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 생각은 반드시 답을 찾는다 인플루엔셜 대가의 지혜 시리즈
조훈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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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바둑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대국을 벌이게 되면 먼저 머릿속으로 판을 그려야 하고 이기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바둑은 절대로 처음 생각했던 대로 풀리지 않는다. 상대방 역시 이기기 위해 똑같이 치밀하게 판을 그리고 계획을 세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둑판 위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태클을 당한다.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해서 궁지에 몰리기도 하고, 살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한다. 한 수 한수마다 목숨이 걸린 문제가 발생하는 곳. 바로 바둑판 위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프로 기사들은 늘 구사일생의 삶을 살아가는 문제해결의 고수들이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다는 자세로 세상을 바라본다. 아주 어릴 때부터 수많은 난제들에 부딪치며 살아왔고, 결국에는 그들이 해결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스스로 풀지 못하는 것도 있었지만, 꼭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그 문제를 풀고야 만다. 그러니 세상사를 바둑판이라고 생각한다면 풀지 못할 문제는 없다. 문제는 반드시 해결된다. 해결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근성만 있으면 된다. - 23, 24쪽

그러나 바둑 기사들은 절대로 이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초읽기에 몰리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집요하게 다음 수를 고민한다. 설사 끝이 보이는 바둑이라 하더라도 돌을 던지기 전까지는 한 수 한 수 최선을 다 한다. 호수(好手)가 아니라면 묘수(妙手)라도, 그것도 아니라면 악수(惡手)나 과수(過手)라도, 치열하게 고민하여 스스로 선택한다. - 25쪽

하지만 일단 기본기가 다져지면, 그때부터는 다시 망아지가 되어야 한다. 바둑은 틀 안에 갇히면 끝장이다. 생각과 생각으로 싸움을 벌이는데 상대가 예측할 수 있는 빤한 수만 놓는다면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막강한 힘을 가지려면 무엇보다도 다르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 28쪽

"답이 없지만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게 바로 바둑이다." - 35쪽

비인부전 부재승덕(非人不傳 不才勝德)이라는 말이 있다. 인격에 문제 있는 자에게 높은 벼슬이나 비장의 기술을 전수하지 말며, 재주나 지식이 덕을 앞서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 52쪽

생각은 행동이자 선택이다. 어떤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는 그 사람의 선택을 보면 알 수 있다. 백 마디 멋진 말이 무슨 소용인가. 단 하나의 잘못된 선택을 하면 그것으로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다 드러나게 된다. - 54쪽

나는 세고에 선생님이 언제나 한결 같은 자세를 유지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너도 그래야 한다고 특별히 가르치신 적은 없지만, 선생님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모습을 배우게 되었다. 감정은 그저 흘러왔다 흘러가는 덧없는 것으로, 어떤 감정도 스스로를 잡아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선생님의 삶의 자세였다. 기쁨도 아무 감정 없이 바라보고, 슬픔과 분노도 아무 감정 없이 바라봐야 한다. 이겼다고 우쭐해하면 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이기기 위해서는 수천 번의 지는 경험을 쌓아야 하므로 일상의 경험으로 덤덤하게 바라봐야 한다. - 66쪽

사람들은 현실에 불만을 갖고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면 더 좋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깨달은 바로는 지금 여기, 바로 이 순간이 최고의 환경이다. 불만을 갖고 환경 탓을 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여기가 최선의 자리라고 생각하고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 달라지기 시작한다. - 117쪽

아파도 뚫어지게 바라봐야 한다. 아니 아플수록 더욱 예민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실수는 우연이 아니다. 실수를 한다는 건 내안에 그런 어설픔과 미숙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수를 인정하고 고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영원히 미숙한 어린아이 상태로 살아가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 175, 176쪽

누구나 지는 걸 싫어한다. 될 수 있으면 아무에게도 무릎을 꿇지 않고 살아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진심으로 이기고 싶다면 이기는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 배워야 한다. 하나라도 더 질문해서 그 사람의 아이디어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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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생활 좌파들 - 세상을 변화시키는 낯선 질문들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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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발달은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켰지만 우리는 여전히 수세기 전부터 가져왔던 노년에 대한 고루한 시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
노년에 대한 완전히 다른 시선이 필요하다. 노년은 매우 감미롭고 아름다운 시기다. 비로소 타인에 대한 의무에서 벗어나 호젓하게 자신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게 되는 때다. 그러나 사회는 노년의 삶을 위한 그 어떤 준비도 하지 않고 있다. 테레즈는 말한다. 늙는다는 것은 사는 것의 연장일 뿐이라고. 여기저기 아픈 곳을 얘기하며 자신들에게 투정이나 부리다가 죽음이 찾아오는 날을 기다리는 대신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갖는 것,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온몸을 다해 투쟁하는 것, 마지막 순간까지 활기찬 시민으로 살다 가는 것"이 테레즈의 꿈이자 그녀가 바바야가의 집을 통해 실현하려고 하는 목표다. - 19쪽

하기 싫은 일이 뭔지 아는 것, 그래서 그 일을 하지 않는 건 쉽다. 일단 흥이 안 날 테고, 몸도 안 따라줄 테니. 그러나 무한히 열려 있는 선택지 앞에서 원하는 것을 고르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도대체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지 못하는 병은 네 개 중 하나의 정답, 그것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하나가 아니라 세상이 옳다고 생각하는 하나를 추정하는 훈련만 무수히 해온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피할 수 없는 병이다. 많은 이가 죽을 때까지 결국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무수한 세상의 시선과 관심, 대세에 떠밀려 다닌다. 그러다가 결국 원하는 것이 뭐였는지도 모른 채 생은 끝나버리기 십상이다. 죽는 날에도 유행하는 방식에 따라 자손들의 체면을 구기지 않으면서 유행하는 수의를 입고 유행하는 관 속에 얌전히 들어가 주어야 하는 것이 수많은 평범한 사람의 운명이다. - 38, 39쪽

사람들은 자유의 번잡함이 괴로운 나머지 자발적으로 선택지를 좁힌다. 자율화된 학생들의 복장은 교장들의 용단과 학부모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다시 교복 시대로 복귀하고, 세상의 미혼 남녀들은 자신의 직관과 느낌으로 짝짓기를 포기하고 결혼중계업체의 배를 불리는 선택을 한다. "자유는 싫어. 선택은 귀찮아. 그냥 정해줘. 그럼 시키는 대로 할게." 이런 아우성이 곳곳에서 들린다. 최근 청소년들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심각한 증상은 불같은 반항이 아니라 `무기력`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10년간의 짧은 민주화 경험 이후 이토록 왕성하게 자라난 독재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생각해보면 지금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세력은 단지 부정선거의 결과만은 아닌 듯 싶다. 절반 정도는 독재와 권위가 익숙하고 편한 사람들이 불러들인 재앙이기도 하다. - 39쪽

살면서 그리고 일하면서 돈을 먼저 생각한 적이 없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좌파와 우파는 돈에 부여하는 가치의 우선순위에 따라 구분되는 것 같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것에 우선순위를 둔다. 우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고, 그 일을 통해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작업할 때도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게 하는 것과, 일상에서 전혀 누릴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을 사람들에게 선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각별히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려 하기보다 도시에 살며 잊고 지낸 것들을 일깨워주려고 한다. 물질적 보상은 내가 이 일을 계속하며 생활할 수 있을 만큼만 주어지면 충분하다. 또 하나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유다. 자유롭게 시간을 운용하고 작업을 선택하는데, 돈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면 이 모든 것을 잃고 만다. 그런 점에서 나는 충분히 풍요로운 좌파다. - 44, 45쪽

홀로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의 아들로 산다는 건 끊임없이 뻗어오는 어머니의 영향력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는 일이었다. - 69쪽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교훈을 강요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것은 아들을 교육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새로운 방식의 사고가 존재한다는 사실만큼은 전하려 했다. 아들에게 "부모의 뜻을 거스를 때 너만의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매일매일 너는 부모의 마음에 안 들게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구축한 네 모습을 나는 사랑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들은 내 말을 아주 유용하게 활용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아들은 사춘기 때 `이상한` 옷차림이나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종종 했고, 내가 그런 모습을 나무라면 "아빠가 부모의 맘에 안 들게 행동하라고 말했잖아요"라며 항변했다. 그때는 나도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의 독립적인 세계를 구축한 아들을 사랑한다. - 74쪽

좌파란 시간을 더디게 흘러가게 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움직임을 거부하는 것과는 다르다. 우파는 모든 삶을 속도에 대한 강박 속에 날려버린다. 좌파는 시간을 갖고 삶을 음미하며, 이른바 개발과 발전이라는 강박으로부터 삶을 되찾아오는 싸움을 한다. 또한 좌파는 끊임없이 세상의 구조, 세상이 굴러가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다수에 맞소 소수를 대변하며, 지속적으로 우리를 둘러싼 삶의 조건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자신을 일깨우고 탐구하는 사람들이다. 예술은 삶의 잉여물이거나 사치품이 아니라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그리고 예술가는 예술적 실험을 통해 다른 세상, 다른 관점이 가능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사람들이다. 예술과 문화로 자신을 계속 일깨우고 자극하는 사람들도 좌파에 해당한다. - 78, 79쪽

그러나 현재 연구소에서 하는 일은 자본가의 이익을 더 많이 창줄해내는 데 과학을 이용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연구뿐 아니라 다른 많은 연구가 그러하다. 더구나 연구소의 운영 방식 자체도 자본주의적 관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곳에서 과학자들은 기업가나 정부를 위한 소모품으로 전락한다. 정치가로 변신하지 않는 과학자는 도태되는 반면 과학을 뒤로하고 출세의 길을 나선 자들에게만 힘이 주어진다. 환멸이 크다. - 94쪽

나는 사고를 통해서 급격히 깨달았지만 서서히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소비사회의 허무를 깨달을 거라고 믿는다. 더 이상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이미 지구상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생산돼 있다. 5년 안에 고장나도록 설계되는 가전제품, 6개월 안에 다른 옷을 사도록 만들어지는 허름한 천들. 이제 자본주의사회는 엔지니어들에게 이런 기술을 요구한다. 사람들이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낭비하게 하는 그런 기술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산된 물건을 자신의 특정한 직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산다. 집 안을 채우는 모든 물건을 돈으로 사고 모든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는 인간은 실제로 얼마나 무능하고 무력한 존재들인가. - 98쪽

첫째, 좌파는 익숙해지는 걸 거부하는 사람이다. 나는 무언가에 익숙해지는 것을 싫어한다. 사회의 시스템에 완전히 흡수되어서 저항하지 않고 살아가는 건 아주 편하고 안락한 삶을 우리에게 약속한다. 우리는 더 이상 화내거나 인상 쓰지 않아도 된다.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고 매끄럽게 지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익숙함을 계속 밀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나도 모르게 무언가에 익숙해져버렸다고 스스로 깨닫는 순간 그것을 밀어내야 계속해서 새로워질 수 있다. 바로 그렇게 해야 만 우린 계속해서 새롭게 태어나고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다. 그건 계속해서 젊게 존재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 112, 113쪽

둘째, 좌파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현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다. 단순히 현상에 대하여 반대하는 것 외에 또 다른 방향으로의 가능성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다. 반대만 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그 반대하는 대상의 힘을 키워주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지편으로의 가능성을 찾다 보면 우리는 또 다른 새로운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노동 문제만이 진정으로 다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오로지 경제 문제에 대한 접근만이 우리가 찾는 해법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이라는 식의 사고보다 페미니즘이나 성소수자 문제, 생태 문제를 통한 접근으로 단단한 의지를 가진 좌파들을 길에서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것과도 같다. - 113쪽

좌파는 소수자를 비롯하여 우리 모두가 함께 가지고 누려야 하는 권리에 대해 결코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다. 또한 정의롭게 작동하는 시스템과 시장에 복종하지 않는 하나의 평화로운 유럽을 열망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지금 쉽게 반동주의자가 될 수 있는 시절을 살고 있다. 이런 시절에 좌파란 지금까지 싸워 획득한 근본적인 권리를 양보하지 않는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사회적 권리와 보다 정의로운 사회는 그동안의 투쟁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열매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역시 좌파의 몫이다.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저항과 희망을 위한 분투에 세심하게 반응하며, 우리의 민주주의가 세계 각지의 저항에 의해 영감을 받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 이 또한 좌파에게 부여된 사명이다. - 150, 151쪽

생존자들에게는 죽어간 나머지 사람들의 몫까지 살아야 할 운명이 주어진다. 삶과 사람의 중심에 정치가 굳건히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거기서 비롯된다. - 161, 162쪽

좌파란 보다 평등하고 보다 차이를 존중하는 사회로 세상을 변혁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다. - 190쪽

다른 먼지들이 진정한 자류를 갖지 못하고 있을 때 `나`라는 먼지만 홀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 204

좌파란 또한 "세상 모든 일에 즉각적,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사람, 무엇에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전에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기 위한 간격을 스스로에게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도 말한다. 루이즈에게 좌파는 철학적 성찰과 휴머니스트의 인격을 갖는 사람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좌파에게 더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고 좌파들은 그것을 억울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루이즈의 말을 따르자면 그것은 좌파의 "즐겁고도 괴로운" 숙명이다. 눈치 보면서 대세만 쫓는 이들, 성급한 단견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이들에게 우린 좌파라는 영광(?)스러운 라벨을 붙여주지 않으니, 적어도 좌파로 자임하려면 기꺼이 깊이를 수용해야 한다는 그말, 어딘지 낯설지만 충분히 와 닿는다. - 206쪽

나는 은퇴 후의 삶을 기다렸다. 충만한 시간이 주어지면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으니까. 나도 누구보다 세속의 욕망이 크지만, 동시에 그 욕망의 허망함도 잘 안다. 독서를 통해 욕망을 통제하는 법을 배웠다. - 269쪽

박정희 집권 중 우리는 한 번도 정상적인 대통령선거를 치르지 못했다. 박정희는 한국의 과속 성장이 자신의 업적이라고 선전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 사람들의 저력이다. 때가 되면 역사의 페이지를 넘길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장에서 또 다른 가능성이 펼쳐질 수도, 좀 아쉬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박정희는 역사의 페이지가 넘어가는 것을 거부했고 새로운 장이 펼쳐질 가능성을 혼자 차단하려고 했다.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 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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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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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그게 뭐 그렇게 잘못됐어? 내가 지금 "한국 사람들을 죽이자. 대사관에 불을 지르자."고 선동하는 게 아니잖아? 무슨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태극기 한 장 태우지 않아. 미국이 싫다는 미국 사람이나 일본이 부끄럽다는 일본 사람한테는 `개념 있다`며 고개 끄덕일 사람 꽤 되지 않나? - 10, 11쪽

내가 여기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호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직장은 통근 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사는 곳 주변에 문화시설이 많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 - 11쪽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 만날 나와서 사자한테 잡아 먹히는 동물 있잖아. 톰슨가젤. 걔네들 보면 사자가 올 때 꼭 이상한 데서 뛰다가 잡히는 애 하나씩 있다? 내가 걔 같애. 남들 하는 대로 하지 않고 여기는 그늘이 졌네, 저기는 풀이 질기네 어쩌네 하면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있다가 표적이 되는 거지.
하지만 내가 그런 가젤이라고 해서 사자가 오는데 가만히 서 있을 순 없잖아.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은 쳐 봐야지. 그래서 내가 한국을 뜨게 된 거야.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워서 이기는 게 멋있다는 건 나도 아는데... 그래서, 뭐 어떻게 해? 다른 동료 톰슨가젤들이랑 연대해서 사자랑 맞짱이라도 떠? - 11, 12쪽

사실 지루한 얘기는 두 가지뿐이었어. 은혜 시어머니 이야기, 그리고 미연이 회사 이야기. 그런데 은혜랑 미연이 그 두 얘기를 너무 오래 하는 거야. 몇 년 전에 떠들었던 거란 내용도 다를 게 없어. 걔들은 아마 앞으로 몇 년 뒤에도 여전히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을 거야. 솔직히 상황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 자체가 없는 거지. 걔들이 원하는 건 내가 "와, 무슨 그럴 쳐 죽일 년이 다 있대? 회사 진짜 거지같다, 한국 왜 이렇게 후지냐."라며 공감해주는 거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냐. 근본적인 해결책은 힘이 들고, 실행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니까. 회사 상사에게 "이건 잘못됐다."라고, 시어머니에게 "그건 실다."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가 무서운 거야. 걔들한테는 지금의 생활이 주는 안정감과 예측 가능성이 너무나 소중해. - 120, 121쪽

"예나야, 너 비행기에서 낙하산 메고 떨어지는 거랑, 빌딩 꼭대기에서 낙하산 메고 떨어지는 거랑, 어느 게 더 위험한지 알아?"
"어느 게 더 위험한데?"
내 동생은 뭔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뜨악한 표정이었지.
"빌딩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게 훨씬 더 위험해. 높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바닥에 닿기 전에 몸을 추스르고 자세를 잡을 시간이 있거든. 그런데 낮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그럴 여유가 없어. 아차, 하는 사이에 이미 몸이 땅에 부딪쳐 박살나 있는 거야. 높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낙하산 하나가 안펴지면 예비 낙하산을 펴면 되지만, 낮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한테는 그럴 시간도 없어. 낙하산 하나가 안 펴지면 그걸로 끝이야. 그러니까 낮은 데서 사는 사람은 더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조심해야 해. 낮은 데서 추락하는 게 더 위험해."- 124, 125쪽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데, 내가 뭘 하겠다고 나서건 그게 성공할지 성공 안 할지는 몰라. 지금 내가 의대 가서 성형외과 의사 되면, 로스쿨 가서 변호사 되면, 본전 뽑을 수 있을까? 아닐걸? 10년 뒤, 20년 뒤에 어떤 직업이 뜰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앞으로 전망 얘기하는 건 무의미한 거고, 내가 뭘 하고 싶으냐가 정말 중요한 거지. 돈이 안 벌려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좀 덜 억울할 거 아냐. 지명이가 그렇게 자기 진로를 선택한 거지. 그런데 난 내가 뭘 하고 싶은 지를 몰랐어. - 151,152쪽

나더러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던데, 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든. 솔직히 나라는 존재에 무관심했잖아? 나라가 나를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지켜 줬다고 하는데, 나도 법 지키고 교육받고 세금 내고 할 건 다 했어.
내 고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지. 대한만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그래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 줄 구성원을 아꼈지. 김연아라든가, 삼성전자라든가. 그리고 못난 사람들한테는 주로 `나라망신`이라는 딱지를 붙여 줬어. 내가 형편이 어려워서 사람 도리를 못하게 되면 나라가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가 국가의 명예를 걱정해야 한다는 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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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퀘스천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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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내 나이 45세, 중년이 된 지 5년이나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삶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있었고, 좀처럼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했다. 그 무렵 나는 인생에서 배우게 되는 여러 가지 교훈들 중 비로소 한 가지를 깨달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절망, 낙심, 비극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이었다. 절망, 낙심, 비극은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치러야만 하는 통과의례라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대개 커다란 시련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고 깊게 트인다. 사람은 상실, 재난, 아픔, 슬픔 따위를 겪고 나서야 비로소 삶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13, 14쪽

스위스의 비 오는 날 저녁, 조르주 심농이 1946년에 쓴 소설 <뉴욕의 매그레>를 읽으며 내 상황을 소설에 대입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다음 구절은 특히 내 처지를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머리통 형태 그대로 눌려 있는 베개, 잠 못 들고 몸을 심하게 뒤척이다 구겨진 시트, 파자마, 슬리퍼, 의자에 널브러진 옷가지, 탁자 위에 펼쳐진 책 옆에는 먹고 남은 저녁음식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외로운 남자의 끔찍한 음식... 불현듯 그는 자신이 도망쳐 온 모든 것들을 떠올렸다. 그는 입구에 서서 고개극 숙인 채 움직이기 두려워 얼어 붙어 있었다.` - 16, 17쪽

사람들은 왜 책을 읽을까? 혹시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이 혼돈의 세상에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닐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 17쪽

매일이다시피 그 날 할 일 목록을 메모해두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늘 끝없이 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할 일을 끝내고 나면 또 다른 일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 일을 다 끝내면 또...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일상의 복잡함이라니?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빼고 나면 내 삶은 점점 더 지리멸렬해지고 있었고, 생에 대한 의구심만 커져갔다. 스키를 타고 달리는 동안 생이 가져다주는 온통 부조리한 현상들을 잊을 수 있어 좋았다. 점점 더 짙어지는 눈송이들이 삶에 대한 온갖 의심과 물안을 하얗게 씻어 내주고 있었다. - 21, 22쪽

물론 내 인생이 괴롭기만 했던 건 아니지만 결코 `행복`하지도 않았다. 내가 인생의 여러 가지 복잡다단한 문제 때문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의 감정사전에는 `행복`
이라는 단어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어 `즐거워할 수는 있지만 행복할 수는 없어.`라고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시점이 있다. 그 시점을 지나고 나서부터는 갑자기 행복과 마주친다는 생각만으로도 당황하게 된다. 행복, 그 심오하고 모순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를 입 밖으로 끄집어내어 말할 때 우리는 과연 어떤 의미를 전하고 싶어 한 것일까? - 23쪽

행복은 사랑과 비슷한 개념이다. 우리는 사랑과 행복을 간절히 소망하지만 스스로 장애물을 만들어가며 앞을 가로막기도 한다.
우리는 과연 행복해지길 원할까? 우리는 혹시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근원적인 결핍을 끌어안고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건 아닐까? 오히려 우리에게 불편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자초하며 사는 건 아닐까? 우리는 삶에 만족을 주는 조건들을 스스로 밀어내는 행위를 하며 사는 건 아닐까? - 24쪽

내가 삶에 대해 갖게 된 새로운 시각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갖가지 질문에 대해 흑백의 대답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질문들은 회색지대로 우리를 이끌게 된다. 불확실하고 양면적이며 영원한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그 회색지대야말로 우리의 삶에서 가장 흥미로운 공간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비로소 삶을 열린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다른 모두의 삶과 마찬가지로 나의 삶 역시 정답이 없는 질문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러하기에 내 삶은 더욱 경이롭고 흥미롭고 신비로울 수 있다.
우리는 `진실은 ~(이)다`라는 표현을 흔히 쓰지만 진실은 자연의 인과법칙을 제외한 다른 상황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다른 해석이 존재할 뿐이다.
`삶은 뒤로 돌아갈 수 없으며, 지나간 뒤에야 삶을 이해할 수 있다.`
삶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양성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다양성이란 단순한 인정이나 타협을 뜻하는 게 아니다. 삶이란 정답 없는 심오한 의문과 끊임없이 조우하는 일이다. 삶에 대한 정답을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애써야 하는 건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이다. - 28, 29쪽

인간은 단점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존재이다.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서구사회에서 지난 몇 십 년 동안 두려움, 분노, 절망, 증오, 후회 등의 부정적인 생각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고양시키는 정신치료가 인기를 끌게 되었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적 갈등을 겪으며 살아간다. 스스로 만들어낸 내적 갈등이야말로 그 사람의 삶을 좌우한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부러워할 만큼 직업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도 한 겹 벗기고 바라보면 후회와 미련으로 점철된 생을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니까. - 56쪽

삶이란 결코 원하거나 꿈꾸는 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후회를 줄이고 있는 그대로의 생을 끌어안을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암울한 현실을 결코 벗어던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깊은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암울한 현실을 만들어낸 사람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절망감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 56쪽

잘못된 결혼생활은 감정적인 스톨홀름증후군이다. 덫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 상태를 체념적으로 받아들여 안주하게 되는 것이다. 벽을 허물기만 하면 어디로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너무 오래 갇혀 살아온 나머지 빠져나갈 수 없게 된 것이다. - 57쪽

어느 누가 보더라도 권태로운 결혼생활이나 직업을 그대로 유지해간다는 건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는 그런 삶을 유지해가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덫에 갇혔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가장 불편한 진실은 그 덫을 만든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무런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직업을 선택한 것도,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을 선택한 것도, 성격에 맞지 않는 여자와 결혼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집을 구입한 것도, 자녀를 낳은 것도, 주변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쓰는 것도 모두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다. - 72, 73쪽

시간의 흐름에는 가속도가 붙는다. 중년의 경계를 지나고 나면 일 년은 전과 다름없는 일 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나이를 먹고 나서야 세상에서 살다간 모든 사람들이 맞닥뜨렸을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인생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던 사람들은 나이가 지긋해지고 나서야 자기 자신에게 잔인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삶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때서야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 덫에 갇혀 더없이 소중한 인생을 불행에 빠뜨리고도 바꿀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진실은 여전히 유효하다.
`삶의 덫에 갇혀 더없이 소중한 인생을 불행하게 보내기로 결정한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 76쪽

우리는 누구나 떠나는 꿈을 꾼다. 자유를 얻는 대신 외로움을 덤으로 얻게 될 미지의 땅으로 모험을 떠나는 것은 어려운 결정이다. 가정이나 직업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유로워지기로 결심한다는 건 어른이되어 내릴 수 있는 결정 중에서 가장 힘들다. 그런 까닭에 나는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키케로는 듣기에는 불편하지만 일리 있는 말을 했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건 대단히 위험하다. 하지만 그런 위험은 세상의 도처에서 너무 쉽게 일어난다.` - 77쪽

제라르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먼저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우리는 타인의 행복까지 책임질 수는 없다. 누구나 자기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을 뿐이다. 부당한 현실에 대해 혹은 늘 고통을 안기는 배우자에 대해 불평만 늘어놓을 뿐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비상구`를 두드리고 괴로운 현실 너머 다른 가능성을 과감하게 찾아 떠나야 한다. 스스로 만든 덫에서 한시바삐 빠져 나와야 한다. - 79쪽

우리는 어떤 일이나 결과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걸 좋아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조만간 지나간 과거로 치부될 뿐이다. 누구나 자기 자신의 결정에 대해 정당성을 확보하고 싶겠지만 곧 과거로 치부될 일에 대해 지나친 분노를 쏟아 내거나 후회할 필요는 없다. - 103쪽

끔찍한 음모를 꾸민 이아고는 왜 그런 일을 벌이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려 들지 않는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지 자신의 주관적인 해석일 뿐이니까. 모든 이야기는 진실여부와 상관없이 주관적이니까.
모든 이야기의 본성은 주관적이다.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각자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진실일 뿐이다. 우리는 늘 상황을 합리화하기 위해, 비난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핑계를 대거나 변명하기 위해, 그 모든 상황을 어떻게든 스스로 견딜 수 있게 하기 위해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 109, 110쪽

나는 매일이다시피 죽음을 생각한다. 몽테뉴도 살아가기 위해 매일 조금씩이나마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존재하지 않아도 세상은 잘 돌아가리라 확신한다. 내가 죽으며 나와 연관되었던 사연, 실망, 성공, 좌절, 내 인생을 특징지었던 복잡한 일들 모두가 사라질 것이다. - 130쪽

블랜드 교수의 죽음은 나에게 또 다른 깨달음을 주었다. 우리가 보게 되는 타인의 겉모습은 종잇장보다 얇은 존재의 표면일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존재의 표면 아래에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어둠이 숨어 있다. - 130쪽

아버지는 어머니와 결혼생활을 이어오는 동안 여러 차례 외도를 했다. 어머니의 심한 신경증을 생각할 때 아버지의 외도를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어머니는 가까이 있는 사람을 들들 볶는 스타일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결혼생활을 깰 수 없었기에 불륜을 선택했다고 본다.
아버지는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덫을 치고 살았다. 짐을 벗어던질 수 있는 일도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결정하고 고통을 감수하곤 했다. 아버지가 스스로 덫에 빠지게 된 건 지나친 자존심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감수하는 사람이었다. - 175쪽

누구나 세상에서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될 때가 온다. 우리가 갈망하고 바라던 모든 것, 성공과 좌절, 욕망과 체념, 장점과 단점 그 모든 게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때가 온다. 그런 것들은 죽음과 함께 모두 사라질 테니까.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기`가 아닌 종말이 온다. 죽음을 아무리 멋지게 포장하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하는 사실 한 가지가 있다.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끝난다는 사실이다.
나는 죽음으로 보든 게 끝난다고 믿고 있다. 죽는 순간 꺼진 생명의 스위치는 다시는 켜지지 않을 거라 믿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게 사실이다. 죽음으로부터 달아날 곳이 없다고 생각하면 때로 울적해진다. 타인의 죽음은 받아들일 수 있다. 살다보면 수없이 타인의 죽음과 마주하게 되니까. 하지만 자기 자신의 죽음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 186, 187쪽

`사랑에 빠지기는 쉽다. 사랑을 유지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 217쪽

`인생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자기 자신이다. 우리는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절대로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 - 272쪽

가장 커다란 `의심`은 자기 자신에 대해 품는 의심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을 잘 다스려 `내일에는 내일의 해가 뜬다.`는 낙관주의를 지켜갈 수 있을까?
바로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숙제가 아닐까? - 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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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지금+여기 3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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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실패하는 데 있어서 `노력 부족`이란 개인적 변수가 결정적이라면, 왜 그런 부족 현상이 경제력 층위별로 정확하게 구별되어 나타나느냔 말이다. 왜 집안의 `소득`과 개인의 `성공`이 탄탄하게 비례하는 지표들이 수두룩하냔 말이다. 취업 실패 이유에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다. 다만, 성공의 요인이 100% 개인적 역량 때문은 아닌 것처럼, 실패 역시 마찬가지란 얘기다. - 34쪽

바로 여기에 이십대 자기계발하기의 세번째 특징이 있다. `자기 계발에 열심이지 않은 게으른 자`와의 비교에서 자신의 현재에 대한 위안과 만족을 구한다는 점. 진솔이는 "솔직히 게으른 사람보다는 그래도 이것이 괜찮은 거잖아요"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자기계발로 둔갑한 취업준비 과정이 아무리 희생과 상처를 요구하더라도, 이것이 다른 누군가에 비해 시간을 체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면 그 자체를 기꺼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힘들다! 그렇지만 그건 내가 이렇게 체계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잖아."라는 식으로 말이다. - 60쪽

`내가 투자한 시간`에 대한 이런 집착은 일부러 비교대상을 설정하여 `시간을 써서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에다 얼만큼의 시간을 썼는지`를 따지게 한다. 그래서 그 무엇, 즉 본인에게 어떤 자기계발 결과물이 없어도 거기에 투자한 `과정`만으로도 "너는 나처럼 노력하지 않았잖아!"하는 기준을 만들어내어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다. 이는 이런 자기만족 외에는 만족을 구할 만한 그 무엇도 없다는 절박함 때문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위안을 얻지 않는다면 그 지루한 고통의 과정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 60쪽

그래서 이들의 자기계발은 매우 역설적이다. 취업되기 위해 그 힘든 자기계발을 하는 건데, 결과적으로는 취업과 상관도 없는 단순한 `상대적 비교에서 오는 자기만족`을 위해 자기계발을 하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앞서 그 자체로 만족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자기계발에 대해 말한 바 있지만, 이 경우는 결코 그것도 아니다. 남보다 위에 올라서려는 노력이 자기계발일진대, 그로 인한 성과가 없다보니 일부러 자신보다 비교우위가 `낮은` 집단을 곁에 세워둔 채 위로를 구하는 셈이다. 그러니 여기서도 결국 `자기`계발은 없다. - 60, 61쪽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이십대들의 취업준비란 게 이런 경우든 저런 경우든 다 `긍정`됨으로써 자기계발이 스스로 동력을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 취업과 직결되든, 이와 별개의 만족감을 주든 다 긍정되니 말이다. 그래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은, 바로 `누군가와는` 다르게 시간을 사용한다는 데서 만족감을 얻는다는 소리에 다름 아니다. 자기계발하는 이십대의 이 세번째 특징은, 취업이라는 목표로서만 의미 있는(첫번째 특징) 자기계발을 실제로는 별 성과가 없음에도 계속 해야 하는(두번째 특징) 모순의 과정으로 매우 자연스럽게 순환되도록 돕는다. - 61쪽

개인이 사회적 원인으로 고통 받는 상황이 늘고 있다는 게 현재 이십대가 처한 상황의 한 특징이라면, 이를 사회적 원인에서 비롯된 문제로 이해하지 않는 것 역시 지금 이십대가 지닌 특징의 하나로 보인다. - 90쪽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공감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은, 어쨌든 모든 건 자기 할 탓이라는 자기계발 논리에 길들여진 결과이다. 자기계발서는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측정하고자 했다. 고통이란, 한 개인이 특정한 현상에 반응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 상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자기계발서는 고통을 객관적으로 비교 가능한 것으로 해석한다. 즉, A가 아파할 때 그보다 더 심한 고통을 이겨낸 B가 있다면 A의 고통은 참아야 되고, 이겨내야 하고, 사회적 요인과 무관한 것이 되어버린다. 이를테면, 심성 여린 A가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경험한 점장의 횡포에 대한 서러움은, 늘 강한 심성을 가진 덕분에 그보다 더한 것도 참아내는 B가 있기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먹 한 대 맞은 고통은 두 대 맞은 고통보다 그저 `낮은` 순위로 이해될 뿐이다. - 91쪽

지금의 이십대들이 수행하는 `학력의 위계화된 질서`에 관한 집착은 과거의 학력주의보다 훨씬 정교해졌고 자기내면화의 강도도 훨씬 높다. 이들에게 학력에 근거한 비교와 차별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이를 의문시 할 이유를 굳이 찾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그 결과, 티끌만틈의 의문도 없는 `학력위계주의`가 이십대들에게 내면화되고 있었다. "결과를 책임져라!"는 자기계발을 권하는 사회의 시대정신을 발판삼아서 말이다. - 108쪽

사실 이 지점에서 지금의 이십대가 어떤 모습으로서 이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지가 가장 잘 나타난다. 멸시의 피해자들은 또 어떤 지점에선 멸시의 가해자로 존재한다. 서울대생은 연고대생을, 연고대생은 서강대생을, 서강대생은 또... 그렇게 밑바닥까지 멸시의 고리는 이어진다. 그래서 멸시를 받는 쪽이라고 과연 누군가를 멸시하지 않는다는 말이냐는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대학생 집단은 없다. - 167, 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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