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라일락 나무 밑에는 라일락 나무의 고요가 있다

바람이 나무 밑에서 그림자를 흔들어도 고요는 고요하다

비비추 밑에는 비비추의 고요가 쌓여 있고

때죽나무 밑에는 개미들이 줄을 지어

때죽나무의 고요를 밟으며 가고 있다

창 앞의 장미 한 송이는 위의 고요에서 아래의

고요로 지고 있다 
 

오규원(1941-2007) : 이 시는 유고시집 [두두]에 실려 있다. ‘두두’란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 모든 존재 하나하나가 도이고 사물 하나하나가 모두 진리다)’에서 나온 말. 시인은 자신의 시는 ‘두두시도 물물전진’의 세계이며, 의미를 비우고 존재로 말한다고 함. 죽기 며칠 전, 그가 문병 온 제자의 손바닥에 쓴 마지막 시는 이렇다.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