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내 나이 45세, 중년이 된 지 5년이나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삶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있었고, 좀처럼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했다. 그 무렵 나는 인생에서 배우게 되는 여러 가지 교훈들 중 비로소 한 가지를 깨달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절망, 낙심, 비극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이었다. 절망, 낙심, 비극은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치러야만 하는 통과의례라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대개 커다란 시련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고 깊게 트인다. 사람은 상실, 재난, 아픔, 슬픔 따위를 겪고 나서야 비로소 삶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13, 14쪽
스위스의 비 오는 날 저녁, 조르주 심농이 1946년에 쓴 소설 <뉴욕의 매그레>를 읽으며 내 상황을 소설에 대입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다음 구절은 특히 내 처지를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머리통 형태 그대로 눌려 있는 베개, 잠 못 들고 몸을 심하게 뒤척이다 구겨진 시트, 파자마, 슬리퍼, 의자에 널브러진 옷가지, 탁자 위에 펼쳐진 책 옆에는 먹고 남은 저녁음식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외로운 남자의 끔찍한 음식... 불현듯 그는 자신이 도망쳐 온 모든 것들을 떠올렸다. 그는 입구에 서서 고개극 숙인 채 움직이기 두려워 얼어 붙어 있었다.` - 16, 17쪽
사람들은 왜 책을 읽을까? 혹시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이 혼돈의 세상에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닐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 17쪽
매일이다시피 그 날 할 일 목록을 메모해두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늘 끝없이 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할 일을 끝내고 나면 또 다른 일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 일을 다 끝내면 또...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일상의 복잡함이라니?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빼고 나면 내 삶은 점점 더 지리멸렬해지고 있었고, 생에 대한 의구심만 커져갔다. 스키를 타고 달리는 동안 생이 가져다주는 온통 부조리한 현상들을 잊을 수 있어 좋았다. 점점 더 짙어지는 눈송이들이 삶에 대한 온갖 의심과 물안을 하얗게 씻어 내주고 있었다. - 21, 22쪽
물론 내 인생이 괴롭기만 했던 건 아니지만 결코 `행복`하지도 않았다. 내가 인생의 여러 가지 복잡다단한 문제 때문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의 감정사전에는 `행복` 이라는 단어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어 `즐거워할 수는 있지만 행복할 수는 없어.`라고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시점이 있다. 그 시점을 지나고 나서부터는 갑자기 행복과 마주친다는 생각만으로도 당황하게 된다. 행복, 그 심오하고 모순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를 입 밖으로 끄집어내어 말할 때 우리는 과연 어떤 의미를 전하고 싶어 한 것일까? - 23쪽
행복은 사랑과 비슷한 개념이다. 우리는 사랑과 행복을 간절히 소망하지만 스스로 장애물을 만들어가며 앞을 가로막기도 한다. 우리는 과연 행복해지길 원할까? 우리는 혹시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근원적인 결핍을 끌어안고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건 아닐까? 오히려 우리에게 불편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자초하며 사는 건 아닐까? 우리는 삶에 만족을 주는 조건들을 스스로 밀어내는 행위를 하며 사는 건 아닐까? - 24쪽
내가 삶에 대해 갖게 된 새로운 시각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갖가지 질문에 대해 흑백의 대답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질문들은 회색지대로 우리를 이끌게 된다. 불확실하고 양면적이며 영원한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그 회색지대야말로 우리의 삶에서 가장 흥미로운 공간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비로소 삶을 열린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다른 모두의 삶과 마찬가지로 나의 삶 역시 정답이 없는 질문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러하기에 내 삶은 더욱 경이롭고 흥미롭고 신비로울 수 있다. 우리는 `진실은 ~(이)다`라는 표현을 흔히 쓰지만 진실은 자연의 인과법칙을 제외한 다른 상황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다른 해석이 존재할 뿐이다. `삶은 뒤로 돌아갈 수 없으며, 지나간 뒤에야 삶을 이해할 수 있다.` 삶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양성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다양성이란 단순한 인정이나 타협을 뜻하는 게 아니다. 삶이란 정답 없는 심오한 의문과 끊임없이 조우하는 일이다. 삶에 대한 정답을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애써야 하는 건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이다. - 28, 29쪽
인간은 단점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존재이다.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서구사회에서 지난 몇 십 년 동안 두려움, 분노, 절망, 증오, 후회 등의 부정적인 생각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고양시키는 정신치료가 인기를 끌게 되었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적 갈등을 겪으며 살아간다. 스스로 만들어낸 내적 갈등이야말로 그 사람의 삶을 좌우한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부러워할 만큼 직업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도 한 겹 벗기고 바라보면 후회와 미련으로 점철된 생을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니까. - 56쪽
삶이란 결코 원하거나 꿈꾸는 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후회를 줄이고 있는 그대로의 생을 끌어안을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암울한 현실을 결코 벗어던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깊은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암울한 현실을 만들어낸 사람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절망감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 56쪽
잘못된 결혼생활은 감정적인 스톨홀름증후군이다. 덫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 상태를 체념적으로 받아들여 안주하게 되는 것이다. 벽을 허물기만 하면 어디로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너무 오래 갇혀 살아온 나머지 빠져나갈 수 없게 된 것이다. - 57쪽
어느 누가 보더라도 권태로운 결혼생활이나 직업을 그대로 유지해간다는 건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는 그런 삶을 유지해가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덫에 갇혔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가장 불편한 진실은 그 덫을 만든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무런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직업을 선택한 것도,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을 선택한 것도, 성격에 맞지 않는 여자와 결혼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집을 구입한 것도, 자녀를 낳은 것도, 주변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쓰는 것도 모두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다. - 72, 73쪽
시간의 흐름에는 가속도가 붙는다. 중년의 경계를 지나고 나면 일 년은 전과 다름없는 일 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나이를 먹고 나서야 세상에서 살다간 모든 사람들이 맞닥뜨렸을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인생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던 사람들은 나이가 지긋해지고 나서야 자기 자신에게 잔인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삶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때서야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 덫에 갇혀 더없이 소중한 인생을 불행에 빠뜨리고도 바꿀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진실은 여전히 유효하다. `삶의 덫에 갇혀 더없이 소중한 인생을 불행하게 보내기로 결정한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 76쪽
우리는 누구나 떠나는 꿈을 꾼다. 자유를 얻는 대신 외로움을 덤으로 얻게 될 미지의 땅으로 모험을 떠나는 것은 어려운 결정이다. 가정이나 직업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유로워지기로 결심한다는 건 어른이되어 내릴 수 있는 결정 중에서 가장 힘들다. 그런 까닭에 나는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키케로는 듣기에는 불편하지만 일리 있는 말을 했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건 대단히 위험하다. 하지만 그런 위험은 세상의 도처에서 너무 쉽게 일어난다.` - 77쪽
제라르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먼저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우리는 타인의 행복까지 책임질 수는 없다. 누구나 자기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을 뿐이다. 부당한 현실에 대해 혹은 늘 고통을 안기는 배우자에 대해 불평만 늘어놓을 뿐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비상구`를 두드리고 괴로운 현실 너머 다른 가능성을 과감하게 찾아 떠나야 한다. 스스로 만든 덫에서 한시바삐 빠져 나와야 한다. - 79쪽
우리는 어떤 일이나 결과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걸 좋아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조만간 지나간 과거로 치부될 뿐이다. 누구나 자기 자신의 결정에 대해 정당성을 확보하고 싶겠지만 곧 과거로 치부될 일에 대해 지나친 분노를 쏟아 내거나 후회할 필요는 없다. - 103쪽
끔찍한 음모를 꾸민 이아고는 왜 그런 일을 벌이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려 들지 않는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지 자신의 주관적인 해석일 뿐이니까. 모든 이야기는 진실여부와 상관없이 주관적이니까. 모든 이야기의 본성은 주관적이다.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각자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진실일 뿐이다. 우리는 늘 상황을 합리화하기 위해, 비난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핑계를 대거나 변명하기 위해, 그 모든 상황을 어떻게든 스스로 견딜 수 있게 하기 위해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 109, 110쪽
나는 매일이다시피 죽음을 생각한다. 몽테뉴도 살아가기 위해 매일 조금씩이나마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존재하지 않아도 세상은 잘 돌아가리라 확신한다. 내가 죽으며 나와 연관되었던 사연, 실망, 성공, 좌절, 내 인생을 특징지었던 복잡한 일들 모두가 사라질 것이다. - 130쪽
블랜드 교수의 죽음은 나에게 또 다른 깨달음을 주었다. 우리가 보게 되는 타인의 겉모습은 종잇장보다 얇은 존재의 표면일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존재의 표면 아래에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어둠이 숨어 있다. - 130쪽
아버지는 어머니와 결혼생활을 이어오는 동안 여러 차례 외도를 했다. 어머니의 심한 신경증을 생각할 때 아버지의 외도를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어머니는 가까이 있는 사람을 들들 볶는 스타일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결혼생활을 깰 수 없었기에 불륜을 선택했다고 본다. 아버지는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덫을 치고 살았다. 짐을 벗어던질 수 있는 일도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결정하고 고통을 감수하곤 했다. 아버지가 스스로 덫에 빠지게 된 건 지나친 자존심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감수하는 사람이었다. - 175쪽
누구나 세상에서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될 때가 온다. 우리가 갈망하고 바라던 모든 것, 성공과 좌절, 욕망과 체념, 장점과 단점 그 모든 게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때가 온다. 그런 것들은 죽음과 함께 모두 사라질 테니까.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기`가 아닌 종말이 온다. 죽음을 아무리 멋지게 포장하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하는 사실 한 가지가 있다.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끝난다는 사실이다. 나는 죽음으로 보든 게 끝난다고 믿고 있다. 죽는 순간 꺼진 생명의 스위치는 다시는 켜지지 않을 거라 믿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게 사실이다. 죽음으로부터 달아날 곳이 없다고 생각하면 때로 울적해진다. 타인의 죽음은 받아들일 수 있다. 살다보면 수없이 타인의 죽음과 마주하게 되니까. 하지만 자기 자신의 죽음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 186, 187쪽
`사랑에 빠지기는 쉽다. 사랑을 유지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 217쪽
`인생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자기 자신이다. 우리는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절대로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 - 272쪽
가장 커다란 `의심`은 자기 자신에 대해 품는 의심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을 잘 다스려 `내일에는 내일의 해가 뜬다.`는 낙관주의를 지켜갈 수 있을까? 바로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숙제가 아닐까? - 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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