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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이야기 1 - 줄거리와 역사 이야기 ㅣ 현대의 문학 이론 33
폴 리쾨르 지음, 김한식 이경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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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간이 길다고 혹은 짧다고 말한다. 어떻게든 시간을 측정하고 관찰하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측정할 수도 없으니 분명 시간은 존재하긴 한다.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데 그것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도대체 시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그는 말한다. “아무도 나에게 그 질문을 하지 않을 때에는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 나에게 그것을 묻고 내가 그것을 설명하려 한다면 나는 더 이상 알 수 없다.” 있기는 있는데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는 시간의 이 존재론적 역설을 그는 어떻게 해결하려는 걸까?
아우구스티누스는 질문을 바꾼다. 그렇다면 시간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그에게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가 따로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따로 따로 존재한다고 보면 크나큰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어디서부터 현재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과거이며 또 미래인가? 어떻게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과거와 현재를 측정할 수 있는가 등등....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을 우리의 정신에 위치시킨다. “어쩌면 우리는 그 본래의 의미로 세 개의 시간, 즉 과거의 현재, 현재의 현재, 미래의 현재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실 이러한 세 가지 시간 양태는 어떤 방식으로 정신 속에 존재하며 다른 곳에서 그것을 찾을 수 없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과거는 기억이라는 이미지로, 미래는 기다림(기대)으로, 현재는 직관으로 세 겹의 시간을 설정한다. 기억한다는 것은 현재의 정신이 과거의 이미지를 불러오는 것이고 기대한다는 것은 미래의 이미지를 미리 예측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현재’에 동시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현재는 언제나 세 겹의 중첩된 시간이다. 우리는 모두 이 세 겹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시간은 ‘정신’을 준거점으로 측정 가능하다. 시간은 기억이나 기다림(기대)의 방식으로 확장(이완)되며 집중 혹은 긴장하는 ‘현재’의 활동을 통해 연장된다. 이런 작용으로 우리의 정신 속에서 파편화된 시간은 연속적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기다림과 기억은 바로 정신 안에, 인상의 자격으로 연장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인상은 정신이 행동하는 한에서, 다시 말해서 기다리고 주의를 기울이고 기억하는 한에서만 정신 안에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시간은 헤아릴 수 있는 영혼들이 있는 곳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외부세계에 존재하는 것으로 알았던 시간을 정신에 위치시킴으로서 존재를 결여한 존재로서의 시간의 역설은 해결되었다. 한없이 단자화 되고 파편화된 시간들도 세 겹의 현재로 인해 연장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은 시간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인 동시에 인간의 실존적인 제약이기도 하다. 이 제약은 어떻게 극복 가능한 것인가? 시간의 연장은 언어를 통해 즉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줄거리 구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좀 더 극단으로 밀고 가면 이런 말이 가능할 것이다. 이야기가 아니면 어떻게 이 세계를 만날 수 있단 말인가?
폴 리쾨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을 바늘 하나 꽂을 수 없을 만큼 촘촘하게 분석하고 거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줄거리 구성을 연결시킨다. 줄거리 구성은 시간적 경험을 언어로 형상화하고 재형상화한다. 시간성이 언어로 옮겨지는 것이다. 리쾨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를 분석하면서 역사와 허구에 대해 분석한다. 달리 말하면 이것은 역사적 시간과 허구적 시간에 대한 분석이다. 역사적 시간은 연대기에 따른다. 그러나 연대기만으로는 안 되고 필연적으로 허구의 시간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역사와 허구는 교차하면서 바로 이 교차의 지점에 ‘인간의 시간’이 있다.
객관적 시간 즉 우주적 시간은 나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개인이 경험하는 시간 즉 사적인 시간과 늘 불협화음을 이룬다. 개인적 시간을 어떻게 객관적 시간에 안착시킬 것인가가 역사적 시간인 셈이다. 책을 읽다보니 지구상에 살고 있는 63억 인구 개개인은 모두 다 다른 시간을 사는 셈이다. 역사적 시간은 제쳐두고 내게 남은 사적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가 가슴을 짓눌러 온다. “내가 아프다. 시간이 아프다.”라고 했던 폴 발레리의 말이 남의 말 같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