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2)

진보운동 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 얘기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분들이 이야기할 때에는 항상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 같은 것을 받거든요. 구체적인 인간이 아니고 그냥 약자, 민중, 이런 말들이 굉장히 추상적으로 들려요. (김종철) 선생님이 일리치 모임 시간에 말씀하셨던 이야기 중에 인상 깊었던 것 중의 하나가, 전쟁을 할 때 하늘 위에서 비행기를 타고 있는 사람은 지상의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폭탄을 퍼부을 수 있다는 거죠. 위로부터 보는 관점의 위험성을 말씀하신 거죠. 사람이 구체적인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표적물로 추상화되어서 보일 때의 위험성을 경고하였어요. 선생님은 그렇게 구체적으로 인간을 보는 감수성을 갖고 계셨어요. 그런데 우리가 어떤 이념이나 자기 생각에 매몰되면 바로 그런 것을 놓치기가 쉬운 것 같아요.


(24)

또하나 선생님의 혜안이 돋보였던 것은, 우리가 학내 직선제를 민주화의 상징처럼 이야기하는데, 김종철 선생님은 직선제가 꼭 좋은 게 아니라고 하셨어요. 특히 대학이 이미 자본과 한 덩어리가 되어 있는데 직선제는 욕망을 키워나가는 것을 부추긴다고 보셨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보면 그 말씀도 맞았어요.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총장들의 면면을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형편없는 인물이 총장으로 많이 당선이 됐거든요. 구성원들이 돈 들어가는 일을 요구하고, 돈 잘 끌어오겠다고 약속하는 사람이 일반적으로 총장이 되니까요.


(40)

그리고 창당(녹색당)하면서 제기했던 탈핵이라는 안건은 이제 다른 정치세력들도 많이 받아들였고, 기본소득도 그렇습니다. 이재명 지사를 좌담회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녹색당, <녹색평론>이 먼저 제기한 기본소득 이슈를 자기가 잘 써먹고 있다, 미안하고 감사하다고 하시더군요. 이렇게 저는 몇몇 의제들을 정치의제로 만든 데 녹색당이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보는데요, 지금 다시 정체성을 분명하게 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성 평등이나 소수자 인권은 외국의 녹색당에서도 중요하게 다루는 의제이고, 한국의 녹색당도 기본으로 가져갈 가치입니다. 그러나 녹색당의 정체성을 한 줄로 말한다면, “생태위기의 시대를 맞아 문명의 전환을 이루기 위한 정치를 하는 정당이라고 생각합니다. 녹색당만이 아니라 녹색가치를 지향하는 운동단체들도 그런 방향성을 잡고 나아가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54)

그런데 거기서 김종철 선생님이 진정한 평화는 자발적 가난을 통하지 않고는 이뤄질 수 없다는 평소의 지론을 설파하신 거죠. 경제성장과 강력한 무기체계가 뒷받침될 때만 평화가 성취된다는 일반론을 믿고 있는 다수 참석자들로서야 이 의외의 발언에 당혹하고 의아해했겠죠. 그 자리에 있던 꽤 유명한 어느 참석자가 선생님의 사상적 뿌리가 어디입니까하고 물어보더래요. 그래서 김종철 선생님이 우리 외할머니입니다.” 하고 답하셨다는 거잖아요. 저는 이 일화가 선생님의 사상이 선생님의 표현을 쓰면 비근대적농경사회의 토착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짐작케 한다고 봅니다.


(65)

(김종철) 선생님이 진정 전하고 싶어 했던 말은 바로 이 희망의 메시지였을 것이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생태학적 사유와 실천에 부단한 최선을 다한다면, 마른 나뭇가지에 푸른 싹이 돋아나는 기적을 우리는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은 세계적 한국적 차원을 두루 고려한, 이 땅에서 찾기 드문 진정한 생태사상가였다. 나를 포함한 후학들이 이제는 선생님의 생태사상을 이어가야 할 책무를 다해야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삼가 머리 숙여 선생님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빈다.


(72~73)

비겁한 마음이 폭력을 불러들이는 것처럼,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의 쇠퇴는 죽음에 대한 맹목적인 두려움을 증가시키고, 그 결과 안팎의 자연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인간 상호 간에도 폭력이 난폭하게 행사되는 것이 당연한 삶의 관행으로 굳어지게 합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나 사회적인 차원에서나 진정한 평화를 유지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가 훨씬 더 성숙한 것으로 바뀔 수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시의 마음과 생명 공동체> 김종철 선생님 강연 중에서


(121)

게다가 기후변화라는 건 점진적인 변화가 아닙니다. 꾸준하게 점진적으로 변해서 악화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에요. 어느 날 갑자기 돌발적으로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될 수 있습니다. 금년에 태풍이 몇 개 왔습니까. 그저께인가는 미국 뉴욕에 대설이 왔다죠. 스웨덴은 북극권인데 작년에 산불이 났잖아요. 지구사회 곳곳에서 혹심한 가뭄과 홍수, 태풍과 폭풍, 대규모 산불 등이 반발하고 있습니다. 기후재앙은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자카르타가 해수면에 잠겨서 수도를 옮긴다고 그러죠? 미국 플로리다에 마이애미라는 도시가 있잖아요. 부자들이 많이 사는 휴양지죠. 마이애미에서 부자들이 사는 지역은 전통적으로 저지대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들이 흑인들을 몰아내고 고지대로 이사를 가고 있다고 합니다.


(123)

저는 근대문명이라는 언어를 사용하는데, 근대문명이라는 게 결국은 자본주의 문명이고 산업문명이죠. 그리고 달리 이야기하면 석유문명입니다. 19세기에는 주로 석탄을 썼으니까 더 정확히 말하면 탄소문명입니다. 탄소문명 시대에서 생태문명 시대로 빨리 넘어가야 되고, 그래서 생태, 생명사상이 100년 전보다 더욱 중요해졌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예요. 저는 무슨 일이든지 결국 사상이 뒷받침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를 알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왜 우리가 경제를 전환해야 되고 문명을 전환해야 되고, 우리 생활을 전환해야 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됩니다. 무턱대고 열심히 한다고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닙니다. 철학과 비전이 있어야 해요. 우리의 행동을 뒷받침해주는 게 말하자면 사상적 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조선 후기의 동학사상으로 이어져오는 우리의 전통, 이것을 한마디로 생명사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면 이 생명사상이 지금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138)

이명박이 4대강을 파괴한 과정을 보세요. 그 밑의 공무원들, 건설업자들 등등 숱한 사람들이 그저 절차에 따라서 진행하다가 보니까 우리나라 아까운 생태계 보고(寶庫)가 작살이 난 거 아닙니까. 이런 식입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게 꼭 무슨 큰 사건이나 예외적인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래요. 현대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전부 다 시스템이 시키는 대로 순응해서 살 뿐입니다. 자기가 자주적으로 판단해서 생각하고 할 공간이 전혀 없어요. 아렌트가 그렇게 말했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가 아이히만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질문을 못 하는 이유도 그런 것입니다. 자기 생각이 없어요. 그렇게 멍청하게 있다가 보면 결과적으로 가공할 악행을 번하게 되는 구조, 그리고 그것을 강요하는 게 이 시스템이라는 거예요. 이것이 근대의 본질이다, 라고 이반 일리치는 환대를 가지고 설명을 합니다.


(185)

지구온난화를 1.5℃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몇 달, 몇 해가 결정적입니다. 시간은 가고 있습니다. 이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실행해야 합니다.

당신들은 기후위기를 무시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들-당신의 자손들에게 그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지입니다. 현재 어린아이들이 안전한 환경 속에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는 곳은 지구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지금 그리고 앞으로 우리들이 살아갈 시대의 현실입니다. 우리들은 정치지도자들에게 기후 비상사태에 대응할 것을 요청합니다.


(196)

코로나 시대 이전으로 우리 교육을 되돌릴 수 없다는 판단은 다른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지금까지의 우리 교육이 코로나와 같은 비상한 사태를 만드는 데 일조한 것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무한 성장주의를 부추기고 인간과 지구의 생태위기를 방관한 우리 교육의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아이들을 인간자원으로 바라보고 그들을 효용과 쓸모의 대상으로 전락시켜온 지난날의 교육은 반드시 다른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 전환은 현재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문명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사회가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전환이 이루어지는 길에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만 한다. 우리는 이러한 시도를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8-29)

진화생물학자 머렉 콘의 이론입니다. 머렉 콘은 주먹도끼를 만든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주먹도끼를 필요 이상으로 정교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쉽게 말해, 멋지게 만든 주먹도끼를 가져가면 이성에게 잘 보일 수 있었다는 거예요. 훌륭한 주먹도끼를 만들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솜씨가 좋다는, 바꾸어 말하면 머리가 좋다는 증거가 될 수 있었으니까요. 이걸 섹시한 주먹도끼 이론(Sexy Handaxe Theory)이라고 합니다.


(72)

많은 사람에게 미술은 삶의 부속이나 장식이라는 편견이 있지요. 하지만 미술이야말로 두 발로 걷고 도구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인간의 생존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우리가 타고난 생존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153)

피카소는 원시미술에서 이 조형 원리를 읽어냈습니다. 그래서 오른쪽과 같은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지요. 이 그림도 부분마다 뜯어보면 사람 얼굴과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형태를 보는 순간 이 그림에서 사람 얼굴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처럼 닮음이 아닌 배치가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조형 원리의 발견은 현대미술의 문을 여는 대단한 한 걸음입니다. 그래서 피카소를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겁니다.


(167-168)

이에 비추어 우리나라의 빗살무늬토기에 새겨진 빗금도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연구가 더 필요하겠지만, 이처럼 빗살무늬토기의 빗금을 단순한 무늬가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는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그 순간, 원시미술이 가진 힘이 크게 다가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 힘을 인간이 태초부터 품어왔던 영혼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만 년 전 원시인들이 처음 벽화를 그린 이래 문명은 복잡하게 변화했고, 온갖 기술과 제도도 현란하게 우리 눈을 어지럽힙니다. 하지만 그런 지금도 원시미술은 우리 가슴을 뛰게 만듭니다. 왜일까요?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 원시미술의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그 생명력을 표현하고자 하는 호모 그라피쿠스가 살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253)

굳이 따지자면 피라미드 건설은 복지 제도에 가까웠어요. 농사일이 없어 놀고 있는 백성들이 일정한 소득을 벌어들일 수 있도록 했던, 고대 이집트식 뉴딜 정책이었던 거죠. 백성들은 일정한 임금을 받으며 피라미드를 쌓았습니다. 돈뿐만 아니라 몸보신하라고 마늘도 나눠줬고요. 몸이 아플 때는 물론이고 친구들과 잔치 약속이 있다는 이유로도 작업에 빠질 수 있었다고 하니 노예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354)

어쩌면 그게 미술사를 공부하는 목적일지도 모릅니다. 미술을 통해 긴 시간 인류가 품어온 바람이나 생각을 이해하고, 그것이 오늘날에는 어떻게 미술 작품에 반영되고 있는지 알아봄으로써 삶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재로는 무엇보다도 죽음입니다. 이집트인은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고민했고 그 고민을 나름의 미학으로 승화시켰습니다. 그렇다면 현대 문명이 만들어내는 죽음의 예술은 어떤 의미와 고민을 담고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고대 이집트인이 만들어낸 죽음이라는 거대한 백과사전 안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529)

사람마다 미술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저는 여러분이 미술사 공부를 미술이라는 언어를 익히는 과정이라고 이해해주시면 좋겠어요. 이 언어를 익히고 나면 그 동안 몰랐거나 오해하고 있던 세계를 조금 더 자세하게,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70-71)

역사는 자신의 존재에 의거하지 않은 지식인 출신 혁명가들의 나약함과 우유부단에 관한 많은 사례를 보여준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과 함께, 출신성분이 혁명가의 진정성을 판별하는 기초 자료가 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역사는 그 반대의 경우도 무수히 보여준다. 자기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없더라도 타인에 대한 애정과 정의감만으로 기득권을 버리고 변혁운동에 뛰어들어 아낌없이 죽어간 사례들이다. 자신이 처한 부당한 현실에 분개하고 분노를 폭발시키는 일은 생존의 본능이지만, 타인의 고통에 분노하고 목숨까지 걸어 싸우는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본인이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지식인이거나 노동자이거나 아무 상관없이, 타인데 대해 얼마나 깊은 사랑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성품의 문제였다. 드물지만, 이런 이타적인 인간형들은 진정한 혁명가로서의 자질과 존경 받을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이현상도 그런 유형의 하나였던 것이다.


(193)

좌익 내부의 정적들조차 김삼룡이나 이주하는 말이 통하지만 이현상은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고 평했다. 먼저 자신의 의견을 내놓고 상대방을 설득하다가 안 되면 감정이라도 분출시키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이현상은 끝까지 묵묵히 듣기만 할 뿐, 끝내 자기 고집을 꺾지 않고 원칙을 관철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정적들이 조선공산당 중앙을 비판할 때 공식적으로 이현상의 이름을 거론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현상의 원칙이란 것이 상식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제하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지도할 때 보여준 그의 융통성과 현실주의적인 감각이 이 추측을 뒷받침해준다.


(205)

그러나 이현상은 도무지 말이 없었기 때문에 아주 친한 사람이 아니면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일을 맡고 있는지를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하급 간부들은 이현상의 심중이 무엇인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하려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짧게 표현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은유나 비유는 사용하지 않았고, 입에서 내뱉은 말과 다른 생각을 품고 있지도 않았다. 앞에서 한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다르지 않았고, 정치적 암투를 위해 사람을 모함하거나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거짓 호의를 베푸는 일이라곤 없었다. 근본적으로 복잡한 생각이나 정치적 욕심이 없는 담백한 사람이라고 보면 좋았다. 따라서 동료들이나 하급자들은 그가 회의 시간 내내 듣고만 있어도 무슨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어쩌다가 한마디 하면 그것이 바로 그의 생각이었다.


(360)

미군이라고 해서 마구 죽이지는 않았다. 미군도 일단 포로로 잡으면 죽이지 않고 며칠 동안 데리고 다니며 교양을 한 다음 살려 보냈다. 이 고지식한 공산주의자는 미워해야 할 것은 제국주의이며 제국주의 국가의 인민들은 다 같은 피해자라는 교리를 잊어버리지 않았다. 쫓기는 처지라 포로를 감시하는 일도 쉽지 않아 쏘아버리자고 주장하는 대원도 있었으나 이현상은 원칙을 버리지 않았다. 이렇게 살려준 미군들이 유격대의 위치를 파악해 보고하는 바람에 포격을 당하는 일도 생겼지만 이후로도 포로 수칙을 바꾸지는 않았다.


(377)

세속적인 욕심에 무심한 것은 역사를 바꿔온 대부분의 혁명가들이 가진 근본적인 성품이기도 했다.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과 경쟁을 역사의 동력으로 파악하는 역사가들은 혁명가들의 삶에도 이를 적용하고 싶어하여 세계의 혁명사를 당파 싸움으로 대치시키는 데 몰두한다. 그들은 혁명가들의 마음속에 희생과 용기, 이타주의의 고귀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정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혁명이 시대적으로 주류가 되었을 때 출세의 기회를 잡기 위해 앞 다투어 뛰어든 투기꾼들의 행태가 그들의 분석에 근거가 되고 합리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그들은 역사의 원동력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없게 되고, 결국은 시간 순서대로 역사적 사건들을 나열하고 그 사이사이에 인간의 욕망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끼워넣는데 만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NamGiKim 2020-09-08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제가 쓴 이현상 평전 서평이 노동전선 단체에서 출판한 현장과 광장 1호에 실렸습니다.ㅎㅎㅎ

bookholic 2020-09-09 23:39   좋아요 1 | URL
와우, 멋지십니다~~
 















(31)

청결함에 관해선 아빠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어느 날 내가 아빠 등을 때수건으로 밀어주고 있을 때 아빠가 말했었다. 우리가 벗겨낸 이 때는 다 어디로 갈까? 너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 있니? 우리 몸을 깨끗이 하느라고 우린 또 뭘 더럽히고 있는 건지.

(53)

아빠가 미리 얘기해줬었다! 하지만 아는 것과 실제로 일이 닥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난 잠에서 깨자마자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잠옷 바지가 젖어 있었고 두 손도 온통 끈적끈적했다! 이불에도 묻어 있었다. 사실상 온 사방에 묻어 있었다는 게 정확한 말일 것이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바지를 벗으면서 난 아빠가 얘기해줬던 걸 떠올렸다. 그걸 사정(射精)이라고 해. 밤사이에 그 일이 일어나더라도 겁먹지 마라. 다시 오줌을 싸기 시작한 건 아니니까. 그건 새로운 미래가 시작된다는 신호야. 놀라지 말고 얼른 적응하는 편이 나아. 넌 앞으로 평생 정자를 만들어낼 테니까. 처음엔 뜻대로 조절이 안 될 거야. 성기를 만지작거리며 쾌감을 느끼는가 싶다가 어, 어느새 끝나버리지! 그러다 점차 익숙해지면 절제할 줄도 알게 되고, 결국엔 최선의 요령을 깨우치게 될 게다.

(140)

눈물은 자아의 배설이다. 그 엄청난 양이란! 우리는 울면서 오줌 눌 때보다 훨씬 더 시원하게 자신을 비운다. 맑은 호수에 몸을 던지는 것보다도 더 깨끗이 자신을 청소한다. 그 정화의 과정이 모두 끝나고 나면 종착역에 정신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눈물로 표현된 정신은 비로소 몸과도 좋은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낸 몸도 오늘 밤엔 잠을 잘 것이다. 안도의 울음을 실컷 울었으니. 이제 끝났다.

(154)

건강염려증: 몸의 상태에 대해 과도하게 신경 쓰는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 자신이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망상. 정신과 몸이 서로에게 술책을 부리는 것. 어쨌든 처음 경험하는 느낌이라 일시적인 증상의 희생자일까?

(177)

몸은 사랑의 에너지 덕을 어느 정도로나 보는 걸까. 요즘은 모든 게, 정말 모든 게 다 잘 풀린다. 직장 일에서도 지치는 법이 없다.

(188-9)

손님들 앞에서 이 세상의 여덟번째 기적이라고 자랑하며 브뤼노를 흔들어대다가, 아기를 안고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것이다. 앞쪽으로 넘어지면서 바닥까지 굴렀다. 정확히 열한 계단. 난 본능적으로 브뤼노를 감쌌다. 계속 구르는 중에도 아기의 머리를 내 가슴팍에 붙이고, 팔꿈치와 이두박근과 등으로 보호했다. 난 아들을 덮고 있는 껍데기였다. 모두가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우린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손님들이 모두 달려들었다. 손등, 골반뼈, 무릎뼈, 발목, 등뼈, 어깨, 전부 다 계단 모서리에 부딪혔다. 하지만 난 구르는 와중에도, 가슴이 파이고 배가 움츠러드는 와중에도, 브뤼노가 내 품 안에서 완벽하게 안전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난 본능적으로 인간 완충장치로 변신했던 것이다. 브뤼노가 매트리스 싸인 채 굴렀다 해도 더 안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난 유도를 해본 적도 없고 낙법을 배운 적도 없는데. 부성애의 놀라운 발현?

(190)

순전히 정에 겨워 아기를 어르는 것과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어르는 것 사이엔 이런 차이가 있다. 첫번째 경우, 아이는 자신이 사랑의 중심에 있다고 느낀다. 두번째 경우엔 아이를 창밖으로 던져 버리고픈 충동을 느낀다.

(224)

흠잡을 데 없는 똥. 딱 한 덩어리뿐이다. 완벽하게 매끈하고, 모양도 반듯하다. 차지면서도 끈끈하진 않고, 냄새는 나되 악취는 아니고, 단면이 깔끔하며 균질의 갈색을 띠고 있다. 딱 한 번 힘줘서 쑥 빠져나왔다. 휴지에도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았으니, 이거야말로 완벽한 장인의 솜씨다. 내 몸아, 참 잘해냈다.

(267)

시선을 피하며 머리를 위아래로 가볍게 흔든다.

: 계속 이야기해봐, 관심 있으니까.

시선은 어느 한 지점에 고정하고 손가락으로 식탁 위에서 피아노 치는 시늉을 한다.

: 그 얘긴 벌써 백 번도 더 했잖아요.

속으로 어렴풋이 미소를 지으며 시선은 테이블보에 고정되어 있다.

: 내가 말은 하지 않지만, 나도 다 생각이 있다고요.

빈정거리는 미소

: 내가 맘만 먹으면 박살을 내줄 텐데.

눈의 역할

: 눈을 돌리는 건 자기 맘을 몰라줘서 답답하다는 의미, 눈을 크게 뜨는 건 믿지 못하겠다는 의미, 눈꺼풀이 축 처지면 지쳤다는 의미……

(281)

그에 따르면 이명은 아주 적응이 잘 되는 병이라고 한다. 아니, 더불어 사는 거라고 봐야지, 그가 말을 고쳤다. 그래도 어쨌든 고요함은 포기하는 수밖에 없어. 에티엔도 나와 마찬가지로 처음엔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와 똑 같은 비유를 했다. 꼭 내 몸이 켜진 라디오에 연결돼 있는 것 같더라고. 스피커 신세로 살아가야 한다는 게 정말 달갑진 않더군.

(303)

분만실에서 아기를 받을 때 그들은 둘이었지만, 이제 그들은 영원히 셋이다. 반투명한 작은 손가락들, 활짝 피어오른 뺨, 토실토실한 팔과 종아리, 통통한 배, 주름, 보조개, 아기 천사의 튼실한 궁둥이, 이 빵빵한 타이어 같은 생명체는 그들의 사랑의 결실인 것이다! 또 그 눈길은! 신생아들이 눈을 깜빡이지도 않은 채 우릴 바라볼 때의 눈길은 어떤 말없는 신성(神性)에 속한 걸까? 이토록 검은 동공, 이토록 선명한 홍채를 가진 두 눈은 무엇을 향해 뜨고 있는 걸까? 누구를 향해 숨겨진 이면을 열어 보이는 걸까? : 앞으로 제기될 모든 질문을 향해. 채워지지 않는 이해의 욕구를 향해. 젊은 부모는 몸의 기운을 다 빼고 난 뒤 정신의 기운까지도 다 탕진할까 봐 두려워한다. 그들이 피곤해하는 건, 자기들의 일에 끝이 없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다. …… 그레구아르의 속눈썹이 닫힌다…… 그레구아르가 잠이 든다…… 아기를 침대에 눕히는 실비의 태도는 경건하리만치 조심스럽다. 이 전지전능한 존재는,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처럼 보이는 놀라운 재주를 갖고 있다.

(339)

우리처럼 소심한 보통 사람들이 자기 능력으론 조금도 제어할 수 없는 기계들(비행기, 기차, , 자동차, 승강기,  롤러코스터)을 어떻게 맘 편하게 믿고 생명을 맡길 수 있는 건지! 사용자의 수가 워낙 많다는 사실이 우리의 걱정을 가라앉히는 건 아닐까? 다시 말해 인간의 지성을 믿는다는 얘기다. 그토록 많은 능력자가 힘을 모아 이 기계를 만들었고, 그토록 많은 비판적 지성이 매일매일 그것들에 자기 몸을 맡기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뭔가. 거기다 통계학적 논거까지 덧붙인다. 목을 러뜨릴 위험은 그런 기계 안에 들어가 있을 때보다 길을 건널 때 오히려 더 크다는 식으로. 또한 운명의 힘이라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의 운명을 기계의 우연에 맡겨야 한다고 해서 속상해할 것 없다. 악의를 가졌을지도 모르는 세포 대신에 차라리 순진한 기계가 우리 운명을 결정짓도록 놔두는 게 낫다.

(458)

내 몸과 나는 서로 상관없는 동거인으로서, 인생이라는 임대차 계약의 마지막 기간을 살아가고 있다. 양쪽 다 집을 돌볼 생각을 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사는 것도 참 편안하고 좋다. 그러나 최근의 혈액검사 결과를 보며, 이젠 마지막으로 펜을 들 때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평생 자기 몸에 관해 일기를 써온 사람이 마지막 가는 길을 거부할 수는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

강수량은 땅의 단단한 정도를 결정한다. 비가 적게 오는 서양의 땅은 단단하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돌이나 벽돌 같은 무겁지만 단단한 건축 재료를 이용해서 벽으로 지붕을 받치는 벽 중심의 건축을 했다. 반면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인 동양은 장마철에 땅이 물러지기 때문에 무거운 재료로 만든 벽은 쓰러진다. 따라서 가벼운 건축 재료인 나무를 사용하였고, 자연스럽게 나무 기둥으로 지붕을 받치는 기둥 중심의 건축을 하게 되었다.


(62-3)

벼농사는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때 많은 물을 다뤄야 하기에 치수를 위한 토목 공사가 많이 필요하다. 물을 담는 작은 저수지인 를 만들어야 하고 모내기도 집단으로 모여서 한다. 벼농사를 지을 때는 저수지나 다른 사람의 땅에서 사용한 물을 내 논으로 내려 받아서 사용하고 다시 그 물을 물길을 내어서 이웃의 땅으로 전달해 주어야 한다. 벼농사에서는 농사에 가장 중요한 물을 함께 힘을 합쳐서 공동으로 사용해야만 한다. 시기를 놓치면 농사가 어려운 품종이기 때문에 노동의 형태도 집단적으로 집중해서 심고 태풍이 오기 전에 집중적으로 추구하는 형식을 띤다. 이러한 노동의 과정을 통해서 벼농사 지역은 자연스럽게 공동체 의식과 집단의식이 강하게 자리 잡게 된다. 벼농사는 옆에 있는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지 않으면 지을 수 없다. 다른 말로, 이웃과 잘 지내지 않으면 생존을 위협받는 것이 벼농사 지역에서의 삶이다. 그래서 벼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우리 할머니는 서울에 와서도 이웃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생활하셨다.


(64)

반면 밀 농사는 씨 뿌리는 모습부터 다르다. 벼농사를 지을 때는 함께 줄을 맞추어서 모를 심지만, 밀 농사 지을 때는 땅 위를 혼자 걸어 다니면서 씨를 뿌린다. 집단으로 모여서 일하는 경우가 적다. 밀은 맨땅에서 자라고 물이 많이 필요하지 않고, 비가 집중호우 없이 적당히 고루 내리는 지역에서 농사짓기 때문에 관개수로를 만들 필요도 없다. 밀 농사는 벼농사에 비해서 서로 협력할 필요도 없고, 모여서 살 필요도 적다. 자연스럽게 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관개수로 토목공사를 하고 집단 모내기를 하면서 벼농사를 짓던 사람에 비해 개인주의적 성격이 만들어지게 된다. 벼농사 지역의 이혼율이 밀 농사 지역보다 매우 낮은 이유도 이와 같은 배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유럽 여행을 가면 자연 속에 오두막이 띄엄띄엄 있는 평온한 시골 풍경을 볼 수 있는 반면, 동양의 시골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다. 농사 방식은 마을의 풍경도 다르게 만들었다. 노동 방식이 문명의 성격을 결정지은 것이다.


(77)

기둥 중심의 건축으로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건축 공간이다 보니 여러모로 주변과의 관계가 중요한 건축으로 발전했고, 이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벼농사를 지으면서 집단행동이 필요해져 사람 간의 관계에 무게를 두는 가치관이 형성됐다면, 건축을 통해서는 사람과 건축과 주변 자연환경과의 관계에 무게를 두는 디자인관이 발전하게 된 것이다.


(113)

바둑과 동양 건축물의 배치 모습에서도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만약 바둑돌을 건물이나 담장으로 보고, 바둑돌이 만드는 빈 집을 마당으로 본다면, 바둑판의 돌이 놓인 패턴과 동양 건축물 배치의 패턴이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바둑돌들이 둘러싸서 빈 공간을 만들 듯이 동양 건축에서는 건물과 담당으로 둘러싸서 마당 같은 빈 공간을 만들면서 건축물이 성장한다. 혹은 검정색 돌이 건축물, 흰색 돌이 자연이라고 생각하고 보아도 좋다. 둘 사이의 관계에 의해서 패턴이 정해지고 곳곳에 빈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 바둑과 동양 건축의 공통점이다.


(117)

서양의 문화는 양식이라는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의 반복을 통해서 공간을 만들어 가는 형식이다. 이는 마치 체스에서 각각의 말들이 다른 형태의 규칙과 위계를 가지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양식 혹은 규칙을 만들고 규정하기 좋아하는 것이 서양 문화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동양의 나무 기둥과 보를 가지는 구조 양식은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다만 건물은 놓인 대지의 조건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반응하면서 건물의 배치를 변화시켜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유기적이고 상대적인 공간을 연출해 왔다. 물론 여기에도 풍수지리 같은 보이지 않는 규칙은 존재했지만, 그 풍수지리라는 규칙도 물과 산과 사람의 상대적인 관계에 관심의 초점이 있다. 이렇듯 동양 건축은 양식보다는 상대적인 관계를 중요하게 여겨 왔다.


(153)

극동아시아 문화는 유교가 지배적이었다. 사후 세계보다는 현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땅 위에서의 현실 삶에서 충이나 효 같은 관계를 중요시했다. 기둥 구조를 써서 기둥과 기둥 사이로 주변 환경이 잘 보이는 동양의 건축은 땅과 연결되어서 집을 짓는 개미처럼 주변 환경과의 관계성이 중요시 되는 건축의 성격을 띤다. 반면에 유럽은 이집트, 그리스, 기독교에서 공통적으로 사후 세계, 이데아의 세계, 눈에 보이지 않는 위로부터 오는 형이상학적 원칙을 중요시 했다. 이들은 땅과는 관련 없이 다른 차원의 세상에서 관념적으로 무에서 새로운 법칙을 만든다. 이러한 문화적인 특징은 주변의 아무런 영향 없이 내제된 법칙에 의해서 허공에 집을 짓는 벌과 비슷하다. 서양의 공간은 주변과의 관계를 맺지 않고 자족적이고 자기 완결적이기 때문에 벌집처럼 기하학적인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피라미드판테온도 주변 환경과 상관없이 자족적인 법칙에 의해서 디자인되었다. 그리고 그 법칙은 수학적 논리를 기반으로 한다. 이렇게 서양의 종교적 공간은 기하학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184)

도자기에 그려진 중국식 정원 디자인과 중국 철학은 자연을 대하는 유럽인의 자세를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곧바로 정원 디자인에 반영되어서 기존의 기하학적 형태의 정원 디자인에서 야생 상태의 자연으로 환원시키듯 디자인하는 픽처레스크 정원 디자인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우리가 알 만한 정원 중 픽처레스크 양식으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곳은 뉴욕 센트럴 파크. ‘센트럴 파크가 있는 지역이 지금의 공원처럼 원래 그렇게 나무가 울창하고 시냇물이 흐르는 곳은 아니었다. 그곳의 언덕, 나무, 수 공간 등은 실제 자연을 재현해 놓은 것 같은 모양으로 디자인되고 건설된 것이다. 실제로 센트럴 파크의 호수는 인공 호수고 흐르는 물은 모터 펌프를 이용해서 물을 공급하는 곳도 있다. 이처럼 자연을 모방해서 자연스럽게디자인하는 것이 픽처레스크 정원 양식이다.


(240, 241)

인터넷에서 르 코브쥐이에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근대 건축의 5원칙이 나온다. 근대 건축의 5원칙은 근대 건축이라면 가질 법한 다섯가지 특징을 코르뷔지에가 정리해 놓은 것이다. 여기서 간단히 소개한다면, 1. 필로티, 2. 옥상 정원, 3. 자유로운 평면, 4. 자유로운 입면, 5. 리본 수평창이다.

그런데 사실 르 코르뷔지에가 이야기한 근대 건축의 5원칙이라는 것이 두 번째 항목인 옥상 정원을 제외하고 나면 다 동양의 기둥식 구조의 건축에서 보이는 디자인과 거의 똑같다.


(245)

생각은 창작아 자신이 의식을 하건 안 하건 상관없이 영향을 받고 진화하는 법이다. 산업혁명으로 늘어난 제품들을 팔기위해서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를 비롯해서 1886년에는 에펠탑이 지어진 파리 만국박람회,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 등 수많은 박람회의 국가관을 통해서 세계 각국의 건축 디자인이 교류되고 소개되었다. 이러한 문화적인 흐름 속에서 이미 서양의 문화는 다른 대륙의 문화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러한 거대한 시대 흐름 속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공간에 대한 생각이 서양식에서 동양식으로 점차적으로 진화해 갔을 것이다.


(310)

그의 주장에 의하면 미국과 같이 공간이 넘쳐 나는 지역에서는 시간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 거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건축이 발전해 왔다고 한다. 고속도로가 대표적인 예다. 멀리 떨어진 도시로 이동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발전한 건축 시스템이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 같은 섬나라에서는 공간이 부족하고 시간을 오히려 남는다. 이런 경우에는 공간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시간을 지연시키는 쪽으로 건축이 발전해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같은 면적의 공간이라도 이동 시간을 늘리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면 많은 기억이 남게 되고, 따라서 공간이 더 넓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일본 전통 정원의 경우, 좁은 공간을 넓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일본 전통 정원의 경우, 좁은 공간을 넓게 인식되게 하려고 분절되고, 회전하고, 돌아가는 식의 장치를 만들어서 시간을 지연시켰고 그렇게 함으로써 같은 공간이라도 실제보다 더 넓게 인식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357)

건축에서 가장 변화하지 않는 것은 중력이라는 법칙이다. 많은 건축이 다양한 디자인을 하지만 태초부터 바뀌지 않는 건축의 본질은 중력과 싸워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현대 건축에서는 구조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형태의 건축물이 디자인되기도 한다. 구조적으로 파격적인 디자인은 본능적으로도 파격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항상 감동을 준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랜드마크 건물은 구조적으로 만들기 어려운 건축물들이었다. 이런 현상을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388)

한 공간에 모이지 못하면 종교는 집단 공간이 만드는 권력을 잃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전염병은 종교 단체 최고의 적이다. 역사적으로 중세 때 흑사병으로 천 년 동안 무소불위의 권위를 가졌던 교회가 힘을 잃었고, 이후 르네상스라는 인문 개혁이 일어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