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3)

오늘날 우리 정신세계의 모든 혹은 거의 모든 지성적 활동은 책에 기초하고 있으며, 물질의 상부에 있는 문화라고 불리는 그 무엇은 책 없이는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적이고 개인적인 삶에서 영혼을 확장하고 세계를 건설하는 이러한 책의 힘에 대해 우리는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매우 드문 순간에만 자각할 뿐이다. 새롭고 놀라운 것의 존재에 매번 감사함을 느끼는 것과 다르게 책은 이미 우리 일상에서 당연한 것이 된 까닭이다. 마치 우리가 호흡할 때마다 산소를 들이마시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공급으로 혈액이 비밀스러운 화학작용을 해서 원기를 회복한다는 것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책을 읽는 눈으로 끊임없이 영적 재료를 받아들이지만 그것으로 우리 정신이 새 힘을 얻거나 혹은 지치거나 한다는 사실은 의식하지 못한다. 수백 년에 이르는 문자 역사의 자손인 우리에게 읽는 행위는 이제 거의 신체 기능이나 마찬가지로 자동운동이 되었고,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책을 가까이하기 때문에 책은 이미 자연스레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이 되었다.

 

(25-26)

사람들은 책의 시대가 가고 이제는 기술 중심의 시대가 되었다고 탄식한다. 축음기, 영사기, 라디오가 보다 세련되고 편리한 말과 생각의 전달 수단이 되어 책을 위협하기 시작했다고, 그리고 책의 문화사적 임무는 이제 곡 과거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그러나 이것은 얼마나 단순하고 편협한 시각인지! 화학도 책만큼 확산성이 있으며 세계를 떨게 만드는 폭발물을 발견하지는 못했고, 인쇄된 작은 종이 묶음의 항구성을 이기는 그 어떤 강철판이나 철시멘트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전기로 켜지는 불빛이 아직 얇은 책 한 권으로부터 퍼져 나와 깨달음을 주는 빛만큼 우리를 비추어 주지는 못했고, 인위적으로 발생시킨 전류가 하는 어떠한 일도 인쇄된 언어가 우리의 영혼을 어루만져 채우는 것에는 비할 것이 못 된다. 시대를 초월해 불멸하고 불변하는 것인 동시에 가장 보잘것없고 변하기 쉬운 틀에 담긴 고도로 압축된 힘인 책은 기술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기술 또한 책으로부터 배워 스스로를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33)

학교가 그렇게 망쳐 놓았다. 독서의 동기는 늘 자기 세계의 경계를 넘으려는, 낯선 것 안에서 길을 잃으려는, 그러면서도 동시에 책 속의 비유에서 자신을 되찾으려는 충동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낯설고 멀고 예외적인 동화 속에서 스스로를 꼬드겨 도망쳤으며, 어디에도 자신을 비추어 보지 않았다. 더 이상 동화가 삶을 상기시키지 않고, 오히려 삶이 동화를 우리에게 멀어지게 한다. 동화는 우리 감정을 진지하게 움켜쥐지 않고 그러 쓰다듬는다. 그것도 아주 가벼이. 내면의 시선에 집중하면서 마음을 자유롭게 하고, 부담 지우지 않으면서 매혹하는 동화는 연기를 매지 않는 불꽃이다. 일상적이고 지극히 통상적인 삶의 놀라운 힘이 동화에는 들어 있다. 꽉 짜인 시간의 법칙은 동화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아무런 힘을 행사할 수 없고, 끝없는 우연 속에서 일반적인 규칙은 다 사라진다. 이 의미심장한 속의 무의미함이 바로 동화의 마법이다.

 

(35-36)

우리가 문학작품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교하면 동화는 끝도 없이 쉬워 보이지만 실은 비밀로 가득하고, 무질서한 것 같지만 실은 무의식중에 거대한 법칙을 따른다. 연구자나 학계는 동화의 비밀을 푸는 데, 동화와 민속학과의 관계 혹은 사라진 종교나 신화적이고 에로틱한 상징과의 관련성을 해석하는 데 있어 이제 겨우 시작 단계에 서 있다. 우리는 종종 잊어버리지만, 동화는 우리의 시간에서 아주 멀리로부터, 모든 것이 은밀하고 신앙적 놀라움 정도가 사람이 느끼는 가장 활기찬 감정이었던 아득한 옛날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것같이 보이는 이 소소한 이야기들은 수 세기 전부터 수많은 세대를 거쳐 시간 속을 거닐어 왔고, 그 하나하나가 가장 오래된 숲의 가장 오래된 나무보다도 나이가 많다.

 

(43)

우리와 옛 동화 사이에 시끄러운 도시가 끼어들고, 오래된 숲을 소란스레 관통하는 철도가 요정과 동물의 목소리를, 그들의 다정한 대화를 덮어 버렸기 때문이다. 자연 그 자체와 마찬가지인 동화가 때때로 약간은 꾸며 낸 이야기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대도시 한가운데 문을 굳게 닫아건 방 안에서 읽을 때, 동화는 아주 단순한 의미를 담고 있기에 낯설고 특이하게 느껴진다. 숲속으로, 산 위로 던지는 시선이 먼저 자연을, 그리고 동화를 다시 완전히 순수하고 진실한 것으로 돌려놓는다. 자연이 있는 곳에서는 늘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동화 자체의 신비로움이 무모한 공상도 무용한 것만은 아니라는 증거가 되어 주는 까닭이다.

 

(69-70)

수천 년 전부터 가능한 한 완전한 세계상을 그리는 것이 모든 지성인의 열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가 외부의 감각과 긴장 관계를 이루는 한은 외적인 도움 없이도 가능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곳의 풍경과 기념비가 될 만한 사건, 시인과 예술가를 직관으로 파악했다. 과거는 역사적 의의를 갖지 못하면서 선조들의 시대를 넘어 지금 여기에까기 이르지 못한다. 언어는 제한된 수의 어휘를 품고 있을 뿐이고, 학문은 얼기설기 얽혀 거의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는 법칙만을 포괄한다. 고대 그리스 지식인에게도 절대적으로 그랬지만, 오늘날에도 평균적인 인간, 예컨대 인쇄소 보조, 초등학교 교사, 자동차 운전자, 판매직 점원의 평균치 지식은 사실에 비교적 적게 근거할수록 더욱 대담하고 탁월한 연결 고리를 만들어 왔다는 것을 우리는 이보다 더 분명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당시 사유하는 사람에게 보편성의 확보란 당연한 것이었다. 보편성에 의해 정신은 모든 학문을 균질하게 창조적으로 끌어안을 수 있었고, 인간의 뇌는 끊임없이 당시 세계의 모든 본질을 시차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77-78)

동방의 발견은 유럽 사회의 지평을 급격하게 넓힌 세 가지 사건 중 가장 최근 사건이다. 유럽 정신의 첫 번째 위대한 발견은 스스로 훌륭하게 과거를 발견한 르네상스 시대에 이루어졌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두 번째 발견은 미래를 향했다. 그간 끝이 없을 것으로 믿었던 대양 너머로 아메리카 대륙이 돌연 떠올랐다. 아주 멀리 있던 지평선이 가까이 당겨지고, 미지의 나라와 낯선 식생이 새로이 눈뜬 환상에 불을 붙여 유럽 정신을 새로운 전제와 무한한 가능성으로 채웠다. 그다음 세 번째 발견은 왜 그리 늦어졌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동양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에게 근동 지방부터 페르시아, 일본, 중국까지 동쪽에 위치한 모든 나라는 수백 년간 비밀에 싸인 장소로, 진위가 의심스럽고 전설 같은 이야기만 전해져 올 뿐이었다. 바로 이웃에 위치한 러시아조차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낯선 안개로 자욱했다. 오늘날(1917)에도 우리는 폭력적인 전쟁으로 인해 충분히 객관적이지 못한 시각으로 속도만 붙어버린 지적 인식의 시작점 한가운데 서 있을 뿐이다.

 

(94-95)

동방의 이름 없는 이가 쓴 이 비극 안에 펼쳐지는 감정의 스펙트럼은 엄청나게 넓다. <천일야화>에 숨겨진 드라마와 비슷한 수준의 훌륭함은 역시 아돌프 겔버가 대담하게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셰익스피어의 몇몇 작품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이 드라마는 거의 음악적으로 가장 깊은 절망으로부터 그 어떤 구속도 없는 완전함 유쾌함으로 옮겨 간다. <템페스트>에서와 같이 사람 마음속의 모든 요소의 영혼의 파도가 그 안에서 샅샅이 파헤져지고, 헤집어졌던 것은 귀향길의 은빛 수면처럼 다시 잔잔히 잦아든다. 동화의 모든 가벼움과 전설의 다채로움이 그 안에서 반짝이고, 이 요동치는 극 안으로 피의 드라마가 단단히 엮여 든다. 권력을 다투는 성별 간의 극심한 전쟁, 정절을 맹세케하려는 남자의 투쟁과 사랑을 향한 여자의 투쟁. 아무도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작가, 우리를 익명의 위대함에 눈뜨게 한 이 흥미롭고 의미심장한 작품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이가 빚은 잊을 수 없는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이다.

 

(103-104)

장 자크 루소에게 세계의 변혁은 언제나 옳다. 사회질서가 뒤죽박죽이 될 때마다 그 사회와 관련하여 깊이 묻혀 있던 문제들이 표면으로 올라온다. 한 시대가 국가와 인간의 가장 기저에 있는 토대를 건드리고, 전통을 무너뜨리고 규칙을 흔들 때마다 나는 전령이 되고 충고자가 된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그가 항상 시간의 흐름이 무관한 곳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인권의 영원한 변호인으로, 어떤 사회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고 완전히 부인할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의 증인으로 그는 서 있다. 루소는 항상 맨 처음부터, 그리고 외부에서부터 시작한다. 그의 힘은 마치 지렛대처럼 대상에 바깥쪽에서 작용하며, 어느 한 시기에 갇혀 있지 않고 영속하는 인류 안에 있다. 그는 자기 세대와 그 자신이 속한 국가질서에만 다양한 혁명가가 아니며, 그보다는 공동체에 맞서는 개인 인격의 반응을 지속적으로 지지하고 자유를 쟁취하려 투쟁하는 인류를 영원히 수호하는 수호자 같은 인물이었다. 혁명은 그를 인권의 아버지로 내세웠고, 국민의회에서의 연설은 그의 이름을 불멸하는 것으로 새겼다. 그러나 반대 세력은 무정부주의를 탄생시킨 사상가인 그의 시신을 판테온에서 끄집어내 갈기갈기 찢어 남은 것조차 바람에 흩어버렸다. 하지만 세계의 변혁의 바람이 불 때마다 그의 말과 정신은 부활한다.

 

(109-110)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이 진지하고 폭넓은 작품이 당대에 미쳤던 폭발적인 영향력을 짐작해 보기란 어려운, 아니 차라리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궁정 신하의 집에서 쓰여 비밀리에 인쇄된 이 책이 1762년에 발행되자마자 프랑스 정부는 작가를 잡아들이라 명했고, 이에 따라 스위스의 망명 기회도 사라졌다. 책은 공식적으로 그랑 팔레의 계단에서 불태워졌고 제네바에서 평의회도 같은 판결을 내렸다. 제네바가. 하나의 공화국이 그 책으로 인해 붕괴했고, 북미의 다른 한 공화국은 그 책으로 인해 소생했다. 어느 왕은 항변하기 위해서 뒤에 <안티-에미>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고 쾨니히스베르크의 이마누엘 칸트는 이 책을 읽느라 40년 만에 처음으로 매일 하던 산책을 잊었다. 모티에에서는 농부들이 루소의 창에 돌을 던졌으며, 프랑스의 공작부인들은 감동의 눈물을 쏟고 다시 아이들에게 직접 젖을 먹이기 시작했다. 온 문학계가 혼란을 마주하고 삶의 경향이 변하고 여왕들은 자연으로 돌아가고 양치기 소녀들이 트리아농궁전에서 뛰놀고, 그러는 동안 이 책은 미래에 자기를 고발한 사람들과 국민의회가 장광설을 받아쓰게 했다. 그의 다른 모든 책과 마찬가지로 <에밀>은 그 글로 쓰인 혁명으로, 사유와 도덕과 신앙의 전복을 담고 있었다

 

(110-111)

그러나 이 책은 사실 교육학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었을 뿐이다. 이 책은 어린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인간을 다룬다. 인간의 시작 단계만 이야기하지 않고, 모든 문제의 시작(그러니깐 그 뿌리)을 이야기한다. 이는 곧 각 개인이 세계와 관계를 정립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말이다. 아이가 부모 혹은 교육자와 관계를 정립하는 것은 한 국가에서 성장한 시민이 국가와 관계를 맺는 것, 그 국가의 제정법이나 관습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의 비유다 이 작품의 정수인 <사부아 사제>에서는 그것이 인간과 그가 믿는 신 사이의 관계로 나타난다. 그의 신과의 관계로 말이다. 이 작품에서 인간은 루소가 최초로 부여한 자유로울 권리를 갖는다. 자신의 신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권리를.

 

(129-130)

그럼 혹시 선생님은 - 아 말을 끊어서 죄송합니다. - 쿠르츠 말러나 헤르더 주더만, 오토 에른스트의 경우는 어떻게 보십니까?

그 경우도 어느 면에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그 작가들도 대중을 위해 쓰는 건 마찬가지니까. 단지 대중에게 정신적 차원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는 고상한 목표에서 쓰기보다, 소통을 목적으로 삶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대중이 보기 원하는 대로만 표현하는 면이 있지. 이 작가들도 - 물론 그것도 그들의 의지가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 실력이 없어서라고 생각하지만 - 자신의 낙관주의에 기반해 쓴다기보다는 군중의 것에 기반해 쓰는 것일 거야. 그들은 대중과 함께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네. 그리고 이런 공통점이 그들을 부정해봐야 소용없도록 만들어 있지.

 

(133)

자네의 이견은 매우 옳다네. 타고르의 저서에서 거슬리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 수월해 보이는 면이거든. 인류가 창조되는 시점부터 씨름해 온 엄청나게 난해한 개념들을 꼭 요술을 부리듯이, 친절하고 발랄하게, 그 어떤 괴로움이나 격정적인 사고 과정 없이 처리해 버리니까. 죽음과 고뇌, 악한 천성까지도 그는 예의 그 부드러운 손짓으로 쓰다듬어 옆으로 밀어 놓지. 또 하나 자네가 제대로 알고 감지했음을 인정하고 나도 동의하는 건, 이 책에서는 세계가 벌이는 굉장한 연극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걸세. 늘 혼란과 불확실함으로 가득한 인간이 열에 들뜨고 절망한 가운데서도 어떻게 세계의 질서와 조화를 위해 투쟁하는지 말이네. 타고르에게 이 조화라는 것은 원래부터 거기 있었던 것인데 그것이 일종의 피 속에 흐르는 온화함으로 그가 애초에 한 인도인 특유의 부드러운 방식으로 표현된다네. 조화로운 감정을 학생들과 인류에게 계속해서 전달하지.

 

(160)

하지만 부를 향한 이런 의지가 과연 발자크의 인생철학이었을까? 발자크는 모든 철학을 자신의 내면에서 소화시켜 소설에 녹여 냈기 때문에 실제 삶에서는 어떤 철학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가진 재능의 가장 중심 뿌리인 소위 그 어마어마한 투사 능력으로, 그는 자신의 창조물이 스스로 말하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순간에도 그들의 생각을 논박할 수 없다고 여겼다.

 

(173)

여덟 살 아이의 서툰 손으로 조부모의 생일카드에 그리듯 써넣은 글이 괴테 인생의 첫 시였다. 마지막 시는 여든두 살의 노쇠한 손으로 죽기 겨우 몇 백 시간 전쯤에 써 내려간 것이었다. 그렇게 길고 긴 인생 동안 시작의 변치 않은 후광은 이 지칠 줄 모르는 인물을 늘 비추었다. 이 유일무이한 시인이 언어로 기적 같은 자기 재능을 조명하고 뒷받침하지 않은 해가 없었을 것이고 어느 해에는 그러지 않은 날이 어느 달에는 그러지 않은 날이 없었을 때.

 

(183-184)

괴테는 아직도 고정된 개념으로 볼 수 없으며, 문학사에 박제된 인물도 아니다. 각 세대에게 그는 새로운 의미가 되고, 작품집 또한 새로 가려 뽑을 때마다 새로운 형태로 해야 된다. 시에만 한정해 괴테의 <서동시집>이 어떤 가치 평가를 받아왔는지, 이 오래된 시들이 마술같이 스스로를 드러낼 때 어떤 초월적인 힘으로 우리의 감정에 다가오는지 살펴보자. 당대와 19세기에는 뭔가 기이하고 시시덕거리는 가면 놀음으로 여겨졌던 바로 그 작품이 지금은 어떠한가! 반면 실러 시대에 쓰인 괴테의 발라드와 민중에게 널리 사랑받았던 몇몇 작품은 그 극도의 단순함 때문에 이제 우리의 시각으로 평가할 때 얼마나 별로인 것이 되었나! 마치 신과 같았던 우리 학창 시절의 괴테,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썼으며 휠덜린과 니체 이후 독일인이 더 이상 들어서지 못했던 영역인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로 우리를 안내해 준 고전주의 예술가 괴테, 손에 잡힐 듯 가까웠던 이 괴테는 비밀스러운 곳으로 가득한 시를 쓰는 신비한 조각과 같은 이미지와 그의 우주 전체가 지닌 세계관과 충돌하며 점점 더 뒤편으로 물러났다. 20세기에 그의 시를 새로 골라 묶는 작업은 이제까지와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야만 하고, 이 과정에서 개개인의 가치 평가나 19세기에 출판된 명작선집의 선택 기준은 논외로 해야 한다.

 

(190)

괴테의 시는 그런 운명의 형태를 그저 자기 인생 뒤로 흐르는 배경음악 정도로 여긴 것이 아니라 교향곡처럼 웅장하게 그의 온 존재를 감싸 안는 것으로 여겼으며, 그것은 이 지상에서 다시는 없을 인간의 가슴속에 인간 음악이 되어 흐르고, 불멸하는 예술이 부리는 마법이 되어 우리에게 언제까지나 현재적인 것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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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어른
이옥선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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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얼마 전부터 인터넷 서점에서 계속 눈에 밟히던 책이란다. 어떤 할머니의 에세이라고 하는데, 그 글에 공감할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한동안 외면했단다. 그런데 계속 눈에 밟혀서 책소개를 읽어봤는데, 책 내용이 유쾌하면서고 인생 황혼에서나 나올 있는 깊이 있는 감동 같은 것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최근에 아빠가 몸 컨디션이 좀 좋질 않아서 재미있고 웃을 수 있는 그런 책을 가볍게 읽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단다.

지은이 이옥선 님은 사회 초년생 시절 학교 선생님을 3년 하시다가 그 이후에는 쭉 전업주부로만 사셨다고 하더구나. 그런 분이 일흔여섯 살에 에세이를 펴내시다니.. 쫌 뜬금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옥선 님이 따님이 김하나라고 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출판사와 접근성이 좋지 않았나 싶구나. 그리고 몇 년 전에 이옥선 님이 오래 전에 쓴 육아일기를 책으로 펴내셨다고 했어. 이옥선 님의 따님이 작가셔서 책을 출판하는데 좀 쉬울 수 있겠지만, 그것이 오히려 독자에게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옥선 님의 글들이 책소개나 먼저 읽은 사람들의 평처럼 맛갈스럽고 솔직하고 재미있고 웃음을 자아내는 그런 글들이었단다. 최근 좀 우울했던 아빠의 영혼을 힐링해주는데 충분한 내용들이었어. 이옥선 님의 나이가 일흔여섯이라고 하셨는데, 문체는 엄청 젊고 발랄하다는 기분도 들었단다. 책도 많이 읽으시는지 읽으신 책 이야기도 많이 하셨단다. 그런데 그 책들이 젊은이들이 즐겨 읽는 책들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단다. 예를 들어 아빠도 얼마 전에 읽고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준 앤드루 포터의 <사라진 것들>이란 책도 소개해 주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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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3)

요즘 앤드루 포터의 <사라진 것들>이 주목받고 있는 모양인데, 도서관에 가면 틀림없이 아직 갖추어놓지 않았거나 있어도 누가 냉큼 빌려갔을 거란 말이지. 그러니 같은 작가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빌려올 작정으로 쪽지에다 써놓는다. 책을 사기에는 이미 내가 버린 책이 너무 많아서 이제 가능하면 책을 사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 또한 알 수 없다. 나는 아끼지 않기로 작정을 한 사람이다. 젊었을 때는 할머니가 되면 하루종일 책만 읽고 있어도 좋겠다 싶어 이 시기가 오기를 은근히 기다렸다. 그래도 사람 사는 게 언제나 기대와는 다른 양상으로 가기 마련인지라 나의 독서 생활 역시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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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은 어르신들만 찾는 책이 따로 있다는 아빠의 편견,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새삼 깨닫게 되었단다. 그리고 아빠도 나중에 나이 먹어도 이옥선 님처럼 책읽기에 관해서는 젊은 감각을 유지해야겠다고 다짐했단다.

 

1.

오랫동안 함께 했던 남편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실려 있는데, 남편을 보낸 아쉬움과 슬픔보다 홀로 된 것에 대한 장점을 더 많이 이야기해주셨어. 그렇다고 남편 생전에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 글 속에 담겨 있었단다. 남편과 처음 사별했을 때는 무척 슬퍼했지만 애도하는 기간이 지난 다음에는 또 자신의 삶을 살아가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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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116)

남편의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모든 결혼 생활에 해피엔딩은 없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우리 삶의 끝이 결국 죽음이라면 인생 자체가 해피엔딩일 수 없을 테니까.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언젠가는 끝이 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결혼 생활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을까? 많은 동화책이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기 때문에, 당연히 결혼하면 행복하게 사는 결말만 있는 줄 알았겠지. 하지만 부부가 마지막까지 같이 살다가 같이 죽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더 큰 불행을 원하는 것과 같다.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같이 죽거나 아니면 둘이 동반자살을 시도하지 않는 한 자연사로 같이 죽는 일은 아예 없다고 봐야 한다. 부부 중 어느 한쪽이 죽고 며칠 사이에 다른 한쪽이 죽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이때는 둘 다 아주 연로하여 실제로 더 딱한 경우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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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래도 연륜과 오랜 삶의 경험에서 나오는 말씀도 있는데 진중한 것보다 정말 듣고 싶었던 말씀들도 있었단다. 예를 들어 너무 애쓰지 말고 대충 살라는 이야기, 하지만 건강은 꼭 신경 쓰라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지금 아빠에게 절실히 필요한 이야기인 듯 싶었어. 실천은 쉽지 않지만, 다시 한번 명심하자. 대충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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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74)

너희도 너무 애쓰지 말고 대충(이것이 중요하다) 살고, 쾌락을 좇는다고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뭔가 불편한 것이 있으면 이것부터 해결하는 방법으로 살면 소소하게 행복할 것이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건강을 잃으면 행복하기 어렵다) 한 종목의 운동을 늙어서까지 꾸준히 할 것이며 너무 복잡한 건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살도록 해라. 다행히도 재산이 많이 않아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아들딸 며느리 손자 손녀 너희들이 있어서 행복했고, 너희는 내가 지금도 씩씩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원천이다. 나의 장례는 그 시기의 일반적인 방법으로 할 것이며 화장해서 유골은 너희 아빠를 장자 지낸 것처럼 하고, 제사는 지내지 말고 그날 시간이 나면 너희끼리 좋은 장소에 모여서 맛있는 밥을 먹도록 해라. 또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너희 아빠는 꽃 피는 봄에 돌아가셨으니 나는 단풍 드는 가을에 떠나면 좋겠네. 그러면 너희는 봄가을 좋은 계절에 만날 수 있을 테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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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해지지 말라는 충고와 함께 유능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라는 말도 와 닿았어. 유명해지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되니 유명해지지 말라고 하고,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평균 정도의 삶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어. 우리나라에서 평균 정도의 삶을 살려면 평균 정도의 능력이 아니라 유능해야 하는 것이 현실인가 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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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나는 이제 할머니이지 엄마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비겁하지 않다. 나는 자유를 얻은 것이다. 내 자식들은 성인이 되었고 엄마의 역할은 미미하다. 나는 중년의 내 자식이 자신의 업계에서 유능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유능한 사람과 유명인은 다르다. 유능한 사람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차질 없이 잘해낼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40 중반을 넘고 50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유능하지 않으면 평균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며 살아가기도 힘든 것이 세상이기 때문이다. 인생살이에서 보통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면서 선량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제일 좋지 않나 싶다. 젊은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금수저로 태어나면 거기에 상응하는 뭔가가 되어 보여야 하기 때문에 인생이 피곤해진다. 그렇게 좋은 환경과 뒷받침에도 별 볼 일 없는 존재에 머무른다면 그 또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는가. 누구나 자기가 짊어져야 할 생의 무게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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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살아 온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지은이를 보면서, 많은 욕심은 부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아빠도 뭐 지금까지는 가끔 스트레스 받는 회사 업무가 있고 가끔 몸이 아픈 경우도 있지만 평균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단다. 앞으로도 쭉 그런 생각이 드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구나. 이옥선 님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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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214)

생각해보면 나는 참 운좋게도 그냥저냥 평탄하게 살아온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이 겪었을 여러 인생살이와 이런저런 사건사고와 경제적 결핍과 허약 체질과 남편과의 불협화음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익명으로 살 수 있었던 자유로움과 처치 곤란한 재물 때문에 머리를 썩여야 할 일이 없음에도 감사한다. 나는 이제 어느 정도 자유롭다. 관습과 도덕으로부터, 또 종교의 신념으로부터, 이런저런 인간관계로부터도 거의 자유롭다. 다만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는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으며 지금까지 먼 길을 온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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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 다 평온하고 별일 없이 살 수는 없다. 이 정도의 소소한 불편은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일이지만, 실제 사는 집에 수해나 화재가 나거나 아니면 교통사고가 크게 나거나 갑자기 심각한 질병의 선고를 듣거나 하면 얼마나 막막할까. 그러니까 심란하거나 난감하거나 왕짜증이 나는 정도는 어쨌든 어찌저찌 해결할 수 있는 좀 불편한 일들에 불과한 것이다. 전 지구적 대책 없는 큰일들을 생각하면 그나마 이 정도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다 싶다. 제발 기후위기나 자연재해, 대형 산불 이런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이어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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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책에 나온 좋은 글들을 소개해 주는 것으로 독서편지를 대신했다. 너희들은 인생에 있어 이제 시작하는 봄이다 보니 이옥선 할머니의 글들에 공감을 갖지 못할 것 같아 이 책을 너희들에게 추천하지는 못하겠구나.^^ 오늘은 이상 끝.

 

PS,

책의 첫 문장: 성춘향과 이몽룡이 눈이 맞자마자 그날 바로 남녀 간에 만나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해버릴 수 있었던 것은 둘 다 열여섯 살이었기 때문이다.

책의 끝 문장: 그러니 인간끼리의 관계를 너무 심각해하지 말고 가뿐하게 생각하고 유연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게 좋지 않겠나 싶다.


하기 좋은 말로 노년에 시간이 많으니 봉사활동이라도 하라고들 말한다. 나는 아무리 봐도 노년이라 시간이 많이 남아돌지는 않는 것 같다. 봉사라는 게 시간이 남아서 하는 게 아니라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봉사하고 싶지 않다. 그동안 남편에게 봉사활동을 너무 많이 한 관계로 그만하면 내가 해야 할 봉사활동은 다했다고 내 마음대로 생각한다. - P30

이 내용은 폴 존슨이 쓴 <지식인의 두 얼굴>(윤철희 옮기, 을유문화사)에 나온다. 이 책에 의하면 <두 노인>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증 그 외의 많은 작품에서 하느님 찜쪄먹을 것처럼 기독교적 신앙심을 강조했던 톨스토이가 사창굴에 자주 드나들고 하녀들을 수시로 추행하고도 언제나 남녀 교체를 사회악이라고 생각했으며 여자들을 남자들과는 동등한 인격체라고 생각하지 않고 멸시했다는 것이다. 아, 이런 재수탱이 똘쓰또이. 내가 그 두꺼운 <전쟁과 평화>를 모조리 다 읽고, 수많은 인간의 심리를 이렇게 정확하게 묘사할 줄 아는 사람은 인간성 반듯하고 인격이 아주 높을 거라고 생각하며 존경의 마음을 보냈는데, 자기 어린 아내하고도 매일 불화하고 죽을 때도 기어이 집을 나와서 기차역에서 죽었던 것이다. 아이를 열셋이나 낳아놓고 자기 잘난 맛에 농지를 농노에게 배분해야 한다고 난리치니 어느 마누라가 좋아할까? 세상에 믿을 놈이 하나 없네. - P41

비단 부부간의 신의만이 의리가 아니다. 부모 자신 간의 관계라 할지라도 인간관계에서는 의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끔씩 정말 철없는 부모들이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방치하고 때로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건도 발생하지만, 혼자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없을 정도의 부모를 돌아보지 않는 자식들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보살핌을 받고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왔다면 내 부모의 안부를 묻고, 같은 공간에서 생활까지는 안 하더라도 근황을 파악하고, 필요시에는 마땅한 조치를 취하는 게 사람됨의 근본일 터이다. 요새는 부모가 장수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식도 나이들어가다보면 부모 자식 간의 감정적 정은 줄어들지라도 사람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의리가 있는 것이다. (사실 노노(老老) 케어 현상은 사회적 문제이다.) 이렇게 부부간이나 부모 자식 간에도 의리가 중요하다면 모든 인간관계의 핵심은 결국 의리에 있다 하겠다. - P90

길을 지나다니면서 보면 할아버지들은 뚱뚱한 사람들이 드문 편이다. 그런데 목욕탕에 온 할머니들은 배가 너무 많이 나와서 보기에 좀 답답하다. 다리와 팔은 보통인데, 복부가 숨쉬기도 어려워 보이는 분들이 많다. 이것은 아무래도 호르몬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살이 찌면 무릎이나 허리가 아픈 경우가 많고 관절염 약을 먹으면 살이 더 빨리 찐다. 게다가 나이가 많아지면서 체질이 바뀌어 알레르기라도 발생하면 피부과 약을 먹게 되고, 이 피부과 약이 또 비만을 불러온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나이가 70대 중반을 넘으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살이 찌고 싶어도 잘 안 찌고, 물론 할머니도 살이 찌고 싶은데도 안 찌는 경우가 있어서 너무 왜소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자들은 신경을 안 쓰면 살이 찐다. 조물주가 생애주기를 잘못 짰다고 불평해봐야 소용없고 적게 먹든지 더 많이 움직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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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자연은 반복돼, 모우. 소멸하는 듯 보이지만 자신의 탈각(脫殼)을 집어삼키며 재생하고, 회복하고, 되살아나는 거야. 자연의 시간은 우리가 달라. 유한한 시간에 갇힌 건 인간뿐이야. 인간은 자연에서 떨어져나왔어. 아주 한때 하나였겠지만, 인간의 언어가, 언어를 가진 인간이,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영원히 이 생태계의 이방인이 된 거야.

 

(49)

초우, 현혹되지 마. 실패한 것에는 이유가 있어. 인류의 진화와 발전을 자세히 들여다봐. 언어가 장착되고, 그리하여 많은 것은 정립되고, 끊임없이 전달되면서 세상은 전쟁과 빈곤, 파괴와 몰살, 멸종의 길을 걸었어. 시야는 좁아지고 감각은 둔해졌지. 언어에 지배당한 인류의 끝은 자멸이었다. 우리의 뇌는 언어를 탈락시키며 발전했어. 언어가 통제했던, 최초의 인류가 가졌던 감각을 다시 깨웠다. 우리의 소리는 언어에 정복되지 않기 위한 저항이다. 언어가 생겨나고 규칙이 정해지는 것을 거부하는 몸짓이지. 지켜라.

 

(64-65)

언어를 알게 되면서 엄마도 나와 같은 같은 시간을 살게 되겠지. 느려지고, 멀어지고, 작아지고, 힘겨워지겠지. 이건 저주야. 맞아, 저주가 맞아. 기껏 자연이 인간을 다시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저주의 주문이야.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말을 하더라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영원히 말의 미로 속을 떠돌다 고립되고 외로워지는 인간이 되겠지. 하지만 나는 엄마가 그러길 바라.”

모우가 초우의 뺨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한 의음으로 초우에게 속삭인다.

엄마, 영원의 없어. 가려진 세상을 제대로 봐. 인간은 진화하지 않았어. 그의 말이 맞아. 나는 인간의 저주야. 그러니 우리의 만남부터 언어로 새겨보자. 모두가 볼 수 있게. 그 시작은 엄마의 말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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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데이션의 끝 파운데이션 시리즈 Foundation Series 4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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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파운데이션 시리즈 4권인 <파운데이션의 끝>이란다. 지난번 파운데이션 시리즈 3 <2파운데이션>의 뒷이야기지만, 출간연도를 보니 30년 차이가 나는구나. <2파운데이션> 1953년에 출간을 했고, <파운데이션의 끝> 1982년에 출간을 했어. 그러니까 원래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3권으로 끝난 이야기였던 것 같아. 그랬다가 오랫동안 인기를 끌자 다음 이야기를 써달라는 요청이 쇄도했겠지. 30년이 지나서야 4권의 이야기가 나오다니기다리다가 돌아가신 분들도 있겠구나. 갑자기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조지 R.R 마틴의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가 생각이 나는구나. 5부에서 멈춘 지 10 여 년.. 과연 약속했던 6부와 7부는 나올 수 있는 것인지

다시 파운데이션 이야기를 할게. 파운데이션 시리즈 4권부터는 책 두께도 많이 두꺼워졌단다.  4권뿐만 아니라 그 뒤로 이어지는 5, 6, 7권 모두 두께가 만만치 않아. 두꺼워진 만큼 할 이야기도 많을 테니, 얼른 이야기를 시작할게. 4 <파운데이션의 끝>은 해리 셀던이 처음 셀던 프로젝트를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498년이 지났단다. 3 <2파운데이션>의 마지막 부분에서 제2파운데이션이 트랜터에 있다는 것을 독자에게만 알려주면서 끝났잖니. 그때로부터도 약 120년이 흘렀단다. , 그럼 <파운데이션의 끝> 이야기를 시작할게.

 

1.

터미너스의 시장은 할리 브라노라는 여자가 맡고 있었어. 그리고 의원 중에 골란 트레비스란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파운데이션의 끝>의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어. 트레비스는 셀던 프로젝트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가 브라노 시장에 의해 반역죄로 고소당했어. 트레비스도 억울할 만한데 사실 브라노 시장이 반역죄로 고소한 것은 트레비스에게 따로 임무를 주기 위함이었어. 반역죄 혐의로 추방당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몰래 제2파운데이션 위치를 찾는 임무를 맡아달라고 했단다. 그러면서 역사학자 페롤랫과 함께 하라고 했어. 그런데 페롤랫에게는 지구의 위치를 찾아달라고 했단다. 트레비스도 자신의 임무가 지구의 위치를 찾는 것이라는 알게 되었고, 이번 탐험은 어쩌면 다시는 터미너스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그런 여행이었단다.

그들은 먼저 트랜터로 가기로 했단다. 그곳 도서관에서 지구에 대한 자료를 검색하기 위해서 말이야. 그들에게 지구는 인류가 시작한 전설 속의 행성으로만 알고 있지, 위치뿐만 아니라 어떤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거든. 트레비스와 페롤랫은 트랜터로 가기로 했으나, 우주선 조종대를 잡고 있는 트레버스가 트랜터가 가지 않고 곧바로 지구를 찾으러 미지의 우주로 가겠다고 했단다. 페롤랫은 트렌터에 가서 지구에 대한 정보를 얻자고 했으나 트레비스는 자신의 뜻대로 우주로 향했단다.

한편 제2파운데이션은 19대 제1발언자 프림 팔버 이후 25대 제1발언자 퀸도르 섄디스가 이끌고 있었단다. 2파운데이션은 리더격인 제1발언자 이외에 여러 발언자들이 있었어. 젊은 발언자 중에 한 명인 젠디발은 섄디스와 의견충돌이 잦았단다. 하지만 섄디스는 젠디발의 능력을 인정했어. 섄디스는 셀던 프로젝트가 해리 셀던의 예언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젠디발은 오히려 그렇게 딱 들어맞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언제든지 예외적인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대비해야 한다고 했어. 그가 조사한 바로는 터미너스의 트레비스 의원이 추방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것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했어.

트랜터가 옛 은하제국의 수도였던 기억나지? 그 후예들이 지금은 주로 농업을 지내고 있는데 그들을 헤임인()이라고 했어. 어느날 젠디발이 헤임인들에게 잡혀 한동안 감금되는 사건이 일어났어. 그런데 헤임인 중에 슈라 노비라는 여성 농부가 젠디발을 구출해주었단다. 슈라 노비는 이후 젠디발을 찾아와 역사공부를 하고 싶다고 제자로 받아달라고 했단다. 젠디발을 슈라 노비가 헤임인이라 꺼렸지만 자신을 구출해준 은인이고, 열의가 있어 보여 받아주었단다. 슈라 노비는 감사한 마음으로 젠디발을 말이라면 다 따랐어. 1발언자 섄디스가 나이가 많아서 후계자를 뽑아야 하는데 가장 유력한 자가 젠디발이었어. 그런데 그의 라이벌 델라미가 젠디발을 탄핵하려고 했어. 청문회가 열리고 젠디발은 자신의 무죄 입증을 해야 했단다. 그러면서 젠디발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여러 발언자들에게 이야기를 했어.

2파운데이션 내에 비밀조직이 있어 지구에 대한 자료를 모두 없앴고, 자신과 의회를 조정하려는 한다고 했어. 그리고 트레비스가 제1파운데이션에서 추방당한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사실은 추방이 아니라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다고 했어. 그러자 델라미가 그렇다면 젠디발이 트레비스를 추격하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을 했어. 젠디발이 없는 사이에 델라미 자신이 제1발언자가 되려는 계략이란 것을 누구나 알았어. 섈디스도 델라미의 계략을 알고 그 자리에서 젠디발이 트레비스를 추격하는 것은 좋다고 하면서 제1발언자로 공식 지명을 했단다. 그렇게 젠디발은 26대 제1발언자에 지명되었어. 그리고는 트레비스를 추격하러 우주로 길을 떠났단다. 그때 슈라 노비도 트레비스와 함께 떠났단다.

….

트레비스와 페롤랫은 20여차례 도약을 통해서 세이셸 행성이란 곳에 도착했단다. 그런데 다른 우주선을 타고 트레비스의 콤포도 그곳에 도착을 했어.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트레비스는 당황하면서 콤포가 자신을 정확하게 쫓아온 것을 보고 콤포가 아마 제2파운데이션의 정보원일거라고 추측했어. 콤포는 트레비스를 도와주려고 왔다고 하면서 지구는 방사능으로 못사는 행성이 되었다고 하면서도 콤포렐론 행성에 가면 지구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했어. 트레비스가 예상했듯이 콤포는 제2파운데이션의 정보원이 맞았어. 2파운데이션에서 정보원이란 발언자보다는 낮은 지위의 신분이었단다.

2파운데이션의 일원들의 특징 중에 하나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잖니, 기억나지? 콤포도 그런 능력이 있었어. 콤포는 젠디발과 연결하여 서로 정보를 주고 받고 있었단다. 그래서 젠디발도 트레비스가 세이셸 행성에 있는 것을 알고 세이셀 행성으로 방향을 틀었단다. 트레비스와 페롤랫은 세이셸 행성에서 퀸테세츠 교수와 만나서 지구에 대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단다. 세이셸 행성은 지구의 인류가 가장 먼저 정착한 행성 중에 한 곳이라서 트레비스와 페롤랫이 찾아온 거야. 퀸테세츠 교수는 지구가 방사능에 뒤덮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어. 그리고 그곳에 아직 인간들이 있을 거라고 했어. 하지만 지구가 정확히 어떤 곳이 모른다고 했단다. 트레비스와 페롤랫은 세이셸 행성에서 이틀 동안 머물다가 다시 우주로 향했단다. 가이아라고 부르는 행성이 있는데 그곳이 지구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이아 행성으로 출발했단다. 트레비스는 누군가 그들을 가이아로 가라고 유도하는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마땅히 갈 다른 곳도 없었어.

….

 

2.

브라노 시장은 트레비스가 세이셸 행성에 갔다는 보고를 받고 그가 왜 세이셸 행성에 갔는지 골똘히 생각했단다. 그리고는 그들이 어쩌면 가이아 행성으로 갈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가이아 행성이 어쩌면 제2파운데이션일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도 했어. 아직 터미너스에서는 제2파운데이션이 트랜터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 브라노 시장은 함대를 이끌고 세이셸 행성으로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단다. 그의 생각은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져 보안국장 코렐과 함께 함대를 이끌고 세이셸 행성으로길을 떠났단다. 브라노 시장과 코델도 세이셸 행성 인근에 도착을 했고, 코델이 세이셸 행성에 먼저 가서 세이셸의 파운데이션 대사인 튜빙을 만났단다. 튜빙은 가이아에 가게 되면 외교적으로 세이셸과 갈등을 빚게 될 수 있으니 다시 터미너스로 돌아가라고 조언을 했지만 브라노 시장과 코델은 원래 계획대로 가이아로 출발했단다.

….

트레비스와 페롤랫은 가이아가 있는 항성계에 도착을 해서 가이아 행성에 착륙하기 전에 탐사를 했어. 그런데 가이아 행성 근처로 오자 그들이 우주선의 제어권을 잃어버리고 우주선이 저절로 어디론가 끌려갔단다. 가이아 행성 외곽에 우주정거장으로 끌려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가이아 사람인 블리스를 만나게 되었단다. 페롤랫과 트레비스는 블리스의 안내에 따라 가이아 행성에 착륙했단다. 그리고 가이아 행성의 지도자인 돔을 만났어. 돔은 가이아에 대해 설명해 주었어. 가이아라는 것은 하나의 행성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행성에 살고 있는 생물체와 무생물까지 포함한 집단 의식이라고 했어. 한 마디로 행성 전체가 살아 있다고 했어.

이전에 파운데이션 시리즈 2권에 나와 문제를 일으켰던 뮬 기억나지? 뮬도 가이아 출신이었는데, 가이아에서는 뮬을 가이아의 룰을 위반하고 가이아를 떠난 비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알고들 있었어. 뮬이 다른 사람의 정신을 읽고 조정할 수 있었던 것 기억나지? 가이아 사람들은 모두 이 능력을 가지고 있단다. 그래서 서로의 기억도 서로 공유할 수 있었어. 돔이 이야기하길 지금 가이아는 위기에 빠져 있는데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이는 트레비스라고 했고, 그래서 트레비스를 가이아로 오게 유도한 것이라고 했단다. 트레비스는 자신의 의지로 가이아에 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가이아가 트레비스의 정신을 조정해서 이쪽으로 오게 유도했다는 거야. 트레비스는 이 이야기를 당황하면서 자신이 가이아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믿기지 않았단다.

젠디발과 슈라 노비는 세이셸에 도착해서 콤포와 만났어. 콤포의 우주선이 더 성능이 좋은 최신식이라서 우주선을 서로 바꿔 타고 젠디발과 노비는 가이아로 향했단다. 젠디발도 서서히 가이아로 이동하고 있었고, 그 뒤로는 브라노 시장이 파운데이션 함대를 이끌고 오고 있었어. 이제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어 통신하게 되었는데, 젠디발과 브라노는 의견 충돌도 있었지만 결국은 둘은 함께 가이아를 공격하자고 협의했단다. 그런데 젠디발과 함께 온 노비도 알고 보니 가이아 출신이었어.

지금까지 젠디발에게 이 사실을 숨기고 있었어. 노비는 자신이 가이아인이라면서 젠디발이 가이아로 오도록 유도했다는구나. 노비도 가이아인이니까 다른 사람의 정신을 조정할 수 있었겠지. 가이아에 한꺼번에 외부에서 우주선 세 개가 왔단다. 파스타 호를 타고 온 트레비스와 페롤랫. 2파운데이션에서 온 젠디발과 노비, 1파운데이션에서 온 브라노 시장과 코델. 노비는 이 모든 이들의 정신을 조정해서 모두 정신(생각)으로 대화할 수 있게 했단다. 그러니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텔레파시 능력을 모든 이가 가능하게 한 거야. 그리고 가이아가 그들을 이곳으로 유도한 이유를 설명해 주었어.

가이아에서 지켜본 바로는 제1파운데이션과 제2파운데이션이 강하게 발전하고 있었고 더 시간이 지나면 두 세력간 자칫 전쟁이 발생하게 되면 가이아를 비롯한 나머지 세력들은 큰 위협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제1파운데이션과 제2파운데이션이 더 세력이 커지기 전에 가이아가 한쪽을 선택하겠다고 했어. 그 결정을 트레비스에게 맡기려고 했던 거야. 좀 설정이 이상한 것 같구나. 가이아라는 큰 행성의 운명은 다른 행성의 한 사람한테 맡기다니트레비스는 자신 없어 하다가 결국 선택을 했단다. 그런데 그 선택은 제1파운데이션도 아니고 제2파운데이션도 아닌 가이아를 선택했단다. , 가이아를 선택한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러면 선택하기 전과 같은 상황 아닌가? 1파운데이션과 제2파운데이션은 여전히 제 갈을 가고, 가이아 역시 제 갈 길을 가는 것 아닌가?

가이아의 목표는 행성을 하나의 집단 의식의 가이아로 만든 것처럼 우주 전체를 하나의 집단 의식인 갤럭시아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단다. 아무리 생각해도 트레비스의 선택으로 바뀐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구나. 책이 두꺼워서 아빠가 책 후반부로 오면서 집중력이 떨어져서 제대로 이해를 못한 부분이 있었나? 아무튼 트레비스의 선택과 함께 제1파운데이션의 브라노 시장은 터미너스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돌아가는 길에 세이셸과 무역협정을 맺어 연맹에 들어오게 하는 성과를 냈고 젠디발은 제1발언자 자리에 오를 것에 기뻐하며 돌아갔단다. 모든 갈등이 정리되고 트레비스는 돔을 만나 지구를 가고 싶다고 했단다. 원래 트레비스의 목적은 지구에 가는 것이었으니 그것도 바뀐 것이 없구나. 바뀐 것은 페롤랫 교수였어. 페롤랫은 블리스와 사랑에 빠져서 가이아에 남겠다고 했단다. 그런데 블리스가 정교하게 만든 로봇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었어. 블리스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는데, 상대방이 못 알아챌 정도라면 무슨 상관이겠니

이렇게 파운데이션 시리즈 4 <파운데이션의 끝>의 이야기가 끝났단다. 좀 이해 안가는 부분도 있었지만, SF 소설이니까 세계관이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 아빠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가치로 자꾸 생각하게 되니까 말이야. 이제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3권이 남았구나. 3권을 미리 살펴보니 3권 모두 두께가 꽤 두껍네. 심호흡을 하고 팔뚝 힘도 좀 길러서 읽어야겠구나.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골란 트레비스는 셀던 홀의 넓은 계단에서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도시를 먼발치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책의 끝 문장: 트레비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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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이스마트 2024-12-04 0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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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holic 2024-12-06 21:31   좋아요 0 | URL
감사여~
 
















(18-19)

필요한 내용을 찾았는지 한동안 집중해서 읽던 산아가 사전을 가리키며 물었다. 나는 오늘 면접에서 받아 온 옛날 건축에 관한 사전이라 설명하고 몇몇 용어를 알려두었다. 중수는 손질하여 고치는 것, 중창은 다시 짓는 것, 재건은 크게 일으켜 세우는 것이라고. 한옥에서 문은 창살무늬에 따라 이름이 다 달라서, 세로살을 꽉 채우고 가로살을 위아래와 중간에만 넣은 건 세살문, 가로살과 세로살을 다 채운 문은 만살문, 문 중간에 빛이 들어갈 수 있도록 사각형이나 팔각형으로 작은 창을 낸 문은 불발기문, ‘자 형태로 살을 짠 문은 완자문, ‘자 무늬가 있으면 아자문이라 한다고.


(84)

학생 수가 많아서 그런지 교실은 마치 퍼즐판처럼 세밀한 경계로 각자 나뉘어 있었다. 전교생이라고 해봤자 서른명도 되지 않는 석모도에서 그물처럼 성글었던 구분들이 여기서는 한층 촘촘해졌다. 어디 사는지, 출신 초등학교가 어딘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느 학원을 다니는지가 너무 중요한 기준이었다. 내 하굣길을 누가 볼까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어 보였다.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은 각자 학원 승합차를 타고 일시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158)

그러자 당연한 수순처럼 순신이 수난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순신에게 손바닥을 펼쳐보라고 했다. 그리고 거기에 얼음조각이 놓여 있다고 상상해보라고. 그러면 어떻겠어? 하고 물었다. 순신은 아주 시원할 것 같다고 해서 내 김을 빼놓았다. 나는 지금이 겨울이라 생각해보라고 다시 조건을 달았다. 이제 더 이상 매미도 울지 않고 나뭇잎도 일렁이지 않는다고, 길이 얼어 자전거를 탈 수도 없고 옷 밖으로 몸을 내놓으면 아플 정도로 바람이 차고. 그런 겨울에 손바닥에 얼음이 있으면 손이 얼겠지, 아프고 따갑고 시렵겠지, 그런데 얼음을 내던질 수는 없고 가만히 녹여야만 한다고 생각해봐. 그 시간이 너무 길고 험난하게 느껴지겠지. 그런 게 수난이고 그럴 때 하는 게 기도야.


(344-345)

우리는 방을 나와 서로의 얼굴을 최대한 보지 않은 체 인사하고 퇴근했다. 나는 차창을 열어놓고 속력을 내어 섬으로 돌아갔다. 얼른 가서 무화과나무가 있는 마당을 지켜보며 마루에 누워 섬의 소리를 듣고 싶었다. 정작 마을에서는 파도가 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물결치는 소리만이 섬 소리의 전부는 아니었다. 배를 타고 나갔다 빈 배로 돌아온 사람들의 불평 소리, 어느 집에서인가 쓰레기를 쌓아놓고 타닥타닥 태우는 소리, 밥을 짓거나 부엌에서 그릇을, 외할머니가 설음질이라고 부르던 것과 똑같이 설렁설렁 닦는 소리, 말린 생선을 노리는 고양이들의 착지, 마을 노인정에서 들려오는 노래방 소리, 소라껍데기에 귀를 가져다대고 그 안에서 바닷소리를 발견해내듯 그런 섬의 소리를 변별하다보면 다시 평정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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