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역사 서술은 사실을 기록하는 작업이자 사회 변화의 원인과 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활동이며 어떤 대상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창작 행위이기도 하다. 성실한 역사가는 사실을 수집해 검증하고 평가하며 중요한 역사의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한다. 뛰어난 역사가는 사실들 사이에 관계를 탐색해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를 밝혀내며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동력과 역사 변화의 패턴 또는 역사법칙을 찾아낸다. 위대한 역사가는 의미 있는 역사적
사실로 엮은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독자의 내면에 인간과 사회와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과 감정의 물결을 일으킨다.
역사는 사실을 기록하는 데서 출발해 과학을 껴안으며 예술로 완성된다.
(45)
<펠로폰네포스 전쟁사>에는
전쟁을 벌일 것인지, 아니면 협상으로 사태를 해결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여러 도시국가 정치 지도자와 장군들이
벌린 논쟁이 숱하게 등장한다. 그들의 연설문은 대부분 출처도 없고, 정보
제공자의 이름도 없다. 투키디데스가 여러 전언을 분석하고 종합해 그럴 듯하게 재창조했기 때문이다. 기록이 없고 목격자도 불확실하며 전해지는 정보마저 과장, 왜곡, 각색되었을 경우 역사가는 이런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역사가는
때로 사료의 공백을 상상력으로 극복해야 한다. 사실을 검증하고 정보의 출처를 밝히는 일은 오늘날 역사
서술 작업의 기본에 속하지만 고대에는 매우 어려운 과제였던 만큼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가 그 일을 철저하게 못했다고 비판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다.
(48)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가 서구에서 역사의 창시자 대접을 받는 것은 책이 훌륭해서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읽었고
지금도 읽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의 역사에 남은 역사서를 쓴 서구 역사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그리스
고전에 통달했고, <역사>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들의 책은 왜 그렇게 오래 그리고 널리 읽혔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핵심은 ‘서사의 힘’이다. 그들은 뚜렷한 목적을 품고, 명확하게 특정할 수 있는 대상에 관하여, 최대한 사실에 토대를 두고,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들으면서 지적 자극을
받고 정서적 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를 꾸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가 지적 자극을 받고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서사를 만드는 일이다.
(52)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역사는, 문명이 발전해도 전쟁과 내전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해명해준다. 국제전이든 내전이든, 폭력을 동원한
집단적 충돌은 모두 인간의 능력과 사회 조직 사이의 부조화 때문에 일어난다. B.C. 5세기 그리스인들은
과학과 생산 기술, 항해술, 군사 기술 등 모든 면에서 작은
도시 국가에 갇혀 살기에는 너무나 높게 발전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느슨한 도시국가 연합을 넘어
남유럽과 지중해 일대를 아우르는 새로운 국가 질서를 창출했다면 그 능력을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 데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페르시아 전쟁은 생사를 가르는 위기였지만 더 높은 수준의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기회를 외면하고 적대적인 두 동맹으로 분열해 내전을 벌이면서 모든 에너지를 소모한 후 함께
멸망하는 길을 걸었다. 20세기 초반과 중반 유럽의 국민국가들도 그 길을 답습해, 유럽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제국을 형성해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길을 외면하고 식민지 쟁탈전과 패권 경쟁에 매달린
끝에 세계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70)
<사기>가 그저 가치
있는 역사 기록일 뿐이라면 전문 역사 연구자들이나 들여다보는 책으로 남았을 것이다. 수많은 역사 애호가들이
지금도 <사기>를 읽는 것은 그 안에 인간의 이야기가
있어서다. <사기>에서 우리는 사람답고 훌륭한
삶을 추구하면서도 부질없는 욕망과 야수 같은 충동에 휘둘리는 인간 존재의 모순을 발견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남을 지배하는데 요긴한 처세술을 배우려고 읽으며, 또 어떤 이들은 무엇으로
어떻게 인생의 의미를 만들어 나가야 할지 고민하면서 읽는다.
(76)
사마천은 국가와 사회는 정치권력과 경제 제도, 사회 제도, 법률, 예술과 문화 양식의 복합체이며 그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그 구조와 양상을 분석했다. 권세와 지위는 없었으나 독특하고
자주적인 인생을 살아 나감으로써 인간의 본성과 삶의 의미를 사유할 실마리를 던진 이들을 망각의 어둠에서 건져냈다.
<사기>는 또한 개인사의 치욕을 견뎌 낸 사마천이 역사의 수많은 사실을 마주하면서
느꼈던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과 감정도 전해 준다.
(112-3)
할둔이 군주와 백성의 관계를 이야기한 다음 대목을 보면서 그때를 대비해 미리 눈을 정화해 두자..
“군주가 억압과 폭력을 사용하고 함부로 형벌을 가하고 백성의 잘못을
찾아내어 그 죄를 세기 시작한다면, 백성들은 처벌을 두려워하고, 비천한
마음을 품게 되며, 거짓을 말하고, 사기를 치고, 기만을 일삼게 되어 이런 성질이 백성의 성품이 될 것이다. 이런
백성은 전쟁터에서 군주를 배신하기 쉬우며 급기야 군주를 시해하려는 음모를 꾸미게 된다. 왕조는 쇠퇴하고, 왕조를 보호하는 울타리도 망가진다. 군주가 온후한 정책을 펴고 백성의
결점을 포용하면, 백성은 군주를 신뢰하고 그에게서 안식처를 찾으려 할 것이다. 그들은 진정으로 군주를 사랑하고 전쟁터에서 기꺼이 목숨을 바치려 할 것이다.
선량한 지배권이라 함은 백성에게 친절과 보호를 베푸는 것이다. 왕권의 진정한 의미는 군주가
백성을 보호할 때 실현된다. 백성에게 친절하고 선량하다는 것은 백성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다정하게
대하는 것이다. 이는 군주가 백성을 보호할 때 실현된다. 백성에게
친절하고 선량하다는 것은 백성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다정하게 대하는 것이다. 이는 군주가 백성에게
사랑을 보여주는 근본이다.
(139)
게다가 역사는 ‘언어의 그물로 길어 올린 과거’다. 달리 말하면 역사는 문자 텍스트로 재구성한 과거 이야기다. 언어는
말과 글로 이루어지며, 인류는 문자를 발명하기 전에 먼저 말을 했다.
말에 담은 과거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견뎌 내지 못하며 압축, 누락, 과장, 왜곡, 각색을
거쳐 입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역사는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후에야 나타났다. 하지만 문자 텍스트도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아니다. 설령 완전하게 표현했다고 해도 읽는 사람이 쓴 사람의 의도대로 똑같이 해석한다는 보장은 없다.
(141)
랑케는 배울 것이 많지만 반면교사로 삼기에도 좋은 역사가다. 역사가는 해부학을
배우는 학생이 아니라 노련한 과학수사대 요원과 법의학자가 시신을 다루는 자세로 역사의 사실을 대면해야 한다. 시신을
해부해서 거기 무엇이 있는지를 기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시신의 상태를 보고 사망 원인과 시간을
알아낼 뿐만 아니라 망자의 작업과 생활환경, 생전의 건강 상태와 습관까지 추론해 내야 하며, 유류품이 담고 있는 정보를 연결해 그 사람의 인생 행로를 추측할 수 있어야 한다. 니체가 아프게 지적한 것처럼, 랑케는 역사의 사실에서 인간의 이야기를
끌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쓴 책들은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귀중한 문헌을 보관하는 도서관 깊은
곳에 잠겨 있는 것이다.
(199-200)
역사는 사람이 만들지만 모든 사람이 역사에 흔적을 남기지는 않는다. 남다른 성취를
이루거나 빛나는 선행을 한 사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기 어려운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 그러나 역사는 모든 사람의 삶에 영향을 준다. 신채호의
삶도 시대 상황에 크게 비틀렸다. 그러나 그는 시대가 비튼 인생을 받아들이고 시대의 요구를 실현하려고
분투함으로써 역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신채호는 고대사 연구자로 활동하기에 적합한 재능을 가졌고
그에 필요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다. 오늘날 태어났다면 작가나 철학자로도 크게 성공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평생 일제 경찰과 헌병의 추적을 받으면서 무장 투쟁을 벌이는 일에 골몰했으니 화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0)
치안유지법 위반과 유가증권 위조 혐의로 붙잡혀 법정에 선 신채호는 “민족을 위해서라면
도둑질도 정당하며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1929년 뤼순 감옥 독방에 갇힌 후 영양실조와 고문 후유증, 동상으로
혹심한 고통을 겪다가 뇌일혈로 쓰러져 지켜보는 이가 아무도 없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1936년 2월 21일, 그의 나이 57세였다. 그런 인생이 좋아서 그렇게 살았던 게 아니다. 일제 강점이라는 시대 상황이 그런 삶을 요구했고, 그 요구를 피할
수 없어서 그렇게 살다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가 <조선상고사>를 남겼기에 우리는 그 책을 읽으면서 인간 신채호와 역사가 신채호를 느낄 수 있다. 다행이다.
(318)
나는 역사를 역사답게 하는 것이 ‘서사의 힘’
또는 ‘이야기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의 꿈과 욕망, 사람의 의지와 분투, 사람의 관계와 부딪침, 사람이 개인이나 집단으로 겪은 비극과 이룩한 성취, 사람이 세운
권력의 광휘와 어둠, 사람이 만든 문명의 흥망과 충돌과 융합에 관한 이야기다. 변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과 본성, 예측할 수 없는 우연, 사회 제도와 자연환경이 뒤엉켜 빚어낸 과거의 사건들 가운데 당대의 역사가들이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을
언어로 엮어낸 서사다. 역사의 역사가 드러내 보이는, ‘발전’이라고 하는 몇 가지 역사 서술 환경과 내용과 관점과 방법의 변화는 힘 있는 서사로 구현할 때만 독자의 생각과
감정을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역사의 역사에 남은 역사서들을 만나 본 소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