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의 불꽃/최영미
잠시 훔쳐온 불꽃이었지만
그 온기를 쬐고 있는 동안만은
세상 시름, 두려움도 잊고
따뜻했었다
고맙다
네가 내게 해준 모든 것에 대해
주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옛날의 불꽃/이성복
나뭇잎들이 마술의 동굴 입구처럼 나직이 드리워진 자리,
터져 나오는 가슴을 동여맨 아가씨들이 키득거리며 사진을 찍는다
날이 어두어서인지 가끔 플래시도 터지고,
터질 때마다 튀어나오다 움칫거리는 젖가슴과 달라붙은 치마바지가
반질거리도록 팽팽한 엉덩이, 빳빳하다 못해 출렁거리며 강철 줄자처럼
휘어지는 허리의 탄성 앞에 나는 머뭇거린다 백화점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망설이는 동그란 눈의 꼬마처럼……
살모사 주둥이처럼 곤두선 저 힘 앞에선 모두가 옛날의 불꽃이다
이삿짐을 정리하다보니 오래 묵은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1976년도 발행 민음사 세계시인선 중의 하나가 『옛날의 불꽃』이라는 제목을 가진 미국 시인 로우웰의 시집이다. 정가가 500원이라 적혀있다. 기억을 더듬어 같은 제목을 가진 시들을 찾아보았다. 최영미 시인의 솔직함은 두 번째 시집에서도 여전 하구나. 문득 그녀의 '옛날의 불꽃'이 누구였는지 궁금해진다. 이성복 시인의 시는 네 번째 시집 『호랑가시나무의 기억』에 실려 있다. 1993년 발행이고 시인은 1952 년생이니 시인은 불혹을 갓 넘긴 나이다. 시인에게 ‘옛날’은 언제쯤일까?
시집 속에서 사진 두 장이 떨어져 나왔다.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동생과 함께 창덕궁에 갔었던 모양이다. 혼자 찍힌 내 모습을 보고 내가 놀랐다. 내가 이런 모습을 가졌던 적도 있었구나 싶었다. 오, 옛날이여!
접힌 부분 펼치기 ▼

여기에 접힐 내용을 입력해주세요.
펼친 부분 접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