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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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꿈꾸며 사는 사람만이 자신을 옥죄고 있는 담벼락과 조우할 수 있을 뿐이다. 자유로운 것 같지만 갇혀 있다는 사실. 제한된 것만을 하도록 허락된 자유. 자유정신이 어떻게 이런 허구적인 자유를 긍정할 수 있겠는가?-21쪽

그러니까 온갖 억압과 고통을 극복하여 현재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영위해야만 한다. 자신의 삶을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지금 노예의 굴종과 비겁을 감내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노예로 살기를 결정한 셈이고, 지금 주인의 당당함과 자유를 쟁취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주인으로 살기를 결정한 셈이다. 마침내 우리는 자신을 가두어 길들이는 담벼락을 무너뜨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유롭고 싶은가? 그렇다면 니체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지금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24-25쪽

'내가 없다'는 주장은 부정적으로 '내가 공하다'고 표현된다. 이 주장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나는 수많은 인연들의 마주침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이런 나에게 나의 것이란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그것은 모두 인연이 있어서 내게 잠시 머무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도, 젊음도, 나의 아이도, 그리고 돈까지도 모두 그러하다. 그것들은 모두 인연이 되어서 나에게 왔고, 인연이 다해서 나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나 자신이나 내가 가진 것이 공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부질없는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가르주나의 핵심적인 전언이다.-61쪽

'오래된 뇌'가 행동을 담당하고 '중간 뇌'가 정서를 관장한다면, '새로운 뇌'는 합리적인 사유를 담당하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미래에 더 새로운 지층이 생기는 순간, 현재 새로운 지층은 낡은 지층으로 밑에 깔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지층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합리적 사유도 시간이 지나면 정서나 행동의 영역으로 이행한다. 이것이 바로 습관을 설명하는 현대 뇌과학의 방식이다. -78쪽

우리의 동일성identity을 규정하는 제일의 원리가 습관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미 습관이 된 것, 지금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 그리고 나중에 습관으로 획득하게 될 것, 이것이 바로 삶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살아가는 것이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새롭게 펼쳐진 삶의 환경과 우리 내면의 습관이 불일치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런 불일치에서 우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하나는 기존의 습관대로 환경을 바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에 맞게 자신의 습관을 새롭게 형성하는 것이다. -80쪽

생각은 오직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event과 조우할 때에만 발생하는 것이다. -83쪽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던'이 '모던' '뒤에post' 오는 시대라고 보는 통념을 거부한다. 포스트모던이 모던을 낡게 만들고 도래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바로 모던의 핵심, 즉 무한한 새로움을 지향하는 강박증적 운동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포스트모던'이란 말에서 중요한 것은 '모던modern'이 아니라 '포스트post'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마저 낡은 것으로 뒤로 보낼 수 있어야만 '새로움'은 진정으로 새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포스트모던은 진정한 의미의 모던이었던 셈이다. 모던이 모던으로 머물 때, 모던은 새로움의 의미를 잃고 낡아질 수밖에 없다. -231쪽

어떤 작품도 일단 포스트모던해야만 모던할 수 있다. 이렇게 이해된 포스트모더니즘은 곤경에 빠진 모더니즘이 아니라 발생 중에 있는 모더니즘이고, 이런 상태는 불변하는 것이다.
- <포스트모던의 조건>,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232쪽

산업자본과 소비 사회가 추구하는 새로움은 역설적인 성격을 갖는다. 새롭다고 평가되는 어떤 상품도 자신의 존재를 계속 고집할 수 없다. 그렇게 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움은 부단히 자신을 극복해야만 새로움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 새로움은 일종의 강박증으로 보아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제 우리는 리오타르가 왜 "어떤 작품도 일단 포스트모던해야만 모던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작품도 부단히 새로워야만 진정으로 새로울 수 있다'는 의미이다. 리오타르의 지적이 옳다면, 우리는 새로움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그렇지만 유한한 삶에 비추어보았을 때, 우리는 도대체 언제까지 새로움의 뒤를 쫓을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새로움을 강박적으로 추구하다가 지금 더 소중한 것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를 일이다. 가끔은 뒤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생각보다 오래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232쪽

베버에 따르면 프로테스탄티즘은 직업을 일종의 소명, 즉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의무로 간주한다. 이런 생각은 직업을 뜻하는 'vocation'이라는 단어의 의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단어에는 '직업'이라는 의미와 함께 '소명召命', 즉 '신의 부르심'이란 의미가 있다. 그래서 기독교도들에게 있어 직업은 천직天職, 하늘로부터 유래한 임무라는 발상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산업자본조의가 발전하면서 천직은 자본가와 노동자로 양분되었다. 그렇지만 두 계급 사이에는 갈등의 요소가 있을 수 없다. 자본가나 노동자는 모두 자신의 역할을 하나의 소명으로서, 다시 말해 '금욕적'으로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자본가와 노동자의 두 계급이 '소비' 부분을 억제하고 '생산' 부분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234쪽

결국 대중매체가 제공하는 이미지들에 길들여짐에 따라 스펙터클 사회의 거주민들은 점점 현실에 대한 방관자, 혹은 구경꾼으로 변하게 된다. 대중매체를 통해 표현된 설악산과 직접 등정해본 설악산의 차이, 혹은 드라마를 통해 이미지화된 연애와 실제로 겪게 되는 연애의 차이, 뉴스를 통해서 드러난 정치권의 이미지와 실제 우리 삶을 좌지우지하는 정치적 권력의 차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해 온몸으로 겪어야만 했던 현실 세계는 사라지고 시각적으로 특화된 이미지의 세계만 남게 된 것이다. 기 드보르가 스펙터클 사회에서는 "특권적인 인간 감각을 당연히 시각에서 찾는데, 다른 시대에 그 특권적 인간 감각은 촉각이었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250쪽

권력의 입장에서는 좋을 것이다. 현실에 치열하게 참여하는 실천가가 줄어들고 거리를 두고 냉소적으로 구경하는 방관자가 늘어나게 되니까 말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대중매체의 볼거리들이 기본적으로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서 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볼거리가 선정적이고 자극적일수록, 우리는 대중매체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 자본은 이를 이용해 우리의 내면에 신상품의 유행과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결국 우리는 여가시간마저 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셈이다.-250쪽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시간은 두 종류로 분할된다. 하나는 자본에 고용되어 생산 활동에 종사하는 노동 시간이다. 다른 하나는 직장을 떠나서 보내는, 기 드보르가 '비활동'이라고 부르는 여가 시간이다. 여가 시간은 노동을 하지 않는 시간이어서 자유로운 시간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대중매체는 우리의 자유를 가만두지 않는다. 대중매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노동해서 만든 상품에 대한 소비 욕망을 증폭시키고 있다. 결국 여가 시간의 활동마저도 자본주의는 자유롭게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다. "활동의 외부에는 어떤 자유도 있을 수 없으며, 스펙터클의 맥락에서는 모든 활동이 부정된다"는 말의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다.-252쪽

하위징아는 소중한 교훈을 준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수단이면서 목적일 때 우리는 기쁨으로 충만한 현재를 살 수 있는 반면 자신의 행동이 무엇인가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면 고단함으로 충만한 현재를 견디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현재'가 두 가지 의미로, 혹은 두 가지 가치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다. 하나는 놀이에서 분명해지는 것처럼 그 자체로 향유되고 긍정되는 현재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의 경우처럼 미래를 위해 소비되어야 하고 견뎌야 하는 현재이다. -303-3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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