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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미슐레의 자연사 1
쥘 미슐레 지음, 정진국 옮김 / 새물결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최근 역사관련 서적들을 뒤적이면서 미슐레라는 이름을 자주 접했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헤겔, 부르크하르트, 니체, 벤야민 등과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 하던 참이었는데 『바다』 때문에 미슐레의 글을 생각보다 빨리 접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런 것도 인연이라면,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다만 그의 이름을 몇 번 입에 올렸을 뿐인데 그는 이미 내게 와 있었으니 말이다.

1860년에 쓴 그의 글이 150년을 흘쩍 뛰어넘어 나와 조우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그는 『프랑스대혁명사』를 비롯해 방대한 역사서들을 남기고 중세사를 다졌다고 하는데 프랑스혁명사도 아니고 중세사도 아닌 바다史를 먼저 접하게 될 줄이야.

어쨌거나 이 책은 미슐레가 예순이 넘은 나이에 서른 살이나 아래인 아내와 여기저기를 전전하던 시기에 쓴 책이라고 한다. 그의 개인사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은 이것이 전부다. 그러나 그가 『바다』에서 보여주는 것들은 참으로 많다.

미슐레는 바다를 다각도로 살피고 있었다. 나는 지름 15cm정도 되는 스텔라노바 지구본과 아메리카 대륙이 오른쪽에 있는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이 책을 읽었다. 그가 지구 밖으로 나가서 지구를 바라보면 나는 지구본에 전원을 넣어 그윽하게 빛나는 지구를 함께 바라보았다. 그리고 태평양을 가운데 두고 해안가를 따라 줄지어선 화산들을 더듬었다. 그가 바다 속으로 깊이 침잠하거나 바닷가를 거닐면 나는 세계지도를 더듬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그는 과거 속으로 들어가 인간이 어떻게 바다를 정복해 가는지를 살피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에게 바다의 항로를 알려준 것은 따뜻한 바다를 끔찍이 싫어하는 고래였다. 대서양에서 상처를 입은 고래가 태평양에서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북쪽에 통로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이 발견은 바다의 지리와 지구의 형상에 찬란한 서광을 비추었다.

이어 이탈리아의 유식한 서적상이었던 콜럼버스, 희망봉을 지나 황금사과가 열린다는 신화의 나라 인도로 가고자 했던 바스코 다 가마, 난파와 침몰, 암살위험 등으로 끔직한 삶을 살며 수백 개의 섬 사이를 배회하다가 태평양을 발견한 마젤란 등에 의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물론 이들이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야했던 이유는 황금 때문이었다. 황금을 찾는 인간들은 인간을 죽여 가면서까지 황금만을 원했다. 콜럼버스는 아이티에 도착했을 때 “금은 어디 있지? 누가 갖고 있을까?”라며 끔찍한 솔직함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한다. 콜럼버스는 원주민들을 모두 금의 노예로 만들어버렸고, 12년 뒤 그의 일기에는 그곳 인구의 7분의 6이 감소했다는 사실이 적혀있다고 한다.

미슐레의 바다 이야기는 생생하면서도 환상적이고 아름다우면서도 끔찍하다. 그는 바다 생물에 대해 지극한 애정을 가지고 인간의 횡포를 고발하는가 하면 진주의 아름다움에 빠져 황홀해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그는 어느새 자연보호자가 되어 ‘과거의 낡고 특수한 연안어업 규정은 더는 현대 항해에 쓸모가 없’으며 ‘다자간의 공동규약이 필요’하다고, ‘인간관계만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바다를 모든 생명의 기원으로 보는 그는 ‘우리는 죽일 수밖에 없고, 우리의 이빨과 위장이 죽음을 필요로 하는 운명’이긴 하지만 바다 자원의 파괴는 모든 것의 조화와 질서에 비통한 결과를 낳는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바닷물을 분해하여 얻어낸 중수소로 플라즈마를 만들어 인공태양을 만드는 시대, 예정된 임무시간을 완료한 인공위성이 우주의 쓰레기로 떠도는 시대를 살면서 150년 전 역사학자가 발부한 옐로카드의 의미를 곰곰 생각해 본다.


사족: 책은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다. 마치 바다에 관한 사전을 통째로 한 권 읽은 느낌이다. 정보도 많았고 문장도 아름다웠다. 하나의 글이 시작될 때마다 바다를 생각나게 하는 파란 바탕의 그림은 그 글의 내용에 대해 미리 짐작해보게 해주었다. 오자도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317쪽 아래서 두 번째 줄 ‘천박’은 의미상 ‘척박’이 되어야 할 듯싶다. 366쪽 위에서 세 번 째 줄 ‘바다에’는 ‘바다의’가 맞지 않을까.



밑줄 긋기

세상의 큰 운명인 굶주림은 육지에서나 벌어지는 일이다. 바다에서 굶주림은 예방되므로 있는지조차 모른다. 식량을 찾는 어떤 움직임도 없다. 삶은 마치 꿈처럼 떠다닌다. 그런 힘을 무엇에 쓸까? 힘의 소진을 불가능하다. 그 힘은 사랑을 위해 비축한다. -103


사랑은 자기 존재를 넘어, 또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존재하려는 노력이다. -111


진주는 하렘의 여인이 속옷으로 걸치는 비단 속치마 같다. 다 해져 떨어질 때까지, 힘을 잃고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면, 결코 이 애첩을 떠나지 않는다. 지칠 줄 모르는 사랑의 자극이자 부적이다. -178


아이를 학교에 가두어놓지 말고 어려서부터 일과 운동과 항해를 시켜야지, 앉은뱅이처럼 책상 앞에 앉혀 공부나 하게 해서는 안 된다. -310


여자들은 얼마나 남자를 모르는지! 여자들이 모르는 것은 사랑의 가장 큰 특징, 가장 생생한 자극은 미모가 아니라 격정이라는 사실이다.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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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2-26 0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여기저기서 리뷰를 보게 되는데, 이 리뷰는 새로운 관점인걸요.
전 불어는 까막눈인데, 어디선가 주워들은 '라 메르'는 너무 예쁜 것 같아서, 자꾸 발음해 보게 되거든요~

1860년에 쓰여진 글이라니, 진짜 바다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겠는걸요~^^

반딧불이 2010-12-26 10:08   좋아요 0 | URL
비행기도 없었던 당시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다는게 놀라웠어요.

비로그인 2010-12-26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이님의 리뷰 덕분에 미슐레의 책도 욕심이 나지만 갑자기 지구본이 갖고 싶어졌습니다^^

반딧불이 2010-12-26 10:16   좋아요 0 | URL
후와님.제가 갖고 있는 건 요거에요.

http://gift.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7060910155

저는 큰것도 싫고 바다가 시퍼렇게 나오는건 천박해보이더라구요.

제 맘에는 들지만 글씨가 작은 게 흠이라면 흠이에요. 전원을 넣으면 별자리가 뜨는 것도 있어요. 저는 가끔 어스름이 생각나는 저녁이면 대신 이녀석을 돌리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