 희생제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 희생제물은 왕이나 통치자의 아들이어야 한다는 것도 알았고, 같이 왔던 아서의 아들 귀드레모드레드의 어인 아들 마르독이 사라졌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 아서와 데르벨의 일행은 소환식이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어. 소환식은 강한 불길과 함께 이루어지고 있어서 멀린과 니무에가 어디에 있는지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결국 찾아냈어.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가웨인은 죽어 있었어. 가웨인도 왕자였기 때문에 희생제물로 바쳤던 거야. 그리고 귀드레와 마르독이 그곳에 있었어. 멀린은 귀드레는 왕의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죽이지 않는다고 했어. 하지만니무에는 극구 귀드레를 죽여야 한다고 했어. 그러면서 죽는 것은 잠시이고 브리튼의 신들이 오면 다시 살려낼 수 있다고 했어.

아서는 그런 주술이나 미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서와 데르벨은 협박 반설득 반으로 귀드레와 마르독을 데리고 왔어. 그렇게 소환식은 끝이 났어. 멀린은 아서를 이해했지만, 니무에는 아서와 데르벨 때문에 소환식이 실패로 돌아갔다면서 그들을 증오하게 되었단다. 심지어 니무에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멀린도 증오하게 되었어.

 

 

3. 

다음 해 봄에 색슨족과 전쟁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단다. 아서는 현재의 브리튼 연합만으로는 색슨족에게 수적으로 불리하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더 큰 연대를 위해 데메티아의 공주 아르간테와 정략 결혼을 하기로 했단다. 그렇게 해서 데미티아의 정예군으로 이루어진 블랙쉴드가 용병으로 둠노니아에 왔단다.

그리고 드디어 전쟁… 아서는 앨레와 게르디치가 연합해서 브리튼의 중앙부에 있는 코리니움을 공격할 것으로 예상하고 그곳에 대부분의 전력을 배치했어. 하지만 귀니비어는 남쪽으로 한 무리가 공격해 올 것이기 때문에 대비가 필요하다고 했어. 귀니비어는 감옥에 있으면서도 가끔씩 찾아오는 데르벨과 이야기를 나눴어. 아서는 코리니움으로 진군을 했고, 데르벨에게 후방에 남아 있는 여인들과 가족들을 지키라고 했어. 그렇게 후방에 데르벨과 그의 부하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귀니비어의 예상대로 남쪽으로 우회에서 그들의 수도인 카이르카다른을 공격했어. 데르벨과 그의 부하들이 지키기에는 역부족이었어. 그래서 사람들을 데리고 도망을 다녔단다. 케인윈과 데르벨의 아이들귀니비어 등 여자들도 많아서 도망가기도 쉽지 않았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색슨족들도 이쪽 상황을 제대로 모르고 있어서 공격을 섣불리 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야.

데르벨은 머니드 바돈이라는 곳에 진지에 구축하고 방어를 하며산발적인 전투를 했어. 그런데 귀니비어가 이 전투에서 여러 차례 성과를 냈단다. 어려운 상황에 있으면서그리고 데르벨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귀니비어가 점점 변해갔어착해졌어. 옛날의 그 욕심 많던 모습도 점점 사라졌어. 데르벨과도 많이 친해졌고.. 물론 사람 대 사람으로…. 데르벨은 케인윈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나중에 아서가 합류를 했고, 아서와 함께 포위스왕 퀴네클라스도 같이 왔어. 브리튼 연합을 위해서라면 아서는 그까짓 종교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퀜트의 테우드릭 왕을 설득하기 위해 기독교 세례를 받았단다. 그리고 테우드릭 왕도 브리튼 연합에 가담했어. 이제 좀 싸울만한 군사들이 모였다고 생각했지.

브리튼 연합과 색슨 연합… 그 처절한 전쟁이 시작되었단다. 그 전투 장면은 자세하고도 실감나게 묘사했단다. 아빠가 지금껏 읽은 소설책들 중에 가장 긴 전투 장면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페이지에 걸쳐 전투의 상세한 묘사를 했단다. 브리튼의 전세가 밀리기도 했지만, 아서가 전략결혼까지 한 테메티아 왕 오잉구스 막아렘이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왔어. 이때 멀린도 함께 왔는데온갖 주술을 쏟아 부었단다. 결국 이 처절하고도 긴 싸움은 브리튼 연합이 승리를 했어. 하지만브리튼 연합도 큰 피해를 입었어. 많은 장군과 군사들이 죽었으며, 포위스왕 퀴네글라스도 죽었어… 퀴네글라스 왕의 죽음은 아서데르벨 등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단다. 데르벨에 있어 처남이기도 했으니 더욱 슬퍼했단다…. 물론 전쟁에서 진 색슨족은 더 많은 피해를 입었고란슬롯도 죽었어.

  

4.

전쟁이 끝나고 한동한 평화가 찾아왔어. 아서는 자신한테 주어진 임무를 다 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꿈에 그리던 시골에서의 전원생활을 했어. 정말 권력에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구나 싶었어. 아서는 귀니비어와 함께 실루리아의 이스카 지방으로 가서 전원생활을 했단다. 앞서 이야기했지만귀니비어는 전쟁을 거치면서 사람이 변했어. 예전의 욕심 많은 여자가 아니고소박하고 찬한 아줌마가 되었지. 그리고 둠노이아의 왕은 모드레드에게 맡겼어. 정략 결혼을 했던 데메티아의 공주 아르간테는 모드레드와 짝을 맺기로 했어. 아르간테와 모드레드의 결혼은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단다. 심성이 착하지 못한 모드레드가 둠노니아 왕 자리에 있는 것이 불안했기 때문에 아서는 데르벨을 시켜 둠노니아의 군대를 통치하여 모드레드를 견제하라고 했어. 한편 포위스는 퀘네글라스 왕이 죽고 어린 아들 페드델이 즉위했으나, 혼란의 시기를 한동안 겪었단다. 주변국에서 침략이 이어지기도 했고, 그럴 때마다 아서가 가서 도와주기도 했단다. 한편, 궨트는 테우드릭 왕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아들 메이리그가 왕위에 올랐는데, 메이리그는 욕심 많고 둠노니아에 비협조적이 인물이었단다.

데르벨이 식구들과 함께 아서의 집에 안부차 찾아왔어. 아서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모드레드가 바다 건너 아르모리카와 전쟁 중에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어. 브리튼 족이 색슨 족과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평화가 찾아왔지만, 모드레드는 전쟁을 좋아하기 때문에 주변국들을 공격했었어. 그러면서 모드레드 주변에 전사들이 모여들었단다. 그런 와중에 모드레드가 전쟁 중에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왔고, 거기에 생명이 위중하다는 소식도 전해졌어.

만약 모드레드가 죽는다면… 그러면 후계자는 누가 될 것인가. 모드레드는 아들 모르독은 너무 어렸거든… 아서는 왕 노릇을 할 생각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 왕족에서 그나마 왕 위에 오를 수 있는 이가 아서의 아들인 귀드레가 가장 적합해 보였어.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모드레드의 죽음은 둠노니아의 대혼란을 이야기하는 것이었어. 아서와 군대를 장악하고 있던 데르벨 모두 국외에 있으니 누군가는 둠노니아로 가야 했어. 데르벨이 가기로 했는데실루리아에서 둠노니아를 가기 위해서는 퀜트를 거쳐 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인데 궨트의 왕 메이리그는 통행을 허가하지 않았어.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메이리그는 밉상 캐릭터라고 했잖아.

데르벨은 배를 타고 둠노니아에 돌아왔어.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되었고, 이내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모드레드는 멀쩡했던 거야. 모드레드는 일부러 헛소문을 내고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 이를 죽이려고 했던 거야. 거기에는 아서와 데르벨도 포함되어 있었어. 데르벨은 생포되어 감옥에 갇혔단다. 다행히 음유시인이었던 탈리에신이 지혜를 써서 데르벨을 감옥에서 구출을 했단다.

 

 

5.

데르벨은 아서가 있는 실루리아의 이스카로 돌아왔단다. 케인윈이 심한 열병에 걸려 있었어. 이유를 몰랐지. 그런데 어느날 어떤 여인이 찾아와서 케인윈을 살리고 싶으면 따라 오라고 했어. 그 여인이 데려간 곳에 니무에가 있었단다. 니무에가 점토 인형으로 케인윈에게 주술을 걸었던 거야.

니무에는 멀린까지 잡아서 가둬두고 있었어. 마이뒨에서 소환식에서 멀린이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고나중에 아서 편을 들어서 니무에는 멀린 마저 신에게 배신을 했다고 생각했거든. 니무에가 이런 일을 벌인 이유는 엑스칼리버와 귀드레 때문이야. 케인윈을 고통스럽게 하면 데르벨이 자신이 시키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니무에는 데르벨에게 엑스칼리버와 귀드레를 데리고 오라고 했어. 안 그러면 케인윈에게 영원한 고통을 주겠다고 했어.

아서에게 돌아와서 데르벨은 다 이야기했어. 아서는 모르간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모르간은 니무에가 이렇게 주술을 걸 수 있는 이유를 알고 있었어. 그것은 니무에와 데르벨의 어렸을 때 왼손바닥에 같은 상처를 내고 그 손바닥으로 서로 연결한 주술을 걸었는데그것이 이유라고 했어. 먼저 니무에와 연결을 끊기 위해서는 데르벨의 왼손을 잘라야 한다고 했어. 데르벨은 자신의 손목을 잘라야 하는 고통이 있었지만, 케인윈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어. 데르벨의 손목을 자르고그 다음 니무에의 주술을 푸는 주술을 걸었어. 모르간의 주술이 다행히 효력을 발휘하여 케인윈이 회복을 했단다.

..

이제 남은 것은 말썽쟁이 전쟁광이자 살인마인 모드레드만 남았단다. 아서와 데르벨은 군사들을 데리고 둠노니아로 향했단다. 그리고 모드레드와 혈전을 벌였어. 그동안 모드레드는 많은 전투로 인해 강해져 있었고많은 군사들을 데리고 있었어. 힘든 전투였지만끝내 아서는 모드레드와 결투에서 이겼고, 모드레드는 죽고 말았어. 그렇게 모드레드의 광기 어린 난동을 멈출 수가 있었어. 아서는 또 한번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전투를 어떨 수 없이 할 수밖에 없었단다. 그리고 니무에가 여전히 자신의 엑스칼리버를 찾는다는 것을 알고, 데르벨을 시켜 그것을 없애라고 했어. 그렇게 아서는 욕심이 없던 사람이었어. 데르벨은 니무에가 보는 자리에서 엑스칼리버를 깊고 깊은 바닷속에 그 칼을 버렸단다. 그렇게 엑스칼리버는 전설을 품고 심연의 바닷속으로 사라졌단다. 그리고 아서도 아무도 모르는 먼 길을 떠났어.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아빠는 아서왕을 보면서 문득 문재인 대통령님이 생각나기도 했단다. 자신은 왕이나 통치자가 되고 싶지 않았는데, 시대의 부름이 아서를 통치자로 만들었고, 그래서 브리튼의 오랜 숙원인 평화를 찾아오게 되었어. 혼란의 대한민국… 자신은 몇 번씩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먼저 간 친구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숙제…. 그리고 많은 국민들의 염원… 그렇게 대통령이 된 문재인.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평화와 안정과 성장을 위해 열일을 하고 계신 문재인 대통령. 그리고 그가 임기를 마치고 조용히 귀향해서 살아가실 모습…. 아서왕의 모습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이 자꾸 떠오르더구나.

아서와 연대기 세 권… 장편의 드라마를 본 듯한 기분이었어. 머릿속에서 소설 속 화면이 드라마로 그려지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책을 읽었단다. 그리고 이 책의 지은이 버나드 콘웰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어서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 출간한 책은 <아서왕 연대기시리즈와 <스톤 헨즈>뿐이더구나. 이 책들은 이미 다 읽었는데 말이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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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8-07-08 2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윽, 저는 아더왕 이야기에서 란슬롯과 귀네비어의 사랑을 지지하는 쪽이라 이 책은 못 읽겠어요ㅠㅠ
bookholic님 리뷰 너무 재미있는데 말입니다ㅠㅠ

bookholic 2018-07-08 22:16   좋아요 1 | URL
예전에 읽은 장 마르칼의 <아발론 연대기>에서는 란슬롯과 귀니비어 여왕의 사랑이 애절했었는데, 버나드 콘웰의 <아서왕 연대기>에서는 란슬롯이 완전 악역으로....^^
장 마르칼의 <아발론 연대기>에서 란슬롯의 사랑이 하도 절절해서 그의 대사를 발췌했던 것이 있었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가슴이 찬성하지 않는 말을 입으로 내뱉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런 란슬롯이라서 꼬마요정님은 란슬롯과 귀네비어의 사랑을 지지하시는 것인지요?^^ 즐거운 한주 되십시오~~
 
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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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좋아하는 유시민의 신간 소식에 바로 예약을 걸어 놓고 집에 오자마자 책향기 한번 맡고 읽기 시작했단다. <썰전>, <알쓸신잡> TV 프로그램에 많이 나오면서, 유시민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단다. 진작에 많은 사람들이 유시민님의 명석함을 알아봐주었다면 또 다른 위치에서 우리 백성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을 텐데

그런 유시민이 얼마 전에 <썰전>이라는 TV 프로그램을 하차했단다. 하차 이유로 정치와 좀더 멀어지기 위해서라고 했어. 그는 극구 부인하지만, 아빠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가 다시 한번 대한민국 정부에서 일했으면 좋겠구나. 혹시 <썰전>의 하차 이유도 정부에서 일하려고?^^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니.

이 책 <역사의 역사>를 읽으면서 그가 예전에 쓴청춘의 독서라는 책이 떠올랐단다. ‘청춘의 독서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유시민이 딸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을 모아놓은 것이었는데, 이번에 출간된 <역사의 역사>는 장르를 역사책으로 제한한청춘의 독서라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나라의 역사를 다룬 것도 아닌, 다른 나라의 역사, 그것도 아주 오래 전의 역사, 그것도 아주 오래된 역사가가 쓴 역사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란다. 사전 배경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역사가의 글발에만 의존해서 읽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서, 그저 활자만 읽어 내려가는 경우가 많단다.

, 저 책정말 훌륭하고 읽어볼 만 하다고 하는데감히 읽지는 못하겠고바라만 보게 되는…. 그런 책들을 유시민이 설명해주는 책이 바로역사의 역사라는 책이란다. 유시민은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어떤 복잡한 사안에 대해서도 후려쳐서 잘 설명해주는 뛰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인데, 이번에도 어려운 책들을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어. 그가 책을 마무리하면서 이 책은 패키지 여행과 같다고 했어. 중요 관광지를 데려다 주는 가이드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하면서 말이야. 이 책의 성격을 가장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단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기를 패키지 여행이 좋았다면 이제 스스로 자유 여행을 떠나 보라고직접 여기서 소개한 역사책을 읽어보라는 거지, 자유 여행 무서워~~

1.

역사학자가 있고, 역사가가 있단다. 분명 그 둘은 차이가 있단다. 역사학자는 역사적인 일을 분석하고, 연구하고 비평하는 사람이고, 역사가가 역사학자와 다른 두드러진 특징은 창작의 요소가 들어간다는 거야. 역사 서술이란 것은 사실을 기록하는 것뿐만 아니라 창작 행위가 들어가게 되고, 유명한 역사가는 아래와 같은 능력이 있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 소개된 역사가들은 유시민이 생각하는 그런 능력 있는 역사가가 아닐까 싶구나. 그런 창작의 요소가 있어야 역사책도 재미가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읽혀지는 것이 아닐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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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서술은 사실을 기록하는 작업이자 사회 변화의 원인과 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활동이며 어떤 대상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창작 행위이기도 하다. 성실한 역사가는 사실을 수집해 검증하고 평가하며 중요한 역사의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한다. 뛰어난 역사가는 사실들 사이에 관계를 탐색해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를 밝혀내며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동력과 역사 변화의 패턴 또는 역사법칙을 찾아낸다. 위대한 역사가는 의미 있는 역사적 사실로 엮은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독자의 내면에 인간과 사회와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과 감정의 물결을 일으킨다. 역사는 사실을 기록하는 데서 출발해 과학을 껴안으며 예술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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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소개하는 책은 헤로도토스의 <역사>라는 책이란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책이 바로 헤로도토스의 <역사>라는 책이고, 헤로도토스는 키케로가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렀더 사람이란다. 유시민이 헤로도토스를 평가하기를, 고대 그리스의 수많은 이야기꾼 가운데 역사가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얻은 최초의 인물이라고 했어. 헤로도토스가 BC 5세기 그리스의 이야기꾼이었대.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다가 그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 바로 <역사>라는 책이야.

이 책에는 페르시아 대제국과 그리스 연합의 전투에 관한 내용이 주 내용이라고 하는구나. 마라톤 전투가 있고,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가 있고, 스파르타 300명이 승리로 유명한 테르모필레 전투가 생생히 담겨 있단다. 아빠가 <역사>라는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내용들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이 내용들이 이 책에 기록되어 있었구나. 그러면 이 정도 사전 지식이라면 한번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어서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라는 책을 소개해주었어. 책제목은 들어본 것 같은데, 어려운 지은이의 이름은 기억이 없구나. 투키디데스는 본인이 직접 지휘관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여를 했대.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 도시 연합이 도시 국가 간 패권을 둘러싸고 벌인 내전이야. 많은 피해만 남기고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이 나긴 했지만, 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그리스 전체는 몰락하게 되고, 곧이어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에게 정복을 당하고 그 이후에는 로마의 속국이 되는 굴욕을 맛보게 되었단다.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이 두 사람은 그 옛날에 사료도 변변치 못했을 텐데, 어떻게 역사서를 썼을까. 그들이 쓴 것은 모두 사실일까. 사료의 공백은 역사가의 상상력으로 채울 수 밖에 없단다.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비판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유시민은 이야기한다.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이 기록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었는가. 문명이 발전한 오늘날에도 전쟁과 내전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이 책들은 해명해주고 있단다. 하지만 그 이후의 역사에도 그들의 실패를 거듭 반목하는 것은 왜일까. 지난 세기 초에도 우리는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이름만 달랐지, 똑같은 양상의 전쟁을 겼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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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역사는, 문명이 발전해도 전쟁과 내전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해명해준다. 국제전이든 내전이든, 폭력을 동원한 집단적 충돌은 모두 인간의 능력과 사회 조직 사이의 부조화 때문에 일어난다. B.C. 5세기 그리스인들은 과학과 생산 기술, 항해술, 군사 기술 등 모든 면에서 작은 도시 국가에 갇혀 살기에는 너무나 높게 발전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느슨한 도시국가 연합을 넘어 남유럽과 지중해 일대를 아우르는 새로운 국가 질서를 창출했다면 그 능력을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 데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페르시아 전쟁은 생사를 가르는 위기였지만 더 높은 수준의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기회를 외면하고 적대적인 두 동맹으로 분열해 내전을 벌이면서 모든 에너지를 소모한 후 함께 멸망하는 길을 걸었다. 20세기 초반과 중반 유럽의 국민국가들도 그 길을 답습해, 유럽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제국을 형성해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길을 외면하고 식민지 쟁탈전과 패권 경쟁에 매달린 끝에 세계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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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이런 일이 또 오지 말란 법이 없단다. 이제 역사의 가르침을 오롯이 새겨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2.

서양이 헤로도토스가 있다면 중국에는 사마천이라는 사람이 있었단다. 사마천은 기원전 145년 태어난 기원전 85년경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와 달리 사마천은 공무원이라서 자료 접근이 쉬웠대. 그래서 사실에 입각한 방대한 양의 역사책을 쓸 수 있었다고 하는구나. 역사책을 쓰던 중간에 전쟁에 패한 이릉 장군을 변호했다가 궁형을 당하고 2년간 감옥생활을 했지만, 그는 끝까지 역사책 <사기>를 집필이 자신의 삶의 임무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만들어진 <사기> 그 방대함에 놀라기도 하지만, 그것이 그저 역사기록일 뿐이라면 일반 사람들은 관심도 없었을 거야. <사기>에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어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구나. 아빠도 십여 년 전에 <사기> 중에 <열전>만 읽은 적이 있는데, 인물 중심의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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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사기>가 그저 가치 있는 역사 기록일 뿐이라면 전문 역사 연구자들이나 들여다보는 책으로 남았을 것이다. 수많은 역사 애호가들이 지금도 <사기>를 읽는 것은 그 안에 인간의 이야기가 있어서다. <사기>에서 우리는 사람답고 훌륭한 삶을 추구하면서도 부질없는 욕망과 야수 같은 충동에 휘둘리는 인간 존재의 모순을 발견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남을 지배하는데 요긴한 처세술을 배우려고 읽으며, 또 어떤 이들은 무엇으로 어떻게 인생의 의미를 만들어 나가야 할지 고민하면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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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이븐 할둔이라는 사람이 쓴 <역사서설> <무깟리마>라는 책을 소개했어.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고, 처음 들어보는 책들이란다. 우리나라에 이븐 할둔의 책이 위 두 권이 출간되었는데, 사실은 똑같은 책이라고 하는구나. <역사서설>은 영어 축약본이고, <무깟리마>는 아랍어 완역본이래. 이븐 할둔은 북아프리카 사람으로 1332년에 태어나 1406년에 세상을 등졌다고 하는구나. 그가 쓴 이 역사서는 최초의 인류사를 저술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과학과 역사의 첫만남을 시도한 책이라고 했어. 최근에 쓰여진 역사책은 과학과 역사의 만남이 낯선 것이 아닌데 이븐 할둔이라는 사람이 처음 그렇게 역사를 서술했대. 그가 아랍인이다 보니 이슬람의 역사를 중심으로 썼는데, 이 책을 통해 당시 아랍지식인이 인간과 문명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하는구나.

이븐 할둔은 공직생활을 하다가 마흔 살에 알제리 시골에서 칩거하면서 이 대작을 썼다고 하는구나. 이슬람 역사에 많이 담겨 있었고, <코란>, <하디스> 등의 경전해석도 포함하고 있었대. 무함마드가 메카를 정복하고 아라비안 반도를 통합한 해가 서기 622년인데 이 해를 이슬람력 원력으로 삼았대. 무함마드가 죽고 나서 신도들은 뒤따르는 사람이라는 뜻의칼리프라는 지위를 세웠으나 종파 분쟁은 막을 수 없었대. 그래서 칼리프로 지정된 사람들이 잇달아 암살을 당했고 내분이 일어나고그때 수니파와 시아파로 분리되었고, 폭력에 의한 진리 투쟁을 하기 시작했다는구나. 칼리프 4 30면을 끝으로 혼란이 계속되었고, 12세기 투르크인이 권력을 잡을 때까지 이어졌대. 투르크 황제 메메트2세가 오스만 제국을 세우면서 그들의 리더인 술탄이 칼리프의 칭호까지 차지하였고이런 내용들이 이블 할둔의 책에 나와 있다고 하는데, 유시민이 설명해주어서 그런지 책에 대한 관심이 확 올라가는구나. 그래도 감히 읽어볼 엄두가 나질 않는구나.

2.

레오폴트 폰 랑케(1795~1886)라는 독일 사람이 있었어. 그는 전문역사학자이자 역사가인데, 역사 강의도 많이 했대. 수강생 중 속기사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랑케의 강의록을 썼고, 랑케가 죽은 지 2년 뒤에 그 강의록이 책으로 엮어졌는데, 그 책의 제목은 <근세사의 여러 시기들에 대하여>라는 책이래. 랑케는 이 책을 비롯하여 방대한 역사를 저술했는데 54권이나 썼대. 그런데 아쉽게도 재미는 없다고 하는구나. 왜냐하면 그가 쓴 대부분의 책이 지식인이나 지배층을 대상으로 한 글로 논문이나 학술지가 대부분이래. 그리고 그가 역사서를 많이 쓰기는 했지만, 그는 당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군주제를 옹호를 했다는구나. 그래서 신성동맹 막시밀리안 2세가 그를 초대해 강의를 하기도 했대. 즉 그는 권력자들과 친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일반인은 볼 수 없는 많은 자료 문건들을 볼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많은 역사책을 쓸 수 있었던 거야.

유시민은 랑케가 오류를 범했다고 했어. 먼저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군주제를 옹호했다는 거야. 그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은 그의 강의 이후 70년 이내 군주제는 지구에서 거의 사라졌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었단다. 그리고 그는있었던 그대로쓰겠다고 했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잘못 생각한 것이었어. 아무래도 권력과 빌붙는 성향이다 보니 권력에 치우친 역사 쓰기가 되었대. 또 그는 유럽 밖 사피엔스를 미개인으로 보았고, 여성을 하등하게 생각하는 것 등 오류를 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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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게다가 역사는언어의 그물로 길어 올린 과거. 달리 말하면 역사는 문자 텍스트로 재구성한 과거 이야기다. 언어는 말과 글로 이루어지며, 인류는 문자를 발명하기 전에 먼저 말을 했다. 말에 담은 과거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견뎌 내지 못하며 압축, 누락, 과장, 왜곡, 각색을 거쳐 입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역사는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후에야 나타났다. 하지만 문자 텍스트도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아니다. 설령 완전하게 표현했다고 해도 읽는 사람이 쓴 사람의 의도대로 똑같이 해석한다는 보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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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명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이 책은 유시민의청춘의 독서에서도 소개가 된 책이란다. 마르크스가 이야기하길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로 보았어. 역사를 보는 시각의 대전환이라고 할 수도 있단다. 그동안 역사의 관심 밖에 있었던 노예, 농노, 농민, 노동자를 역사의 주역으로 끌어들인 거야. 그의 등장과 함께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았어. 그 이유는계급 대립과 착취의 역사를 완전히 종식해서 인류에게 완전해방을 줄 거라는 기대를 주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의 이런 사상은 당시 국가권력의 생각과 달라서 수배와 도피와 망명생활을 했어.

그는 유물론을 내세웠는데, 유물론이라는 것은 물질이 먼저이고 인간 정신과 의식은 나중이라는 생각이야 의식은 물질의 산물이라고 주장했어. 그리고 농업혁명 이후 사유 재산이 발생하게 되면서 노예제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국가가 출현했고, 봉건제가 생기면서 영주와 농민, 농노가 출현고, 자본주의가 들어서면서 자본가와 노동자가 생겨났어.. 이 모든 것들이 계급 사회였다는 것이지.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혐오했고, 부르주아지를 경멸했으며, 결국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이 온다고 했어. 그의 예견이 비록 비껴갔지만, 그의 영향은 지대했단다.

유시민이 마르크스를 평하는 게 재미있더구나. 사회적 감수성이 예민한 문과 천재라고 했어. 그리고 그는 다름 사람의 사상과 이론을 빠르게 흡수했고, 글도 잘 쓰고 미래를 바꾸는 데 관심이 많다고 했어. 그런 면에서는 유시민과 비슷한 것 같구나. 유시민도 그런 통찰력에 있어서는 달인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4.

우리나라의 역사가들도 소개를 해주었는데, 박은식, 신채호, 백남운이 그들이란다. 이 책에서 소개된 박은식의 <한국통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도 아빠가 예전이 읽어보았어. 그런데 백남운이라는 사람은 이름조차 처음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란다. 알고 보니 그는 사회주의자로 나중에 북으로 넘어간 사람이더구나.

박은식. 그는 유학자였지만 민주공화국을 세워야 한다고 했어. 3.1운동 이후 독립투쟁에 초점을 둔 당대사를 새로 써서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출간했어. 그리고 소설 <몽배금태조>를 써서 고대사도 새로 써야 한다고 행각했어. 조선이 그동안 자신의 역사가 아닌 중국의 역사를 배운다고 비판했어.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가 있었으니 신채호였단다. 신채호는 고대사를 연구하고 고대 우리 민족의 터전은 만리장성 넘어 요동지역까지라고 했어. 그리고 역사라는 것은 아()와 비아(非我) 투쟁의 시간이라고 했어. 그도 유학자 출신이지만, 공산주의와 아나키즘까지 받아들였어. 그리고 무장투쟁 중에 감옥에서 죽고 말았단다.

그가 쓴 <조선상고사>는 미완성의 역사책이었단다. 신채호는 원래 조선시대까지 쓰려고 했으나, 단군왕검에서 백제의 패망까지만 썼어. 시대가 그를 가만히 글로 쓰지 못하게 했던 거야. 비록 <조선상고사>가 미완의 역사책이지만, 그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모두 포함되어 있었어. 사대주의 역사가를 비판하고 특히 김부식을 많이 비판했단다. 그리고 조선 민중이 아()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민족의 정체성을 심어주려고 노력했어. 우리 민족의 역사를 알아서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게 해주려고 했지. 그는 역사서뿐만 아니라, 을지문덕, 최영, 이순신 등 전기도 집필을 하셨는데, 집필의 취지는 역사책을 저술하는 목적과 똑같았어. 아빠가 역사적인 인물 중에서 존경하는 몇 분 안 되는 분 중에 한 명이 바로 신채호라고 너희들한테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니 또 반갑구나.

그리고 또 한 분 백남운이라는 분은도쿄 유학을 다녀온 후 사회주의 연구 조직을 만들고 항일운동을 하셨대. 그로 인해 2년간 옥살이도 했어. 해방 후 중도좌파정당에 있다가 미군정의 탄압을 받고 1947년 북으로 넘어갔고, 김일성 정권 하에서 숙청 당하지 않고 천수를 누렸다고 하는구나. 그가 쓴 역사책 두 권… <조선사회 경제사> <조선봉건사회경제사> <조선사회 경제사>는 유물사관으로 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의 고대사를 다루었고, <조선봉건사회 경제사>는 통일신라시대 이후부터 조선시대까지 다루려고 했으나 고려시대까지만 썼다고 하는구나. 북에서 그 이후에 썼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것은 거기까지 뿐이래. 마르크스의 역사발전 단계론을 우리 민족 역사에 적용을 했대. 그로 인해 우리 나라는 마르크스의 보편적인 역사 법칙에 의해 발전해왔다고 봤어. 그래서 일본 등 외부의 도움이 필요없다는 주장을 폈단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자이자 민족주의자라고 볼 수 있어.

아빠가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여기까지란다. 유시민이 소개한 책들 중에는 그 유명한 에드워드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 코인비의 <역사의 연구>, 헌팅텅의 <문명의 충돌>,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 , >,,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더 있었단다. 근대에 발표된 책들이라서 아빠도 익히 들어본 책들이구너, 아빠가 읽은 것들도 있고, 아빠가 읽으려고 사 둔 책들도 있고

역사책 읽어주는 남자 유시민은 역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가 이야기하는 역사에 대해 적어 준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면서 오늘 독서편지를 마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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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

나는 역사를 역사답게 하는 것이서사의 힘또는이야기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의 꿈과 욕망, 사람의 의지와 분투, 사람의 관계와 부딪침, 사람이 개인이나 집단으로 겪은 비극과 이룩한 성취, 사람이 세운 권력의 광휘와 어둠, 사람이 만든 문명의 흥망과 충돌과 융합에 관한 이야기다. 변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과 본성, 예측할 수 없는 우연, 사회 제도와 자연환경이 뒤엉켜 빚어낸 과거의 사건들 가운데 당대의 역사가들이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을 언어로 엮어낸 서사다. 역사의 역사가 드러내 보이는, ‘발전이라고 하는 몇 가지 역사 서술 환경과 내용과 관점과 방법의 변화는 힘 있는 서사로 구현할 때만 독자의 생각과 감정을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역사의 역사에 남은 역사서들을 만나 본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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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가 서구에서 역사의 창시자 대접을 받는 것은 책이 훌륭해서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읽었고 지금도 읽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의 역사에 남은 역사서를 쓴 서구 역사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그리스 고전에 통달했고, <역사>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들의 책은 왜 그렇게 오래 그리고 널리 읽혔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핵심은 ‘서사의 힘’이다. 그들은 뚜렷한 목적을 품고, 명확하게 특정할 수 있는 대상에 관하여, 최대한 사실에 토대를 두고,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들으면서 지적 자극을 받고 정서적 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를 꾸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가 지적 자극을 받고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서사를 만드는 일이다.

(76)
사마천은 국가와 사회는 정치권력과 경제 제도, 사회 제도, 법률, 예술과 문화 양식의 복합체이며 그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그 구조와 양상을 분석했다. 권세와 지위는 없었으나 독특하고 자주적인 인생을 살아 나감으로써 인간의 본성과 삶의 의미를 사유할 실마리를 던진 이들을 망각의 어둠에서 건져냈다. <사기>는 또한 개인사의 치욕을 견뎌 낸 사마천이 역사의 수많은 사실을 마주하면서 느꼈던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과 감정도 전해 준다.

(112-3)
"군주가 억압과 폭력을 사용하고 함부로 형벌을 가하고 백성의 잘못을 찾아내어 그 죄를 세기 시작한다면, 백성들은 처벌을 두려워하고, 비천한 마음을 품게 되며, 거짓을 말하고, 사기를 치고, 기만을 일삼게 되어 이런 성질이 백성의 성품이 될 것이다. 이런 백성은 전쟁터에서 군주를 배신하기 쉬우며 급기야 군주를 시해하려는 음모를 꾸미게 된다. 왕조는 쇠퇴하고, 왕조를 보호하는 울타리도 망가진다. 군주가 온후한 정책을 펴고 백성의 결점을 포용하면, 백성은 군주를 신뢰하고 그에게서 안식처를 찾으려 할 것이다. 그들은 진정으로 군주를 사랑하고 전쟁터에서 기꺼이 목숨을 바치려 할 것이다. 선량한 지배권이라 함은 백성에게 친절과 보호를 베푸는 것이다. 왕권의 진정한 의미는 군주가 백성을 보호할 때 실현된다. 백성에게 친절하고 선량하다는 것은 백성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다정하게 대하는 것이다. 이는 군주가 백성을 보호할 때 실현된다. 백성에게 친절하고 선량하다는 것은 백성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다정하게 대하는 것이다. 이는 군주가 백성에게 사랑을 보여주는 근본이다."

(200)
치안유지법 위반과 유가증권 위조 혐의로 붙잡혀 법정에 선 신채호는 "민족을 위해서라면 도둑질도 정당하며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1929년 뤼순 감옥 독방에 갇힌 후 영양실조와 고문 후유증, 동상으로 혹심한 고통을 겪다가 뇌일혈로 쓰러져 지켜보는 이가 아무도 없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1936년 2월 21일, 그의 나이 57세였다. 그런 인생이 좋아서 그렇게 살았던 게 아니다. 일제 강점이라는 시대 상황이 그런 삶을 요구했고, 그 요구를 피할 수 없어서 그렇게 살다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가 <조선상고사>를 남겼기에 우리는 그 책을 읽으면서 인간 신채호와 역사가 신채호를 느낄 수 있다. 다행이다.

(199-200)
역사는 사람이 만들지만 모든 사람이 역사에 흔적을 남기지는 않는다. 남다른 성취를 이루거나 빛나는 선행을 한 사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기 어려운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 그러나 역사는 모든 사람의 삶에 영향을 준다. 신채호의 삶도 시대 상황에 크게 비틀렸다. 그러나 그는 시대가 비튼 인생을 받아들이고 시대의 요구를 실현하려고 분투함으로써 역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신채호는 고대사 연구자로 활동하기에 적합한 재능을 가졌고 그에 필요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다. 오늘날 태어났다면 작가나 철학자로도 크게 성공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평생 일제 경찰과 헌병의 추적을 받으면서 무장 투쟁을 벌이는 일에 골몰했으니 화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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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죠. 물리학은 모든 것을 운동으로 이해합니다. 결국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원자의 운동을 이해하는 겁니다. 원자가 어떤 식으로 운동하는지를 기술하는 분야가 바로 양자역학입니다. 이제 양자역학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짐작하시겠죠. 한마디로 양자역학은 원자를 기술하는 학문입니다.

 

(50-51)

양자역학에 따르면 전자는 동시에 두 개의 구멍을 지납니다. 이런 말을 쓰기에는 상식적으로 이상하니까 물리학자들은 중첩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듭니다. 새로운 용어를 만들면 이상해도 그냥 넘어갈 수 있잖아요. 전자는 중첩된 두 개의 궤적을 지나면서 마치 파동처럼 행동합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스크린에는 점이 한 개 찍히니까요. 과학자들은 이것을 입자의 상태로 붕괴한다라고 표현합니다.

 

(75)

더 작은 것을 보려면 더 센 힘의 전자기파를 보내야 합니다. 작은 것을 보려고 발사한 이 전자기파가 힘이 세서 보려고 한 것을 때리니까, 보려고 한 것이 튕겨나가면서 엉뚱한 곳으로 움직이고, 그리고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하려고 하면 할수록 강한 전자기파를 쏘다 보니까 튕겨나가는 힘이 점점 더 커지고, 그래서 위치와 속도를 잘 알 수가 없는 거죠. 뉴턴역학에서 ‘F=ma’, 위치와 속도라는 두 개의 정보가 있어야 예측을 할 수 있는데, 이 세계에서는 예측이라는 문제가 이런 것들 때문에 원천적으로 할 수 없게 되고 하는, 이런 것이 바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라는 거죠.

 

(91)

근데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무얼까요? 왜 고양이는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으면 안 되는 걸까요? 이에 대한 근거는 오직 우리 경험밖에 없습니다. 단지 그런 걸 본 적이 없다는 거죠. 하지만 과학의 역사에서 경험이 옳은 적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게 옳다고 믿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겁니다.

 

(98-99)

단 하나의 법칙이 있다면, 그 법칙은 다시 어디서 나왔는지를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궁극의 법칙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게 진정한 궁극이라면, 그것이 무엇으로부터 나오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절대로 단 하나로 귀결될 수 없다는 거예요. , 그 자신으로부터 스스로 나오는, 즉 법칙이 없는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 한 궁극의 법칙은 없다는 겁니다. 신이 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요. 신은 누가 만들었냐는 질문이 있기 때문이죠. 이 고리를 끊으려면 스스로 존재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이 가능할까요?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만 저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겁니다.

 

(108-109)

양자역학이 없으면 우리는 19세기로 돌아가야 합니다. 19세기와 20세기는 과학기술의 관점으로는 양자역학이 있느냐 없느냐로 나눌 수 있습니다. 19세기에도 열역학과 전자기학이 있겠죠. 내연기관과 전기기기가 있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19세기에 없었던 것의 하나가 양자역학입니다. 그래서 반도체 같은 걸 이해하지 못했죠. 양자역학이 없으면 전자를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따라서 양자역학이 없으면 단연코 컴퓨터는 없습니다. 반도체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습니다. 지금 스마트폰이 있을 수 있는 것은 1920년대 양자역학을 이해해서 전자를 제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자를 제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나온 학문이 전자공학입니다. 양자역학이 없으면 전자공학이 없어요. 전자의 운동을 기술하는 게 바로 양자역학이거든요.

 

(120)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서로 정합적이지 않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 두 개를 합칠 수학적인 방법이 현재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 둘을 동시에 고려해야 되는 물리적 상황을 기술할 이론이 없다는 뜻이에요. 예를 들면, 블랙홀 주변의 아주 작은 영역이나 빅뱅 직후의 우주와 같이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동시에 생각해야 하는 경우죠. 중력이 강하면 일반상대론을, 작은 영역에서는 양자역학을 써야 되는 거거든요. 또 빅뱅이 시작될 때는 우주가 굉장히 작았으니까 양자역학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에너지와 질량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일반상대론도 고려해야 하죠. 그래서 안타깝게도 빅뱅의 순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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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평이 좋은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을 이제서야 읽었단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 코너에 한참 동안 올라와 있었는데, 아빠는 약간 의아해 했단다. 그 어렵다고 하는 라틴어에 관한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랫동안 있다니.. 그래서 그 책을 먼저 읽은 사람들의 평을 읽어보았어. 인기 있는 대학의 교양 강좌를 책으로 엮은 책이더구나. 외국이나 우리나라나 대학에서 인기 있는 강좌를 책으로 종종 엮는 경우가 있단다. 아빠도 그런 책들을 몇 권 읽었단다. 그런 대학 강좌를 엮은 책 중에 아빠가 가장 좋게 읽었던 책은 정채찬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책이란다. 그 책을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을 했었는데, 다들 너무 좋았다고 했어.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도 <시를 잊은 그대에게>의 재미와 감동을 기대하며 책을 폈단다. 아빠의 기대치가 너무 컸던 것일까. 아빠의 기대치를 채워주지 못했어.

<라틴어 수업>은 지은이 한동일 교수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서강대학교에서 진행했던 교양 강좌를 책으로 옮긴 것이래. 당시 한동일 교수의 강의는 입소문을 타고 서강대 학생들뿐만 아니라 인근의 학교들의 학생과 일반인들까지 청강을 하였다고 하는구나. 그럼, 그 많은 사람들이 그 어려운 라틴어를 배우려고 했냐고? 그건 아니고그 수업은 라틴어 뿐만 아니라 그리스 로마 시대의 사회, 사람들, 문화 등을 이야기해주었어. 그리고 수강생들에게 인생 선배로써 들려주는 진심 어린 조언들을 라틴어 금언을 곁들여서 이야기해주고 있단다.

좋은 인문 강좌라고 보면 돼. 그렇게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수강했던 것 같았어. 그런데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강좌였기 때문인지 눈높이가 20대에 맞춰진 느낌이었단다. 이제 사회를 막 진출하려는, 20대 젊은 영혼들에게 들려주는 등대와 같은 조언들그 시절을 건너온 지 10년이 넘은 아빠는 조금 거리감을 느꼈어. 그런 것들로 인해 아빠가 기대치에 조금 못 미쳤다고 이야기한 거야.

1.

라틴어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언어란다. 하지만 유럽의 모든 언어의 근본이 되는 언어이고, 여전히 라틴어를 여러 유럽 나라에서는 배우고 있단다. 그런데 그 라틴어의 뿌리가 인도어라고 하는구나. 그래서 라틴어는 분포상 인도 유럽어계에 속한대. 그렇지 뭐, 지구가 뭐 크면 얼마나 크다고이웃 동네끼리 서로 영향을 받고, 영향을 주는 것이지그럼 인도어는 또 어디서 기원이 될 것일까? 궁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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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0)

오늘날 거의 모든 유럽어의 모언어로 알고 라틴어는 세계 언어 분포상 인도 유럽어계에 속합니다. 이 사실을 말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의 눈이 다시 한 번 휘둥그레집니다. 일반적으로대부분의 사람들이 라틴어가 직접적으로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포르투갈어, 루마니아어등에 영향을 주었고, 영어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반면 라틴어가 아시아어라고 생각될 수 있는 인도 유럽어계에 속한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합니다. 학생들이 놀라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실제로 라틴어는 인도유럽어의 영향을 받았고, 그중에서도 그리스어, 켈트어, 고대 게르만어와 더불어 서구어를 형성하는 이탈리아어군의 영향을 받은 언어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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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가 왜 어렵냐? 라틴어는 명사의 경우 격이 다섯 가지로 변하고, 형용사의 형태도 명사의 성, , 격에 맞게 다 변한다고 하는구나. 그냥 단어 하나를 외워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 동사의 경우는 더 심해한 개 동사가 활용되는 경우가 수십 개가 된다고 하는구나. do”라는 도사의 활용을 예로 들어주었는데, 작은 글씨로 한 페이지가 넘어가더구나. 아무리 규칙적인 변화라고 해도 그걸 어찌 다거기에 불규칙적인 변화를 가진 동사도 있다고 하던데언어가 없어질 만 하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아빠가 고등학교 때 독일어는 배웠었는데, 독일어는 명사가 남성, 여성, 중성이 있고, 각 성에 따라 정관사, 부정관사가 변했기 때문에 그것도 참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라틴어에 비하면 새발의 피로구나. 독일어도 결국 라틴어에서 파생되어 그런 격변화가 있는 것이었단다. 그나마 파생되는 것을 대폭적으로 줄인 것 같더구나. 독일어 뿐만 아니라 유럽 각 나라라나의 말은 라틴어가 변화하여 만들어진 것이란다.. 그래서 영어를 비롯하여 유럽의 언어들이 비슷한 것이고

2.

아빠가 고등학교 때 재미있게 본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유명한 영화가 있단다. 그 영화에 나와서 유명하게 된 라틴어 금언이 있어.

카르페 디엠.

뜻은 오늘을 붙잡으라는 뜻으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는 뜻이야. 뜻이 좋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라틴어가 되었단다. 아빠도 한때 다이어리 앞면지에 “Carpe diem”을 적어 놓기도 했단다. 이 책에는 여러 라틴어 수업이다 보니 수업을 듣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유발하면서 좋은 라틴어 문구를 많이 소개해 주었단다. 카르페 디엠도 그 중에 하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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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카르페 디엠, 쾀 미니뭄 크레둘라 포스테로.

오늘을 붙잡게, 내일이라는 말은 최소한만 믿고.

‘카르페(carpe)’란말은카르포(carpo, 덩굴이나 과실을 따다, 추수하다)’라는 동사의 명령형입니다. 과실을 수확하는 과정은 사실 굉장히 고되고 힘들지만, 한 해 동안땀을 흘린 농부에게 추수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일 겁니다. 그래서카르포동사에즐기다, 누리다란 의미가 더해져카르페디엠(carpe diem)’, 오늘 하루를 즐겨라라는 말이 됐습니다. 시의 문맥상내일에너무 큰 기대를 걸지 말고 오늘에 의미를 두고 살라’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숱한 의역을 거쳐오늘을 즐겨라라는 뜻으로 정착되었는데, 주목할 건 이 말이 쾌락주의 사조의 주요표제어가 되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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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또 괜찮은 라틴어 금언을 몇 개 더 소개해주면서 오늘 독서편지는 마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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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Si vis vitam, para mortem.

시 비스 비탐, 파라 모르템.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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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

Dilige et fac quod vis.

딜리제 에트 팍 쿼드 비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아우구스티누스의 <페르시아 사람들을 위한 요한 서간 강해>에 나오는 말입니다. 저는 사막에서의 경험을 통해 어떤 비난을받든 중단했던 공부를 마치기로 결심했고 다시 로마로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결국 죽을 뻔했던 타클라마칸사막 한복판에서 제게 가장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던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율리우스 캐사르의이 말이 운명처럼 다가왔습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가라.(Alea iacta 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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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Hoc quoque transibit!

혹 쿠오퀘 트란시비트!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금의 고통과 절망이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어딘엔가 끝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마침표가 찍히기를 원하지만 야속하게도 그게 언제쯤인지는 알 수 없어요. 다만 분명한 것은 언제가 끝이 날 거라는 겁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그러니 오늘의 절망을, 지금 당장 주저앉거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끝 모를 분노를 내일로 잠시 미뤄두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에나를 괴롭혔던 그 순간이, 그 일들이 지나가고 있음을, 지나가버렸음을알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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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

Letum nom omnia finit.

레툼 논 옴니아 피니트.

죽음이 모든 것을 끝내지 않는다.

 

Dum vita est, spes est.

툼 비타 에스트, 스페스 에스트.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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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역사 서술은 사실을 기록하는 작업이자 사회 변화의 원인과 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활동이며 어떤 대상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창작 행위이기도 하다. 성실한 역사가는 사실을 수집해 검증하고 평가하며 중요한 역사의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한다. 뛰어난 역사가는 사실들 사이에 관계를 탐색해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를 밝혀내며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동력과 역사 변화의 패턴 또는 역사법칙을 찾아낸다. 위대한 역사가는 의미 있는 역사적 사실로 엮은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독자의 내면에 인간과 사회와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과 감정의 물결을 일으킨다. 역사는 사실을 기록하는 데서 출발해 과학을 껴안으며 예술로 완성된다.

(45)

<펠로폰네포스 전쟁사>에는 전쟁을 벌일 것인지, 아니면 협상으로 사태를 해결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여러 도시국가 정치 지도자와 장군들이 벌린 논쟁이 숱하게 등장한다. 그들의 연설문은 대부분 출처도 없고, 정보 제공자의 이름도 없다. 투키디데스가 여러 전언을 분석하고 종합해 그럴 듯하게 재창조했기 때문이다. 기록이 없고 목격자도 불확실하며 전해지는 정보마저 과장, 왜곡, 각색되었을 경우 역사가는 이런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역사가는 때로 사료의 공백을 상상력으로 극복해야 한다. 사실을 검증하고 정보의 출처를 밝히는 일은 오늘날 역사 서술 작업의 기본에 속하지만 고대에는 매우 어려운 과제였던 만큼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가 그 일을 철저하게 못했다고 비판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다.

(48)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가 서구에서 역사의 창시자 대접을 받는 것은 책이 훌륭해서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읽었고 지금도 읽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의 역사에 남은 역사서를 쓴 서구 역사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그리스 고전에 통달했고, <역사>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들의 책은 왜 그렇게 오래 그리고 널리 읽혔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핵심은 서사의 힘이다. 그들은 뚜렷한 목적을 품고, 명확하게 특정할 수 있는 대상에 관하여, 최대한 사실에 토대를 두고,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들으면서 지적 자극을 받고 정서적 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를 꾸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가 지적 자극을 받고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서사를 만드는 일이다.

(52)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역사는, 문명이 발전해도 전쟁과 내전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해명해준다. 국제전이든 내전이든, 폭력을 동원한 집단적 충돌은 모두 인간의 능력과 사회 조직 사이의 부조화 때문에 일어난다. B.C. 5세기 그리스인들은 과학과 생산 기술, 항해술, 군사 기술 등 모든 면에서 작은 도시 국가에 갇혀 살기에는 너무나 높게 발전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느슨한 도시국가 연합을 넘어 남유럽과 지중해 일대를 아우르는 새로운 국가 질서를 창출했다면 그 능력을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 데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페르시아 전쟁은 생사를 가르는 위기였지만 더 높은 수준의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기회를 외면하고 적대적인 두 동맹으로 분열해 내전을 벌이면서 모든 에너지를 소모한 후 함께 멸망하는 길을 걸었다. 20세기 초반과 중반 유럽의 국민국가들도 그 길을 답습해, 유럽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제국을 형성해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길을 외면하고 식민지 쟁탈전과 패권 경쟁에 매달린 끝에 세계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70)

<사기>가 그저 가치 있는 역사 기록일 뿐이라면 전문 역사 연구자들이나 들여다보는 책으로 남았을 것이다. 수많은 역사 애호가들이 지금도 <사기>를 읽는 것은 그 안에 인간의 이야기가 있어서다. <사기>에서 우리는 사람답고 훌륭한 삶을 추구하면서도 부질없는 욕망과 야수 같은 충동에 휘둘리는 인간 존재의 모순을 발견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남을 지배하는데 요긴한 처세술을 배우려고 읽으며, 또 어떤 이들은 무엇으로 어떻게 인생의 의미를 만들어 나가야 할지 고민하면서 읽는다.

(76)

사마천은 국가와 사회는 정치권력과 경제 제도, 사회 제도, 법률, 예술과 문화 양식의 복합체이며 그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그 구조와 양상을 분석했다. 권세와 지위는 없었으나 독특하고 자주적인 인생을 살아 나감으로써 인간의 본성과 삶의 의미를 사유할 실마리를 던진 이들을 망각의 어둠에서 건져냈다. <사기>는 또한 개인사의 치욕을 견뎌 낸 사마천이 역사의 수많은 사실을 마주하면서 느꼈던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과 감정도 전해 준다.

(112-3)

할둔이 군주와 백성의 관계를 이야기한 다음 대목을 보면서 그때를 대비해 미리 눈을 정화해 두자..

군주가 억압과 폭력을 사용하고 함부로 형벌을 가하고 백성의 잘못을 찾아내어 그 죄를 세기 시작한다면, 백성들은 처벌을 두려워하고, 비천한 마음을 품게 되며, 거짓을 말하고, 사기를 치고, 기만을 일삼게 되어 이런 성질이 백성의 성품이 될 것이다. 이런 백성은 전쟁터에서 군주를 배신하기 쉬우며 급기야 군주를 시해하려는 음모를 꾸미게 된다. 왕조는 쇠퇴하고, 왕조를 보호하는 울타리도 망가진다. 군주가 온후한 정책을 펴고 백성의 결점을 포용하면, 백성은 군주를 신뢰하고 그에게서 안식처를 찾으려 할 것이다. 그들은 진정으로 군주를 사랑하고 전쟁터에서 기꺼이 목숨을 바치려 할 것이다. 선량한 지배권이라 함은 백성에게 친절과 보호를 베푸는 것이다. 왕권의 진정한 의미는 군주가 백성을 보호할 때 실현된다. 백성에게 친절하고 선량하다는 것은 백성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다정하게 대하는 것이다. 이는 군주가 백성을 보호할 때 실현된다. 백성에게 친절하고 선량하다는 것은 백성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다정하게 대하는 것이다. 이는 군주가 백성에게 사랑을 보여주는 근본이다.

(139)

게다가 역사는 언어의 그물로 길어 올린 과거. 달리 말하면 역사는 문자 텍스트로 재구성한 과거 이야기다. 언어는 말과 글로 이루어지며, 인류는 문자를 발명하기 전에 먼저 말을 했다. 말에 담은 과거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견뎌 내지 못하며 압축, 누락, 과장, 왜곡, 각색을 거쳐 입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역사는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후에야 나타났다. 하지만 문자 텍스트도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아니다. 설령 완전하게 표현했다고 해도 읽는 사람이 쓴 사람의 의도대로 똑같이 해석한다는 보장은 없다.

(141)

랑케는 배울 것이 많지만 반면교사로 삼기에도 좋은 역사가다. 역사가는 해부학을 배우는 학생이 아니라 노련한 과학수사대 요원과 법의학자가 시신을 다루는 자세로 역사의 사실을 대면해야 한다. 시신을 해부해서 거기 무엇이 있는지를 기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시신의 상태를 보고 사망 원인과 시간을 알아낼 뿐만 아니라 망자의 작업과 생활환경, 생전의 건강 상태와 습관까지 추론해 내야 하며, 유류품이 담고 있는 정보를 연결해 그 사람의 인생 행로를 추측할 수 있어야 한다. 니체가 아프게 지적한 것처럼, 랑케는 역사의 사실에서 인간의 이야기를 끌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쓴 책들은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귀중한 문헌을 보관하는 도서관 깊은 곳에 잠겨 있는 것이다.

(199-200)

역사는 사람이 만들지만 모든 사람이 역사에 흔적을 남기지는 않는다. 남다른 성취를 이루거나 빛나는 선행을 한 사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기 어려운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 그러나 역사는 모든 사람의 삶에 영향을 준다. 신채호의 삶도 시대 상황에 크게 비틀렸다. 그러나 그는 시대가 비튼 인생을 받아들이고 시대의 요구를 실현하려고 분투함으로써 역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신채호는 고대사 연구자로 활동하기에 적합한 재능을 가졌고 그에 필요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다. 오늘날 태어났다면 작가나 철학자로도 크게 성공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평생 일제 경찰과 헌병의 추적을 받으면서 무장 투쟁을 벌이는 일에 골몰했으니 화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0)

치안유지법 위반과 유가증권 위조 혐의로 붙잡혀 법정에 선 신채호는 민족을 위해서라면 도둑질도 정당하며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1929년 뤼순 감옥 독방에 갇힌 후 영양실조와 고문 후유증, 동상으로 혹심한 고통을 겪다가 뇌일혈로 쓰러져 지켜보는 이가 아무도 없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1936 2 21, 그의 나이 57세였다. 그런 인생이 좋아서 그렇게 살았던 게 아니다. 일제 강점이라는 시대 상황이 그런 삶을 요구했고, 그 요구를 피할 수 없어서 그렇게 살다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가 <조선상고사>를 남겼기에 우리는 그 책을 읽으면서 인간 신채호와 역사가 신채호를 느낄 수 있다. 다행이다.

(318)

나는 역사를 역사답게 하는 것이 서사의 힘또는 이야기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의 꿈과 욕망, 사람의 의지와 분투, 사람의 관계와 부딪침, 사람이 개인이나 집단으로 겪은 비극과 이룩한 성취, 사람이 세운 권력의 광휘와 어둠, 사람이 만든 문명의 흥망과 충돌과 융합에 관한 이야기다. 변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과 본성, 예측할 수 없는 우연, 사회 제도와 자연환경이 뒤엉켜 빚어낸 과거의 사건들 가운데 당대의 역사가들이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을 언어로 엮어낸 서사다. 역사의 역사가 드러내 보이는, ‘발전이라고 하는 몇 가지 역사 서술 환경과 내용과 관점과 방법의 변화는 힘 있는 서사로 구현할 때만 독자의 생각과 감정을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역사의 역사에 남은 역사서들을 만나 본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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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8-06-28 10: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bookholic님.
유시민이 창작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썰전에서 하차한다는 소식을 들을 무렵, 이책을 만나게 됐는데,
내용을 갈무리하신 이 페이퍼를 보니 유독 반갑습니다.
귀하게 아껴 읽어야 겠어요~^^

bookholic 2018-06-28 18:51   좋아요 3 | URL
TV로 만나도 좋고.. 책으로 만나도 좋고..
또다른 모습으로(예를 들면 청와대에서^^) 만나도 좋습니다.
양철나무꾼님도 즐독하십시오~~

카알벨루치 2018-06-28 19: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기 시작했는데, 벌여놓은게 많아 ㅎ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100페이지 정도 읽다가 포즈중인데...모두 즐독하소서!

bookholic 2018-06-29 00:51   좋아요 2 | URL
카알벨루치님도 즐독하시고요... 좋은 독후감 부탁드려요~~^^

Tempus_fugit 2018-06-28 2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분명 유작가님이 전작보다는 쉽다고 하셨는데 첨맘님 책중에 가장 난해하게 느껴졌어요. 아무래도 역사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탓해야 할 것 같습니다. bookholic님의 글을 보니 다시 읽어보고 싶어 졌습니다. 참고문헌 중 절판된 책이 있는 것은 조금 아쉽지만, 시간 내서 다시 참고문헌과 함께 꼼꼼하게 읽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bookholic 2018-06-29 00:54   좋아요 1 | URL
저도 워낙 산만한 성격이라서, 신경써서 집중을 하지 않으면 자꾸 맥락을 놓쳤습니다. 소개된 역사들책도 쉽지 않은 책들이구요... 그래도 어려운 역사책들을 조금은 쉽게 잘 소개해 준 것 같습니다. 아, 이런 역사책들이 있구나... 읽어보고 싶지만 몇몇 책들은 도전하는데는 큰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