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다시 종후 팔을 잡았습니다. 이번에는 양손을 날처럼 세워 틈으로 끼워 넣었습니다. 그 순간 종후의 몸이 떠오르는가 싶더니 왼팔이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종후의 왼 팔목을 붙든 손이 딸려 나왔습니다. 떠오르던 종후가 멈췄습니다. 쓰러진 침대 뒤쪽에 실종자가 더 있는 겁니다. 저는 틈 사이로 팔을 더 깊숙이 집어넣었습니다. 손으로 더듬으며 그곳 상황을 머리로 그렸습니다. 침대 뒤 그 좁은 공간에 남학생 세 명이 원을 그리듯 어깨동무를 하고 뭉쳐 있는 겁니다. 종후까지 네 아이가 서로 부둥켜안고 마지막 순간을 맞았을 겁니다. 엇갈려 붙든 어깨와 손을 더듬는데 다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108)

누가 뭐라 해도 난 알아. 민간 잠수사들은 그때 정말 용맹했어. 여기서 죽어도 좋다고, 훗말을 대비하지 않고 돌진했지. 나는 그들의 몸이 하루하루 축나는 것을 알면서도, 실질적인 도움을 거의 못 줬어. 도움이 뭐야. 오히려 그들을 악순환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진통제처럼 굴었던 게 아닐까. 근육을 풀어 주는 건 조금 더 천천히 그리고 조금 더 오래, 그들을 계속 심해로 내모는 방편이었으니까. 선한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그 역할이 늘 좋은 법은 아냐. 내가 아니라면 누군가 다른 물리치료사가 바지선에 올라갔을 거라고? 그 생각도 물론 했지. 하지만 그딴 건 내 맘 편하자고 나중에 지어 내는 핑계일 뿐이야. 묵살당하더라도, 그때 나랑 한의사들이 함께 잠수사들 몸과 마음이 심각하게 망가지고 있다는 걸 알리고, 하루라도 빨리 잠수병 치료 전문의를 바지선으로 데려오라고 요구했어야 한다고 생각해. 후회는 왜 이리 항상 늦는걸까. 돌이킬 수 없을 즈음이 되어야 최선책과 차선책과 차차선책이 떠올라, 일은 벌써 최악으로 벌어졌는데 말이야.

(113)

상상은 전부 달랐습니다. 저는 실종자들이 침몰한 배에 승선하기 전에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구체적으론 몰랐고 지금도 모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품에 안고 나오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얼마나 제각각 다른 존재인지 압니다. 키나 몸무게는 물론이고, 똑 같은 자세로 최후를 맞은 이는 한 사람도 없으니까요. 극심한 공포와 목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에도, 마지막 순간일수록, 그 사람은 오롯이 그 사람인 겁니다. 그 차이를, 그 유일무이한 특별함을, 잠수사는 만지고 안고 함께 헤엄쳐 나오며 아는 겁니다. 인간은 결코 숫자로 바뀔 수 없습니다. 바지선에서 철구한 뒤 제가 가장 듣기 싫었던 질문은, 너는 몇 명이나 수습했느냐는 겁니다. 제게 중요한 것은 수습한 숫자가 아니라 선내에 남아 있는 숫자였습니다.

(181)

수색과 수습의 문제점을 논하자면, 밤을 새워도 모자라. 나는 여전히 침몰 직후 구조 방기부터 실종자 수습까지, 정부의 무능함과 안일함을 생각하면 치가 떨려. 하지만 바지선에서 만난 잠수사들은 아냐. 나는 수학여행을 떠난 아들을 맹골수도에서 잃은 국민이고, 내 앞에 앉은 사내들은 억울하게 숨진 내 아들을 찾고자 매일 잠수하는 국민이라고. 국민과 국민이 만난 거야. 유가족과 잠수사가 서로 사과를 주고받아선 안 돼. 오히려 우린 함께 국민을 우롱하고 상처를 입힌 자들을 찾고 그들에게 공개 사과를 받아야 해. 정말 머리 숙여 사과할 사람을 찾으려고 내가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라고.

(203)

완전히 미쳐 돌아간 겁니다. 실종자 수습이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민간 잠수사들은 뼈가 썩고 근육이 찢어지고 신경이 눌려 휠체어 신세로 지내도 괜찮단 겁니까? 유가족이야 생때 같은 자식과 형제자매를 잃었으니 더 자주 더 빨리 실종자를 찾아 달라 요구했다 칩시다. 잠수사들도 흥분한 채 만용을 부려 잠수를 더 하겠다며 나섰다고 치자고요. 그렇더라도, 해경이든 범대본이든 이 참사 수습을 총괄하는 수뇌부는 냉정하게 판단해서 말렸어야죠. 하루에 두세 번씩 매일 심해로 냉정하게 판단해서 말렸어야죠. 하루에 두세 번씩 매일 심해로 들어가면 열에 아홉은 치명적인 잠수병에 걸립니다. 잠수를 다시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평생 장애를 안고 살거나 목숨이 끊길 수도 있어요. 지구상에서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잠수를 시키는 나라는 없습니다.

잠수사도 인간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에요.

(205)

병원에 도착한 잠수사들은 모두 피곤한 표정을 띠었지만 밝은 웃음도 지었습니다. 잠수병 전문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면, 그들 짐작으론 실어야 서너 달 안에 완치되어, 내년엔 다시 작업 현장인 심해로 갈 수 있으리라 기대한 겁니다. 난 이들이 적어도 2년은 잠수하지 않고 절대 안정을 취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맹골수도에서 입은 트라우마는 단시간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제법 시간이 흐른 뒤 다양하게 증상이 드러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맹골수도의 심해와 흡사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증상이 발현될 가능성이 무척 큽니다. 그것까지 정신과 전문의가 충분히 진단하고 치료한 다음에 현장으로의 복귀를 의논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복귀 시점도 잠수사 개인의 판단에 맡기지 말고 국가에서 관리해야지요. 말로만 맹골수도의 영웅이라 하지 말고, 그 영웅들이 트라우마로 고통받지 않도록 국가에서 챙겨야 합니다.

(308)

새빨간 거짓말이지. 우선 보상금을 받는 건 유가족이 가진 최소한의 권리야. 이번 참사의 보상금은 일반 교통사고 수준을 책정되었어. 희생 학생들의 경우는 도시 일용직 노동자 기준으로 금액이 산청되었다고. 아이들의 재능과 꿈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가장 늦은 수준으로 일괄 정리한 거야. 그러니 다른 참사와 비교해 봐도 보상금이 많을 수가 없어. 유가족이 받은 돈은 이 보상금에 희생자들이 개인적으로 가입한 보험금과 국민들이 낸 성금을 합친 거야. 다른 참사 때도 보험금과 국민 성금은 있었고, 잊을까 싶어 다시 지적해 두자면, 이 보험금과 성금에도 한 푼 나간 게 없겠지?

(378)

형님, 그런데 소설 제목을 왜 거짓말이다라고 지었어요?”

내가 민간 잠수사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했을 때, 관홍이 네가 대답하며 가장 자주 썼던 말이잖아? ‘416의 목소리에 출연한 유가족들에게 제일 많이 들은 말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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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6-12-24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신 수습하던 민간잠수사들의 바닷속 광경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되어
가슴이 아팠던 책이었어요.
그간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심정적으로만
유가족분들을 가엾게 여긴 저의 소홀함에
잔잔한 파문을 던져 준 소중한 이야기였습니다.

 
녹색평론 통권 151호 - 2016년 11월~12월, 창간 25주년 기념호
녹색평론 편집부 엮음 / 녹색평론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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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녹색평론이 창간 25주년이 되었단다. 이번 호는 창간 25주년 특집호란다. 하지만 그리 기뻐할 만한 일만은 아니라고 하는구나. 녹색평론사가 출판 사정이 어렵대. 그러면서 이번에 녹색평론의 가격을 2000원을 올리면서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했단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홍보를 부탁했어. 녹색평론 잡지책이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녹색평론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불편한 진실들이 많이 있단다. 그래서 세상을 바꾸려는 시민 의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것이 아빠의 바람이란다. 녹색평론을 읽다가 좋은 내용이라서, 다른 사람들도 알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있으면 아빠도 가끔 그 글을 발췌하여 SNS에 올리곤 했단다.

하지만, 아빠가 처음 녹색평론을 읽기 시작한 2010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아빠 지인들 중에 녹색평론을 읽는 사람을 보지 못했고, 녹색평론이라는 잡지를 알고 있는 이들도 많지 않단다. 그래도 녹색평론 뒷면에 녹색평론 모임 공고를 보면 많은 지역에서 사람들이 녹색평론을 같이 읽고 있고, 그 모임 공고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 희망을 가져본단다. 아빠도 그 오프라인을 한번쯤 나가고 싶지만, 기회가 잘 안 되는구나. 그리고 녹색평론이 좀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좀더 다양한 소재를 다루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번 호가 특집호라서 그런지, 그간 계속 다루었던 내용들의 중복이라서 다소 아쉬움 마저 남겼단다.

 

1.

창간 27주년 특집호 표지에 무위당 장일순의 사진이 있어 반가웠단다. 아빠가 무위당 장일순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 동안 녹색평론에서 몇 번 그에 다룬 글을 읽고 그에 관한 책을 읽고, 그에 관심이 생겼단다. 들어가는 글에서 그의 생명 사상에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오늘날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단다. 최근 우리나라는 두 달 가까이 국정 마비 상태가 지속되고 있단다. 아빠가 생각하기에는 두 달이 아니라 9년 가까이 국정 마비 상태였는데, 이번에 많은 사람들이 그 동안이 실태를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단다. 그리고 악마와 같은 이가 아직도 자신은 잘못이 없다면서,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단다. 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나라의 백성들은 모두 악마를 가리켜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한다 하지만 그가 버티고 있는데, 당장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단다. 저런 악마가 국가를 개인과 측근의 소유물로 만드는 것을 그대로 둘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 민주주의 시스템은 과연 민주주의 맞는가?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민주주의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저렇게 잘못을 수도 없이 많이 한 악마가 버티고 있는데도 당장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이 또한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탄핵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그것은 왜 이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그런데 얼마 전에 끝난 미국의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면 미국 또한 민주주의가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누군가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수 있던 것도 민주주의라서 그렇다고 하는 이도 있지만, 그런 민주주의라면 무엇인가 상당히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구나. 이 책이 출간될 당시에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치르기 전이었고, 트럼프라는 사람이 인기를 끄는 것 자체로 미국식 민주주의가 끝났다고 했는데, 대통령이 되었으니, 그 글을 쓴 이는 지금쯤 어떻게 이야기할 지 궁금하구나.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지금의 민주주의는 정말 문제가 많기 때문에 어떻게든 바뀌어야 한단다. 그런 변화를 자신의 이익과 손해를 상관하지 않고 바꿀 수 있는 이가 다음 지도자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얼마전 내년 나라 예산 편성을 할 때, 빚더비에 쌓여 있는 나라가 또 빚을 끌고 와서 예산 편성을 하는 것을 보고, 그리고 자신의 당선을 위해 세금을 헐뜯어가는 것을 보고 이 개판인 국회의원 선거 제도도 뜯어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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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박하다는 것은 오늘의 정치상황 때문입니다. 시간은 빠르게 가는데, 지금 이대로 가면 인류 생존의 토대 자체가 붕괴한다는 경고가 끊임없이 나오는데도, 세계의 정치는 마냥 이 사태를 방치하고 있습니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닙니다. 최근의 미국 대통령 선거판을 보면 미국식 민주주의는 완전히 끝났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기본적 교양도 상식도 없어 보이는 부동산 부호가 갑자기 나타나서 저렇게 대중들의 인기를 끈느 것을 보고 소위 엘리트 지식인들은 포퓰리즘의 대두를 걱정하고 있지만, 결국은 미국식 민주주의가 끝났다는 신호로 보는 게 옳습니다. 그동안 지배층이 정당정치니 민주주의니 하는 가면을 쓰고 정치랍시고 해온 게 실은 자신들의 사욕을 채우는 게 전부였다는 것을 깨달은 대중들의 분노가 표출됐다고 봐야죠. 소위 엘리트들에 대한 민중의 반란이라고 봐야죠.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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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권력의 심각한 부패만큼 시민들의 둔감을 걱정하였는데, 이것은 이 책이 촛불시위가 시작되기 전에 나와서 그런 것 같구나. 주말마다 벌어지는 평화적인 촛불시위는 악마의 스캔들 만큼 온 세계에서 관심을 갖고 있더구나. 권력의 부패에는 무관심했던 시민들이 모욕감에 거리로 뛰쳐 나온 것이란다. 그나저나 얼른 우리나라가 정상적인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2.

두어 달 전 아빠가 회사에서 일하는데 바닥이 출렁하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단다. 예전에 마룻바닥이었던 교실에서 덩치 큰 친구가 옆을 쿵쾅쿵쾅 뛰어날 때 느꼈던 출렁거림... 그 출렁함이 지나가고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웅성댔단다.  그리고 그것이 경주에서 일어난 지진의 여파란 것을 알게 되었단다. 경주라고 하면 여기서 한참 떨어진 곳인데, 이정도 느낄 정도면 지진의 강도가 적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했단다. 지진 강도 5.8. 언론에서는 우리나라도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등의 기사를 쏟아냈단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지진 그 자체가 아니라 수많은 핵발전소가 더 큰 문제란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지진 당시 우리는 핵발전소의 위험함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단다. 우리나라 핵발전소는 안전한가? 지진에 잘 버틸 수 있는가? 핵발전소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활성단층과 활동성단층의 차이를 이야기하면서, 활동성단층 위만 아니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하는데, 그것은 말장난에 불가하다고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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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지 용어의 정의부터 살펴보자. 활성단층은 지구의 40억 년 역사 중 180만 년전에 시작된 제4기에 형성된 단층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활성단층은 최근 ‘180만 년 이내에 한 번 이상 움직인 단층을 의미한다. 활동성단증의 정의는 두 가지이다. ‘50만 년 이내에 두 번 이상 움직인 단층 또는 3 5천 년 이내에 한 번 이상 움직인 단층으로 정의된다. 언뜻 보면 두 가지 정의가또는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둘 중 하나만 만족해도 활동성단층이 되므로 더 보수적인 기준같이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꼼수가 하나 자리 잡고 있다. ‘50만 년 이내에 두 번 이상 움직인 단층이라는 개념이 입증하기 매우 힘들다고 한다. 이미 움직인 단층에서 또 한번의 움직임이 있을 경우 단층면이 바스러지기 때문에 그 단층이 한 번 움직인 것인지 두 번 이상 움직인 것인 확인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질학자들의 설명이다. 따라서 활동성단층의 정의 중에서 의미 있는 것은 ‘3 5천 년 이내에 한 번 이상 움직인 단층이라는 정의뿐이다. 다시 말해서 핵산업계는 (180만 년 내에 움직인) 활성단층이 아니라 (3 5천 년 내에 움직인) 활동성단층에서만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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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진이 일어난 곳이 하필 경주였단다. 경주라는 도시는 신라의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도시로 예전에 여행 갔을 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가기를 꺼리는 도시가 되었단다. 왜냐하면 경주에 세워진 방폐장의 문제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입지 조건을 만족하지 못함에도 불고하고 그곳에 지어진 방폐장. 그런데 지진까지 덥쳤으니... 그리고 경주는 방폐장 뿐만 아니라 경주에는 월성단층이 있단다. 진도 6.5까지 견딜 수 있게 설계되었다고 하지만, 제대로 성능을 보이는지 확인을 해보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스릴러 세상에 사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정말 6.5에도 강건하게 설계하게 되었다고 쳐도, 진도 5.8이 발생했다면, 6.5 이상도 언젠가는 발생할 수 있는 강도라고 생각이 드는구나. 지금이라서 우선 6.5 지진을 견딜 수 있는 게 맞는지 시험을 해봐야 하고, 더 높은 진도에서도 견딜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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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2일 경주지진 이후 440회가 넘는 여진이 2주째 지속되고 있다. 많은 경주시민들은 반복되는 지진에 지쳐 있다. 친척 집에 피신을 한 사람도 많다. 여기에 원전사고의 불안감이 더해지고 있다. 진도 6.5에 견딜 수 있게설계된 원전이라지만 설계대로시공되었는지, 수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 과연 그 성능을 유지하고 있는지, 조사되지 않았다. 그리고 규모 5.8의 지진이 월성원전이 있는 경주에서 발생하였다. 또한 관련 정보는 투명하게 제공되지 않는다. 원자력계는 벌써 이번 지진의 진원지가 양산단층이 아닐 가능성과 활동성단층이 아닐 가능성을 주장하고 했다. 여기까지가 사실이다. 나는 이 정도의 사실들 앞에서 우리 국민이 핵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하여 충분이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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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녹색평론에는 늘 서평을 서너 편 싣고 있단다. 아빠는 그 서평을 통해 알게 된 책들을 읽곤 했어. 이번에 소개된 책 세 권은 모두 읽고 싶더구나. 전태일의 어머니에서 노동자의 어머니가 되어 노동 운동에 평생을 바친 이소선에 대한 책 <이소선 평전>.

그리고 몇 년 전에 이슈가 되었다가 올해 초 다시 크게 이슈가 되었던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빼앗긴 숨>.

그리고 기후 변화에 대한 원인과 해결방안을 제시한 나오미 클라인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아빠의 읽고 싶은 책 목록에 모두 넣어야겠구나.

 

 

 

9월 12일 경주지진 이후 440회가 넘는 여진이 2주째 지속되고 있다. 많은 경주시민들은 반복되는 지진에 지쳐 있다. 친척 집에 피신을 한 사람도 많다. 여기에 원전사고의 불안감이 더해지고 있다. 진도 6.5에 견딜 수 있게 ‘설계’된 원전이라지만 설계대로 ‘시공’ 되었는지, 수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 과연 그 성능을 유지하고 있는지, 조사되지 않았다. 그리고 규모 5.8의 지진이 월성원전이 있는 경주에서 발생하였다. 또한 관련 정보는 투명하게 제공되지 않는다. 원자력계는 벌써 이번 지진의 진원지가 양산단층이 아닐 가능성과 활동성단층이 아닐 가능성을 주장하고 했다. 여기까지가 사실이다. 나는 이 정도의 사실들 앞에서 우리 국민이 핵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하여 충분이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급박하다는 것은 오늘의 정치상황 때문입니다. 시간은 빠르게 가는데, 지금 이대로 가면 인류 생존의 토대 자체가 붕괴한다는 경고가 끊임없이 나오는데도, 세계의 정치는 마냥 이 사태를 방치하고 있습니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닙니다. 최근의 미국 대통령 선거판을 보면 미국식 민주주의는 완전히 끝났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기본적 교양도 상식도 없어 보이는 부동산 부호가 갑자기 나타나서 저렇게 대중들의 인기를 끈느 것을 보고 소위 엘리트 지식인들은 포퓰리즘의 대두를 걱정하고 있지만, 결국은 미국식 민주주의가 끝났다는 신호로 보는 게 옳습니다. 그동안 지배층이 정당정치니 민주주의니 하는 가면을 쓰고 정치랍시고 해온 게 실은 자신들의 사욕을 채우는 게 전부였다는 것을 깨달은 대중들의 분노가 표출됐다고 봐야죠. 소위 엘리트들에 대한 민중의 반란이라고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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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12-24 0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항상 자녀분들께 독서편지를 쓰시는 bookholic님의 글을 보면서 자상함과 자녀분들에 대한 사랑을 느낍니다^^: 가족분들과 따뜻한 성탄 보내세요.

bookholic 2016-12-24 23:08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겨울호랑이님께서 따님께 하시는 걸 보면 늘 부족함을 느낀답니다. 따님의 얼굴을 보면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자랐는지 알 수 있네요. 겨울호랑이님도 온가족 행복하고 따뜻한 크리스마스와 연말 되시기 바랍니다.^^
 















(9)

기본적인 것들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보람만 강요하는 행위는 문제를 외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보람이라는 듣기 좋은 말로 일을 미화함으로써 당연한 것이 전혀 당연하지 않은 비참한 현실을 눈속임하고 있다.

(20)

야근이란 계약으로 정해진 시간을 넘겨서 일한다는 의미다. ,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것으로 규정해야 한다.

이 예외적인 것이 가끔일어난다면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하는 야근은 예외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의 매일같이야근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나는 입사하고서 야근하지 않고 돌아간 날이 단 하루도 없어. 칼퇴근은 도시 전설이야라며 자신의 비참한 근무 환경이 마치 어엿한 훈장이라도 되는 듯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을 보면서 참 안쓰러웠던 적이 있다.

(51)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지 않아도 좋다. 회사를 옮겨다니는 것 또한 하나의 생활 방식이다. 딴 길로 새지 않고 대학을 졸업하는 시점에 곧바로 회사에 취직해 그대로 정년까지 성실하게 일하는 삶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인생의 레일이 딱 하나뿐이고, 그 레일을 벗어났다고 해서 갑자기 삶이 어려워진다면 이 사회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제도상 설계 실수다.

(73)

만약 회사없이 자기 인생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회사에 지나치게 의견하고 있는 것이다.애사심을 갖는 것이야 괜찮지만, 기댈 속이 사라졌을 때 자신이 무너져내리지는 않을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86)

어떤 중대한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를 놓고 다툰다.”월급을 받는 이상, 책임을 지고 일하다고 주장하면서도, 정말 누군가가 책임져야 하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면 그 책임을 남에게 덮어씌우느라 분주하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책임이란 단어를 아주 어중간하고 모호하게 써먹고 있다.

책임의 범위를 정확히 설정하면 누구 책임인지를 두고 다툴 일도 줄어들고 무한한 책임을 짊어질 일도 사라진다. 각자의 책임 범위를 넘어선 일에는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고 분명히 선을 그을 수도 있다. , 자신의 책임 범위에 속한 일은 프로로서 완벽하게 수행할 것이 요구된다. 이처럼 책임의 범위를 정확히 정하는 것은 일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88)

아무리 경영자 마인드로 일해도 종업원은 어디까지나 종업원, 어차피 고용된 처지다. 경영자 마인드를 갖춰 경영자에 버금갈 정도로 일한다 하더라도 월급은 당연히 고용된 처지에 맞는 수준으로 받는다. 월급은 고용자 수순인데 일은 경영자와 똑 같은 마음가짐으로 하라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을 하라는 소리와 무엇이 다른가?

종업원이 경영자 시선을 갖고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애당초 경영자는 왜 있는가? 설마 고용한 종업원에게 할 일을 전부 떠맡기고 경영자는 놀러 다니려는 속셈일까? 그렇다면 어디 일할 마음이 들겠는가.

(98)

일이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닌 자아실현을 위한 수단이다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이나 사회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사회와의 연관을 통해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다.”

초등학교 직업교육에서 자주 듣는 말이야. 직업교육의 핵심인 현장 방문, 직업 체험 때도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이나 사회공헌같은 측면만 강조한다. ‘일에 보람을 느끼며 노력하는 어른들의 모습이나 이 사회에 공헌함으로써 돈 이외의 기쁨을 얻는 어른들의 모습을 잔뜩 보여주면서 어린 학생들에게 일은 돈을 벌기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구나라고 느끼게 한다.

(137)

만약 좋아하는 일을 내 직업으로 삼았더라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하는 것과 업무로 하는 것에는 당연히 차이가 있다. 회사의 방침이나 고객의 사정에 맞춰 자기 의사와 반대되는 방식을 억지로 고수해야만 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오히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탓에 적절하게 맺고 끊지 못해 괴로워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141)

일을 하다보면 너무 괴로워서 전부 내던지고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궁지에 몰릴 때가 있다. “그럴 때야말로 성장할 기회야. 절대 도망쳐서는 안 돼.” 이렇게 설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사고방식은 매우 위험하다. 괴롭다못해 이제 한계다 싶을 때는 무리하지 말고 도망쳐야 한다. 이것은 어린애처럼 응석을 부리는 것과는 다르다.

보통 도망친다는 행위를 꼴불견에 형편없는 짓이라고 여기는데, 도망치는 행위는 사실 일종의 안정장치. 괴로워서 더는 무리라고 느끼는 상황이 오래 이어지면 사람은 쉽게 무너진다. “괴로워도 도망치지 않고 노력한 덕분에 성장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들 뒤에는 괴로운 상황을 버티지 못하고 몸과 마음이 무너진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다. 매년 일 때문에 수많은 직장인의 몸과 마음이 황폐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사람이란 궁지에 몰리면 너무도 연약해지는 존재다.

(166~167)

중요한 것은 세상의 평가기준이 아니라 나의 평가기준이다. 세상의 평가가 아무리 높더라도 나의 평가기준에 비췄을 때 높이 평가할 수 없는 대상이라면 괜히 거기에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 반대로 세상에서 낮은 평가를 받더라도 나의 평가기준에 비췄을 때 높이 평가할 수 있는 대상이라면 내게는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다. 내 인생은 나 이외에 그 누구도 살아줄 수 없다. 내 행복은 나의 주관으로 판단하면 된다. 블랙 기업이나 좀비형 사축은 우리에게 가치관을 억지로 강요하려 할 거시다. 그런 타인의 가치관 따위는 무시하고 나 자신의 가치관에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괴롭다고 생각하면 그건 괴로운 것이다.

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면 그건 무의미한 것이다.

내가 재미없다고 생각하면 그건 재미없는 것이다.

내게 가치관을 강요하는 회사도 상사도 동료도 어차피 타인다. 타인의 삶을 사는 행위는 인생의 최대 낭비다. 자신의 가치관에 솔직해지자. 좀더 나 자신을 위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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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밥상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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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공지영의 에세이는 많이 읽지 않았지만, 아빠가 읽은 그의 에세이 중에 <지리산 행복학교>라는 아주 인상적인 책이 한 권 있단다. 아빠가 워낙 지리산을 좋아해서, 아빠가 예전부터 친구들한테 나중에 지리산에 가서 살겠다고 떠들고 다녔는데, <지리산 행복학교>라는 책이, 그것도 아빠가 좋아하는 공지영 작가가 썼다고 하니 냉큼 읽었던 기억이 있단다. 그런데, 그 책이 벌써 6년이나 지났다니아빠가 읽은 것은 얼마 전 같은데 말이야. <지리산 행복학교>에는나중에가 아니라지금지리산에 내려가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가 그려졌단다. 그리고 6년이 지나고, 공지영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이야기해주었단다.

지리산의 멤버들 중에 버들치 시인으로 부르는 박남준 시인이 있어. 공지영 작가의 친구들 중에 요리 잘하기로 소문난 버들치 시인의 밥상 이야기와 그의 지리산 친구들 이야기가 한 가득 담겨 있었단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버들치 시인의 시들도 담겨 있는데, 그가 지리산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그의 시에서 지리산 향기가 나는 듯 했단다. 작가의 말에서 버들치 시인이 심장수술을 받았고, 이 책을 쓴 목적에 그를 도우려는 목적도 솔직히 이야기했단다. 목적이 어쨌든, 그들의 부러운 삶을 담백정갈한 공지영 작가의 글로 만나 무척 좋았단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아빠도 밥을 좀 가볍게, 자연 친화적인 식단으로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작가의 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찻물에 밥을 말아, 김치 하나 놓고 먹어 봤는데, 김치 본연의 맛을 제대로 맛볼 수 있어 좋았고. 구수한 밥 향기도 느낄 수 있어 좋았단다. 무엇보다 거북함 없는 든든함마저 기분을 좋게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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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요리를 먹은 후(어쩌면 내 나이 탓도 있겠지만) 나의 밥상도 변하기 시작했다. 소박한 것이 점점 좋아진 것도 그와 1년을 함께 한 탓이리라. 오늘 나는 찻물을 우리고 밥을 말아서 들기름에 볶은 김치랑 단출히 아침을 먹는다. 땅에 뿌리박은 모든 것들은 땅에서 길어 올린 것들을 도로 내놓고 땅으로 돌아간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는 사람이다.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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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다르게 욕망할 뿐이다.” 라고

이 말이 아빠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강한 문구로 남았단다. 아빠의 가슴에도 깊이 새기고 싶었어. 그들은 돈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 그들은 그들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더구나. 그들은 누구보다 여행을 많이 하고, 누구보다 계절을 즐긴다고 하는구나. 아빠는 바쁜 회사일에 계절의 변화조차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그들의 생활 패턴을 바꾸면 즐기고 있어. 그들의 삶이 비록 단순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풍요로운지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아빠는 무엇인가 잘못된 삶을 살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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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르게 욕망할 뿐이다.”

그렇다 그들은 시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흘려보내기를, 저 산과 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욕망한다. 그들은 누구보다 여행을 많이 떠나고 누구보다 계절을 깊이 즐긴다. 봄이면 야생 달래와 냉이 그리고 산나물을 먹고 여름이면 천렵한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인다. 가을이면 송이버섯 열 개로 친구들과 풍성한 파티를 벌인다. 나는 지리산에 갈 때마다 삶이 단순할수록 얼마나 풍요로운가를 절감한다. 그리고 똑 같은 양으로 내가 얼마나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인가도 말이다.

가장 경이로운 것은 이들이 소유한 것의 양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이가 의신마을 최도사다. 그는 계절별로 두어 벌의 옷을 소유하고 있다. 아마도 언제든 어깨에 달랑 지는 바랑 하나에 짐을 챙겨 그는 먼 길을 떠날 수 있으리라. 내 주변의 많은 성직자, 수도자분을 보았지만 최도사만큼 적게 소유하고 있는 이는 보지 못했다. 스스로내비도의 교주라고 하는 것이 이해가 가긴 간다.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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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작가는 잘 나가는 작가란다. 아마 돈도 많이 벌 거야. 그런데 버들치 시인을 비롯한 지리산 친구들은 가난한 친구들이란다. 공지영 작가는 생각한다. 나중에 자신이 돈을 많이 벌어 지리산 한편에 땅을 사서 친구들 같이 편히 살게 하겠다고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지리산 식이 아니라고, 할 거라고 덧붙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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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지리산이야, 꽁지야. 친구들이 와서 지붕 다 고치고 지네들이 고기 사 와서 먹고 갈 거야. 넌 글이나 쓰라니까.”

그래, 거기가 지리산이었다. 소유가 전부가 아닌 곳, 욕망이 다다른 곳, 지혜가 다른 곳. 나는 문득 또 생각했다. ‘알았어. 내가 책 팔아 돈 많이 벌어서 지리산 한편에 땅이라도 살게. 그래서 다들 편히 살다가 갈 수 있게 할게라고. 아마도 친구들은 또 지청구를 할지도 모르겠다.

“글쎄, 그게 지리산 식이 아니라니까.”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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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책을 읽다 보면 또 지리산에 가고픈 생각이 들더구나. 아빠가 작년 겨울에 지리산 등반을 한 적이 있어. 그렇게 지리산 등반을 하는 것도 좋지만, 그냥 지리산 자락에 며칠 그들처럼 머물러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지리산이 뒤에서 든든히 지켜주고, 앞으로는 섬진강 강이 내다보이는 그런 곳. 그런 곳에서 지리산에서 나는 나물을 먹으며, 전통 차 한잔 하면서 좋아하는 책을 읽다 보면, 영혼에 찌든 때가 모두 씻겨 나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지난 번 <지리산 행복학교>를 책이 인기를 끌면서, 사람들이 그 책에서 나온 지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어 지리산 주변의 땅값이 올랐다면서, 지리산 친구들이 투덜거렸다고 하는구나. 이러다 그곳에서도 쫓겨나는 것 아니냐고 말이야. 그런데 이번에 또 <시인의 밥상>을 내고 이 책이 인기를 끌면서 또 지리산 땅 값이 올라가는 것 아닌가 모르겠구나.^^

이 책에는 지리산 지인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지리산 주변이 아닌 다른 동네에 이야기도 나왔는데, 전주의 <새벽강>이라는 술집에 한번 가보고 싶더구나. 그리고 작년 여름에 너희들과 함께 놀러 갔던 거제도의 몽돌해변에 관한 이야기도 여러 번 이야기되어 반가웠단다.

 

 3.

본명보다 별명으로 더 많이 등장하는 버들치 시인 박남준. 아빠는 사실 그를 공지영 작가의 책을 통해서만 들어본 시인이란다. 그의 글들을 이 책에도 실려 있는데,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그의 글들은 담백하고 지리산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 그래서 그의 책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이 책의 실려 있는 그의 글들 중에서 아빠가 가장 좋게 보았던 글을 발췌하면서, 오늘 편지는 마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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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물락 쭈물럭

단단하던 감들이 만지면 만져줄수록

쪼글쭈글 시들어간다

축축 늘어진다

사람의 모난 마음도 쓰다듬고 어루만져주면

둥글게 두리동동 동그래질 것이다

감을 깎다가 익거나 으깨져서 물러진 부분들

서걱 베어낸 곶감이 있다

그 베어진 상처 쪼물락 쭈물럭 조심스럽게 만져주었더니

그러니까 상처가 씻기고 치유되어서

동글동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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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르게 욕망할 뿐이다."
그렇다 그들은 시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흘려보내기를, 저 산과 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욕망한다. 그들은 누구보다 여행을 많이 떠나고 누구보다 계절을 깊이 즐긴다. 봄이면 야생 달래와 냉이 그리고 산나물을 먹고 여름이면 천렵한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인다. 가을이면 송이버섯 열 개로 친구들과 풍성한 파티를 벌인다. 나는 지리산에 갈 때마다 삶이 단순할수록 얼마나 풍요로운가를 절감한다. 그리고 똑 같은 양으로 내가 얼마나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인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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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창세기 28 10~15절에 나오는 야곱의 돌베개이야기는 내가 결혼 일주일 만에 남기고 떠난 내 아내에게 일군(日軍)탈출의 경우 그 암호로 약속하였던 말이다. 마침내 나는 그 암호를 사용하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대륙에 발을 옮기며 내가 벨 돌베개를 찾는다고 하였다. “어느 지점에 내가 베어야 할 그 돌베개가 나를 기다리겠는가?”라고 썼다. 그 후 나는 돌베개를 베고 중원 6천 리를 걸으며 잠을 잤고 지새웠고 꿈을 꾸기도 하였다. 나의 중원 땅 2년은 바로 나의 돌베개였다. 아니, 그것이 나의 축복받는 돌베개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77)

, 불로하, 말 없는 강, 안으로 안으로 모든 것을 가라앉혀 비록 그 바닥에서는 물결이 거세어도 수면은 언제나 잔잔히 흐르기만 하는 강, …… 너 마르지 않고 너 나타나지 않는 그 강심을 나는 여기서 배우리라.”

어느새 이국의 태양은 머리 위에 올랐고 강물 위엔 쏟아진 햇볕이 물결을 덮으며 웅장한 음악이 강 밑으로 흐르는 것이었다. 우리의 소망과 새로운 각오를 위해 강은 흘렀다.

우리는 목욕을 마치고 군복을 입었다. 서로서로를 돌아보며 새 결의를 다짐했다. 모두 새사람이 되었다. 진정 우리는 새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조국 광복, 이 깊고 긴 강처럼, 크고 깊은 긴 일을 마침내 나는 찾아낸 것이다. 이제 우리는 떳떳한 조국의 아들이 다시 되었다. 기쁨과 감격은 이 아침을 신비롭게 하였다.

우리는 동북쪽의 조국을 향하여 경건하게 머리를 숙였다. 이글대는 태양을 마주하고 가로로 한 줄을 만들어 서서 이 가슴의 감격을 조국에 고하고자 했다. 김준엽 동지, 윤경빈 동지, 김영록 동지, 홍석훈 동지 그리고 나, 이렇게 차례로 서서 조국을 향한 배례를 한 것이다.

(188)

밤이슬에 젖고 땀에 젖으며 또 새벽서리에 젖는, 청색 무명 군복 한 벌은 충칭을 찾아가는 긴긴 수천 리 길 바람에 마르곤 하였다.

조국이 무엇이기에 이 길을 가는 것이냐.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이 옮겨질 때마다 발걸음을 옮기게 하는 우리의 그 줄기찬 의지에 몇 번이고 우리는 스스로 감격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막을 가는 낙타처럼 무의식으로 내딛는 발걸음이 아닐진대, 발걸음이 무거워질수록 우리의 신념은 더욱더 굳어져야 했다. 낮이면 폴싹폴싹 일어나는 황토의 흙먼지, 밤이면 마치 흔들리는 등불처럼 우리의 발걸음은 줄기찬 하나의 신앙이었다. 그것은 분명히 우리만의 의사가 아닌, 보다 큰 어떤 의사의 발현만 같았다.

 

(223)

, 조국 없는 설움이여.

우리의 조상이 못난 때문에 우리가 이 설원의 심야를 떨며 지새워야 하는가. 아니, 조금도 조상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돌린다는 것은 나의 비겁이다.

나의 조상은 또 조상을 가졌고, 그 조상은 또 못난 조상을 가졌다. 앞으로도 우리는 못난 조상이 되어야 하겠는가?

무수한 밤별이 울어주는 듯, 나의 눈에 들어오는 별빛이 어른거렸다.

또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입술을 깨물고 나는 폭발하려는 나의 가습을 막아야만 했다.

치미는 분노와 막아야 하는 입술의 의지가 격렬한 투쟁을 벌였다.

나는 혁명적인 나로 나 스스로를 지향시켜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파촉령의 설원에서 내 스스로에게 맹세한 이 결의를 위해 나는 투쟁할 것을 다짐했다.

나의 신념, 차디찬 결의는 이때부터 나를 지배했다.

 

(226)

송곳으로 쑤시는 듯한 아픔이 정강이에서 허벅지로 기어올랐다.

육중한 대지가 기울어, 우리가 그 속에 깔린 듯이 이 밤을 머리에 이고, 초침을 마음속으로 세고 있다.

, 이 은세계의 시련은 나에게 신념을 주기 위해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야. 나의 신념이, 나의 생활의 철학이 이제야 생성되기 위해 나는 이 죽음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냐?

나는 밤하늘의 원망을 짓씹으며 어서 날이 새어 그 밝은 태양이 내 가습에 떨어지길 빌었다.

이 밤에 우리가 동사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저 떠오르는 정열의 햇덩이를 가슴에 삼키고 이 설원을 가로 달려가리라.

가리라. 가서 또다시 우리는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이 몸에 불을 붙이리라. 그것이 혁명이면 이 붉은 정열을 혁명에 태우리라.

아름다운 희망이 동녘을 트면서 우리에게 기어왔다.

, 죽지 않고 살았구나!

 

(263)

길지 아니한 단 10여 일 동안, 그동안 우리의 눈에 비친 임정은 결코 우리가 사모하던 그 임정과 다른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잘못 본 것이라면 용서하십시오. 진정으로 여러 선배 선생님께서 이곳 이 땅에서 임정을 사랑하고 있다고 저희에게 생각되지 아니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랑한다는 것과 탐욕을 내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탈출해서 기나긴 행군으로 오면서 그리던 임정은 모두 일치단결되어 있는 완전한 애국투쟁의 근본이라고 여겼습니다. 이곳에 오기만 하면 그 단결된 힘으로 오직 잃은 나라 찾는 데만 목숨 바쳐 일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 그 기대는 지나친 하나의 환상이 아니었나 하는 회의를 품게 되었습니다. 이 회의는 누가 준 것입니까?

조국을 잃고 망명한 입장에서 임정을 세웠기에 임정이 하는 일에는 파쟁이 개재되어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이것은 저희가 잘못 본 것입니까? 아니면 사실입니까?

 

(341)

나는 차례로 이들의 표정을 눈여겨보았으나, 한평생 생애를 다 바쳐 투사가 되신 그 위엄 앞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 수송기의 소음이 나에게 이런 생각을 갖게 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굳어지는 안면근육의 움직임으로 무쇠 같은 의지와 신념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더 무슨 말을 나누리오. 오직 조국의 앞날과 조국의 땅이 한 치씩 한 치씩 다가오는 그 시공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요란한 심장의 고동을 좀 더 강하게 느끼면서 그 어떤 희열을 체감하는 것, 이것이 보람이 아니고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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