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

인기 있는 대중 신문들은 뉴스를 팔기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을, 다시 말해 고통체의 먹이를 파는 것에 중점을 둔다. 커다란 활자의 헤드라인에서 폭력과 범죄의 단어들이 난무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영국의 황색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이 점에서 탁월하다. 뉴스를 싣기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을 부채질하는 편이 신문 판매에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그 관계자들은 잘 알고 있다. 텔레비전을 포함한 뉴스 매체 전체가 부정적인 뉴스를 먹고 사는 경향이 있다. 사태가 악화되면 될수록 아나운서와 사회자는 더 흥분하고, 언론 매체 자체가 종종 부정적인 흥분을 부채질한다. 고통체들은 그것을 매우 좋아한다.


(213)

당신이 무엇을 말하고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얼굴을 세상에 보여주려고 하든 관계없이, 당신의 마음 상태와 감정 상태를 숨길 수는 없다. 인간은 누구든지 자신의 내면 상태에 해당하는 에너지 장을 내뿜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록 무의식적으로만 느낄는지 몰라도 상대방이 내뿜는 에너지를 감지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것을 감지하지만, 상대방을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그것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대화를 나누기도 전에 매우 분명하게 그것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잠시 후에는 말과 언어들이 그 관계를 점령하고, 말과 함께 그들이 연기하는 역할들이 등장한다. 그렇게 되면 관심이 생각의 영역으로 옮겨 가서, 상대방의 에너지 장을 감지하는 능력을 급격히 줄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의식 차원에서는 여전히 느낀다.


(223)

아이가 고통체의 공격을 받는 동안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 순간에 깨어 있으면서 감정적인 반응에 말려들지 않도록 하는 것 외에는 별로 없다. 아이의 고통체는 감정적인 반응을 먹고 더 커질 것이다. 고통체들은 매우 극단적으로 드라마틱하다. 그러므로 그 드라마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 원하는 것을 방해받아 고통체가 활성화된 경우에는 아이의 요구에 불복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내가 더 불행해질수록 갖고 싶은 것을 더 많이 얻게 된다.’는 것을 배운다. 이것은 훗날 삶의 기능장애를 초래한다. 당신의 무반응에 아이의 고통체는 좌절하고 잠시 후 더욱 격렬해질지 모르지만 머지않아 진정된다. 다행히 아이들의 고통체는 어른보다 대개 활동 시간이 짧다.


(235)

고통체에 사로잡힐 때마다, 그리고 고통체를 고통체로 알아볼 수 없을 때마다 고통체가 당신 에고의 일부가 된다. 당신이 동일화되는 대상은 무엇이든 에고로 바뀐다. 고통체는 에고가 동일화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것 중 하나이며, 고통체 또한 먹이를 얻고 자신을 재생시키기 위해 에고를 필요를 한다. 그러나 이 불건강한 동맹 관계는 이윽고 고통체가 너무 무거워져서 에고의 마음 구조로는 견딜 수 없을 때 끝장이 난다. 에고는 고통체에 의해 강화되기는커녕 그 강한 에너지의 맹공격에 손상된다. 전기 기구가 전류에 의해 힘을 얻고 작동하지만, 전압이 너무 높아지면 파괴되는 것과 같다.


(250)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내용물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가를 정의 내린다. 지각하고, 경험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이 내용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내용물이 관심을 완전히 차지해 버리며, 그들이 동일화되는 것이 그것이다. ‘나의 삶이라고 생각하거나 말할 때 당신은 당신 자신인 삶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혹은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삶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내용물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정신 상태와 감정 상태는 물론 나이, 건강, 관계, 경제력, , 생활환경 등을. 사건들, 즉 일어나는 모든 일들과 마찬가지로 당신 삶의 외부 환경과 마음의 환경, 당신의 과거와 미래 모두가 이 내용물의 영역에 속한다.


(256)

일어나는 일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신의 내면이 일어나는 일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일어나는 일이란 물론 이 순간의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가리키며, 그것은 이미 그러하게 그곳에 존재하고 있다. ‘일어나는 일은 내용물, 즉 이 순간이 취하는 형태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존재하는 순간은 이 순간뿐이다. 이 순간의 있는 그대로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일어나는 일에 대해 내면적으로 무저항의 상태라는 뜻이다. 마음속에서 좋다거나 나쁘다는 분류표를 붙이지 않고 그것이 있는 그대로 있게 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삶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행동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로, 지금이라는 순간과의 내적인 조화를 기초로 행동할 때 그 행동에는 삶 그 자체의 지성의 힘이 작용한다.


(263)

현재의 순간은 표면적으로는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일어나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삶의 매일매일은 서로 다른 일들이 일어나는 수많은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간은 순간들의 끝없는 연속이고, 그 순간에는 좋은순간도 있고 나쁜순간도 있다고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잘 관찰해 보면, 즉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보면, 그렇게 많은 순간들이 있는 것이 전혀 아님을 발견하게 된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지금 이 순간뿐이다. 삶은 언제나 지금이다. 당신 삶의 모든 것이 이 끝없는 지금에서 펼쳐지고 있다. 과거나 미래의 순간들도 당신이 기억하거나 기대할 때만 존재하며, 그것도 유일하게 존재하는 순간인 지금 이 순간에 당신이 그것들에 대해 생각할 때 가능하다.


(270)

누구나의 삶에는 형상 차원에서의 성장과 확장을 추구하는 시기가 있다. 신체적인 허약함과 금전적인 부족 같은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때이며,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획득하거나 창조적인 활동을 통해 자신을 위해서도 타인을 위해서도 삶의 질을 높이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이 세상에 가져오는 시기이다. 그것은 음악이나 미술 작품일 수도 있고, 책이 될 수도 있으며, 당신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수행하는 기능, 세상에 결정적 기여를 하는 사업체나 조직이 될 수도 있다.


(279)

눈이 아무것도 볼 것이 없을 때, 아무것도 없음이 공간으로 지각된다. 귀가 아무것도 들을 것이 없을 때, 그 아무것도 없음이 고요로 인식된다. 형상을 인식하도록 만들어진 감각들이 형상의 부재를 만났을 때, 감각적 인식 뒤에서 모든 인식과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형상 없는 의식은 더 이상 형상에 의해 흐려지지 않는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우주 공간을 명상 속에 응시하거나 태양이 떠오르기 직전 이른 새벽의 고요에 귀를 기울일 때, 당신 안에서 무엇인가가 서로를 알아본 것처럼 그것과 공명한다. 그러면 당신은 공간의 무한한 깊이를 자신의 깊이로 감지하고, 형상 없는 소중한 고요가 당신 삶의 내용물을 채우고 있는 그 어떤 사물이나 사건들보다 훨씬 자기 자신임을 알게 된다.


(287)

형상과 더 이상 완전히 동일화되지 않을 때, 진정한 당신인 의식은 형상의 감옥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 자유는 내적 공간의 등장이다. 설명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 이 공간은 내면 깊은 곳에 있는 하나의 고요, 알아차리기 힘든 평화로 다가온다. 겉으로 보기에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할 때조차도 그 고요와 평화가 그곳에 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일어나는 사건들 주위에 갑자기 공간이 생겨난다. 또한 오르내리는 감정 주위에도, 심지어 고통 주위에도 공간이 생긴다. 무엇보다도 당신의 생각 주변에 공간이 생겨난다. 그 공간으로부터 이 세상의 것이 아닌 평화가 발산된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형상이고, 그 평화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신의 평화이다.


(292)

그렇다면 텔레비전 시청이 내적 공간을 가져다주는가? 그럼으로써 이 순간에 존재할 수 있는가?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다. 당신의 마음은 오랜 시간 어떤 생각도 만들어 내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대신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사고 활동과 연결되어 있다. 텔레비전 속의 집단 무의식과 연결되어 그 생각을 생각하고 있다. 생각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만 마음이 활동을 정지하고 있을 뿐이지, 실제로는 텔레비전 화면으로부터 생각과 이미지를 끊임없이 흡수하고 있다. 이것은 최면 상태와 다르지 않게, 넋을 잃은 상태에서의 수동적인 깨어 있음이다. 그래서 텔레비전이 여론조작에 이용되는 것이다. 텔레비전이 사람을 멍청하게 하는 수동 상태를 만들 수 있음을 알고 있으며, 그 때문에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당신에게 심으려고 하며 대부분은 성공한다.


(294-295)

오랫동안 텔레비전을 보면 무의식적이 될 뿐 아니라 수동적이 되고 에너지가 고갈된다. 그러므로 무작위적으로 시청하는 대신 프로그램을 선택해야 한다. 때로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자기 몸 안의 생명력을 느끼는 것이 좋다. 혹은 때로는 자신의 호흡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또한 시각이 완전히 텔레비전에 점령되지 않도록 때때로 텔레비전 화면에서 눈을 떼어야 한다. 청각이 압도되지 않도록 음량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하지 않는다. 상업 광고시간에는 음을 소거한다. 또한 텔레비전을 끄자마자 잠들지 않는 것이 좋다. 켜 놓은 채 자는 것은 더 나쁘다.


(296)

만약 낮 동안의 삶을 불만, 불안, 걱정, 우울, 절망, 그 밖의 부정적인 상태로 보내지 않을 수 있다면, 만약 빗소리나 바람소리를 듣는 일 같은 단순한 일들을 즐길 수 있다면, 만약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거나, 때로는 오락과 같은 정신적인 자극을 필요로 하지 않고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홀로 있을 수 있다면, 만약 완전히 낯선 사람을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마음에서 우러난 친절로 대할 수 있다면, 그때 평소 같으면 끊임없는 생각의 흐름에 점령당하고 있을 마음에 짧은 순간이긴 해도 순수 공간이 열린다. 비록 설명하기 힘든 미묘한 것일지라도 생생한 평화와 행복이 느껴진다. 그 평화와 행복의 느낌은, 거의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작은 만족감에서부터 고대 인도의 현자들이 아난다라고 부른 존재의 지복 상태까지 다양할 것이다. 오직 형상에만 관심을 향하도록 조건 지어져 있으면 간접적으로밖에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단순한 것들의 가치를 알고, 혼자 있는 즐거워하고, 애정을 가지고 친절하게 사람들을 대하는 능력 속에는 공통된 요소가 있다. 이 공통된 요소는 배후에서 이것들의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충만감, 평화, 그리고 생동감이다.


(298)

더할 나위 없이 작은 것최고의 행복에 이르게 해 주는가? 왜냐하면 사실 진정한 행복은 사물이나 사건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처음에는 그렇게 보일지라도. 사물이나 사건이 지극히 미묘하고 지나치게 야단스럽지 않으면, 그것들은 당신의 의식의 작은 부분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머지는 내적 공간이, 즉 형상에 의해 가로막히지 않은 의식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내면의 의식 공간과 당신의 본질은 하나이며 같다.


(308-309)

자신의 호흡을 의식해 보라. 호흡의 감촉에 주목하라. 공기가 움직이면서 몸 안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느껴 보라. 들숨과 날숨과 더불어 가슴과 배가 조금 팽창했다가 수축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 번의 의식적인 호흡만으로도 그 전까지 생각에서 생각으로 방해받지 않은 연속적인 흐름이 이어지던 자리에 약간의 공간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한 번의 의식적인 호흡을, 두세 번이라면 더욱 좋지만, 하루에 가능한 한 여러 번 반복한다. 이것은 당신의 삶에 내적 공간을 만드는 훌륭한 방법이다. 설령 어떤 사람들이 하듯이 두 시간 이상씩 호흡 명상을 할지라도, 한 번의 호흡이 당신이 알아차릴 필요가 있는 전부이며, 당신이 진정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전부이다. 나머지는 기억과 기대이다. , 생각이다. 사실 호흡은 당신이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일어남이고, 당신은 그것을 관찰할 뿐이다. 호흡은 저절로 일어난다. 몸 안의 지성이 그 일을 하고 있다. 강신이 해야만 하는 것이 그것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다. 긴장도 노력도 개입하지 않는다. 또한 호흡 사이의 짧은 멈춤을 주목하라. 특히 숨을 다 내쉬고 난 뒤 다시 들이쉬기 전의 고요한 지점을.


(310)

호흡의 자각은 당신을 현재의 순간으로 오게 한다. 이것이 모든 내적 변화의 열쇠이다. 호흡을 의식할 때마다 당신은 절대적으로 현재의 순간에 존재한다. 또한 생각하는 동시에 호흡을 알아차릴 수는 없음을 당신은 눈치챌지 모른다. 호흡에 의식을 집중하면 마음의 활동이 정지된다. 그러나 이것은 최면에 걸리거나 반쯤 조는 상태와는 매우 다르며, 당신은 완전히 깨어 있고 고도로 민감하다. 생각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리고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완전히 현재의 순간 속으로 들어오는 것과 의식의 잃음 없이 생각을 멈추는 이 두 가지가 사실은 하나이며 같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공간 의식이 등장한 것이다.


(316)

생각과 단어는 형상의 세계에 속한다. 그것들은 형상 없음을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나는 나의 내부의 몸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생각이 만들어 낸 오해이다. 실제로 일어난 것은 육체로 나타난 의식, 나는 있다.’고 하는 의식이 그 자신을 의식하는 것이다. 진정한 자신과 일시적인 형상인 를 혼동하지 않으면, 그 무한하고 영원한 것, 즉 신의 차원이 를 통해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고 를 인도할 수 있다. 또한 형상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준다. 그러나 나는 이 형상이 아니다.’라고 머리로만 인식하거나 믿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내적 공간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는가?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이것이다. 나는 나 자신의 현존,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나의 있음인 현존을 감지할 수 있는가?


(332-333)

예를 들어, 아이를 키우는 것이 당신의 삶에 의미를 준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아이가 더 이상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거나 혹은 당신 말에 더 이상 귀 기울지 않는다면 그 의미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만약 다른 이들을 돕는 것이 당신의 삶에 의미를 준다면, 당신의 삶이 계속 의미 있는 것이 되고 스스로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기 위해서는 당신보다 상황이 나빠지는 사람들에게 의존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어떤 일에 뛰어나거나 승리하거나 성공하려는 욕망이 당신에게 의미를 준다면, 결코 승리하지 못하거나 어느 날 연속적인 성공이 막을 내린다면 어떻게 됩니까? 언젠가는 분명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상상이나 기억에 의존해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곳은 당신의 삶에 무미건조한 의미만을 가져다주는 매우 불만족스러운 장소입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성공이 의미가 있는 것은 다른 수백 수천만 명이 실패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당신의 삶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실패가 필요하게 됩니다.


(339)

일터에서나 어디에서든 사람들과 만날 때 상대방에게 모든 관심을 기울이십시오. 당신은 개인으로서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림의 장으로서, 깨어 있는 현존으로서 그곳에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애초의 이유, 즉 물건 사고팔기와 정보 교류 등은 이차원적인 것이 됩니다.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알아차림의 장, 그것이 만남과 교류의 첫째 목적이 됩니다. 그 알아차림의 공간이 당신들이 나누는 대화보다 더 중요하고, 물질적인 대상이 할 필요가 있는 일들을 무시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실 순수한 있음의 차원을 알고 그것이 주된 것이 되었을 때, 행동은 더 쉬워지고 더 강력해집니다. 새로운 지구에서는 인간 존재들 사이에 그 알아차림의 통일장이 나타나나는 것이 관계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341)

당신이 사업가라고 합시다. 2년 동안 스트레스와 긴장을 힘들게 견뎌 내어 마침내 잘 팔리는 상품이나 일의 결과를 갖게 되고 돈도 벌게 됩니다. 이것은 성공인가요?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말로는 성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2년 동안 자신의 몸뿐 아니라 지구도 부정적인 에너지로 오염시켰습니다.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으며, 만난 적도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런 행동 배후에 있는 무의식적인 가정은, 성공은 미래의 일이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목적과 수단은 하나입니다. 그리고 만약 수단이 인간의 행복에 기여하지 않는다면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과는 거기에 도달하는 행동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행동에 의해 이미 오염되었다면 미래의 더 많은 불행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이것은 업을 쌓는 행위로, 불행을 무의식적으로 지속시킵니다.


(349)

자연은 무의식중에 전체와 하나가 된 상태로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2004년 쓰나미 재난(30만 명의 사망자를 낳은 동남아시아의 지진 해일)에서도 야생동물에게는 사실상 피해가 없었던 이유가 그것입니다. 인간들보다는 전체성과 더 많이 접촉하고 있기 때문에 동물들은 보거나 듣기 훨씬 전에 쓰나미의 접근을 감지할 수 있었고 더 높은 지역으로 이동했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러저러하게 행동한다는 것은 마음이 실체를 분해하는 방식입니다. 반면에 자연은 전체와의 무의식적인 하나됨 속에서 살아갑니다. 전체와 의식적으로 하나가 되고, 우주의 지성과 의식적인 일치를 이룸으로써 이 세상 속으로 새로운 차원을 가져오는 것, 그것이 인간의 목적이자 운명입니다.


(354)

상대적인 진리와 절대적인 진리의 예로서 일출과 일몰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가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고 저녁에 태양이 진다고 말할 때 그것은 진리이지만 오직 상대적으로만 진리이다. 절대적인 관점에서는 틀린 말이다. 땅 위나 지표면에 가까운 장소에서 관찰하는 사람의 제한된 시야에서는 태양은 떠오르거나 진다. 그러나 우주로 나가면 태양은 뜨는 것도 지는 것도 아니고 항상 빛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안다고 해도,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상대적인 진리임을 알고 있어도, 우리는 일출이라고 말하고 일몰이라고 말하며, 여전히 그 아름다움에 감동하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쓸 수 있다.


(358)

죽음은 단지 추상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형상의 소멸에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는 충격을 받고 이해할 수 없으며 절망하고 큰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이제 모든 것이 의미가 없으며 절망하고 큰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이제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그동안 삶이 그들을 위해 가지고 있던 모든 의미와 목적은 축적, 성공, 세움, 보호, 그리고 감각적인 만족과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외부적인 운동이고 형상과의 동일화, 즉 에고와 관계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삶과 그들의 세계가 무너지고 있을 때 그것으로부터 어떤 의미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외부적인 운동보다도 더 깊은 의미가 잠재되어 있다.


(361)

한 개인의 삶에서 에고가 회귀 운동과 자신을 더 이상 동일시하지 않으면 늙음이나 다가오는 죽음은 본래의 의미를 되찾는다. 영적 차원으로의 문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 과정을 실현하며 살아가는 노인들을 만나 보았다. 그들은 늙어 가면서도 빛이 나고 있었다. 그들의 쇠약해져 가는 형상들은 투명해져서 의식의 빛이 비쳐 나오고 있었다.


(365)

의식은 형상의 일어남 뒤에 있는 지성, 즉 조직화 원리이다. 의식은 형상들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수백만 년 동안 그 형상들을 준비해 왔다. 형상으로 나타나지 않은 의식의 영역은 다른 차원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우주라는 형상의 차원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형상의 세계와 형상 없는 세계는 서로 스며들어 있다. 형상으로 나타나지 않은 것은 알아차림, 내적 공간, ‘현존으로서 이 차원 속으로 흘러들어 온다. 어떻게 그렇게 하는가? 의식이 깨어 있는, 그럼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완성하는 인간 형상을 통해서이다. 이 높은 목적을 위해 인간이라는 형상이 창조되었으며, 수백만의 다른 형상들이 그것을 위한 토대를 준비해 왔다.


(366-367)

인간의 뇌는 고도로 차별화된 형상이며, 이 형상을 통해 의식이 이 세상의 차원으로 들어온다. 인간의 뇌에는 뉴런이란 불리는 약 천억 개의 신경 세포가 있다. 이것은 우주의 뇌라고 볼 수 있는 은하계에 있는 별들의 숫자와 같다. 뇌가 의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의식이 그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지구에서 가장 복잡한 물질 형태인 뇌를 만들어 낸 것이다. 뇌가 손상되었다고 해서 의식을 잃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의식이 이 형상 차원으로 들어오기 위해 그 뇌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 당신은 의식을 잃어버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의식은 본질적으로 당신 자신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오직 자신이 소유한 것만을 잃을 수 있을 뿐이며, 당신 자신인 것을 잃을 수는 없다.


(369-370)

깨어 있는 행동의 세 가지 방식은 받아들임, 즐거움, 열정이다. 각각은 의식의 특정한 진동 주파수를 대표한다. 가장 단순한 일부터 매우 복잡한 일까지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그 셋 중 하나가 작동하도록 특별히 깨어 있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받아들임, 즐거움, 열정의 어느 상태에도 있지 않다면, 자세히 살펴보면 당신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374)

삶의 주된 목적은 의식의 빛을 이 세상 속으로 가지고 오는 것임을 깨닫고,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의식을 위한 매개체로 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새로운 지구가 탄생한다.


(377)

스트레스와 달리 열정은 에너지 진동 주파수가 높기 때문에 우주의 창조적 힘과 공명한다. 랄프 왈도 에머슨이 열정 없이는 어떤 위대한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라고 말한 이유이다. 열정(enthusiasm)이라는 단어는 고대 희랍어의 을 뜻하는 (en)’을 의미하는 테오스(theos)’에서 유래한 말이다.(‘내재하는 신a Good within, 내 안에 신을 둔다’).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단어 엔토우시아제인(enthousiazein, 신적 영감 상태)신에 사로잡힌의 의미이다. 열정에 불타고 있을 때는 자기 혼자서 모든 것을 해야만 할 필요가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자기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열정은 창조적 에너지의 물결을 불러들이기 때문에 당신은 다만 그 물결에 올라타기만 하면 된다.


(380)

그 대신, 목표는 반드시 역동적이어야 한다.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활동을 통해 다른 인간 존재들뿐 아니라 전체와 연결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향해야 한다. 유명한 배우나 작가 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보는 대신, 자신의 작품을 통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보아야 한다. 그 활동이 자기 자신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고 깊어지게 하는가를 느껴야 한다. 자신은 하나의 문이며, 형상으로 나타나지 않은 모든 생명의 원천에서 나온 에너지가 그 문을 통해 모두를 위해 흘러가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384)

미래의 사건으로서의 깨어남은 아무 의미가 없다. 깨어남은 현존의 실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하늘, 즉 깨어난 의식은 미래에 성취해야 할 상태가 아니다.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은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당시의 머릿속에 있는 하나의 생각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뭐라고 말했는가? “하느님의 나라는 지금 여기 너희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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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실체를 인간 마음이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축소시킨다. 언어는 성대에 의해 생성되는 다섯 개의 기본적인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들은 , , , , 의 다섯 가지 모음이다. 나머지 소리들은 공기 압력 조절을 통해 만들어지는 , , 등의 자음들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음의 몇 가지 조합만으로 당신이 누구인지, 우주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아니면 한 그루의 나무나 돌멩이 하나에 대해서라도 그 깊은 곳에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정말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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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만약 우리가 사물들을 자아 강화의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즉 사물을 통해 자기 자신을 찾으려 한다면, 우리는 실제로는 사물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다. 에고가 하는 일이 정확히 그것이다. 에고가 사물과 동일화되면 사물에 대한 집착과 강박관념이 생겨나고, 그것으로부터 우리의 소비 사회와 경제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곳에서는 발전의 유일한 측정 기분이 언제나 더 많이이다. ‘더 많이와 끝없는 성장을 위한 이 억제되지 않는 분투 노력은 하나의 기능장애이고 질병이다. 자기를 증식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이고, 실제로는 자신이 그 일부인 전체 조직체를 파괴해 결국 자신도 파괴되는 결과가 됨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암세포의 기능 장애와 똑같다. 경제 전문가들 중에는 성장이라는 개념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어떻게든 그 단어를 사용하기 위해 경기 후퇴를 마이너스 성장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76)

어떻게 하면 물질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그런 것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물결 속에서 자신을 찾으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물질에 대한 집착은 저절로 떨어져 나간다. 그때까지는 자신이 물질에 집착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때로는 어떤 것을 잃거나 잃어버릴 위험에 처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그것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즉 자신이 그것에 동일화되어 있다는 것을 모를 수가 있다. 잃어버릴까 봐 화를 내거나 불안해한다면 당신이 그것에 집착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자신이 물질과 동일화되어 있음을 알아차리면 그 동일화는 더 이상 완전하지 않다. ‘집착이 있음을 알아차리는 그 알아차림이 바로 나 자신이다.’ 그것이 의식 변화의 시작이다.

 

(84-85)

내부의 몸은 사실은 육체가 아니고 생명 에너지이며, 형상과 형상 없음 사이의 다리이다. 가능한 한 자주 내부의 몸을 느끼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얼마 후면 눈을 감지 않아도 느낄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내부의 몸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내부의 몸을 느낄 수 있다. 모순처럼 들리지만, 내부의 몸과 접촉하고 있을 때 사실은 더 이상 육체와 동일화되지 않으며 자신의 마음과도 동일화되지 않는다. , 더 이상 형상과 동일화되지 않고 형상과의 동일화로부터 멀어져서 형상 없음으로 향해 간다. 이 형상 없음을 우리는 존재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것이 당신 정체성의 핵심이다. 몸에 대한 그 알아차림은 당신을 지금 이 순간에 닻에 내리게 할 뿐 아니라, 에고라는 감옥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출구가 된다. 이것은 면역 체계와 신체의 자연 치유력도 강화시켜 준다.

 

(101-102)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만큼 에고를 더 강화시켜 주는 것은 없다. 옳다는 것은 하나의 관점, 의견, 판단, 이야기 등과 같은 정신적 입장을 자기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옳기 위해서는 당연히 틀린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에고는 옳기 위해 누군가를 틀리게 만들기를 매우 좋아한다. 바꿔 말해, 자신의 더 강한 자아의식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틀리게 만들 필요가 있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상황도 불만과 반응을 통해 틀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런 일은 일어나면 안 돼.”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신이 옳다는 주장은, 잘못되거나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과 상황에 대해 자신을 상상 속에서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올려놓는다. 에고가 갈망하는 것이 그 우월감이며, 그것을 통해 에고는 자신을 강화시킨다.

 

(117)

에고의 밑바탕에서 모든 행동을 지배하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존재하지 않게 될 것 같은 두려움, 죽음의 두려움이다. 결국 에고의 모든 행동은 이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하지만 에고는 기껏해야 가까운 관계, 새로운 소유물, 혹은 이런저런 성취들로 일시적으로 이 두려움을 덮여 버리는 것밖에 할 수 없다. 환상은 결코 당신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오직 나는 누구인가의 진리만이, 만약 당신이 그것을 깨닫는다면, 그것만이 당신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

 

(125)

소심함은 종종 눈에 띄게 부정적인 자아의식, 즉 자신에게 무엇인가 많이 부족하다는 믿음과 함께한다. 자기 자신을 이러저러하게 보는 관념 속 자아의식은 내가 최고야.’라는 식의 두드러지게 긍정적이든, 아니면 나는 형편없어.’라는 식의 부정적이든, 어느 쪽이든 에고이다. 모든 긍정적인 자아의식 뒤에는 그럼에도 아직 충분히 좋지 않다는 불안이 숨어 있다. 모든 부정적인 자아의식 뒤에는 최고가 되고 싶고 다른 사람보다 나은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욕구가 숨어 있다.

 

(142-143)

어린 자식이 있다면 최선의 능력을 다해 돕고 지도하고 보호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공간을 허용하는 일이다. 존재할 공간을, 아이는 당신을 통해 이 세상에 왔지만 당신의 것이 아니다. ‘무엇이 너를 위해 가장 좋은지 내가 잘 안다라는 믿음은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는 진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가 커 갈수록 그것은 점점 더 진실이 아니게 된다. 아이의 삶이 어떻게 펼쳐져야만 하는가에 대해 기대가 크면 클수록, 당신은 아이를 위해 이 순간에 존재하기보다는 당신의 생각 속에 더 많이 사로잡혀 있게 된다. 모든 인간이 그렇듯이 아이도 언젠가는 실수를 저지를 것이고 어떤 형태로든 고통을 경험할 것이다. 사실 그것들은 당신의 관점에서 볼 때만 실수일지도 모른다. 당신에게는 실수로 보여도 아이에게는 꼭 필요한 행동과 경험일 수도 있다. 가능한 한 도움과 조전은 주어야 하지만, 특히 이제 막 성인이 된 아이는 때때로 실수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고통을 겪게 해주어야만 할지도 모른다. 고통은 뜻밖에 찾아올 수도 있고, 지신이 저지른 실수의 결과로 올 수도 있다.

 

(148)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 안데 있는 자신을 알아보는 것이다. 그때 그 다른 사람의 다름은 순전히 인간적인 영역, 형상의 영역에만 존재하는 환상임이 밝혀진다. 모든 아이 안에 있는 사랑에 대한 갈망은 형상 차원뿐 아니라 존재 차원에서도 부모가 자신을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갈망이다. 부모가 인간 차원에서만 아이를 존중하고 존재 차원을 하다면, 아이는 그 관계가 불충분하며 절대적으로 중요한 무엇인가가 빠져 있다고 감지할 것이다. 아이의 내면에 고통이 쌓이고, 때로는 무의식중에 부모를 원망할 것이다. “왜 나를 알아봐 주지 않는 거야?” 아이의 고통과 원망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52-153)

에고는 왜 역할을 연기하는가? 제대로 조사해 보지도 않은 한 가지 가정, 한 가지 근본적인 오류. 한 가지 무의식적인 생각 때문이야. 그 생각은 나는 충분하지 않다.’라는 것이다. 이 생각으로부터 다른 무의식적인 생각들이 뒤따른다. ‘나는 충분한 자신이 되는 데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역할을 연기할 필요가 있어.’ ‘더 많이 존재하기 위해 더 많이 얻을 필요가 있어.’ 그러나 당신은 당신인 것보다 더 많이 당신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육체적 심리적 형상 밑바탕에서 당신은 생명그 자체, ‘존재그 자체와 하나이기 때문이다. 형상 곳에서는 당신은 언제나 어떤 사람보다 열등하고 어떤 사람보다 우월할 것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본질 속에서는 당신은 누구보다 열등하지도 않고 우월하지도 않다. 진정한 자존과 진정한 겸손은 이 깨달음으로부터 생겨난다. 에고의 눈으로 보면 자손과 겸손은 대립적이다. 진리 속에서는 그 둘은 하나이며 같은 것이다.

 

(159)

어떻게 하면 지금 평화로울 수 있는가? 현재의 순간과 화해하는 것이다. 현재의 순간은 삶의 놀이가 일어나고 있는 장이다. 삶의 놀이는 다른 곳에서 펼쳐질 수 없다. 현재의 순간과 화해하면 무엇이 일어나는지 보라. 자신에게 무엇이 가능한지, 어떤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지를,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삶이 당신을 통해 무엇을 하는지를, 삶의 예술에 대한 비밀, 모든 성공과 행복의 비밀을 전하는 세 단어가 있다. ‘삶과 하나가 되기이다. 삶과 하나가 되는 것은 현재의 순간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때 당신은, 자신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이 당신을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삶은 춤추는 자이고, 당신은 그 춤이다.

 

(186-187)

우리는 길을 잃어버린 종이다. 자연 속 모든 존재들, 모든 꽃과 나무, 모든 동물들이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준다. 우리가 멈춰 서서 바라보고, 귀를 기울이면 들을 수 있다. 오리가 가르쳐 주는 교훈은 이것이다. “날개를 털어라.” 그것을 해석하면 이야기를 내려놓으라.”이다. 그리고 힘을 가진 유일한 장소로, 현재의 순간으로 돌아오라.

 

(188)

과거의 사건들은 기억으로 당신 안에서 계속 살아가지만, 그 기억 자체는 문제가 안 된다. 그뿐 아니라 기억 덕분에 과거로부터, 그리고 과거의 실수로부터 배움을 얻을 수 있다. 기억, 즉 과거에 대한 생각에 당신이 완전이 지배되고 그것이 짐으로 바뀔 때 비로소 기억이 문제가 된다. 또한 그것이 당신의 자아의식의 일부가 될 때, 과거에 의해 조건 지어진 성격이 당신을 가두는 감옥이 된다. 당신의 기억들에 자아의식의 옷이 입혀지고, 당신의 이야기는 당신이 생각하는 가 되어 버린다. 작은 나는 환상이며, 시간을 초월하고 형상을 초월한 현존으로서의 진정한 정체성을 흐려 버린다.

 

(191-192)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신생아는 이미 감정적 고통체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무겁고 단단한 고통체를 가지고 있는 아이도 있다. 언제나 행복한 듯한 아이도 있고, 큰 불행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도 있다.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잘 우는 아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특별히 이렇다 할 이유가 없는데도 마치 주변 사람을 자신처럼 불행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은 아이도 있다. 그리고 종종 그것이 성공한다. 이러한 아이는 인류 고통의 짐을 특히 많이 가지고 이 세상에 온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발산하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잘 우는 아이도 있다. 부모의 부정적인 감정이 아이에게 고통을 주고, 부모의 고통체로부터 나오는 에너지를 흡수해 아기의 고통체가 커진다. 어느 경우든 아이의 신체가 자라남에 따라 고통체도 함께 커간다.

 

(195-196)

세상 만물은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서 진동하는 에너지 장이다. 당신이 앉아 있는 의자, 손에 들고 있는 책은 견고하고 움직임이 없는 물질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단지 당신의 감각기관들이 그 진동하는 주파수를 그런 식으로 지각하기 때문이다. 물질은 의자든 책이든 나무든 몸이든 끊임없이 진동하는 분자, 원자, 전자, 그리고 미립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물질로 지각하는 것은 특정한 주파수 영역에서 진동하는, 혹은 움직이는 에너지이다. 생각도 역시 똑같이 에너지 진동이지만 주파수가 물질보다 높기 때문에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이다. 생각에는 생각만의 주파수대가 있는데, 부정적인 생각은 더 낮은 쪽 주파수로, 긍정적인 생각은 더 높은 쪽 주파수로 진동한다. 고통체의 진동 주파수는 부정적인 생각의 주파수와 공명한다. 그래서 부정적인 생각만이 고통체의 먹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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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특별증보판)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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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내란의 시대에 신경안정제 역할을 해 준, 고마우신 유시민 님의 <청춘의 독서> 특별 증보판이란다. 유시민 님의 <청춘의 독서> 2009년에 이미 출간했던 책으로 유시민 님의 팬인 아빠도 당시에 읽었단다. 그리고 그 책에서 추천해 준 책들을 여러 권 읽었단다. 그럼에도 고마운 마음에 이번 개간본이 나왔을 때 또 구입해서 다시 한번 읽었단다. 특별 증보판이라고 해서, 초판본에 없던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 포함되어 총 열다섯 권의 책을 소개해 주고 있단다.

이 책들은 유시민 님께서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 때, 그러니까 아주 팔팔하게 젊을 때 읽었던 책들 중에 이삼십 년이 지나고 다시 읽고 젊었을 때와 다른 느낌을 받은 책들을 선정해서 이야기해주고 있단다. 아빠는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 때 책을 거의 읽지 않아서 같은 책을 다시 읽고 다른 느낌을 받는 경우가 극히 적단다. 아빠는 뒤늦게 책읽기에 뛰어들어 읽어야 할 책은 많다 보니 한 책을 두 번 읽는 경우도 드물단다.

이번에 읽은 <청춘의 독서> 16년 전에 읽고 이번에 증보판으로 다시 읽었으니 두 번 읽은 거나 마찬가지겠구나. 아빠가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책을 읽고 나서 조금만 지나도 책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청춘의 독서> 16년 전에도 아빠가 잘 읽은 모양이구나. 이번에 읽다 보니, 예전에 읽었던 내용들이 하나 둘 떠오르더구나. 아빠가 유시민 님의 책들을 많이 읽은 편인데, <청춘의 독서>는 그의 책들 중에서 아빠가 손에 꼽는 책들 중에 하나란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유시민 님이 이야기해준 책들이 마구 읽고 싶은 마음이 든단다. 하지만 유시민 님처럼 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은 금물.

2009년에는 독서 일기 형식으로 독후감을 썼는데, 그 때 쓴 일기를 다시 읽어보았는데, 책을 좋게 읽어서 비교적 자세히 썼더구나. 이번에는 너희들에게 들려주는 편지 형식으로 다시 쓰면서 책의 내용을 다시 한번 되새김질해야겠다.

 

1.

유시민 님이 소개한 책들 중에 유달리 러시아 소설들이 많단다. 열다섯 편 중에 세 권이 포함되어 있어. <죄와 벌>은 아빠도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인데, 도스토옙스키탄생 250주년 기념으로 산 책으로 다시 읽어보겠다고 마음만 먹은 지 오래인데 아직 다시 읽기를 못하고 있구나. <죄와 벌>은 유시민 님이 고3시절 밤새워 책을 읽었다고 하는구나. <죄와 벌>을 통해 사회가 개인을 가난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했대. 이 소설을 통해 지은이 도스토옙스키는 선한 목적이 악한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아무리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악한 수단을 사용한 데 따르는 정신적 고통을 벗어나지 못한다.”라는 답을 얻었단다. 하지만 유시민 님은 악한 수단으로 선한 목적을 이룰 수도 있다는 전제를 부정하였단다. 그보다 선한 목적을 선한 수단으로 이룰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한단다. 최선의 방법이지만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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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1)

아무리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악한 수단을 사용한 데 따르는 정신적 고통을 벗어나지 못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죄를 지으면 벌을 면하지 못하는 게 삶의 이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다른 맥락에서 볼 수도 있다.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악한 수단으로 선한 목적을 이룰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당성 여부를 따지기 전에, 악한 수단으로는 선한 목적을 절대 이루지 못한다고 믿는다. 이것은 어떤 연역적, 논리적인 추론의 산물이 아니다.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들을 보고 체험한 끝에 경험적, 직관적인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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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시킨의 <대위의 딸>. 이 책은 아빠가 <청춘의 독서>를 읽고 난 후에 읽어 본 책이란다. 재미있었단다. 푸시킨. 반체제 시인으로 유명하고, 차르 전제정치를 비판을 많이 했었대. <대위의 딸>은 푸시킨의 유일한 소설이라는구나. 이 소설은 연애 소설로 위장한 역사소설이자 정치소설이야. 그가 시와 소설로 유명해지긴 했지만, 삶은 행복하지 않았대. 바람난 젊은 아내 때문에, 아내의 정부와 결투를 하게 되고, 그 결투에 치명상을 입어 38살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고 하는구나. 안타까운 일이로구나.

...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이 책은 아빠도 오래 전에 읽긴 했단다. 수용소라는 좁은 공간, 이반 데니소비치 한 사람의 시선, 하루라는 짧은 시간을 소설로 쓸 수 있다는 단편적인 생각만 했던 기억이 있구나. 존엄을 빼앗긴 수용소에서의 하루에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서 슬픔과 노여움을 자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단다. 유시민 님은 소설 속의 수용소는 소비에트 연방을 빗댄 것이라고 하는구나. 솔제니친의 대하소설 <수용소군도>를 언젠가는 꼭 읽어보고 싶구나.

리영희 님의 <전환시대의 논리>. <청춘의 독서> 초판본이 나왔을 때는 리영희 님께서 생존해 계셨는데, 지금은 돌아가셨구나. 리영희. 진보 사상가 중에 한 명이란다. 아빠는 <청춘의 독서> 초판을 읽을 때는 리영희 님에 대해 잘 알지 못했어. 그 이후에 김상웅 님의 <리영희 평전>을 통해

그의 삶을 조금 알게 되었는데, <리영희 평전>을 읽게 된 것도 유시민 님의 <청춘의 독서>를 읽고 난 이후 리영희 님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읽게 된 것이란다. 리영희 님이 활약하던 시기와 아빠의 시간은 맞지 않지만, 유시민 님의 세대분들은 리영희 님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구나.

<전환시대의 논리>는 베트남 전쟁을 통해 미국을 강도 높게 비판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곧 대한민국을 비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구나. 진리, 진실, 끝없는 성찰, 인식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신념과 지조, 진리를 위해 고난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를 보여주시면서 지식인의 방향을 잡아주셨어. 리영희 님이 살아계셨다면 서울대나 나와서 권력욕에 빠지고 내란을 저지른 이들을 보고 뭐라고 하셨을까.

...

<공산당 선언.>. 너무나 유명한 선언이기에 아빠도 예전에 한번 읽어본 적이 있단다. 유시민이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대학 초년생때인 1978년이라고 하는구나. 그는 당시 이 책을 읽으면서, 공산당 선언의 내용이 당시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느꼈대. 1970년대면 군사독재 말기로 암울한 시기였지. 그런 시기에 읽어서 유시민 님은 이 책이 더욱 인상 깊었다고 하는구나. 공산당 선언의 핵심은 이렇다. 계급 투쟁으로 정의된 역사.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 역사가 종말하고, 계급도 계급 투쟁도 없는 공산주의 국가가 세워진다는 내용이란다. 공산당 선언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지만,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모순은 설명할 수 없었다고 했어. 공산당 이론에 따르면, 공산주의 혁명도 역사 발전의 하나로 계급투쟁의 역사로 볼 수 있는데, 공산주의 사회는 계급 투쟁이 없는 사회. , 역사 발전이 없는, 역사 그 자체를 영원히 종식시키게 된다는 모순이 있다는 거야. 그리고 또 다른 모순은, 인간 본성에 관한 것이다. 공산당 선언에서 공산주의 사회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되는 연합체가 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인간의 이기적 욕망 추구를 부정하게 되고, 과연 모든 인간이 이기적 욕망을 없앨 수 있을까? 답은 NO라고 하는구나. 이런 모순을 가지고 있어도 공산당 선언은 아직 유효하단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또한 모순이 많이 때문이지. 세계화, 글로벌 시장,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금융 위기, 금융 독점, 산업공황 등등... 공산당 선언의 내용은 원래의 모습이 아닌, 자본주의 비판이론으로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하는구나.

...

<맹자>. 아빠는 <맹자>를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도올 김용옥 님의 <맹자> 해설서를 읽어보긴 했단다. 맹자는 역성혁명론을 주장하였기에 더욱 빛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단다. 왕이 백성의 삶을 윤택하게 해야 하고, 그렇지 못한 왕은 혁명을 통해 바꿔도 괜찮다고 하였어. 그 일이 쉽지 않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은 그것을 여러 번 해냈단다. 맹자가 우리나라 국민들을 보면 기특하다고 하지 않을까. 맹자는 인의로 다스리는 왕도정치를 주장하였는데, 실제로는 실천에 옮기지 못해 실패한 지식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대. 맹자의 사단이 유명하단다. 너희들도 학교에서 배우지 않을까 싶구나. 仁의 시작, 측은지심. 義의 시작, 수오지심. 禮의 시작, 사양지심. 智의 시작, 시비지심. 진보주의라고 생각했던 맹자에게 유시민 님은 진정한 보수주의자라 평가를 했단다. 보수주의라 함은 연속성과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전통적인 제도와 관습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라고 볼 수 있어. 보수가 물질적 이익과 세속적 출세를 탐낸다고 하지만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이익이 아니라 가치를 탐하는 것이라면서 맹자는 진정한 보수주의자라고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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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보수가 이념이 아니라 연속성과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전통적인 제도와 관습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라면, 맹자는 정말 멋진 보수주의자였다고 할 수 있다. 흔히들 보수가 물질적 이익과 세속적 출세를 탐낸다고 하지만 진짜 보수주의자는 이익이 아니라 가치를 탐한다. 진짜 보수주의자는 다른 누군가와 싸우는 전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에 정체성의 닻을 내린다. 타인을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을 성찰한다. 누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실의에 빠지지 않으며 깊은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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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치판에서 자신이 보수라고 하는 이들은 보수가 아니고, 옛 것을 지켜 이익과 출세만을 탐내는 수구이고 극우세력이란다.

맬서스의 <인구론>. 알면 알수록 충격적이고 무서운 주장을 하는 책이란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이렇게 가다가는 모든 인류는 굶어 죽게 되는데, 이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전쟁, 기근, 전염병이라는 주장하는 거야. 농담이 아니고 진지하게 말이야. 전쟁, 기근, 전염병을 자연법칙이라 했어. 그래서 맬서스는 기근에 허덕이는 하층민에 대한 자선 사업을 비난하고, 전염병을 치료하려는 의사들을 맹비난하였단다. 나중에 맬서스의 <인구론>은 전쟁 우호가들한테 환영을 받기도 했고 말이야. 맬서스가 <인구론>을 쓰려고 하던 이유 중에 선한 이유도 있다면서 유시민 님이 그를 두둔하기도 하였지만, 그의 인구론 이론이 너무 강렬하게 잔인하여 그 선한 이유가 잘 생각나지 않는구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맬서스의 주장은 잘못되었음이 밝혀졌단다. 인류 스스로 출생률 저하라는 자발적 인구를 억제하게 된 것을 예측 못했던 것이야. 비록 그의 이 잔인한 이론은 모순이라는 데 밝혀졌지만, 지구의 입장에서는 아직 유효하다고 유시민 님은 이야기한단다. 지구의 에너지는 한정적인데,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야. 이미 지구가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에너지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인류, 얼마나 버티려나. 올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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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종의 기원>. 너무 유명한 책이지만, 쉽지 않은 책. 읽지 않은 책이란다. 유시민 님도 이 책을 읽기 전에 해설서를 먼저 읽으면 좋다면서 <이기적 유전자> 등 몇 권의 책을 추천해주었단다. 학교 수업시간에도 배워 알고 있는 적자생존, 자연선택설 등이 사회진화론에 잘못 인용되어 제국주의 국가들이 약소국을 침범하는데 다윈의 진화론을 앞세웠다는 이야기를 했어. 다윈의 <종의 기원>은 읽어보고 싶지만, 넘사벽이라는 생각에 엄두가 나질 않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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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블런의 <유한계급론>. 유시민 님은 베블런을 지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외계인에 비유했어. 그의 삶 또한 실제로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였다는구나.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을 파브르의 <곤충기>에 비유해서 인간의 습성을 연구하여 적은 책이라고 했어. <유한계급론>에서 던지는 질문. 사람들은 돈을 모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돈이 풍족한 사람이라고 해서 더 이상 돈에 관심을 끊는 것이 아니란다. 돈 있는 사람들이 더 돈을 밝힌다. ? 이것은 경쟁에서 이기려는 인간의 습성 때문이라고 하는구나. 원시시대 힘으로 싸워 상대를 이겼지만, 폭력이 불법이 된 오늘날은 상대를 이기는 수단으로 재력이 등장한 것이야. 돈 많은 유한 계급들은 수요공급의 법칙도 무시된단다. 값이 비싸면 비쌀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명품의 경제법칙도 경쟁에서 이기려는 습성에서 나온 것일까.

...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질문. 사회는 계속 진보하는데 왜 빈곤은 사라지지 않는가? . 지대, 즉 땅값 때문이래. 땅을 개인이 소유하고, 가치가 있는 땅의 가격은 천지부지로 올라가서 어떤 사람은 땅만 소유하고 있으면 노동을 하지 않아도 많은 돈을 갖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빈곤을 벗어날 수 없는 사회는 지구의 한 특징이란다. 이게 비상식적인 일이지만 다들 당연하다고 생각한단다. 헨리 조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땅으로 얻은 소득에 높은 세금을 받아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걷어들인 세금을 빈곤퇴치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지. 앞서 이야기한 맬서스와 차원이 다른 사람이구나. 땅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조건이기 때문에 소유하면 안 된다고 그는 주장했어. 조지의 이론은 공산주의의 사유제산폐지와는 다른 것이란다. 토지에 대해서만 소유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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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

조지의 사상은 사실 그리 과격하지도 위험하지도 않았다. 토지소유권을 근거로 지주가 취득하는 지대를 공동체의 것으로 만들자고 했을 뿐이다. 그래서 조지의 사상을 가리켜 토지공개념또는 지공주의(地公主義)라고도 한다. 조지는 마르크스와 달리 사유재산제도의 폐지 또는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주장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폐기하자고 하지도 않았다. 토지를 국융화하자는 것도 아니었다. 조세 징수를 통해 생산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은 사람이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근거로 진보의 경제적 과실을 독점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진보와 빈곤이 동시에 존재하는 부조리를 해소하자고 했을 따름이다. 자연이 또는 하느님이 준 토지를 특정한 개인이 사적으로 소유하는 것을 사회적 범죄라고 보았던 그의 사상은 전통적인 경제학의 울타리를 넘어 철학과 종교의 영역에 걸쳐져 있었다. 조지의 지대 이론은 논리적으로 명확하며 누구나 경험적으로 공감할 수 있다. 설명의 논리 구조는 리카도의 차액지대론과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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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이 이론을 실제에 적용하기 위해 뉴욕시장에 출마했지만 낙선하였다고 하는구나. 이런 혁신적인 공약을 가지고 있다면 많은 시민들에게 지지를 받았을 텐데, 왜 낙선했을까? 그는 두 번째 뉴욕시장 출마하면서 무리한 선거운동으로 몸이 허약해져 그만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구나.

최인훈 님의 <광장>. 유명한 소설로 아빠도 읽어본 책이란다. 남북 갈라진 땅, 갈라진 이념. 그리고 두 군데 모두에서 환영 받지 못하는 주인공. 남에서 살다가 월북한 아버지로 옥살이를 하고, 다시 북으로 가서 북의 체제에 실망을 하게 되는 주인공. 결국 남북이 아닌 제3국으로 망명을 선택하고, 3국으로 가는 배에서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주인공. 유시민 님은 <광장>을 북의 체제를 분석 평가한 문학 작품으로 평가했고, 북한의 체제가 실패할 것으로 예견한 책이라고 했단다. 왜냐하면 북한은 인간 욕망을 억압하고, 개인자발성을 말살하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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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이 책은 <청춘의 독서> 초판본에서 소개한 것을 너무 감명 있게 읽고 찾아 읽어 본 책이란다. 아빠도 재미있게 읽었어. 이 소설에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자이퉁 신문이 있는데, 그 신문의 왜곡이 한 젊은 여인 카타리나 블룸을 짓밟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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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280)

처음 읽었을 때 숨이 막혔다. <차이퉁>이 카타리나 블룸의 명예를 짓밟은 방식이 너무나도 리얼했기 때문이다. 내가 현실에서 보고 경험했던, 그리고 현재에도 목격할 수 있는 언론의 행태와 정말로 똑같았다. <차이퉁>은 주로 두 가지 방법을 썼다. 첫째는 검찰청 조사실에서 오간 이야기를 악의적으로 왜곡해 중계방송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문명국가의 형법이 금지하는 불법적인 피의 사실 유포에 해당하는 범죄행위다. 검사나 검찰 수사관 중에 누군가가 <차이퉁> 기자와 정보 밑거래를 하지 않는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국가기관과 언론기관이 한통속이 되어 저지르는 불법행위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결코 원치 않았던 S의 아파트 방문, 얼마짜리인지도 몰랐던 반지, S의 별장 열쇠 등에 관한 사항을 비롯하여 <차이퉁>이 내밀한 사생활 관련 정보를 왜곡 보도해 자신을 모욕하는 데 대해, 그리고 그런 일을 바로 잡을 방법이 사실상 전혀 없다는 사실에 대해, 카타리나 블룸은 절망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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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 못한 카타리나는 그 신문사의 기자를 살해하고 얼마 후 자수한단다. 이 소설은 언론의 잘못된 표적 기사, 왜곡 기사에 대한 비판을 한 소설이란다. 지은이 뵐은 신문으로부터 왜곡 보도로 집중 포화를 받고 난 뒤 소설을 통해 그 신문사에 복수한 것으로 하는구나. 언론이 문제가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을 하지만, 언론은 마치 왜곡이 그들의 임무인양 오늘날도 여전하구나.

...

그리고 개간본에서 추가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이 책은 유시민 님이 유튜브에서 진행하는 <알릴레오 북스>에서 소개해 준 적이 있는데 그 방송을 보고 아빠도 읽어 보았단다. 유시민 님이 여러 번 극찬한 책이야. 유시민 님은 12.3 내란 이후 이 책을 다시 읽었다고 하는구나. 사회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했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자기 보호일 때만 정당하고 했지. 하지만 지난 3년 우리나라는 얼마나 많은 입틀막을 당했니그것도 모자라 모든 국민들의 입을 틀어막고자 내란까지 저지르게 된 것 아니니아직도 그 내란이 성공했다면 우리는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는구나. 밀은 <자유론>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위로를 해 준다고 유시민 님은 말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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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347)

밀은 1859년 그 옛날에 쓴 책에서 그런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어리석은 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이후 화나고 아프고 어이없는 일들을 견디고 이겨낸 이들에게, 계엄의 밤 국회에서 계엄군을 막아섰던 시민들에게, 남태령의 기적을 만든 젊은이들에게, 눈보라를 맞으며 헌법재판소 앞에서 밤을 지새웠던 남녀노소에게, 무한히 큰 감사의 마음을 얹어 그 말을 전하고 싶다.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 오늘 우리를 본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대들은 인간의 모든 자랑스러운 것의 근원을 보여주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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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의 독서> 초판본 서문에 보면,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은 대학교에 입학하는 자신의 딸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은 책들이라는 내용이 있단다. 그래서 나중에 너희들이 입시지옥에서 벗어나 대학에 입학할 즈음, 이 책을 강력히 권해볼 생각이란다. 너희들도 이 책을 읽고, 이 책에서 소개된 책들을 파릇파릇한 젊은 시절에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글쓰기를 생업으로 삼은 자로서 지금까지 낸 책이 적지는 않다.

책의 끝 문장: 내게 기적을 베풀어주신 위대한 작가들에게 감사드린다.

 


너는 지식인이야. 너는 무엇으로 사느냐. 너는 권력과 자본의 유혹 앞에서 얼마나 떳떳한 사람이었느냐. 관료화한 정당과 정부 안에서 국회의원, 장관으로 일하는 동안 비판적 지성을 상실했던 적은 없었느냐. 성찰을 게을리하면서 주어진 환경을 핑계 삼아 진실을 감추거나 외면하지 않았느냐. 너는 언제나 너의 인식을 바르게 하고 그 인식을 실천과 결부시키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느냐. - P51

19세기 유럽 자본주의국가의 노동 대중이 처했던 극단적 빈곤과 전적인 무권리 상태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노에 공감한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그에 버금가는 고난을 겪는 것을 나는 보았다. 또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종식할 방법을 모색한 그의 집요한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우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노동권과 사회권은 마르크스와 같은 이상주의자 국유화를 핵심으로 하는 중앙 통제식 계획경제와 일당독재는 사회를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되는 연합체"를 만드는 적절한 방법이 될 수 없다. - P71

푸시킨은 200년 전 전제정치와 농노제도가 실시되던 동토(凍土) 러시아에서 자유를 노래했다. 인류가 오늘날까지도 온전히 실현하지 못한 휴머니즘과 민중에 대한 사랑을 문학으로 꽃피웠다. 당대의 현실에 대해 그가 느꼈을 분노, 환희, 절망, 그 모든 것이 생생하게 전해 오기에, <대위의 딸>을 읽으면 가슴 깊은 곳이 아려 온다. 푸시킨은 황제의 권력으로 모독할 수 없었던 고귀한 영혼이었다. 얼어붙은 땅에서 솟아오른 꽃이었다. 두꺼운 먹구름도 빛을 가리지 못한 밤하늘의 별이었다. 그 별은 오늘도 문명의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 푸시킨! - P113

맹자는 제후의 지위를 가진 자로서 왕을 죽이고 새 왕조를 세웠던 주 무왕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은나라 주왕이 폭정으로 인의를 해쳤고 간언하는 충신을 모두 죽였으며 백성을 도탄을 빠뜨렸으니 군주로서의 정당성 또는 정통성을 이미 상실했다고 본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무왕은 반역자가 아니며, 주나라의 정통성을 의심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왕조를 바꾸는 역성혁명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사상을 반길 왕이 있을까?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덕으로 선정을 펴라는 맹자의 왕도 정치 이론을 부국강병에 몰두하던 전국시대 왕들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그 이후 여러 통일 왕조들에서도 맹자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의심해본다. - P122

정치는 위대한 사업이다.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면서 야수적 탐욕과 싸워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 일이다. 설사 한신과 유방이 빛을 좇는 불나방처럼 권력을 향한 본능에 이끌려 투쟁의 소용돌이에 뛰어들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덕(德)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인의(仁義)를 존중하려고 노력했다. 그만하면 충분하지 아니한가. 비록 성인의 반열에 오를 만한 덕성을 갖추지 못했다 할지라도, 때로 맹목적 욕망과 시기심에 휘둘렸다 할지라도, 그러한 마음과 능력을 발휘하여 결과적으로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었지 않은가. <사기>를 덮으며, 한신과 한고조가 겪었던 인간적 고통과 비극적 죽음에 대해, 이 모든 것들이 기록해 인류에게 선사한 역사가 사마천의 삶에 대해 깊은 존경과 높은 찬사를 바친다. - P183

곳곳에서 우생학회가 만들어졌는데 대표적인 것이 1926년 결성한 미국 우생학회였다. 이 학회는 부자와 권력자들이 우수한 유전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말할 것도 없고 유럽에서도 남부와 동부는 열등한 민족이 살기 때문에 이민을 받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정신병, 발달 장애, 간질 환자들에 대해서는 강제로 불임 시술을 하자고 제안했다. 실제로 미국의 수많은 주들이 불임법을 도입했다. 독일 나치 정권은 미국의 불임법을 복제한 법률을 만들었으며, 우생학에 의거해 순수한 독일인 혈통을 보존하는 사업을 벌였고, 유대인과 유색인종과 동성애자 학살을 정당화했다. 진화론은 확실히 오남용의 위험이 큰 이론이다. - P218

우리는 정보의 바다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신문 방송이 시시각각 전하는 뉴스와 인터넷에서 만나는 정보들은 과연 얼마만큼의 진실을 함유하고 있을까? 누구도 알지 못한다. 모든 정보의 진실성 여부 또는 ‘진실 함유도’를 정확하게 따지려면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웬만한 것은 다, 누가 특별히 허위라는 문제 제기를 하고 분명하게 입증하지 않는 한, 대충 어느 정도는 사실이려니 여기게 된다. 이것이 평범한 사람들이 언론 보도를 대하는 기본자세이며, 우리네 삶의 어찌할 수 없는 한계다. 우리는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정보를 숨 쉬고, 왜곡과 거짓을 마시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의심해볼 수밖에 없다. 내가 가진 생각은 정말 내 생각일까? - P273

인생의 고비마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이번이 여섯 번째인 것 같다. 다시 카를 읽으며 사회와 역사의 진보,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생각한다. 카의 말마따나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그런 의미에서 모든 시대의 역사는 현대사임에 분명하다. 고대사 연구 프로젝트인 소위 ‘동북공정’은 만족할 줄 모르는 오늘의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제어할 수 없는 영토 확장 욕망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낸다.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제국주의 침략 전쟁의 행동은 그들이 미래에도 침략 전쟁의 죄악을 부인하도록 역사 교과서 수정을 강제한 일본 정부 당국자들의 행동은 그들이 미래에도 침략 전쟁을 벌일 의사가 있음을 증명한다. 조선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고, 대한민국 건국 이후 국가권력이 저지른 인권유린 범죄를 정당화하려한 형태는 그들의 마음속에 극우 파시즘 사상이 똬리 틀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든 시대의 역사는 현대사임에 분명하다. - P313

밀은 1859년 그 옛날에 쓴 책에서 그런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어리석은 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이후 화나고 아프고 어이없는 일들을 견디고 이겨낸 이들에게, 계엄의 밤 국회에서 계엄군을 막아섰던 시민들에게, 남태령의 기적을 만든 젊은이들에게, 눈보라를 맞으며 헌법재판소 앞에서 밤을 지새웠던 남녀노소에게, 무한히 큰 감사의 마음을 얹어 그 말을 전하고 싶다.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 오늘 우리를 본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대들은 인간의 모든 자랑스러운 것의 근원을 보여주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 P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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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25-08-20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유시민 책 중에 이 책이 제일 좋았어.

bookholic 2025-08-20 21:00   좋아요 1 | URL
‘청춘의 독서 2‘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27)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지나자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비현실적이었다고 해야 하나. 겨우 며칠 쉬었을 뿐인데, 온종일 사람들과 부대끼며 대화를 하고 이메일과 문자에 답장을 하며 보내던 모든 일상이 죄다 꿈처럼 느껴졌다. 정말로 그게 나의 삶이었냐? 나의 생활이었나? 그게 진짜 나였나? 혹시 다른 사람의 인생을 내 것을 착각한 것은 아니었나?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불안감이 확 치솟았고 다시 심장이 두근거렸다. 당장 사무실로 돌아가 밤새 커피를 들이키며 일을 하다 약간 죽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81)

끝났구나. 그래. 끝나버렸다. 무엇이? 삶이? 기다림이? 그래. 끝났어. 마음이 가볍다. 평온하다. , 사실 나는 이 순간을 기다렸던 것 같아. 왜냐하면 지쳤으니까. 그리하여 내 마음도 너무 늙어버렸으니까. 이렇게 힘을 빼고 있으니 모든 것이 편하다. 진작 포기할 걸 그랬다. 이제 드디어 쉴 수 있겠구나. 하지만 조금 억울해. 그리고 아쉬워.


(285-286)

그래. 미련은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지. 하지만 내가 살아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가장 강렬한 감각은 통증이야. 그렇지 않니? 통증은 모든 걸 정지시켜.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하지. 오르지 이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해. 그래. 내가 살아 있기 때문에 통증을 느끼는 거야. 하지만 그건 삶이 아니야. 통증을 인정하는 삶? 진심으로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야? 통증 이후의 삶? 정말 그걸 믿는 거야? 통증은 통증일 뿐이야. 교훈도 깨달음도 놀라운 반전도 없어. 내 육신이 쇠하는 과정을 절절히 느낄 뿐이야. 나는 덩어리야. 고통을 느끼는 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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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로드 7000km - 의열단 100년, 약산 김원봉 추적기
김종훈 지음 / 필로소픽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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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약산로드 7000km>라는 책을 이야기할게. 이 책은 아빠가 4년 전에 읽은 <임정로드 500km>란 책이란 같이 샀었는데, 이제서야 읽었구나. <임정로드 4000km>를 읽은 것이 얼마 안 된 줄 알았는데, 독서기록을 찾아보니 4년 전이었더구나. 참 세월 빠르다. <약산로드 7000km>란 책은 책 제목에 힌트가 있어. 약산 김원봉에 관한 책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단다. <임정로드 4000km>가 임시정부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여행 가이드라고 하면, <약산로드 7000km>는 약산 김원봉과 그가 이끌었던 의열단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여행 가이드라고 생각하면 된단다.

이 책이 나온 것은 2019년이기 때문에, 이 책에 나와 있는 여행 정보가 지금과는 조금 다를 수 있겠구나. 하지만 약산 김원봉과 의열단이 활동했던 장소들은 그대로일 테니, 그것으로도 충분히 여행 가이드가 될 수 있겠구나. 그런데 그 길이 7000km라고 하니, 쉽지 않은 길이겠다는 생각은 들었어.

약산 김원봉. 아빠가 약산 김원봉에 대해서 여러 번 이야기를 해서 너희들도 이름은 익히 알고 있겠지. 영화 <암살>에서도 잠깐 등장했던 약산 김원봉. 우리나라가 해방하는데 큰 공헌을 했던 사람에 손꼽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해방 후 친일파 고문기술사한테 치욕적인 고문을 당하고 북으로 갔다고 아직도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 그런 반면 20년 동안 일본 군대에서 복무했다가 처벌도 받지 않고 잠시 국군에 소속되어 있었다고 현충원에 안장되는 현실이런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라는 것이 아주 열 받는구나. 현충원에 묻혀 있는 독립운동가들이 자신의 주변에 친일파들의 무덤이 같이 있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복장 터지실까. 심지어 공식적인 친일파 명단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사람들도 현충원에 묻혀 있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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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0)

반 토막 난 독립운동사에 약산의 이름을 올려야겠다고 결심한 첫 번째 이유다. 국립서울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친일파 7인 김백일, 김홍준, 신응균, 이응준, 이종찬, 백낙준. 이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 만주군에 복무하면서 독립군을 때려잡던 인사들이다. 게다가 해방 후에는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아래 다시 국군으로 돌아와 보란 듯이 현역으로 활동했다. 이들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더 높은 자리로 영전했고 각각 군 사령관과 참모총장, 국방부 장관이 됐다. 국립서울현충원 장군 제2묘역에 묻힌 일본군 장교 출신 신태영과 이응준이 대표적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요 인사 묘역과 불과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들이 묻힌 장군 제2묘역이 있다. 의도했든 아니든 이들 친일파의 묘역이 애국지사 묘역보다 더 높은 곳에 자리한 탓에 친일파 무덤이 애국지사 무덤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형태다. 더 화가 나는 건 이름 없이 쓰러져간 수만의 독립군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대한독립군 무명 용사 위령탑역시 친일파 묘역 입구 하단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위령탑 아래가 의열단 출신 김익상과 김상옥, 박재혁, 곽재기, 최수봉, 이종암 등이 잠든 애국지사 묘역이다. 한마디로 친일파의 무덤이 조국 독립을 위해 청춘과 목숨을 다 바친 애국지사와 순국선열보다 더 높고 양지바른 곳에 위치해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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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의 무덤을 이장하는 법안이 국회에 여러 번 상정되었지만, 폐기 또는 체류 중이라고 하더구나. 이 책이 2019년에 나왔으니, 그 이후에 진전이 있나 검색해 보니 여전히 현충원에 친일파들의 무덤이 있는 것 같구나. 빨간당이 자신의 색깔에 맞게 여전히 친일 행각을 벌이고 있으니, 이런 일조차 험난한 길이 되는구나. 몇 달 전에도 국회에서 친일파 백선엽을 미화한 영화 시사회를 열었다고 하는데, 아빠의 상식선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구나. 그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그런데 그런 일본의 국기를 닮은 빨간당을 지지하는 동네 중에 밀양이라는 곳이 있단다. 아주 높은 지지율로 빨간당을 지지하는 그런 곳이란다. 약산 김원봉의 서훈을 앞장 서서 반대하는 빨간당을 지지하는 밀양이라는 곳이 바로 약산 김원봉의 고향이란다. 자기 고향의 자랑스러운 위인의 업적을 깍아내리는 정당을 눈감고 지지하는 곳. 이 또한 아빠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

밀양은 약산 김원봉뿐만 아니라 많은 의열단과 독립운동가들이 태어난 곳이라고 하는구나. 김원봉의 고모부로 독립운동을 한 황상규, 윤세주, 김대지, 고인덕 등이 독립 유공 애국지사 80여 명이 이 곳 출신이란다. 밀양은 의열의 도시라 할 수 있어. 그래서 의열기념관과 밀양독립운동기념관이 있단다. 그리고 약산 김원봉의 아내에서 독립운동가로 전투 중에 총상으로 운명을 달리한 박차정 지사의 묘도 밀양에 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박차정의 묘가 너무 초라하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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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6)

1910년에 태어나, 약산보다 정확히 12살 어렸던 박차정 지사는, 집안이 모두 독립운동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대한제국 탁지부 주사를 지냈던 부친 박용한은 일제의 침략에 분노해 자결했다. 숙부 박일형과 친척들, 오빠들도 모두 항일 운동에 뛰어들었다. 외가 쪽 역시 독립운동가 김두전과 김두봉이 친척인 집안이다. 이러한 집안 분위기 때문에 신간회, 의열단 등에서 활동한 큰오빠 박문희, 둘째 오빠 박문호 등과 함께 박차정 지사 역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그는 일찍이 동래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인 일신여학교 시절부터 지역을 대표하는 독리운동가로 활약했고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 1월 서울 여학생 시위사건을 배후에서 지도했다. 그러나 근우회 사건으로 구금된 다음 일경의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병석에 누워있던 박차정 지사를 의열단에 몸담고 있던 둘째 오빠 박문호가 불렀고, 지사는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에 합류했다. 1930년 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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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반해 밀양시는 친일파 음악가 박시춘을 기념하는 기념관을 건립한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로구나. 이 책이 나올 때는 아직 건립이 안 되었고 여러 시민단체들이 반대하고 있던 중인데, 지금 검색을 해보니, 다행히 아직 건립되지 않은 모양이구나.

 

1.

약산 김원봉은 19살에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중국으로 떠나 텐진, 난징, 센양 등에서 활동하가다 지린이라는 곳에서 고모부 황상규를 만나고 신흥무관학교에 가기로 결정했단다. 신흥무관학교를 나오고, 1919 11 10일 지린시 광화로 57호에서 의열단을 만들었단다. 의열단 단장인 의백은 김원봉이 맡았지만, 고모부 황상규가 많은 도움을 주었단다. 의열단의 공약 10조를 읽어보면 그들의 독립투쟁 의지를 엿볼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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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의열단 공약 10>

1. 천하의 정의를 맹렬히 실행한다.

2. 조선의 독립과 세계의 평등을 위해 신명을 희생한다.

3. 충의의 기백과 희생의 정신이 확고히 자라야 의열단원이 된다.

4. 단의(團義)를 우선하고, 단원의 의()도 급히 실행한다.

5. 의백 일인을 선출해 단체를 대표케 한다.

6.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매월 일차식 사정을 보고한다.

7.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초회(招會)(부름)에 반드시 응답한다.

8. 피사(被死)(죽음을 피하지) 아니하며 단의의 전력을 다한다.

9. 하나의 아홉을 위하여 아홉이 하나를 위해 헌신한다.

10. 단의(團義)를 배반한 자는 척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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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은 박재혁, 김익상 등이 국내외 많은 활동을 해서 일본의 간담을 서늘케 했단다. 아빠가 의열단 활동은 이전에 김원봉 관련 책에서 여러 번 이야기했으니 오늘은 생략할게. 박재혁 님의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만 책의 내용을 발췌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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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부산 출신 박재혁은 1920 9월 초 상하이를 떠나 일본 나가사키를 거쳐 부산에 도착한다. 1920 9 14일 고서상으로 위장한 박재혁은 부산경찰서 서장 하시모토 슈헤이와 마주한다. 그리곤 고서 상자 속에서 미리 준비한 폭탄을 꺼내들고 하시모토에게 나는 상하이에서 온 의열단원이다. 네가 우리 동지들을 잡아 우리 계획을 깨뜨린 까닭에 우리는 너를 죽인다라고 외치며 폭탄을 투척한다. 폭탄에 맞은 서장은 수일 뒤 사망했다.

박재혁 역시 현장에서 폭탄을 맞아 부상을 당하고 체포됐다. 1921 3, 경성고등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혹독한 고문과 상처로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사형 선고 전, ‘왜놈의 손에서 욕보지 말고 차라리 내 손으로 죽겠다라고 결심한 뒤 곡기를 끊고 단식하다 옥사하였다. 의열단다운 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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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웨일즈의 <아리랑>으로 널리 알려진 김산도 의열단원으로 일했었단다. 김산은 김원봉, 김성숙과 가까웠고 베이징에서 자주 모임을 가졌다고 하는데, 당시 베이징에 있던 의열단 본부의 위치를 정확히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하는구나. 이 책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의열단의 발자취를 쫓던 여행 가이드이기 때문에 의열단과 관련된 장소들을 찾아서 사진도 삽입되어 있단다. 의열단에 도움을 준 이들 중에는 단재 신채호, 이육사도 있어 그들의 흔적도 찾는 노력을 했단다.

아빠가 아는 독립운동가 중에 이태준이라는 분이 계신데, 이 분은 몽골에서 유명한 의사로 활동하던 분이야. 억울하게 러시아 백군에게 죽음을 당하는데, 그가 죽기 전에 폭탄제조 전문가인 헝가리 사람 마자알에게 의열단을 소개해주었고, 이태준이 죽은 이후 마자알은 혼자 의열단을 찾아와 도움을 주었단다. 이 이야기는 아빠가 예전에 읽은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에서 알게 된 이야기인데, 이 책에도 또 나오는구나. 이태준 님에 관한 책을 오래 전에 사두었는데 조만 간에 읽어봐야겠구나. 읽어야 할 책들이 너무 많아.

의열단의 활동은 전에도 이야기했던 종로경찰서를 공격한 김상옥 의거, 오성륜, 김익상, 이종암의 황푸탄 의거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어. 불사신 김익상은 끝내 체포되어 21년간 형살이를 하고 풀려났는데, 다시 경찰이 데리고 간 이후 행적이 묘연해졌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오셩륜은 일제 말기 변절했다는 이야기도 해주었어.

….

의열단의 발자취를 따라 가다 보면 금륭대학이라는 곳이 있어. 오늘날은 난징대학교로 이름이 바뀌었어. 금륭대학 강당에서 민족혁명당이 만들어졌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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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233)

그런데 이곳(금릉대학)이 우리 역사에서 더욱 중요하게 평가돼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1935 7, 기라성 같은 애국지사들이 금릉대학교 강당인 대례당에 모여 민족혁명당을 만든다. 면면이 화려했는데 의열단 출신은 약산을 필두로 석정 윤세주, 진이로, 박효삼이 함께 했고, 신한독립당 출신으로 지청천과 신익희, 윤기섭이, 조선혁명당 출신은 최동오와 김학교가 함께 했다. 김두봉과 조소앙, 김규식, 김상덕, 최창익, 허정숙, 안광천 등도 동참했다. 2200여 명의 독립운동가들이 함께했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김구는 위해 중앙집행위원회의 집행위원장 자리를 공석으로 두었으나 마지막까지 고사했다. 임시정부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결국 위원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서기부와 조직부와 실질적으로 권한을 행사했다. 서기부의 부장은 약산, 조직부의 부장은 김두봉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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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두 거두라고 하면 약산 김원봉과 백범 김구를 들어 있어. 둘은 지향하는 바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그들의 목표는 오직 조국의 독립이었단다. 임시정부 초창기에 김원봉에 잠시 참여했다가 실망한 후 다른 길을 갔지만, 1940년대에 들어서 그들은 다시 만나고, 당시 김원봉이 이끌었던 조선의용대는 김구의 한국광복군에 편입하게 된단다. 김구와 김원봉은 조선 독립을 위해 듯을 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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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303)

두 사람(김구, 김원봉)은 진심으로 화합해 조국 독립을 바랐다.

우리 두 사람은 3.1운동 이후 해외에서 일본제국주의를 향해 계속 분투했다. 그러나 과거에는 한 개의 강적에 대한 투쟁을 통일적으로 강하고 유력하게 진행하지 못하였다. 이것은 군중을 떠난 우리 두 사람의 특수환경의 영향도 없지 않았으나, 주로는 우리가 민족적 경각성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민족혁명의 전략적 임무를 정확히 파악 실천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과거 수십 년간 우리 민족운동 사상의 파쟁으로 인한 참담한 실패의 경험과 중국민족의 최후의 필승을 향하야 매진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민족적 총 단결의 교훈을 이전의 착오를 통해 통감한다. 우리 두 사람은 신성한 조선 민족 해방의 대업을 위해 동심협력할 것을 동지동포 앞에 고백하는 동시에 목전의 내외 정세와 현 단계의 우리 정치 주장을 이하에 진술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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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임정 세력과 다시 손을 잡았지만, 여전히 임정 내부에서는 김원봉을 견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는구나. 그래도 결국은 해방을 맞이하게 되고, 조국에 돌아왔지만, 기다리는 것은 경찰이 된 친일파들이었지. 친일파를 청산하기는커녕 그들이 다시 경찰의 요직을 차지하고, 일제 치하에서도 잡혀 본 적이 없는 김원봉이 해방된 조국에서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까지 받게 되었으니 얼마나 억울하겠니. 거기에 여운형 등도 암살 당하는 남한 사회에 치를 떨었을 거야. 고향인 밀양을 뒤로 하고 북으로 가는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북에 가서도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하고, 결국은 한국 전쟁 후에 숙청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잖니. 약산 김원봉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아빠가 더 억울하더구나.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공적을 알아주었으면 하고, 나라에서는 이제라고 공식적으로 그의 공적을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참 도발적이게도 난 약산 김원봉을 통해 반 토막 난 우리 독립운동사를 말하고 싶었다.

책의 끝 문장: 김약산을 기억한다.

 


밀양, 약산 김원봉이 태어난 도시다. 약산의 평생지기 석정 윤세주도 밀양에서 태어났다. 약산의 고모부 백민 황상규를 비롯해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은 독립유공 애국지사만 80여 명이다. 안동과 더불어 인구대비 가장 많은 숫자다. 한마디로 독립유공자의 산실과 같은 장소다. 2018년 봄 약산의 생가터에 밀양시가 의열기념관을 세우고 나서 밀양을 찾아야 할 이유가 더 분명해졌다. 그러나 2019년 들어 밀양시가 친일파 박시춘을 중심으로 한 <가요박물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지사들의 얼굴에 먹칠하는 부끄러운 일이다. 약산의 생질 김태영 박사와 밀양 출신 청년들을 중심으로 가요박물관 건립을 막고 있다. - P17

그러나 백민 황상규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우리 독립운동사의 큰 족적을 남겼다. 1차 의열단 의거 실패 후 감옥에서 6년여를 보냈다. 출소 후에도 밀양에서 지역 운동을 전개하며 지역 리더로서의 역할을 실천했다. 1927년 12월부터는 신간회의 밀양지회장으로 선출되고 왕성한 활동을 벌인다. 하지만 고문 등으로 이미 몸이 쇠약해진 상태, 한때 관운장이라 불릴 정도로 강인한 그였지만 과로 등이 겹치며 결핵성 복막염을 앓았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사건이 터지자 황상규는 진상조사단이 돼 몸을 돌보지 않고 사건을 알렸다. 결국 더 이상 버티질 못했다. 1930년 초 황상규는 다시 고향에 돌아와야만 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듬해 9월 황상규는 눈을 감는다. 사인은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발생한 폐결핵과 복막염 악화. 의열단의 정신적 스승이자 행동하는 지성인이었던 백민 황상규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 P103

김산은 의열단 의백 김원봉과 의열단원 김성숙과 특히 사이가 가까웠다. 베이징에서 자주 모임을 가질 만큼 서로 믿고 의지하는 사이였다. 이 만남은 훗날 ‘황포군관학교’라는 공통분모까지 이어진다. 그만큼 각별한 사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단 김산과 약산 모두 책벌레였다. 특히 두 사람이 다 러시아 문학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두 사람은 만나면 할 이야기가 많았다. 물론 그만큼 머리도 비상했다. 중앙학교-덕화학교당-금릉대-신흥무관학교를 거친 약산의 비상한 머리야 익히 알려진 바고, 김산 역시 신흥무관학교-난카이대-협화의대-황포군관학교-중산대 등을 거친 수재였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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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16 2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항일로드도 나왔던데 아직 못읽었네요. 김원봉이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게 말이 안되는데도 여전히 그런 현실이..... 그래도 밀양 항일테마거리에 가면 항일기념관과 항일 체험관이 꽤 잘 꾸며져 있습니다. 밀양에는 독립운동가이자 김원봉님의 부인이었던 박차정님의 무덤이 있는데 김원봉님이 해방루 고향에 돌아올때 유골을 가져와 안장했어요.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산길을 헤매며 찾아간 무덤이 너무 하술하게 관리가 안되어서 많이 부끄럽고 가슴 아팠습니다

bookholic 2025-08-17 08:48   좋아요 1 | URL
말씀하신 <항일로드>는 리스트에 올려 놓겠습니다^^
독립운동가들에게는 이념의 색깔을 씌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밀양 여행을 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