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은 더 이상 미래의 일이 아니다. 지금
지구 사회는 곳곳에서 갈수록 빈발하는, 그리고 갈수록 혹심해지는 가뭄과 홍수, 태풍과 폭풍, 대규모 산불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데다가 벌써
여러 해 전부터 벌과 나비 등 곤충들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수많은 종들의 멸종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남북극의 빙하 외에 히말라야와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그리고 안데스산맥의 봉우리에서도 만년설이 급속히 녹아내리고 있다. 그리하여
빙하와 만년설을 발원지로 하는 주요 하천들에서 언제 물이 마를지 모르고, 따라서 그러한 하천의 의지해서
살아가는 세계 인구 절반에 이르는 사람들의 운명이 갈수록 위태로워져가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기막힌 사태인데, 과학자들 중에는 이보다 더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하늘에서 꽤 오래전부터 뭉게구름을 보기가 어려워졌지만, 그 하늘에서 아예 구름 한 점도 볼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단지 온난화를 초래할 뿐만이 아니라, 기류의 순환, 해류의
순환, 물의 순환에까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16)
강한 자는 약한 자의 것을 빼앗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 이것은
하워드 진도 말했던 미국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작동하는 ‘우월성 관념’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우월한 자’ 앞에서는
그보다 힘이 약하거나 열등한 처지에 있는 자는 굴복하고 명령을 수행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저항은 보복을
각오해야 한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무수한 나라들이 겪었던 일들이다.
(67)
특히 농민들의 피해는 너무도 크고 아팠다. 2014년 9월 29일 토지수용을 당한 홍천군 서면 동막리 정씨(53세)는 조상 대대로 농사지어온 농토와 선산을 골프장 짓는 데 내줘야
했다. 묘지는 이미 사전에 훼손돼서 유골도 찾을 수 없었다. 변씨(59세) 부부는 19년간
가꿔온 집과 나무 800그루와 살림살이까지 하나도 건지지 못하고 빼앗겼다. 집 앞으로 흐르던 하천도 홍천군이 사업자에게 팔아 폐천된 상태로 묻히고 있다.
변씨는 무너지는 집터에 앉아 며칠을 울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교사였던 김씨(80세) 부부는 20년
전 귀농했다. 통나무집을 짓고 농토를 개간하며 가축을 길렀다. 그러나
토지수용이 재개되면서 거주지를 빼앗겨 인근 마을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살고 있지만 형편이 말이 아니다. 백씨(59세)는 골프장 공사로 인해
112마리의 돼지가 폐사했고, 최근 남아 있는 모돈 26마리도
치우지 않는다고 사업자들이 산속으로 끌고 가 가둬 놓은 상태다. 농장을 강제수용하기 위해서 주민이 불응하면
행정대집행을 통한 행위를 해야 함에도 완력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109)
에너지전환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은, 독일은 다른
나라들처럼 원자력에 목을 매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베를린 소재의 싱크탱크 ‘에코연구소’의 창립자이자 전 소장인 안드레아스 크레머에 의하면,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세계시민으로서 선한 행동을 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123-124)
잘 알려진 것처럼, 빌 게이츠 자신은 아무것도 발명한 게 없습니다. BASIC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어떤 대학의 수학 교수 몇 명이 만든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운영시스템은 어떤 소프트웨어 기술자가 만든 것이었는데, 빌 게이츠가
그것을 5만 달러에 샀어요. 그는 소프트웨어를 특허화해서
제국을 건설한 겁니다.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열린 WTO 첫
회의는 그에게 세금 감면 혜택을 주기로 했어요. 그 때문에 모든 IT기업이
인도로 옮겨 온 것입니다. 실리콘밸리가 인도의 실리콘밸리 된 것은 인도의 저임노동을 이용함으로써 기업들이
매년 400억 달러를 절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빌 게이츠를 위한 아웃소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실제의 화폐 거래를 불법화하고, 오로지 디지털을 통한 지불 방식만을 강요함으로써 엄청난 돈을 벌게 된 것은 빌 게이츠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러한 디지털경제에 필요한 모든 소프트웨어에 대한 임대료와 특허사용료를 취득하기 때문입니다.
(127)
그게 오늘의 비극이죠. ‘1%의 현금제조기’가 너무도 힘이 세져서 실제로 아주 강력하게 정치기구를 통제하고 있는 게 오늘의 세계 상황입니다. 우리가 보았듯이 미국의 선거에서는 ‘페이스북’이 ‘케임브리지 아날리티카’(트럼프의
최측근 참모였던 스티브 배넌이 관여하는 정치컨설팅 회사)에 고객들의 신상정보를 넘겨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상 최초로 증오의 알고리즘에 기반을 둔 인공지능 대통령을 갖게 되었죠. 여성들에 대한 증오, 흑인에 대한 증오, 무슬림에 대한 증오, 이민자들에 대한 증오 말입니다. 증오의 기계로는 민주주의를 운영할 수 없습니다. 1%가 우리의 하나됨을
파괴하고, 우리의 결속을 파괴하는 ‘분할통치’를 획책하는 동안 민주주의는 불가능합니다. 지금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저 1%는 우리가 하나의 인류이며, 우리가 지구의 권리와
우리의 식량과 물과 생계에 대한 기초적 권리를 위해서, 그리고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울 때 우리가
강해질 수 있다는 깨달음을 파괴하려 하고 있습니다.
(136-137)
말
- 이영광
나도 몰래 불쑥 튀어나오던 말
모멸과 비굴의 얼굴로 엎드려 빌게 만들고
회사를 때려치우게 하고
이혼장에 서명하게 하던 말
뱃속에 담고 있으면서도 한 번
만져본 적 없는 내장 같은,
그 말을 대체 무슨 생각으로 했을까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평생이 다
갈 것 같던 말
생각 없이 뱉어져,
생각들을 모조리 중지시키던 말
생각 없는 말 속에 숨은 생각의 악귀가
심어준 것 아닐까 싶던 말
생각보다도, 깊은 생각보다도 더 어두운 내장 속
단 하나의 꺼진 가로등처럼
웅크렸던 말
엎질러진 물 같던 말
반드시 다시 주워 담아야 하는
엎질러진 물 같던 말
날벼락에 맞아 불난 집 같던
태우다가는, 잿더미에 혈혈단신으로
꽂혀 있게 하던 말, 그런 말을
기다리고 있다 몇 번이다 날 죽인
파괴와 끝장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 또 죽어보려고,
잿더미보다 더 쓸모없는 백지 앞에서 장난처럼
생이 장난이 된 사람처럼,
기다리고 있다 지금
생은 장난이다
장난이고말고
(190)
오늘날 곰(자연)을 인간과
동등하게 대하는 일은 거의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은 그만큼 신화의 세상으로부터 아득히 먼 길을
떠나왔기 때문이지. 대칭성의 시소는 한쪽으로 너무 기울었어. 파우스트가
보여주듯, 인간은 자신들만을 위한 복락의 뉴타운을 건설하기 위해 거침없이 바다를 메웠지, 그때 끝없이 반복되는 영원한 ‘신화의 시간’으로서 파도 또한 사라졌지. 역사가 승리했고, 신화가 패배했어. 회귀 대신 전진이 있을 뿐이야. 신화와 역사, 자연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던 통로 같은 것도 진작
사라졌지. 그 통로를 자유롭게 오가던 샤먼도 권위를 잃었고 말이야. 우리
시대의 주술사인 시인들에게 마지막 산소공급을 기대해보지만, 글쎄, 지금
이 순간에도 그 통로는 미세먼저로, 플라스틱으로, 핵으로, 탐욕으로, 투기자본으로, 게다가
너무 많은 정보로 시시각각 메워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