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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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꿈꾸며 사는 사람만이 자신을 옥죄고 있는 담벼락과 조우할 수 있을 뿐이다. 자유로운 것 같지만 갇혀 있다는 사실. 제한된 것만을 하도록 허락된 자유. 자유정신이 어떻게 이런 허구적인 자유를 긍정할 수 있겠는가?-21쪽

그러니까 온갖 억압과 고통을 극복하여 현재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영위해야만 한다. 자신의 삶을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지금 노예의 굴종과 비겁을 감내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노예로 살기를 결정한 셈이고, 지금 주인의 당당함과 자유를 쟁취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주인으로 살기를 결정한 셈이다. 마침내 우리는 자신을 가두어 길들이는 담벼락을 무너뜨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유롭고 싶은가? 그렇다면 니체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지금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24-25쪽

'내가 없다'는 주장은 부정적으로 '내가 공하다'고 표현된다. 이 주장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나는 수많은 인연들의 마주침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이런 나에게 나의 것이란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그것은 모두 인연이 있어서 내게 잠시 머무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도, 젊음도, 나의 아이도, 그리고 돈까지도 모두 그러하다. 그것들은 모두 인연이 되어서 나에게 왔고, 인연이 다해서 나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나 자신이나 내가 가진 것이 공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부질없는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가르주나의 핵심적인 전언이다.-61쪽

'오래된 뇌'가 행동을 담당하고 '중간 뇌'가 정서를 관장한다면, '새로운 뇌'는 합리적인 사유를 담당하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미래에 더 새로운 지층이 생기는 순간, 현재 새로운 지층은 낡은 지층으로 밑에 깔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지층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합리적 사유도 시간이 지나면 정서나 행동의 영역으로 이행한다. 이것이 바로 습관을 설명하는 현대 뇌과학의 방식이다. -78쪽

우리의 동일성identity을 규정하는 제일의 원리가 습관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미 습관이 된 것, 지금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 그리고 나중에 습관으로 획득하게 될 것, 이것이 바로 삶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살아가는 것이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새롭게 펼쳐진 삶의 환경과 우리 내면의 습관이 불일치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런 불일치에서 우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하나는 기존의 습관대로 환경을 바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에 맞게 자신의 습관을 새롭게 형성하는 것이다. -80쪽

생각은 오직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event과 조우할 때에만 발생하는 것이다. -83쪽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던'이 '모던' '뒤에post' 오는 시대라고 보는 통념을 거부한다. 포스트모던이 모던을 낡게 만들고 도래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바로 모던의 핵심, 즉 무한한 새로움을 지향하는 강박증적 운동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포스트모던'이란 말에서 중요한 것은 '모던modern'이 아니라 '포스트post'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마저 낡은 것으로 뒤로 보낼 수 있어야만 '새로움'은 진정으로 새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포스트모던은 진정한 의미의 모던이었던 셈이다. 모던이 모던으로 머물 때, 모던은 새로움의 의미를 잃고 낡아질 수밖에 없다. -231쪽

어떤 작품도 일단 포스트모던해야만 모던할 수 있다. 이렇게 이해된 포스트모더니즘은 곤경에 빠진 모더니즘이 아니라 발생 중에 있는 모더니즘이고, 이런 상태는 불변하는 것이다.
- <포스트모던의 조건>,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232쪽

산업자본과 소비 사회가 추구하는 새로움은 역설적인 성격을 갖는다. 새롭다고 평가되는 어떤 상품도 자신의 존재를 계속 고집할 수 없다. 그렇게 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움은 부단히 자신을 극복해야만 새로움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 새로움은 일종의 강박증으로 보아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제 우리는 리오타르가 왜 "어떤 작품도 일단 포스트모던해야만 모던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작품도 부단히 새로워야만 진정으로 새로울 수 있다'는 의미이다. 리오타르의 지적이 옳다면, 우리는 새로움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그렇지만 유한한 삶에 비추어보았을 때, 우리는 도대체 언제까지 새로움의 뒤를 쫓을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새로움을 강박적으로 추구하다가 지금 더 소중한 것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를 일이다. 가끔은 뒤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생각보다 오래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232쪽

베버에 따르면 프로테스탄티즘은 직업을 일종의 소명, 즉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의무로 간주한다. 이런 생각은 직업을 뜻하는 'vocation'이라는 단어의 의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단어에는 '직업'이라는 의미와 함께 '소명召命', 즉 '신의 부르심'이란 의미가 있다. 그래서 기독교도들에게 있어 직업은 천직天職, 하늘로부터 유래한 임무라는 발상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산업자본조의가 발전하면서 천직은 자본가와 노동자로 양분되었다. 그렇지만 두 계급 사이에는 갈등의 요소가 있을 수 없다. 자본가나 노동자는 모두 자신의 역할을 하나의 소명으로서, 다시 말해 '금욕적'으로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자본가와 노동자의 두 계급이 '소비' 부분을 억제하고 '생산' 부분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234쪽

결국 대중매체가 제공하는 이미지들에 길들여짐에 따라 스펙터클 사회의 거주민들은 점점 현실에 대한 방관자, 혹은 구경꾼으로 변하게 된다. 대중매체를 통해 표현된 설악산과 직접 등정해본 설악산의 차이, 혹은 드라마를 통해 이미지화된 연애와 실제로 겪게 되는 연애의 차이, 뉴스를 통해서 드러난 정치권의 이미지와 실제 우리 삶을 좌지우지하는 정치적 권력의 차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해 온몸으로 겪어야만 했던 현실 세계는 사라지고 시각적으로 특화된 이미지의 세계만 남게 된 것이다. 기 드보르가 스펙터클 사회에서는 "특권적인 인간 감각을 당연히 시각에서 찾는데, 다른 시대에 그 특권적 인간 감각은 촉각이었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250쪽

권력의 입장에서는 좋을 것이다. 현실에 치열하게 참여하는 실천가가 줄어들고 거리를 두고 냉소적으로 구경하는 방관자가 늘어나게 되니까 말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대중매체의 볼거리들이 기본적으로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서 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볼거리가 선정적이고 자극적일수록, 우리는 대중매체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 자본은 이를 이용해 우리의 내면에 신상품의 유행과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결국 우리는 여가시간마저 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셈이다.-250쪽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시간은 두 종류로 분할된다. 하나는 자본에 고용되어 생산 활동에 종사하는 노동 시간이다. 다른 하나는 직장을 떠나서 보내는, 기 드보르가 '비활동'이라고 부르는 여가 시간이다. 여가 시간은 노동을 하지 않는 시간이어서 자유로운 시간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대중매체는 우리의 자유를 가만두지 않는다. 대중매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노동해서 만든 상품에 대한 소비 욕망을 증폭시키고 있다. 결국 여가 시간의 활동마저도 자본주의는 자유롭게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다. "활동의 외부에는 어떤 자유도 있을 수 없으며, 스펙터클의 맥락에서는 모든 활동이 부정된다"는 말의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다.-252쪽

하위징아는 소중한 교훈을 준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수단이면서 목적일 때 우리는 기쁨으로 충만한 현재를 살 수 있는 반면 자신의 행동이 무엇인가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면 고단함으로 충만한 현재를 견디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현재'가 두 가지 의미로, 혹은 두 가지 가치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다. 하나는 놀이에서 분명해지는 것처럼 그 자체로 향유되고 긍정되는 현재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의 경우처럼 미래를 위해 소비되어야 하고 견뎌야 하는 현재이다. -303-3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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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 삼인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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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을 이해하는 것의 중요한 측면은 30초 안에 가치 있는 교훈 하나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최소한 우리 모두가 '코끼리를 생각하지마'라는 - 경쟁자의 프레임을 공격하는 것은 그들의 메시지를 더욱 강화해 줄 뿐이라는 - 교훈을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한발짝 전진할 수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자신의 가치관, 소망, 사명을 담은 프레임을 구성하되, 상대방의 프레임을 공격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순간, 그들의 생각이 바로 공론의 중심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14-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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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 혁명 - 제4섹터, 사회적 기업가의 아름다운 반란
유병선 지음 / 부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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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단히 움직여라. 두려움이 밀려들고 실패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생각될 때조차도 멈추지 마라. 어떠한 역경이 닥치더라도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66쪽

호로위츠의 프리랜서 노조는 기존의 노동조합과는 그 활동이 판이하게 다르다.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기본 틀만 같을 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특성상 단체 행동권과 단체 교섭권을 주장하진 않는다. 그럼다면 일부 정통파 노동 운동가들이 얘기하듯, 프리랜서 노조는 사이비 노동조합일까?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리처드 세네트(Richard Sennett)는 <새로운 자본주의 문화(The Culture of the New Capitalism> (2006)에서 프리랜서 노조를 새로운 자본주의에서 진화한 '병렬 조직'으로 규정하고, 기존의 노동조합이 끌어안지 못하는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적인 형태의 노동자 조직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병렬 조직은 근속 연수가 짧아지고 고용이 불안정해지면서 노동자들에게 잃어버린 연속성과 지속성을 제공하는 새로운 조직들이다. 이러한 조직들은 노동조합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조직원들이 연금과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기존의 노동조합 일을 대행해 주거나 탁아소와 토론회, 사교 모임 등을 조직해 일터에서 사라져 가는 공동체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93-94쪽

또한 병렬 조직들은 새로운 형태의 고용자로서 기존의 경직된 노동조합에 맞선다. 예컨대 기존의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임금이나 물질적 개선을 위해 역량을 집중했다면, 보스턴의 비서직 노동조합과 같은 병렬 조직은 미혼모나 여성들의 공동체적 필요에 중점을 둔다. 또 다른 예로 전통적인 노동조합이 예전의 사회 자본주의적 관행을 좇아 조합원들의 고용 안정성 유지에 힘을 쏟았다면, 대안적인 병렬 조직은 은퇴하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에 직업을 잃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하는 등 노동자들의 직업적 이력이 단절되지 않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둔다.-94쪽

존슨은 사회적 혁신에서 고령자의 이점을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젊은이들보다 세상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으며, 바로 그 점에서 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젊은 시절이었다면 흥분하거나 좌절했을 법한 일에 지금은 보다 침착하게 대응한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제대로 움직이는지에만 집중하는 것이다."-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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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 한두 줄만 쓰다 지친 당신을 위한 필살기 이만교의 글쓰기 공작소
이만교 지음 / 그린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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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간이 언어로서 존재하는 한, 한 문장 한 문장 열심히 갈고닦으면 반드시 그만큼의 자기 변신 역시도 자신의 문장 변화와 더불어 그 순간 그 순간 일어나고 있는 것 또한 분명하다. 글쓰기로써 남이 나를 알아줄 만큼 변하기까지는 무척 오랜 분투와 시간이 필요한 것이 틀림없지만, 자기가 노력한 만큼 자신이 변하는 것은 매 순간순간에 그 즉시로 가능하다는 것 또한 자명하다. -7-8쪽

우리가 다른 것에 대해서는 무지할지라도 자신에 대해서는, 그것도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뻔할 정도로 명백히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알고 보면 인간은,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또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자신이나 주변 사람에게 정말로 도움 되는 일인지를 알지 못하는 존재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기 소원이 자기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니, 이 얼마나 놀랍고 끔찍한 노릇인가.-19쪽

나는 종종 나를 소설가라고 소개하면,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행복하겠다고 부러워하는 회사원이나 주부들을 자주 만난다. 그때마다 나는 심히 의심스럽다. '당신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고 있단 말인가? 어떻게 원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지? 당신이 무의식 중에 정말로 원하는 것은, 회사원이나 주부로서 안정된 삶을 살면서 소설가나 화가를 보면,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행복하겠어요!"라고 말하는 바로 그 삶이 아닐까?'-19쪽

타르코프스키가 <잠입자>의 '금지구역' 및 '비밀의 방'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을 결국, 세계원리와 인간본성 모두가 심연이자 미로라는 사실이다. 고슴도치 자신은 동생의 완치를 소원했지만 그의 보다 강렬한 소원은 자신이 벼락부자가 되는 것이었듯이, 우리 인간이란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존재다.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는 이렇듯 언제나 크고 작고 견고한 간극이 놓여 있다. <잠입자>의 '고슴도치 일화'는 우리에게 '내가 의식적으로 꾸는 꿈과 무의식적으로 욕망하는 실질적 내용이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20쪽

이렇게 의식적 꿈과 무의식적 욕망이 불일치한다면, 이것은 마치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와 같다. 쉽게 그 목표가 성취될 리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수시로 자기 자신이 의식적으로 표방하는 꿈과 무의식적으로 욕망하는 실질적 내용이 같은지 다른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스스로 속고 속이는 기만을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여기며 살게 된다.-21쪽

물론 현실적인 여러 가지 이유와 사정이 발목을 잡는다. 최소한의 사회활동, 집안 형편과 경제적 현실, 체력적 한계 등과 같은 어쩔 수 없는 사정들로 인해 더 이상은 어쩔 수가 없다고 포기하고 싶어지곤 한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 사람은 '현실의 어쩔 수 없는 여러 사정이 발목을 잡으면 포기할', 그야말로 더는 '어쩔 수 없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정말로 무엇인가를 꿈꾸는 사람은 말 그대로 꿈이라도 꾸지 않을 수 없다. 현실적 형편이 하락하지 않을 경우, 하다못해 꿈속에서라도 그 무엇인가를 하는 꿈을 꾸게 된다. 꿈은 말 그대로 꿈이어서 현실 조건에 얽매여 멈추지 않는 법이다. 멈추는 법을 모른다. 오늘 그려 보는 내일의 자기 모습은 그 모습 그대로 자신이 바라는 미래상이겠지만, 그러나 오늘의 내 모습은 어제의 내가 실제로 바란 그 모습이다. -41-42쪽

꿈꾸는 사람은 반드시 변하기 마련이다. 만약 우리가 정말로 무엇인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미미하게라도 자신이 꿈꾸는 방향으로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의식뿐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 전체로 꿈꾸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 삶에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자신의 내면세계 전체로 변화를 꿈꾸는데 어떻게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변화는 당연히, 반드시,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것도 현실에서 가능한 가장 빠른 속도로 일어나게 되어 있다.-43쪽

의식뿐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 전체로 꿈꾸는 사람이 되자. 의식과 무의식 전체로 꿈꾸는 '전념'을 실천하자. 전념을 실천해서 이루어지지 않을 꿈이란 없다. 하다못해 식당 서빙을 하거나 김밥집을 시작해도 10년 내로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모든 천재들이란 자기 일에 '전념'한 사람들일 뿐이다. 천재란, 자기 일이 좋아서 하루 열 시간씩 십 년쯤 일한 사람에 다름 아니다.-43쪽

마찬가지로 '씨앗 도서' 혹은 '씨앗 문장'을 만나게 되면 그 씨앗을 내 몸과 마음에 잘 심어 두는 일이, 독서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읽은 권수가 문제가 아니라 씨앗을 내 몸과 마음에 심었느냐 그러지 못했느냐가 독서의 가장 중요한 바로미터다. 그런데 대개의 아마추어 독서가들은 이 과정을 생략해 버린다. 그 바람에 씨앗을 발견하고도 장차 열매는 맺지 못한다.-96쪽

첫째, 일상 수다 수준의 문장을 구사하면 애매하거나 과장되게 느껴지고 독자들은 화자에 대한 신뢰감을 잃는다.
둘째, 일상에서 아무렇게나 즐겨 사용하는 간투사, 관용구, 관습어, 상투적 문장을 그대로 사용하면 의미의 명료성과 진실성이 떨어지면서 효율적 의미 전달도 불가능해지며 독자들은 긴장감을 잃는다.
셋째, 아무렇게나 대충 넘어가 버리면 그만큼 의미가 불충분해지고 독자들 역시 초점 흐린 렌즈로 찍은 사진을 보듯이 읽게 된다.
넷째, 화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문장은 그만큼 거칠어지거나 꼬이거나 불필요하게 복잡한 구조를 갖게 된다.
다섯째, 보다 정확하고 세밀한 언어 문장을 구사하려고 노력하면, 언어 문장은 이러한 노력에 대한 답례로서 보다 명확하고 풍요로운 형상이 가능하도록 도와준다.
여섯째,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옮겨 놓기보다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에 맞게 경험과 기억을 재편집하고 허구화해야만 리얼리티가 더 강렬해진다.-168-169쪽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감상적 도식적 윤리적 일상적 상투적 통념적 언어질서에 복종하는 글쓰기는 약자의 글쓰기다. 반면 스스로의 감각과 사유와 상상을 생성해 내고 즐기며 기성문법을 넘어서는 새롭고 낯선 소수언어를 만드는 자가 바로소 작가고 예술가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란 언제나 소수언어로서의 창작언어를 탄생시키는 일이다. 창작언어를 탄생시키는 일이란, 기성질서와 언어에 저항하고, 기성질서와 언어를 전복하고, 무엇보다 기성질서와 언어보다 더 강해지고 넉넉해진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창작언어는 자연스레 글쓴이의 개성이 묻어나는 언어이고 저항의 언어이고 전복의 언어이고 강자의 언어이고 난장(亂場)의 언어다.-238쪽

문제는 천천히 운전하는 것과 여유있게 운전하는 것, 신속하게 운전하는 것과 조급하게 운전하는 것, 열심히 읽는 것과 초조하게 읽는 것, 깐깐하게 공부하는 것과 소심하게 공부하는 것, 치열하게 쓰는 것과 욕심을 부려 쓰는 것,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과 고지식하게 고민하는 것, 자부심을 갖고 행동하는 것과 자만심을 갖고 행동하는 것, 게으르게 시간을 지체하는 것과 여유롭게 때를 기다리는 것... 등을 나누어 분별하기가 좀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생사가 갈린다고 했다. 숨 한 번 돌리자 사랑이 욕정으로 바뀌는가 하면 욕심이 노력으로 바뀌기도 한다. 숨 한 번 돌리는 사이에 무욕이 게으름으로 변하는가 하면 순정이 맹목으로 변하기도 한다. 딴엔 의식적으로 치열하게 열심히 읽고 썼지만, 그것이 다만 조급한 욕심에 불과한 것일 수가 있어서, 마치 <잠칩자>의 '고슴도치'처럼, 스스로 속는 경우가 얼마든지 가능하다.-365쪽

글쓰기 공부는 언제나 몸 전체로 걸어가야 하는 환유동물의 걸음만큼이나 느리고 더딘 과정으로 진행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여전히 읽고 쓰고 생각하며 걸음을 내딛어야 하는 이유는, 언제나 우리 자신의 가장 내밀하고도 절박한, (제도의 문제 이전에) 자기 내면의 자유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때문이다. 또한 다시금 읽고 쓰고 공부하는 글쓰기를 통해 우리 스스로가 곧바로 얻을 수 있는 혜택 역시도 바로 이러한 지점일 것이다. 돈, 경제력, 학벌, 외모, 직급, 아파트 평수나 자동차 배기량 등과 같은 특정 가치에만 고착되는, 고착되어 쉼없이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혹은 고착되어 있지 않은 척하느라 자기 기만에 시달리고 있는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다시금 새소리를 새소리로 즐기고 구름을 구름으로 바라보는 한편으로 자기 안의 실질적인 욕망을 발견하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읽고 쓰고 생각하는 공부는 긴요하다.-377쪽

무엇보다 한순간 한순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 해서 그 다음 순간이 되면 축적적으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어서 노력한 과정이 노력한 결과로 반드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단일한 연속선이 아니라 단속적 순간순간으로 세상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아니 그렇다면 더욱더 우리는 우리 노력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노력하는 사람', 혹은 '시인과 같은 감성', 혹은 '자기 에너지를 치열하게 만끽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면, 그 자체로 우리는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러한 상태에 놓인 사람으로 영원토록 존재하는 것이다.-3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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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 일중독 미국 변호사의 유럽 복지사회 체험기
토머스 게이건 지음, 한상연 옮김 / 부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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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내가 숨이 턱 막힌 이유였다. 평등하고 풍요로운 나라여서 보고 맛보고 만질 게 너무 많았다. 여기저기 마음껏 돌아다녀도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 또 질서 정연했다. 가난한 사람들로 인한 무질서가 눈곱만큼도 없는, 그런 완벽한 질서를 엿볼 수 있었다. 뭐 하나 흠잡을 구석이 없었다. 무심코 마시는 커피 한 잔, 아침에 먹는 시리얼 한 사발조차 완벽했다. 심지어 제자리를 벗어난 것도 그 나름의 방식으로 완벽하게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26쪽

내가 취리히에 머물던 당시 인상 깊었던 것은 풍요로움이 아니라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었다. 두세 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어딘가 교양 있어 보이는 얼굴 표정 말이다. 그걸 몰랐더라면 좋았을걸. 반면에 여기 미국에서는 연예인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는 아이들의 얼굴만 보게 된다.-29쪽

한편 유럽에는 눈에 보이지 않아 계산하기 힘든 GDP도 있다. 예컨대 미국 모델에서 미국인은 2300시간(중앙값 기준)을 일해야 하지만 유럽 모델에서 유럽인은 1600시간(중앙값 기준)만 일하면 된다. 유럽인은 연간 700시간 이상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가 있다. 다른 언어를 하나 더 익히거나 스리랑카를 여행할 수도 있고 독서를 할 수도 있다. 지금의 GDP로는 측정할 수 없는 여가의 가치를 마음껏 누리며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 몇몇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1인당 GDP에 대한 회의론이 일면서 삶의 질을 비교하는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중이다.-35쪽

몇 년 전 <헨리 애덤스의 교육(The Education of Henry Adams)>을 읽고는 충격을 받았다. 헨리 애덤스(Henry Adams)는 자기의 부족한 교육 수준을 한탄하며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수학, 이 네 가지를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꼽았다. 최근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내 로펌 파트너 레온 데스프레스(Leon Despres) 선생은 1차 세계대전 전에 파리에서 자랐는데 한번은 내가 헨리 애덤스 이야기를 했더니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듯 "아, 난 그 네 가지를 모두 할 줄 알아."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나 그 말고는 이 네 가지를 모두 할 줄 아는 미국인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44쪽

불행히도 미국의 경우 노동시간이 늘어날수록 GDP도 가파르게 상승하는 경향을 보인다. 왜냐고? 요리할 시간을 낼 수 없으니까 외식을 해야 하고, 화장실 청소할 짬을 낼 수 없어서 청소 도우미를 불러야 한다. 고장나면 수리할 여유가 없는 탓에 얼마 쓰지 않은 물건도 그냥 버려야 한다.
유럽인의 눈에는 주말 밤에 미국인 가족이 맥도널드에서 외식하는 광경이 그야말로 충격으로 비친다. 호경기 시절 식구 네 명 중 세 명이 1년에 2300시간 일하는 집은 운이 좋다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쇼핑, 요리, 청소조차 제대로 하기 힘들다. 맥도널드에서 햄버거 한 조각 사 먹을 여유도 없다. 이제 사람들은 주유소에서 주유하는 동안에 끼니를 때운다. 콜라를 더 많이 마실수록 1인당 GDP는 콜라의 거품처럼 부풀어 오른다. 돈 쓸 시간은 줄어들었는데도 나가는 돈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91쪽

이런 것은 '소비' 욕구라기보다는 '생산' 욕구에 가깝다. 집에서 일하기 위해, 즉 늦은 밤이나 주말에도 쉴 새 없이 일하려고 컴퓨터를 산다. 오래 일하려면 체력이 따라야 하므로 집에 운동기구를 들여놓는다. 일하는 동안 어린 자식을 돌봐 줄 보모를 부른다. 이런 것은 모두 더 오랜 시간 일하려는 '욕구'의 충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91-92쪽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렇다. 물질적 욕구가 충족되면 자유롭게 활용 가능한 시간의 가치는 더 커지기 마련이다. 반면에 물질적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자유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바버라는 빚더미 위에 올라 있다. 따라서 여가를 즐기는 금쪽같은 일분일초는 모두 기회비용을 발생시킨다. 그 시간에 빚을 갚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사벨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사회민주주의에서는 연금, 의료보험, 교육 등 모든 기본적인 물질적 욕구가 충족된다. 당연히 일정 수준 이상의 연장 노동은 삶의 질을 낮추는 것으로 간주된다. 결국 바버라의 1인당 GDP가 높은 것이 도리어 바버라의 삶의 질이 이사벨에 견주면 얼마나 낮은가를 보여 주는 척도가 될 수도 있다.-94쪽

사회민주주의와 환경주의는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미국의 환경 운동가들은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독일은 높은 조세 부담률을 자랑하는 사회민주주의 국가이기에 미국식의 무분별한 소비지출을 억제하는 가운데 환경 문제의 해결에 중점을 두고 예산을 효과적으로 편성할 수 있다. 사회민주주의가 정착하지 않았다면 소비지출의 한계를 정하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 독일은 세금을 많이 거둬들이는 사회민주주의 국가인 덕에 환경 친화적인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다.-179쪽

교육에 돈을 더 많이 쏟아붓는 것은 낭비일 뿐이다. 기초 연금에 돈을 더 쏟아붓는 것 역시 낭비이다. 미국은 충분히 썼다. 사실 미국은 필요한 생산요소를 모두 갖고 있다. 넓은 땅, 많은 노동력, 많은 자본, 높은 수준의 교육. 하지만 노동시장이 유연하기 때문에 인적 자본이나 지식을 개발할 수 없는 것이다. 글로벌 경쟁의 장에서 미국은 독일보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우위에 있다. 그러나 독일이 미국보다 앞서는 결정적인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게 바로 사회민주주의이다.-217쪽

"복지제도를 제대로 관리해 나가려면 노동조합이 반드시 필요합니다."라는 기민당 지지자 K의 말이 케네디 스쿨 졸업생 같은 민주당 정치인 입에서 튀어나올 날이 과연 올까? 사민당원뿐 아니라 기민당원조차 '평평한 세계'에서는 특히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게 사회의 시스템이 엉망이 되는 것을 막는 가장 쉬운 길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아무리 힘이 약하다 해도 생산성 증가분을 여가 확대와 스트레스 감소의 관점에서 노동자에게 분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노동조합이라고 해서 반드시 소득분배의 관점만을 고집하라는 법은 없다. 노동조합이 없다면 중산층의 생활수준을 끌어놀릴 전략을 수립할 길이 묘연해지고 만다. 사민당은 바로 이 점을 중시하지만 미국의 민주당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나는 불평등을 없애자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부자가 중산층보다 더 오래 일하는 데다 생산성까지 더 높다면 소득이 더 많은 게 당연하다. 다만 그 과정을 제대로 관리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371쪽

미국이 유럽식 모델을 채택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미국인은 생활 수준의 향상을 이야기할 때에도 돈을 앞세운다. 그래서 돈을 적게 벌어도 스트레스가 줄어들면 생활수준이 향상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모른다.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면 일상생활에 쌓이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다. -371-3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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