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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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좋아하는 유시민의 신간 소식에 바로 예약을 걸어 놓고 집에 오자마자 책향기 한번 맡고 읽기 시작했단다. <썰전>, <알쓸신잡> TV 프로그램에 많이 나오면서, 유시민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단다. 진작에 많은 사람들이 유시민님의 명석함을 알아봐주었다면 또 다른 위치에서 우리 백성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을 텐데

그런 유시민이 얼마 전에 <썰전>이라는 TV 프로그램을 하차했단다. 하차 이유로 정치와 좀더 멀어지기 위해서라고 했어. 그는 극구 부인하지만, 아빠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가 다시 한번 대한민국 정부에서 일했으면 좋겠구나. 혹시 <썰전>의 하차 이유도 정부에서 일하려고?^^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니.

이 책 <역사의 역사>를 읽으면서 그가 예전에 쓴청춘의 독서라는 책이 떠올랐단다. ‘청춘의 독서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유시민이 딸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을 모아놓은 것이었는데, 이번에 출간된 <역사의 역사>는 장르를 역사책으로 제한한청춘의 독서라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나라의 역사를 다룬 것도 아닌, 다른 나라의 역사, 그것도 아주 오래 전의 역사, 그것도 아주 오래된 역사가가 쓴 역사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란다. 사전 배경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역사가의 글발에만 의존해서 읽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서, 그저 활자만 읽어 내려가는 경우가 많단다.

, 저 책정말 훌륭하고 읽어볼 만 하다고 하는데감히 읽지는 못하겠고바라만 보게 되는…. 그런 책들을 유시민이 설명해주는 책이 바로역사의 역사라는 책이란다. 유시민은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어떤 복잡한 사안에 대해서도 후려쳐서 잘 설명해주는 뛰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인데, 이번에도 어려운 책들을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어. 그가 책을 마무리하면서 이 책은 패키지 여행과 같다고 했어. 중요 관광지를 데려다 주는 가이드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하면서 말이야. 이 책의 성격을 가장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단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기를 패키지 여행이 좋았다면 이제 스스로 자유 여행을 떠나 보라고직접 여기서 소개한 역사책을 읽어보라는 거지, 자유 여행 무서워~~

1.

역사학자가 있고, 역사가가 있단다. 분명 그 둘은 차이가 있단다. 역사학자는 역사적인 일을 분석하고, 연구하고 비평하는 사람이고, 역사가가 역사학자와 다른 두드러진 특징은 창작의 요소가 들어간다는 거야. 역사 서술이란 것은 사실을 기록하는 것뿐만 아니라 창작 행위가 들어가게 되고, 유명한 역사가는 아래와 같은 능력이 있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 소개된 역사가들은 유시민이 생각하는 그런 능력 있는 역사가가 아닐까 싶구나. 그런 창작의 요소가 있어야 역사책도 재미가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읽혀지는 것이 아닐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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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역사 서술은 사실을 기록하는 작업이자 사회 변화의 원인과 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활동이며 어떤 대상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창작 행위이기도 하다. 성실한 역사가는 사실을 수집해 검증하고 평가하며 중요한 역사의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한다. 뛰어난 역사가는 사실들 사이에 관계를 탐색해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를 밝혀내며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동력과 역사 변화의 패턴 또는 역사법칙을 찾아낸다. 위대한 역사가는 의미 있는 역사적 사실로 엮은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독자의 내면에 인간과 사회와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과 감정의 물결을 일으킨다. 역사는 사실을 기록하는 데서 출발해 과학을 껴안으며 예술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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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소개하는 책은 헤로도토스의 <역사>라는 책이란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책이 바로 헤로도토스의 <역사>라는 책이고, 헤로도토스는 키케로가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렀더 사람이란다. 유시민이 헤로도토스를 평가하기를, 고대 그리스의 수많은 이야기꾼 가운데 역사가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얻은 최초의 인물이라고 했어. 헤로도토스가 BC 5세기 그리스의 이야기꾼이었대.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다가 그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 바로 <역사>라는 책이야.

이 책에는 페르시아 대제국과 그리스 연합의 전투에 관한 내용이 주 내용이라고 하는구나. 마라톤 전투가 있고,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가 있고, 스파르타 300명이 승리로 유명한 테르모필레 전투가 생생히 담겨 있단다. 아빠가 <역사>라는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내용들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이 내용들이 이 책에 기록되어 있었구나. 그러면 이 정도 사전 지식이라면 한번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어서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라는 책을 소개해주었어. 책제목은 들어본 것 같은데, 어려운 지은이의 이름은 기억이 없구나. 투키디데스는 본인이 직접 지휘관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여를 했대.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 도시 연합이 도시 국가 간 패권을 둘러싸고 벌인 내전이야. 많은 피해만 남기고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이 나긴 했지만, 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그리스 전체는 몰락하게 되고, 곧이어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에게 정복을 당하고 그 이후에는 로마의 속국이 되는 굴욕을 맛보게 되었단다.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이 두 사람은 그 옛날에 사료도 변변치 못했을 텐데, 어떻게 역사서를 썼을까. 그들이 쓴 것은 모두 사실일까. 사료의 공백은 역사가의 상상력으로 채울 수 밖에 없단다.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비판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유시민은 이야기한다.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이 기록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었는가. 문명이 발전한 오늘날에도 전쟁과 내전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이 책들은 해명해주고 있단다. 하지만 그 이후의 역사에도 그들의 실패를 거듭 반목하는 것은 왜일까. 지난 세기 초에도 우리는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이름만 달랐지, 똑같은 양상의 전쟁을 겼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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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역사는, 문명이 발전해도 전쟁과 내전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해명해준다. 국제전이든 내전이든, 폭력을 동원한 집단적 충돌은 모두 인간의 능력과 사회 조직 사이의 부조화 때문에 일어난다. B.C. 5세기 그리스인들은 과학과 생산 기술, 항해술, 군사 기술 등 모든 면에서 작은 도시 국가에 갇혀 살기에는 너무나 높게 발전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느슨한 도시국가 연합을 넘어 남유럽과 지중해 일대를 아우르는 새로운 국가 질서를 창출했다면 그 능력을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 데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페르시아 전쟁은 생사를 가르는 위기였지만 더 높은 수준의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기회를 외면하고 적대적인 두 동맹으로 분열해 내전을 벌이면서 모든 에너지를 소모한 후 함께 멸망하는 길을 걸었다. 20세기 초반과 중반 유럽의 국민국가들도 그 길을 답습해, 유럽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제국을 형성해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길을 외면하고 식민지 쟁탈전과 패권 경쟁에 매달린 끝에 세계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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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이런 일이 또 오지 말란 법이 없단다. 이제 역사의 가르침을 오롯이 새겨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2.

서양이 헤로도토스가 있다면 중국에는 사마천이라는 사람이 있었단다. 사마천은 기원전 145년 태어난 기원전 85년경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와 달리 사마천은 공무원이라서 자료 접근이 쉬웠대. 그래서 사실에 입각한 방대한 양의 역사책을 쓸 수 있었다고 하는구나. 역사책을 쓰던 중간에 전쟁에 패한 이릉 장군을 변호했다가 궁형을 당하고 2년간 감옥생활을 했지만, 그는 끝까지 역사책 <사기>를 집필이 자신의 삶의 임무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만들어진 <사기> 그 방대함에 놀라기도 하지만, 그것이 그저 역사기록일 뿐이라면 일반 사람들은 관심도 없었을 거야. <사기>에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어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구나. 아빠도 십여 년 전에 <사기> 중에 <열전>만 읽은 적이 있는데, 인물 중심의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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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사기>가 그저 가치 있는 역사 기록일 뿐이라면 전문 역사 연구자들이나 들여다보는 책으로 남았을 것이다. 수많은 역사 애호가들이 지금도 <사기>를 읽는 것은 그 안에 인간의 이야기가 있어서다. <사기>에서 우리는 사람답고 훌륭한 삶을 추구하면서도 부질없는 욕망과 야수 같은 충동에 휘둘리는 인간 존재의 모순을 발견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남을 지배하는데 요긴한 처세술을 배우려고 읽으며, 또 어떤 이들은 무엇으로 어떻게 인생의 의미를 만들어 나가야 할지 고민하면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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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이븐 할둔이라는 사람이 쓴 <역사서설> <무깟리마>라는 책을 소개했어.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고, 처음 들어보는 책들이란다. 우리나라에 이븐 할둔의 책이 위 두 권이 출간되었는데, 사실은 똑같은 책이라고 하는구나. <역사서설>은 영어 축약본이고, <무깟리마>는 아랍어 완역본이래. 이븐 할둔은 북아프리카 사람으로 1332년에 태어나 1406년에 세상을 등졌다고 하는구나. 그가 쓴 이 역사서는 최초의 인류사를 저술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과학과 역사의 첫만남을 시도한 책이라고 했어. 최근에 쓰여진 역사책은 과학과 역사의 만남이 낯선 것이 아닌데 이븐 할둔이라는 사람이 처음 그렇게 역사를 서술했대. 그가 아랍인이다 보니 이슬람의 역사를 중심으로 썼는데, 이 책을 통해 당시 아랍지식인이 인간과 문명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하는구나.

이븐 할둔은 공직생활을 하다가 마흔 살에 알제리 시골에서 칩거하면서 이 대작을 썼다고 하는구나. 이슬람 역사에 많이 담겨 있었고, <코란>, <하디스> 등의 경전해석도 포함하고 있었대. 무함마드가 메카를 정복하고 아라비안 반도를 통합한 해가 서기 622년인데 이 해를 이슬람력 원력으로 삼았대. 무함마드가 죽고 나서 신도들은 뒤따르는 사람이라는 뜻의칼리프라는 지위를 세웠으나 종파 분쟁은 막을 수 없었대. 그래서 칼리프로 지정된 사람들이 잇달아 암살을 당했고 내분이 일어나고그때 수니파와 시아파로 분리되었고, 폭력에 의한 진리 투쟁을 하기 시작했다는구나. 칼리프 4 30면을 끝으로 혼란이 계속되었고, 12세기 투르크인이 권력을 잡을 때까지 이어졌대. 투르크 황제 메메트2세가 오스만 제국을 세우면서 그들의 리더인 술탄이 칼리프의 칭호까지 차지하였고이런 내용들이 이블 할둔의 책에 나와 있다고 하는데, 유시민이 설명해주어서 그런지 책에 대한 관심이 확 올라가는구나. 그래도 감히 읽어볼 엄두가 나질 않는구나.

2.

레오폴트 폰 랑케(1795~1886)라는 독일 사람이 있었어. 그는 전문역사학자이자 역사가인데, 역사 강의도 많이 했대. 수강생 중 속기사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랑케의 강의록을 썼고, 랑케가 죽은 지 2년 뒤에 그 강의록이 책으로 엮어졌는데, 그 책의 제목은 <근세사의 여러 시기들에 대하여>라는 책이래. 랑케는 이 책을 비롯하여 방대한 역사를 저술했는데 54권이나 썼대. 그런데 아쉽게도 재미는 없다고 하는구나. 왜냐하면 그가 쓴 대부분의 책이 지식인이나 지배층을 대상으로 한 글로 논문이나 학술지가 대부분이래. 그리고 그가 역사서를 많이 쓰기는 했지만, 그는 당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군주제를 옹호를 했다는구나. 그래서 신성동맹 막시밀리안 2세가 그를 초대해 강의를 하기도 했대. 즉 그는 권력자들과 친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일반인은 볼 수 없는 많은 자료 문건들을 볼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많은 역사책을 쓸 수 있었던 거야.

유시민은 랑케가 오류를 범했다고 했어. 먼저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군주제를 옹호했다는 거야. 그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은 그의 강의 이후 70년 이내 군주제는 지구에서 거의 사라졌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었단다. 그리고 그는있었던 그대로쓰겠다고 했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잘못 생각한 것이었어. 아무래도 권력과 빌붙는 성향이다 보니 권력에 치우친 역사 쓰기가 되었대. 또 그는 유럽 밖 사피엔스를 미개인으로 보았고, 여성을 하등하게 생각하는 것 등 오류를 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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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게다가 역사는언어의 그물로 길어 올린 과거. 달리 말하면 역사는 문자 텍스트로 재구성한 과거 이야기다. 언어는 말과 글로 이루어지며, 인류는 문자를 발명하기 전에 먼저 말을 했다. 말에 담은 과거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견뎌 내지 못하며 압축, 누락, 과장, 왜곡, 각색을 거쳐 입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역사는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후에야 나타났다. 하지만 문자 텍스트도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아니다. 설령 완전하게 표현했다고 해도 읽는 사람이 쓴 사람의 의도대로 똑같이 해석한다는 보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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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명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이 책은 유시민의청춘의 독서에서도 소개가 된 책이란다. 마르크스가 이야기하길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로 보았어. 역사를 보는 시각의 대전환이라고 할 수도 있단다. 그동안 역사의 관심 밖에 있었던 노예, 농노, 농민, 노동자를 역사의 주역으로 끌어들인 거야. 그의 등장과 함께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았어. 그 이유는계급 대립과 착취의 역사를 완전히 종식해서 인류에게 완전해방을 줄 거라는 기대를 주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의 이런 사상은 당시 국가권력의 생각과 달라서 수배와 도피와 망명생활을 했어.

그는 유물론을 내세웠는데, 유물론이라는 것은 물질이 먼저이고 인간 정신과 의식은 나중이라는 생각이야 의식은 물질의 산물이라고 주장했어. 그리고 농업혁명 이후 사유 재산이 발생하게 되면서 노예제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국가가 출현했고, 봉건제가 생기면서 영주와 농민, 농노가 출현고, 자본주의가 들어서면서 자본가와 노동자가 생겨났어.. 이 모든 것들이 계급 사회였다는 것이지.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혐오했고, 부르주아지를 경멸했으며, 결국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이 온다고 했어. 그의 예견이 비록 비껴갔지만, 그의 영향은 지대했단다.

유시민이 마르크스를 평하는 게 재미있더구나. 사회적 감수성이 예민한 문과 천재라고 했어. 그리고 그는 다름 사람의 사상과 이론을 빠르게 흡수했고, 글도 잘 쓰고 미래를 바꾸는 데 관심이 많다고 했어. 그런 면에서는 유시민과 비슷한 것 같구나. 유시민도 그런 통찰력에 있어서는 달인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4.

우리나라의 역사가들도 소개를 해주었는데, 박은식, 신채호, 백남운이 그들이란다. 이 책에서 소개된 박은식의 <한국통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도 아빠가 예전이 읽어보았어. 그런데 백남운이라는 사람은 이름조차 처음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란다. 알고 보니 그는 사회주의자로 나중에 북으로 넘어간 사람이더구나.

박은식. 그는 유학자였지만 민주공화국을 세워야 한다고 했어. 3.1운동 이후 독립투쟁에 초점을 둔 당대사를 새로 써서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출간했어. 그리고 소설 <몽배금태조>를 써서 고대사도 새로 써야 한다고 행각했어. 조선이 그동안 자신의 역사가 아닌 중국의 역사를 배운다고 비판했어.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가 있었으니 신채호였단다. 신채호는 고대사를 연구하고 고대 우리 민족의 터전은 만리장성 넘어 요동지역까지라고 했어. 그리고 역사라는 것은 아()와 비아(非我) 투쟁의 시간이라고 했어. 그도 유학자 출신이지만, 공산주의와 아나키즘까지 받아들였어. 그리고 무장투쟁 중에 감옥에서 죽고 말았단다.

그가 쓴 <조선상고사>는 미완성의 역사책이었단다. 신채호는 원래 조선시대까지 쓰려고 했으나, 단군왕검에서 백제의 패망까지만 썼어. 시대가 그를 가만히 글로 쓰지 못하게 했던 거야. 비록 <조선상고사>가 미완의 역사책이지만, 그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모두 포함되어 있었어. 사대주의 역사가를 비판하고 특히 김부식을 많이 비판했단다. 그리고 조선 민중이 아()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고, 민족의 정체성을 심어주려고 노력했어. 우리 민족의 역사를 알아서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게 해주려고 했지. 그는 역사서뿐만 아니라, 을지문덕, 최영, 이순신 등 전기도 집필을 하셨는데, 집필의 취지는 역사책을 저술하는 목적과 똑같았어. 아빠가 역사적인 인물 중에서 존경하는 몇 분 안 되는 분 중에 한 명이 바로 신채호라고 너희들한테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니 또 반갑구나.

그리고 또 한 분 백남운이라는 분은도쿄 유학을 다녀온 후 사회주의 연구 조직을 만들고 항일운동을 하셨대. 그로 인해 2년간 옥살이도 했어. 해방 후 중도좌파정당에 있다가 미군정의 탄압을 받고 1947년 북으로 넘어갔고, 김일성 정권 하에서 숙청 당하지 않고 천수를 누렸다고 하는구나. 그가 쓴 역사책 두 권… <조선사회 경제사> <조선봉건사회경제사> <조선사회 경제사>는 유물사관으로 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의 고대사를 다루었고, <조선봉건사회 경제사>는 통일신라시대 이후부터 조선시대까지 다루려고 했으나 고려시대까지만 썼다고 하는구나. 북에서 그 이후에 썼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것은 거기까지 뿐이래. 마르크스의 역사발전 단계론을 우리 민족 역사에 적용을 했대. 그로 인해 우리 나라는 마르크스의 보편적인 역사 법칙에 의해 발전해왔다고 봤어. 그래서 일본 등 외부의 도움이 필요없다는 주장을 폈단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자이자 민족주의자라고 볼 수 있어.

아빠가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여기까지란다. 유시민이 소개한 책들 중에는 그 유명한 에드워드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 코인비의 <역사의 연구>, 헌팅텅의 <문명의 충돌>,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 , >,,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더 있었단다. 근대에 발표된 책들이라서 아빠도 익히 들어본 책들이구너, 아빠가 읽은 것들도 있고, 아빠가 읽으려고 사 둔 책들도 있고

역사책 읽어주는 남자 유시민은 역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가 이야기하는 역사에 대해 적어 준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면서 오늘 독서편지를 마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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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

나는 역사를 역사답게 하는 것이서사의 힘또는이야기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의 꿈과 욕망, 사람의 의지와 분투, 사람의 관계와 부딪침, 사람이 개인이나 집단으로 겪은 비극과 이룩한 성취, 사람이 세운 권력의 광휘와 어둠, 사람이 만든 문명의 흥망과 충돌과 융합에 관한 이야기다. 변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과 본성, 예측할 수 없는 우연, 사회 제도와 자연환경이 뒤엉켜 빚어낸 과거의 사건들 가운데 당대의 역사가들이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을 언어로 엮어낸 서사다. 역사의 역사가 드러내 보이는, ‘발전이라고 하는 몇 가지 역사 서술 환경과 내용과 관점과 방법의 변화는 힘 있는 서사로 구현할 때만 독자의 생각과 감정을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역사의 역사에 남은 역사서들을 만나 본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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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가 서구에서 역사의 창시자 대접을 받는 것은 책이 훌륭해서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읽었고 지금도 읽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의 역사에 남은 역사서를 쓴 서구 역사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그리스 고전에 통달했고, <역사>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들의 책은 왜 그렇게 오래 그리고 널리 읽혔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핵심은 ‘서사의 힘’이다. 그들은 뚜렷한 목적을 품고, 명확하게 특정할 수 있는 대상에 관하여, 최대한 사실에 토대를 두고,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들으면서 지적 자극을 받고 정서적 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를 꾸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가 지적 자극을 받고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서사를 만드는 일이다.

(76)
사마천은 국가와 사회는 정치권력과 경제 제도, 사회 제도, 법률, 예술과 문화 양식의 복합체이며 그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그 구조와 양상을 분석했다. 권세와 지위는 없었으나 독특하고 자주적인 인생을 살아 나감으로써 인간의 본성과 삶의 의미를 사유할 실마리를 던진 이들을 망각의 어둠에서 건져냈다. <사기>는 또한 개인사의 치욕을 견뎌 낸 사마천이 역사의 수많은 사실을 마주하면서 느꼈던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과 감정도 전해 준다.

(112-3)
“군주가 억압과 폭력을 사용하고 함부로 형벌을 가하고 백성의 잘못을 찾아내어 그 죄를 세기 시작한다면, 백성들은 처벌을 두려워하고, 비천한 마음을 품게 되며, 거짓을 말하고, 사기를 치고, 기만을 일삼게 되어 이런 성질이 백성의 성품이 될 것이다. 이런 백성은 전쟁터에서 군주를 배신하기 쉬우며 급기야 군주를 시해하려는 음모를 꾸미게 된다. 왕조는 쇠퇴하고, 왕조를 보호하는 울타리도 망가진다. 군주가 온후한 정책을 펴고 백성의 결점을 포용하면, 백성은 군주를 신뢰하고 그에게서 안식처를 찾으려 할 것이다. 그들은 진정으로 군주를 사랑하고 전쟁터에서 기꺼이 목숨을 바치려 할 것이다. 선량한 지배권이라 함은 백성에게 친절과 보호를 베푸는 것이다. 왕권의 진정한 의미는 군주가 백성을 보호할 때 실현된다. 백성에게 친절하고 선량하다는 것은 백성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다정하게 대하는 것이다. 이는 군주가 백성을 보호할 때 실현된다. 백성에게 친절하고 선량하다는 것은 백성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다정하게 대하는 것이다. 이는 군주가 백성에게 사랑을 보여주는 근본이다.˝

(200)
치안유지법 위반과 유가증권 위조 혐의로 붙잡혀 법정에 선 신채호는 “민족을 위해서라면 도둑질도 정당하며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1929년 뤼순 감옥 독방에 갇힌 후 영양실조와 고문 후유증, 동상으로 혹심한 고통을 겪다가 뇌일혈로 쓰러져 지켜보는 이가 아무도 없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1936년 2월 21일, 그의 나이 57세였다. 그런 인생이 좋아서 그렇게 살았던 게 아니다. 일제 강점이라는 시대 상황이 그런 삶을 요구했고, 그 요구를 피할 수 없어서 그렇게 살다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가 <조선상고사>를 남겼기에 우리는 그 책을 읽으면서 인간 신채호와 역사가 신채호를 느낄 수 있다. 다행이다.

(199-200)
역사는 사람이 만들지만 모든 사람이 역사에 흔적을 남기지는 않는다. 남다른 성취를 이루거나 빛나는 선행을 한 사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기 어려운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 그러나 역사는 모든 사람의 삶에 영향을 준다. 신채호의 삶도 시대 상황에 크게 비틀렸다. 그러나 그는 시대가 비튼 인생을 받아들이고 시대의 요구를 실현하려고 분투함으로써 역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신채호는 고대사 연구자로 활동하기에 적합한 재능을 가졌고 그에 필요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다. 오늘날 태어났다면 작가나 철학자로도 크게 성공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평생 일제 경찰과 헌병의 추적을 받으면서 무장 투쟁을 벌이는 일에 골몰했으니 화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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