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 천 가지 표정의 도시 살림지식총서 330
유영하 지음 / 살림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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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해방은 여성해방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여성해방은 주방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홍콩은 여성해방의 공간이다. - 8쪽

한 국가나 지역을 안다고 할 때, 그것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는 그곳의 음식을 마음대로 시킬 줄 아느냐 하는 것이다. 현지 음식을 모르고 현지에서 적응할 수 없는 법이다. 특히 중화권에서 살면서 중국음식을 모른다거나 싫다고 하는 것은 중화권에서 그저 목숨만 연명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소극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말이다. 중국음식은 중국문화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 10쪽

외국에서 유학하고 있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면, 체류국의 언어 실력이 현지 적응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현지어를 잘 할 경우 자신감을 가지고 현지 사회에 적응할 수 있다. 그 반대의 경우 현지인 접촉을 가능한 기피하게 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외국어 실력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고 있을 경우 현지인과의 접촉이나 현저어로 된 정보의 취득이 그만큼 더 쉽게 이루어진다. 이렇게 보면 언어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된다.
따라서 외국에서 외국어 실력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일 수밖에 없고 때로는 삶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홍콩인들의 경우, 그들은 이미 세 개의 언어로 외국을 이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홍콩인들은 세 가지 언어를 구사 할 수 있다. 광둥어와 영어, 그 다음은 보통화이다. 이 말은 해외에서 그들은 그만큼 적응이 빠르고, 아울러 외국인과의 교류에 만반의 준비가 됐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들이 획득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질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 16, 17쪽

홍콩에 대한 주권 회복을 위한 담판을 전개하면서 중국정부가 내세운 최고의 카드는 1국가 2체제라는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정치제도였다. 이른바 1국가 2체제 방침은 타이완과의 통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중국 측의 구상으로, 홍콩과 마카오의 주권 회수를 위한 방안으로 우선 적용되었다. 즉, 중국 본토에는 사회주의를, 타이완․마카오․홍콩은 자본주의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다.
영국에 의해서 150년간 자본주의가 시행되어온 홍콩에 사회주의를 시행한다는 것은 실현가능성이 매우 낮을뿐더러 사회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현실을 우선 고려한 해결 방법이라고 보아야 한다. 바로 중국사회주의라는 주체 안의 홍콩에서 자본주의 제도와 그 생활방식을 실행한다는 것이었고, 그것을 앞으로 50년 동안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 44쪽

주지하다시피 사회주의 발전 모델은 마르크스의 역사발전 5단계 이론에 근거한다. 즉, ‘원시 공산사회-노예제 사회-봉건제 사회-자본주의 사회-사회주의 사회’의 발전 모델이 그것이다. 마르크스의 견해에 따르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출범으로 중국은 사회주의시기로 진입했다. 이에 대해 우파 성향의 학자들은 중국대륙의 자본주의 단계 존재 여부에 대해 의심한다.
즉,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전복해야만 진입이 가능한 것인데 중국대륙에 자본주의 시기가 과연 존재했는가 하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이에 대해서는 아편전쟁 이후 외세에 의해 점령당한 조차지 내에 나타난 자본주의적 현상을 내세우고 있다. 작게는 191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상하이를 비롯한 대도시에 출현했던 빈부격차를 그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 46쪽

주권 이양을 1년 앞둔 1996년 패튼 총독은 홍콩의 성공은 영국의 4대 공헌에 있다고 했다. 법치와 공무원제도, 경제, 자유, 민주화 등이다. 홍콩의 정치와 경제 관계의 특징을 집약하자면, 고효율성과 불간섭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적극적 불간섭 정책으로 일관되게 자유무역정책을 추진했고, 국제무역의 자유화를 지지했으며, 무역보호주의를 반대했다.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일관되게 자유경쟁과 적자생존 원칙을 고수했다.
주권 이양을 1년 앞둔 1996년 패튼 총독은 홍콩의 성공은 영국의 4대 공헌에 있다고 했다. 법치와 공무원제도, 경제, 자유, 민주화 등이다. 홍콩의 정치와 경제 관계의 특징을 집약하자면, 고효율성과 불간섭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적극적 불간섭 정책으로 일관되게 자유무역정책을 추진했고, 국제무역의 자유화를 지지했으며, 무역보호주의를 반대했다.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일관되게 자유경쟁과 적자생존 원칙을 고수했다. - 59쪽

영국의 법치와 고효율의 행정을 도입, 민주는 없지만 고도의 법치와 자유로 그것을 상쇄시켜왔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회 내에 법률에 대한 보편적인 동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홍콩의 매우 중요한 자산이다. 즉, 적자생존이 장려되는 철저한 자본주의의 홍콩사회이지만, 적어도 그것이 공정한 룰에 의해 보장된다는 분위기야말로 홍콩을 홍콩답게 발전시키고 유지하고 있는 정신이다. 자유가 자유로서 보장받기 위한 최소한의 제한이 정착되었다는 말이다. 홍콩에서 공적 신용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과 같다. 그렇게 볼 경우 사실 민주는 없고 자유만 있다는 홍콩사회에서 민주는 합리성으로 존재한다. 요컨대 민주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사회 내 합리성은 어느 사회나 국가보다 앞서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59, 60쪽

홍콩을 아는 사람들이 말하는 홍콩문화의 장점은 중립, 개방, 자유이다. 이것은 홍콩문화에 대한 총괄적인 결론이지만, 마찬가지로 홍콩경제의 비약적인 성장 비결을 압축하는 표현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홍콩은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인 자유항으로서, 상품과 외환의 진출입이 자유롭고, 기업경영이 자유롭고 대외 자본과 현지 자본이 동일시되는 곳이다. 그것에 앞서 지리적으로 중국대륙과 세계를 연결하는 관문이자, 태평양과 인도양으로 통하는 해운의 요충이고, 아시아 태평양의 중심이다. 게다가 세계 3대 항구로 꼽히는 빅토리아항의 깊은 수심 역시 홍콩의 경제발전을 논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조건이다. - 60,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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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 없는 진보 - 진보의 최후 집권 전략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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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바로 한국 정치판, 특히 진보 정치판이 매우 심각한 ‘구성의 오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 중요한 깨달음을 어찌 그냥 내버려둘 수 있겠는가.
익히 잘 아시겠지만,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란 부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을 전체에 부당하게 적용하거나 개별적인 요소에 해당되는 것을 집합 전체에 부당하게 적용하는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타당한 행동을 모두 다 같이할 경우 전체적으로는 부정적인 결과가 초래될 때 쓰이는 말이다. 어떤 농민이 풍작을 올리면 기뻐할 일이지만, 모든 농민이 다 풍작을 하면 농산물 가격이 폭락해 모든 농민이 다 고통을 받는다거나, 어떤 소비자가 자린고비처럼 절약해 저축을 많이 하면 축하해줄 일이긴 하지만, 모든 소비자가 다 그렇게 하면 경기를 악화시켜 모두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 좋은 예다. - 7쪽

싸가지 문제는 민주당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싸가지 없는 진보’란 표현이 한 세트로 굳어졌겠는가. 내부 계파 문제가 심각하다고는 하지만, 그것 역시 싸가지의 문제다. 새누리당을 대하던 행태가 중독성 습관이 되어 내부에서까지 발휘됨으로써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상호 신뢰를 갉아먹게 만든다는 것이다.
민주당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치의 목적은 무엇일까? 민주당이 대선을 포함한 선거에서 승리해서 이 세상을 바꾸는 데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렇지 않다. 우선 나와 내 계파가 내부에서 이기고 보는 것이 목적이다. 세상을 바꿔보고 싶은 뜻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신들의 패권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있으나 마나 한 것이다. 이미 내부 싸움하다가 망가진 게 한두 번이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 10, 11쪽

"시장판의 싸움에서야 기품 없는 게 무기일 수 있다. 기품 찾고 예의 찾다보면 약하게 보이고 사기도 꺾인다. 그러나 문명사회의 정치판에서까지 기품 없음이 무기가 된다면 그건 슬픈 일이다. 정치도 그 본질이 싸움인데 기품 찾다 지느니 기품 없이 이기는 게 낫지 않느냐고 따지면 대답이 좀 궁색해지긴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슬픈 일임에는 변함이 없다. 기품 없음이 무기가 되면, 싸움이 진행될수록 당사자들은 점점 더 기품이 없어진다. 그래서 점점 더 깊은 상처를 주고 받게 된다. 그러다 보면 아픔을 느끼는 능력이 가장 모자란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 고종석, ‘싸가지 있는’ 정치를 위하여, 한국일보, 2007. 9. 13. - 30쪽

‘싸가지 없는 진보’의 사전엔 ‘성찰’이 없다. 도덕적 우월감이 성찰을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공격이 최상의 방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이런 행동양식이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이미지를 더욱 악화시킨다. 예컨대, ‘B급 좌파’를 자처하는 김규항은 「경향신문」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마한다.
"지난 대선 당시에 ‘진보 놈들 꼴 보기 싫어서 박근혜 찍는다’는 식의 이야기가 하위계층에서 많았다. 그들의 반감은 자연스러운 데가 있다. 진보가 두 번이나 집권을 하는 동안 기대와는 달리 그들의 삶엔 별다른 게 없었는데, 이명박이나 박근혜를 비롯한 보수는 거의 악귀 취급을 하면서 자신들은 정의와 선의 세력인 양 구는, 정치라는 게 보수고 진보고 다 자기들 좋으라고 하는 거라는 걸 재확인해주었을 뿐이면서, 자신들을 선택하는 게 유일한 희망인 양 설레발치는 이상한 사람들에 대한 반감 말이다." 김규항, 마음의 회복, 경향신문, 2014. 6. 24. - 41쪽

김규항이 잘 지적했듯이,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들이 잘할 생각은 하지 않고 늘 보수에 대한 비판과 심판으로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데에 있다. 그게 진보의 길이라고 맞장구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민주당의 투쟁의지와 능력이 약하다고 비판하는 진보적 지식인이 숱하게 많다. 거의 대부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진보 언론매체엔 그런 글들이 자주 실린다.
그러나 나는 그런 방식으론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김규항의 입장을 적극 지지한다. 그런데 김규항 역시 그런 방식을 그대로 복제하고 있는 건 아닐까? 좌파가 스스로 잘할 생각은 않고 민주당만 비판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이 "진보를 참칭하고 대중의 눈과 귀를 막음으로써 좌파가 축소되고 사회가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되었다"는 건 민주당 때문에 좌파가 잘할 수 있는 공간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민주당도 똑같은 논리로 새누리당 비판에만 올인할 수 있는 게 아닐까? - 42, 43쪽

그렇다. 스스로 잘난 척하는 우월감이 문제다. 우월감이야말로 ‘싸가지 없는 진보’의 동력이다. - 46쪽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싸가지 없는 진보’는 진보 전체를 위해선 반드시 극복해야 할 현상이지만, 진보 내부 헤게모니 쟁탈을 위해선 가장 강력하고 효율적인 정치 양식이다. 좋건 나쁘건 정치의 동력은 증오다. 싸가지 없는 언행은 한 정당 내에서도 나와 우리 편의 승리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을 향한 것이지, 우리 편을 향한 게 아니다. 반대편에 대한 싸가지 없는 언행은 지지자들을 열광시키는 동시에 단합의 대열로 이끌 수 있다.
사정은 이와 같은바, ‘싸가지 없는 진보’는 단기적으론 속된 말로 ‘남는 장사’다. 담론의 시장 논리가 그렇게 되어 있다. 단기적으로 ‘남는 장사’에 대한 집착, 이게 바로 진보가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굴레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남는 장사’를 하겠다는 의도조차 없이 ‘싸가지 없는 진보’가 하나의 행동 양식으로 굳어져 버린 탓도 있겠지만, 이 또한 바꾸기 어렵다는 점에선 마찬가지다. - 51쪽

‘집단사고(groupthink)’는 미국 예일대학의 심리학자인 어빙 재니스(Irving Janis, 1918~1990)가 1972년에 출간한 「집단사고의 희생자들(Victims of Groupthink)」에서 어떻게 자타가 인정하는 우수한 두뇌집단이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를 연구하면서 제시한 개념이다. 재니스는 ‘집단사고’를 "응집력이 강한 집단의 성원들이 어떤 현실적인 판단을 내릴 때 만장일치를 이루려고 하는 사고의 경향"이라고 정의했다. 쉽게 말하자면, 낙관론에 집단적으로 눈이 멀어버리는 현상이다. "정책 결정, 집단 내부의 구성원들 사이에 호감과 단결심이 크면 클수록, 독립적인 비판적 사고가 집단사고에 의해 대체될 위험성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집단사고는 집단 외부를 향한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취하게 만든다." 어느 조직에서든 조직의 우두머리에겐 신체를 보호하는 보디가드뿐만 아니라 심기를 보호하는 마인드가드(mindguard)가 있기 마련인데, 재니스는 바로 이런 마인드가드가 지도자로 하여금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그걸 밀어붙이게 만드는 주요 이유가 된다고 지적했다. - 57, 58쪽

나는 진보의 진보 비판은 진보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보수는 그렇지 않은데 진보는 왜 그 모양이냐?"는 반론은 무의미하다. 보수와 진보의 출발점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보수는 이익지향적인 반면, 진보는 가치지향적이다. 이익을 위해 타협하는 일이 보수보다는 진보에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수 진영에서도 극우는 가치지향적인 성향이 농후한데, 이들 역시 보수 비판에 적극적인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 66, 67쪽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빠졌다"는 주장은 사실상 "보수언론은 늘 그르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셈인데, 이거야말로 진보의 필패(必敗)를 부르는 첩경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 보수언론이 하는 말은 늘 잘못되었거나 정략과 음모의 산물이란 말일까? 보수언론이 그렇게 어리석을까? 그런 생각은 보수언론의 힘은 과대평가하면서 보수언론의 지능은 과소평가하는 게 아닐까?
이래서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한 것이다. 반대로 물어보자. 박근혜 정부에 대한 인식과 평가에서 보수언론과 진보언론 중 어느 쪽이 사실과 진실에 더 가까울까? 진보 지식인은 ‘진보언론’이라고 답할 것이다. 맞다. 보수가 부정한다 해도 답은 ‘진보언론’이다. 왜 그런가? 진보언론은 박근혜 정부에 대해 거리두기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같은 편 내부에서 고려해야 할 인간관계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 70쪽

같은 이유로 진보에 대한 인식과 평가에서 사실과 진실에 더 가까운 인식과 평가를 하고 있는 건 진보언론이 아니라 보수언론이다. 물론 보수언론이 의도적인 ‘진보 죽이기’용 기사와 논평을 양산해내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런 걸 가려낼 수 있는 분별력만 있다면, 진보가 경청해야 할 것은 진보언론보다는 보수언론의 비판이다. - 70, 71쪽

그런데 보수언론의 어떤 비판에 주목해서 그걸 받아들이면 그건 ‘조중동 프레임’에 놀아난 것이 되는가? 예컨대, 「조선일보」 2014년 8월 2일자 A3면에 실린 「2012년 이후 연전연해하는 야(野): 인물․노선․체질․전략․우군(友軍)… ‘뻔한 5가지’에 발목」(김경화 기자)이라는 기사를 보자. 이 기사는 익명의 민주당 당직자들의 입을 빌려, 민주당의 ‘5대 뻔한’ 신드롬을 제시하고 있다. 아래와 같다.
① 뻔한 인물(불로장생 원로, 꽉 틀어쥔 486, 진보의 이준석 부재), ② 뻔한 노선(아직도 반새누리당이면 모든 노선이 정당화되고 철학이 없음), ③ 뻔한 체질(계파 갈등, 노숙 및 단식 투쟁, SNS 환청․환각 현상), ④ 뻔한 전략(편 가르기, 안 되면 단일화 등), ⑤ 뻔한 우군들(야당 외곽세력은 그들만의 언론, 학자, 시민단체들) - 70, 71쪽

어찌되었건 진보 좌파의 지도급 인사들이 대부분 명문대 출신이라는 건 진보의 자산으로 긍정 평가할 수 있는 일이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 ‘지식 엘리트’의 속성은 자신의 비교 우위가 지식․지성․비전에 있다는 걸 거의 본능 비슷하게 갖고 있기 때문에 타인과 세상에 대한 ‘계몽 욕망’으로 충만해 있다. 미국 정치에서 늘 진보적 지식 엘리트가 일반 서민의 거센 반감의 대상이 되는 등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한국에선 그들의 계몽 욕망이 해소되기 어려운 내부 분란을 낳은 건 물론이고 외부적으론 자주 싸가지의 문제로 비화된다. "우리가 모든 걸 다 알고 있으니 우리를 따르라"는 식이니 말이다. - 83쪽

진보적 지식 엘리트는 자기들에게 선거 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유권자가 욕망에 투항했다"는 식으로 싸가지 없는 진단을 내놓는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말하는 이들의 재산을 까보면 욕망에 투항했다는 유권자들의 평균보다 훨씬 많다. 그래서 ‘왕싸가지’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현실이 막연하지만 강력한 느낌과 이미지로 유권자들의 뇌리에 자리 잡으면서 ‘싸가지 없는 진보’를 깨기 힘든 고정관념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이다. - 83쪽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은 이미 1620년에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인간의 지성은 일단 어떤 의견을 채택한 뒤에는 … 모든 얘기를 끌어들여 그 견해를 뒷받침하거나 동의해버린다. 설사 정반대를 가리키는 중요한 증거가 훨씬 더 많다고 해도 이를 무시하거나 간과해버리며 … 미리 결정한 내용에 죽어라고 매달려 이미 내린 결론의 정당성을 지키려 한다."
심리학에선 인간의 그러한 성향을 가리켜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확증 편향은 정치적 논쟁이나 토론의 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 93, 94쪽

나는 ‘심판’이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진보를 골병들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정권 심판론에만 의지하다 보면 독자적인 의제 설정이나 정책 생산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도 문제지만, 심판을 외치는 와중에서 싸가지의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민주당의 ‘심판’은 반대편만을 향할 뿐 자신들에겐 적용되지 않는 마법의 주문이다. 18대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문재인은 "노무현 정부는 총체적 성공"이라는 자평을 내놓았다. 심판이 대상은 오직 ‘이명박 정부’와 ‘독재자의 딸’이었을 뿐이다. 민주당 내부에서야 그렇게 보는 것이 진리였을망정, 유권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래서 결국 패배했다. 문제는 이것이다. 민주당이 언제 단 한 번이라도 자신에 대한 심판, 즉 성찰을 해본 적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그런 적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민주당을 ‘왕싸가지’라고 생각한다. - 136, 137쪽

선의의 해석을 해보자면, 민주당은 갈등 상황에서 몰입이 초래하기 마련인 ‘터널 비전(tunnel vision)’의 함정에 빠져 있다. ‘터널 시야’라고도 하는 ‘터절 비전’은 터널 속으로 들어갔을 때 터널 안만 보이고 터널 밖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주변을 보지 못한 채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는 현상을 뜻한다.
몰입은 축복일 수 있다. 자연, 사물, 일 등에 몰입하는 것만큼 재미있고 유익한 게 또 있을까.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몰입은 축복일 수 있지만 재앙일 수도 있다. 스토킹은 바로 몰입의 산물이다. 인터넷 시대의 ‘빠’ 문화와 ‘까’ 문화도 마찬가지다. 특히 갈등 상황에서 몰입은 자해(自害)를 초래하는 매우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몰입은 무엇보다도 균형 감각을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 137, 138쪽

노무현 정권은 강한 개혁 열망을 품고 출발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개혁에 저항할 가능성이 높은 ‘수구 기득권세력’에 주목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주목의 정도가 너무 강했다는 점이다. 주변을 살피지 못했다. ‘주변’이라 함은 바로 국민이다. 노무현 정권은 국민이 아니라 야당․보수신문을 상대로 정치․행정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싸움이 치열할수록 몰입은 ‘자기 성찰’을 원천봉쇄한다. 몰입은 상대편에 대한 과대평가로 이어져 상대편의 허물은 크게 보고 자신의 허물은 사소가게 여기는 심리는 낳기 때문이다. - 142쪽

사람들이 말하기 쉽게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표현을 쓰긴 하지만, 이 표현은 진보가 안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담기엔 모자라다. ‘도덕’이라고 보는 게 옿다. 즉, ‘도덕의 부재’ 또는 ‘도덕의 왜곡’이 오늘날 진보의 위기를 불러온 주범일 수 있다. - 177쪽

‘도덕주의’의 부정적 의미는 크게 보아 세 가지다. 첫째, 사고가 편협하고 경직되어 있다는 의미다. 둘째, 복잡한 세상 이해를 종합적으로 하지 않고 도덕이라는 일면만 보는 편향을 드러내고 있다는 의미다. 셋째, 자기 자신의 도덕적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행위를 억압하고 자유를 침해하려고 든다는 의미다. - 177, 178쪽

진보는 자신들이 ‘수구꼴통’이라고 욕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도덕적 세계가 있다는 걸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즉, ‘다름’을 ‘틀림’으로 파악하는 데에 아주 익숙한 것이다.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겐 그런 다른 세계가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우리 내부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데, 이건 한국 사회의 강한 사회문화적 동질성 때문이다. - 185쪽

"다른 많은 진보주의자들처럼 나도 한때는 보수주의자들을 천박하고, 감정이 메마르거나 이기적이며, 부유한 사람들의 도구이거나, 혹은 철저한 파시스트들일 뿐이라고 얕잡아 생각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을 고도의 도덕적 이상주의자로 간주하며, 그들이 깊이 믿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보통 사람들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야 보수주의에 왜 그토록 열렬하게 헌신적인 사람이 많은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보수주의를 잘 이해하게 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보수주의를 더욱 두려워하게 되었다."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eoff), 손대오 옮김, 도덕의 정치, 생각하는 백성, 2004 - 197쪽

레이코프는 그런 성찰 끝에 자신이 지지하는 민주당 진영에 이런 고언을 내놓는다. "진보주의자들이 정치에서 도덕과 신화와 감정적인 측면을 무시하는 한, 정책과 관심을 가진 그룹과 사안별 논쟁에만 집착하는 한, 그들이 이 나라를 뒤덮은 정치적 변화와 본질을 이해하게 될 희망은 전무하다."- 197, 198쪽

전중환은 「보수와 진보의 도덕」이라는 「한겨레」(2013년 10월 29일) 칼럼에서 슈웨더의 연구 결과를 언급하면서 "유권자들은 경제적 이득이 아니라 도덕적 가치에 따라 투표한다는 것, 그리고 여기서 보수와 진보가 이해하는 도덕은 사뭇 다르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유용한 시사점을 준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를 들어, 지난 대선에서 저소득층이 새누리당을 훨씬 더 지지한 이유는 교육 수준이 낮아서 사탕발림에 쉽게 넘어갔기 때문이며, 그러니 진보세력이 그들의 삶을 향상할 유일한 대안임을 확실히 인식시키기만 하면 문제가 저절로 다 해결되리라는 분석은 이런 점에서 한계가 있다. 진보세력은 보수적인 국민들이 그들에게 품는 생래적인 거부감, 곧 국가안보와 사회질서를 흔드는 ‘비도덕적인’ 정당이라는 시선을 어떻게 바꿀지 궁리할 필요가 있다." - 199쪽

진보에 가장 필요한 건 레이코프가 했던 종류의 자기 성찰이다. 즉, 보수주의자들을 경멸하로 혐오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존중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민주당이 수십 년째 신봉해오고 있는 ‘민주 대 반민주’라는 신념이자 구호는 민주당에 ‘독약’이 되고 있다. 설사 이런 이분법 구도에서 민주 쪽에 속한 사람일지라도, 민주당을 지지하면 ‘민주’요 반대편을 지지하면 ‘반민주’라는 도식은 시대착오적인 정도를 넘어 속된 말로 ‘찌질’하다고 생각한다. - 200쪽

정치가 죽은 공적 영역에선 약자들이 세력을 규합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그런 상황에서 유권자 탓을 하는 건 그야말로 적반하장이다. 샤츠슈나이더의 다음과 같은 말처럼 말이다.
"광범위한 투표 불참에 대한 책임을 인민의 무지․무관심․무기력 탓으로 돌리는 것은 공동체 내의 좀더 부유한 계층이 보여주는 매우 전형적인 형태이다. 이는 어떤 정치체제에서나 늘 하층계급의 배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어왔던 논리다. 이보다 나은 설명이 있다. 기권은 투표 불참자들의 요구를 반영한 선택지와 대안이 억압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 224쪽

안철수는 "얻고자 하면 잃고 잃고자 하면 얻는다"는 정신과 실천 하나로 대선주자급으로 급부상하는 코미디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현실정치판에 본격 진입한 후엔 정반대의 정신과 실천으로 인해 망가지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 240, 241쪽

"깰 수 없으면 타협하라"는 건 진리다. 예컨대, 친노는 비노․반노를 깰 수 없고, 비노․반노는 친노를 깰 수 없다. 깰 수 없는 게 분명한데도, 서로 적대해서 뭘 어쩌자는 건가? 이제 서로 달라져야 한다. 세상을 바꾸려면 자기부터 바꿔야 한다. 영국의 작가이자 진보적 지식인이었던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가 말했듯이, "변화가 없다면 진보는 불가능하다.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나는 안 바꾸면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건 도둑놈 심보다. - 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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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 황금가지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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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으로 열등한 남자일수록 성적인 면에서 우위에 서려 하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 242쪽

루벤스가 보기에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경쟁의 원동력은 단 두 가지 욕망으로 환원되는 듯 했다. 식욕과 성욕. 인간은 타인보다 많이 먹거나 혹은 저장하고, 보다 매력적인 이성을 획득하기 위해 타인을 깎아 내리고 발로 차서 떨어뜨리려 했다. 짐승의 본성을 유지한 인간일수록 공갈이나 협박 같은 수단을 쓰며 ‘조직’이란 무리의 보스로 올라가려 안달했다. 자본주의가 보장하는 자유 경쟁이야말로 이러한 폭력성을 경제 활동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교묘한 시스템이었다. 법으로 규제하고 복지국가를 지향하지 않는 한, 자본주의가 내포하는 짐승의 욕망을 억누르기는 불가능했다. 어찌되었건 인간이라는 동물은 원시적인 욕구를 지성으로 장식해서 은폐하고 자기 정당화를 꾀하려는 거짓으로 가득한 존재였다. - 243쪽

"남은 90퍼센트의 병사를 살인자로 만드는 것도 사실 간단하다는 사실이 알려졌어. 일단은 권위자에 대한 복종이나 소속 집단에 대한 동일화 등으로 개개인의 주체성을 빼앗았지. 그리고 또 하나, 죽일 상대의 거리를 멀리 두는 것이 중요해."
"거리?"
"응, 두 가지의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어. 심리적 거리와 물리적 거리." - 245쪽

전쟁 당사자 중에서 가장 잔인한 의사(意思)를 가진 인간, 즉 전쟁 개시를 결정하는 최고 권력자만큼 적으로부터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었다. 백악관에서 만찬회에 출석하고 있는 대통령은 적이 흩뿌린 피를 뒤집어쓰지도, 육체를 파괴당한 전우가 내뱉는 단발마의 외침을 듣지도 않는다. 살인에 뒤따르는 정신적 부담을 거의 받지 않는 환경에 있기에 날 때부터 갖고 있는 잔학성을 더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군대 조직이 이러한 형태로 진화하고 과학 기술 덕에 병기가 개선되고 있는 이상, 근접전에서 살육이 격렬해지는 것이 당연했지만 전쟁의 의사결정자는 아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대규모 공중 폭격을 명령할 수 있는 셈이다. - 247쪽

그가 특히 주시한 점은 국가나 군산복합체 같은 추상적 존재가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이었다. 국가의 인격이란 의사 결정권자의 인격, 바로 그 자체였다. - 250쪽

반대 의견의 문제점은 꼬치꼬치 따지면서 배제하고, 찬성하는 사람들만 주위에 가득하게 채워 가는 것. 민주적인 결정으로 보이는 독재였다. - 267쪽

군산 복합체의 중심에 있다 보면 지배 논리란 것이 굉장히 단순하다는 사실에 놀라고는 했다. ‘공포’였다. 전쟁으로 돈을 벌고 싶은 정책 결정자는 다른 나라의 위협을 과장하여 국민에게 크게 퍼뜨리기만 하면 됐다. 판단의 근거를 국가 기밀이란 벽으로 감춰 버리면 매스컴도 확인 없이 이 위협론에 올라탔다. - 450쪽

번즈 정권 하에서 법률가들의 일이란 대통령의 뜻에 맞도록 법을 왜곡하여 해석해 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전군 총사령관인 대통령이 직무 때문에 법률을 무시할 수도 있다는 독재 정치의 완성이었다. - 458쪽

인위적인 도태. 그중에서는 진화한 개체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까? 자신과는 다른 이질적인 존재를 없애려는 인간의 습성이 진화의 싹을 솎아내고 있었다는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었다. - 459쪽

"모든 생물 중에서 인간만 같은 종끼리 제노사이드를 행하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네. 이것이 사람이라는 생물의 정의야." - 461쪽

"역사학만은 배우지 말게. 지배욕에 사로잡힌 멍청한 인간이 저지른 살육을 영웅담으로 바꿔서 미화하니까 말이야." - 469쪽

네오나치나 백인 지상주의자 등 자신의 폭력 행동을 정치사상으로 탈바꿈하는 가짜 우익에는 공통적인 심성이 있었다. 비뚤어진 자존심의 발로였다. 그들은 자란 환경 등의 문제로 자신을 직접 긍정하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소속된 집단을 무턱대고 긍정하며 그 집단의 구성원인 스스로가 훌륭하다는 논법을 취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관심은 자기 자신에게밖에 향하지 않는 것이 명백했다. 그 증거로 가짜 우익의 공격은 자신들의 주장에 이의를 다는 동포들, 심지어 그들의 의견에 무턱대고 긍정했던 구성원에게도 향할 수 있다. - 491쪽

"한 가지만 말해 보자면 실패 없는 인생 따위는 있을 수가 없으며, 그 실패를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하기 나름이라는 말이다. 인간은 실패한 만큼 강해진다. 그것만은 기억해 두렴." - 644, 6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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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처럼 생각하기
로버트 베이트먼 지음, 김연수 옮김 / 자유로운상상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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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샬 맥루한은 누군가 ‘진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그 사람의 머리통은 19세기적이라는 걸 알아야한다고 말한 바 있다. 19세기적인 머리통이 너무나 많아서 20세기를 살아온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은 문제가 생겨났다. 위대한 생물학자이자 생태학자인 E.O. 윌슨은 지난 세기는 멋진 기술력의 세기가 아니라 다양성이 파괴된 세기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류는 ‘진보’라는 말에 새로운 정의를 내려야만 한다. 더 우아하고 세련된 개념으로, 자연 유산이든 문화 유산이든 우리 유산의 가치를 인정하는 개념으로. 우리는 다가올 세대의 건강과 삶의 질에 대해 더 사려 깊게 생각해야할 필요가 있다. - 서문

내 삶과 예술을 살찌운 것은 자연의 정교함에 감탄하는 이런 능력이었다. 내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즐거움도 바로 이것이라 내 아이들도 평생에 걸쳐 관찰자가 되기를, 그리하여 자신들이 물려받은 자연의 유산을 맘껏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 24쪽

미국의 위대한 미생물학자인 르네 듀보는 미래의 인류에게 닥칠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의미 있는 노동의 상실"이라고 대답했다. 1973년 영국의 생태학자이자 경제학자인 E. F. 슈마허는 기념비적인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다음과 같은 비슷한 얘기를 했다. "가족을 제외하자면 일과, 일을 통해 정립되는 관계망이 사회의 진정한 토대를 이룬다. 이 토대가 건전하지 않은데 어떻게 사회가 건전하겠는가?"- 27쪽

우리가 다른 종(種)에 대한 존중을 잃어버리게 된 까닭에는 그들의 이름조차 모른다는 사실도 한몫한다. 이름은 중요하다. 선생이라면 학생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열대 지역에서 사냥과 채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수천 종에 달하는 동식물을 구분할 수 있지만, 평균적인 북미 지역 사람들은 고작 열 개 남짓 기억할 뿐이다. 하지만 그런 북미 지역 사람들도 상표라면 천 가지도 구분할 수 있다. - 48쪽

우리를 지켜주는 자연유산 속에서 모든 것을 적절한 규모로 운영하게 되면 대단히 중요한 부수효과를 얻을 수 있다. 개발 도상국가들은 외부의 원조로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자주적인 경제 체제에 도달할 수 있다. 슈마허도 지적했다시피 선진국들은 이들 국가의 경제에 지나치게 개입해 수많은 달러를 뿌리고 큰 것이 아름답다는 식의 기술력을 강요하는데, 이는 종국에 개발 도상국가들의 주체적인 삶의 방식을 파괴하고 국민들을 전에 없이 절망적이고 비참한 상황 속으로 밀어 넣는다. 전통적인 기술력과 지식을 없애버리고 그들의 자긍심을 깎아내리는 낯선 신기술이 자리잡는다. - 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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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를 상실한 노동자 비정규직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08
장귀연 지음 / 책세상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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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 케인스주의는 국가 경제 정책의 측면을 가리킨다. "모든 것을 자유로운 시장에 맡기고 내버려두라!"고 외쳤던 자유주의는 1920~1930년대 자본주의가 발전된 미국과 유럽을 휩쓴 대공황으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내버려두었더니 대공황이란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후 자본주의의 경제 정책은 국가의 적극적인 경제 개입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케인스주의는 이러한 국가 개입을 추구하는데, 수요 측면에 중점을 두는 것이 핵심이다. 즉 경제가 성장하려면 상품 수요가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품이 많이 팔려야 기업이 투자를 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품은 구가 구입하는가? 현대 사회에서 인구의 대다수는 노동자, 그것도 임금 노동자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잘 살아야 수요가 늘어난다. - 58쪽

이처럼 케인스주의를 따르면 임금 노동자의 고용과 복지에 신경을 쓰게 된다. 기업에게 고용 안정과 고임금을 종요하는 정책을 쓸 수도 있고, 국가 부문을 확대해 정부가 직접 노동자를 고용하기도 한다. 일단 노동자가 안정적으로 고용되어 수입을 확보해야 수요가 늘어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기업도 잘 되고 경제가 활성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완전고용을 케인스주의 정책의 하나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것이 결함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대기업이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여 대량 생산을 한다. 노동자는 노동권을 보장받고 안정적인 고용과 높은 임금을 얻어낸다. 이들은 여러 상품을 소비할 경제적 여유가 있으므로 수요가 늘어난다. 상품이 잘 팔리므로 기업은 투자를 더 많이 한다. 고용은 더 늘어나고 경제는 성장한다. 국가의 경제 정책은 이러한 호순환이 잘 돌아가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 59쪽

이 과정에서 노동자는 노동조합이나 법 제정을 통해서 고용주에 대항하여 노동자가 보호받고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권리를 스스로 추구했다. 포드주의적 기업 전략이나 케인스주의적 경제 정책은 노동권이 인정받기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도 했다. 케인스주의에 기운 정부가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을 제정했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고용주도 노동자가 잘 사는 것이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노동권을 받아들였다. - 60쪽

여기서 말하는 세계화란 경제의 세계화, 자본의 세계화를 의미한다. 즉 상품 시장과 자본 시장이 세계적으로 통합되고 기업이 국경을 넘어서 세계적 차원에서 활동하는 현상 말이다. 사실 이것은 포드주의와 케인스주의의 성공에 뒤따른 결과였다. 포드주의적 방식으로 성공한 대기업은 더 많은 이윤과 자본을 축적하고, 세계를 무대 삼아 활동하려는 욕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자본의 성공은 국내 수요를 촉진시켰던 케인스주의적 국가 개입에 힘입은 것이기도 하지만, 거대해진 자본에게 국가 경계는 이제 너무 작아 맞지 않는 옷이 되어버렸다. 역설적이게도 케인스주의의 성공이 케인스주의를 붕괴시킨 셈이다. - 61쪽

궁극적으로 노동자가 잘 살아야 기업도 잘 되고 국가 경제도 건실해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적 경쟁에 노출된 기업은 그런 장기적이고 전체적인 문제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 지금 당장 내 기업이 살아남아야 하고 더 많은 이윤을 남겨야 한다. 사실 이것이 원래 자본의 속성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러한 자본의 속성을 제어했던 정부가 힘을 잃었다. 케인스주의 정책은 효과가 없어졌고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보장해주지 않으면 떠나버리겠다는 협박 앞에서 자본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하다. 경제 정책의 기조가 신자유주의로 변하고 기업의 이윤이 가장 우선적인 고려 대상이 되면서, 노동자의 삶은 뒷전에 내팽개쳐지고 노동권을 잠식하는 비정규직이 만연하게 된 것이다. - 62, 63쪽

구조 조정의 주요한 방법은 보통 다운사이징이나 슬림화라고 부르는 것으로, 고용 인원을 줄이고 수익성이 덜한 부분을 퇴출하고 조직 구조를 통폐합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물론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된다. 외환위기 직후 1998년 노동법이 개정되어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 해고가 가능해짐에 따라 해고를 통한 구조 조정은 더욱 쉬워졌다.
그렇다고 이것이 자본 자체의 위축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경쟁이 격화되면서 유리한 것은 대자본이다. 이들은 다운사이징으로 몸을 가볍게 해서 새 이윤을 향해 쉽게 뻗어 나갈 수 있도록 조직을 ‘유연하게’ 변화시키려 한다. 상황에 따라 쉽게 몸을 움츠리거나 옮겨 갈 수 있고 한쪽을 축소하면서 다른 쪽을 확장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추려는 것이다. - 70, 71쪽

공공 서비스에 관한 한 민영화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정당화하는 것처럼 품질 향상과 가격 인하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럴 리 없다. 낮은 가격으로도 공급을 유지할 수 있는 정부와 달리 기업이야말로 이윤을 내지 않으면 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은 정부’라는 자유주의의 부활에 따라 민영화는 계속 추진된다. - 91쪽

사실 기업의 전체 업무를 조정하는 몇몇 핵심 관리자를 제외하면 모든 업무를 비정규직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일정 기간 후 정규직화라는 방식을 비정규직 보호 해법이라고 내놓은 것은 정책입안자들이 변화하는 노동 환경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계속 노동자를 사용할 거라면 그 기업에서 근속하는 사람이 낫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내부 노동 시장의 관념을 여전히 갖고 있다. 그러나 기술 및 정보의 발전과 고등 교육의 대중화 등으로 인해 채용에 드는 비용이 크게 줄어들고 기업 특수적 숙련도 의미가 없어지면서, 기업은 정규직 고용의 책임을 지기보다는 내부 노동 시장을 포기하는 쪽을 선택하는 추세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규제하는 것은 정규직화를 유도하기는커녕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더 불안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 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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