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비평 140호 - 2008.여름
창작과비평 편집부 엮음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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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시 한 편으로 충분하다. 시를 위해 생니를 뽑던 시인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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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후예 - 고창 김씨가와 한국 자본주의의 식민지 기원 1876~1945
카터 에커트 지음, 주익종 옮김 / 푸른역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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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돈 좀 있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부자를 왜 죄인 취급하냐? 돈 많은 게 무슨 죄냐?" 촛불로 곤욕을 치른 대통령도 그런 말씀을 하셨기에 그렇게 궁금해들 한다면 답을 줘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다행히 그걸 일러주는 좋은 책이 있었다. 카터 에커트의 [제국의 후예]다. 고대와 동아일보를 세운 김성수, 김연수의 경방 역사를 꼼꼼이 살펴 한국자본주의의 식민지 기원을 밝힌 책이다. 역사학계에선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던 책인데 얼마 전에 번역이 되었다. 이걸 보면 한국의 자본가가 왜 국민들에게 욕을 먹는지, 왜 그들은 툭하면 권력과 결탁하고 왜 그 아들들은 군대를 기피하며, 왜 파업이 일어나면 경찰이 나서는지 등등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왜 대한상의가 최근에 "우리 민족이 자주독립국가 수립능력을 가졌는지 의문"이라면서 교과서 개정을 주장했는지 잘 알 수 있다. 그게 다 뿌리가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양쪽에서 욕을 먹는다. 한국의 내재적 발전을 주장한 민족주의 사학계는, 일제 지배하에서 한국에 자본주의가 발전했다는 주장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럼 이영훈을 비롯한 재인식론자들은 환영하느냐? 그렇지 않을 것이 저자는 한국의 자본주의가 일제 군국주의와 결탁하여 발전함으로써 반민족성, 정경유착, 반민주성, 노동탄압을 처음부터 제 것으로 갖고 있다고 분석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 카터 씨의 주장이 매우 정치한 논리와 꼼꼼한 자료분석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즉, 이를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 현대사 교과서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양쪽의 입장이 지배적이다. 

일제 시대에 자본주의적 발전이 있었는가? 물론 있었다. 노동조합도 있었고 파업도 있었고 중화학 공장도 여럿 있었고 항만과 철도 같은 기간시설도 다 그때 기초가 놓였다. 성수대교는 무너져도 한강철교는 무너지지 않는다고, 그래서 한국놈들은 안 된다고 나이드신 분들이 하는 말을 듣기도 했으니까. (식민지 36년의 그림자는 생각보다 훨씬 짙고 길다!) 삼성, 현대, 두산, 경방, 한국은행... 다 식민지 때 탄생해서 발전했다. 

그래서 일제의 지배가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일본 덕분에 우리나라에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근대화의 싹이 텄으니 불행 중 다행 아니냐고? 아니, 불행 중 불행이다. 왜? 자본주의의 발전이 외세 -그것도 가장 군사적이고 독재적인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이루어짐으로써 한국의 자본은 태생부터 뒤틀린 모습을 갖게 되었으니까. 그런 자본 때문에 한국민은 부와 노동에 대해서 왜곡된 시선을 갖게 되고, 권력과 시민권에 대해 끔찍한 오해를 하게 되었으니까. 그런 시선과 오해 때문에 경제규모는 세계 10위권임에도 삶의 질은 7~80위권에 머물고 자살률은 세계 1,2위를 다투는 이상한 나라가 되었으니까. 아이들에게 "공부하다 죽은 사람 없다"고 외치며 새벽까지 학원에 가두면서도 다 너희를 위한 거라고 뻐기기까지 하는 어른들의 나라가 되었으니까.  
 
자, 이제 카터가 분석한 내용 중 한국 자본가의 성격을 보여주는 대목들을 직접 읽기로 하자.

"한국인 기업가 표본을 분석해보니 기업가를 낳은 건 주로 대지주였다. 빈민 대중 출신 기업가는 거의 없고, 공업 엘리트는 공업화 이전의 엘리트 집단에서 충원되었다."
"초기 존속기간에 정부의 정례적인 지원이 없었더라면 경방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경방의 초대사장은 일본 귀족 작위를 받은 박영효엿고 그의 존재는 "허가 및 운영의 어려움을 타개하는 데 크게 도움을 주었다." "경방과 식산은행의 관계는 인적 기업적 이해관계로 확장되었고, 이 관계를 통해 경방은 민간기업이면서도 금융구조를 통해 국가에 긴밀하고 복잡하게 연계된 준 공기업이 되었다."  -정경유착, 특혜금융의 원조
 
"전쟁은 경방에게 막대한 수익을 가져다 주었다. 1938-45년 사이 경방은 그 이전 19년간의 영업에서는 전례가 없던 호경기를 누렸다."

"...민수용 생산을 위한 면화의 공급원으로서 중국에 의존했기 때문에 1945년까지 경방은 중국 대륙에서 일본군국주의가 승리해야 큰 이익을 거둘 수 있었고, 전체 제국체제와의 연대는 강화되었다."

"제품 판매를 위해 경방은 만주와 중국에서 일제에 적극 협력하게 되었고, 일본 제국이 지속될수록 경방이 얻을 이익 역시 훨씬 더 커졌다." -초기의 어려움을 민족감정에 호소한 물산장려운동으로 극복한 경방은 이후 일제와 협력하여 사업을 키운다. 민족주의는 자본가의 이익을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 
 
"19세기 영국의 정치개혁 투쟁은 기본적으로 자본가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것이었지만 자본가가 대중투쟁에서 핵심역할을 함으로써 사회진보를 선도하는 집단이라는 명성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인 자본가는 부분적으론 식민지 정치경제구조의 속성 때문에, 다른 일부는 근시안적인 자기 이익 때문에 식민지기 동안 노동계급에게 물질적 양보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 결과 한국인 자본가와 노동자는 적나라한 대결 양상을 보였다. 파업은 빈번하고 격렬했으며 한국인 자본가는 현상 유지를 위해 일본 경찰의 지원과 개입에 크게 의존하였다.
식민지 조선의 자본가는 조선 사회에서 결코 이데올로기적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다. ..민주주의는 한국인 자본가의 발전요인이 아니었다. 유럽에서는 귀족과 공업기업가 간의 격렬한 계급투쟁 과정에서 공업가가 민주주의자로 변신했지만 조선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또 한 원인은 한국 자본주의가 19년~45년 사이 성장의 첫 파도를 탈 수 있었던 것은 본질적으로 민간 관료기구를 통해 작동한 군사독재체제의 후원 덕분이었다. .. 자본가의 정치활동이 있었다면 그건 관료기구와의 공적, 사적 교류에 불과한 것으로서 기성 독재정치구조에 편입된 중요한 구성요소였다.

식민지기 한국인 자본가의 발전은 민주주의와 아무 상관이 없었음에도 자본가계급은 민족주의에 입각해 자연스레 대중에 대한 지도력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한국인 기업이 식민지 정치경제구조에 의존한 것 같은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민족주의 원칙에 대한 한국인 자본가의 충성심은 사실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부자들이 욕을 먹는 이유는 물론 너무나 많다. 이 책은 그 많은 이유들의 근원을 파헤쳐 보여준다. 식민지기 한국의 자본가들이 독립을 원할 이유가 있었을까? 그 후예들이 출산원정을 하고 이중국적을 당연시하는 게 우연일까? 두려운 건, 이들의 파렴치함을 비난하고 잘못을 시정해야 할 국민들이 이제는 이들처럼 되지 못한 걸 부끄러워하며 너도나도 그들을 답습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잘못이다. 반민족적이라 잘못이 아니라 그런 행태가 그들을 먹여살린 사람들을 배신하고 착취하고 괴롭히는 것이기에, 타인의 삶을 짓밟고 목숨을 뺏은 대가로 얻은 이익이기에 잘못이다. 이제는 사람을 살리는 자본을 키울 때다.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뺏고 자신의 배를 불린 자본은 욕을 먹어도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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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

 

라일락 나무 밑에는 라일락 나무의 고요가 있다

바람이 나무 밑에서 그림자를 흔들어도 고요는 고요하다

비비추 밑에는 비비추의 고요가 쌓여 있고

때죽나무 밑에는 개미들이 줄을 지어

때죽나무의 고요를 밟으며 가고 있다

창 앞의 장미 한 송이는 위의 고요에서 아래의

고요로 지고 있다 
 

오규원(1941-2007) : 이 시는 유고시집 [두두]에 실려 있다. ‘두두’란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 모든 존재 하나하나가 도이고 사물 하나하나가 모두 진리다)’에서 나온 말. 시인은 자신의 시는 ‘두두시도 물물전진’의 세계이며, 의미를 비우고 존재로 말한다고 함. 죽기 며칠 전, 그가 문병 온 제자의 손바닥에 쓴 마지막 시는 이렇다.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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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책들의 도서관
알렉산더 페히만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08년 12월 02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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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주제. 주제에 값하는 자료조사와 서술이 읽는 재미를 준다
고대 도서관의 역사- 수메르에서 로마까지
라이오넬 카슨 지음, 김양진 외 옮김 / 르네상스 / 2003년 10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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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하게 책 페이지를 늘린 편집이 거슬리긴 하지만 내용은 실하다.
독서의 역사 1 (보급판 문고본)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5월
5,000원 → 4,500원(10%할인) / 마일리지 250원(5% 적립)
2008년 05월 28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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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자체의 발전부터 도서관과 책읽기의 역사, 책벌레들의 이야기까지 풍부하게 섭렵했다. 하나의 줄기로 쓰여진 책은 아니어서 독자가 나름대로 재정리해야 한다
페이퍼 로드- 종이를 통해 바라본 동서문명 교류사
진순신 지음, 조형균 옮김 / 예담 / 2002년 3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08년 08월 08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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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이언 매큐언 지음, 이민아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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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은 '어톤먼트'라는 영화 때문에 알게 되었다. 영화가 좀 실망스러웠지만 원작에 기대를 걸고 '속죄'를 읽기 시작했으나 중도포기. 기대없이 펼쳐든 이 소설은 오히려 빠르게 읽혔다.

헨리 퍼론이란 신경외과의의 토요일 하루를 묘사한 이 소설은 사실 천천히 읽으며 맛을 느끼면 좋을 것 같다. 성미 급한 나는 사흘만에 끝을 냈는데, 뭔가 놓친 것 같은 떨떠름함을 지울 수가 없다. 사건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 장편은 사건이나 스토리가 중요한 소설은 아니다. 이라크 전쟁을 앞둔 전쟁과 폭력의 시대, 그 시대를 바라보는 한 부르주아 지식인의 자기성찰이 주된 내용을 이룬다. 소설의 많은 부분이 이라크 전쟁에 대한 이중적 시선을 보여주며, 나이듦에 대한 불안, 존재의 허무를 소묘한다.

퍼론과는 정반대의 삶을 사는 박스터에 대한 퍼론의 시선은 근본적으로 휴머니즘의 자장 안에 있다. 먼 이라크에서의 폭력에 대한 공허한 투사에 반해, 지금 여기에서 겪는 박스터의 폭력에 대한 반응은 즉각적이고 생생하다. 그리고 퍼론이 박스터에게 느끼는 공감 혹은 연민은 이라크에 대한 절망을 상쇄할 유일한 가능성으로 제시된다. 물론 이언 매큐언은 그 가능성에 대해 호들갑을 떨지는 않는다. 매큐언은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는 행렬이 진실로 폭력에 반대하고 있는지 의심한다. 그러나 전쟁을 옹호할 수도 없다. 현실적으로 퍼론이 취하는 태도는 전쟁에 대한 관망이고 그것은 곧 전쟁 옹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 딜레마를 해결하는 것이 박스터에 대한 적극적 개입이다. 하지만 긴 성찰과 관조 속에서 퍼론이 다다르는 지점을 희망으로 읽기는 힘들다.

매큐언의 이 길고 관념적이나 지루하지 않은 잘 쓴 소설, 그것이 전하는 얘기는 낯익다. 돈과 명예와 사랑과 가족과 평화를 가진 나이든 남자가, 그 중 어느 것도 갖지 못한 젊은 남자에게 느끼는 질투와 두려움,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아버지로서 스스로를 세우고 베풀게 되는 이야기. 평화를 얻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 대신 평화를 주기로 결심한 사람의 이야기. 혼돈의 시대에 자기성찰을 통해 질서를 부여하는 이야기. 그래서 잘 쓴 소설은 분명하나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어쩌면 소설이 감동을 주던 시대는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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