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학고재 클래식 1
최순우 지음 / 학고재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래 전에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책읽기를 권장하고 도서관 설립에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어. 아빠의 기억이 맞다면 그 프로그램의 이름은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이었고, 그 프로그램의 책책책을 읽읍시다라는 코너가 있었어. 그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그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책들도 자연스레 당시 베스트셀러에 오르게 되었단다. 그 책들 중에 숨어있는 좋은 책들도 많아서,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는 이들에게 가이드가 되기도 했었어. 그 때 소개되어 알게 된 책 중에 하나가 바로 아빠가 이번에 읽은 최순우님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였단다.

이 책을 알게 된 지 오래되었는데, 읽기까지 참 오래 걸렸구나. 특별한 이유는 없었어. 단지 세월이 빨리 흘러갔을 뿐이란다. 이 책을 구입해서 책장에 꽂아 놓은 지는 꽤 오래되었어.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얼마 전에 읽은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산사순례>에서 부석사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단다. 그냥 부석사의 이야기를 읽기만 해도 최순우님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산사순례>의 부석사 편에서 최순우님에 대한 일화를 실으면서 이 책을 이야기하셔서 더 늦기 전에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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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7 15일 오후 6, 국립중앙박물과 중앙홀에서는 <최순우 전집>(5) 출간기념회가 열렸다. 도서출판 학고재가 제작비 전액을 부담해준 미담이 남아 있는 이 전집의 출간은 당시 학예연구실장인 소불 정양모 선생이 맡으셨고 편집 자체는 내게 떨어진 일이었다. 행사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에 소불 선생이 급히 나에게 달려와 하시는 말씀이 식순에 선생의 글 하나를 낭독하여 고인의 정을 새기는 것이 좋겠으니 자네는 편집책임자로서 아무거나 하나 골라 읽게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거침없이 그러죠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소불 선생은 너무도 쉽게 대답하는 나에게 무얼 읽을 건가?”라며 되물었다. 나는 또 거침없이 그야 <무량수전>이죠라고 대답했다.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산사순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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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빠의 편견. 이 책을 읽으면서 책 제목만 보고서, 이 책 전체가 부석사에 관한 글이라고 생각했어. 그러면서 읽기 전에 그런 생각을 했지. 참 대단하신 분이네, 부석사를 절 하나에 대해서 이렇게 두꺼운 책을 쓰시다니이 책을 읽고 나면 부석사에 대한 모든 것을 알게 되려나 싶었어. , 그런데 이 책은 부석사에 관한 이야기만 적은 것은 아니었단다. 부석사에 대한 이야기는 한 꼭지에서만 다루었단다. 그렇다고 지은이 최순우님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접은 것은 아니야. 오히려 더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들게 했단다. 왜냐하면 이 책 한 권에 우리나라의 문화재에 평가가 가득 실려 있기 때문이야. 그제서야 이 책의 부제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의 의미가 확 다가왔단다.

이 책에 실린 수많은 문화재들아빠가 모르고 있던 문화재들이 절반이 넘었어. 그러면서 느낀 것은 우리 문화재에 너무 관심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한국의 미와 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조선 시대의 그림에 대한 소개, 전통 건축과 공예에 대한 이야기, 불상과 탑에 관한 이야기들, 마지막으로 토기와 도자기까지우리나라 문화재의 총집합이자 백과사전 같은 책이란다. 하나의 문화재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원하는 이도 있지만, 이런 다양한 방면에 짧은 설명으로 된 책도 나쁘지 않았단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아빠는 문화재를 볼 때 아무리 뚫어져라 쳐다보아도 그 문화재에 숨어 있는 깊은 뜻을 모르겠는데, 지은이 최순우님은 우리 문화재 하나하나에 깃든 사연들을 이야기 주셨단다.

책의 중간을 넘어가면서, 최순우님의 글을 보기 전에 책 속에 나와 있는 문화재의 사진을 한참 쳐다보고 나서, 아빠도 마음속으로 그 문화재의 감상을 생각해보았단다. 그리고 나서 최순우님의 글을 읽어 보았어. 아마추어인 아빠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감상문을 읽고 나서야 그 문화재의 진면목을 다시 보게 되었단다. 나중에 국내 여행을 가기 전에 그 지역 주변의 문화재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 보고 이 책에서 그 문화재에 대한 설명을 잘 읽어보고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2.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느낀 점은 모르고 있는 우리말이 참 많다는 것이란다. 문장의 앞뒤 문맥을 보면 그 뜻을 알겠는데, 그 단어는 처음 보는 말들이 많았어. “예를 들어… “ 이러면서 그 말들을 너희들에게 알려주어야 하는데, 적어 놓은 말이 없구나. 아빠가 책을 거의 덮을 즈음에 이것을 깨닫고 이 말들을 적어 놓았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말들을 찾기 위해 다시 책을 읽기는 좀 그렇고 말이야. 정작 너희들에게 책을 읽을 때 처음 보는 말이 나오면 적었다가 아빠나 엄마한테 물어보라고 하면서, 아빠는 그냥 넘겨버렸구나.

그러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새로 알게 된 말에 대해 따로 공부한 적이 없는 것 같아. 모르는 우리말이 나와도 앞뒤 문맥으로 보아 유추하거나 몰라도 이야기 전개에 문제가 되지 않아서 그냥 넘겨버리곤 했어. 지금부터라도 아빠도 책을 읽을 때 모르는 말이 나오면 꼭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앞으로는 아빠도 꼭 그럴게. 이 책에 나오는 모르는 말들은 너희들이 나중에 커서 읽고 나서 리스트업해 주길 바래…^^

PS:

책의 첫 문장: 간혹 비행기를 타고 조국의 강토를 하늘에서 굽어보면 그림같이 신기한 밭이랑 논이랑의 무늬진 아름다움과 순한 버섯처럼 산기슭에 오종종 돋아난 의좋은 초가지붕의 정다움이 가슴을 뭉클하게 해줄 때가 있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이것이 과연 어느 왕공자의 조촐한 숨소리건 지체 있는 어느 선비의 잠 못 이루는 사색의 소리건 여전히 흥겨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간혹 비행기를 타고 조국의 강토를 하늘에서 굽어보면 그림같이 신기한 밭이랑 논이랑의 무늬진 아름다움과 순한 버섯처럼 산기슭에 오종종 돋아난 의좋은 초가지붕의 정다움이 가슴을 뭉클하게 해줄 때가 있다. 그리 험하지도 연약하지도 않은 산과 산들이 그다지 메마르지도 기름지지도 못한 들을 가슴에 안고, 그리 슬플 것도 복될 것도 없는 덤덤한 살림살이를 이어가는 하늘이 맑은 고장.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 강산에서 먼 조상 때부터 내내 조국의 흙이 되어가면서 순박하게 살아왔다.

- P25

뒷동산의 잘 생긴 바위 한 덩어리, 등 넘어가는 오솔길 한 갈래, 축동의 노목 한 그루에도 정령과 생명이 스며 있다는 생각, 즉 자연도 인간 못지않은 존귀한 생명을 지니고 있다고 우리 민족은 믿고 있었다. 이것은 충분히 수긍이 가는 사고이다. 어떤 의미로는 현대의 뛰어난 경륜을 지닌 지성보다도 한 걸음 앞선, 자연 보존의 존귀한 가치관과 신념을 지녔던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P37

추한 것이 진정 아름다운 것들을 짓밟는 행패 속에 얼마 안 남은 우리 주택 건축사의 결정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하나 그 아름다운 자취를 감추어가고 있다. 물론 세계의 각 지역 간에 문화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는 오늘날 현대 한국인의 생활에서 오로지 주택문화만은 고격을 고수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판 없이 남의 것만을 새롭고 곱게 보려는 풍조는 우리 민족처럼 틀이 잡힌 문화전통을 가진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P79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은 청자 비색의 아름다움과 곡선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 위에 또 하나 상감의 아름다움이 곁들여진다. 이 청자 상감의 기법은 오로지 고려 도공들만이 보인 창의였다. 벽옥같이 푸르고 갓맑은 살갗 위에 검고 희게 수놓인 상감의 아롱진 무늬들이 마치 흘러간 고려 문화의 꽃 그림자처럼 차가운 청자 살갗 위에서 파시시 숨을 쉬고 있다. 얼마나 많은 백학이, 그리고 얼마나 많은 흰 구름장이 고려 도공들의 망막을 스치고 지나갔을까. 학, 그리고 또 학, 학은 고려 사람들의 마음속 하늘을 나는 하나의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P97

한국미가 지니느 장점의 하나는 구수함이요 또 은근스러움이며 때로는 익살스러움일 수도 있다는 것은, 이러한 서민적인 대상 속에서 숨김도 과장도 없이 풍겨나는 일종의 흥겨움을 지칭하는 것이다. 고려자기나 조선자기 또는 불상조각이나 건축 등 각 분야의 작품에서 이러한 아름다움의 요소를 느낄 수 있는 대상이 발견된다면, 이것은 대부분이 서민 자신들을 위하여 자신들의 손으로 이루어진 작품에서 농후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왕실의 권위나 종교의 권위를 돋우기 위한 작품 같은 것에는 그 상대방의 주문에 따라 위엄과 기교가 앞서야 되고, 따라서 한국 사람들의 본바탕 생활문화나 생활감정을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서민감정의 자유가 보장돼 있지 못했던 것이다.- P186

명상적인 조용한 빛깔과 은은하고도 지체 있는 청자의 질감이 고려시대 상형청자의 아름다움에 고요와 신비의 생명감을 불어넣어주었다고 생각해 볼 때가 있다. 대개 공예 조각이란 예술의 경지에까지 미치지 어려운 경우가 많고, 따라서 지나친 잔재주와 아첨이 깃들인 속물이 되기 쉬운 법이다. 그러나 고려의 상형청자 작품들을 보면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모두 늣늣하게 때를 벗었다는 느낌을 깊게 받게 된다. 더구나 다루기 어려운 청자연적이나 문진 같은 작은 문방구들의 경우만 보더라도 조형이 자칫 복잡해질 듯싶지만 도리어 간명하고 순진하며 물체가 지닌 습성과 아름다움의 기미를 너무나 잘 살렸을 알 수 있다.- 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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