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헤밍웨이는 한 장소에 붙박인 삶을 살지 않았다. 그는 4대륙 20여개 나라에 삶의 흔적을 남겼고, 창작도 온갖 도시의 온갖 호텔을 옮겨 다니며 했다. <태양은 다시 뜬다>는 프랑스 파리와 스페인 팜플로나가 배경이고 스위스에서 마감했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이탈리아의 밀라노와 베네치아가 배경이고 마조레 호숫가의 호텔에서 쓰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스페인 내전의 전장이 배경이고 쿠바의 아바나에서 주로 쓰였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아프리카가 배경이고 <노인과 바다>는 쿠바의 아바나가 배경이다. 한 여성에게 머물지도 않았다. 그는 네 명의 여성과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고 애인들도 적지 않았다. 그는 결혼과 이혼을 반복할 때마다 굵직한 작품들을 써 발표했다.


(67)

1920년대 문학을 말할 때 가장 널리 이야기되는 것이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 어쩌면 이 이름이 그 뒤를 잇는 여러 세대론의 씨앗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1920년대 잃어버린 세대이후로 1950년대의 비트족’, 1960~1970년대의 히피족이 뒤를 잇는다. 잃어버린 세대라는 이름을 탄생시킨 것이 헤밍웨이의 소설 <태양은 다시 뜬다>였다. ‘잃어버린 세대는 그의 창작이 아니었지만, 그가 소설에 써서 유명하게 되었고 그를 비롯한 몇몇 작가를 일컫는 공식적인 세대 이름이 되었다.


(104)

헤밍웨이가 대화문을 쓸 때 현실성을 얼마나 신경 썼는지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전쟁소설이고 따라서 극한 상황에 처한 군인들이 내뱉는 욕설과 비속어 ‘cocksucker’가 등장한다. 결국 저급한 단어들이 문제가 되어 보스턴에서 <무기여 잘 있거라>가 금서 목록에 오른다. 편집자 맥스 퍼킨스는 출판사 사장에게 이런 편지를 섰다. “삶에서든 문학에서든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게 헤밍웨이의 원칙입니다.”(<헤밍웨이 vs. 피츠제럴드>) 피츠제럴드는 검열 소식을 듣고 레마르크의 전쟁소설인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구해 헤밍웨이에게 보내준다. 당연히 그 소설에서도 군인들은 욕설을 내뱉는다. 남성들뿐인 전장의 막사에서 군인들이 조곤조곤 우아하게 존댓말로 대화한다면 그것만큼 어색한 장면도 또 없을 것이다. 결국 헤밍웨이와 맥스 퍼킨스는 한동안 설전을 거듭하다가 비속어를 빼기로 한다.


(106-107)

난 늘 빙산 원칙에 따라 글을 쓰려고 노력해요. 우리 눈에 보이는 부분마다 물 밑에는 8분의 7이 있죠. 아는 건 뭐든 없앨 수 있어요. 그럴수록 빙산은 더 단단해지죠. 그게 보이는 않는 부분입니다. 작가가 모르기 때문에 뭔가를 생략하면, 그때는 이야기에 구멍이 생겨요. (…) 하지만 알고 있는 그런 것들이 수면 아래의 빙산을 만드는 겁니다. - <헤밍웨이의 말> 57~59


(118-119)

김욱동은 하드보일드 스타일을 기술적인 측면에서 검토하고 있다. (1) 헤밍웨이는 감정을 최대한으로 억제한다. 감정을 억제하기에 오히려 그의 문제에는 힘과 박력이 있다. (2) 헤밍웨이는 글을 쓸 때 낱말 하나도 무척 주의를 기울여 선택하였다. 좀 더 구체적이고 감각적일뿐더러 충격적이고 투박한 성격이 강(한 토착어를 주로 사용했다). (3) 헤밍웨이는 되도록 형용사나 부사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4) 헤밍웨이는 무엇보다도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된 평서문을 즐겨 구사한다. 주어와 동사의 관계로 이루어진 단문을 즐겨 쓴다. 또한, 단문과 단문을 등위접속사로 대등하게 연결하는 중문을 주로 사용한다. (5) 반복법을 구사하기도 한다. 단순히 반복한다기보다는 의미를 조금씩 보강하는 점층법을 구사함으로써 주술적 효과를 노린다. (6) 헤밍웨이의 단편소설을 어떤 작가의 작품보다는 그 길이가 짧은 것이 특징이다. (<헤밍웨이를 위하여> 296~298)


(142)

헤밍웨이는 삶의 경험도 많고 어디 한군데 머무르지 않는 폭넓은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지만,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만큼은 단 몇 줄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단편적이고 단조로웠다. 그런 여성들과 그 자신의 반영인 남성 주인공들은 대개의 경우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사랑이 무르익은 밀고 당기는 연애 과정은 짧다. “그녀를 본 순간 나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내 내면의 모든 곳이 뒤집혀버렸다.”(<무기여 잘 있거라> 126)라고 말하면서 프레더릭은 캐서린과 병실에서 다짜고짜 사랑을 나눈다. 이런 관계에서 언제나 더 많이 사랑하고 그래서 더 순종적이게 되는 편은 항상 여성이다. 캐서린은 프레더릭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체온까지 멋지군요. (…) 당신 체온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무기여 잘 있거라>, 139) 프레더릭이 당신은 나의 착한 여자야.”라고 하지 캐서린은 난 정말 당신의 여자예요.”(<무기여 잘 있거라>, 205)라고 답한다. 주인공 남며 간의 이런 식의 대화는 헤밍웨이의 거의 모든 소설들에서 반복된다.


(163)

이제 막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할 무렵의 헤밍웨이의 눈에 여성들은, 비난을 퍼붓고 남성성을 위협하는 존재로 비쳤을 수 있다. 그의 남근중심주의는 어쩌면 어머니 그레이스가 덜 강압적인 양육 방법을 썼다면 그렇게 극단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 그를 썼다면 그렇게 극단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 그의 소설에서 일관되데 나타나는 순종적인 여성상도 정도가 덜했을지 모르고, 현실적인 성격의 여성들이 다채롭게 등장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있어 여자란 정복하고 통제해야 할 존재인 동시에 남성성을 무력화시키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무서운 존재였”)<섹슈얼 트라우마>, 237)던 것이다. 그의 눈에 비친 여성이 그런 존재였다면,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여성을 억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어머니에 대한 증오를 여성 일반에 투사해, 실생활에서든 문학으로든 여성을 억압하려 했다면 그것은 헤밍웨이의 잘못이다.


(222)

하지만 헤밍웨이가 무슨 이데올로기적인 확신이 있어서 참전했던 것은 아니었다. 파시즘, 자유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가 뒤섞여 이데올로기의 각축장 같았던 스페인 내전에서 그는 어느 이데올로기도 공식적으로 두둔하지 않았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그는 로버트 조던의 입을 빌려 자신에게 정치적인 입장이 없을 강조한다. 그의 참전은 다큐멘터리 해설에서 보듯 감정적인 측면이 강했다. 그는 이미 스페인이 배경인 책을 두 권 펴냈고 거의 해마다 스페인에 놀러가고 있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도 팜플로나의 산 페르민 축제 이야기가 나온다.


(274)

내가 보기에 이 점이 헤밍웨이의 삶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비행기 사고도, 자살도, 이 이해하기 어려운 사고들의 연속선상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그는 말하자면 죽을 뻔한 사고를 당하고도 똑 같은 행위를 다시금 반복했고, 비슷한 위험한 상황을 반복해 만들었다. 보통의 양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낚싯대를 타고 나갔다가 한 번 큰 부상을 입었으면 또다시 낚싯대에 오르기를 꺼려할 것이다. 전장에 나가 다리에 200개가 넘는 파편이 박혔다면, 전쟁은 소문만 들어도 치라 떨릴 것이다. 술에 취해 차를 운전하다 사고를 냈으면 다시 그러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는 평생 낚싯배를 타고 청새치를 쫓아다녔고, 늙어서도 주먹질 싸움을 그치지 않았으며, 알려진 것만 전쟁에 다섯 번 참전했고 음주 운전을 멈추지 않았다.


(285)

헤밍웨이는 죽기를 욕망했다. 죽음은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욕망의 원인이었고, 그가 쫓아다닌 위험한 장소들은 죽음에 그를 가까이 데려다주기는 하지만 결국 실패하게 되는 욕망의 틀린 대상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갖가지 사고와 질병, 비행기 사고, 자살까지 이어지는 그의 기나긴 육체적 고난의 연보는 이렇게 해서 연속성을 얻게 되고 조금이나마 이해 가능한 해석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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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47)

열일곱은 그런 나이가 아니다. 군인들에게 잡혀갈까봐 두려워하며 잠들지 못하는 나이, 아침마다 옥수수를 삶아 한 광주리를 이고 팔러 다녀야 하는 나이, 죽음을 목전에 둔 엄마의 공포와 노여움과 외로움을 지켜봐야 하는 나이, 영영 자기 혼자 남겨질 것이라는 예감을 하는 나이, 백정이라는 표지 때문에 길을 지나갈 때면 언제나, 어김없이 조롱당하고 위협당하는 나이, 엄마를 버려야 하는 나이, 엄마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고 멀리서 소식을 들어야 하는 나이. 그렇지만 증조모의 열일곱은 그런 나이였다. 할머니는 증조모가 그 나이의 자신을 버리지 못한 채 계속 붙들고 살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82)

그렇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 이 세상에 머물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기억되고 싶을까.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 언제나 답은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기원하든 그러지 않든 그것이 인간의 최종 결말이기도 했다. 지구가 수명을 다하고, 그보다 거 긴 시간이 지나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순간이 오면 시간마저도 사라지게 된다. 그때 인간은 그들이 잠시 우주에 머물렀다는 사실조차도 기억되지 못하는 종족이 된다. 우주는 그들을 기억할 수 있는 마음이 없는 곳이 된다. 그것이 우리의 최종 결말이다.

 

(130)

우리는 둥글고 푸른 배를 타고 컴컴한 바다를 떠돌다 대부분 백 년도 되지 않아 떠나야 한다. 그래서 어디로 가나.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우주의 나이에 비한다면, 아니 그보다 훨씬 짧은 지구의 나이에 비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은 너무도 찰나가 아닐까. 찰나에 불과한 삶이 왜 때로는 이렇게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참나무로, 기러기로 태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인간이었던 걸까.

 

(158)

그때의 내 마음은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세계가 지구 밖에 있다는 사실은 나의 유한함을 위로했다. 우주에 비하자면 나는 풀잎에 맺히는 물방울이나 입도 없이 살다 죽는 작은 벌레와 같았다. 언제나 무겁게만 느껴지던 내 존재가 그런 생각 안에서 가벼워지던 느낌을 나는 기억했다. 무리를 이루는 듯 보이는 밤하늘의 별들도 철저히 혼자이며, 하나의 점으로 응축되어 있던 물질들이 팽창하는 우주 속에서 빠른 속도로 서로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어린 시절부터 줄곧 느껴왔던 슬픔을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그 순진무구한 사랑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차츰 빛을 잃어갔고, 그 자리는 현실적인 크기의 희망으로 대체됐다. 나의 숨쉴 구멍이었던 존재가 일이 되고, 나의 가능성이 한계가 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9)

하지만 할머니는 그날 그 자리에서 불안을 느꼈다. 경계하지 않을 때, 긴장하지 않을 때, 아무 일도 없으리라고 생각할 때, 비관적인 생각에서 자유로울 때, 어떤 순간을 즐길 때 다시 어려운 일이 닥치리라는 불안이었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전전긍긍할 때는 별다른 일이 없다가도 조금이라도 안심하면 뒤통수를 치는 것이 삶이라고 할머니 생각했다. 불행은 그런 환경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겨우 한숨 돌렸을 때, 이제는 좀 살아볼 만한가보다 생각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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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넷플릭스는 지출을 부정하게 사용하는 역효과보다 자유롭고 빠른 일 처리가 주는 순기능이 훨씬 크다고 본다. 지출하면서 회사에 득이 되게 하라는 가치만을 생각하라는 넷플릭스의 방침은 업무 처리를 빠르게 하고 직원들을 자유롭게 하는 효과 이외에 예산을 더 아껴 쓰는 사람도 있다는 놀라운 발견을 하게 했다. 지출에 관한 규정을 세밀하게 마련해두면 직원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규정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서 가능한 지출을 많이 하려는 경향이 높지만, 규정이 없으면 오히려 필요 없는 지출을 삼가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회사가 먼저 직원을 신뢰한다는 신호를 주었을 때 직원들은 그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서 자신들이 얼마나 청렴한지를 보이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넷플릭스는 발견했다.

 

(68-69)

최근의 소비자들은 스타벅스의 커피 맛 못지않게 기업이 추구하고 실천하는 사회적 공헌에 매료된다. 첨예하게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조그마한 선생이라도 실천하는 회사를 소비자들이 알아채기라도 하면 천 리를 마다하고 달려가서 돈쭐을 내주고야 하는 것이 현대인의 심리다. 스타벅스는 사회 공헌이라는 소중한 이미지와 충실한 고객이라는 실익까지 얻는 셈이다. 2021 10, 스타벅스커피 코리아 매장 직원들이 초유의 트럭시위를 벌이며 처우 개선과 과도한 마케팅 금지를 요구한 사례가 있다. 스타벅스의 창업 정신을 건강하게만 지켜낸다면, 이러한 불협화음은 나오지 않으리라 믿는다. 스타벅스가 계속 커피를 넘어 문화를, 문화를 넘어 공익을 파는 기업으로 남길 바라본다.

 

(78)

돈을 벌겠다는 욕심만 강해서 빚으로 신규 사업을 벌이는 사람이 결국 실패하는 이유를 다이슨의 통찰을 통해서 알게 된다. 부자들은 돈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계획적으로 쓰는 경향이 있다. 기업이 아닌 개인으로서도 빚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의 행태는 구별된다. 내가 아는 한 부자는 컴퓨터 한 대를 사더라도 시장 조사를 거친다. 부자들은 쓸 때는 쓰더라도 효율적으로 지출하지만 빚이 많은 사람은 자신이 부자였다면 하고 싶은 일을 벌이는 경향이 있다. 처해 있는 현실보다는 가능성이 희박한 미래의 큰 성공만을 생각한다.

 

(111-112)

국내 인터넷 서점 알라딘도 그런 경우다. 알리딘의 많은 고객이 알라딘서재의 충실한 애용자다. 나만 해도 그렇다. 책을 사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알라딘서재에 게시되는 다양한 글과 리뷰가 궁금해서 홈페이지에 방문하곤 한다. 알라딘서재 이용자는 주로 알라딘에서 책을 구매하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알라딘만의 굿즈도 이용자에게 굉장한 즐거움을 준다. 알라딘 굿즈에는 단순히 사은품을 넘어선 이미지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많은 고객이 책보다 굿즈가 탐이 나서 알라딘 홈페이지 방문하고, 결국 책을 구매하기도 한다. 알라딘만의 문화, 이미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상품 구매로 연결된다. ‘굿즈를 샀더니 책이 왔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미키타니 히로시는 이처럼 상품보다는 재미를 팔아야 하는 시대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149)

아무 조건 없이 푸짐하게 베풀면 고객들은 언제든지 다시 들러서 보답한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공짜 음식만큼 맛있는 게 또 있는가? 공짜로 먹는 빵을 고객들은 더 맛있게 느낀다는 것이다. 이 정도 되면 김영모가 심리학 책도 열심히 읽은 것 아닌가 생각된다. 또 고객들은 공짜로 빵을 먹는다는 혜택에 빵 맛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내놓는 보답을 한다. 맛있다는 칭찬이 입소문으로 돌게 된다. 빵에 대한 소비자의 솔직하고 빠른 의견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선물이다. 시식은 대가 없이 베풀어야 한다는 게 김영모의 철학이다.

 

(166)

전통적인 산업 사회에서는 사람들끼리 경쟁했다. 기업은 다른 기업보다 앞서기 위해서 더 큰 공장을 지었고 더 많은 자본을 유치하려고 애썼다. 개인은 다른 사람보다 앞서기 위해서 더 오래 공부하고 더 많은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미래 사회는 인간끼리도 경쟁하지만 인공 지능을 비롯한 기계와 경쟁을 해야 한다. 사람은 육체적 정신적 한계가 있는 적수다. 그러나 기계는 사람이 자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일할 수 있다. 사람과 달리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다. 한의상은 인간이 기계와 싸워 이기는 방법은 기계에는 없고 오직 사람만 가질 수 있는 자질, 즉 인성이 유일한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상대를 배려하고 인간은 본분을 지키며 타인의 성장을 돕는 마음 씀씀이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210)

빠름은 양날을 가진 검과 같다. 빨리하는 것이 권장되는 예도 있고 아닌 경우도 많다. 가령 인생에서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는 많은 사람이 천천히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조언한다. 멀쩡히 다니는 명문 대학을 자퇴한다거나, 집을 구매하고 결혼을 결정하는 일은 신중 모드가 필요한 일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 유튜브의 창업자 스티브 첸은 좀 달랐다. 그는 15분 만에 자퇴를, 하루 만에 집 구매를, 3일 만에 결혼을 결심했다. 스티브 첸의 속전속결 인생은 이것뿐만 아니다. ‘youtube’라는 이름을 하루 만에 결정했고 2005년에 창업한 유튜브를 2006년 구글에 팔아치웠다. 유튜브를 팔아치울지 아니면 본인이 더 큰 회사로 키워갈지 결정하는 데는 제법 오랜 시간(?) 5일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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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2022-03-06 23: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조그마한 선생이라도 실천하는 회사를 에서 선생이 혹시 선행이 아닐까요?
또 책을 내셨네요.축하합니다.

2022-03-07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3-08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50)

그는 <봄은 가장 잔인한 계절입니다!>라고 말하고 카페에 들어갔지요. 사람이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알아야 하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실은 나도 봄에는 신경질적으로 됩니다. 나도 봄이 일깨워 주는 곱고 진부한 추억과 감정 때문에 혼란에 빠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봄을 욕하고 경멸할 생각은 없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봄을 대하면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 때문입니다. 봄이 지닌 순수한 자연성과 의기양양한 청춘 앞에서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달베르크가 이런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는 것에 대해 그를 부러워해야 할지, 경멸해야 할지 잘 모르겠군요……


(51)

아시다시피 사람들은 중요한 것에 대해 말하는 법이 없고, 근본적으로 아무래도 상관없는 소재만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미학적 형상물을 만들어 내려면 유희적이면서도 차분한 태도로, 우월한 입장에서 이러한 소재를 짜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당신이 말하려는 내용에 너무 집착해서, 그로 인해 당신의 가슴이 너무 따뜻해진다면 당신은 완전히 실패하고 말 것이 분명합니다. 당신은 격하게 되고 감상적으로 되며, 다듬어지지 않은 것, 아이러니가 결여된 것, 양념이 덜 된 것, 지루하고 진부한 것이 나오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냉담한 반응만을 보일 거고, 결국 당신은 좌절하여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 겁니다…… 세상 이치가 다 그런 거니까요, 리자베타. 감정 말입니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감정은 언제나 진부하고 쓸모없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의 망가진, 우리의 정교한 신경 조직의 발끈하기 쉬운 예리함과 차가운 황홀함만이 예술적인 것입니다. 우리 예술가들은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거나 비인간적으로 될 필요가 있습니다.


(55-56)

하지만 예술가란 어떤 존재인가요? 안일하고 지적인 사고를 하는 일에 게으른 인류가 다른 질문과는 달리 이 질문에는 말할 수 없이 끈질긴 태도를 보여 왔습니다. <그런 건 하늘이 내린 재능이야!> 어떤 예술가에게 감명을 받은 착실한 사람들은 이렇게 겸허하게 말합니다. 이들의 선량한 견해에 따르면 명랑하고 고상한 감명을 주려면 그 원천인 예술가도 틀림없이 명랑하고 고상할 것이라는 이야기지요. 그리하여 예술가의 이러한 재능이 극히 사악한, 극히 미심쩍은 <재능>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술가들이 쉽게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또한 양심에 거리낌이 없고 자아 존중감이 건실한 사람이 별로 없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59-60)

그럼, 아까 말한 <인식>의 문제로 돌아가서, 천성적으로 선량하고 온화하며 호의적이고, 약간 감상적이면서 남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혜안이 있어서 심신이 지친 나머지 파멸 상태에 이르게 된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세상의 슬픈 일에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관찰하고 주의 깊게 살피며, 아무리 고통스러운 일일이라도 자신의 사고 체계 속에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 말고도 존재의 혐오스러운 허구에 대해 벌써부터 도덕적인 우월감에 가득 차서 기분이 좋은 척해야 합니다 , 물론 그래야지요! 하지만 표현의 즐거움을 누리다가도 가끔씩 이런 일이 당신에게 좀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을 겁니다.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말은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말일까요? 모르겠습니다.


(61)

진지하게 말하자면, 문학 언어가 우리의 감정을 그토록 신속하고도 피상적으로 처리하는 데는 얼음같이 차디찬, 화가 날 정도로 불손한 사정이 숨어 있는 겁니다. 당신의 가슴이 너무 벅차오르면 당신은 어떤 감미롭거나 숭고한 체험에 온통 사로잡혀 있다고 느낄 겁니다. 이때는 더 이상 간단한 일이 없습니다! 글쓰는 문사(文士)한테 가면 모든 거시 순식간에 정리되어 나올 겁니다. 그는 당신의 문제를 분석하고 명확히 표현하여 이름을 붙이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견해를 표명할 겁니다. 이 모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여 아무렇지도 않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는, 그에 대한 감사의 인사말도 듣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68)

있을 것 같기도 해요. …… 토니오, 난 당신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들었어요. 그러니 당신이 오늘 오후에 한 모든 말에 알맞은 대답을 해 드리지요. 그리고 그것이 당신을 그토록 불안하게 만드는 문제에 대한 해답이기도 합니다. , 그럼 말하지요! 그 해답은 지금 이곳에 앉아 있는 당신은 누가 뭐래도 한 사람의 시민이라는 사실입니다.”

내가요?” 그는 이렇게 물으며 약간 주저앉는 듯했다.

그렇지 않아요? 충격이 크겠죠. 또 당연히 그래야 하고요. 그러니 형량을 조금 줄여 주려고 합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당신은 <길을 잘못 든 시민>입니다, 토니오 크뢰거-<길을 잃고 헤매는 시민>이지요.”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가 그는 단호한 태도로 일어서더니 모자와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고맙습니다. 리자베타 이바노브나. 이젠 안심하고 집에 갈 수 있겠습니다. 난 처리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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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365)

당신은 재건의 역사를 식물들의 관점에서 재구성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그 작업이 수행되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인류는 그간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 역사만을 써온 것일까요. 식물 인지 편향은 동물로서의 인간이 가진 오래된 습성입니다. 우리는 동물을 과대평가하고 식물을 과소평가합니다. 동물들의 개별성에 비해 식물들의 집단적 고유성을 폄하합니다. 식물들의 삶에 가득한 경쟁과 분투를 보지 않습니다. 문질러 지운 듯 흐릿한 식물 풍경을 바라볼 뿐입니다. 우리는 피라미드형 생물관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식물과 미생물, 곤충들은 피라미드를 떠받치는 바닥일 뿐이고, 비인간 동물들이 그 위에 있고, 인간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반대로 알고 있는 셈이지요. 식물들은 동물이 없어도 얼마든지 종의 번영을 추구할 수 있으니까요. 인간은 언제나 지구라는 생태에 잠시 초대된 손님에 불과했습니다. 그마저도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위태로운 지위였지요.


(379)

마음도 감정도 물질적인 것이고, 시간의 물줄기를 맞다보면 그 표면이 점차 깎여나가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어떤 핵심이 남잖아요. 그렇게 남은 건 정말로 당신이 가졌던 마음이라고요. 시간조차 그 마음을 지우지 못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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