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완벽의 추구 - 하버드대 최고의 행복 강의
탈 벤 샤하르 지음, 노혜숙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책을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덮었을때의 느낌을 살려봐야겠다. 책이 주는 메시지는 저자의 하고 싶은 말일수도 있지만 문자로 독자에게 그 생각과 느낌을 고스란히 심어주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문자는 독자의 기준에 의해서 재해석되고 체화된다. 그리고, 그 느낌을 난 다시 문자로 풀어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왜곡이 작용한다. 아무리 좋은 작품도 본인의 기준에서 떨어지면 나쁜 작품이 될 수 밖에 없다. 지금 내가 끄적거리는 행위는 책 전체에 대한 메시지는 아니다. 책에서 나에게 남겨준 파편과 같은 기억을 상기하면서 적어보려고 한다.
완벽주의자 VS. 최적주의자
책 제목은 완벽의 추구이지만, 이 책의 큰 화두는 최적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완벽주의와 최적주의(여기서는 저자의 생각을 담은 용어로서 사용된다.)를 대조하면서 최적주의자를 비교우위에 두고 있다. 완벽주의자는 결과를 중시하고 만족이 없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완벽한 사람은 없듯이 완벽주의자는 언제나 채워지지 않는 갈망속에서 살아가는 불행한 사람들이다. 반면에 최적주의자는 과정을 중시하고 과정에서 만족과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다.
서울에서 부산간 KTX로 2시간대에 접근이 가능해졌다. 산에 터널을 뚫고 직선화를 하면서 시간적 격차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얼마전 부산에 여행을 다녀왔다. 그런데,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그 알수없던 마음 한칸에 의구심은 집에 와서 알게 되었다. 새마을이나 무궁화를 타면 산을 돌아가고 논길을 가로질러 가기도 하고 다리도 건너간다. 5시간이 넘는 긴 시간이지만 창밖풍경을 위안 삼으며 가는 길은 또다른 여행의 재미를 안겨주었던 것이다. KTX는 주위가 막혀 있거나 너무 빨리 지나가는 바람에 풍경을 보는 재미를 없앴다. 완벽주의자는 1차 직선과 같은 최단거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결과인 도착지만 인생의 목표가 된다. 그러나, 최적주의자는 지나가는 과정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아마도 가는도중에 흥미를 끄는 역이 있으면 아예 하차를 해서 여행을 하다가 다시 출발하기도 하는 사람이다. 완벽주의자에게는 실패가 용납이 안되지만 최적주의자에게 있어서 실패도 과정의 일부일뿐이다. 오히려 교훈을 주는 실패는 더 좋게 받아들이는 것이 최적주의자의 태도이다.
감정의 순응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배우게 되는 감정의 관리는 교육된데로 표현하게된다. 그나마 아이일때는 감정의 표현이 더 자연스럽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가면서 우리의 감정은 자신의 마음속으로 숨기게된다. 감정을 들키는 것은 큰 약점이 되는 것처럼 교육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감정의 표현은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더 안좋은 정신적 이상을 가져오게된다. 지금 이 순간부터는 자신에 감정에 귀를 기울이고 알아차림으로써 자신에게 충실해지는 최적주의자가 되도록 노력해보자. 감정을 드러낼때에는 그 중심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감정의 지배를 당한다. 자신이 화를 내는지,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모르고 즉각적 반응으로 들어내는 감정은 자신이 아니라 습관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행위와 인격의 분리
아이들의 교육에서 부모가 가져야 할 기본 마인드라 생각한다. 물론 모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필요한 마인드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혼내거나 가르칠때는 아이의 행위에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 아이가 학교숙제를 안한다고 '너는 왜이리 게으르니?, 머리가 나쁘니?'등의 인격을 공격하면 안된다. '학교 숙제를 안하면 너가 내일 선생님께 혼날까 걱정된다.' '학교 숙제는 선생님과의 약속인데, 지키는 것이 좋지 않을까?'등의 숙제 안하는 행위를 고치는 말을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부모들은 주로 인격에 맞추어 말을 하게된다. 부부사이에도 마찬가지이다. 무수한 예가 있겠지만 접어두겠다. 최적 주의자로 가는길은 행위와 인격의 분리라는 말에 더 느낌을 받았던 것같다.
자애(自愛)
사회관계에서 강조하는 것은 주로 타인에게 잘 대해주어라 공경하라 등등의 모든 대인관계에서 중심은 타인이 되어왔다. 그러나, 최적주의자의 기본은 자신을 사람하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충분히 채운후에 남에게 사랑을 전달하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남에게 사랑을 전파하는 것은 위선이 될수 있는 것이다. 최적주의자는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남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당장 거울을 보면서 "난 날 사랑해" 라고 말해 보는 것도 좋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