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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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몇 년 전에 너무 재미있게 읽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도 하고, 추천도 한 책이 있어. <세 여자>라고아빠가 아마 몇 번 이야기 했을 거야. 그래서 그 이후 그 책의 지은이 조선희 님의 책을 찾아 읽기도 했었지. 신간 알림도 해 놓았더니, 몇 달 전에 신간 알림이 왔단다. 지은이 좃ㅅㅅㅅㅅㅅ 님은 기자 출신으로 아빠가 알기로 <세 여자>가 첫 번째 소설이었어. 그리고 소설은 이번에 출간한 <그리고 봄>이 두 번째일 거야. ‘아빠가 알기로는이라는 단서가 붙어서 찾아보니, 아주 오래 전에 소설을 한 편 쓰신 것이 있더구나. 그러니까 <세 여자>가 소설로는 두 번째, <그리고 봄>은 세 번째가 되겠구나. 아무튼 <세 여자>를 재미있게 봐서 신간 <그리고 봄>도 읽었단다.

<그리고 봄> <세 여자> 같은 역사 소설은 아니고 현재를 그린 사회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한 가족의 모습을 그리면서, 우리 사회의 여러 이슈들을 담았더구나.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읽기 깔맞춤인 그런 소설인 것 같았어. 소설은 2022년 봄부터 2023년 봄까지 1년 남짓의 시간을 다루고 있단다. 아빠를 비롯한 일부 사람들에게는 악몽 같은 시간이었지. 새로운 대통령이 뽑혔고, 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거처를 옮겼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렸단다. 그에 좌절한 사람들이 이 소설에서 나오는 50대 후반의 부부란다. 그들도 민주당 대통령 경선이 있기 전까지는 지지하는 사람이 달랐는데, 경선이 끝난 이후로 1번 후보로 지지를 통일했단다. 그들에게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야. 2번을 찍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고, 3번은 뜻은 있으나 현실적이지 않았으니 말이야. 그런데 그들의 딸은 곧 죽어도 3번을 찍었고, 아들은 소위 말하는 2찍남이었어. 이렇게 가족구성원들의 정치적 성향이 전혀 다르면 어떨까?


1.

20대 자녀를 둔 아빠 영한과 엄마 정희. 큰 딸 하민은 3번 후보자 지지자로, 아빠와 엄마의 설득에도 넘어가지 않아 1번 후보자가 0.7%로 지는데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영한과 정희는 생각했어. 아들 동민은 2찍남으로, 아빠 영한의 속을 긁었는데, 영한은 자신의 아들이 2찍남이라는 것에 이해를 할 수 없어 몇 번이나 말다툼을 하고 그로 인해 동민이 집을 나가는 사태까지 벌어졌단다. 그래서 집은 영한과 정희와 딸 하민이 지냈어. 식구끼리 만든 단체 카톡방에서도 동민을 나갔단다. 집을 나간 동민은 친구와 함께 인디 밴드를 했단다. 인디 밴드도 잘만 뜨면 엄청 인기 있고 돈도 많이 버니까, 음악을 좋아서는 첫 번째 이유지만 인기와 돈도 음악을 하는 이유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지.

대선이 끝나고 첫 가족 식사 모임을 했어. 하민이 쏜다고 했어. 동민도 참석했지만 여전히 영한과는 냉전 중이었지. 그런데 그 식사 시간에 전혀 예상치 못한 폭탄 선언을 한 하민외국인 여자와 진진하게 사귀고 결혼하겠다고 커밍아웃을 한 거야. 요즘 동성 커플의 공개 선언이 색다른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하민의 커밍 아웃은 엄마 정희에게 큰 충격이었단다. 오히려 영한은 사랑의 한 종류로 받아들이려고 했어. 정희는 딸 하민이 결혼이 아닌 친구와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정희는 하민의 커밍아웃 이후 겉으로 반대는 하지 못하고(딸의 뜻을 거슬리는 엄마가 되긴 싫고) 혼자 속으로 낑낑 앓아서 잠도 제대로 못 잤단다.

하민은 커밍아웃을 하고 본격적으로 결혼준비를 했단다. 하민은 애인 엘리샤를 식구들에게 정식 소개도 했어. 결혼식은 지인들끼리 작게 하려고 한다며, 엄마 아빠한테도 일단 초대장은 보내는데 안 오셔도 된다고 했어. 그런데 문제는 하민의 애인 엘리샤의 부모님이었단다. 엘리샤는 튀르키예 사람인데, 부모님이 하민과 결혼을 완강하게 반대한다고 하셨어. 하민은 결국 둘이 친구로 지내기로 했다고 식구들에게 이야기 했단다. 정희는 안도의 한숨으로 몰래 내쉬었단다.


2.

계절마다 한 사람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봄은 엄마의 정희의 관점이고, 여름은 딸 하민의 관점이었단다. 엘리사의 부모님의 명령으로 이스탄불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어. 하민은 엘리사와 이별을 준비했단다. 그러면서 서울에서 열리는 퀴어축제에도 같이 참가했어. 그런데 그들은 이별을 준비하면서 둘은 죽어도 헤어질 수 없다는 것만 다시 확인하게 되었단다. 하민은 이것 저것 알아보더니 엘리사와 독일로 가기로 결정했어. 독일은 동성애에 관대하여 색다른 시선으로 사람도 적고, 결혼절차도 쉽고, 동성 부부가 입양하는 것도 쉽다고 했어.

일단 회사 휴직을 2년을 하고 독일에서 지내보기로 했어. 이런 계획을 하민은 엄마에게 이야기를 했단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엄마 정희는 전보다 더 큰 근심에 빠졌단다. 갑자기 폭삭 늙으신 것 같기도 했어. 하지만 이건 하민 자신의 인생이라서 결정을 바꿀 생각은 없었단다. 갑자기 늙어 보이는 엄마와 아빠를 걱정하는 것뿐.

이번에는 가을, 동민의 이야기란다. 동민은 수십 차례 취업 입사지원서를 넣었지만 모두 합격이었어. 얼마나 좌절감을 느꼈을까. 그래서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하기로 했어. 94라는 친구와 미호라는 친구와 인디 밴드를 만든 것이 2년 전이었어. 그러나 그들의 음악을 알리고 성공하는 것은 쉽지 않았단다. 미호는 얼마 전에 밴드를 그만두고 취업을 했어. 94와 동민 둘만 남았단다. 2년 동안 실패하면서 경제적으로 힘들어졌고, 집세 내는 것도 빠듯했단다. 누나 하민이 찾아와서 집에 들어가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을 했고, 동민은 돈도 없고 음악 하는 것도 좀 지쳐 있던 상황이라서 누나의 제안에 곧바로 동의했단다. 사실 동민 자신도 집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자존심 때문에 선뜻 먼저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누나가 옆구리를 찔러주었던 거지.

동민은 악기들도 모두 처분해 버렸어. 집에 들어왔지만 아빠와는 여전히 서먹한 사이동민은 다시 취업을 한다고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 다녔지만 결과는 안 좋았단다. 그러다가 미호의 소식을 들었어. 그날 이태원에 갔다가 그만 죽었다고 말이야. 동민은 큰 충격을 받았어. 아빠도 재작년에 그 뉴스를 듣고 비록 아는 사람들이 희생당한 것은 아니지만, 무척 충격이 컸던 기억이 있구나. 동민에게 미호가 단지 같은 인디 밴드 멤버만은 아니었어. 동민과 미호는 한때 사랑하던 사이였거든. 그런 미호의 죽음은 동민에게 큰 충격이었고 이겨낼 수 없는 슬픔이었단다.


3.

겨울이 왔어. 아빠 영한의 관점이지. 식구 구성원들 중에 아빠를 겨울로 삼았다는 것은 좀 의미심장한 것 같구나. 네 식구 중에 겨울을 누구와 매핑을 시켜야 할까? 하는 생각에 지은이는 전혀 고민하지 않고 아빠와 매핑시키지 않았을까 싶구나. 아빠의 계절 겨울. 어울리는 것 같다. 영한은 1980년대 치열하게 학생운동을 했었어. 1 4개월 동안 감옥에도 다녀왔어. 1 4개월이냐. 1 4개월보다 더 감옥에 가면 군대 면제가 되기 때문에 나라는 그 꼴을 볼 수 없어서 군대를 갈 수 있는 가장 긴 1 4개월을 감방에 넣은 거야.

감옥과 군대를 모두 다녀오고 뒤늦게 공부를 해서 사회학 박사가 되었지. 지방대 사회학과 교수로 일했어.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회학과가 인기가 없어지면서 사회학과가 폐지되었어. 어쩌다 사회학과가 폐지되는 세상이 되었나, 한탄도 했지. 그래도 학교에서 버텼어. 20년을 채워서 사학 연금을 받으려고 말이야. 20년을 채우고 영한은 은퇴를 했단다. 은퇴한 영한은 친구들과 가끔 산에도 가고 그랬어. 등산은 은퇴한 남자들의 대표적인 일상인 것 같구나. 나이를 먹다 보니 건강을 잃은 친구의 소식도 가끔, 이른 나이에 친구의 부음도 듣곤 했어. 그런 나이였어.

영한도 어느날 갑자기 현관문 도어락 비밀 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당황했어. 아빠도 얼마 안 있으면 소설 속 영한의 나이가 되는데, 어느날 갑자기 현관문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으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해 봤단다. 약간은 우울한 것 같은데그런 일을 대비해서 꼭 핸드폰을 갖고 다녀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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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어느 날 이른 오후 집에 왔는데 영한은 현관문 잠금장치의 비번이 기억나지 않았다. 불편한 기억과 부정적인 감정들을 무의식의 아래 칸으로 쓸어냈더니 무차별 망각의 쓰나미에 몇 안 되는 실용적인 정보도 딸려 내려가 버린 모양이었다. 집엔 아무도 없었다. 영한은 현관문 앞에 한참을 서 있다가 아파트 뒷산을 넘어 보라매공원에 가서 아내가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해가 와우산숲 위로 넘어가고 오리들도 사라져 텅 빈 연못에 어둠이 내릴 때 영한은 내 인생도 헛되고 헛된 공부들 끝에 이렇게 막이 내리고 있구나, 하는 비감에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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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한은 사회학과 교수다 보니 관련 책들도 참 많이 샀단다. 그 책을 사면서 아이들도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졌지만, 그간 영한 만의 헛된 꿈이었지. 영한은 예전에도 책을 썼는데, 다시 한번 책을 쓰기로 마음 먹었단다. 그래서 동네 도서관에 갔어. 그런데 그곳에서 우연히 아들 동민을 보았단다. 모른 척 하려고 했는데, 동민이 먼저 와서 아는 척을 했어. 둘은 오랫동안 서먹서먹한 사이였는데, 그날따라 동민은 아버지에게 먼저 아는 척을 했어. 그리고 저녁도 같이 먹게 되었고, 술자리가 이어졌단다. 드디어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의 시간인가. 영한은 그런 동민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오늘만큼은 대화 매너의 3금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단다. 그 대화 매너의 3금은 아빠도 꼭 명심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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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동민이 먼저 와서 말을 걸다니, 영한은 이 무슨 사건인가 싶다. 동민한테는 그동안 찜찜했는데 잘됐다. 집을 나간 2년 반은 동민이 대화를 거부했고 집에 돌아온 지 두 달이 넘었지만 대화는 번번히 핀트가 어긋났다. 노트북을 접고 자리를 정리하면서 영한은 부자간의 대화를 위한 마음의 준비를 했다. 책 안 읽는다고 타박하면 안 돼. 지적질 금지! 가르치려는 습관을 버려야 돼. 강의 금지! 너무 다 알려고 하지 마. 곤란한 질문도 금지! 영한은 대화 매너의 3금을 정해놓고 스스로에게 거듭 다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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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는 괜찮았어. 조심스레 정치 이야기도 하고동민이 왜 2찍남이 되었는지도 들었고,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 보려고 했어. 술이 잔뜩 취하게 되자, 동민은 미호의 죽음의 이야기했어. 친한 친구인데 이태원에서 죽었다고동민은 그 일로 무척 힘들었는데 어디서 위로도 못 받고 있었던 것 같아. 술자리에서 이렇게 아버지에게 이야기하고 위로 받고 싶었던 것 같아.

그 술자리 이후 네 식구는 다시 관계가 좋아졌단다. 동민이 다시 가족 카톡방에도 들어왔어. 얼마 후 동민은 선배가 차린 수제 맥주 회사에 취업했다고 했어. 영한과 정희는 그 취업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동민이 그 일을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 안심했단다.

다시 봄이 되었어. 하민은 베를린에 간지 6개월이 되었고, 그곳에서 적응을 잘 한다고 했어. 레즈비언 커뮤니티에 가입하여 활동도 열심히 한다고 했어. 대학원에 들어가려고 준비도 한다고 했단다. 동민은 회사가 있는 이천에서 주로 생활했단다. 그렇게 네 식구는 각자의 자리에서 활기를 찾으면서 소설은 끝이 났단다.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 성별 간의 갈등, 그리고 그런 것들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해결되어 가는 모습이 잔잔하면서 재미있게 그려진 소설이었어. 아빠는 아무래도 네 명의 구성원 중에 영한에게 공감이 많이 가더구나. 소설 속 영한은 아빠보다 나이가 많지만, 네 식구에서 아빠 역할을 하고 있으니 아빠와 비슷하잖아. 그리고 아빠도 요즘 들어 나이를 먹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데, 그런 점들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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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324)

늙는 건 정말 종합적으로 어려워. 은퇴라는 것도 쉽지가 않지. 예전엔 그냥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 한가운데였는데. 일이 돌아가고 같이 움직이고 그랬는데. 이젠 자기가 자기를 추스르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안 굴러가. 몸은 여기저기 빵꾸 나기 시작하지. 요새 친구들 만나면 어디 아픈 얘길 많이 하는데 무릎 하나 가지고 30분씩 떠들 때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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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아직도 3년도 더 남았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어렵게 성사된 4인 가족의 점심 식사였다.

책의 끝 문장: 지금도 남편은 박스에서 책을 꺼냈다 넣었다를 계속하고 있다.


어쨌거나 지금은 너무 늦어버렸어. 미호는 너무 아름다웠어. 동민은 노래의 마지막 소절을 바꿔 불러본다. 미호는 평범한 얼굴이지만 스무 살엔 누구나 아름답다. 우리도 스무 살에 만났지. 스무 살에 저 노래를 부르며 데뷔한 서태지가 지금 오십이 됐다는 건 이상하다. 우리도 결국은 오십이 될까. 그럴 리 없어. 우리가 어떻게 오십이 될 수 있겠어. 하지만 내후년이면 서른인데 그다음에 마흔이 되고 나면 또 자동으로 오십이 되고 마는 거지. - P193

마르크스, 당신은 우리 인류에게 구원의 이름이자 저주의 이름이다. 아마 영원히 그럴 것이다. 당신은 20세기 인류를 반으로 갈라서 싸우게 만들었다. 절대권력과 독재정치가 당신의 이름을 빌리기도 했다. 하지만 당신은 식민침략과 제국주의로 질주하던 자본주의의 악마성에 제동을 걸었다. 식민침략을 당했던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당신은 복음이었다. 당신의 이론과 레닌의 혁명은 역설적이게도 당신들을 추종한 공산주의 세계를 행복하게 만드는 대신 반대편의 자본주의 세계를 더 인간답게 만들었다. 이제 편히 잠드시라. 당신이 남긴 것을 구원의 도구로 쓰거나 파멸의 정치로 쓰거나는 후대 사람들의 선택이다. - P220

여기서 진보가 정치에 희망을 잃고 정치 혐오와 정치 무관심의 안드로메다로 떠나버리면 그것이 지금 일본이다. 총선 투표율이 50% 정도, 어차피 정치는 자민당이 알아서 하든 말든, 국민 절반이 누가 국회의원이 되는지 관심 없다. 전후 70여 년의 자민당체제에서 민주당이나 사회당이 집권한 건 단 두 차례, 6년이었다.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에 투표율도 높았지만 매번 실패했다. 자민당의 수족이 돼 있는 행정부에서 민주당은 거의 외계인 내각이었다. 민주화운동에서의 역할, 시민운동의 경험이 한국의 진보가 일본의 진보보다 나은 점이다. 그 다음은 집권 경험이 쌓여야 진보도 실력이 쌓인다. - P268

우리의 다음 스텝은 무엇이 될 것인가. 결국 믿을 것은 민주주의이고 의회정치인데 이상적인 의회제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민주화의 한 세대를 지나 차세대로 넘어가는 한국사회가 어떻게 저 우아한 시스템에 올라탈 것인가. 독일은 나치를 딛고 훌쩍 건너뛰었는데,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바닥을 치는 이 시기가 변화의 지렛대가 될까. 성숙한 민주주의의 다음 단계로 건너뛰는 것, 사회적 진화의 시간을 단축하는 데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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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작 - 잠 못 드는 사람들 / 올라브의 꿈 / 해질 무렵
욘 포세 지음, 홍재웅 옮김 / 새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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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매년 10월이면 애서가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 있단다. 바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 인터넷 서점에서는 노벨 문학상을 예상하는 이벤트도 벌이곤 하지. 아빠도 거의 매년 그 이벤트에 참가하여 투표를 한단다. 예전에는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를 투표했는데, 두어 년 전부터는 아빠가 모르는 작가에 투표를 한단다. 왜냐하면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 대부분 아빠가 몰랐던 작가들이었거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나서 수상자에 관심을 갖게 되어 책을 찾아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 그래서 아빠에게 노벨 문학상은 숨어 있는, 훌륭한 작가를 알게 되는 계기로 생각하고 있단다.

작년 202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도 역시나 처음 들어보는 작가가 수상하였단다. 욘 포세라는 노르웨이 사람이 탔단다. 노르웨이 작가라고 하면 아빠가 좋아하는 요 네스뵈가 있는데, 욘 포세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작가였단다. 한번 읽어보고 싶더구나.  그래서 대표작 중에 한 권인 <3부작>이라는 책을 읽었단다.

연작 소설 3편인 <잠 못 드는 사람들>, <올라브의 꿈>, <해질 무렵>을 하나로 엮은 것으로 우리나라에는 2019년에 출간되었단다. 책의 뒤편에 옮긴이의 글을 보니, 폰 욘세가 최근에 노벨 문학상 후보로 많이 거론된다고 써 있더구나. 몇 년 전부터 유력한 후보였구나. 많이 알려지지 않은 폰 욘세의 작품을 몇 년 전에 소개한 출판사는 노벨 문학상 발표 후에 돈 좀 벌었으려나? 하는 뜬금없는 생각도 드는구나. 대표작 3부작의 이야기를 간단히 해줄게. 역시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의 작품은 읽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으면서


1.

첫 번째 이야기는 <잠 못 드는 사람들>이란다. 노르웨이 서남부 해변가 도시 베르겐의 옛이름은 벼리빈인데, 그곳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단다. 그러니까 베르겐이 벼리빈이라고 불리던 옛날 이야기인 것이야. 벼리빈 인근에 뒬리야 지방이라는 시골 마을에 아슬레와 알리다가 살고 있었지. 아슬레의 아버지는 바이올린 연주자였고, 아슬레도 아버지와 함께 연주를 하곤 했단다. 아슬레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아슬레는 살고 있던 보트하우스에서 쫓겨나게 되었단다. 알리다의 아버지는 오래 전에 집을 떠나셨고, 엄마와 언니 올린과 함께 지냈는데, 엄마는 언이 올린만 좋아하고 알리다에게는 막 대했단다. 그래서 알리다와 엄마 사이는 오래 전부터 좋지 않았어.

아슬레와 알리다는 17살 어린 나이지만, 둘은 사랑하는 사이였고, 알리다는 임신까지 하게 되었단다. 보트하우스에서 쫓겨난 아슬레는 알리디와 함께 뒬리야를 떠나 벼리빈으로 가기로 했어. 벼리빈은 번화한 곳이므로 그들이 묵을 방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단다. 이 소설은 마치 아슬레와 알리다, 젊은 여인의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인가 싶었어. 아빠만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좀 몽환적인 느낌이었단다.

벼리빈에 도착을 한 아슬레와 알리다…. 벼리빈은 비가 내리고 날씨가 쌀쌀했어. 그런데 이 두 젊은 연인을 받아주려고 하는 집이나 여관은 없었어. 한참을 돌아다니면서 문을 두들겠지만, 그들은 묵을 만한 방을 찾지 못했단다. 아무래도 낯선 젊은 연인에, 여자는 임신해서 출산을 앞둔 것처럼 보여서 방이 있어도 그들을 받아주지 않는 것 같았어. 한참 뒤에야 한 노파의 집에서 머물 수 있었는데, 거기도 거의 억지로 부탁해서 간신히 묵을 수 있었단다. 그래도 정착할 곳을 찾기 전에 임시로나마 묵을 수 있는 곳이 생겨서 다행이구나.

그런데 며칠 뒤 알리나가 아이를 낳으려고 했어. 그들은 아이 낳는 경험이 없으니 산파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어. 아슬레가 수소문 끝에 산파를 데리고 왔는데, 그 산파 왈, 아슬레와 알리다가 머물고 있는 집의 주인도 산파라고 했단다. 그러나 그 집주인인 노파는 집에 없었단다. 사실 며칠 전부터 보이질 않았어. 이때부터 아슬레가 좀 의심스러웠어. 갑자기 스릴러 장르로 바뀌는 건가? 아무튼 산모와 아이는 모두 건강하게 출산을 했단다.


2.

아슬레와 알리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은 시그발이라고 지었어. 그들은 벼리빈을 떠나서 바르벤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지냈어. 새로운 출발을 하겠다면서 이름도 아슬레는 올라브로, 알리나는 오스타로 바꾸었단다. 두 번째 작품의 제목이 아슬레가 이름을 바꾼 올라브가 들어간 <올라브의 꿈>이란다. 그래서 두 번째 작품 이야기를 할 때는 올라브와 오스타라는 이름으로 이야기할게.

올라브는 오스타에게 결혼식은커녕 아무것도 준 것이 없어서 바이올린을 팔아서 반지 선물을 사려고 벼리빈에 갔단다. 그런데 어디선가부터 어떤 노인이 올라브를 따라왔는데 올라브를 안다면서 계속 말을 걸어왔어. 올라브는 아는 척하고 싶지 않은데 귀찮게 계속 따라왔단다. 빠른 걸음으로 그 노인을 따돌리고 선술집에 들어갔는데, 소름 끼치게도 그 노인은 먼저 선술집에 와 있었어. 그러면서 올라브에게 자신을 아냐고 계속 물어봤고, 올라브는 그 질문을 무시했단다. 올라브는 선술집에서 오스가우트라는 새로운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노인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어. 그러면서 이야기를 하기를, 아슬레가 살던 보트하우스의 주인이 살해되었고, 그 마음에 어떤 딸의 엄마도 죽었고, 벼리빈의 한 산파가 실종되었다는 이야기를 그들에게 했어. 올라브는 사람을 잘못 봤다면서 자신은 아슬레가 아니라고 했단다. , 아슬레가 결국 일을 벌였던 것인가. 역시 노르웨이는 범죄 스릴서 소설에 강점이 있는 것인가. 색다른 스타일의 스릴러?

올라브는 원래 반지를 사러 벼리빈에 온 것인데, 오스가우트가 산 팔찌를 보고 너무 예뻐서 올라브도 마음이 바뀠어서. 반지 대신 팔찌를 사고 싶었어. 하지만 가격이 비쌌지. 아빠는 오스가우트도 죽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단다. 오스가우트의 도움으로 오스가우트와 같은 팔찌를 싼 가격에 살 수 있었어. 올라브는 오스타에서 그 팔찌를 줄 생각에 기뻤단다. 그런데 그날이 저물어서 벼리빈에서 하룻밤 자고 가야 했어. 어떤 노파의 집에서 묵게 되었는데, 그 노파의 딸이 올라브에게 계속 추파를 던졌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노파의 딸이 올라브의 팔찌를 훔쳐갔단다.

더 놀라운 일은 노파의 남편이 집에 왔는데, 그 사람은 하루 종일 올라브를 쫓아다니면서 아는 척을 했던 그 노인이었단다. 그 노인은 이제서야 경찰에 신고를 했고, 올라브는 경찰에 체포되어 철창에 갇히고 말았어. 올라브는 왜 항변을 안 했는지 모르겠지만, 올라브는 그 죄가 인정되어 얼마 후에 교수형에 처해졌단다. 올라브가 진짜 범인이라고 해도, 왜 항변하지 않고 그렇게 순순히 죄를 인정하고 죽었을까. 아빠가 책을 읽다가 뭔가 놓친 것이 있나? 싶었단다. 가족을 두고 그렇게 순순히 죽을 캐릭터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3.

세 번째 작품을 읽다 보면 앞의 두 작품에서 읽다가 생긴 궁금증이 풀리려나. 빨리 책장을 넘겨보았단다. 3부작의 마지막 <해질 무렵>은 엘리스라는 할머니가 먼 옛날을 회상하면서 시작한단다. 엘리스는 다름 아닌 알리다의 딸이었단다. , 알리다와 아슬레 사이의 아기 이름은 시그발이었는데어찌 된 일인지 얼른 읽어보았단다.

아슬레가 돌아오지 않자 알리다는 시그발을 데리고 벼리빈에 갔단다. 하지만 아슬레를 찾지 못하고 길을 헤매다가 선착장에 앉아 있었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아기를 안고 헤매 다녔으니 힘들었겠지. 그때 고향 뒬리야의 어른 오슬레이크 씨를 만났어. 오슬레이크는 알리다가 굶주린 것을 알고 밥도 사 주면서 고향 소식을 알려주었어. 알리다의 어머니가 죽었다고 했어. 그것도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는 의문사라고 했어.

이 소식을 들은 알리다는 충격을 받았단다.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엄마는 엄마인데 말이야. 그리고 보트하우스의 주인이 살해되었고, 벼리빈의 산파도 살해당한 후 실종된 이야기를 하면서, 이 일과 연루된 아슬레가 교수형을 당했다고 했어. 믿기지 않은 이야기를 들은 알리다는 오슬레이크가 한 이야기를 믿으려고 하지 않았어. 아슬레가 없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어디로 가야 하지? 막막했을 거야. 잠자리가 없는 알리다. 오슬레이크는 자신의 배에서 하룻밤 재워주겠다고 했어. 오슬레이크의 배로 가는 선착장에서 알리다는 팔찌를 하나 주었는데, 한 눈에 그것이 아슬레가 남긴 선물이라고 생각해서 잘 간직했단다.

알리다는 아기 시그발과 함께 오슬레이크의 배에서 하룻밤을 지냈어.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어. 오슬레이크는 고향인 뒬리야에 간다고 하니 알리다는 가지 않겠다고 했어. 하지만 그렇다고 어디 갈 곳도 없었어. 결국 오슬레이크의 제안으로 그의 집의 가정부로 일하기로 했단다. 그러면 최소한 먹는 것과 잠자는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야. 오슬레이크는 얼마 전까지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는데, 얼마 전에 돌아가시고 집안 일 할 사람이 없다고 했어. 알리다는 그렇게 오슬레이크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단다.

사실 오슬레이크는 알리다를 자신의 가정부로 둔 또 다른 검은 이유도 있었단다. 알리다는 얼마 후 오슬레이크의 첫째 딸 알레스를 낳았고, 둘째 딸도 낳았지만 둘째 딸은 어려서 죽었단다. 어느날 알리다는 해안가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는데, 자살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세월은 한참 지나서 알리다의 딸 엘리스도 할머니가 되었고, 엘리스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야기를 했던 것이란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아빠가 앞서 이 소설에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느꼈다고 했는데, 소설의 끝까지 그런 느낌이 들었단다. 아슬레가 예상치 못한 연쇄 살인범으로 죽어서 깜짝 놀랐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라는 반전을 기대하였지만, 그런 반전을 일어나지 않았단다. 아슬레가 죽고 나서 혼자 남은 알리다라도 해피 엔딩이면 좋았겠지만, 이미 소설의 분위기가 해피 엔딩이 아닐 것 같았단다.

지은이가 이 소설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인지 사실 아빠는 잘 이해하지 못했고, 이런 작품에서 어떤 우수한 점을 찾아내어 지은이 욘 포세에게 노벨 문학상이 돌아갔는지 잘 모르겠구나. 아빠는 아마추어 독서가이니, 전문가들의 높은 뜻을 알겠니. 책이란 게 그냥 재미있으면 되지…^^


PS,

책의 첫 문장: 아슬레와 알리다는 벼리빈의 거리들을 배회하고 있었는데, 아슬레는 그들이 가진 모든 물건을 담은 보따리 두 개를 어깨에 메고 손에는 아버지 시그발에게서 물려받은 바이올린이 든 가방을 쥐고, 알리다는 음식이 든 그물자루를 들고서, 그들은 이제껏 몇 시간이나 벼리빈의 거리들을 돌아다니며 머물 곳을 찾으려 했다.

책의 끝 문장: 그녀는 계속해서 걷고, 깊이 더 깊이 들어간다 그러자 파도가 그녀의 잿빛 머리를 넘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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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장자수업 1 - 밀쳐진 삶을 위한 찬가 강신주의 장자수업 1
강신주 지음 / EBS BOOKS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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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몇 달 전 신간 코너에서 알게 된 책 <강신주의 장자수업 1>을 읽었단다. 아빠가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아빠는 강신주 님을 좋아한단다. 아빠는 틀에 박혀 스스로 자유를 제한하면서 지내는데, (그게 더 편한데) 강신주 님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고 생각하거든.. 아빠랑 생각이 많이 다르시지만, 아빠가 본받고 배우고 싶은 그런 분이지그래서 강신주 님의 책이 출간되면 관심 있게 눈 여겨 보는 편이란다. 그런데 이번에 쓰신 책이 장자라니…. 강신주 님이 장자에 대한 책은 그 전에도 쓰신 것으로 알지만, 다시 한번 장자에서 대해서 이야기하신 모양이구나.

장자는 아빠가 동양 철학자들 중에 가장 호감이 가는 인물이란다. 동아시아에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은 아무래도 공자이겠지만, 장자는 공자가 영향을 준 동아시아에 살고 이들의 일반적인 관념을 깨는 사람이거든. 장자를 읽다 보면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아빠도 장자처럼 생각하고 장자처럼 행동하고 싶게 만든단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곤란을 좀 겪을 수도 있지만 말이야. 그래서 생각만 장자처럼 하는 것으로…^^ 그렇다고 아빠가 장자를 잘 이해하는 것은 아니야. 장자에 대한 책들을 여럿 읽어보긴 했지만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해. 심오한 철학을 아빠가 어떻게 이해하겠니. 아무튼 아빠가 좋아하는 강신주 님이 아빠가 좋아하는 장자에 대해서 책을 쓰셨다니, 당연히 읽어야겠지.

이 책은 EBS를 통해 강신주 님이 방송도 하신다고 하더구나. 어찌 보면 그 방송의 교재라고 할 수도 있겠구나. 우리는 TV가 없으니, 본 방송을 보긴 어렵지만, 유튜브에도 조금씩 소개가 되고 있더구나.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강신주 님이 살이 많이 빠져서 걱정했는데, 방송하시는 모습을 보니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구나. <강신주의 장자수업>은 모두 두 권으로 되어 있는데, 오늘은 1권을 먼저 이야기해줄게.

이런 책을 읽는 것은 뿌듯하면서 무엇인가 가슴 속에 조금씩 채워지는 느낌이 드는데, 그 채워진 느낌을 다시 다른 이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은 참 어렵더구나. 너희들에게 이 책을 제대로 이야기해주기 쉽지 않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는 거야. 너희들이 좀더 크면 직접 한번 읽어보라고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물론 바쁘시고 장자에 관심이 없으면 안 읽어도 상관 없고 말이야. 서두가 길어졌구나. 아빠가 이 책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했으니, 짧게 몇 가지만 이야기할게. 장자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면 관련된 책도 많고, 유튜브에 동영상도 많으니 보면 될 것 같구나.


1.

장자(壯者)는 장 선생님 정도의 뜻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장자의 본명은 장주라고 하는구나. 춘추전국시대 여러 나라 중에 송나라에서 태어났는데, 송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힘이 약해서 무시당하고 깔보던 나라였다는구나. 그런 그의 국적이 사상을 만드는데 영향을 주었을까? 잘 모르겠다. <장자>는 장자뿐만 아니라 장자를 따르던 이들이 약 300년간 만들어낸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라고 하는구나. 그러니까 장자가 직접 쓰거나 이야기한 내용도 있지만, 그런 장자를 따르고 공부한 이들이 쓴 내용도 있는 거야. 인터넷 좀 찾아보니 <장자>는 총 33 6 4606자로 되어 있다는 구나.  

<장자>는 짤막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야기마다 우리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철학적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구나. 아빠가 이해한 바로는 장자 사상의 핵심은 쓸모 없음이란다. 장자가 살았던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대였단다. 어떤 사람이 능력도 좋다면, 그러니까 쓸모가 많다면 많은 인재들을 끌어들이려고 하는 나라는 그 사람을 등용하게 된단다. 그렇게 쓸모 있는 사람은 나라를 위해서 일하거나 때론 전쟁에 투입되지. 그렇다 보면 금방 죽을 수도 있어. 하지만 별로 능력도 없이 쓸모가 없다면 국가는 신경도 쓰지 않을 테고, 조용하게 한 평생을 평화롭게 살아갈 수가 있는 거란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쓸모 있는 인재가 과연 좋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단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야. 어렸을 때부터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단다. 나라에 도움이 되는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단다. ? 장자가 살던 시대나 오늘날이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은이는 이야기한단다. 물론 쓸모가 있으면 더 많은 돈을 벌어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울 수 있어. 그게 자본주의 시스템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런 쓸모 있는 인간은 자신보다 국가가 원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지은이는 주장했어. 그러면서 국가가 원하는 인간이 되지 말고, 국가가 원하는 일을 하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라고 했단다. 나아가 자신이 원하지 않은 일을 남에게도 하지 말라고 했단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이야기하는 부모님들이 찔릴 말이로구나.

쓸모 없음에 관한 이야기는 책 전반에 걸쳐 나온단다. 6장 거목 이야기도 쓸모 없음을 이해하는데 재미있는 우화가 나온단다. 잘 자란 나무는 재목이라고 해서 금방 누군가 베어간단다. 그런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나무는 아무도 베어가질 않아서 엄청 클 때까지 자랄 수 있단다. , 쓸모 있는 것이 좋은가? 쓸모 없는 것이 좋은가? 장자와 강신주 님께서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대충은 이해가 가지만, 그런 나무 같은 사람이 있다면 오늘날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생존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렇게 장자가 쓸모 없음을 이야기하자 혜시라는 사람은 반박을 했단다. 쓸모 없는 커다란 박은 부서져서 버려진다고 말이야. 그러자 장자는 이에 반박을 한단다. 커다란 박은 박으로는 쓸모가 없지만, 배로 쓸모다 있다고 말이야. 사람들의 능력도 마찬가지란다. 어느 일에 있어서 내가 쓸모가 없을지라도 다른 일에서는 쓸모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이야. 보통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는데, 사람도 마찬가지란다. 그런데 쓸모가 없어져도 그를 소중히 아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진정 그를 사랑하는 사람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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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우리는 성적이 좋은 아이여서, 품이 덜 드는 아이여서 우리 아이를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쓸모가 있는 아이, 동년배보다 쓸모가 더 큰 아이라는 것이 사랑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입시에 실패할 때, 취업에 실패할 때, 혹은 정리해고라도 당했을 때 여러분의 아이가 여러분을 떠나거나 자살하는 비극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냥 무용으로 아이를 사랑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쓸모가 없어지더라도 여러분의 소중한 아이는 죽지 않고 여러분을 찾아올 테니까요. 아무런 쓸모가 없어도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랑받는다는 확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남편도 아내도 무용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바람도 물도 그리고 새도 물고기도 무용으로 좋아해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언젠가 병들도 나이 들어 쓸모는커녕 주변에 짐이 되는 때가 반드시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 주변에 여러분을 쓸모로 평가하지 않는 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건, 바로 이것이 무용을 강조했던 장자의 진정한 속내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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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자>에 나오는 대표적인 우화라고 하면 빈 배 이야기를 들 수 있을 것 같아. 빈 배 이야기는 아빠가 예전에 읽은, 오쇼 라즈니쉬가 장자에 대해 쓴 책 <삶의 길 흰구름의 길>이라는 책에서 처음 알게 된 이야기인데 관념을 딱 깨어주는 이야기였단다. 그리고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달려 있고,

우리가 빈 배처럼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그 이야기는 이렇단다. 배를 타고 큰 강을 건너는데 어디선가 떠 내려온 빈 배가 내 배에 부딪히게 되면, 화를 내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거야. 하지만 어떤 사람이 타고 있는 배가 내 배에 부딪힌다면 어쩌겠니. 당장 노발대발 큰 소리를 칠 거라는 거지두 배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나 자신을 빈 배처럼 만든다면 아무도 나에게 맞서지 않고, 나로 하여금 상처를 입지 않게 되겠지. , 쉽지는 않지만 상당히 일리 있는 이야기구나.

장자의 첫 번째 이야기는 이라고 하는 아주 큰 새에 관한 대붕 이야기란다. 붕은 원래 엄청나게 큰 물고기 이었어. 그런데, 엄청나게 큰 새 으로 변했어. 얼마나 크냐면 날개가 몇 천 리라고 했어. 그렇게 크다 보니 땅에서는 날개 짓을 못해서 날지를 못했어. 커다란 태풍이 와야만 그 바람을 이용해서 날 수 있었단다. 마침내 큰 태풍이 와서 붕은 날아올랐단다. 그렇게 하늘을 날면서 붕은 자유롭다고 생각했어. 오랜 기다림과 어려운 조건을 이겨낸 자유라고 할까. 바람이 없으면 날지 못하는 자유. 제한된 자유.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그런 제한적 자유를 가지고 있어. 그런데 그 제한적 조건이 어려워서 그 자유를 누리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란다. 마치 메추리처럼메추리는 날고 싶을 때 날고, 앉고 싶을 때 앉는단다. 현재 자리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만 얻겠다는 거야. 그러면서 자유롭다고 하지. 태풍이 오면 그것을 이용하려고 하지 않고 피한단다. 대붕처럼 제한적이고 어려운 조건을 이겨내는 자만이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단다. 그리고 대붕은 바람이 있어야 자유를 얻을 수 있어. 이것은 두 존재 또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의미하기도 해. 장자는 자신과 타자의 관계를 고민했던 철학자이고, 우화에도 그런 내용이 많이 나와 있단다.

또 다른 에피소드 중에 바람 이야기가 있어. 구멍이 있는데 바람이 있다면 구멍이 소리를 나지 않는다는 거야. 피리 등 악기들 중에 구멍에 바람을 불어 소리를 내는 악기들이 있는데 바람이 없다면 그 악기들은 아무런 소리를 못 낸다는 거야. 그렇게 관계에 엮여 살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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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차라리 우리는 바람과 같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 우리의 마음은 바람과 같으며, 나아가 바람과 같은 것이어야만 합니다. 구멍이 되어 바람을 맞아 소리를 낼 수도 있고, 바람이 되어 누군가의 구멍에 들어가 그 구멍에 어울리는 소리를 낼 수도 있으니까요. 바로 이것이 장자가 바람의 철학자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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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다른 사람과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책들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잘 듣는 것을 장자는 강조했단다.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듣고, 더 나아가 기로 들으라고 했어. 아빠가 성격이 급해서 차분히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못하는 편인데 그래도 노력은 하려고 한다. 아빠도 잘 들어주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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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325)

음악을 듣는 경험을 떠올려보세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을 들을 때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습니다. 혹은 음악을 제대로 듣기 위해 거실의 불을 끄거나 빛을 약하게 조절합니다. 음악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할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런 행동은 군주를 보지 않으려 고개를 숙이는 복종의 행위와는 다릅니다. 눈을 감고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는 행동은 상대방을 지배하거나 상대방에 복종하겠다는 의지와 무관합니다. 음악이나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 우리는 고개를 숙이지 않고 눈을 감게 됩니다. 고개를 숙이지 않음이 상대방에게 복종하지 않으려는 의지라면, 눈을 감는 것은 상대방을 지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군주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응시하는 신하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지요. 타자의 말이나 혹은 타자를 듣는다는 것은 지해에의 의지나 복종에의 의지를 넘어서 있습니다. 그건 소통에의 의지니까요. 장자는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로 들어라!”고 말합니다. ‘’, ‘마음’, 혹은 보다 수천 배 중요한 것은 듣겠다는 그의 의지입니다. ‘듣겠다는 소통에의 의지가 귀로 듣는 것보다 마음으로 듣는 것이 좋고, 마음으로 듣는 것보다 기로 듣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가능하게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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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지리소 이야기를 하나 해줄게. 이 이야기도 참 인상 깊었거든. 장자의 핵심 철학인 쓸모 없음에 대한 주제도 포함되어 있고 말이야. 지리소라는 사람이 있었어. 지리소라는 외형은 꼽추로 제대로 설 수도 없는 몸으로 다른 사람이 보면 정말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하지만 지리소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단다. 지리소는 그 자신의 몸을 탓하지 않았어. 빨래와 바느질에 소질이 있어서 돈벌이에도 문제가 없었어. 자신이 다 가졌다고 생각했어. 장애를 가졌다 보니 나라에서 돈도 좀 주고 그랬대. 그런데 돈을 주지 않아도 상관없었어. 이미 자신은 먹고 사는데 문제 없고 사는데도 문제 없으니까 말이야. 전쟁이 나서 사람들이 끌려가도 지리소는 꼽추라는 장애 때문에 피할 수 있었어. 진정 모든 것을 다 자신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주어진 여건이 열악하지만 그것을 이용하고 그것에 만족하는 지리소를 보면서 아빠 자신을 반추해 보게 되더구나. 아빠 자신을 볼 때 갖고 있는 것보다 뭔가 부족한 것을 먼저 보고 그것에 대해 불평하는 모습 말이야. 지리소에게서 참 배울 점이 많구나.

….

그 밖에 아빠의 머리를 때리는 많은 이야기가 있었단다.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2권의 이야기도 조만간 해줄게.


PS,

책의 첫 문장: <장자>는 인류가 자랑하는 고전입니다.

책의 끝 문장: 차라투스트라가 이렇게 말했다면, 열자는 이렇게 산 것입니다.


행성 충돌이나 극심한 기후 변화가 일어나거나 압도적인 포획자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인간은 자신의 못을 스스로 조르는 자기 파괴적 동물입니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진행되는 전쟁을 보세요. ‘우리는 같은 종이야’라는 의식은 전혀 없습니다. 늑대나 토끼가 보았다면 당혹스러울 일이고, 인간을 전염병균처럼 여기며 멀리 떠나려 할 겁니다. "인간들은 서로 거침없이 착취하려 하고 심지어 서로를 살육하니, 우리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렇지만 늑대와 토끼마저도 동족의 피를 묻힌 인간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불행하게도 자신들이 도망할 곳마저도 인간에 의해 이미 잠식되어버렸으니까요. - P18

사랑이 힘든 것은, 양쪽 다가 주인이고 양쪽 모두가 자유로운 존재여서 그렇습니다. 자유와 자유가 만나는 팽팽한 긴장감이지요.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건 상대방이 가장 자연스럽게 어떤 강요도 없이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라는 이야기도 성립되는 셈이죠. - P46

윤편은 말했다. "저는 그것을 저 자신의 일에 근거해서 본 겁니다. 바퀴를 깎을 때 끌질이 느리면 끌은 나무에서 미끄러져 제대로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빠르면 끌은 나무에 박혀 빠지지 않습니다. 끌질이 너무 느려서도 안 되고 너무 빨라서도 안 된다는 것을 저는 손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대응할 수 있을 뿐, 입이 있어도 말로 옮길 수 없습니다. 끌질하는 동안 몇몇 방법이 있겠지만, 저는 제 아들에게 전달할 수 없고 제 아들도 또한 제게서 배울 수 없습니다. 이것이 나이 일흔이 되도록 제가 바퀴를 깎고 있는 이유입니다. 옛사람은 자신이 전할 수 없는 것과 함께 이미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공께서는 지금 옛사람들의 찌꺼기를 읽고 있는 게 아닙니까!" - P77

우리 삶에는 한계가 있지만, 앎에는 한계가 없다. 한계가 있는 것으로 한계가 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할 뿐이다. 그런데도 계속 앎을 추구하려는 자는 더더욱 위태로워질 뿐이다. 선을 행해도 명성에 가까워서는 안 되고 악을 행하더라도 형벌에 가까워서는 안 된다. 독맥적인 것 따르기를 기준으로 삼아라! 그러면 몸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고, 삶을 온전하게 할 수 있고, 어버이를 기를 수 있고, 주어진 수명을 다 채울 수 있을 것이다. - <양생주> - P187

기원전 4000년경 인간은 말을 마지막으로 가축화한 이후로 더 이상 다른 동물을 가축으로 길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동료 인간을 가축화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인간 가축은 동물 가축과는 달리 말이 통하고 더 섬세한 작업에 투입할 수도 있으니까요. 거대 건축물로 상징되는 국가체제는 인간 가축화 과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죠. 20세기 전번에 민주주의를 자임했던 국가에서 언론이나 정치가들이 유행처럼 사용했던 비유가 하나 있습니다. ‘당근과 채찍’입니다. 다른 국가들이 혹은 자국민들을 길들여 지배하려 할 때 반드시 병행해야만 하는 두 가지 방법을 비유한 거죠. 단순한 비유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당근과 채찍은 가축화 메커니즘의 핵심에 있습니다. 당근과 채찍이 동료 인간에게 적용된 것이 바로 상과 벌 혹은 사랑의 방법과 폭력의 방법이니까요.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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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1-31 0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가축화, 고대 문명의 창작품이 지금도 이어지는 듯해요. 우매한 백성들을 선동질하는 사이비 정치인들 때문에 팬덤까지 형성되니 말입니다. 슬프요.ㅠㅠ

bookholic 2024-01-31 16:55   좋아요 0 | URL
그들의 가축이 되지 않겠습니다 !!!!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 - 통권 184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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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 통권 184호를 읽었단다. 2023년은 언제 갔는지 모르게 지나가버렸구나. 여러 가지 의미가 있던 한 해였는데, 1년 여간 휴식기를 가졌던 녹색평론이 다시 돌아온 것도 아빠에게는 의미가 있는 일이었단다. 환경에 다시 생각하게 하고, 사회의 모순들을 생각하게 하는 그런 글들이 많이 실려 있어서 아빠에게 여러 경각심을 심어주는 든든한 책이었는데, 1년 동안 없어서 아쉬웠거든. 이번 겨울호의 부제는 파국과 전환, 기로에 선 한국사회더구나.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지 아직 2년도 안되어 희망이 사라져 보이는데,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나라를 얼마나 더 엉망으로 만드실지 걱정이구나.

이 책에서는 현정부의 정책을 보면, 환경과 기후에 관련된 정책은 찾아볼 수 없다고 하는구나. 몇 달 전인가 일회용 용품과 플라스틱에 대한 규제를 다시 푼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어. 그래서 플라스틱 대용으로 친환경 빨대를 만든 업체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는 소식도나라의 정책이 이리 왔다갔다 하고, 그것도 과거로 회귀하는 정책을 쓰고 있으니, 국민들은 어떤 장단에 맞춰야 하는 걸까. 그리고 현정부의 정책 중에 농민의 목소리가 포함되어 있는 정책도 없다는구나. 농민의 남는 쌀을 구매해주는 것은 정부의 역할로, 그들이 또 힘을 얻어 다음 해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동력을 얻는 것이란다. 앞으로 더 농업이 중요한 산업이 되는 것은 기정 사실인데 말이야. 그런데 그것을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하며 거부권을 행사했다는구나. 그러면서 대기업 미분양 아파트를 세금으로 구매할 계획이라고 하네. 이 이야기를 회사 사람한테 했더니, 건설사로부터는 돈을 받고 농민들에게 돈을 받지 않아서 그럴 거라는 신빙성 있는 말씀을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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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그러나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양곡법 개정안은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농가소득을 높이려는 농정목표에도 반하고,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막대한 혈세를 들여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에서는 대기업 미분양 아파트 구매하는 데는 혈세를 10~20조 원 들이면서 농민 쌀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혹독하냐?”고 항의했다. 실제로, 전국 곳곳의 미분양 아파트는 6만 가구에 육박하고, 이것을 정부가 사들이면 47조 원대에 이르는 주택도시기금(주택채권, 청약저축, 세금전입 등으로 구성)이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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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란다. 민주국가이면서 공화국가라는 의미란다. 그런데 민주와 공화는 상반된 개념이라고 하는구나. 민주는 시민의 평등을 중시하는 반면, 공화는 시민의 불평등을 전제로 한다고 하더구나. 이런 모순된 정치 체제이기 때문에, 후진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그보다 아빠가 생각하기에 우리 나라의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많은 정치인들이 자기 또는 자기네(정당) 밥그릇 챙기는데 열정을 쏟고 있다는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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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우리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한다. 민주와 공화의 개념을 합쳐놓은 것이다. 그런데 민주(民主, demokraita)와 공화(共和, res publica)는 기원과 담기는 내용이 서로 같지 않다. 기원에서, 전자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정치, 후자는 로마의 공화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내용에서는, 전자가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다소간 시민들 간의 불평등을 전제로 한 귀족공화정에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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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대의제를 따르고 있는데, 이 대의제의 기원은 그리고 아테네의 민주정이란다. 아테네의 민주정을 따르려면 정확하게 따르면 좋겠는데, 장점을 과감하게 생략해 버렸단다. 아테네에서는 어떤 법안을 정할 때 시민들로 이루어진 민화에서 최종 결정을 한다고 하는구나. 법안이라는 것이 시민들을 위한 법이니 시민들이 최종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민주정치에서 권력이란 무엇인가? 권력은 타자를 지배하는 배타적 특권이라기보다, 공동체를 위한 봉사를 동반하는 것이라는 말에 깊은 공감이 가더구나. 현정부에서는 진정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없어 보이는구나. 말 한마디에 아랫사람들이 벌벌 기는 그런 권력만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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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아리스토텔레스도 공동체의 선을 중시하였으나, 그 선은 국가의 획일적 제도가 아니라 개인의 덕성에 의해 실천되는 것이었다. 그는 개인의 타고난 능력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 경제적 소유 등에서 불평등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불평등은 어디까지나 기능적인 적으로서, 사회적으로 부여되는 역할, 책무의 수행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불평등이 바로 정치권력의 지배, 피지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권력은 국가의 목적 실현을 위한 공동체적 기여에 비례해서 배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타자를 지배하는 배타적 특권이라기보다, 공동체를 위한 봉사를 동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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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에는 민주화 시민 운동을 60년 가까이 하신 정성헌 선생의 대담이 실려 있단다. 아빠는 모르는 분인데, 오랜 민주화 운동을 하신 분답게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계시면서 먹거리, 정치, 기후위기 등 다방면에 대한 의견을 주셨어. 이런 분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정부 인사는 없겠지만 말이야. 그리고 정성헌 선생의 말씀 중에 학원과 공부에 치여 운동부족인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너희들도 생각나더구나. 아빠와 엄마의 책임이 크고 반성을 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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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174)

맞아, 애들이 안 움직이잖아요. 어제 TV를 보니까 서울시내 애들 중 놀 데가 없는 애들이 80%가 넘어요. 먹고 뛰어노는 게 기본인데 하루에 필요한 활동량을 계산한 게 있어요. 13세까지는 일일 활둉량이 2만보 이상이래요. 그래야 건강한 몸이 된답니다. 19세까지는 1 8,000보고, 어른들은 7,000보 이상이면 괜찮대요. 그런데 기분 좋게 걸을 데가 마땅치 않아요. 난 조금만 살펴보면 생명사회를 만들 수 있는 생활운동은 아주 쉽다고 봐요. 문제는 지나친 디지털화예요. 이런 연구결과가 있어요. 아이가 태어나서 5살이 될 때까지 4만 회 이상 질문을 해야 뇌가 정상적으로 발육이 된다. 그런데 온갖 디지털 기기가 아이들의 호기심을 차단하고 있어요. 애들이 자극적으로 빠른 것에만 반응을 해서 즉자적인 인간이 되어버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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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생각보다 오래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 전쟁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이야기, 한반도 지정학적 위기를 이야기하면서 대책 없는 현정부의 반중 드라이브 이야기, 탄소 중립을 위한 방안 제시, 학생 인권과 갑질 학부보, 아동학대법으로 인해 선생님들의 인권은 보호 받지 못하고 그로 인해 선생님들의 자살 사건이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 친환경 에너지를 위한 그린 뉴딜 정책이 유행인데, 제대로 된 그린 뉴딜 정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등이 실려 있단다.

이번 호에 실린 책 리뷰 중에 <순이 삼촌>으로 유명한 현기영 작가님의 신간 <제주도우다>라는 책이 소개되었단다. 아빠가 현기영 님의 책은 많이 읽지 않았지만, 이번 신간은 한번 읽어보고 싶구나. 장바구니에 담아 놓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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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어느 인터뷰에서 현기영은 이렇게 말한다. “역사는 제주 4.3 3만의 피해 통계로 쓰지만, 문학은 3만의 개개 사건으로 보는 거다라고, 얼마나 엄청난 선언인가. 3만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의 죽음이 제주 곳곳에서 3만 번 벌어진 것이라니. 그는 이 같은 자신의 신념을 작품 속에 그대로 투영하여 등장인물들이 각기 다 개별적으로 자기역할을 수행하도록 세심하게 배려한다. 이창동 감독이 추천사에, “수많은 개인들의 삶과 목소리와 내면을 담아내는 섬세하고 인간적인 시선이라고 표현하면서, “읽는 내내 숨이 뜨거워지면서 거장의 숨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고 적었는데, 이는 결코 과찬이 아니다. 현기영은 최선을 다해 작품 속 인물들에게 독자성을 부여한다. 하나의 세계가 스러진 게 아니라, 3만 개의 세계가 그때 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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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녹색평론에는 매 호마다 시 몇 편을 소개해준단다. 시 읽기를 어려워하는 아빠는 활자만 읽고 넘기는데, 이번호에 실린 시 중에 한 편은 좋았단다. 김해자 시인의 <30년 후, 소년 소녀에게>라는 시인데,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에 대한 비판을 시로 지었는데, 머리 속에 잘 들어오더구나. 좀 긴데, 이 시 한 편만 읽으면 너희들도 후쿠시마 오염수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전체를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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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자


30년후, 소년 소녀에게


1.

2023 8 24

인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선택했다

엘니뇨, 미래의 소년들이여,

너희 선조들은 핵물질을 10배 희석한 오염수를

바다에 흘려 넣기 시작했다

30만 년 동안 당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라니냐, 아 냉철한 미래의 소녀들이여,

1 2,500톤을 방류하면 지하수가 125톤 들어온단다

지하수를 100배 희석하면 1 2,500,

하루에 2 5,000톤 오염수를 바다에 투척하기 시작했다

30년간 2 7,000톤이라니,


너희가 살아갈 바다를 천천히 죽여가기로 결심했다 어른들끼리,

훔쳤다 너희들이 먹고살 미래의 시간을

권력은 결정했다 집단자살의 길을

엘니뇨, , 이럴 수가


2.

2011 3 11일 후쿠시마 원자로가 연쇄적으로 폭발한 이후

원전 저장탱크에는 137만 톤의 오염수가 쌓여가고 있었다

그냥 가지고 있으면 될 일이었다 1,000개가 차면

1,000개의 탱크를 만들면 될 이었다


돈 때문이었다

지하에 묻으면 3조억

대기에 방류하면 3,000

바다에 방류하면 300억이 들기에

그들은 저희들까리 결정했다 가장 돈이 적게 드는 길을

엘니뇨, , 이럴 수가


썩지 않는 죽음,

핵연료와 철근과 콘크리트 찌꺼기가 녹아 있는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기로,

가장 싼 것은 가장 위험한 길이었다 돈과 권력을 융합한 그들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미래의 너희들에게도 선택권을 주지 않았다


안전하다고 말하는 저들의 말이 진실인가

아니다, 진실은 어느 누구도 정확히 모른다는 데 있다

과학과 지식과 통계수치를 아무리 들먹여도,

이것은 인간이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몰론 몰라도 선택할 수 있다, 당첨이 안되어도 복권을 살 수 있듯이

그러나 이 길의 결과는 모두에게 무조건 나쁜 것이기에

절대로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3.

바다에 핵오염수를 방류함으로써 누가 이익을 보는가

도쿄전력이다 일본이다 몇 사람뿐이다

누가 손해를 보는지, 오 라니냐, 너는 알겠지

지구상 모든 생명체와 바다와 하늘과 바람이란 걸

아니지, 이익의 반대말은 손해가 아니라

바로 죽음이라는 걸


여기에 있는 우리의 죽음이 아니라

10 30 60 100년 후에 올

너희들의 목숨이란 걸

미래의 너희 부모가 지금 우리의 자식들인 것처럼

바다와 땅과 공기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에

땅과 바다와 사람은 한몸으로 이어져 있기에


, 엘니뇨, 따뜻한 바닷물 같은 소년이여,

너희는 바다에서 헤엄치고 모래집을 지을 수 있을까,

내가 만나지 못할 30년 후 소녀들이여,

미안하다.

우리는 아직 이 죽음의 길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를 철회하라

지금이라도 멈춰라 죽음의 방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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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역사는 아이러니의 연속이라고 한다.

책의 끝 문장: 그 과정은 행위만 아니라 마음이 함께해야 할 것이다.



기본적인 인권과 자치권을 회복하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평화적, 법적 노력에 대해서 이스라엘은 수십 년간 냉소와 경멸로 일관하고 있고 국제사회는 무관심하거나 방관하는 상황에서,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사람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들은 선거를 통해서 권력을 잡은 가자지구의 합법적 통치세력이었다. 저항하는 ‘테러리스트’들을 한 명도 남김없이 토벌하겠다는 이스라엘의 식민정책 속에서 ‘하마스’ 전사들이 끊임없이 양성되고 있다. - P4

정부는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는다. 정부가 만드는 정책이 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시민들이 폭넓게 개입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개입을 허용하는 틀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중요한 예를 들어보자. 앞에서 이야기한 바 있는 농업, 농촌, 식품산업 기본계획은 농정에 있어서 유일한 종합적 중기적 계획이다. 그런데 이 계획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철저히 농림축산식품부의 집안일이었다. 국책연구기관이 연구용역의 형태로 기본적 틀을 만들었고 최종 단계에서 이른바 전문가들의 의견을 형식적으로 청취하기는 했지만 결국은 농림축산식품부의 자체 판단으로 만들어졌다. 계획의 수립 주체가 정부인 것은 법이 정하고 있는 바이지만, 문제는 그 과정이다. 5년간 농정의 기본적 틀을 만드는 일에 농민, 농촌 주민, 소비자, 환경에 관심을 가진 시민들은 의견을 표명할 기회조차 제대로 갖지 못하였다. - P18

민주정치의 핵심은 민중주권이며, 그것은 민중에 의한 정책 결정권과 결정 절차로서의 다수결을 원칙으로 한다. 현재 한국에서 민중주권을 현실화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담론이 있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민중을 우매한 존재로 보고 민중이 직접 결정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며, 그래서 남달리 현명하고 도덕적인 사람을 뽑아 권력을 대신 행사하게 해야 한다는 대의제 담론이다. 둘째, 민중은 날 것 그대로서가 아니라 심사숙고하거나 교육과 훈련을 받아서만 올바른 결정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관점도 민중을 완결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지도자 혹은 어떤 다른 기제에 의해서 교도되어야 한다고 보는 점에서 대의제와 같은 맥락에 있다. - P60

예술은 인간을 넘어서 모든 생명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문학이 사람을 갑자기 변화시킬 수야 없겠지요. 그래도 문학은 끊임없이 인간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문학도 없고, 예술이 없다면 인간은 더욱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어질 것입니다. 저는 그런 맥락에서 이 시대 교육과 문화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오늘날 세계 어디에서나 문학을 비롯해서 교육과 문화가 타락하면서 인간이 대단히 왜소해졌어요. 뭔가 대중문화가 인간을 작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더 좋은 문학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P111

그린뉴딜은 최근 수십 년래에 등장했던 어떤 제안보다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그것은 실업문제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전 국민에게 의료보험과 주거를 보장하고 학자금 대출을 탕감해주면서 전례없는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제안에는 장애물이 있다. 어떤 형태가 됐든 에너지를 생산하는 일은 자연과 인간 삶의 파괴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세계인의 삶의 질을 고양하면서 동시에 화석연료를 비롯한 에너지원의 사용을 줄이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진보적인 그린뉴딜이라면 에너지 삭감, 즉 에너지 보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에너지 사용 총량을 줄이는 것은 인류가 존속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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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1-28 1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샀는데 다 읽지 못했어요. 이렇게 정리하시다니 훌륭합니다!!
좋은 글이 많아 사게 되더라고요.^^

bookholic 2024-01-28 21:51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많은 분들이 <녹색평론>을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페크 님의 글도 <녹색평론>에서 만나 보면 좋겠습니다^^
 
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
아이사카 토마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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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에 출간한 <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라는 책은 책표지로 인해 눈에 확 띄었단다.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소녀가 소총으로 겨누고 있는 그림은 호기심을 갖게 충분하였단다. 그리고 책 제목도 <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로 강렬했어. 역시 책 제목과 책 디자인은 무척 중요하구나. 책 소개를 읽어보니, 일본 서점대상을 수상하고, 애거서 크리스트상을 최초로 심사위원 전원이 만점을 준 작품이라고 하는구나. 이런 홍보 문구에 속으면 안 되는데, 아빠는 이런 홍보 문구에 잘 넘어간단다.

일본 소설이니까 일본을 배경으로 한 소설인 줄 알았는데, 소련과 독일이 2차 세계 대전 때 벌인, 일명 독소전쟁을 배경으로 했다는구나. 그 유명한 스탈린그라드 전투도 배경이 되었고 말이야.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아빠가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있는 <피의 기록,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전투가 아니겠니. 그렇다 보니 이 소설이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쑥 올라갔단다.

지은이 아이사카 토마는 일본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고 하는구나. 퇴근 후 집에서 책을 썼는데, <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가 그의 데뷔작이고, 그 책이 온갖 상을 휩쓸고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라고 하는구나. 이 정도면 글쓰기에 남다른 재능을 타고났을 것 같은데, 그 동안 평범한 직장 생활을 했다니얼마나 손이 근질근질했을까.  지은이 아이사카 토마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고 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본 전쟁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 먹었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책은 아빠도 읽어보겠다고 몇 년 전에 샀다가 아직 읽지 않고 있는 책인데,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책을 찾는데 좀 애를 먹겠지만 말이야.


1.

그러면 <소지 동지여 적을 쏴라>라는 책의 내용을 이야기해볼게. 1940년 모스크바 인근 시골 마을에 세라피마는 엄마랑 둘이 살고 있었단다. 세라피마의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책에 나왔던 것 같은데 확실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1차 세계 대전 때 얻은 병 때문인 것으로 아빠가 기억한단다. 세라피마는 엄마와 함께 사냥으로 생계를 이어갔어. 엄마와 둘이 살지만 마을 사람들과 모두 친하게 잘 지내서 외로움 같은 것은 느끼지 못했단다. 그렇게 평화롭던 시골 마을에도 전쟁의 기운이 돌았단다.

1942년 어느 날 독일군들이 쳐들어와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였단다. 세라피마만 간신히 살아났어. 독일군들이 세라피마에서 몸쓸 짓을 하려고 했는데, 때마침 소련군들이 와서 독일군을 몰아냈단다. 세라피마는 그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어. 마을에 온 러시아군들은 세라피마의 엄마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의 시신을 모두 불태우고 마을도 모두 불태웠단다. 독일군들이 마을을 이용하지 못하게 말이야. 어렸을 때부터 추억이 담긴 마을은 그렇게 불타 없어졌고, 엄마의 시신도 불태워져 사라지고 말았단다. 세라피마는 독일군도 미웠지만, 그렇게 마을과 엄마의 시신을 불태운 소련군도 미워했어. 특히 그걸 지시한 이리나에게는 적개심을 갖고 이리나에게도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했단다. 하지만 지금 혼자 지낼 수 없어서 이리나를 따라 갈 수밖에 없었단다.

이리나는 세라피마를 데리고 여자 저격병 군사학교에 데리고 갔어. 그곳은 여자들만 저격병 훈련을 받는 그런 곳이었단다. 그곳에 있는 이들은 다들 독일군에게 식구들이나 친구들을 잃고 혼자가 된 이들이었어. 훈련은 쉽지 않았단다. 실제 전쟁에 참가해서 저격병으로 임무를 해야 하니 훈련도 실전처럼 했단다. 중간에 탈락자도 생기고 그랬어. 저격병 군사학교를 졸업할 때는 5명만 남았단다. 시골 귀족 출신이지만 그 출신을 무엇보다 싫어하고 부끄러워하는 샤를로타를 비롯해서 아야, 야나, 올가, 그리고 세라피마 이렇게 다섯 명이었어.

그런데 그 중에 올가는 사실 이리나의 라이벌인 하투나가 보낸 내부 첩자였단다. 같은 러시아 군이긴 한데 그곳에서도 경쟁이 있다 보니, 하투나가 이리나의 사정을 살펴보려고 보냈던 사람이었어. 그러나 이리나도 진작에 올가가 하투나의 사람이란 것을 눈치챘는데, 그걸 오히려 역이용 하는 등 모른 척 했었단다. 올가를 제외한 세라피마, 샤를로타, 아야, 야나, 이렇게 네 명이 진정한 이리나의 제자였단다. 저격병 군사학교를 졸업한 그들은 한창 전쟁 중인 스탈린그라드에 배치되었단다. 이리나가 네 명을 이끌고 스탈린그라드로 향했단다. 이제부터 실전이다.


2.

세라피마의 시골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몰살당했다고 했잖아. 그런데 그 전에 군대에 입대한 세라피마의 친구 미하일은 그 참변을 피할 수 있었어. 미하일은 참변 소식을 듣고 오열했단다. 마을 사람들이 몰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세마피마도 죽은 줄 알았어. 그래서 더욱 슬픔에 가슴 아팠지. 세라피마와 미하일은 동갑내기 친구였지만,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던 사이였거든. 미하일은 독일에 대한 복수심이 더 끓어올랐고, 군생활도 열심히 해서 상사로 진급하였단다.

한편 이리나가 이끈 저격부대는 첫 작전에 투입하게 되었어. 스탈린그라드를 역포위하는 천왕성 작전이었단다. 소녀 저격부대에서 가장 사격술이 뛰어난 이는 아야였는데, 뛰어난 실력답게 첫 작전에서 적군을 12명이나 사살이라는 공을 세웠단다. 하지만, 자신의 실력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실수를 했단다. 저격병은 한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룰이 있는데, 이 룰을 지키지 않고 한 자리에서 적에게 총을 쏘다가 위치가 노출되어 그만 죽고 말았단다. 그렇게 힘든 저격 훈련 학교를 졸업한 가장 유능한 저격병이었는데, 첫 작전에서 허망하게 죽고 만 거야. 다른 소녀들은 슬펐지만 슬퍼할 겨를이 없었단다. 계속 전투는 이어졌어. 세라피마를 비롯한 나머지 저격병들의 활약과 때마침 아군의 전차부대가 공격하여 천왕성 적전은 성공하였단다. 이 때 타냐라는 소녀 의무병이 저격부대와 합류했단다.

두 번째 작전은 12대대를 지원해주는 것이었단다. 대대라고 하면 엄청 큰 군대 단위인데, 전투 중에 죽거나 흩어져서 지금은 4명만 남아 있었어. 막심 대장이 그들을 이끌었어. 그들은 적군의 감시망 때문에 이동을 할 수 없고, 현재 머무르고 있는 진지를 지켜야 했어. 그런데 그들이 머무르고 있는 진지는 사실은 막심 대장이 집이었단다. 그곳에서 독일군의 진격을 막아내고 있었던 거야. 적군에도 저격병들이 배치되어 있었단다. 이번 전투는 저격병들 사이의 전투라고 할 수 있었고, 상대방이 허점을 보일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했어.

독일군이 야비한 작전을 펼쳤단다. 전쟁과 관련 없는 마을 아이들을 공격하여 아군의 정체를 드러내게 하려고 했던 거야. 보그단이라는 군인이 부상 당한 아이들을 대피시키려고 했다가 그만 적의 저격병이 쏜 총에 맞아 죽고 말았어. 섣불리 움직이면 안 되었단다. 세라피마는 은폐된 곳에서 적의 저격병이 나타나기를 끈기 있게 기다렸단다. 그리고 적의 저격병이 가늠자에 들어오자 죽였단다. 그리고 다른 적군들도 유인하여 몇 명을 더 죽였어. 자신도 모르게 적군을 죽이면서 희열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어. 그 희열 때문에 저격병은 한 곳에 머무르면 안 된다는 룰을 잊고 있었어. 다행히 이리나가 와서 세라피마를 데리고 가서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단다. 세라피마는 적을 사살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 있던 자신을 혐오하기도 했단다. 전쟁은 이렇게 사람들을 모두 미치게 하는구나.

적군인 독일군은 우연히 소련군의 여성 파르티잔 두 명을 체포했단다. 그 둘을 이용하려고 했어. 두 파르티잔을 소련군이 보이는 곳에서 처형을 하려고 했단다. 그 장면을 본 12대대 소속 유리안이 깜짝 놀랐어. 그 두 파르티잔들은 바로 자신의 대학 동기였거든…. 참지 못하고 유리안이 독일군을 향해 총을 쐈어유리안의 위치가 노출되었단다. 이걸 독일군이 노린 것이었어. 유리안은 독일군의 함정에 빠져 그만 죽고 말았단다.

소련군의 숫자가 확연히 줄어들었다고 판단한 독일군은 중대 병력을 이끌고 진격하였단다. 막심대장은 지원 요청을 했지만 철수 명령을 받았어. 하지만 막심대장은 자신의 집을 버릴 수 없었어. 자신은 그곳에 남아서 독일군과 최후의 일전을 벌이겠다고 했단다. 결국 막심대장만 두고 나머지는 철수를 했단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그 이후에도 공방전을 펼치다가 1943 1 31일 독일군 사령관 파울루스의 단독 항복으로 끝이 났단다. 소련이 독일로부터 스탈린그라드를 지켜냈어.


3.

시간이 흘러 1945 3.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단다. 세라피마는 군인이다 보니 남자군인들과 더 많은 생활을 했어. 그런데 아군의 어떤 보병이 전쟁 중에 독일 여자를 능욕한 것을 자랑하듯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어. 전쟁 중에 힘없는 여자를 능욕한 것을 자랑하는 이야기를 세라피마는 참을 수 없었어. 그것은 여성 전체에 대한 모욕이었어. 뿐만 아니라 같은 편인 저격병 여자들한테도 숨어서 총이나 쏜다면서 무시하고 성희롱도 했어. 이에 격분한 세라피마는 그 남자보병과 다툼까지 했단다. 그곳에서 세라피마는 우연히 미하일을 만났어. 미하일은 포병 소위가 되어 있었어. 고향에서 헤어진 이후 처음 만났는데, 감회가 새롭기도 했지만, 고향 생각에 슬픔에 잠기기도 했어. 죽은 줄 알았던 세라피마를 만난 미하일도 무척 기뻐했단다. 세라피마는 아까 보병이 했던 이야기를 미하일에게 물어보자, 미하일은 소련군이 독일여자를 능욕했던 일들이 사실이라고 했어. 세라피마은 인간으로써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

세라피마 등 저격대는 쾨니히스베르크 전투에 참가했단다. 그 전투에서 야나는 부상당한 독일 아기를 구하려다가 총상을 입고 중상을 입었어.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단다. 세라피마는 독자 행동을 하다가 독일군에 잡혀 포로가 되었어. 고문을 당하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기지를 발휘하여 탈출해 성공했어. 그러나 여전히 적지라서 어려운 상황이었단다. 그런데 어디선가 올가가 나타났어.

올가 기억나지? 저격병 학교에서 이리나의 라이벌 하투나의 접차였던 사람. 그러니까 지금까지 반대편으로 나쁜 역할이었는데, 그 올가가 나타나서 세라피마를 구출해주었단다. 올가도 착한 사람이었지만, 군대라는 지휘체계에서 반대편에 있었을 뿐이야.

그런데 그만 올가는 적군의 총격으로 죽고 말았어. 총알은 누구도 피해가지 않았어. 이리나가 와서 도와주어 세라피마는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단다. 탈출하면서 그들은 말로만 듣던 소련군의 치욕스러운 장면을 목격하게 돼. 소련의 붉은 군대가 독일 민간 여자를 능욕하는 장면을 보았어.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짓을 한 자가 미하일이었어. 세라피마는 미하일에 심한 배신감을 느꼈어. 갈등을 느끼기도 했지만, 세라피마는 미하일을 저격했단다. 전쟁 성범죄에 대한 직결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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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나자 여자 저격병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어. 국가는 그들에 대한 대우를 하지 않았단다. 그렇다고 그들이 전쟁 중에 했던 것이 가치가 있었는가. 전쟁이 끝나고 소련은 스탈린 독재정치로 백성들을 공포로 몰아넣었어. 이런 것을 위해 전쟁을 했던 것인가. 그리고 스탈린이 죽고 나서 스탈린 지우기에 나선 소련은 스탈린그라드의 이름도 볼고그라드로 바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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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

스탈린 체제가 공포정치였다면, 그것을 떠받들며 싸운 우리는 대체 뭐였지?

어쨌거나 스탈린은 극악무도한 자였던 만큼 그의 업적을 모조리 부정해야 하기에, 보존했던 시신을 매장하고 동상을 부수고 각종 서적을 다시 썼다. 당연히 스탈린그라드도 이름을 바꿔야 했는데, 그렇다고 옛 이름인 차리친은 차르, 즉 황제를 연상시키므로 사회주의국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 때문에 볼가강에 가깝다는 이유로 볼고그라드라는 무미건조하고 중립적인 이름을 대충 가져가 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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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저격대원들은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에게 잊혀져서 평범하게 살았단다. 세라피마와 이리나는 세라피마의 고향에 돌아와서 같이 지냈어. 그들은 세라피마의 고향을 재건하면서 살고 있었단다. 야나와 샤를로타는 전쟁 때부터 소원이었던 빵공장에서 일했단다. 간호병으로 합류했던 타냐는 간호사로 지냈어.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이 소설의 지은이 아이사카 토마가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하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책제목처럼 전쟁은 여자들은 무시당하고 힘없는 존재였어. 소련과 독일은 전쟁 중에 수많은 여성 피해자들에 대해서 서로 암묵했단다. 아무도 전쟁성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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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2)

소련에서도 독일에서도 전시 성범죄 피해자들은 입을 다물었다. 이는 여성들이 입은 엄청난 정신적 고통과 성범죄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것을 혐오하는 각 사회의 요구가 합쳐진 결과였다.

마치 교환 조건이 성립된 것과 같았다. 소련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저지른 독일 국방군과 독일인에게 폭력을 저지른 소련군은 사이좋게 입을 다물고 서로를 탓하지 않았다.

기본 좋은 영웅적 이야기. 아름다운 조국의 이야기.

참혹하고 비극적인 이야기. 무자비한 독재의 이야기.

그것은 독일에서도 소련에서도, 남자들의 이야기였다. 이야기 속의 병사는 반드시 남자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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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예전의 전쟁만 있는 것은 아니야. 현재 전쟁중인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도 포로에 대한 성폭행이 있었다는 기사를 보았단다. 전쟁 자체가 사라져야 할 것인데, 여전히 전쟁이 계속 일어나고, 그 속에서 비인간적인 만행이 계속 일어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구나. 지금은 온 지구인들이 기후위기에 맞서 싸워도 모자랄 판에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으니, 이보다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니.

지나친 홍보 문구에 재미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재미있게 술술 잘 읽혔단다. 독소 전쟁에 대해 조금 이해할 수 있었고, 전쟁의 참혹함과 그 속에서 힘없는 여자들의 희생 또한 알게 되었단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조만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을 읽어봐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장작 패는 소리가 봄의 도래를 알리는 새벽종처럼 작은 마을에 울려 퍼졌다.

책의 끝 문장: 그곳에는 반드시 사람이 있다.


질문의 의도는 전혀 알 수 없었으나 유르겐은 자기 인생을 돌이켜 봤다.
십대 중반까지, 독일의 축구 국가대표가 되어 외국에 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출전하여 배를 타고 여러 나라에 가서 축구를 하고 환성을 듣고 싶었다. 외국 선수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코치들에게 제2의 제프 헤르베르거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그러니 병역이 없었다면, 또 올림픽과 월드컵이 중지되지 않았다면 정말로 그렇게 됐을지도 모른다.
"네 동료가 쏜 여성은 두 아이의 엄마였어. 그 후에도 엄마로 있고 싶어했지. 잃어버린 아이들을 키워서, 언젠가 손주를 만나고 싶어 했어."
- P455

"나는 멈출 수 없었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 줘. 나는 지금 죽을 수 없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면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 전쟁만 아니었다면 나는 그런 끔찍한 짓은 하지 않았을 거야. 전부 전쟁이 나쁜 거야. 그러니까 부탁이야. 제잘 용서해 줘." - P479

소련이라는 이름의 국가는 삐걱거리며 나아가는 쇄빙선과도 같았다.
크고 작은 얼음을 부수며 나아가던 선체가 각종 사회적 모순으로 타격을 받아 언젠가 가라앉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모두가 한마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배가 가라앉으면 보트에 나눠 타서 혹한의 바다로 노를 저을 수밖에 없다. 항해 도중에 선장이 바뀌는 것처럼 권력자가 바뀌고 가치관이 달라진다.
- P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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