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내공 - 인생의 품격을 높이는 읽기.쓰기.생각하기
박민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문제는 자기 철학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다. 내공의 문제는 결국 철학의 문제인 것이다. 철학이란 `일관성, 즉 일정한 기준과 지향을 갖춘 체계적인 생각`이다. - 24쪽

그렇다면 지성인이 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 혼자 탐구할 수 있느냐, 없느냐다. 그들은 그냥 많이 배워서 지성인이 된 것이 아니라, 그를 바탕으로 `독학 능력`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지성인이 된 것이다. 지성인의 핵심적 능력은 독학 능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61쪽

라인홀드 니버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도덕적인 개인이 비도덕적인 집단의 사업에 동참"하는 일이 드물지 않음을 통찰한 바 있다. 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지적 탁월성의 본래적 의미는 비판 정신이며 지적 독립성이다"라고 말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권력과 지성인>에서 "권력에 흡수되거나 고용되지 않고 언제나 주변에 머물러야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지성인이 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모두 지성인의 독립성을 강조한 말들이다. 어느 집단의 논리에도 쉽게 포섬되지 않는 지적 독립성은 지성인이 되는 데 있어서 핵심 덕목이다. - 106쪽

자신의 문제에 대한 책을 찾아 읽는 것은 삶의 태도의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그런 책을 찾아 읽는 것 자체가 문제를 스스로 분석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체적인 문제 해결 능력이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는 넓다. 나는 작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넓어도 `나`를 통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 나는 세상이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다. 내 안에는 나 자신에 대한 이미지와 세상에 대한 이미지가 함께 들어 있다. 그러므로 세상이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인 나 자신에 대한 관심과 성찰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은 가장 효과적으로 자신의 지력을 향상시켜 나가는 일이며, 나를 개선하고 세계를 개선해 나가는 것의 출발점이다. - 163쪽

좋아하는 작가의 전작을 읽는 것, 좋아하는 작가가 자주 참고하는 저자의 책을 읽는 것, 같은 주제의 책을 잇달아 읽는 것, 이 세 가지 방법이 `네트워크 독서법`이다. 한마디로 `네트워크 독서법`이란 서로 관련 있는 책을 잇달아 읽는 것을 말한다. - 185쪽

미국의 저널리스크 월터 리프먼은 이렇게 말했다. "모두가 비슷하게 생각할 때, 아무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고등교육을 받은 만큼 습득한 지식의 양은 적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 209쪽

`독창성`이란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아래를 보자.
에드워드 사이드 - "작가들은 점점 독창적으로 글을 쓴다고 생각하는 대신, 남의 글을 다시 고쳐 쓴다고 생각한다."
움베르토 에코 - "책들은 항상 다른 책들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모든 이야기는 이미 행해진 이야기를 다시 반복하고 있다."
자크 에르만 - "글을 쓴다는 것은 곧 남의 글을 인용하는 것이다."
이합 핫산 - "글쓰기는 표절이 되고, 말하기는 인용이 된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창작 행위는 표절 행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 "모든 글쓰기는 고쳐 쓰기다."
강준만 - "창작자가 아닌 편집자가 되라." - 238, 239쪽

독일의 사상가 훔볼트는 대학을 `자유롭고 평등한 학문 공동체`로 규정했다. 대학은 흔히 `상아탑(ivory tower)`이라 불리는데, `현실과 거리를 둔 정신적 행동의 장소`라는 뜻이다. 그것은 현실적 이해관계와 거리를 둔다는 것, 현실에 대해 관조와 성찰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탐구하는 공간이라는 말이다. 대학이라는 공간이 그 자체로 `인문적 성격`을 가짐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학은 `학문 공동체`도, 현실적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적인 `정신적 행동의 장소`도 아니다. 오히려 현실적 이해가 가장 유착된 기관이다. 대학은 교육과 학문의 공공성을 잃어가고 있다. - 309쪽

인간에게는 거대한 두 과제가 있다. 인생을 항해라고 하자. 나는 배를 타고 떠난다. 하늘의 별자리는 항해의 지도다. 그것을 보면 내가 나아가는 방향을 알 수 있고, 또 내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별만 쳐다보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인생에는 항상 갑작스럽게 닥쳐오는 파도가 있게 마련이다. 배가 파도에 전복되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배가 전복되지 않게 신경 써야 한다. 그렇다고 눈앞에 닥쳐오는 파도만 신경 써서도 안 된다. 그러면 배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알 수 없고, 자칫 길을 잃게 된다.
인생에는 별자리를 보는 것과 눈앞의 파도를 보는 것 둘 다 필요하다. 배가 목적지에 잘 도착하려면 그 두 과제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별자리만 신경 쓰다 배가 전복되는 경우보다 파도에만 신경 쓰다 길을 잃는 경우가 더 많다. 현대인들은 단기적인 생존과 전망을 추구하는 데 익숙하다. 그런 까닭에 배는 전복되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나가가지만, 그러는 동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이 길이 맞는지를 알 수 없게 된다. 이것이 현대인이 처한 실존적 상황이다. - 314, 315쪽

푸코는 이런 현상을 두고 "보편적 지성인이 자신의 전문성을 사용하는 `특수` 지식인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전문가가 지배하는 사회란 무능에 대한 자인(自認)이고, 필요성에 대한 복종이다. 그 결과 여러 관건을 통합하는 일이, 그 일을 성취시킬 능력이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손에 맡겨진다. 그 결과 사회가 전문적인 분야에 있어서는 훌륭하게 기능하고 더욱 진보해가지만, 전체가 나아가야 할 비전의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퇴보하게 된다.
현대사회는 문제는 많이 발생하는데 그것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다. - 322, 323쪽

마르크스는 "그들은 자신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면서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환경 문제에 관한 한, 독일의 이론가 페터 슬로터다이크의 말이 더 옳아 보인다. 그는 마르크스의 말을 이렇게 바꾸었다. "그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잘 알지만, 여전히 그렇게 행동한다." 현대인들은 갈수록 환경이 심각해지고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리고 환경이 더 이상 오염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으로 환경을 오염시키는 데 동참한다. - 343쪽

화폐경제 속에 사는 우리는 화폐가 부(富)인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진정한 부는 자연이다. 인간은 상품의 가치가 노동에서 창출된다고 생각하지만, 그 노동도 결국 자연을 다소 변형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인간은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도 만들어낼 재간이 없다. 인간은 경제적 이득을 얻지만, 궁극적으로 그보다 훨씬 많은 환경비용을 발생시키고 있다. 오늘날의 경제성장은 부를 생산하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소멸시켜가는 반(反)경제로 나아가고 있다. - 346쪽

사람들은 부를 소유할 수 있지만, 위험은 피할 수 없다. 빈곤은 위계적이짐나, 스모그는 민주적이다. - 3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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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쓰레기 시멘트의 비밀 - 발암물질에서 방사능까지, 당신의 집이 위험하다!
최병성 지음 / 이상북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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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이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쓰레기 시멘트 회사들, 이들의 관리 감독자가 아닌 대변인을 자처하며 쓰레기 시멘트를 제도적으로 비호하는 환경부. 정말, 무슨 나라가 이 모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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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쓰레기 시멘트의 비밀 - 발암물질에서 방사능까지, 당신의 집이 위험하다!
최병성 지음 / 이상북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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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처리하는 방법에는 `매립`과 `소각` 두 가지가 있다. 여기에 환경부가 새로운 쓰레기 해결책으로 선택한 것이 시멘트다. 시멘트는 제조 과정에서 많은 열량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소각재와 하수 슬러지(Sludge)를 비롯해 온갖 비가연성 산업쓰레기까지 원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 19쪽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든 시멘트 공장들은 쓰레기로 시멘트를 만든다. 폐타이어, 폐고무, 폐비닐, 폐유 등의 가연성 쓰레기와 소각재, 하수 슬러지, 공장의 슬러지, 제철소 슬래그(Slag) 등의 비가연성 쓰레기를 석회석과 혼합해 태워 만든 것이 우리의 집을 짓는 시멘트다. - 40쪽

시멘트 공장은 홍보물을 통해 쓰레기 시멘트는 천연자원 보존과 매립장 수명을 연장하는 "시멘트 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누가 시멘트 공장에게 환경을 생각하는 사회적 책임을 주었는가? 시멘트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은 딱 하나다.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유해물질 없는 깨끗한 시멘트를 만드는 것뿐이다.
일본에서 쓰레기처리비를 준다고 일본의 석탄재를 수입해 오는 시멘트 공장들이다. 돈을 위해서라면 일본의 쓰레기까지 수입해 오는 비양심적인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운운할 자격이 있을까? 쓰레기 시멘트를 합리화하는 변명에 불과하다. - 50쪽

최근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세계 여러 나라들이 방사능 오염을 우려해 일본산 고철 수입을 중단했다. 그러나 한국은 방사능 오염의 우려가 있는 값싼 일본산 고철 수입이 증가했다. 그러나 한국은 방사능 오염의 우려가 있는 값싼 일본산 고철 수입이 증가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방사능에 오염된 고철이 적발되지 않도록 방사능 검사기가 설치돼 있지 않은 전북 군산항 등을 통해 일본산 고철이 수입되었다는 사실이다.
방사능 고철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방사능 고철의 무분별한 수입은 그냥 넘길 문제가 아니다. 고철 쓰레기가 섞인 아스팔트뿐만 아니라, 방사능 고철로 만든 제품들은 철근과 자동차,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주방용품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무관심과 돈벌이만 생각하는 업자들 덕에 우리의 일상이 방사능에 노출되고 있다. - 57쪽

어떻게 시멘트에서 방사능이 나올 가능성이 있을까? 고철을 용광로에 녹였을 때 발생하는 슬래그를 섞은 아스팔트에서 방사능이 검출된 것처럼, 시멘트 제조에도 고철 슬래그를 비롯해 온갖 쓰레기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시멘트가 석회석 돌가루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집 짓는 데 사용되는 모든 시멘트는 석회석과 함께 전기 전자 자동차 반도체 석유화학 등의 공장에서 발생하는 산업폐기물을 섞어 만든다. - 58쪽

원래 시멘트란 석회석에 점토, 철광석, 규석을 섞어 유연탄으로 1400도 고온에 태워 만든다. 그러나 지금은 `쓰레기 재활용`이라는 미명하에 점토 대신 석탄재와 하수 슬러지, 소각재, 각종 공장의 오니가 사용되고, 철광석과 규석 대신 제철로 고철에서 발생한 쓰레기인 슬래그와 폐주물사 등이 사용된다. 그리고 유연탄 대신 폐타이어, 폐고무, 폐비닐, 폐유 등이 사용한다.
석회석과 소각재, 하수 슬러지, 공장 슬러지, 슬래그 등의 각종 비가연성 쓰레기와 폐타이어, 폐고무 등의 가연성 폐기물을 혼합해 태우고 난 재가 우리의 집을 짓는 시멘트가 된다. 그 결과 쓰레기로 만든 시멘트에는 발암물질과 유해 중금속이 가득하다. 바로 이 때문에 시멘트에 방사능이 잔존할 가능성이 있다. - 59쪽

환경부가 국내 시멘트의 유해성을 조사하고도 감추고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다. 수소문 끝에 입수한 보고서의 실체는 충격이었다. 국내 시멘트 10개 중 6개 제품이 지정폐기물 기준보다 발암물질인 6가크롬을 더 많이 함유하고 있었다. 국내 시멘트 제품 60퍼센트가 지정폐기물보다 발암물질이 많다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쓰레기 시멘트를 허가한 당사자인 환경부가 져야 하니, 환경부로서는 보고서를 감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폐기물관리법에 따르면, 발암물질 1.5mg/kg이 넘으면 유독성 지정폐기물로 지정해 따로 매립하도록 정한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집을 짓는 시멘트에서 `지정폐기물`의 기준치보다 많은 발암물질이 검출된 것이다. 그것도 한두 제품이 아니라 조사 대상의 60퍼센트였다. 이는 아파트 열 채 중 여섯 채는 지정폐기물보다 더 유독한 발암 시멘트로 지어졌다는 말과 같다. - 62, 63쪽

`중국산 시멘트가 국산 시멘트보다 안전하다`는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국내 모든 시멘트와 중국산 시멘트를 구입해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 유해물질 조사를 의뢰했다. 중국산 시멘트에서는 발암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는데, 국산 시멘트 중 동양시멘트에서 발암물질 6가크롬이 무려 110ppm 검출되었다. 환경부가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기준 20ppm의 5배가 넘는 수치였다. - 70쪽

중국은 1999년 6월 전국에 8000여 개가 넘는 시멘트 공장의 품질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4000여 개의 공장을 폐쇄했다. 놀랍게도 같은 해인 1999년 8월, 한국은 IMF로 경영이 어려워진 시멘트 공장들을 위해 쓰레기로 시멘트를 만들도록 환경부가 허가해 주었다. 중국 시멘트와 국산 시멘트의 유해물질 차이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시멘트 내의 유해물질은 기술력이 아니라 쓰레기 사용 여부에 달렸다. 만약 환경부가 산적한 폐기물 처리를 위해 시멘트에 쓰레기를 사용하도록 허가했다면, 쓰레기 사용기준과 시멘트 제품의 안전기준을 정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유해물질 덩어리인 소각재가 시멘트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경부는 시멘트 공장들이 쓰레기로 시멘트를 만들어 돈을 벌 수 있게 배려하면서 10년이 되도록 단 하나의 쓰레기 사용기준도 만들지 않았다. - 73쪽

예전엔 석회석에 점토와 철광석, 규석을 혼합해 유연탄에 구워 시멘트를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석회석을 뺀 나머지가 모두 쓰레기로 대체되었다. 석회석에 하수 슬러지, 철 슬래그, 폐주물사, 소각재, 공장 오니 등의 비가연성 쓰레기와 폐타이어, 폐고무, 폐유 등의 가연성 쓰레기를 혼합해 소각하고 난 재가 바로 우리가 사는 집을 짓는 시멘트가 된다. 자원 재활용이라는 명분 아래 전기, 전자, 반도체, 석유화학, 제철 등 온갖 공장의 쓰레기로 시멘트를 만드는 현실이 천연광물로 시멘트를 만들던 예전과 달라진 점이다.
온갖 산업 쓰레기로 만들었으니 쓰레기 안의 그 많은 유해물질이 시멘트 안에 잔류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시멘트 안의 유해물질은 발암물질인 6가크롬만이 아니다. 또 다른 종류의 발암물질인 비소As를 비롯해 크롬Cr, 납Pb, 니켈Ni, 구리Cu, 수은Hg, 바륨Ba 등 시멘트 안엔 중금속들로 가득하다. - 82, 83쪽

2009년 10월, 환경부가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보고한 업무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시멘트에는 발암물질인 비소가 최대 489.2ppm, 납이 최대 1만 1800ppm 검출되었다고 밝혔다. 발암물질 6가크롬뿐 아니라 유독물인 비소와납으로 가득한 시멘트가 국민 건강에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 83쪽

그동안 환경부는 시멘트에 아무리 유해물질이 많아도 굳으면 절대 안전하다고 주장해 왔다. `굳으면 안전하다`는 막연한 가설 하나만 믿고 온갖 쓰레기로 시멘트를 만들어왔던 것이다. 환경부의 주장처럼, 정말 시멘트가 굳으면 시멘트 안에 발암물질과 유해물질이 아무리 많아도 인체에 아무 해가 없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시멘트는 크롬 숟가락처럼 완전물질이 아니다. 쉽게 부서지고 가루가 날리며 물을 흡수하는 불완전물질이다. - 88쪽

시멘트는 결코 숟가락처럼 완전한 물질이 아니다. 시멘트는 살아 숨 쉬는 생명체와 같다. 집 안에 널어놓은 빨래가 마르는 것은 시멘트가 그 습기를 흡수하기 때문이다. 시멘트는 실내의 습기를 흡수하고 또 다시 건조되며 끊임없이 화학적 작용을 반복하는 불완전한 위험물질이다. - 92쪽

그런데 몇해 전 한 폐기물 운반업자로부터 제보가 들어왔다.
"목사님, 지금 환경부는 시멘트가 많이 개선되었다고 좋아하는데, 자신들이 속고 있는 걸 몰라요. 시멘트가 좋아진 게 아니라 시멘트에서 6가크롬이 검출되지 않도록 약품ㅇ르 섞은 거에요."
너무도 충격적인 제보였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국민을 기만한 범죄다. 자세히 알아보니 시멘트를 생산하는 마지막 분쇄과정에 6가크롬이 검출되지 않는 약품을 섞는다고 했다. - 97, 98쪽

쓰레기로 어떻게 시멘트를 만드는지 그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자. 원래 시멘트는 석회석에 점토, 철광석, 규석을 혼합해 가로길이 60-70미터의 긴 원통형 소성로에서 유연탄으로 1400도 고온에 태워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석회석을 뺀 나머지가 모두 쓰레기로 대체되었다. 점토, 철광석, 규석 대신 소각재, 하수 슬러지, 제철소 슬래그, 폐주물사, 공장 오니 등 불에 타지 않는 쓰레기들이 `원료대체`라는 이름으로 소성로에 들어간다. 그리고 유연탄 대신 폐타이어, 폐고무, 폐유, 폐비닐 등의 불타는 가연성 쓰레기가 `연료대체`라는 명목으로 사용된다. - 103쪽

철을 녹이는 곳은 용광로라 하고, 시멘트가 만들어지는 곳은 소성로라 부른다. 시멘트 소성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보일러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보일러처럼 한쪽 끝에서 가열해서는 가로길리 60-70미터의 원통형 소성로 온도를 1400도로 유지할 수 없다. 그래서 석회석과 소각재, 분진, 석탄재, 슬래그 등과 폐타이어, 폐고무, 폐비닐 등을 혼합해 소성로 안에 함께 투입한다. 소성로 안에서 투입된 폐타이어 등이 석회석과 함께 불타며 소성로 안 온도를 높여주고, 다 타고 난 소각재가 시멘트다. 석회석과 혼합한 온갖 쓰레기를 소각하고 난 재가 오늘날 우리가 집을 짓는 시멘트라고 생각하면 된다. - 104쪽

시멘트 공장은 쓰레기 소각장으로 인정받아 쓰레기 처리비를 버는 것만으론 성에 차지 않았다. 위 서류엔 환경부 장관에게 쓰레기로 시멘트를 만드는데 필요한 기술개발을 위해 정책자금 지원을 해달라는 요청까지 하고 있다. 환경부는 건설경기 악화로 다 죽어가던 시멘트 공장들이 쓰레기 처리비를 받아 연명하도록 법을 개정해 주었을 뿐 아니라, 쓰레기 시멘트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도록 정책자금까지 안겨주었다.
시멘트 공장을 위해 이토록 배려해준 환경부는 정작 쓰레기 시멘트가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조사해 본 적이 없다. 쓰레기 시멘트가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조사는 고사하고, 단 하나의 `쓰레기 사용기준`도 `시멘트제품 안전기준`도 없었다. 그저 시멘트 공장의 돈벌이를 위해 쓰레기 사용허가만 내주었다.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발암물질 가득한 시멘트로 만든 집에서 살아가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환경부다. - 106, 107쪽

시멘트 공장은 쓰레기로 시멘트를 만들며 `대용량이다. 소각 후 소각재라는 2차 폐기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장점이라고 자랑한다. 이게 과연 장점일까?
시멘트 공장이 자랑하는 장점을 다시 해석하면, `시멘트 공장은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사용한다. 그러나 그 많은 쓰레기를 소각해도 따로 처리할 소각재가 남지 않는다. 모든 소각재가 시멘트가 되기 때문이다`라는 말과 같다.
그동안 시멘트 공장은 스스로 최고의 쓰레기 소각시설이라고 자랑했다. 시멘트 소성로가 완벽한 쓰레기 처리시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쓰레기는 아무리 고온에 소각해도 유기물은 어느 정도 사라질지 모르지만 중금속은 그대로 잔존한다. 시멘트 토론회에서 이 문제를 지적하자, 토론자로 참석한 시멘트 공장 고위 임원이 다음과 같이 인정했다.
"질량보존의 법칙에 의해 시멘트 공장의 굴뚝을 통해 나가든지 시멘트 재에 남든지 두 개 중 하나입니다." - 112쪽

쓰레기 매립장에 묻힌 쓰레기는 최종처리된 쓰레기다. 최종처리된 쓰레기를 다시 캐내 중간처리업체를 통해 시멘트 공장에서 재활용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어느 법에서도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쓰레기의 안전한 재활용을 위해서는 쓰레기 발생처가 명확해야 한다. 그러나 청라지구에 묻힌 쓰레기는 30년 동안 마구 매립된 쓰레기들이다. 발생처는 고사하고 어떤 쓰레기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다. - 141쪽

쌍용양회가 일본에서 크롬 함유량이 7000mg/kg이 넘는 철 슬래그를 수입했다. 그러나 크롬 함량이 너무 높아 시멘트 중 발암불질이 다량 발생하자 2005년 4월, 스스로 수입을 중단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쌍용양회가 일본의 철 슬래그 수입을 중단하자, 동양시멘트가 일본으로 달려가 톤당 2-3만원의 쓰레기 처리비를 받고 그것을 국내로 들여온 것이다. - 146, 147쪽

한국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방사능 오염이 우려되는 일본 고철 수입이 오히려 증가한 이상한 나라다. 그뿐 아니다. 일본의 화력발전소 쓰레기인 석탄재를 수입하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다. 일본 환경성 홈페이지는 매년 폐기물 처리현황을 발표한다. 이중 석탄재 처리 현황을 보면, 수출 대상국이 `한국, 한국, 한국, 한국, 한국, 한국...`만 끝없이 이어진다. 일본 석탄재를 수입해 시멘트를 만드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뿐이다. -153, 154쪽

이런 충격 요법을 쓴 덕에 일본 폐기물의 한국 수입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힘들게 얻어낸 일본 쓰레기 독립은 고작 한 달 만에 끝났다. 대한민국 환경부 산업폐기물과 최종원 과장이 쓰레기를 보내달라고 구걸하는 공문을 일본 환경성에 보냈기 때문이다. 최 과장은 일본에 보낸 편지에서 지난번 일본 환경성에서 지역 주민(최병성)이 지적한 문제는 다 해결되었으니 다시 쓰레기를 수입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일을 한 나라의 환경부 직원이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은 과연 정상적인 나라일까? - 162, 163쪽

일본 쓰레기 수입으로 큰돈을 벌고 있던 시멘트 업계에게 수입금지는 막대한 손실을 의미했다. 게다가 정연만 환경부 자원순환국장은 국정감사에서 "이윤추구가 기업의 목적인데, 쓰레기 처리비를 더 많이 주는 일본에서 쓰레기를 수입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멘트 공장들이 일본에서 쓰레기 수입을 계속하려면 편법이 필요했다. 일본 쓰레기 수입에 대한 여론도 따갑고, 무언가 해야 했다. 그때 환경부가 만든 꼼수가 `수출입신고제`였다. 이전엔 누가 어떤 쓰레기를 얼마나 수입했는지 몰랐지만, 수출입신고제로 인해 폐기물 관리가 가능해졌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내가 원한 것은 `신고`가 아니라 `금지`였다.
환경부가 수출입신고제를 만들자 일본의 쓰레기업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제 합법적으로 악성 쓰레기를 한국으로 보낼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 180쪽

진폐증은 환경개선으로 우리 곁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질병이다. 그러나 광산이아 먼지 관련 직업에 근무한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연이어 진폐증이 발견되었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그것도 한두 시멘트 공장만이 아니라, 국내 모든 시멘트 공장 주변 마을 주민들에게 진폐증 환자가 대거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이다. 환경부 조사결과에 따른 시멘트 공장별 환자발생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삼척 동양시멘트: 광산 직업력 없는 진폐환자 17명, 만성폐쇄성폐질환자 278명.
- 단양 성신 한일 시멘트: 광산 직업력 없는 진폐환자 8명, 만성폐쇄성폐질환자 205명.
- 영월 쌍용 현대 아세아 시멘트: 광산 직업력 없는 진폐환자 3명, 만성폐쇄성폐질환자 211명.
- 강릉 한라 동해 쌍용양회: 광산 직업력 없는 진폐환자 3명, 만성폐쇄성폐질환자 228명.
- 장성 고려시멘트: 광산 직업력 없는 진폐환자 3명, 만성폐쇄성폐질환자 166명. - 209, 210쪽

국립환경과학원의 과장과 `쓰레기 시멘트`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던 중 환경부 자원순환국 국장의 입장을 전해 들었다. 요지는 이랬다.
"쓰레기로 시멘트를 만들지 않으면 그 많은 쓰레기를 매립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침출수 등으로 토양오염이 되지 않겠느냐, 쓰레기로 시멘트를 만들면 자원도 재활용하고 좋지 않냐."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무지한 자들이 환경부 요직에 앉아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무지가 아니라면 시멘트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다 보니 그런 구차한 변명이 나온 것이리라.
환경부 자원순환국장의 말대로, 쓰레기로 시멘트를 만들면 쓰레기를 치운 것이 될까? 그렇지 않다. 쓰레기 시멘트로 지은 아파트가 과연 몇 년이나 갈까? 길어야 30년이다. 지금 새로 지은 아파트라도 30년 뒤엔 철거되어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쓰레기를 치운 게 아니라 지금의 쓰레기를 30년 뒤의 후손들에게 물려준 것에 불과하다. - 217, 218쪽

검찰은 쌍용양회 영월 공장뿐 아니라 서울 본사까지 압수수색했다. 왜 그랬을까? 또 다른 신문은 그 이유를 "쌍용양회 영월 공장이 가동과정에서 폐유기용제 재생연료유를 불법사용하고 있다는 의혹"에 대한 수사라고 설명했다.
시멘트 공장의 액상 지정폐기물의 불법사용에 대해 검찰이 압수수색이라는 강수를 뒀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는 흐지부지 끝났다. 수사결과 발표(2006년 12월 14일)를 하루 앞둔 12월 13일, 검찰이 시멘트 공장을 처벌하지 못하도록 환경부가 신속하게 법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불법`이 `합법`이 되었다. 환경부는 규제개혁위원회에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 개정령안 시설 강화 심사안`을 올려 그동안 시멘트 공장들이 불법으로 사용해 오던 액상 지정폐기물을 시멘트 소성로에 사용가능한 `재활용 제품`으로 인정한다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시멘트 공장을 살리려는 환경부의 눈물겨운 노력 덕분에 검찰은 "범죄 후 법령개폐로 형이 폐지되면 면소판결 선고"될 수 밖에 없다며 수사를 흐지부지 끝맺었다. - 270, 271쪽

외국의 경우 시멘트 공장에서 액상 폐기물을 사용할 경우, 폐기물 배출업자가 1차 시료를 분석해 시멘트 공장으로 가져가면, 시멘트 공장에서 두 시간 이내에 2차 분석을 실시해 폐기물 배출업자가 가져온 시험 분석서와 일치할 경우 액상 폐기물을 반입하게 된다. 그래서 외국의 시멘트 공장들을 액상 폐기물의 사용과 분석을 위한 연구시설과 인력을 시멘트 공장 안에 갖추고 있으며, 전체 직원 중 50퍼센트 이상이 화학 관련 전공자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반입되는 액상 폐기물을 현장에서 분석할 수 있는 연구시설을 갖춘 시멘트 공장이 없다. 폐기물 배출업자가 제출하는 분석 데이터에만 의존할 뿐이다. 폐기물 배출업자가 어떤 유해물질을 혼합했느지, 분석표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도 알 방법이 없다. - 275쪽

환경부 공무원들은 `개선`하라는 국회의원과 장관의 지시를 왜 `개악`으로 역행하는 것일까? 환경부 공무원들은 국민의 건강보다 시멘트 회사의 이익을 위해 왜 그토록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한겨레>가 2006년 9월 15일자 `환경부, 시멘트 업계 `배려` 이유는`이라는 기사에서 환경부 폐기물정책 성공의 핵심열쇠가 시멘트 공장의 쓰레기 소각에 달렸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바다에 폐기하지 못해 발생할 음식물쓰레기 침출수와 하수오니처리까지 시멘트 공장에 맡기려니 환경부가 시멘트 공장을 배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멘트 공장에서 쓰레기로 시멘트를 만들면 환경부의 재활용 성과가 올라간다. 환경부에게 쓰레기 시멘트는 `소각`이 아니라 `재활용`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재활용` 성과를 올리기 위해 국민의 목숨을 쓰레기 시멘트라는 도박판에 걸어놓는 환경부. 더 이상 쓰레기 시멘트 개선을 환경부에 맡길 수 없음이 명백해졌다. - 287, 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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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 천 가지 표정의 도시 살림지식총서 330
유영하 지음 / 살림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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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해방은 여성해방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여성해방은 주방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홍콩은 여성해방의 공간이다. - 8쪽

한 국가나 지역을 안다고 할 때, 그것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는 그곳의 음식을 마음대로 시킬 줄 아느냐 하는 것이다. 현지 음식을 모르고 현지에서 적응할 수 없는 법이다. 특히 중화권에서 살면서 중국음식을 모른다거나 싫다고 하는 것은 중화권에서 그저 목숨만 연명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소극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말이다. 중국음식은 중국문화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 10쪽

외국에서 유학하고 있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면, 체류국의 언어 실력이 현지 적응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현지어를 잘 할 경우 자신감을 가지고 현지 사회에 적응할 수 있다. 그 반대의 경우 현지인 접촉을 가능한 기피하게 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외국어 실력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고 있을 경우 현지인과의 접촉이나 현저어로 된 정보의 취득이 그만큼 더 쉽게 이루어진다. 이렇게 보면 언어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된다.
따라서 외국에서 외국어 실력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일 수밖에 없고 때로는 삶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홍콩인들의 경우, 그들은 이미 세 개의 언어로 외국을 이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홍콩인들은 세 가지 언어를 구사 할 수 있다. 광둥어와 영어, 그 다음은 보통화이다. 이 말은 해외에서 그들은 그만큼 적응이 빠르고, 아울러 외국인과의 교류에 만반의 준비가 됐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들이 획득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질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 16, 17쪽

홍콩에 대한 주권 회복을 위한 담판을 전개하면서 중국정부가 내세운 최고의 카드는 1국가 2체제라는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정치제도였다. 이른바 1국가 2체제 방침은 타이완과의 통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중국 측의 구상으로, 홍콩과 마카오의 주권 회수를 위한 방안으로 우선 적용되었다. 즉, 중국 본토에는 사회주의를, 타이완․마카오․홍콩은 자본주의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다.
영국에 의해서 150년간 자본주의가 시행되어온 홍콩에 사회주의를 시행한다는 것은 실현가능성이 매우 낮을뿐더러 사회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현실을 우선 고려한 해결 방법이라고 보아야 한다. 바로 중국사회주의라는 주체 안의 홍콩에서 자본주의 제도와 그 생활방식을 실행한다는 것이었고, 그것을 앞으로 50년 동안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 44쪽

주지하다시피 사회주의 발전 모델은 마르크스의 역사발전 5단계 이론에 근거한다. 즉, ‘원시 공산사회-노예제 사회-봉건제 사회-자본주의 사회-사회주의 사회’의 발전 모델이 그것이다. 마르크스의 견해에 따르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출범으로 중국은 사회주의시기로 진입했다. 이에 대해 우파 성향의 학자들은 중국대륙의 자본주의 단계 존재 여부에 대해 의심한다.
즉,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전복해야만 진입이 가능한 것인데 중국대륙에 자본주의 시기가 과연 존재했는가 하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이에 대해서는 아편전쟁 이후 외세에 의해 점령당한 조차지 내에 나타난 자본주의적 현상을 내세우고 있다. 작게는 191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상하이를 비롯한 대도시에 출현했던 빈부격차를 그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 46쪽

주권 이양을 1년 앞둔 1996년 패튼 총독은 홍콩의 성공은 영국의 4대 공헌에 있다고 했다. 법치와 공무원제도, 경제, 자유, 민주화 등이다. 홍콩의 정치와 경제 관계의 특징을 집약하자면, 고효율성과 불간섭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적극적 불간섭 정책으로 일관되게 자유무역정책을 추진했고, 국제무역의 자유화를 지지했으며, 무역보호주의를 반대했다.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일관되게 자유경쟁과 적자생존 원칙을 고수했다.
주권 이양을 1년 앞둔 1996년 패튼 총독은 홍콩의 성공은 영국의 4대 공헌에 있다고 했다. 법치와 공무원제도, 경제, 자유, 민주화 등이다. 홍콩의 정치와 경제 관계의 특징을 집약하자면, 고효율성과 불간섭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적극적 불간섭 정책으로 일관되게 자유무역정책을 추진했고, 국제무역의 자유화를 지지했으며, 무역보호주의를 반대했다.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일관되게 자유경쟁과 적자생존 원칙을 고수했다. - 59쪽

영국의 법치와 고효율의 행정을 도입, 민주는 없지만 고도의 법치와 자유로 그것을 상쇄시켜왔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회 내에 법률에 대한 보편적인 동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홍콩의 매우 중요한 자산이다. 즉, 적자생존이 장려되는 철저한 자본주의의 홍콩사회이지만, 적어도 그것이 공정한 룰에 의해 보장된다는 분위기야말로 홍콩을 홍콩답게 발전시키고 유지하고 있는 정신이다. 자유가 자유로서 보장받기 위한 최소한의 제한이 정착되었다는 말이다. 홍콩에서 공적 신용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과 같다. 그렇게 볼 경우 사실 민주는 없고 자유만 있다는 홍콩사회에서 민주는 합리성으로 존재한다. 요컨대 민주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사회 내 합리성은 어느 사회나 국가보다 앞서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59, 60쪽

홍콩을 아는 사람들이 말하는 홍콩문화의 장점은 중립, 개방, 자유이다. 이것은 홍콩문화에 대한 총괄적인 결론이지만, 마찬가지로 홍콩경제의 비약적인 성장 비결을 압축하는 표현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홍콩은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인 자유항으로서, 상품과 외환의 진출입이 자유롭고, 기업경영이 자유롭고 대외 자본과 현지 자본이 동일시되는 곳이다. 그것에 앞서 지리적으로 중국대륙과 세계를 연결하는 관문이자, 태평양과 인도양으로 통하는 해운의 요충이고, 아시아 태평양의 중심이다. 게다가 세계 3대 항구로 꼽히는 빅토리아항의 깊은 수심 역시 홍콩의 경제발전을 논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조건이다. - 60,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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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 없는 진보 - 진보의 최후 집권 전략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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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바로 한국 정치판, 특히 진보 정치판이 매우 심각한 ‘구성의 오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 중요한 깨달음을 어찌 그냥 내버려둘 수 있겠는가.
익히 잘 아시겠지만,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란 부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을 전체에 부당하게 적용하거나 개별적인 요소에 해당되는 것을 집합 전체에 부당하게 적용하는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타당한 행동을 모두 다 같이할 경우 전체적으로는 부정적인 결과가 초래될 때 쓰이는 말이다. 어떤 농민이 풍작을 올리면 기뻐할 일이지만, 모든 농민이 다 풍작을 하면 농산물 가격이 폭락해 모든 농민이 다 고통을 받는다거나, 어떤 소비자가 자린고비처럼 절약해 저축을 많이 하면 축하해줄 일이긴 하지만, 모든 소비자가 다 그렇게 하면 경기를 악화시켜 모두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 좋은 예다. - 7쪽

싸가지 문제는 민주당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싸가지 없는 진보’란 표현이 한 세트로 굳어졌겠는가. 내부 계파 문제가 심각하다고는 하지만, 그것 역시 싸가지의 문제다. 새누리당을 대하던 행태가 중독성 습관이 되어 내부에서까지 발휘됨으로써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상호 신뢰를 갉아먹게 만든다는 것이다.
민주당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치의 목적은 무엇일까? 민주당이 대선을 포함한 선거에서 승리해서 이 세상을 바꾸는 데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렇지 않다. 우선 나와 내 계파가 내부에서 이기고 보는 것이 목적이다. 세상을 바꿔보고 싶은 뜻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신들의 패권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있으나 마나 한 것이다. 이미 내부 싸움하다가 망가진 게 한두 번이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 10, 11쪽

"시장판의 싸움에서야 기품 없는 게 무기일 수 있다. 기품 찾고 예의 찾다보면 약하게 보이고 사기도 꺾인다. 그러나 문명사회의 정치판에서까지 기품 없음이 무기가 된다면 그건 슬픈 일이다. 정치도 그 본질이 싸움인데 기품 찾다 지느니 기품 없이 이기는 게 낫지 않느냐고 따지면 대답이 좀 궁색해지긴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슬픈 일임에는 변함이 없다. 기품 없음이 무기가 되면, 싸움이 진행될수록 당사자들은 점점 더 기품이 없어진다. 그래서 점점 더 깊은 상처를 주고 받게 된다. 그러다 보면 아픔을 느끼는 능력이 가장 모자란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 고종석, ‘싸가지 있는’ 정치를 위하여, 한국일보, 2007. 9. 13. - 30쪽

‘싸가지 없는 진보’의 사전엔 ‘성찰’이 없다. 도덕적 우월감이 성찰을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공격이 최상의 방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이런 행동양식이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이미지를 더욱 악화시킨다. 예컨대, ‘B급 좌파’를 자처하는 김규항은 「경향신문」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마한다.
"지난 대선 당시에 ‘진보 놈들 꼴 보기 싫어서 박근혜 찍는다’는 식의 이야기가 하위계층에서 많았다. 그들의 반감은 자연스러운 데가 있다. 진보가 두 번이나 집권을 하는 동안 기대와는 달리 그들의 삶엔 별다른 게 없었는데, 이명박이나 박근혜를 비롯한 보수는 거의 악귀 취급을 하면서 자신들은 정의와 선의 세력인 양 구는, 정치라는 게 보수고 진보고 다 자기들 좋으라고 하는 거라는 걸 재확인해주었을 뿐이면서, 자신들을 선택하는 게 유일한 희망인 양 설레발치는 이상한 사람들에 대한 반감 말이다." 김규항, 마음의 회복, 경향신문, 2014. 6. 24. - 41쪽

김규항이 잘 지적했듯이,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들이 잘할 생각은 하지 않고 늘 보수에 대한 비판과 심판으로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데에 있다. 그게 진보의 길이라고 맞장구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민주당의 투쟁의지와 능력이 약하다고 비판하는 진보적 지식인이 숱하게 많다. 거의 대부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진보 언론매체엔 그런 글들이 자주 실린다.
그러나 나는 그런 방식으론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김규항의 입장을 적극 지지한다. 그런데 김규항 역시 그런 방식을 그대로 복제하고 있는 건 아닐까? 좌파가 스스로 잘할 생각은 않고 민주당만 비판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이 "진보를 참칭하고 대중의 눈과 귀를 막음으로써 좌파가 축소되고 사회가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되었다"는 건 민주당 때문에 좌파가 잘할 수 있는 공간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민주당도 똑같은 논리로 새누리당 비판에만 올인할 수 있는 게 아닐까? - 42, 43쪽

그렇다. 스스로 잘난 척하는 우월감이 문제다. 우월감이야말로 ‘싸가지 없는 진보’의 동력이다. - 46쪽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싸가지 없는 진보’는 진보 전체를 위해선 반드시 극복해야 할 현상이지만, 진보 내부 헤게모니 쟁탈을 위해선 가장 강력하고 효율적인 정치 양식이다. 좋건 나쁘건 정치의 동력은 증오다. 싸가지 없는 언행은 한 정당 내에서도 나와 우리 편의 승리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을 향한 것이지, 우리 편을 향한 게 아니다. 반대편에 대한 싸가지 없는 언행은 지지자들을 열광시키는 동시에 단합의 대열로 이끌 수 있다.
사정은 이와 같은바, ‘싸가지 없는 진보’는 단기적으론 속된 말로 ‘남는 장사’다. 담론의 시장 논리가 그렇게 되어 있다. 단기적으로 ‘남는 장사’에 대한 집착, 이게 바로 진보가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굴레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남는 장사’를 하겠다는 의도조차 없이 ‘싸가지 없는 진보’가 하나의 행동 양식으로 굳어져 버린 탓도 있겠지만, 이 또한 바꾸기 어렵다는 점에선 마찬가지다. - 51쪽

‘집단사고(groupthink)’는 미국 예일대학의 심리학자인 어빙 재니스(Irving Janis, 1918~1990)가 1972년에 출간한 「집단사고의 희생자들(Victims of Groupthink)」에서 어떻게 자타가 인정하는 우수한 두뇌집단이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를 연구하면서 제시한 개념이다. 재니스는 ‘집단사고’를 "응집력이 강한 집단의 성원들이 어떤 현실적인 판단을 내릴 때 만장일치를 이루려고 하는 사고의 경향"이라고 정의했다. 쉽게 말하자면, 낙관론에 집단적으로 눈이 멀어버리는 현상이다. "정책 결정, 집단 내부의 구성원들 사이에 호감과 단결심이 크면 클수록, 독립적인 비판적 사고가 집단사고에 의해 대체될 위험성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집단사고는 집단 외부를 향한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취하게 만든다." 어느 조직에서든 조직의 우두머리에겐 신체를 보호하는 보디가드뿐만 아니라 심기를 보호하는 마인드가드(mindguard)가 있기 마련인데, 재니스는 바로 이런 마인드가드가 지도자로 하여금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그걸 밀어붙이게 만드는 주요 이유가 된다고 지적했다. - 57, 58쪽

나는 진보의 진보 비판은 진보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보수는 그렇지 않은데 진보는 왜 그 모양이냐?"는 반론은 무의미하다. 보수와 진보의 출발점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보수는 이익지향적인 반면, 진보는 가치지향적이다. 이익을 위해 타협하는 일이 보수보다는 진보에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수 진영에서도 극우는 가치지향적인 성향이 농후한데, 이들 역시 보수 비판에 적극적인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 66, 67쪽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빠졌다"는 주장은 사실상 "보수언론은 늘 그르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셈인데, 이거야말로 진보의 필패(必敗)를 부르는 첩경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 보수언론이 하는 말은 늘 잘못되었거나 정략과 음모의 산물이란 말일까? 보수언론이 그렇게 어리석을까? 그런 생각은 보수언론의 힘은 과대평가하면서 보수언론의 지능은 과소평가하는 게 아닐까?
이래서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한 것이다. 반대로 물어보자. 박근혜 정부에 대한 인식과 평가에서 보수언론과 진보언론 중 어느 쪽이 사실과 진실에 더 가까울까? 진보 지식인은 ‘진보언론’이라고 답할 것이다. 맞다. 보수가 부정한다 해도 답은 ‘진보언론’이다. 왜 그런가? 진보언론은 박근혜 정부에 대해 거리두기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같은 편 내부에서 고려해야 할 인간관계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 70쪽

같은 이유로 진보에 대한 인식과 평가에서 사실과 진실에 더 가까운 인식과 평가를 하고 있는 건 진보언론이 아니라 보수언론이다. 물론 보수언론이 의도적인 ‘진보 죽이기’용 기사와 논평을 양산해내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런 걸 가려낼 수 있는 분별력만 있다면, 진보가 경청해야 할 것은 진보언론보다는 보수언론의 비판이다. - 70, 71쪽

그런데 보수언론의 어떤 비판에 주목해서 그걸 받아들이면 그건 ‘조중동 프레임’에 놀아난 것이 되는가? 예컨대, 「조선일보」 2014년 8월 2일자 A3면에 실린 「2012년 이후 연전연해하는 야(野): 인물․노선․체질․전략․우군(友軍)… ‘뻔한 5가지’에 발목」(김경화 기자)이라는 기사를 보자. 이 기사는 익명의 민주당 당직자들의 입을 빌려, 민주당의 ‘5대 뻔한’ 신드롬을 제시하고 있다. 아래와 같다.
① 뻔한 인물(불로장생 원로, 꽉 틀어쥔 486, 진보의 이준석 부재), ② 뻔한 노선(아직도 반새누리당이면 모든 노선이 정당화되고 철학이 없음), ③ 뻔한 체질(계파 갈등, 노숙 및 단식 투쟁, SNS 환청․환각 현상), ④ 뻔한 전략(편 가르기, 안 되면 단일화 등), ⑤ 뻔한 우군들(야당 외곽세력은 그들만의 언론, 학자, 시민단체들) - 70, 71쪽

어찌되었건 진보 좌파의 지도급 인사들이 대부분 명문대 출신이라는 건 진보의 자산으로 긍정 평가할 수 있는 일이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 ‘지식 엘리트’의 속성은 자신의 비교 우위가 지식․지성․비전에 있다는 걸 거의 본능 비슷하게 갖고 있기 때문에 타인과 세상에 대한 ‘계몽 욕망’으로 충만해 있다. 미국 정치에서 늘 진보적 지식 엘리트가 일반 서민의 거센 반감의 대상이 되는 등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한국에선 그들의 계몽 욕망이 해소되기 어려운 내부 분란을 낳은 건 물론이고 외부적으론 자주 싸가지의 문제로 비화된다. "우리가 모든 걸 다 알고 있으니 우리를 따르라"는 식이니 말이다. - 83쪽

진보적 지식 엘리트는 자기들에게 선거 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유권자가 욕망에 투항했다"는 식으로 싸가지 없는 진단을 내놓는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말하는 이들의 재산을 까보면 욕망에 투항했다는 유권자들의 평균보다 훨씬 많다. 그래서 ‘왕싸가지’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현실이 막연하지만 강력한 느낌과 이미지로 유권자들의 뇌리에 자리 잡으면서 ‘싸가지 없는 진보’를 깨기 힘든 고정관념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이다. - 83쪽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은 이미 1620년에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인간의 지성은 일단 어떤 의견을 채택한 뒤에는 … 모든 얘기를 끌어들여 그 견해를 뒷받침하거나 동의해버린다. 설사 정반대를 가리키는 중요한 증거가 훨씬 더 많다고 해도 이를 무시하거나 간과해버리며 … 미리 결정한 내용에 죽어라고 매달려 이미 내린 결론의 정당성을 지키려 한다."
심리학에선 인간의 그러한 성향을 가리켜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확증 편향은 정치적 논쟁이나 토론의 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 93, 94쪽

나는 ‘심판’이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진보를 골병들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정권 심판론에만 의지하다 보면 독자적인 의제 설정이나 정책 생산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도 문제지만, 심판을 외치는 와중에서 싸가지의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민주당의 ‘심판’은 반대편만을 향할 뿐 자신들에겐 적용되지 않는 마법의 주문이다. 18대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문재인은 "노무현 정부는 총체적 성공"이라는 자평을 내놓았다. 심판이 대상은 오직 ‘이명박 정부’와 ‘독재자의 딸’이었을 뿐이다. 민주당 내부에서야 그렇게 보는 것이 진리였을망정, 유권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래서 결국 패배했다. 문제는 이것이다. 민주당이 언제 단 한 번이라도 자신에 대한 심판, 즉 성찰을 해본 적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그런 적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민주당을 ‘왕싸가지’라고 생각한다. - 136, 137쪽

선의의 해석을 해보자면, 민주당은 갈등 상황에서 몰입이 초래하기 마련인 ‘터널 비전(tunnel vision)’의 함정에 빠져 있다. ‘터널 시야’라고도 하는 ‘터절 비전’은 터널 속으로 들어갔을 때 터널 안만 보이고 터널 밖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주변을 보지 못한 채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는 현상을 뜻한다.
몰입은 축복일 수 있다. 자연, 사물, 일 등에 몰입하는 것만큼 재미있고 유익한 게 또 있을까.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몰입은 축복일 수 있지만 재앙일 수도 있다. 스토킹은 바로 몰입의 산물이다. 인터넷 시대의 ‘빠’ 문화와 ‘까’ 문화도 마찬가지다. 특히 갈등 상황에서 몰입은 자해(自害)를 초래하는 매우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몰입은 무엇보다도 균형 감각을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 137, 138쪽

노무현 정권은 강한 개혁 열망을 품고 출발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개혁에 저항할 가능성이 높은 ‘수구 기득권세력’에 주목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주목의 정도가 너무 강했다는 점이다. 주변을 살피지 못했다. ‘주변’이라 함은 바로 국민이다. 노무현 정권은 국민이 아니라 야당․보수신문을 상대로 정치․행정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싸움이 치열할수록 몰입은 ‘자기 성찰’을 원천봉쇄한다. 몰입은 상대편에 대한 과대평가로 이어져 상대편의 허물은 크게 보고 자신의 허물은 사소가게 여기는 심리는 낳기 때문이다. - 142쪽

사람들이 말하기 쉽게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표현을 쓰긴 하지만, 이 표현은 진보가 안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담기엔 모자라다. ‘도덕’이라고 보는 게 옿다. 즉, ‘도덕의 부재’ 또는 ‘도덕의 왜곡’이 오늘날 진보의 위기를 불러온 주범일 수 있다. - 177쪽

‘도덕주의’의 부정적 의미는 크게 보아 세 가지다. 첫째, 사고가 편협하고 경직되어 있다는 의미다. 둘째, 복잡한 세상 이해를 종합적으로 하지 않고 도덕이라는 일면만 보는 편향을 드러내고 있다는 의미다. 셋째, 자기 자신의 도덕적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행위를 억압하고 자유를 침해하려고 든다는 의미다. - 177, 178쪽

진보는 자신들이 ‘수구꼴통’이라고 욕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도덕적 세계가 있다는 걸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즉, ‘다름’을 ‘틀림’으로 파악하는 데에 아주 익숙한 것이다.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겐 그런 다른 세계가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우리 내부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데, 이건 한국 사회의 강한 사회문화적 동질성 때문이다. - 185쪽

"다른 많은 진보주의자들처럼 나도 한때는 보수주의자들을 천박하고, 감정이 메마르거나 이기적이며, 부유한 사람들의 도구이거나, 혹은 철저한 파시스트들일 뿐이라고 얕잡아 생각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을 고도의 도덕적 이상주의자로 간주하며, 그들이 깊이 믿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보통 사람들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야 보수주의에 왜 그토록 열렬하게 헌신적인 사람이 많은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보수주의를 잘 이해하게 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보수주의를 더욱 두려워하게 되었다."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eoff), 손대오 옮김, 도덕의 정치, 생각하는 백성, 2004 - 197쪽

레이코프는 그런 성찰 끝에 자신이 지지하는 민주당 진영에 이런 고언을 내놓는다. "진보주의자들이 정치에서 도덕과 신화와 감정적인 측면을 무시하는 한, 정책과 관심을 가진 그룹과 사안별 논쟁에만 집착하는 한, 그들이 이 나라를 뒤덮은 정치적 변화와 본질을 이해하게 될 희망은 전무하다."- 197, 198쪽

전중환은 「보수와 진보의 도덕」이라는 「한겨레」(2013년 10월 29일) 칼럼에서 슈웨더의 연구 결과를 언급하면서 "유권자들은 경제적 이득이 아니라 도덕적 가치에 따라 투표한다는 것, 그리고 여기서 보수와 진보가 이해하는 도덕은 사뭇 다르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유용한 시사점을 준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를 들어, 지난 대선에서 저소득층이 새누리당을 훨씬 더 지지한 이유는 교육 수준이 낮아서 사탕발림에 쉽게 넘어갔기 때문이며, 그러니 진보세력이 그들의 삶을 향상할 유일한 대안임을 확실히 인식시키기만 하면 문제가 저절로 다 해결되리라는 분석은 이런 점에서 한계가 있다. 진보세력은 보수적인 국민들이 그들에게 품는 생래적인 거부감, 곧 국가안보와 사회질서를 흔드는 ‘비도덕적인’ 정당이라는 시선을 어떻게 바꿀지 궁리할 필요가 있다." - 199쪽

진보에 가장 필요한 건 레이코프가 했던 종류의 자기 성찰이다. 즉, 보수주의자들을 경멸하로 혐오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존중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민주당이 수십 년째 신봉해오고 있는 ‘민주 대 반민주’라는 신념이자 구호는 민주당에 ‘독약’이 되고 있다. 설사 이런 이분법 구도에서 민주 쪽에 속한 사람일지라도, 민주당을 지지하면 ‘민주’요 반대편을 지지하면 ‘반민주’라는 도식은 시대착오적인 정도를 넘어 속된 말로 ‘찌질’하다고 생각한다. - 200쪽

정치가 죽은 공적 영역에선 약자들이 세력을 규합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그런 상황에서 유권자 탓을 하는 건 그야말로 적반하장이다. 샤츠슈나이더의 다음과 같은 말처럼 말이다.
"광범위한 투표 불참에 대한 책임을 인민의 무지․무관심․무기력 탓으로 돌리는 것은 공동체 내의 좀더 부유한 계층이 보여주는 매우 전형적인 형태이다. 이는 어떤 정치체제에서나 늘 하층계급의 배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어왔던 논리다. 이보다 나은 설명이 있다. 기권은 투표 불참자들의 요구를 반영한 선택지와 대안이 억압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 224쪽

안철수는 "얻고자 하면 잃고 잃고자 하면 얻는다"는 정신과 실천 하나로 대선주자급으로 급부상하는 코미디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현실정치판에 본격 진입한 후엔 정반대의 정신과 실천으로 인해 망가지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 240, 241쪽

"깰 수 없으면 타협하라"는 건 진리다. 예컨대, 친노는 비노․반노를 깰 수 없고, 비노․반노는 친노를 깰 수 없다. 깰 수 없는 게 분명한데도, 서로 적대해서 뭘 어쩌자는 건가? 이제 서로 달라져야 한다. 세상을 바꾸려면 자기부터 바꿔야 한다. 영국의 작가이자 진보적 지식인이었던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가 말했듯이, "변화가 없다면 진보는 불가능하다.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나는 안 바꾸면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건 도둑놈 심보다. - 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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