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아무리 옷을 껴입어도 내 뼈와 살의 원천을 투시하는 어두운 거울 같았다. 그것은 일견 두려운 일이었다. 수도 생활을 각오하며 그 고요함을 동경했으나 침묵의 이 막강한 힘은 예측하지 못했었다. 실제로 그랬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머뭇거리면서 되돌아보았던 것 같다. 내가 타고 온 기차가 떠나는 기적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나는 내 짧은 젊음을 기차에 두고 내린 것 같았다. 소음들과 소망을, 열락과 구토를, 초조와 울음을, 선망과 질투들을...... 다시 길고 부드러운 어둠이 내려앉은 복도로 한발을 내딛는데 젖혀진 소음의 휘장 틈으로 처음 알몸뚱이의 내 영혼이 언뜻 보였다.-13쪽
"하필이면 책을 폈는데 이런 구절이 나오는 거야. '하느님이 인간이 되셨다. 오, 인간이여. 네가 인간임을 알라! 너의 완전한 겸손은 네가 너를 아는 데 있다.' 휴우, 이럴 때가 제일 힘들어. 베네딕도 성인은 '네가 오만을 가지고 선을 행하느니 차라리 겸손으로 실수를 해라' 하셨다는데 낮에 안젤로에게 화를 냈던 게 맘에 걸리네. 요한, 난 어리석은 사람들, 머리 안 돌아가는 사람들, 같은 말 두 번 이상 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참아내지 못하겠어. 생각해봤지, 나 머리 좋아, 나 말귀 금방 알아들어. 그런데 그거 내가 노력해서 얻은 거 아니잖아. 다 하느님께 공짜로 받은 거잖아. 안젤로 머리 별로 안 좋은 거 그 애 탓 아니잖아. 하지만 요한, 공부하지 않는 거, 게으른 거,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는 걸 보면 참기가 힘이 들어...... 하지만 내가 뭐라고 그 사람들에게 화를 벌컥거리면서 내고 있냔 말이야. 이런 생각 하면 내가 너무 싫고 화가 난다구!"-42-43쪽
머리만으로 못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아아 지금 그런 무모하고 충만한 자신감을 생각하면 사실 약간 오싹하기도 하고 설핏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그런 무모함이 아니라면 누가 감히 히말라야에 오르고, 누가 바다 깊숙한 곳을 탐험하러 떠나며, 누가 빙하의 극지에 과학 기지를 세우고, 누가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터무니 없는 말로 한 여자를 제 생(生) 안으로 데려온단 말인가.-49쪽
비판이 견디기 힘든 이유는 그 비판 속에 비판자의 비난이 교묘하게 숨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판에 대하여 화를 내는 것은 그 비판이 나의 행위가 아니라 행위하는 나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그 비판이라는 것이 비난을 내포하지 않고 오로지 사랑과 염려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인류는 얼마나 많은 회개하는 사람을 만들어냈을까?-68쪽
"긴 인생에서 겨우 한 해 늦추어졌을 뿐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잖아요. 우리 수련수사 때 수련장 신부님 말씀하신 거 전 가끔 생각해요. 나가는 것도 좋다. 길을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요한 결정은 반드시 평화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69쪽
"어떤 사람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어떤 궁극적인 의미, 다시 말해 초월적인 의미를 가져야만 한다. 인간은 그 초월적인 의미를 알 수 없지만 그저 믿어야만 한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모르 파티(amor fati), 즉 운명에 대한 사랑이다." 훗날 나는 빅토르 프랑클이 죽음의 수용소를 체험하고 나와 죽기 전에 쓴 그의 자서전에서 이와 같은 글을 읽고 한동안 눈길을 떼지 못한 적이 있었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운명과 대결한다고 해도, 우리는 인간의 능력 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인 능력, 즉 인간의 고통을 인간의 업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증언하면서 삶의 의미를 쟁취할 수 있다."-162-163쪽
태어나기 전에 인간에게 최소한 열 달을 준비하게 하는 신은 죽을 때는 아무 준비도 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삶 전체가 죽음에 대한 준비라고 성인들이 일찍이 말했던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생각하는 인간은 분명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안다. 죽음이 삶을 결정하고 거꾸로 삶의 과정이 죽음을 평가하게 한다면 내 삶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런 질문에도 직면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그저 이 모든 것을 신에 대한 원망으로 돌리고 싶었다. 그것이 훨씬 수월한 일이니까. 문제는 그렇게 책임을 신에게 돌려버림으로써 실은 나는 성장할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아빠스님이 이야기했던 "이 고통 속에서 신이 내게 물으시는 것"을 나는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인간은 고통을 겪을 때 실은 내가 이 고통 때문에 뜻밖에도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165-166쪽
요한 수사님, 악은 수많은 얼굴로 다가옵니다. 사실 사람인 우리가 그것을 식별하는 것은 은총에 의지할 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도 있어요. 우리가 사랑하려고 할 때 그 모든 사랑을 무의미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모든 폭력, 모든 설득, 모든 수사는 악입니다. 너 한 사람이 무슨 소용이야, 네가 좀 애쓴다고 누가 바뀌겠어, 네가 사랑한들 아는 사람 하나도 없어... 속삭이는 모든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어쩌면 옥사덕이나 남미 로메로의 피살이나 유신 혹은 광주 학살 같은 것은 아직 난이도가 높은 것은 아닐지도 모르죠. 이제 악은 다른 얼굴로 우리에게 달려듭니다. 소리 없는 풀 모기처럼 우리를 각개격파하러 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입니다, 그것은 무의미입니다.-239쪽
인간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모호함이다. 모호함 중에서도 진한 불행의 기미를 가진 모호함이다. 기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 그것도 그 사건의 여파에 대한 불신, 모호함 때문이며, 그보다 더, 가족의 죽음보다 더 실종이 고통스러운 까닭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차악(次惡)의 희망인 체념조차 불가능하게 하니까. -250쪽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그리고 마음보다는 몸이 언제나 먼저 정직하게 상황에 대면한다. 머리로서는 그녀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는 그 메일을 읽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255쪽
사랑은 소낙비처럼 그냥 오는 거란다. 등산 도중 산등성이에서 앉아서 쉴 때 난데없이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처럼 그냥 홀연히 다가오는 거야. 선택하는지 안 하는지가 우리의 몫이라고 하지. 그러나 거부할 수 있다면 그건 어쩌면 사랑이 아닐지도 몰라. 그냥 바람일지도. 어린 나이였고 세상에 태어나 처음이었지만 나는 그것이 운명이라고 느꼈다. 너도 짐작하겠지만 나는 그런 종류의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너도 알잖니? 나는 갑각류와 같은 사람이란다. 나는 뼈가 피부 밖에 있는 살미야. 뼈가 피부 밖에 있기에 웬만하면 찔리지 않는다. 그러나 한번 찔리고 나면 그것을 빼낼 방법이 없단다. 그런 면에서 그토록 상처 입는 연한 피부를 뼈 밖으로 내어놓고 다니는 포유류가 진화의 우위에 서 있는 건 너무 옳다. 그들은 자주 찔리긴 하지만 곧 떼어낼 수 있고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하면 되니까. 그런 나에게 그 사랑은 치명적이었단다.-263쪽
누군가 그랬다. 수도 생활은 포기하고 기도하는 것이라고. 그러고 나서 다시 또 포기하고 기도하고, 또 포기하고 기도하고... 그 말씀을 듣던 할머니가 그랬다. "수도 생활만 그렇겠니? 사는 게 그렇단다. 포기하고 기도하고 포기하고 기도하고...... 밤새 포기한다고, 버리겠다고 기도하고 그러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밤사이에 누가 다시 주워다가 그 욕망들을 다시 내 안에 넣어놓는지 나는 다시 처음부터 비우고 버린단다. 매일 말이다."-318쪽
당신 자신을 그대로 놓아주세요. 힘을 빼고 즐거워하세요. 그러면 어떤 항구에 도착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절대 미리 모든 것을 가르쳐주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가르쳐주셨습니다. 반드시, 반드시 고통을 통해서만 우리는 성장한다는 것을요.-355쪽
시간은 모든 것을 마모시킨다. 본질적인 것만 남기고. 결국 젊음도 본질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것도 마모되니까. 그러나 그들을 향한 내 마음은 마모되지 않았다. 내 사랑은 진심이었다. -371쪽
"삶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과 같다."-3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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