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 - 다양하고 지속 가능한 출판을 위하여
니시야마 마사코, 김연한 / 유유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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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에 한국에서 가장 큰 도매서적 중 하나인 송인서적이 부도가 났다. 안 그래도 힘든 중소출판사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한때 편집자로 일한 나는 책 한 권 만들어 파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속이 쓰렸다. 피땀 어린 돈을 날리고 기껏 만든 책마저 창고에서 먼지투성이가 되는 걸 지켜보는 심정이 어떨지…

조금이라도 돕고 싶어 책을 사기로 했다. 새 발의 피도 못 되는 줄 알지만 그렇게라도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은 그래서 산 책이다. 솔직히 일본의 1인 출판사가 어떻게 일하는지는 관심 없었다. 그저 피해 입은 출판사를 돕고 싶은 마음으로 샀는데 정작 도움을 받은 건 나였다. 한동안 잊고 있던 책 읽기의 재미를 되찾았을 뿐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곰곰 생각하는 시간까지 가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은 제목이 말해주듯 독특한 개성을 자랑하는 일본의 소규모 출판사들을 취재한 책이다. (취재기 외에도 서점주인, 북코디네이터 등이 쓴 칼럼과 유명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의 인터뷰가 실려 있어 출판계 이모저모를 두루 엿볼 수 있다.)

편집자 출신인 저자 니시야마 마사코가 취재한 10개 출판사 대부분은 사장이 곧 직원인 1인 회사지만 개중엔 무려(!) 8명이 함께 일하는 꽤 큰 규모의 출판사도 있으며, 생긴 지 1년 남짓한 신생 회사가 있는가 하면 10년을 훌쩍 넘긴 중견 출판사도 있다.

도쿄에 사무실을 둔 곳이 많지만 작은 섬에 자리 잡은 곳도 있고 아예 오키나와에서 오키나와산(産) 책만 파는 경우도 있다. SNS 홍보를 고민하는 사장도 있고 처음부터 “가능한 안 하는” 걸 원칙으로 삼은 이도 있다. 만드는 책이 저마다 다르듯 출판을 하는 이유도 일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한데 책을 읽다보면 다른 점보다 비슷한 점이 더 많이 느껴진다. 아마 책과 삶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가 닮아서일 것이다. 최근 1인 출판과 독립책방 등이 늘면서 이를 낭만적으로 소개하는 매체들이 많은데 이 책은 다르다. 니시야마가 만난 출판인들은 적은 돈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며 산다고 자족하기보다, “다음 책을 내는 것만이 목표인” 상태에 불안해하고 “이대로 좋은지 매일 자문자답”하며, “지속가능한 출판 시스템”을 고심하고, “압도적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그친다.

 

한국보다 훨씬 독서인구가 많은데도 그들은 “책이 사양산업”이 된 현실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과연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독자층이 줄어들까봐 손해를 보면서도 책값을 올리지 않고,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뒤 “당연한 것을 의심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려” 띠지를 없애는 것 같은, 작지만 큰 결정들은 그런 고민의 결과다.

 

특히 나를 일깨운 것은, 책의 쓸모를 의심하며 ‘책이 없는 세상’을 꿈꾸던 사이다지북스 대표와 자기 한계를 인정하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사토야마샤의 이야기였다. 사이다지북스 대표의 말처럼 “책의 역할이 사람을 다른 시공으로 데려가는 것”이라면 이제야말로 내가 읽은 책의 힘으로 다른 세상, 다른 인생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아닌지, 그러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닌지, 새해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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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스미는 - 영미 작가들이 펼치는 산문의 향연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외 지음, 강경이.박지홍 엮음, 강경이 옮김 / 봄날의책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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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너무 많아서 결국 눈으로만 읽게 되는 책이 있다. 낱말 하나도 허투루 넘길 수 없는 구절들에 마음을 모으면 시간은 느려지고 근심은 잊힌다. 아주 가끔 만나는 기쁨, 글을 배워서 참 다행이구나 싶은 순간이다. 지난 세기 영미 작가들의 산문 32편을 모은 <천천히, 스미는>은 그런 드문 기쁨을 주는 책이다.

산목숨은 위태롭고 죽은 목숨은 모욕당하는 시대에 한가롭게 책 읽는 기쁨을 운운하느냐, 누군가는 힐난할지 모른다. 하지만 전후의 폐허, 냉전의 한가운데서 짝짓는 두꺼비에게 눈길 주었던 조지 오웰이라면 이 한가한 기쁨을 탓하지 않으리라.

 

자연을 즐기는 걸 감상적이라 비판하는 이들에게 그는 “모든 즐거움을 없애버린다면 우리는 대체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냐고 반문한다. “공장에는 원자폭탄이 쌓이고 거리에는 경찰들이 어슬렁대고 확성기에서는 거짓말이 쏟아져 나와도 지구는 여전히 태양 주위를” 돌고 “자연은 무허가로 존재”하고 있으니 “독재자도 관료도 이런 변화를 막지 못한다”면서. 그가 말했듯, “가장 누추한 거리에도 봄은 온다.” 제 잇속을 차리고 세상을 속이느라 누추해진 언어에도 아직 아름다움이 남아 있는 것처럼. 그 아름다움에 마음의 밑줄을 긋는다.

 

“삶이 늘 시적이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운율은 있다. 병에도 운율이 있다.”

“한 사람은 내게 다정한 우리 엄마, 한 사람은 내게 다정한 우리 아빠. 어쩌다 여기에 그들이 있다. 모두 이 지상에. 모두 이 지상에 있는 이 슬픔을.”(제임스 에이지)

원망과 분노로 들끓던 마음이 고즈넉해진다.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그리고 그들에게 커다란 슬픔을 안겨준 이들에게 이 문장을 전하고 싶다. 우리 모두 이 지상에서 이 지상에 있는 슬픔을 겪고 있음을 떠올릴 수 있도록. 누군가는 위로 받을 것이고 누군가는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비록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밀물과 썰물로 다가오는 생의 운율이 어느 날엔가는 필경 이 진실을 깨닫게 할 것이다.

 

 

밀물의 삶에 익숙해져서, 혹은 모처럼 찾아온 밀물의 삶을 놓치기 싫어 썰물의 허허로운 풍경을 등지고 있다면, 아무 일없이 무사한 생을 꿈꿨던 내 가슴에 도끼처럼 내리꽂힌 문장을 읽어주련다.

“기쁨은 우리에게 오는 길에 이미 우리를 떠난다. 우리의 삶도 차고 질 것이다. 우리가 현명하다면 삶의 리듬에 따라 깨고 쉴 것이다. 모든 것을 지배하는 법칙에 우리도 지배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앨리스 메이넬)

 

잘 꾸민 언어에 무뎌졌던 마음이 투명하고 정직한 언어에 흔들린다. 과연, 정직은 최상의 방책이다. 내 언어가 당신 마음에 전해지지 못했다면, 당신의 언어가 우리 마음을 흔들지 못했다면, 그것은 기교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삶의 진실을 읽지 못한 어둔 시선 때문이고 허튼 말로 마음을 얻으려 한 얄팍한 욕심 때문이다.

그 밑바닥에는 산처럼 생각하는 법을 모르는(알도 레오폴드) 인간의 어리석음이 있다. 늑대를 죽이는 것은 사슴마저 죽이는 것이며, 한 그루 나무를 베는 것은 나무만이 아니라 그 나무가 이고 있던 하늘까지 베어내는 것(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임을 모르는 무지가 있다. 영영 모르면 좋겠지만, 이 지상의 운율은 우리가 지은 죄를 우리에게 일깨운다. 그러니 너무 기뻐하지도 너무 슬퍼하지도 말라고, 사무치게 아름다운 문장이 우리에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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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에서는 학생이 그림이나 노래, 시 낭독 같은 것에 소질을 보이면 선생님이 진심으로 감동하며, 때론 수업중인데도 교실을 뛰쳐나가 교무실에 가서 모든 선생님을 불러오기도 했어요.

마찬가지로 주위 아이들도 함께 기뻐하는 거예요. 재능을 가진 사람과 같은 공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순수하게 기뻐하고 그 사실을 축복하는 거죠. 그렇기에 그 사람의 재능과 자신의 재능을 비교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요. 열등감이 전혀 없죠. 열네 살 때 일본에 돌아왔을 때 ‘열등감’이란 말이 여기저기서 쓰이는 걸 보고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그 학교에선) 어느 교과목이든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의 차이가 무척 컸어요.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못하는 아이도 못한다는 사실 자체를 개성으로 인정해준다는 점이에요. 시험도 구술시험이나 리포트라서 못하더라도 반드시 개성이 드러나게 마련이죠. 잘하는 경우에도 어떻게 잘하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어 모두 같지는 않아요. 일본 학교에서는 0X와 사지선다형 시험으로 평가를 하니까 로봇이 대답해도 똑같은 답안이 되고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의 구별이 명확해지죠. 당연히 열등감이 생길 수밖에 없죠. 게다가 학교도 부모도 같은 잣대로 보니까 열등감을 가진 아이는 도움을 받을 수가 없어요. 눈금이 다른 잣대가 없으니까요. 러시아 학교에서는 잘하든 못하든 그 자체가 개성으로, 지구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사실을 항상 느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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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 - 최고의 과학자 13인이 들려주는 나의 삶과 존재 그리고 우주
슈테판 클라인 지음, 전대호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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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과학 저널리스트 슈테판 클라인이 유명 과학자 13인을 인터뷰한 <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를 한 달 새 두 번 읽었다. 처음엔 제목 때문에, 두 번째는 내용 때문에.

 

전에도 그랬지만 얼마 전부터 부쩍 내 자신이 먼지처럼 느껴졌다. 나만이 아니라 세상 전부가 티끌처럼, 아니 티끌만도 못하게 여겨지며 도대체 사람이 뭔지, 왜 이렇게 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마침 <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라는 책을 만났다. 제목을 읽는 순간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우리 모두 별이 남긴 먼지라면 내가 먼지 같다고 느낀 것도 당연하구나 싶었다.

 

사람이 곤궁해지면 사소한 것에서도 위로를 얻는 법. 사소한 위로에 힘입어 책장을 넘겼다. 서문에 적힌 대로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300여 쪽의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래서 답을 알았느냐고 묻는다면 얼마쯤은 그렇다.

 

무엇보다 우리 인간은 우주학자 마틴 리스가 말했듯 “별이 남긴 원자쓰레기”이고, “별의 내부에서 수소와 헬륨이 핵융합 반응을  일으킨 결과”로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까 과학에 따르면 우리는, 나도 그대도 별에서 왔다는 것이다. 별에서 온 그대라니 사뭇 멋지지 않은가? 하지만 그 별이란 것이, 지구별도 마찬가지지만, 순전히 우연의 산물이란 걸 알면 마냥 멋진 것만도 아니다. 왜냐하면 별의 탄생에도 별이 낳은 우리의 탄생에도 아무 목적이나 의미가 없으니까.

 

현대 우주과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스티븐 와인버그의 말을 빌리면, “자연법칙 속에는 우주에서 우리의 자리를 특별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없다.” 다시 말해, 인간이란 다른 자연물에 비해 특별히 의미 있는 존재도 아니고, 신의 각별한 피조물도 아니다. 그저 별이 남긴 우연한 먼지일 뿐.

 

우연한 먼지라니, 쓸쓸하다. 더구나 우리 존재가 우연일 뿐 아무 의미가 없다면 굳이 애쓰며 살 필요가 있나 싶다. 한데 그 사실을 ‘과학적’으로 깨달은 와인버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산다. 왜 그럴까? 와인버그 왈, 객관적으로는 의미가 없어도 인간은 “세계를 이해하려 노력할 수 있고” 그 노력이 삶을 의미 있게 하기 때문이란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대신 이해하려 노력한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는 우주 전체를 설명하는 ‘궁극의 이론’을 찾기 위해 열심히 연구하면서도, 인간은 자연법칙이 왜 지금 이대로인지 영원히 이해할 수 없으며, 과학은 세계를 움직이는 한 축인 우연을 설명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다른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다. 마틴 리스는 물리학이 혁명적으로 발전했지만 우리가 우주물질에 대해 아는 것은 4%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신경과학자 한나 모니어는 과학이 뇌의 모든 세부를 이해해도 뇌 전체를 이해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이렇듯 세계를 전부 다 알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데, 그럼에도 앎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티끌 같은 지식이 모이면 태산도 오를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반세기 전, 혁명이 실패하고 날로 초라해지는 세상에서 시인은 탄식했다.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중에서). 정말이지 이 크고 단단한 세상에서 우리는 얼마나 작고 허약한 존재인지!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작고 하찮은 인간들의 탄식과 열망이 쌓여 적지 않은 성취를 이루었음을. 그리고 때론 먼지도 힘이 된다는 것을. 더구나 이 먼지는 보통 먼지가 아닌 별에서 온 먼지, 우리는 모두 별에서 온 존재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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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빌려드립니다 - 구글 베이비에서 원톨로지스트까지, 사생활을 사고파는 아웃소싱 자본주의
앨리 러셀 혹실드 지음, 류현 옮김 / 이매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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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트>를 보았다. 영화의 소재는 회사의 부당해고에 맞서 정규직 비정규직이 하나가 되어 싸웠던 2007년 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 보도를 통해 알고 있었는데도 막상 영화를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억울한 일을 겪고 그토록 힘든 싸움을 하는 동안 나는 뭘 했나 싶어 가슴이 먹먹하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꼭 그래서 운 건 아니었다. 나를 더 울컥하게 만든 건 고통을 나누며 서로를 보듬는 그들의 뜨거운 우정이었다. 그 우정이 부럽고, 한때 내 것이기도 했으나 이제는 잃어버린 연대의 삶이 그리워서 오래 울었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내가 자본에 의해 아웃소싱당한 노동자들을 부러워할 만큼 내 삶으로부터 아웃소싱되어 있다는 것을. 일 년 전에 나온 책을 그제야 펴들었다. 앨리 러셀 혹실드의 <나를 빌려드립니다>. ‘아웃소싱된 자신(The Outsourced Self)’이라는 원제 그대로, 지금 내 모습이 거기 있었다.

 

대표작 <감정노동>(1983)에서 항공기 여승무원들을 대상으로 감정이 상품화되는 현실을 폭로했던 혹실드는 이 책에서 불과 30년 만에 여성의 감정노동은 물론 남녀노소 모두의 희로애락을 상품으로 만든 자본주의의 가공할 현장을 생생하게 전한다. 그 현장은 미국에서 인도까지 전 세계를 아우르며, 출생부터 죽음까지 삶의 전 과정을 포괄한다.

 

거기서 사람들은 데이트를 주선하고 연애기술을 가르쳐주는 러브 코치의 도움으로 만나고, 웨딩 플래너를 고용해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 치료사의 상담을 받으며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멀리 인도의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낳고, 베이비 플래너와 파티 플래너, 필리핀 유모를 고용해 아이를 키우고, 고민이 있거나 외로울 때는 ‘임대 친구’를 부르고, 노인 돌보미와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노년을 지낸 뒤, 죽으면 상조회사의 장례서비스를 받는다. 그렇게 생로병사의 모든 과정을 시장에 의뢰하고, 사랑과 우정, 슬픔과 추억까지도 타인에게 외주를 주면서 살다가 죽는다.

 

자본의 전략으로 시작된 아웃소싱이 삶을 지배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내 삶이 갈수록 적막해지는 이유를 알았다. 돈으로 임대 친구를 사지만 않았을 뿐, 나 역시 혹실드가 만난 사람들처럼 가족이나 친구에게 고민을 토로하기보다는 자주 들르는 찻집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상담사를 찾아갈까 생각하고 있었다. “묻고 따지거나 요구하지 않고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했고, 버거우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관계가 편했다. 그 관계의 부질없음에 쓸쓸해하면서도 행여 돈이 없어서 그런 관계를 살 ‘자유’조차 잃게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이 지금의 나였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며 알았다. 너무 오랫동안 사람을 살 자유를 잃고 자신을 팔 자유만을 갖게 될까봐 두려워하면서 살아왔음을, 타인들에게 내 몸과 마음을 맡기면서도 그들 전부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 정작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는 잊어버렸음을 깨달았다.

그런 내게 혹실드는 말한다. 원톨로지스트(wantologist)를 찾아가 네가 뭘 원하는지 묻거나 아니면 잃어버린 연대를 회복하라고. 시장이냐 사람이냐, 결국 그것이 문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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