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행 왔다가
알라딘 부산 센텀점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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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4)

너희처럼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항상 너무나 쉽게 경험적 사실에 의지해 버리고, 또 그것으로 진리를 얻었다고 믿어 버린다. 그러나 사람들이 경험에서 실제로 무엇이 일어나는가를 고찰한다면 너희들이 갖는 방식은 나에게는 매우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너희들이 말하는 것은 요컨대 너희들이 사고하는 방식에서 오는 것이며, 너희들이 알고 있다는 것은 그런 사고방식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런 사고는 물론 사물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물들을 직접 인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먼저 표상으로 변화시키고 그리고 나서 그것들로부터 개념을 형성해야 한다. 감성적인 인지를 통해 인지로부터 우리에게 몰려드는 것은 매우 다양한 종류의 인상들의 무질서한 혼합물이다. 우리가 나중에 인지한 형태나 성질들은 직접적으로는 그 인상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36~37)

저는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그렇게 쉽게 미래를 쉽게 선택할 수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 까닭은 내가 훌륭한 음악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차지하더라도 오늘날 사람들이 어느 영역에서 가장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그 영역의 상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음악의 경우, 최근의 작곡가들은 옛날의 작곡가에 견주어 충분히 이해가 가지를 않습니다. 17세기의 음악은 그 당시의 음악에서는 개개인의 감정세계로 이행이 이루어졌고, 낭만주의적인 19세기의 음악은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곳까지 침투해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음악은 이상하게도 불안감이 짙으며 도리어 허약한 실험단계에 빠진 것같이 느껴집니다. 이 단계에서 이미 정해진 궤도에 따라서 전전하려는 확실한 의식보다는 이론적인 고찰이 더 큰 구실을 하고 있는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에서는 상황이 다릅니다. 그곳에서는 이미 설정된 궤도의 추구-20년 전까지만 해도 그 목표는 전자기적 현상의 이해였음에 틀림없었지만-는 저절로 공간과 시간의 구조라든가, 인과법칙의 타당성과 같은 철학적인 근본적 위치가 문제되는 그러한 곳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바로 앞조차 뚜렷이 내다볼 수 없는 신천지가 열렸으며, 따라서 뚜렷한 대답을 얻기 위하여서는 많은 물리학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활동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고 믿습니다. 이러한 분야에서 내가 무엇인가 공동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매력 있는 일로 여겨집니다.”

(40)

예를 들면 물이라는 액체는 얼음이 녹는다든지 수증기가 액화할 때, 또는 수소가 연소할 때도 항상 그 모든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똑 같은 것이 새롭게 형성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물리학에서는 이와 같은 사실이 항상 전제되어 왔으나 한 번도 이해되어 본 일은 없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물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화학은 이 개념을 효과 있게 사용해 왔지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뉴턴의 운동법칙을 가지고는 그 같은 물질의 최소부분의 운동의 안전도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원자들이 항상 반복하여 같은 상태로 배열되고 운동하고, 그 결과 동일한 안정된 특성을 가진 원소들이 반복해서 생성된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종류의 자연법칙에 관해서는 20년 전에 발표된 플랑크의 양자론에서 최초로 시사된 바 있다.

(56~57)

그러나 볼프강은 이 같은 견해를 지나치게 실증주의 일변도로 흐를 주장으로 보았다. 그는 말하였다.

나는 뉴턴의 천문학은 원칙적으로 프톨레마이오스의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뉴턴은 문제 설정에 변화를 가지고 온 것이다. 그는 운동을 주된 문제로 삼은 것이 아니라, 먼저 운동의 원인을 문제삼았다. 그는 그 원인을 힘에서 찾았고, 행성계에서는 힘이 운동보다 간단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그것을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기술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뉴턴 이후에 행성의 운동을 이해하였다고 한다면 정확한 관측에 따른 행성의 매우 복잡한 운동을 대단히 간단한 것, 즉 중력에 귀착시킴으로써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프톨레마이오스에게는 사람들은 그 복잡한 것을 원과 주전원의 중첩을 통하여 서술할 수 있었으나 그것은 단순한 경험적 사실을 받아들인 데 지나지 않았다. 뉴턴은 그 밖에도 행성의 운동에도 던져진 돌의 운동, 진자의 진동, 또는 팽이의 춤 등에서와 같은 운동과 본질적으로는 같은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뉴턴의 역학에서는 이 같은 일련의 상이한 현상들을 동일한 바탕 위에, 질량x가속도=이라는 유명한 공식에 귀착시킬 수가 있었던 데서 행성계에 관한 뉴턴의 설명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설명을 훨씬 능가하고 있는 것이다.

(88)

보어는 이에 관해 이야기를 한 뒤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바로 이 성에 햄릿이 살았었다는 것을 알고 나면 이 성이 달리 보이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우리가 말하는 과학이라는 견지에서 말한다면, 사람들은 이 성이 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믿고 있으며, 또한 건축가가 쌓아올린 그 형식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돌들과 녹이 슬어 있는 녹색 지붕의 교회 안에 있는 부조(浮彫), 이것들이 바로 이 성입니다. 햄릿이 여기서 살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에도 이 모든 것들은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않고 그대로 있는데도 이 성은 완전히 다른 성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갑자기 이 성의 담과 돌벽은 우리에게 다른 언어로 말을 걸어옵니다. 성의 안뜰이 전세계로 바뀌고 어두운 구석은 인간 영혼의 어두움을 상기시키고, 우리는 사느냐 죽느냐라는 저 유명한 물음을 듣게 됩니다. 우리는 실제로 햄릿에 관해서 거의 아무것도 아는 게 없습니다. 다만 13세기 연대기의 짧은 주석 안에 햄릿이란 이름이 나와 있을 뿐입니다. 그가 실제로 생존했던 인물인지, 그가 여기사 살았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들은 셰익스피어가 이 인물과 어떠한 문제를 결부시켰는지, 그리고 그때 인간 영혼의 어느 깊은 곳을 비추어냈는지를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인물은 이 지상에서 한 장소가 필요했으며, 바로 그 장소로 이 크론보르크성을 찾아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일단 이 모든 것을 알고 난 다음에는 이 성은 바로 다른 성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94)

나는 저만큼 떨어진 곳에 있는 전주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상당히 닿을 만한 거리였다. 확률적 예상을 뒤엎고 나는 단 한 번으로 그 전주에 맞혔다. 보어는 아주 깊은 생각에 잠기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람들이 어떻게 팔을 움직여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하면서 돌 던지기를 시도할 때는 적중할 확률은 거의 없다. 그런데 모든 이성을 무시하고 혹시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단순한 생각 아래 던지면 사정은 좀 달라집니다. 지금 바로 그것이 일어난 것입니다.”

(108)

현재까지 우리들은 어떠한 언어로 원자 안의 사건을 설명할 수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확실히 수학적 언어, 즉 수학적 도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의 도움을 빌려서 원자의 정상상태나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이행하는 확률을 계산할 수 있지만 이 언어가 우리의 통상적인 언어와 일반적으로 어떻게 연관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의 도움을 빌려서 원자의 정상상태나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이행하는 확률을 계산할 수 있지만 이 언어가 우리의 통상적인 언어와 일반적으로 어떻게 연관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론을 실험에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이 연관성이 무엇인가를 알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실험결과에 관해서는 아직도 항상 일반적인 언어, 즉 고전물리학에서 지금까지 사용되어 온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직은 양자역학을 이해하였고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닙니다. 수학적인 도식은 이미 형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언어와 맺는 연관성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일단 이것이 형성되기만 하면 사람들은 안개상자 안의 전자 궤도에 대해서도 아무런 내부모순이 없이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난점을 해결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봅니다.”

(116)

과학의 진보는 그 종사자들에게 새로운 사고 내용을 받아들여서 그것을 구체화하는 것을 요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를 위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그러나 실제로 신세계에 들어가려면 새로운 사고 내용을 받아들여야 할 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 사고구조를 바꾸어야 할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받아들일 위치에 놓여 있지 않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결정적인 한 발짝을 내딛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나는 라이프치히의 자연과학자대회에서 처음으로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양자론에서도 본질적으로 어려운 고비가 눈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만 했다.

(127~128)

닐스 보어가 노르웨이에서 스키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또 한 번 어려운 토론이 벌어졌다. 그는 자기 생각을 계속 추구하면서 파동상과 입자상의 이중성을 해석의 바탕으로 삼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의 고찰의 중심에는 그가 이번에 새롭게 고안해낸 상보성원리가 있었다. 이 원리를 하나의 사건을 두 가지의 다른 관찰방식으로 파악할 수 있는 상태를 서술하는 것이었다. 이 두 관찰방식은 서로가 서로를 배척하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서로 보충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관찰방식을 병행함으로써 비로소 하나의 현상의 직관적 내용이 완전히 풀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불확정성 관계도 상보성원리의 일반적인 상황 가운데 어떤 특수한 경우라고 느꼈던 모양이고, 따라서 그는 불확정성 관계에 대해서 몇 가지 유보조건들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당시 코펜하겐에서 일하고 있던 스웨덴의 물리학자 오스카 클라인의 도움으로, 둘은 쌍방의 해석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없다는 데 합의를 보았다. 이제는 완전히 이해된 사실을 그것이 비록 새로운 사실일지라도 일반 물리학자들에게 공개할 때 그것이 이해될 수 있도록 표현하는 문제가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우리는 인식하였다.

(186~187)

우리들은 전자가 어느 방향에서 방출될 것인가를 알지 못 한다고 확인하였습니다. 당신으로 그러니까 이 방향 결정요소를 계속하여 찾아야 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러한 결정요소를 찾았다고 가정한다면 다음과 같은 어려운 고비에 부딪치게 됩니다. 즉 방출된 전자는 또한 원자핵으로부터 방사되는 물질파로써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파동은 간섭현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선 원자핵에서 반대방향으로 방사된 파동 부분은 그것에 맞추어 설치해 놓은 장치 안에서 간섭현상을 일으켜 그 장치의 결과로 어떤 일정한 방향으로의 파동은 소멸하였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것은 전자가 이 방향으로는 결국 방출되지 않는다는 것을 예언할 수 있음을 뜻하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새로운 결정요소를 알고, 전자가 어떤 일정한 방향으로 방출된다는 것이 완전히 결론지어졌다면 간섭현상이라는 것은 절대로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즉 간섭에 따른 소멸은 없을 것이며, 따라서 우리가 이끌어낸 결론은 더 이상 유지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소멸현상은 실험적으로 관찰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서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결정요소는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지식은 더 이상의 새로운 결정요소가 없이도 이미 완전하다는 것을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193~194)

칸트는 그의 선천적인 것으로써 당시 자연과학의 인식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했지만 오늘의 원자물리학에서는 우리는 새로운 인식론적 상황 앞에 서 있습니다. 그것은 아르키메데스의 지레의 법칙이 당시의 기술적 측면에서는 중요한 실제적 규칙성의 정확한 정식화를 나타내고 있었지만, 오늘의 기술, 말하자면 전자기술에서는 이 법칙은 이미 충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비슷합니다. 아르키메데스의 법칙은 불확실한 의견이 아니라 참지식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레에 관해서 말해지는 한에서는 어떤 시대에도 통용될 것이며, 저 멀리 어딘가 있는 다른 성원계의 행성에도 지레가 존재한다면 거기서도 아르키메데스의 주장은 옳을 것입니다. 인류가 자기 지식의 학장과 더불어 지레의 개념만을 가지고는 이미 충분치 않은 기술의 영역에 돌입한다고 하는 진술의 제2부분은 본디 지레의 법칙이 역사적인 발전과정에서 더 포괄적인 기술체계의 일부가 되고, 따라서 그 법칙이 처음에 가지고 있던 중심적 의의가 그 뒤로는 이미 통용될 수가 없게 되었음을 뜻할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칸트가 한 인식의 분석은 단순히 불확실한 의견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참지식이며, 반응할 수 있는 생물이 그 외부세계에 대하여, 우리들 인간의 처지에서는 경험이라고 불리는 그러한 관계에 서게 될 때에는 칸트의 철학은 어디에서나 정당한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칸트의 선천적인 것도 뒷날 그 중심적 지위에서 추방되고 인식과정의 좀 더 포괄적인 분석의 일부분이 되고 말 것입니다. ‘자연과학적인 또는 철학적인 지식이 어느 시대에도 그 본래적인 진리를 갖는다는 명제로서 완화하려고 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의 사고구조도 바뀐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과학의 진보란 다만 단순히 우리들이 새로운 사실을 알고 그것을 이해한다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해한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느냐 하는 것을 항상 거듭 새롭게 배워나감으로써 성취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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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퇴근하고 

집에 와보니

우리집 십대소녀께서

편지라면서 종이 하나를 건넸는데...

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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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1-26 07: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롱다리 머큐리네요^^:)

syo 2019-01-26 0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오....

카알벨루치 2019-01-26 09:25   좋아요 1 | URL
에오2

bookholic 2019-01-26 09:58   좋아요 1 | URL
˝에~~~ 오~~~~˝ 30년이 지나서 유행어가 된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님, syo님, 카알벨루치님, 모두 ˝에~~~~ 오~~~˝하는 주말 되세요...^^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 한 팀이 된 여자들, 피치에 서다
김혼비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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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도 축구를 좋아하는 편이야.. 아주 예전에는 조기 축구도 하고 그랬는데…. 언젠가부터 기회도 없어지고, 체력도 떨어지고, 낯가림도 많아지고, 게으름도 많아지고 나서는 축구를 할 기회가 없구나. 하지만 축구 보는 것은 여전히 좋아한단다. 작년에는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때는 너희들과 함께 축구를 보고 같이 응원을 할 수 있어 좋았단다. 그런데 방금 전 아시안컵에 보다가 속 터지는지 알았단다. 국가대표 경기 말고 프로축구도 가끔 보고, 유럽축구도 즐겨본단다. 그런데, 아빠가 보는 축구는 늘 남자들이 하는 축구였단다.

여자축구를 본 적이 있나 싶어.. 이 책을 읽고 나서 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단다. 축구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여자축구 경기를 제대로 한번 관람한 적도 없으니 말이야. 우리나라에 여자프로축구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단다. 그냥 실업 축구단만 있는 줄 알았어. 그리고 그 여자프로축구는 입장료도 없다고 하더구나. 그런데도 관객은 거의 없다고 하고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여자축구의 관심이 늘었으면 하네.

축구를 좋아하지만 축구에 관한 책은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그런데 제목에 떡 하니여자 축구라고 써있는 책을 왜 읽었냐고? 이 책은 먼저 읽은 이들의 극찬이 이어진 책이란다. 아빠도 축구도 좋아하니까 읽어보고 싶어서 기억하고 있다가 이번에 읽게 된 것이란다. 김혼비라는 필명을 가진 분이 끈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라는 책이야.

평범한 직장 여성이 아마추어 여자축구단에 가입해서 일어났던 에피소드들을 모아 놓은 글이란다.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단다. 말을 재미있게 쓰는 사람은 꽤 있지만, 글을 재미있게 쓰는 사람은 많지 않거든. 지은이의 첫 번째 책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게 썼단다.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렇게 킥킥 웃으면서 읽은 책이 있나 싶었단다. 비유 또한 놀랍더구나. 폴란드 학생을 소환하고 실존주의를 소환하는 실력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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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골키퍼의 선방에 막혀 튀어나온 공을 리바운드해서 골로 연결하는 것,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바라 마지않았고, 하려고 노력했던툭 쳐서 주워 먹기를 드디어 성공했는데, 하필 골키퍼가 나였다. 저 시나리오에서 골키퍼도 내가 되고 주워 먹는 사람도 내가 될 수 있었다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대반전이다. 마치 폴란드 영화 학교 2학년생이 실존주의에 대해 고민하다가 써낸 단편 영화 시나리오 같다. 살면서 내가 골을 넣는다는 것도 매우 현실성 없는 불가능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살면서 내가 자책골을 넣는다는 것은 아예 상상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던 일이었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동시에일어났다. 축구가 진짜 이렇게 전복적인 종합 예술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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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읽은 이들이 왜 극찬을 했는지 알겠더구나.

 

 

1.

여자가 축구를 좋아한다고 하면 보통 보는 것을 이야기하는 거야. 2002년 월드컵 이후에는 여자들도 축구 보는 것을 많이들 좋아하는 것 같더구나. 그 이전까지만 해도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로 축구 이야기가 3등이었고, 1등이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라는 우스개도 있었어. 최근 들어서는 축구에 관심이 많은 여자들도 많아졌지만, 유럽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들은 아빠 주변에 없는 것 같아. 예전에 재미있게 읽은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의 여자 주인공이 바르셀로나와 유럽축구의 광팬으로 나왔던 것이 기억나는구나. 이 책의 지은이 김혼비도 브라질의 전설적인 축구선수 호나우두에 반해서 그가 뛰었던 유럽축구에 빠졌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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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7)

나는 어느 날 우연히 호나우두가 스텝오버하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보통 헛다리를 짚을 때는 달리는 속도가 확 줄기 마련인데 그런 기색 하나 없이 수비수들을 휙휙 제치고 죽죽 나아가고 있었다. 아니, 저게 가능한가? 물리학적으로 말이 되나? 마지막에는 골키퍼까지 스텝오버로 제치고 골을 꽂아 넣는데, 축구가 저렇게까지 아름다울 노릇인가 어이없을 정도였다. 우아한 헛다리와 그물 안으로 감겨들어 가는 공의 궤적과 관중들의 얼굴에 역력한 감동의 흔적. 어마어마한 규모의 관중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지만 세상이 잠시 숨을 죽인 것 같은 시간이었다. 그때부터 축구에 본격적으로 빠져들어 오랫동안 호나우두를 따라다니며 해외 축구를 찾아봤다. (새벽 중계가 대부분이어서 오랜만에 AM 김혼비가 맹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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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직접 여자가 축구를 한다? 아빠 주변에는 물론 축구 하는 여자가 없기 때문에 축구 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가 없었어.  이 책은 그런 축구 하는 여자가 직접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어. 그들이 뛴 경기뿐만 아니라 경기장 밖에 있었던 일들까지 말이야. 그것도 극적인 반전과 순발력 있는 위트까지 가미해서 말이지때로는 콧등 찡한 감동도 주었어. 연령대도 다양하고 직업도 다양한 그녀들은 왜 축구를 하는 것일까? 여자 축구에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 남자 축구와 달리 섬세함이 있다면서 이번에는 트럼프 카드를 소환해서 비유했단다. 지은이는 비유의 천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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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신체 조건상 남자 축구에 비해 힘과 속도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여자 축구만의 독특한 색깔이 나온다 남자 축구는 뭔가 휙휙 재빠르게 지나가 버리는 느낌이라면, (물론 그게 또 재미지만) 여자 축구는상대적으로느리고 정적인 몸동작과 전개가 선수들과 공이 만들어 내는 축구의 전체적인 그림을 좀 더 명확하게 보여 준다. 패스 워크라든지, 오프더볼 상황에서의 움직이라든지, 역습 때의 호흡 같은 것들을 그때그때 섬세하게 읽어 내는 재미가 있다. 툭툭 주고받는 짧은 패스들이 중간에 끊기는 일 없이 호쾌한 슈팅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한 장 한 장 엇갈리게 섞인 트럼프 카드가 둥그렇게 만든 손 모양을 따라 폭포처럼 아래로 좌르륵 떨어지며 반듯하게 정리되는 것을 볼 때처럼 살짝 황홀하고 근사한 기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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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킥킥 웃음을 참으며 책을 읽다 보면 금방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르게 된단다.. 마지막에는 생각거리를 하나 던져 주었어. 많은 사람들이 축구를 남자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자 축구는 그런 인식의 틈을 내고 인식의 변화를 만들었다고 했어. 축구뿐만 아니라 우리가 은연중에 남자의 전유물로 여기는 많은 분야에 여자들의 도전으로 인식인 바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단다. 옳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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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그러다 보면 지금은 너무나 아득해서 보이지도 않는, 축구처럼 아직까지도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다른 많은 분야들에서 끊임없이 인식의 구획에 틈을 내고 틈을 넓히는 많은 사람들과 마침내 아무 구획도 없는 넓은 광장에서 만나는 그 날을 조금이라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초개인주의자’인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지만, 그렇다 인간은 모일수록 좋은 것 같다. 적어도 축구공 앞에서, 특히 여자들은. 무엇보다 축구는 재미있으니까. 너무 재미있으니까. 뭐가 됐든 재미있으면 일단 된 것 아닌가. 정말이지, 이거, 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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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서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했단다. 그래서 여자프로축구에 대해서 검색도 해보고 그랬어. 앞으로 남자 축구뿐만 아니라 여자 축구에도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해나중에 기회가 되면 너희들과 여자프로축구를 한번 보러 가도 좋고.. 공짜라잖아..^^

 

PS:

책의 첫 문장 : “나이 먹으면서 취향이 변하는 게 맞나 봐. 난 원래 운동하는 거 질색했는데.”

책의 끝 문장 : 뭐가 됐든 재미있으면 일단 된 것 아닌가. 정말이지, 이거 기절한다.


(8)

그러다가 성인이 되어 우연찮게, 썩 탐탁지 않은 마음으로, 룰도 제대로 모른 채 축구를 시작한 여자들이 있다. 그들은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넓은 피치 위를 뛰어다니고, 공 다루는 섬세한 기술들을 하나둘씩 익혀가고, 팀원들끼리 호흡을 맞춰 골대를 향해 공을 착착 몰고 가는 재미에 푹 빠지며 ‘아, 사실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구나’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운동에 대한 깊고 오랜 오해 하나가 풀렸을 뿐인데 그녀들에게 축구를 시작한 이후의 시간들은 전과 다른 시간이 되었다.

(34)

이렇게 운동 효과 면에서나 대외 이미지나 일상 활용성에서 모두 애매하디 애매한 운동이면서, 결정적으로 접근성까지 낮다. 다른 운동처럼 여기저기 배울 곳이 있고 정보가 널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경로로 열심히 검색해 봐야 하나씩 겨우 나온다. 이 모든 것이 여자들이 그라운드로 진입하는 것을 겹겹이 막으며 철통 수비하고 있다. 축구로 입문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축구인 것이다.

(43)

반면 남의 축구는 거의 보지 않는 이 ‘축구하는 여자들’ 머릿속에 뜨는 것들은 본인이 넣었던 첫 골, 본인이 경기 중 저지른 뼈아픈 실책, 우리 팀이 역전승하던 날, 우리 팀 유니폼 같은 것들일 것 같다. 그 속에는 오직 나 자신, 내가 속한 팀만이 있다. 어느 프로 축구팀의 어느 유명 선수가 끼어들 틈 없이. ‘축구’와 관련해서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자신의 몸에 새겨진 경험들로만 꽉 채워져 있는 여자들. 오, 생각해 보니 이건 이거대로 멋있잖아?

(64)

이게 다 아웃사이드 드리블 때문이다. 아웃사이드 드리블은 발 바깥쪽을 이용해서 새끼발가락이 공 밑 부분에 살짝 들어가듯 차, 공을 밀어내며 전진하는 것을 말한다. 이 드리블 최고의 장점은 수비를 속일 때 아주 유용하다는 점이다. 이쪽으로 갈 것처럼 몸을 기울여서 상대 선수가 덩달아 그쪽으로 몸이 기운 틈을 타 반대쪽으로 휙 빠져나가기 좋기 때문이다. 축구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이라면 단연 ‘슛! 골인’이겠지만, 수비를 휙휙 제치며 빠져나가는 순간도 그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나를 축구로 확 끌어들인 장면도 호나우두의 골이 아니라 헛다리 짚기 아닌가! 로빙슛의 그날, 우리 주장이 보여 줬던 현란한 페인트 동작은 또 어떻고!

(67)

공을 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순간 어쩐지 공을 헛 찰 것 같고, 발, 발등, 새끼발가락, 땅을 딛고 있는 반대편 다리로 온 신경이 분산되면서 스텝이 엉키거나 힘이 지나치게 들어가 공을 이상하게 차고 만다. 인간이란 무언가를 의식하는 순간 그 의식의 대상에 필요 이상으로 파괴적인 힘을 주는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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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1-26 0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자 축구 지고 난 후 딱 들어맞는 리뷰입니다 굿뜨!!! 이거 빌려놓고 언제까지 썩힐런지 ㅋㅋ

bookholic 2019-01-26 00:23   좋아요 1 | URL
이번 주말에 즐독하시기를...^^

카알벨루치 2019-01-26 00:2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23)

슈뢰딩거 말이로군. 그는 오래전부터 하이젠베르크와 보어의 최대 적수였어. 그들은 누구의 이론이 옳은지를 놓고 오랫동안 경쟁을 벌였지. 하이젠베르크는 헬골란트에서 행렬역학을 발견했고, 그보다 불과 일주일 뒤에 슈뢰딩거는 아로사에서 파동역학을 발견했거든. 두 사람 사이에 심한 논쟁이 벌어졌는데 싸움은 아주 희한하게 끝났지.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슈뢰딩거가 마치 솔로몬처럼 극적인 해결책을 발견했어. 그게 뭔지 알아? 사실은 두 사람은 똑 같은 얘기를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있었다는 거지. 싸움은 하루아침에 싱겁게 끝나버렸어. 그후 슈뢰딩거는 유대인이 아니었는데도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에 나치와 문제가 생겨 결국 더블린으로 도망친 거야. 그곳에서 그는 프린스턴에 있는 것과 같은 연구소를 설립했어.”

(36)

비엔나 토박이인 슈뢰딩거는 하이젠베르크와는 정반대의 인물이었다. 1888년생으로 그보다 열세살이 많은 이 물리학자는 매우 사교적이고 여자를 좋아했다. 슈트라우스의 왈츠 같은 생활 철학을 지닌 신사이자 도락가였다. 술과 여자 그리고 음악. 하이젠베르트가 물리학의 금욕주의자였다면 슈뢰딩거는 대표적인 쾌락주의자였다. 두 사람의 인생행로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젊은 시절 슈뢰딩거가 새로운 양자이론에 눈길도 주지 않은 반면,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이론과 함께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 위대한 첫 발견을 세상에 발표했을 때 슈뢰딩거는 취리히 대학의 평범한 교수에 불과했던 데 반해 일찌감치 신동이란 평을 들었던 하이젠베르크는 이미 물리학의 대가들로부터 사랑과 비호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하이젠베르크는 스물다섯 살에 벌써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되었지만 슈뢰딩거는 서른일곱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45)

파동역학의 발견은 양자물리학이 뉴턴의 법칙들을 뒤엎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뢰딩거의 정신은 오히려 플랑크나 아인슈타인에 더 가까웠다. 기본적으로 그는 여전히 부르주아 출신의 전통적인 비엔나 보수주의자였다. 자신이 선도적 역할을 수행했던 물리학의 혁명이 끝나자 그는 다시 고전물리학의 확고한 영역으로 복귀했다. 슈뢰딩거는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이후 줄곧 더블린 고등연구소의 자기 연구실에 틀어박혀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동맹자로서 우연의 추종자들에 맞선 싸움을 전개했다. 아인슈타인과 마찬가지로 그의 목표 역시 단 하나였다. 전자기력, 중력, 원자론 등 자연에 작용하는 모든 힘들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통일된 장이론을 찾아내어 우주의 대한 일관된 설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53)

그런 건 아무 상관없어. 정말 중요한 건 결국 물리학자들이 원자를 연구하는 데 더 적합한 방법을 택할 거란 사실이지.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건 수학적으로 훨씬 간단명료한 내 방법이야. 나의 방법이 하이젠베르크의 것보다 훨씬 더 간단하다는 걸 깨달은 물리학자들이 너도나도 내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하이젠베르크의 친구인 파울리조차도 내 공식의 단순성에 감탄했지. 모든 물리학자들이 그렇게 이성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던 것은 정말 유감이야. 그들은 그렇게 간단할 수도 없다고 믿었던 것 같아.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에 지나치게 경도된 나머지, 비엔나 출신의 아웃사이더가 그들을 능가한다는 걸 차마 눈뜨고 인정할 수가 없었던 거야.”

(66)

나는 그녀의 비아냥거림을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건 다른 수많은 가능성을 잃어버린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상자 안에서 죽은 고양이를 보는 순간에 시간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게 돼요. 그것을 관찰하는 우리의 행위가 우리를 세계 안에 머물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만드는 것이지요. 사랑도 똑같아요. 이럴 때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이라고 묻는 것은 정말 정말적인 일이에요.”

(108)

그와의 만남은 내게 매우 큰 자극을 주었소. 그의 불확정성원리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때 그와 나눈 토론이 없었더라면 나의 상보성원리도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거요. 당시에 내가 가장 바라던 것은 양자물리학에 대한 포괄적인 설명을 내놓는 거였지. 그때까지 우리가 거둔 개별적인 성과들을 완벽하게 능가하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비전 말이야.”

(112)

전자란 뭘까? 물리학자들은 그것을 무슨 악당인 것처럼 여긴다. 수없이 많은 범행을 저지르고 도망쳐버리는 사악하고 간교한 존재. 전자는 대단히 영리하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그놈을 추적해보려고 노력하지만 매번 그의 교묘한 도피 행각에 부딪혀 좌절했다. 곡예사처럼 훈련된 전자는 우리의 눈에 띄지 않게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 있다. 또 적들이 접근하면 지체 없이 쏴 죽이지만 추적자들에게 언제나 명확한 알리바이를 제시하기 때문에 번번이 혐의해서 벗어나곤 한다. 심지어 단독범행이 아니라 거대한 집단을 이루어 범행을 저지른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전자가 자아 분열을 일으킨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전자가 개별자로서가 아니라 일종의 집단적 개체로서 행동한다면서. 주어진 공간을 휘젓고 다니며 충동적으로 약탈을 일삼는 폭력적인 집단, 욕망과 쾌락의 집단.

(113)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양자역학이다. 이것은 이 악당의 체포전략을 결정적으로 개선시키려는 추적자의 안타까운 노력의 결실이었다. 성실하고 능력 있는 추적자 한 사람(어쩌면 두 사람)의 노고로 만들어진 이 새로운 전략은 무엇보다도 전자가 숨어 있는 위치를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예전의 방법은 이 악당이 범행을 저지른 지점에서부터 추적해 들어가려고 했던 반면, 양자역학은 통계적 방법을 사용해 범인의 은신처로 가장 확률이 높은 장소를 미리 찾아내는 것이었다. 전자는 거의 마법적인 능력을 소유한 존재란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이론적으로 전자는 동시에 여러 장소에 있을 수 있다. 어두운 거리에서 극히 짧은 순간 형체를 포착한 것이 우리가 그의 정체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는 전부다.

(169)

괴델의 정리에 따라 모든 공리체계가 결정 불가능한 진술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라 절대적 시간도 절대적 공간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양자물리학에 따라 과학이 세계에 대해서 단지 애매모호하고 우연적인 접근만을 제공할 뿐이라면,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인과성이 미래의 확실성을 예측하는 데 더 이상 쓸모가 없다면, 그래서 개인이 오직 부분적인 진리만을 소유할 수 있을 뿐이라면, 그렇다면 다 똑같이 원자들로 구성된 우리 모두는 불확정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역설과 불가능성의 결과다. 우리의 모든 확신은 필연적으로 반쪽짜리 진리에 불과하다. 우리의 모든 자장은 기만이고, 힘자랑이고, 거짓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조차 믿어서는 안 된다.

(236)

루스트는 괴링이 학술연구위원회의 책임자를 맡고 난 뒤에도 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결국 두 기관 사이의 이러한 갈등은 전쟁이 다 끝나갈 무렵이 되어서야 해소되었다. SS사령관 히믈러가 괴링의 동의를 얻어 저명한 과학자 한 사람을 제국학술위원회의 최고위원으로 임명했다. 그와 두 사람의 서면 동의에 따라 위원회에 제출된 모든 프로젝트에 대해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막강한 권한을 쥐게 되었다. 이 인물은 학문적으로나 이념적으로나 이러한 결정에 불가침적인 권위를 행사할 만한 위상을 갖추고 있어야 했다. 여러 차례의 토의 끝에 히믈러는 이 특권을 부여하기에 적합한 인물을 찾아냈다. 두 사람은 그가 주어진 임무를 마찰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그의 이름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하지만 그가 지닌 막강한 권력과 영향력 때문에 점차 그의 존재를 눈치 채게 된 사람들은 베일에 싸인 이 인물을 클링조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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