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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코 상
사노 요코 지음, 윤성원 옮김 / 펄북스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시즈코 상
사노요코 지음
나는 사노 요코를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로 처음 접했다. 그녀의 솔직하고 재기발랄하고 괴팍한 측면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또 하나의 애정하는 작가이다.
왜 그녀의 책들은 이렇게 그녀가 죽고 나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지.... 참 시대를 앞서 간 여자이다.
다른 유명하고 좋은 책도 많지만...
이번에는 이 책이 보고팠다. 표지가 예뻐서...(실제 2010년에 ‘나의 엄마 시즈코상 : 가장 미워하고 가장 사랑했던 이름’이라는 이름으로 한번 출간이 되었던 책이구나...)
처음 펼치고... 차례만 보고 당황했다.
그녀의 전 책들을 보면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랑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막연히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대놓고 엄마에 대한 미움, 원망, 자신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 역자 후기처럼 발가벗듯 써 놓아서... 이거 읽어도 될까...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다.
순식간에 읽혔고 많이 먹먹했다.
보통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미화된 사랑이야기, 아니면 구슬픈 눈물나는 이야기, 사모곡, 위인전 내지는 아름다운 수필, 소설처럼 나와서 전형적인 면이 있지만 나름의 감동이 함께 했던 것 같은데... 이 책은 엄마의 나쁜 점, 자기의 반항, 엄마에 대한 고백.... 등 너무 신랄하게 써 있었다.
아홉 살 때 일어난 간토 대지진, 모던 걸이었던 처녀 시절, 아버지와의 결혼 생활, 식민지 시절 베이징에서 누린 상당히 풍요로웠던 생활, 그리고 종전, 아홉 살짜리를 맏이로 줄줄이 다섯이나 되는 자식을 키우고, 2년 동안 무기력했던 지식인 아버지 대신 씩씩하게 먹을 것을 벌었던 그녀... 7명의 자식을 낳고 세 명의 자식을 어릴 때 잃었다. 특히 사랑했던 요코의 오빠이며 장남을 11살에 잃었다.
42살에 미망인이 되어 씩씩하게 자식 넷을 다 대학 졸업 시켰고 육아나 가사에 탁월했던 그녀...요리도 잘 했고 정리 정돈에 일가견이 있었으며, 애들 옷도 손수 해 입히신 그녀...
그렇지만 엄마는 따뜻한 사람은 아니었다. 적어도 자식들에게... 살면서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말을 절대 하지 않았고 누구에게보다 글쓴이 요코에게 가혹했다. 어린시절 물긷기, 집안일, 아기 귀저기 빨기... 등... 내가 읽으면서도 정말 계모인가... 싶었고..
그러면서도 돈을 벌게 되면 자식들에게 일절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았고...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은 명랑한 성격에 집에 손님 오는 것을 좋아했던...그 어렵던 가난을 다 견뎌냈지만 며느리와의 생활은 뜻대로 되지 않아 77세에 자신의 집에서 쫓겨났던 그녀는 가장 마음이 맞지 않았던 딸인 작가를 말년에 가장 신뢰했고... 치매가 왔고... 실버타운에 들어가셔서 여생을 마쳤다. 그래도 96세까지 사셨다.. 대단하다.
글을 보며 요코의 마음이 많이 전해졌다.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그녀는 따뜻한 엄마가 항상 그리웠지만 ....엄마는 따뜻하게 품어주지 않았다. 그녀에게 느끼는 여자로서의 질투인지, 사랑했던 아들에 대한 아쉬움 ... 때문인지... 덕분에 요코는 밟히고 맞아도 절대 굴복하지 않고 어마무지 강인한 사람으로 자라났고, 어찌 보면 그녀의 그런 독특한 면으로 창작가로서 사랑을 받았을 수도 있다.
엄마의 허세와 교만... 외가에 대한 철저한 외면, 철저하게 쌀쌀맞고 자기 위주의 생활.... 이런 걸 어떻게 그녀는 이렇게 여과없이 써낼 수 있을까?
그리고 평생 그녀를 따라다녔을 엄마와 나는 왜 친하지 않고 심지어 나는 엄마를 이렇게 미워하는가...하는 절대적인 죄책감과 속상함...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들... 나중에 반평생을 살고 나서 그런 모녀관계도 제법 많다는 걸 알았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고 하는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
나는 사실 어머니랑 관계가 참 좋다. 그렇지만 요코의 마음이 끝없이 공감가는 이유는 아마 아버지에 대한 나의 마음이 작가와 비슷한 면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리고 내 주변 친구들 중 대부분이 엄마와 마음이 맞질 않아 괜히 죄책감과 자책감에 다가 괴로워하는 부분을 끝도 없이 봐왔다.
그리고 그녀는 치매에 걸리신 어머니를 실버타운에 보내면서 계속 자책했다. 그녀는 돈으로 엄마를 버렸다고.... 그리고 치매에 걸리시며 그렇게 차갑고 피부에 닿기도 싫었던 엄마가... 한없이 부드럽고 유해지면서 평생 안 했던 ‘미안하다’, ‘고맙다’를 쏟아내는 엄마를 보면서 평생 멀었던 모녀 관계가 화해의 국면을 맞게 된다. 엄마에게 못된 딸이어서 미안했다고... 그제서야 작가는 엄마의 몸을 만질 수 있었고 한없이 웃으면서 속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 작가는 유방암 그리고 전이로 휠체어 신세... 실제 이 책을 작가 나이 70세에 적었고 자신은 결국 72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가기 전 어머니에 대한 회한과... 용서와 화해를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으로 여겨졌고... 짧은 글이었지만... 참 먹먹한 글이 될 것 같다.
그녀는 끝을 알았기에 이렇게 솔직하게 다 내려놓을 수 있었을까? 조금 더 살아 좋은 글 많이 써 줬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