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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이언 매큐언 지음, 이민아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언 매큐언은 '어톤먼트'라는 영화 때문에 알게 되었다. 영화가 좀 실망스러웠지만 원작에 기대를 걸고 '속죄'를 읽기 시작했으나 중도포기. 기대없이 펼쳐든 이 소설은 오히려 빠르게 읽혔다.
헨리 퍼론이란 신경외과의의 토요일 하루를 묘사한 이 소설은 사실 천천히 읽으며 맛을 느끼면 좋을 것 같다. 성미 급한 나는 사흘만에 끝을 냈는데, 뭔가 놓친 것 같은 떨떠름함을 지울 수가 없다. 사건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 장편은 사건이나 스토리가 중요한 소설은 아니다. 이라크 전쟁을 앞둔 전쟁과 폭력의 시대, 그 시대를 바라보는 한 부르주아 지식인의 자기성찰이 주된 내용을 이룬다. 소설의 많은 부분이 이라크 전쟁에 대한 이중적 시선을 보여주며, 나이듦에 대한 불안, 존재의 허무를 소묘한다.
퍼론과는 정반대의 삶을 사는 박스터에 대한 퍼론의 시선은 근본적으로 휴머니즘의 자장 안에 있다. 먼 이라크에서의 폭력에 대한 공허한 투사에 반해, 지금 여기에서 겪는 박스터의 폭력에 대한 반응은 즉각적이고 생생하다. 그리고 퍼론이 박스터에게 느끼는 공감 혹은 연민은 이라크에 대한 절망을 상쇄할 유일한 가능성으로 제시된다. 물론 이언 매큐언은 그 가능성에 대해 호들갑을 떨지는 않는다. 매큐언은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는 행렬이 진실로 폭력에 반대하고 있는지 의심한다. 그러나 전쟁을 옹호할 수도 없다. 현실적으로 퍼론이 취하는 태도는 전쟁에 대한 관망이고 그것은 곧 전쟁 옹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 딜레마를 해결하는 것이 박스터에 대한 적극적 개입이다. 하지만 긴 성찰과 관조 속에서 퍼론이 다다르는 지점을 희망으로 읽기는 힘들다.
매큐언의 이 길고 관념적이나 지루하지 않은 잘 쓴 소설, 그것이 전하는 얘기는 낯익다. 돈과 명예와 사랑과 가족과 평화를 가진 나이든 남자가, 그 중 어느 것도 갖지 못한 젊은 남자에게 느끼는 질투와 두려움,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아버지로서 스스로를 세우고 베풀게 되는 이야기. 평화를 얻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 대신 평화를 주기로 결심한 사람의 이야기. 혼돈의 시대에 자기성찰을 통해 질서를 부여하는 이야기. 그래서 잘 쓴 소설은 분명하나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어쩌면 소설이 감동을 주던 시대는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