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없는 진보 - 진보의 최후 집권 전략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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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계몽의식`과 `자뻑`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 주고 있다. 결국 자신들도 보수와 똑같은 권력쟁탈을 하면서도, 지난날 반독재의 편에 섰다는 경험 하나로 도덕적인 미화를 하며, 패배에 대해서는 오히려 국민들의 무지, 무관심, 무기력을 탓하는 모습으로는 더이상 정치생명을 이어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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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서재 - 최재천 교수와 함께 떠나는 꿈과 지식의 탐험 우리 시대 아이콘의 서재 1
최재천 지음 / 명진출판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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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책의 제목과 그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를 본다. `서재`라는 말을 쓰기에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책의 양이나 내용이 너무 빈약하다.(이런 점에서는 차라리 `통섭의 식탁`을 권한다) 과학자가 읽은 책들보다는 통섭을 소개한 과학자 최재천의 성장과정을 보기에 오히려 적절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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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공부법 - 통찰력을 길러주는
안상헌 지음 / 북포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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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적을 한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새로운 삶을 위한 문장을 얻는 것!"-23쪽

모든 공부는 자신이 부족하다는 사실,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공부가 시작된다는 것은 소크라테스가 찾아낸 보편적 진리 중 하나였다.
그렇게 해서 얻은 삶의 진실이 있다면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인생을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말로 실천이 철학자의 중요한 태도임을 지적한다. 진실을 발견하고 그것을 실천한다는 것이 그가 생각한 삶의 진리였다.-99-100쪽

삶을 변화시키려면 세계관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조그만 삶의 기술을 바꾸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다. 환경파수꾼 톰 하트만은 그의 책 <우리 문명의 마지막 시간들>에서 세계관을 전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렇게 이야기 한다.
-150쪽

우리가 겪는 문제들은 과학기술이나 식량생산, 언론 폭력같이 우리가 저지른 일들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들은 우리 문화에서, 말하자면 세계관에서 생겼다. 세상 위기에 대한 대부분의 해결책이 비현실적인 이유는 그것들이 문제를 일으킨 바로 그 세계관에서 나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재활용이 세상을 구하지 못하고, 산아제한이 세상을 구하지는 못하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열대우림의 보전이 세상을 구하지는 못한다. 설사 이 모든 바람직한 실천들이 완벽하게 이루어진다 해도, 우리의 근본문제는 여전히 남을 것이고, 불가피하게 되풀이 될 것이다. 설사 상온 핵융합 방식이 성공하여 석유 사용을 그만두고 모든 사라에게 무료로 전기를 공급해준다 해도, 그것이 '세상을 구하지는' 못할 것이다. 진실로 의미 있는 변화가 이루어지려면 세상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자연스러운 인구조절과 산림복구, 공동체의 재챙조, 물자 낭비의 감소는 이런 시각변화가 있고서야 가능하다.-151쪽

모든 공부의 시작과 마무리는 자기성찰과 수양이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제대로 된 공부가 될 수 없고 공부한 것을 갈고 닦지 않으면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 공부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자신이 행동하고 있는 것의 차이를 발견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154쪽

소설가 김연수는 <우리가 보낸 순간>에서 시를 읽는 즐거움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원래 좋아서 책을 읽는 사람이다. 이 좋다는 것의 의미는 참으로 오묘하다. 재미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재미가 없는데도 좋을 때가 있었다. 수학책도 즐겨 읽는데, 이건 내게 전적으로 무용한 세계에 대해서 알아간다는 즐거움 때문에 읽는다. 세상에는 이런 종류의 즐거움도 있는 것이다. 시를 읽는 즐거움 역시 오로지 무용하다는 것에서 비롯한다. 다른 이유 없이 오직 그 언어만을 순수하게 소비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훨씬 탐욕적인 독서일지도 모르겠다. 소비할 것은 언어뿐이므로 나는 게걸스럽게 시의 문장들을 받아들인다. 하루 중 얼마간을 그런 시간으로 할애하면 내 인산은 약간 고귀해진다.-226-227쪽

훌륭한 독서가는 준비된 독서가다. 텍스트가 주는 변용의 힘을 얻을 준비가 된 사람은 무엇을 읽든 자신의 이야기처럼 읽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필요한 메시지를 가지고 현실로 내려와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나간다. 그러자면 이야기를 자기 삶에 대입해보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고, 발견한 메시지를 일상을 통해 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287쪽

영화 <트로이>에서 주인공 아킬레우스는 포로로 잡은 트로이의 공주 브뤼세이스에게 인간의 매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네게 아무도 모르는 비밀 한 가지를 얘기해줄까? 신은 인간을 질투해. 왜냐하면 인간은 언젠가는 죽을 운명이거든."
그의 말 속에는 인간과 인생에 대한 진실이 담겨 있다. 인간은 죽을 운명이라는 것과 그것으로 말미암아 인생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영원히 사는 것은 아름답지 않다. 영원히 사는 것은 현재의 가치를 무너뜨린다. 영원한 삶에게 지금은 소중하지 않다. 당연히 삶 전체도 소중하지 않다. 언젠가 죽을 운명이므로 지금이 소중하고 인생이 아름다울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소중하고 아름답다. -290쪽

내성적인 사람은 의미부여를 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생각이 안을 향해 흐르므로 자기 안에서 어떤 의미가 있어야만 필요한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외향적인 사람은 특별한 이유나 의미부여 없이도 무엇인가를 한다. 그들은 이유를 따지지 않고 그냥 한다. 가끔 외향적인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러면서도 한심해보였다.-321쪽

죽음의 수용소 생활을 통해서 빅터 플랭클은 중대한 발견 하나를 하게 된다. 그것은 니체가 남긴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322-3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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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 - 글 못 쓰는 겁쟁이들을 위한 즐거운 창작 교실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3월
절판


하지만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도 우리는 살아가고 있고, '인간'이란 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인간이 되는 건(이따금 정말 그런지 아닌지 미심쩍은 경우가 있다고는 해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것 자체로, 혹은 그것 자체를 통해서만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한다면, 정말로 무언가를 알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언제라도,
'그 무언가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라도 일단 무언가를 해본다'라는 게 아닐까요.-31쪽

소설로 쓸 수 있는 것은 정말로 알고 있는 것, 그것뿐이다.-66쪽

이야기는 쓰는 것이 아니다. 붙잡는 것이다.-72쪽

어떤 것에 대해(소설에 대해서라고 해도 좋겠지요. 혹은 이제부터 쓰려고 하는 무언가에 대해. 만일 무엇을 쓸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면, 대체 무엇을 써야 좋을지에 대해) 철저히 생각해본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게 되었다면, 그때는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본다.-78쪽

자신의 이야기를 쓰십시오. 다만, 아주 조금 즐거운 거짓말을 넣어서.-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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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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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아무리 옷을 껴입어도 내 뼈와 살의 원천을 투시하는 어두운 거울 같았다. 그것은 일견 두려운 일이었다. 수도 생활을 각오하며 그 고요함을 동경했으나 침묵의 이 막강한 힘은 예측하지 못했었다. 실제로 그랬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머뭇거리면서 되돌아보았던 것 같다. 내가 타고 온 기차가 떠나는 기적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나는 내 짧은 젊음을 기차에 두고 내린 것 같았다. 소음들과 소망을, 열락과 구토를, 초조와 울음을, 선망과 질투들을...... 다시 길고 부드러운 어둠이 내려앉은 복도로 한발을 내딛는데 젖혀진 소음의 휘장 틈으로 처음 알몸뚱이의 내 영혼이 언뜻 보였다.-13쪽

"하필이면 책을 폈는데 이런 구절이 나오는 거야. '하느님이 인간이 되셨다. 오, 인간이여. 네가 인간임을 알라! 너의 완전한 겸손은 네가 너를 아는 데 있다.' 휴우, 이럴 때가 제일 힘들어. 베네딕도 성인은 '네가 오만을 가지고 선을 행하느니 차라리 겸손으로 실수를 해라' 하셨다는데 낮에 안젤로에게 화를 냈던 게 맘에 걸리네. 요한, 난 어리석은 사람들, 머리 안 돌아가는 사람들, 같은 말 두 번 이상 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참아내지 못하겠어. 생각해봤지, 나 머리 좋아, 나 말귀 금방 알아들어. 그런데 그거 내가 노력해서 얻은 거 아니잖아. 다 하느님께 공짜로 받은 거잖아. 안젤로 머리 별로 안 좋은 거 그 애 탓 아니잖아. 하지만 요한, 공부하지 않는 거, 게으른 거,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는 걸 보면 참기가 힘이 들어...... 하지만 내가 뭐라고 그 사람들에게 화를 벌컥거리면서 내고 있냔 말이야. 이런 생각 하면 내가 너무 싫고 화가 난다구!"-42-43쪽

머리만으로 못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아아 지금 그런 무모하고 충만한 자신감을 생각하면 사실 약간 오싹하기도 하고 설핏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그런 무모함이 아니라면 누가 감히 히말라야에 오르고, 누가 바다 깊숙한 곳을 탐험하러 떠나며, 누가 빙하의 극지에 과학 기지를 세우고, 누가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터무니 없는 말로 한 여자를 제 생(生) 안으로 데려온단 말인가.-49쪽

비판이 견디기 힘든 이유는 그 비판 속에 비판자의 비난이 교묘하게 숨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판에 대하여 화를 내는 것은 그 비판이 나의 행위가 아니라 행위하는 나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그 비판이라는 것이 비난을 내포하지 않고 오로지 사랑과 염려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인류는 얼마나 많은 회개하는 사람을 만들어냈을까?-68쪽

"긴 인생에서 겨우 한 해 늦추어졌을 뿐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잖아요. 우리 수련수사 때 수련장 신부님 말씀하신 거 전 가끔 생각해요. 나가는 것도 좋다. 길을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요한 결정은 반드시 평화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69쪽

"어떤 사람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어떤 궁극적인 의미, 다시 말해 초월적인 의미를 가져야만 한다. 인간은 그 초월적인 의미를 알 수 없지만 그저 믿어야만 한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모르 파티(amor fati), 즉 운명에 대한 사랑이다." 훗날 나는 빅토르 프랑클이 죽음의 수용소를 체험하고 나와 죽기 전에 쓴 그의 자서전에서 이와 같은 글을 읽고 한동안 눈길을 떼지 못한 적이 있었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운명과 대결한다고 해도, 우리는 인간의 능력 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인 능력, 즉 인간의 고통을 인간의 업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증언하면서 삶의 의미를 쟁취할 수 있다."-162-163쪽

태어나기 전에 인간에게 최소한 열 달을 준비하게 하는 신은 죽을 때는 아무 준비도 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삶 전체가 죽음에 대한 준비라고 성인들이 일찍이 말했던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생각하는 인간은 분명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안다. 죽음이 삶을 결정하고 거꾸로 삶의 과정이 죽음을 평가하게 한다면 내 삶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런 질문에도 직면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그저 이 모든 것을 신에 대한 원망으로 돌리고 싶었다. 그것이 훨씬 수월한 일이니까. 문제는 그렇게 책임을 신에게 돌려버림으로써 실은 나는 성장할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아빠스님이 이야기했던 "이 고통 속에서 신이 내게 물으시는 것"을 나는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인간은 고통을 겪을 때 실은 내가 이 고통 때문에 뜻밖에도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165-166쪽

요한 수사님, 악은 수많은 얼굴로 다가옵니다. 사실 사람인 우리가 그것을 식별하는 것은 은총에 의지할 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도 있어요. 우리가 사랑하려고 할 때 그 모든 사랑을 무의미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모든 폭력, 모든 설득, 모든 수사는 악입니다. 너 한 사람이 무슨 소용이야, 네가 좀 애쓴다고 누가 바뀌겠어, 네가 사랑한들 아는 사람 하나도 없어... 속삭이는 모든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어쩌면 옥사덕이나 남미 로메로의 피살이나 유신 혹은 광주 학살 같은 것은 아직 난이도가 높은 것은 아닐지도 모르죠. 이제 악은 다른 얼굴로 우리에게 달려듭니다. 소리 없는 풀 모기처럼 우리를 각개격파하러 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입니다, 그것은 무의미입니다.-239쪽

인간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모호함이다. 모호함 중에서도 진한 불행의 기미를 가진 모호함이다. 기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 그것도 그 사건의 여파에 대한 불신, 모호함 때문이며, 그보다 더, 가족의 죽음보다 더 실종이 고통스러운 까닭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차악(次惡)의 희망인 체념조차 불가능하게 하니까. -250쪽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그리고 마음보다는 몸이 언제나 먼저 정직하게 상황에 대면한다. 머리로서는 그녀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는 그 메일을 읽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255쪽

사랑은 소낙비처럼 그냥 오는 거란다. 등산 도중 산등성이에서 앉아서 쉴 때 난데없이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처럼 그냥 홀연히 다가오는 거야. 선택하는지 안 하는지가 우리의 몫이라고 하지. 그러나 거부할 수 있다면 그건 어쩌면 사랑이 아닐지도 몰라. 그냥 바람일지도. 어린 나이였고 세상에 태어나 처음이었지만 나는 그것이 운명이라고 느꼈다.
너도 짐작하겠지만 나는 그런 종류의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너도 알잖니? 나는 갑각류와 같은 사람이란다. 나는 뼈가 피부 밖에 있는 살미야. 뼈가 피부 밖에 있기에 웬만하면 찔리지 않는다. 그러나 한번 찔리고 나면 그것을 빼낼 방법이 없단다. 그런 면에서 그토록 상처 입는 연한 피부를 뼈 밖으로 내어놓고 다니는 포유류가 진화의 우위에 서 있는 건 너무 옳다. 그들은 자주 찔리긴 하지만 곧 떼어낼 수 있고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하면 되니까. 그런 나에게 그 사랑은 치명적이었단다.-263쪽

누군가 그랬다. 수도 생활은 포기하고 기도하는 것이라고. 그러고 나서 다시 또 포기하고 기도하고, 또 포기하고 기도하고... 그 말씀을 듣던 할머니가 그랬다.
"수도 생활만 그렇겠니? 사는 게 그렇단다. 포기하고 기도하고 포기하고 기도하고...... 밤새 포기한다고, 버리겠다고 기도하고 그러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밤사이에 누가 다시 주워다가 그 욕망들을 다시 내 안에 넣어놓는지 나는 다시 처음부터 비우고 버린단다. 매일 말이다."-318쪽

당신 자신을 그대로 놓아주세요. 힘을 빼고 즐거워하세요. 그러면 어떤 항구에 도착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절대 미리 모든 것을 가르쳐주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가르쳐주셨습니다. 반드시, 반드시 고통을 통해서만 우리는 성장한다는 것을요.-355쪽

시간은 모든 것을 마모시킨다. 본질적인 것만 남기고. 결국 젊음도 본질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것도 마모되니까. 그러나 그들을 향한 내 마음은 마모되지 않았다. 내 사랑은 진심이었다. -371쪽

"삶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과 같다."-3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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