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아트 저널리스트 김홍도 - 정조의 이상정치, 그림으로 실현하다
이재원 지음 / 살림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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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는 그림을 그리는 것에도 소질이 없고, 그림을 보는 것에도 소질이 없단다. 그림 전시회 같은 곳도 거의 다녀본 적이 없는 그런 사람이야. 하지만 좋아하는 화가 한두 명은 있단다. 그 중에 한 명이 너무나 유명한 김홍도란다. 너무 유명한 사람이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이다 보니 김홍도를 좋아한다고 하면 그림 볼 줄 모르는 사람이 그냥 좋아하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래도 아빠는 김홍도가 좋더구나. 서양에 내노라는 화가들보다 더 훌륭한 그림들을 그린 화가라고 생각해. 예전에는 풍속화 대표작 몇 편과 이름만 알고 있었어. 하지만 오주석님의 <한국의 미 특강>을 비롯한 그의 책들을 통해서 김홍도의 다른 그림들을 알게 되었고, 대표작으로 분류된 작품들보다 더 많은 훌륭한 작품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리고 그림 하나하나의 작가의 의도를 숨겨 놓은 것들도 너무 좋았어. 오주석님의 책들을 통해서 김홍도의 작품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그의 삶에 대해서는 약간 알게 되었고, 아빠에게는 좋아하는 화가가 생겼단다. 그러다가 예전에 알라딘 헌책방에 갔다가 <조선의 아트 저널리스트 김홍도>라는 책을 보고 바로 구입을 했던 것이란다. 그리고 얼마 전에 읽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에서 회화 편에 김홍도의 그림들이 소개되어 이 참에 <조선의 아트 저널리스트 김홍도>을 읽으면 제격이겠다 생각이 들어 책장에서 끄집어 내었단다.

지은이는 이재원이라는 분인데미술 전문가는 아니고 KBS에서 재직중인 분이라고 하는구나. , KBS의 어떤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김홍도에 관한 책을 쓸 정도라니김홍도를 대단히 좋아하는 분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1. 

일반적으로 김홍도는 해학 넘치는 풍속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김홍도가 그린 분야는 매우 다양했어. 아무래도 나라에 소속되어 있는 도화서에서 일하다 보니, 개인의 의지보다 나라의 의지가 그림 속에 더 들어가 있었던 것 같구나. 하지만주어진 소재 안에서 김홍도는 자신의 의지를 마음껏 펼쳤단다. 우리나라 최고의 화가이지만그의 삶에 대한 기록은 명확하지 않다고 했어. 지은이 이재원님은 김홍도의 흔적을 찾아 노력했고, 김홍도의 그림을 통해서 김홍도의 삶을 추리하기도 했단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체를 통해서 이야기를 끌어갔단다.

김홍도는 안산 출신인데어렸을 때 김홍도의 그림 실력을 알아본 이가 있었으니 강세황이라는 분이란다. 강세황은 나중에 벼슬을 하기도 했지만 화가로서도 유명한 사람이었어. 어린 시절 강세황으로부터 지도를 받기도 하고, 함께 어울려 그림도 그리곤 했단다. 그리고 스물한 살 때그의 노력과 그의 타고난 재능과 강세황의 지원으로 도화서 화원이 되었단다.

그림 실력이 출중했던 그의 주변에는 늘 선후배 화원들이 가까이 했어. 스승 강세황이 유명한 충신의 집안이었는데도 과거 시험을 볼 수가 없었어. 왜냐하면 강세황의 형님이 부정을 저질러서 연좌제로 가족이 모두 벼슬 진출을 할 수 없었거든.. 그런데 당시 왕이었던 영조는 강세황의 유능함을 알고 한양으로 불러들였단다. 그래서 벼슬을 하게 되었고김홍도는 스승과 해후했단다.

 

2.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김홍도는 정조와 친분을 가지고 있었어. 정조가 즉위하고 나서 정조는 김홍도를 더 가까이 했단다. 정조는 김홍도에게 이런 저런 그림을 주문했어. 왕인 정조는 왕궁 밖을 벗어나기 쉽지 않았잖아. 그런데 한편으로는 민심을 파악해야 했단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김홍도에게 백성들의 그림을 그려오게 하는 것이었어. 그렇게 태어난 것이 바로 김홍도의 풍속화들이란다. 김홍도는 풍속도들을 책자로 만들어서 정조에게 드렸고, 정조는 그림 하나하나를 김홍도와 함께 보면서 민심을 파악했어. 그림 하나하나를 보면서 정조와 김홍도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것은 곧 김홍도의 그림에 대한 설명이기도 한 것이란다. 이렇듯 김홍도는 백성들의 삶을 직접 그림으로 그려 왕에게 보고를 하는, 눈과 귀의 역할을 했어. 그래서 지은이 이재원님은 김홍도를 ‘조선의 아트 저널리스트’라고 칭했던 것이다. 그런 민심뿐만 아니었어. 정조는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금강산 구경도 하지 못했어. 그래서 이번에도 김홍도를 보내서 금강산을 그려오라고 했어. 그렇게 정조는 궁 안에서 그림을 통해서 금강산을 감상했단다.

정조에게는 마음의 짐이 하나 있단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 사도세자가 늘 옳았던 것은 아니고 그가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지만, 그가 죽음까지 당해야 한 것은 당시 당파싸움의 영향도 컸단다. 사도세자가 죽고 나서 영조도 바로 후회를 했으니까 말이야. 그런 아버지가 죽는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정조. 아버지의 위상을 다시 세우고 복권하는 것이 효도이자, 정조 자신의 위치도 확고히 하는 것이었어. 여전히 조선은 당파싸움이 치열했던 시기이니까 말이야. 정조는 이런 일환으로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 화성 현륭원으로 옮기기로 했어. 이때 행사를 그림으로 그리도록 했는데, 이 작업을 주도한 것이 바로 김홍도였단다. 너희들도 가 본 적이 있는융릉이 바로 현륭원이란다. 융름 옆에 정조가 묻혀 있는 건릉이 있잖아. 그래서 융건릉으로 더 유명하 그곳.. 날씨가 좋은 날 가면 참 좋은데또 가보도록 하자꾸나.

정조의 입장에서 보면 김홍도는 가장 아끼는 사람 중에 한 명이었어. 그리고 여러 공들도 많이 세우고 말이야. 그래서 김홍도에게 현감이라는 벼슬을 내리게 된단다. 충청도 지역에서 연풍 현감을 하게 되는데, 잦은 가뭄으로 민심은 그리 좋지 못했어. 2년 정도 하고 다시 한양으로 복귀를 했단다. 그리고 정조가 꿈꾸는 새로운 세상을 함께 하기로 했단다. 정조가 그렇게 갑작스럽게 죽지만 않았다면 김홍도도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 싶구나. 정조가 죽고 어린 순조가 왕위에 오르고 정순왕후가 정권을 잡으면서 정조가 중용했던 신하들은 자리 보존이 어려웠단다. 정약용처럼 목숨 부지하고 유배길을 떠나는 것을 다행으로 알 정도였어. 김홍도도 궁을 떠나 지인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지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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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김홍도의 삶과 그림에 다시 한번 알게 된 것 같아 좋았단다. 알면 알수록 매력 넘치는 사람인 것 같구나.

 

PS:

책의 첫 문장: 여러 해 동안 글과 그림을 벗 삼아 초야에 묻힌 듯 살던 강세황은 어는 날부터인가 같은 꿈을 여러 날 꾸기 시작하였다.

책의 끝 문장: 이렇게 <단원유묵첩>은 양기가 스물일곱 살 되던 1818 3, 단원이 세상을 떠난 지 열두 해 만에 세상에 나온 것이다.

네, 그리하지요. 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을음입니다. 소나무를 태워 생긴 그을음으로 만든 먹을 송연묵(松煙墨)이라 하고, 참기름, 비자기름, 오동기름 등을 태워 생긴 그을음으로 만든 먹을 유연묵(油煙墨)이라 합니다. 아궁이에 소나무를 태우게 되면 굴뚝에 그을음이 붙게 되는데 위쪽에 모이는 것일수록 좋은 먹이 될 수 있습니다. 소나무의 송진 그을음으로 만든 송연묵은 먹색이 맑고 깊습니다. 예로부터 중국 황산에서 나는 소나무로 만든 먹을 최상품으로 칩니다. 그 이유는 다른 지역보다 송진이 진하고 많아 가늘고 고운 그을음 입자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탁하지 않고 맑은 먹을 얻어야 먹색이 깊어집니다. - P24

내가 보고 싶었던 그림들이 바로 이것이다. 놀라는 얼굴 표정을 곁에서 보는 듯하고 밥 한술과 한 사발 탁주에 만족해하는 너털웃음 소리가 생생히 들리는 것 같구나. 길거리에서 송사를 벌이는 장면에서는 어떤 판결이 내려지는지 한번 참견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이처럼 서로 부대끼며 백성들과 함께 살아가는 수령이 있으니 과인이 바라던 바다.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의 움직임까지 이토록 자세히 읽어내고 그려내다니, 마치 백성들이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 같구나. 더욱이 표암이 유려한 필치로 느낌까지 적었으니 그 강평이 날카롭게 풍자되어 읽어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기만 하다. - P154

정조가 원대한 계획을 펼쳐나가는 데 의지하고자 했던 인물은 채제공과 정약용, 그리고 김홍도였다. 외형적으로 붕당을 없애고 고루 인재를 등용하면서 노비제도를 철폐하여 위아래 없이 모두 잘사는 평등사회를 건설하면서 조선의 발전을 가로막는 관행과 제도를 개혁하고 그 성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출판 사업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후대의 모범으로 남기를 바라며 문화 부흥의 꽃을 피워내고자 하였던 것이다. 또한 노년에 이르러서는 화성 행궁으로 물러나 여생을 예술과 더불어 노닐고자 하는 이상을 꿈꾸고 있었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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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은 더 이상 미래의 일이 아니다. 지금 지구 사회는 곳곳에서 갈수록 빈발하는, 그리고 갈수록 혹심해지는 가뭄과 홍수, 태풍과 폭풍, 대규모 산불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데다가 벌써 여러 해 전부터 벌과 나비 등 곤충들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수많은 종들의 멸종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남북극의 빙하 외에 히말라야와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그리고 안데스산맥의 봉우리에서도 만년설이 급속히 녹아내리고 있다. 그리하여 빙하와 만년설을 발원지로 하는 주요 하천들에서 언제 물이 마를지 모르고, 따라서 그러한 하천의 의지해서 살아가는 세계 인구 절반에 이르는 사람들의 운명이 갈수록 위태로워져가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기막힌 사태인데, 과학자들 중에는 이보다 더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하늘에서 꽤 오래전부터 뭉게구름을 보기가 어려워졌지만, 그 하늘에서 아예 구름 한 점도 볼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단지 온난화를 초래할 뿐만이 아니라, 기류의 순환, 해류의 순환, 물의 순환에까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16)

강한 자는 약한 자의 것을 빼앗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 이것은 하워드 진도 말했던 미국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작동하는 우월성 관념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우월한 자앞에서는 그보다 힘이 약하거나 열등한 처지에 있는 자는 굴복하고 명령을 수행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저항은 보복을 각오해야 한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무수한 나라들이 겪었던 일들이다.

(67)

특히 농민들의 피해는 너무도 크고 아팠다. 2014 9 29일 토지수용을 당한 홍천군 서면 동막리 정씨(53)는 조상 대대로 농사지어온 농토와 선산을 골프장 짓는 데 내줘야 했다. 묘지는 이미 사전에 훼손돼서 유골도 찾을 수 없었다. 변씨(59) 부부는 19년간 가꿔온 집과 나무 800그루와 살림살이까지 하나도 건지지 못하고 빼앗겼다. 집 앞으로 흐르던 하천도 홍천군이 사업자에게 팔아 폐천된 상태로 묻히고 있다. 변씨는 무너지는 집터에 앉아 며칠을 울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교사였던 김씨(80) 부부는 20년 전 귀농했다. 통나무집을 짓고 농토를 개간하며 가축을 길렀다. 그러나 토지수용이 재개되면서 거주지를 빼앗겨 인근 마을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살고 있지만 형편이 말이 아니다. 백씨(59)는 골프장 공사로 인해 112마리의 돼지가 폐사했고, 최근 남아 있는 모돈 26마리도 치우지 않는다고 사업자들이 산속으로 끌고 가 가둬 놓은 상태다. 농장을 강제수용하기 위해서 주민이 불응하면 행정대집행을 통한 행위를 해야 함에도 완력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109)

에너지전환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은, 독일은 다른 나라들처럼 원자력에 목을 매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베를린 소재의 싱크탱크 에코연구소의 창립자이자 전 소장인 안드레아스 크레머에 의하면,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세계시민으로서 선한 행동을 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생각하고 있다.

(123-124)

잘 알려진 것처럼, 빌 게이츠 자신은 아무것도 발명한 게 없습니다. BASIC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어떤 대학의 수학 교수 몇 명이 만든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운영시스템은 어떤 소프트웨어 기술자가 만든 것이었는데, 빌 게이츠가 그것을 5만 달러에 샀어요. 그는 소프트웨어를 특허화해서 제국을 건설한 겁니다.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열린 WTO 첫 회의는 그에게 세금 감면 혜택을 주기로 했어요. 그 때문에 모든 IT기업이 인도로 옮겨 온 것입니다. 실리콘밸리가 인도의 실리콘밸리 된 것은 인도의 저임노동을 이용함으로써 기업들이 매년 400억 달러를 절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빌 게이츠를 위한 아웃소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실제의 화폐 거래를 불법화하고, 오로지 디지털을 통한 지불 방식만을 강요함으로써 엄청난 돈을 벌게 된 것은 빌 게이츠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러한 디지털경제에 필요한 모든 소프트웨어에 대한 임대료와 특허사용료를 취득하기 때문입니다.

(127)

그게 오늘의 비극이죠. ‘1%의 현금제조기가 너무도 힘이 세져서 실제로 아주 강력하게 정치기구를 통제하고 있는 게 오늘의 세계 상황입니다. 우리가 보았듯이 미국의 선거에서는 페이스북케임브리지 아날리티카’(트럼프의 최측근 참모였던 스티브 배넌이 관여하는 정치컨설팅 회사)에 고객들의 신상정보를 넘겨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상 최초로 증오의 알고리즘에 기반을 둔 인공지능 대통령을 갖게 되었죠. 여성들에 대한 증오, 흑인에 대한 증오, 무슬림에 대한 증오, 이민자들에 대한 증오 말입니다. 증오의 기계로는 민주주의를 운영할 수 없습니다. 1%가 우리의 하나됨을 파괴하고, 우리의 결속을 파괴하는 분할통치를 획책하는 동안 민주주의는 불가능합니다. 지금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저 1%는 우리가 하나의 인류이며, 우리가 지구의 권리와 우리의 식량과 물과 생계에 대한 기초적 권리를 위해서, 그리고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울 때 우리가 강해질 수 있다는 깨달음을 파괴하려 하고 있습니다.

(136-137)

   - 이영광

나도 몰래 불쑥 튀어나오던 말

모멸과 비굴의 얼굴로 엎드려 빌게 만들고

회사를 때려치우게 하고

이혼장에 서명하게 하던 말

뱃속에 담고 있으면서도 한 번

만져본 적 없는 내장 같은,

그 말을 대체 무슨 생각으로 했을까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평생이 다

갈 것 같던 말

생각 없이 뱉어져,

생각들을 모조리 중지시키던 말

생각 없는 말 속에 숨은 생각의 악귀가

심어준 것 아닐까 싶던 말

생각보다도, 깊은 생각보다도 더 어두운 내장 속

단 하나의 꺼진 가로등처럼

웅크렸던 말

엎질러진 물 같던 말

반드시 다시 주워 담아야 하는

엎질러진 물 같던 말

날벼락에 맞아 불난 집 같던

태우다가는, 잿더미에 혈혈단신으로

꽂혀 있게 하던 말, 그런 말을

기다리고 있다 몇 번이다 날 죽인

파괴와 끝장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 또 죽어보려고,

잿더미보다 더 쓸모없는 백지 앞에서 장난처럼

생이 장난이 된 사람처럼,

기다리고 있다 지금

생은 장난이다

장난이고말고

(190)

오늘날 곰(자연)을 인간과 동등하게 대하는 일은 거의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은 그만큼 신화의 세상으로부터 아득히 먼 길을 떠나왔기 때문이지. 대칭성의 시소는 한쪽으로 너무 기울었어. 파우스트가 보여주듯, 인간은 자신들만을 위한 복락의 뉴타운을 건설하기 위해 거침없이 바다를 메웠지, 그때 끝없이 반복되는 영원한 신화의 시간으로서 파도 또한 사라졌지. 역사가 승리했고, 신화가 패배했어. 회귀 대신 전진이 있을 뿐이야. 신화와 역사, 자연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던 통로 같은 것도 진작 사라졌지. 그 통로를 자유롭게 오가던 샤먼도 권위를 잃었고 말이야. 우리 시대의 주술사인 시인들에게 마지막 산소공급을 기대해보지만, 글쎄, 지금 이 순간에도 그 통로는 미세먼저로, 플라스틱으로, 핵으로, 탐욕으로, 투기자본으로, 게다가 너무 많은 정보로 시시각각 메워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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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박상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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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2019년 봄과 함께 <2019 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출간되었단다. 어느덧 10년째인 젊은작가상. 수상의 의도도 좋고, 대상 작품이 있지만 수상한 모든 작가들에게 동일한 상금을 준다는 것도 마음에 들더구나. 아빠는 2017년부터 읽어보고 있어. 올해도 변함없이 착한 가격으로 출간되어 책 구매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어. 대상 수상자는 아빠가 생각하기에 퀴어 소설의 대표주자 박상영님이 대상을 수상했어. 이번에도 박상영님의 소설 제목은 외우기 어렵게 긴가? 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는데, 제법 짧은 제목이었고, 다소 철학적이면서 다소 과학적이기도 한,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이 제목이더구나.

우럭이 우주의 한 일부분이니까, 우럭 한 점도 우주의 맛이라고 하는, 소설 속 주인공의 말을 따라 이야기하자면 '개떡' 같은 말씀의 제목. 박상영님의 지금까지의 대표작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소설도 퀴어 소설인가 싶었는데 역시나 퀴어 소설이더구나. 박상영님의 소설뿐만 아니라 김봉곤님의 소설도 퀴어 소설이었어. 김봉곤님의 소설은 처음 읽어봤는데 그의 다른 소설도 박상영님처럼 퀴어 소설들이려나? 그런데 아빠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이런 퀴어 소설을 편하게 읽어내기에는 아빠가 나이를 많이 먹은 것 같아. 솔직히 좀 불편하더구나.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을 비롯하여 두 작품이나 퀴어 소설인 것을 보면 한 흐름인 것 같은데, 아빠는 읽기 불편한 것을 보니 아빠가 늙었다는 방증인가. 아빠는 이번 책에서 김희선님의 <공의 기원>, 정영수의 <우리들>, 이미상의 <하긴>이 괜찮았어. 뭐 사람들마다 취향이 다르니까 말이야. 아직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괜찮은 소설들이 있으니까 아빠가 아직은 젊었다는 방증이겠지?^^

1.

아빠가 앞서 이야기한 세 개의 소설에 대해 잠시 이야기할게. 김희선님의 <공의 기원> 어떤 심사의원은 이 소설이 개연성이 부족하고 허술한 부분이 많다고도 했지만, 그래도 축구공 하나 가지고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에 지은이 김희선님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더구나. 우리나라 개화기의 제물포에 살고 있던 한 소년. 그 소년이 영국 사람에게 받은 축구공 하나. 거기서부터 시작한 이 소설은 현재의 축구공이 현재의 모양을 갖추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제물포와 런던은 넘나들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스케일을 보여주었단다. 좀더 살을 붙이고, 극적인 요소를 더욱 추가하여 장편 소설로 고쳐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단다.

정영수님의 <우리들>. 정영수님이라는 지은이도 처음 알게 된 작가란다. 사랑의 실패라는 기억을 가지고 있고, 여전히 옛 연인을 잊지 못하는 주인공 ’. 출판 경력이 있고 다른 이들의 책 출간을 돕고 있는 에게 정은과 현수라는 한 커플이 와서 그들의 사랑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하고 싶다고 했어. 그러면서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우리들이라는 공동체가 만들어지나 싶었는데, 정은과 현수가 사실을 각자 가정을 가지고 있는 불륜의 관계라는 반전을 알게 된 ’. 그리고 정은과 현수도 현실과 타협하다 보니, 쉽게 깨어지는 그런 우리들’. 우리 세상이 그런 것 아니겠는가. 쉽게 우리들이 되지만 또 쉽게 그들이 되는 세상.

….

이미상님의 <하긴> 마찬가지로 이미상님의 소설도 처음이란다. 과거 대학 시절 학생운동권 출신이었던 주인공 인권 단체에서 일했던 아내둘은 만나 딸을 낳아 키우고 있었어. 그들의 젊음은 제도권 사회에 저항하던 이들이었지만 딸을 낳아 키우면서 현실에 부딪히게 된단다. 딸이 커가면서 그리 똑똑하지 못한 것을 알게 된 친구의 딸이 자신의 딸보다 공부를 잘하는 것에 열등감을 느끼는 딸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별 것을 다하는 결국은 딸에게도 에게도 좌절감과 큰 상처만 남기게 되었단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과거 운동을 위해 공장에 위장취업까지 했던 주인공의 그런 모습에 씁쓸함 마저그리고 주인공의 모습이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학부모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어떻게 하면 일등이 최고라고 하는 사회관념을 없앨 수 있을까.

2.

이번에 실린 중단편 소설들의 모든 주인공은 이름이 없이 였던 것 같구나. 마치 단편소설의 주인공은 로 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는 것처럼 말이야. 주인공 로 되어 있으면 읽는 이로 하여금 감정이입이 더 잘 되니까 짧은 소설인 경우 독자로 하여금 더 집중해달라는 의미에서 그렇게들 하는 것인가 싶더구나. 오히려 단편소설에서 삼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의 소설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애. 아빠가 소설을 읽으면서 너희들한테 줄거리를 이야기해주려고 주인공의 이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데 주인공이 이면 주인공의 이름을 놓치기가 쉬어서 잠시 투덜거려보았단다.

3.

이 책의 구성은 수상작과 그 수상작을 해설해 주는 글들을 같이 싣고 있단다. 평론도 젊은작가상의 이름에 걸맞게 젊은 평론가들이 하고 있단다. 그런 젊은작가상 취지도 마음에 들었어. 평론이라는 것도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늘 칭찬만 늘어놓을 수 없으니 냉정한 평도 해야 할 텐데, 그렇다 보면 지은이와 불편한 관계가 될 수 있고 말이야. 아빠가 별 걸 다 걱정하는 것인가? ^^ 이 책에 실린 평론 중에 인상 깊은 평론은 대상 박상영님의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의 평을 쓴 김건형님의 평이었어. 소설의 문장들과 문구들을 이용해서 새로운 문단을 만들고 새로운 문장을 만들면서 평을 했단다. 아빠가 소설의 평론을 많이 읽어보지 않았지만, 독창적인 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소설가든 평론가든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구나.

..

젊은작가상 10년이 되었고 앞으로도 착한 가격의 수상작품집과 함께 영원하길 기대해 보련다. 내년 봄에도 기대를 해보면서, 오늘 편지는 여기서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밤새 글을 쓰다 늦잠을 자버렸다. 대충 세수만 하고 가방을 들었다.

책의 끝 문장: 그렇다면 부디 의 뜻이 아니라. 네 뜻대로 되어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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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학고재 클래식 1
최순우 지음 / 학고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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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래 전에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책읽기를 권장하고 도서관 설립에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어. 아빠의 기억이 맞다면 그 프로그램의 이름은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이었고, 그 프로그램의 책책책을 읽읍시다라는 코너가 있었어. 그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그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책들도 자연스레 당시 베스트셀러에 오르게 되었단다. 그 책들 중에 숨어있는 좋은 책들도 많아서,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는 이들에게 가이드가 되기도 했었어. 그 때 소개되어 알게 된 책 중에 하나가 바로 아빠가 이번에 읽은 최순우님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였단다.

이 책을 알게 된 지 오래되었는데, 읽기까지 참 오래 걸렸구나. 특별한 이유는 없었어. 단지 세월이 빨리 흘러갔을 뿐이란다. 이 책을 구입해서 책장에 꽂아 놓은 지는 꽤 오래되었어.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얼마 전에 읽은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산사순례>에서 부석사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단다. 그냥 부석사의 이야기를 읽기만 해도 최순우님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산사순례>의 부석사 편에서 최순우님에 대한 일화를 실으면서 이 책을 이야기하셔서 더 늦기 전에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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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7 15일 오후 6, 국립중앙박물과 중앙홀에서는 <최순우 전집>(5) 출간기념회가 열렸다. 도서출판 학고재가 제작비 전액을 부담해준 미담이 남아 있는 이 전집의 출간은 당시 학예연구실장인 소불 정양모 선생이 맡으셨고 편집 자체는 내게 떨어진 일이었다. 행사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에 소불 선생이 급히 나에게 달려와 하시는 말씀이 식순에 선생의 글 하나를 낭독하여 고인의 정을 새기는 것이 좋겠으니 자네는 편집책임자로서 아무거나 하나 골라 읽게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거침없이 그러죠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소불 선생은 너무도 쉽게 대답하는 나에게 무얼 읽을 건가?”라며 되물었다. 나는 또 거침없이 그야 <무량수전>이죠라고 대답했다.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산사순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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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빠의 편견. 이 책을 읽으면서 책 제목만 보고서, 이 책 전체가 부석사에 관한 글이라고 생각했어. 그러면서 읽기 전에 그런 생각을 했지. 참 대단하신 분이네, 부석사를 절 하나에 대해서 이렇게 두꺼운 책을 쓰시다니이 책을 읽고 나면 부석사에 대한 모든 것을 알게 되려나 싶었어. , 그런데 이 책은 부석사에 관한 이야기만 적은 것은 아니었단다. 부석사에 대한 이야기는 한 꼭지에서만 다루었단다. 그렇다고 지은이 최순우님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접은 것은 아니야. 오히려 더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들게 했단다. 왜냐하면 이 책 한 권에 우리나라의 문화재에 평가가 가득 실려 있기 때문이야. 그제서야 이 책의 부제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의 의미가 확 다가왔단다.

이 책에 실린 수많은 문화재들아빠가 모르고 있던 문화재들이 절반이 넘었어. 그러면서 느낀 것은 우리 문화재에 너무 관심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한국의 미와 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조선 시대의 그림에 대한 소개, 전통 건축과 공예에 대한 이야기, 불상과 탑에 관한 이야기들, 마지막으로 토기와 도자기까지우리나라 문화재의 총집합이자 백과사전 같은 책이란다. 하나의 문화재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원하는 이도 있지만, 이런 다양한 방면에 짧은 설명으로 된 책도 나쁘지 않았단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아빠는 문화재를 볼 때 아무리 뚫어져라 쳐다보아도 그 문화재에 숨어 있는 깊은 뜻을 모르겠는데, 지은이 최순우님은 우리 문화재 하나하나에 깃든 사연들을 이야기 주셨단다.

책의 중간을 넘어가면서, 최순우님의 글을 보기 전에 책 속에 나와 있는 문화재의 사진을 한참 쳐다보고 나서, 아빠도 마음속으로 그 문화재의 감상을 생각해보았단다. 그리고 나서 최순우님의 글을 읽어 보았어. 아마추어인 아빠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감상문을 읽고 나서야 그 문화재의 진면목을 다시 보게 되었단다. 나중에 국내 여행을 가기 전에 그 지역 주변의 문화재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 보고 이 책에서 그 문화재에 대한 설명을 잘 읽어보고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2.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느낀 점은 모르고 있는 우리말이 참 많다는 것이란다. 문장의 앞뒤 문맥을 보면 그 뜻을 알겠는데, 그 단어는 처음 보는 말들이 많았어. “예를 들어… “ 이러면서 그 말들을 너희들에게 알려주어야 하는데, 적어 놓은 말이 없구나. 아빠가 책을 거의 덮을 즈음에 이것을 깨닫고 이 말들을 적어 놓았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말들을 찾기 위해 다시 책을 읽기는 좀 그렇고 말이야. 정작 너희들에게 책을 읽을 때 처음 보는 말이 나오면 적었다가 아빠나 엄마한테 물어보라고 하면서, 아빠는 그냥 넘겨버렸구나.

그러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새로 알게 된 말에 대해 따로 공부한 적이 없는 것 같아. 모르는 우리말이 나와도 앞뒤 문맥으로 보아 유추하거나 몰라도 이야기 전개에 문제가 되지 않아서 그냥 넘겨버리곤 했어. 지금부터라도 아빠도 책을 읽을 때 모르는 말이 나오면 꼭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앞으로는 아빠도 꼭 그럴게. 이 책에 나오는 모르는 말들은 너희들이 나중에 커서 읽고 나서 리스트업해 주길 바래…^^

PS:

책의 첫 문장: 간혹 비행기를 타고 조국의 강토를 하늘에서 굽어보면 그림같이 신기한 밭이랑 논이랑의 무늬진 아름다움과 순한 버섯처럼 산기슭에 오종종 돋아난 의좋은 초가지붕의 정다움이 가슴을 뭉클하게 해줄 때가 있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이것이 과연 어느 왕공자의 조촐한 숨소리건 지체 있는 어느 선비의 잠 못 이루는 사색의 소리건 여전히 흥겨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간혹 비행기를 타고 조국의 강토를 하늘에서 굽어보면 그림같이 신기한 밭이랑 논이랑의 무늬진 아름다움과 순한 버섯처럼 산기슭에 오종종 돋아난 의좋은 초가지붕의 정다움이 가슴을 뭉클하게 해줄 때가 있다. 그리 험하지도 연약하지도 않은 산과 산들이 그다지 메마르지도 기름지지도 못한 들을 가슴에 안고, 그리 슬플 것도 복될 것도 없는 덤덤한 살림살이를 이어가는 하늘이 맑은 고장.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 강산에서 먼 조상 때부터 내내 조국의 흙이 되어가면서 순박하게 살아왔다.

- P25

뒷동산의 잘 생긴 바위 한 덩어리, 등 넘어가는 오솔길 한 갈래, 축동의 노목 한 그루에도 정령과 생명이 스며 있다는 생각, 즉 자연도 인간 못지않은 존귀한 생명을 지니고 있다고 우리 민족은 믿고 있었다. 이것은 충분히 수긍이 가는 사고이다. 어떤 의미로는 현대의 뛰어난 경륜을 지닌 지성보다도 한 걸음 앞선, 자연 보존의 존귀한 가치관과 신념을 지녔던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 P37

추한 것이 진정 아름다운 것들을 짓밟는 행패 속에 얼마 안 남은 우리 주택 건축사의 결정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하나 그 아름다운 자취를 감추어가고 있다. 물론 세계의 각 지역 간에 문화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는 오늘날 현대 한국인의 생활에서 오로지 주택문화만은 고격을 고수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판 없이 남의 것만을 새롭고 곱게 보려는 풍조는 우리 민족처럼 틀이 잡힌 문화전통을 가진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P79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은 청자 비색의 아름다움과 곡선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 위에 또 하나 상감의 아름다움이 곁들여진다. 이 청자 상감의 기법은 오로지 고려 도공들만이 보인 창의였다. 벽옥같이 푸르고 갓맑은 살갗 위에 검고 희게 수놓인 상감의 아롱진 무늬들이 마치 흘러간 고려 문화의 꽃 그림자처럼 차가운 청자 살갗 위에서 파시시 숨을 쉬고 있다. 얼마나 많은 백학이, 그리고 얼마나 많은 흰 구름장이 고려 도공들의 망막을 스치고 지나갔을까. 학, 그리고 또 학, 학은 고려 사람들의 마음속 하늘을 나는 하나의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 P97

한국미가 지니느 장점의 하나는 구수함이요 또 은근스러움이며 때로는 익살스러움일 수도 있다는 것은, 이러한 서민적인 대상 속에서 숨김도 과장도 없이 풍겨나는 일종의 흥겨움을 지칭하는 것이다. 고려자기나 조선자기 또는 불상조각이나 건축 등 각 분야의 작품에서 이러한 아름다움의 요소를 느낄 수 있는 대상이 발견된다면, 이것은 대부분이 서민 자신들을 위하여 자신들의 손으로 이루어진 작품에서 농후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왕실의 권위나 종교의 권위를 돋우기 위한 작품 같은 것에는 그 상대방의 주문에 따라 위엄과 기교가 앞서야 되고, 따라서 한국 사람들의 본바탕 생활문화나 생활감정을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서민감정의 자유가 보장돼 있지 못했던 것이다. - P186

명상적인 조용한 빛깔과 은은하고도 지체 있는 청자의 질감이 고려시대 상형청자의 아름다움에 고요와 신비의 생명감을 불어넣어주었다고 생각해 볼 때가 있다. 대개 공예 조각이란 예술의 경지에까지 미치지 어려운 경우가 많고, 따라서 지나친 잔재주와 아첨이 깃들인 속물이 되기 쉬운 법이다. 그러나 고려의 상형청자 작품들을 보면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모두 늣늣하게 때를 벗었다는 느낌을 깊게 받게 된다. 더구나 다루기 어려운 청자연적이나 문진 같은 작은 문방구들의 경우만 보더라도 조형이 자칫 복잡해질 듯싶지만 도리어 간명하고 순진하며 물체가 지닌 습성과 아름다움의 기미를 너무나 잘 살렸을 알 수 있다. - 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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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박사와 하이드 마카롱 에디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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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어렸을 때 책 읽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어.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 어떤 여름에 읽었던 책들이 기억이 나는구나. 초등학교 4학년인가 5학년 때였던 것 같아. 여름방학인데, 친구들과 노는 것도 지치고 딱히 할 것이 없을 때 외삼촌댁에 갔다가 사촌형들이 읽던 책들을 살펴보게 되었단다. 그 중에 세계문학 문고판들이 눈에 들어왔어. 좀 읽다가 어려워서 관두기 일쑤였는데, 셜록 홈즈 시리즈를 비롯하여 몇 편은 눈에 들어와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단다. 그 중에 하나가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였어. 여름날 방안에 선풍기 틀고 배 깔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겨 보던 기억이 생생하구나.

오늘날 <지킬박사와 하이드>라고 하면 원작 소설보다 각색된 뮤지컬로 더 유명하단다. 지금까지 본 뮤지컬을 손으로 헤아릴 수 있는 아빠도, 그 한 손가락이 바로 <지킬박사와 하이드>이니 말이야. 어떤 사람은 그 뮤지컬만 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본 사람도 있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유명해진 뮤지컬 덕에 원작 소설도 끊임없이 출간되고 있는 것 아닌가 싶구나.

아빠도 어린 시절 읽어보긴 했지만,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었어. 얼마 전에 <프랑켄슈타인>을 읽었잖아. 그런데 문득 이 소설이 연상되더구나. 그래서 읽고 싶은 마음을 좀 더 키워서 이번에 <지킬박사와 하이드>을 읽게 된 것이란다. 예전에 아빠가 초등학교 때 읽었을 때 소설의 제목은 하이드가 아니고 하이드 씨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하이드더구나.

지은이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소설이 유명해서 지은이는 누구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는데,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라는 사람이었구나. 그런데 왜 이렇게 이름이 낯익지? 책 뒤편의 작가 소개를 읽어봤는데, 아니, 이럴 수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바로 <보물섬>을 지은 그 사람이었던 거야. 얼마 전에 너희들도 <보물섬>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잖니오호, 신기하구나. 너희들에게 당장 이야기해주었잖아. 아빠가 지금 읽고 있는 소설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아니? ㅎㅎ 바로 너희들이 얼마 전에 읽은 <보물섬>의 지은이야그 사실을 안 너희들도 덩달아 좋아하고.. 별 것 아니지만, 몰랐던 사실을 하나 알게 된 기쁨에 작은 행복감마저 느껴지더구나.

.

1.

, 그럼 이 책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해줄게. 이 책의 제목이 <지킬박사와 하이드>이지만, <지킬박사와 하이드>만 있는 것은 아니고, 지은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중단편을 엮은 책이란다. 그래서 몇 편의 소설들이 있는데, 그 중에 몇 개 이야기해줄게.

처음은 당연히 <지킬박사와 하이드> 변호사 어터슨은 사촌 엔필드로부터 경험담을 하나 들었어. 어떤 밤에 아이를 짓밟는 나쁜 행동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모습이 혐오스럽게 생긴 사람이라면서 그 사람의 이름이 하이드라고 했어. 어터슨은 하이드를 본 적은 없지만, 그 이름은 잘 알고 있어서 놀랐어. 왜냐하면 어터슨의 오랜 친구이자 고객인 헨리 지킬 박사의 유언장에 그 이름이 적혀 있었거든. 헨리 지킬의 유언장에 따르면 자신이 죽거나 실종이 되면 자신의 모든 재산을 하이드에게 주라고 했어.

사촌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어터슨은 지킬의 유언장을 믿을 수 없었어. 더욱이 최근에 지킬의 행동이 좀 이상했거든.. 그리고 사람들과 만남을 피하고 은둔의 생활을 이어와서 더 이상했지. 어터슨은 또 다른 친구 래니언 박사를 찾아가 지킬에 대해 물어보니, 만난 지 오래되었다고 했어. 그렇게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지킬이 활기를 되찾고 옛모습을 되찾은 듯 했어.

그런데 어떤 유명한 하원 의원이 죽은 사고가 일어났어. 그 범인은 바로 하이드였어. 이 사건이 일어난 이후 지킬은 또 다시 실험실에 은둔 생활을 시작했어. 어터슨은 다시 걱정을 했는데, 어느날 지킬의 하인 풀의 연락을 받고 그의 집으로 갔어. 실험실에서 나오지도 않고 약품들을 사오라고만 시킨다는 거야. 그리고 목소리가 지킬 박사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것이지. 어터슨이 와서 들어보니 목소리는 분명 전에 들어 본 적이 있는 하이드의 목소리였어. 하이드가 지킬을 죽였다고 확신했어. 무서웠지만 어터슨과 모여있던 사람들은 합심해서 문을 밀치고 지킬의 실험실에 들어갔어.

지킬은 없었어. 하이드만 쓰러져서 죽은 듯 했어. 지킬이 그 자리에 없다는 이야기를 아직 살아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었어. 그런데 그 실험실에는 지킬이 쓴 장문의 편지가 있었단다. 편지의 내용은 충격적이었어. 지킬 박사는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다가 자신의 또 다른 모습으로 변신을 하는 약을 만들게 되었다고 했어. 그래서 하이드로 변신을 한 것이지. 지킬 박사는 명망 있고, 존경 받는 사람이었어. 그만큼 어쩌면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 점잖게 살아야 했지. 하지만, 하이드로 변신을 하면 악행도 마음대로 저지를 수 있는, 어떤 면에서 보면 자유를 누렸어. 어떤 나쁜 짓을 해도 다시 약을 먹고 지킬의 모습으로 돌아오면 되니까

그런데 어느날 잠에서 깨어났는데, 약을 먹지 않았는데도 하이드로 변하게 된 자신을 보았지. 당황했을 거야. 다시 약을 먹고 지킬 박사의 모습으로 변신했어. 그리고 한 동안 지킬 박사는 하이드로 변신하지 않았어. 다시 지킬 박사로 돌아올 수 없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욕망은 그를 움직였단다. 다시 하이드로 변신했어. 심지어 사람까지 죽였어. 그리고 이젠 약을 먹지 않고 있어도 툭하면 하이드로 변했어. 그래서 다시 지킬로 바꾸려고 약을 먹고, 하지만 또 얼마 안 있으면 또 하이드로 변했어. 그리고 이젠 약도 들지 않았어. 예전에 만들었던 약을 다시 만들려고 했지만, 소용없었지. 실험실에 하이드의 모습으로 숨어 지내던 지킬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음뿐이었단다.

여기까지가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이야기란다. 인간은 누구나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구나. 그리고 이중성 중에 하나는 겉으로 잘 나타내지 않고 말이야. 겉으로 보여주지 않는 그 모습의 이름은 욕망인가? 그 욕망을 참으며 사는 것이 또 사람인 것 같구나. 가끔 유명 연예인들의 마약 사건이 터지는데, 그들에게 마약은 혹시 하이드로 변하게 했던 약물은 아니었나 싶구나.

.

2.

두 번째 소개된 <시체도둑>은 실제 있었던 일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하는구나. 전직 의사였지만 지금은 시골에서 술꾼으로 살아가고 있는 페츠. 그 시골에 온 옛 동료 맥팔레인을 만나는데 분위기가 이상했어. 페츠의 친구들은 그들의 관계를 추측해 보았어. 페츠와 맥팔레인은 의사 초년생일 때 그들의 스승(유명한 사람)의 심부름을 도맡았어. 해부 실험으로 쓸 시체를 몰래 거래하는 일이었어. 그런데 어느날 페츠가 알고 있던 사람이 시신을 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 며칠 전만 해도 건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페츠는 이 시신들이 어떻게 오는지 궁금했고, 이 일에 대해 신고를 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빠져나올 수 없는 길에 들어선 거야. 어떤 날은 맥팔레인을 괴롭혔던 사람이 시신으로 왔어. 페츠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짐작이 갔지만 아무 질문도 할 수 없었단다. 나중에는 그들의 스승이 묘지에 있는 시신까지 가져오라고 시켰단다. 페츠와 맥팔레인은 두려웠지만 어쩔 수 없었어. 그들은 비가 쏟아지는 짙은 밤에 찾아가서 이제 막 장례식장을 마친 묘지를 파내서 시신을 가지고 왔어. 그런데 시신을 확인해보니, 얼마 전에 이미 시신을 해부까지 했던 맥팔레인을 괴롭혔다가 죽은 바로 그 사람이었던 것이야. 이 일인 있고 페츠는 의사를 그만두고 시골에 살게 된 것이고, 맥팔레인은 계속 의사일을 해서 성공을 거두었다는 이야기였어. 아빠가 줄거리를 제대로 기억하고 쓴 것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대충 이런 이야기였단다.

….

또 하나 <오랄라>라는 소설도 괜찮았어.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소재가 조금 식상하긴 했지만, 당대에는 호기심 가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부상당한 장교가 의사의 조언으로 시골의 어떤 집에 요양을 가기로 했어. 그 집은 중년의 안주인과 아들 펠레페와 딸 오랄라가 있었어. 시골집의 안주인은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 졸기나 하는 그런 사람이었고, 아들 펠리페는 약간 덜 떨어진 사람이었어. 그에 반에 딸 오랄라는 지성과 미모를 고루 갖춘 사람 이었단다. 장교도 딸 오랄라를 한 눈에 반했어. 그래서 딸 오랄라와 썸씽이 이루어지고, 오랄라는 어떤 이유에 의해서인지 피하게 되고... 뭐 그렇고 그런 이야기란다. 이런 스토리는 영화에서 많이 다루어지고 있어. 그래서 아빠가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소재가 조금 식상하다고 한 것이란다. 그래도 이 이야기도 나름 재미있었단다.

….

이렇게 세편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아빠가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책을 덮고 난 후 기억이 사라지는 속도가 점점 빨리지는 것 같구나. 메모를 해놓지 않으면 줄거리가 가물가물하구나. 앞으로 메모를 잘 해놓던지, 아니면 일고 바로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하던지 해야겠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 어터슨 변호사는 무뚝뚝하게 생긴 사람으로 밝게 미소 짓는 법이 없었다.

책의 끝 문장 : 윤리적인 편협함 따위도 결코 없었고, 삶의 더 큰 제약들을 말하는 대신 그저 넌지시 알리거나 우리가 시간과 공간의 아라베스크에서 감지하는 것 같은 그런 종류의 느낌을 전달했다.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요. 외모를 보면 뭔가 정상이 아닙니다. 뭔가 불쾌하고 뭔가 아주 혐오스러워요. 이렇게 싫다는 느낌을 받은 사람은 정말 처음이었는데 그 이유를 딱히 알 수가 없어요. 어딘가 기형인 게 분명해요. 어디라고 꼬집어 얘기할 순 없지만 하여튼 기형의 분위기가 강하게 납니다. 정말 특이하게 생긴 사람인데 저로서는 도저히 묘사할 수가 없네요. 그래요, 할 수가 없어요. 설명이 안 되네요. 기억을 못 하는 건 아니에요. 지금도 눈 앞에 생생히 떠오르거든요." - P35

그 진실이란, 인간은 진정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것이다. 내가 둘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내 지식이 그 이상으로는 나아가지 못했기 대문이다. 같은 선상에서 혹자는 나를 뒤따를 것이고, 혹자는 나를 앞질러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내가 감히 추측건대 인간은 결국 여러 개의 모순되면서도 각기 독립적인 인자들이 모인 집합체에 불과하다는 것이 알려지게 될 것이다. 내 경우, 내 삶의 본성이 한 방향으로만, 오직 한 방향으로만 절대적으로 전진했다. 그것은 도덕적 측면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나는 나란 인간 속에서 철저하고 근본적인 인간의 이중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내 의식 속에는 서로 갈등하고 있는 두 개의 본성이 있으며, 비록 내가 그중 어느 한쪽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하더라도, 그것은 근본적으로 내가 양쪽 모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찍이 애 과학적 발전의 경로를 통해 두 본성을 분리하는 기적이 정말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기 전에도 나는 그러한 몽상을 즐기곤 했었다. - P106

그러나 나는 지금 고백함에 있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이런 과학적 부분은 자세히 언급하지 않고자 한다. 첫째는, 우리 인간은 인생의 불운과 고난을 영원히 어깨에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것, 그 짐을 던져버리려고 시도하면 그것이 더욱 낯설고 더욱 끔찍한 무게로 되돌아와 우리를 짓누른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불행히도, 내 이야기를 들으면 자명해지겠지만, 그 발견이 결국 불완전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자연적 육체에서 정신을 구성하는 어떤 힘이 발산되어 빛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뿐 아니라 그 힘의 주도권을 빼앗은 후 제2의 형태와 모습으로 대체하는 약을 제조할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제2의 형태라는 것 또한 내 영혼의 근저에 있는 요소들을 표현하고 그 특징을 갖추고 있는 것이었기에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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