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 온전한 나를 위한 혜민 스님의 따뜻한 응원
혜민 지음, 이응견 그림 / 수오서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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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모르는 다른 사람들의 쉬운 비난 때문에
왜 내 삶이 망가져야 되지?"
- 홍석천 - 29쪽

관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참지만 말고
상대가 나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허락해주세요.
참는다는 것은 내가 옳다는 것에 집착하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못 하니까 화가 나 있는 상태입니다.
한집안에서 자란 형제도 각기 다른 관점과 습관이 있어요.
나에게 맞추라고만 하지 말고 다름을 허락해주세요. - 66쪽

처음에는 나와 다른 점이 좋아서 좋아했는데
지금은 나와 다른 점들이 나를 힘들게 하지요? - 66쪽

인생이란 거창한 무엇이 따로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결국 내 인생의 내용인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는 곁에 있는 이들을 소중하게 여겨야 해요.
그들이 바로 내 인생의 이야기가 되니까요. - 79쪽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차별을 두면서
다른 사람들보다는 잘났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 안 어디에 열등감이 아직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월감은 열등감이 있기 때문에 존재해요. - 84쪽

누군가의 아픔을 치유한다는 것은, 그런 것 같습니다.
내가 그 사람이 가진 문제 해결 방법을 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도 당신과 같은 비슷한 아픔이 있었다고
마음을 열고 잘 들어주며 공감해줄 때,
또렷한 답이 없더라도 상대는 용기를 얻고 나아집니다. - 115쪽

창의적 아이디어는 비주류 삶을 사는 외곽에서 일어나기 쉬워요.
주류가 정해놓은 규칙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도전하고 철학하기 때문입니다.
주류가 아니라도 지금 내 삶의 위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뭐든 내 식으로 꾸준히 해보세요. - 135쪽

생각을 많이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지 말고 반대로 마음을 좀 쉬어보세요.
생각이 쉴 때 문제의 해답이 떠올라요.
지혜는 고요함에서 옵니다. - 136쪽

걱정이 많아서 불안할 때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이렇게 미래에 대해 걱정한다고 바뀌는 것이 있는지.
걱정 때문에 오히려 지금 현재 시간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바뀌는 것이 없다면 걱정하는 그 마음에게 말하세요.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면 그때 가서 걱정하자!" - 136쪽

좋아하는 일이니까 항상 좋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잘못입니다.
좋아해서 시작했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
재미가 없어지고 힘든 시간이 있을 수 있어요.
어떤 일이든 고된 시간을 이겨내야 결실을 맺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요. - 156쪽

교수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본인 연구만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교수가 되고 보니 비용 처리 영수증 정리, 각종 추천서 써주기, 연구비 지원서와 보고서 작성, 학교 홍보용 차출 강연 등 하기 싫은 일들도 함께 섞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모든 직업이 다 그런 것 같아요. 본인이 싫은 것도 해야 좋은 것도 할 수가 있습니다. - 156쪽

생각이란, 몸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내 마음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견해에요. 사람은 하루에만 무려 1만 7,000번의 생각을 일으킨다고 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주로 과거의 기억에 의지해서 비슷한 생각들이 습관화되어 도미노처럼 일어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그 생각들을 대부분 알아채지 못하고 생각 속에 완전히 빠져버려 생각이 이끄는 대로 마음이 끌려다닌다는 사실입니다. 즉, 내 마음이 만들어낸 생각이지만 주객이 완전히 전도되어 마음이 생각을 부리는 것이 아니고, 생각이 내 마음을 종처럼 부리고 사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주로 무의식 속에서 생각들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그 생각들이 실제 사실인지 아니면 내 관점에서 본 단순한 견해인지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마음에 올라온 생각이 곧 현실이라고 믿어버리게 되지요. 실제가 전혀 아닐 수도 있는데도 말입니다. - 214쪽

마음에 고민이 많아 우울하고 힘들 때 머리를 들고 앞에 있는 사물을 아주 자세히 관찰해보세요. 사물을 보는 순간 생각의 진행이 멈추면서 조금 전 마음의 고민이 그냥 ‘생각 덩어리였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생각들에게 너무 힘을 실어주지 말고 ‘고작 생각들이었어.’ 하세요. - 219쪽

야구 선수가 아무리 홈런을 쳐도 결국 타자는
1루, 2루, 3루를 거쳐 처음 떠났던 홈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결국, 인생이나 수행도 처음엔 대단하고 특별한 무언가를 찾아
집을 떠나지만, 무수한 성공과 실패의 경험 후에는
처음 떠났던 그 자리의 소중함을 깨닫고 다시 돌아옵니다.
내가 그토록 찾던 것이 항상 내 손안에 있었던 것일 수 있습니다. - 239쪽

내 안에는 여러 생각이나 감정들이 일어나고 사라지지만
그것들 뒤로 조용히 지켜보고 아는 관조자가 있습니다.
그 관조자는 묵묵히 지켜보면서 단지 알 뿐
그 생각이나 감정에 물들지 않습니다.
그 관조자가 바로 우리의 본성입니다. - 242쪽

마음 본성은 거울과도 같아서
더렵혀진 적도 더렵혀질 수도 없습니다.
마음 거울에 질투, 미움, 탐욕 등이
잠시 영상으로 비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영상들이 보여도 거울 자체는 물들지가 않습니다.
잠시 거울 위로 보여지는 영상들을 붙잡고 나라고 착각하지 마세요. - 242쪽

해탈이란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불안함이 없는 것을 뜻한다.
- 승찬 선사 - 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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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서재 - 진화하는 지식의 최전선에 서다 다윈 삼부작 1
장대익 지음 / 바다출판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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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 : 만일 아이들에게 ‘마르크스주의자’, ‘자본주의자’, ‘보수주의자’, ‘자유주의자’ 등과 같은 꼬리표를 달아준다고 해보세요. 다들 말이 안 된다고 느낄 거에요. 정치학적 사고나 경제학적 이론들을 이해할 리 없는 아이들을 그렇게 부르는 것은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만일 그것이 강요에 의한 꼬리표라면 학대라고도 할 수 있죠. - 25쪽

데닛 : 문화를 생물학적 조건과 무관하다거나 자율적으로 굴러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문화도 결국 각 개인의 두뇌 작용들 아닙니까? 두뇌는 유전자로 만들어질 테고요. 문화의 특수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다윈도 이미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에서 문화 보편적인 감정들에 대해 논의했었고요. 심지어 그런 감정들을 개나 오랑우탄도 공유하고 있다고 주장했었지요. - 34쪽

윌슨 : 하지만 저는 다윈의 그런 책들 속에서 보석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외계인의 시선’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안드로메다에서 지구의 생명체를 탐구하기 위해 생물학자를 파견했다고 해봐요. 그의 미션은 지구 생물들의 의사소통 체계를 연구해 본국에 보고하는 일이에요. 그는 틀림없이 인간의 언어 행위를 새의 노래, 침팬지의 팬트 후트, 벌의 댄스, 심지어 개미의 페로몬 작용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보고할 겁니다. 왜냐면 그 모든 행위는 의사소통이라는 공통 목표를 위해 특화된 해결책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인간에게만 문법 능력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것인 양 특별하게 취급하게 되면 정작 중요한 연속성은 보지 못합니다.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이렇게 ‘외계인의 시선’이 필요합니다. - 34쪽

구달 : 집요한 관찰은 예리한 통찰로 이어집니다. - 52쪽

구달 : 그래서 저는 동물에 대한 연구와 동물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따로 놀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물을 더 깊이 연구하면 할수록 인간과 비슷한 면을 많이 보게 되거든요. 이제 전 세계 조직을 갖고 있을 정도로 확산된 ‘뿌리와 새싹(Roots & Shoots)’이라는 운동은 바로 이런 생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젠 동물 보호 수준을 넘어 생태, 교육, 평화의 문제로까지 이 운동을 발전시켜야 하는 시점입니다. - 53쪽

쿤 : 연습문제의 특징이 뭡니까? 이미 답도, 그 답에 이르는 길도 있다는 거죠. 아이들의 그림 퍼즐도 마찬가지에요. 이미 원판 그림(정답)이 있고 그 그림 조각들을 맞추는 방법도 정해져 있지요. 이게 바로 패러다임의 특성이에요. 즉 과학자는 자신이 받아들이고 있는 패러다임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탐구 활동을 합니다. 그래서 어떤 현상이든 그것을 통해 보려하지요. 실제 경험과 이론 틀이 삐걱거리더라도 과학자는 자신의 무능을 탓할 뿐 틀 자체를 의심하진 않습니다. - 58, 59쪽

쿤 : 한 패러다임에 대한 반례들이 쌓여도 혁명은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 패러다임을 부여잡고 있는 과학자들은 반례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곧 해결될 거라 믿는 거죠. 그런데 반례들이 점점 쌓이고 대가들도 해결을 못하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다 보면 그때서야 심리적 위기감이 몰려옵니다. 그러다 주로 변방에서 신예들이 나타나 그 반례들을 풀어내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렇게 되면 기존의 패러다임에 목을 매던 사람들이 새로운 진영으로 급격히 이동합니다. 이것이 바로 과학혁명입니다. 수성의 근일점 변경을 설명하지 못했던 뉴턴 역학이 그 점을 정확히 예측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게 왕좌를 물려준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지요. 생명의 다양성과 변화를 설명하지 못한 창조론이 다윈의 진화론에 자리를 내준 경우도 다 그런 예들입니다. - 61, 62쪽

굴드 : 저는 거기서 ‘진화는 진보가 아니며 다양성의 증가일 뿐’이라고 했죠. 생명이 어떤 트렌드나 방향을 가지고 진화해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요, 그것은 진화적 변화의 특징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에요. - 77쪽

도킨스 : 제 책은 한 마디로 ‘유전자는 이기적인데 어떻게 이타적인 인간이 진화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거든요. 즉 유전자는 결국 더 많은 자기 복사본을 남기기 위해 인간을 이타적이게 만들었다는 얘기니까요. - 87쪽

슈뢰딩거 : 사실 한 사람의 과학자가 자신의 전문 분야 이상의 지식에 정통하기는 정말 힘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통일적이고 포괄적인 지식을 향한 강한 열망을 갖고 있죠. 이런 딜레마에 대해 서문에서 저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 딜레마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누군가 과감하게 오류를 범할 위험을 감수하고 사실과 이론들을 종합하는 시도를 감행하는 것뿐이다." - 103쪽

밀러 : 하지만 이 책의 요지가 단지 그들의 삶이 유사하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저는 두 천재가 창의성을 발휘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보여주고 싶었지요. 창조의 순간에는 학문 사이의 경계가 해체되었습니다. 대신 미학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더군요. 피카소의 걸작들 뒤에는 수학적 사고와 과학 정신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미술을 위해 기하학적 형태로의 환원을 모색했고, 사진 실험을 계속하며 시간과 공간의 동시성 문제에 천착했어요. 한편 아인슈타인은 당시 전자기 이론의 비일관성, 빛의 성질에 관한 이질적 견해 등을 견딜 수 없어 했어요. 왜냐하면 그런 비일관성과 비대칭성은 그가 보기에 전혀 아름답지 않은 거였거든요. 그는 자연세계의 진짜 법칙은 단순할 거라 믿었어요. 미니멀리즘의 신봉자였죠. - 161쪽

몸을 유지하는 데 드는 최소 에너지를 ‘날 음식’만으로 충당해야 한다면 여분의 에너지는 생기기 힘듭니다. 소화를 하는 데만도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들기 때문입니다. 가령 날 음식만 먹는 침팬지는 하루 여섯 시간 동안이나 무언가를 씹고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류의 진화 역사에서 어떤 무리가 ‘화식’을 발명하여 구운 고기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하면서 운명이 갈라진 것이죠. 날 것을 소화하기 위해 사용했어야 할 에너지와 시간의 일부를 뇌로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랭엄은 인간이 침팬지에 비해 뇌가 큰 것은 바로 이런 먹을 거리의 차이 때문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상대적으로 작은 턱과 입, 뭉뚝한 이빨, 그리고 짧은 소화관을 진화시킨 이유도 바로 화식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 225, 226쪽

저자(리처드 도킨스 <눈먼 시계공>)에 의하면 자연선택 과정이 무작위적이라는 주장은 오해일 뿐입니다. 그 과정은 오히려 무작위적인 변이 생성을 추려주는 누적적이고 창조적인 과정입니다. 따라서 자자의 논리대로라면 자연계에 만연해 있는 놀라운 적응 형질들도 충분한 시간만 주어지면 자연선택에 의해 얼마든지 진화가 가능하게 되죠. - 251쪽

하지만 인간 여성들은 자기 자신마저도 배란일이 언제인지를 정확히 모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는 더더욱 없죠.
저자(제러드 다이아몬드 <섹스의 진화>)는 이런 독특한 현상을 두 가지 가설, 즉 ‘아빠를 집에’와 ‘여러 아빠’ 가설로 설명합니다. ‘아빠를 집에’ 가설에 따르면, 배란 은폐는 남성들로 하여금 가정에 머무르게 함으로써 자신의 아내가 낳은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는 확신을 갖도록 하기 위해 진화했습니다. 반면 ‘여러 아빠’에 따르면, 배란 은폐는 여성으로 하여금 더 많은 남자들과 자유롭게 성관계를 맺도록 하고 그 결과 남성들이 여성이 낳은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를 정확히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진화했습니다. 서로 상반된 이유에서 배란 은폐가 진화했다는 두 가설을 비교 분석하면서, 그는 인간 암컷만이 가진 특성인 배란 은폐의 수수께끼를 한 꺼풀씩 벗겨주고 있습니다. - 265, 266쪽

하지만 저자(제러드 다이아몬드 <문명의 붕괴>)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바로 디테일에 있습니다. 예컨대 거대한 석상 문화로 유명한 이스터 섬의 문명이 몰락한 원인을 분석하면서 그는 무자비한 삼림 파괴에서 시작되어 그로 인한 전쟁, 지배계급의 전복, 인구 감소로 이어지는 인과의 궤적을 정교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환경파괴야말로 문명 붕괴 요인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유일하게 공통적인 부분이라고 역설합니다. 즉 문명 붕괴 뒤에는 늘 환경과 생태의 중요성에 대한 무지와 무시가 있었다는 주장이죠. - 313쪽

르윈틴이 볼 때 현대 생물학이 기대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이른바 ‘유전자 환원주의(genetic reductionism)’입니다. 유전자 환원주의는 개인의 모든 특성들을 유전자의 차이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말하는데요. 현대 생물학 중에서 특히 유전학과 진화생물학이 주로 이 이데올로기의 근원지입니다.
그는 지능지수의 유전성 문제를 비롯하여 인간의 여러 특성들에 대한 유전학적 접근이 근본부터 틀렸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세련된 통계 기법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인간이 속해 있을 수 있는 모든 환경에 대한 지식이 우리에게 없는 이상 유전성 논의 자체가 왜곡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개인차 의 80퍼센트가 유전자에서 기인하며 나머지 20퍼센트가 환경에 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환경의 전범위에 걸쳐서 조사가 이루어졌어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에 따르면 개인의 능력차는 환경의 변화로 인해 얼마든지 역전될 수 있습니다. - 368쪽

르윈틴은 언젠가 "본질은 맥락과 상호작용이다"라고 진술한 바 있습니다. 그가 <DNA 독트린>에서 논의한 상호작용은 유전자와 환경, 개체와 환경, 그리고 원인과 결과간의 상호작용입니다. 이런 상호작용들의 진정한 의미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그는 유전자와 환경의 효과가 상호 의존적이라는 점, 표현형의 범위가 고정되지 않는다는 점, 유전자가 여러 원인들 중에 특권적인 지위를 가질 수 없다는 점, 그리고 환경이 개체들에 의해 구성된다는 점 등을 부각시켰습니다. - 3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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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적 인생의 권유 - 최재천 교수가 제안하는 희망 어젠다 최재천 스타일 2
최재천 지음 / 명진출판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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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과학 재단은 한때 연구비의 일부를 반드시 그 연구 결과를 일반에게 알리는 데 쓰도록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과학의 대중화는 시간이 남아돌고 떠들기 좋아하는 몇몇 교수들만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과학자라면 모름지기 누구나 국가의 세금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를 사회에 환원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5쪽

통섭적 인생이 대체 무엇이냐고요? 그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삶의 태도입니다. 첫째는 ‘받은 만큼 돌려주는’ 자연의 법칙대로 사는 태도입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자연을 이야기하고 환경을 이야기하는 속내에는 바로 이러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인간도 결국 지구 위의 작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다른 동물도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겸허한 자세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진정 아름다운 삶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8, 9쪽

두 번 째는 ‘피카소’처럼 사는 태도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방식과 피카소 방식이지요. 두 사람 모두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였지만,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이라는 결정적 한 방으로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반면, 피카소는 엄청난 다작을 통해 천재성을 발휘했습니다. 이를테면 공이 날아올 때마다 너무 재지 않고 방망이를 휘두르다 보면 단타도 치고 때로는 만루 홈런도 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만의 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돌아보건대 피카소의 삶은 지나온 제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이것저것 시도했던 제 삶의 궤적은 여러분에게 권유하는 통섭적 인생 그 자체였습니다. - 9쪽

<대담 -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에서 문예비평가이자 인문학자인 도정일 선생님과 대담하는 과정에서 ‘구라’라는 표현을 끄집어낸 적이 있는데, 구라는 사실 표준어다. 그때 선생님께 ‘동물이 구라 푸는 거 보신 적이 있나요?’라고 여쭤 보았다. 어떤 침팬지도 밤새 구라를 풀며 놀지는 않는다. 구라를 푸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속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어떤 뇌를 가지고 있기에 구라를 풀까. 구라를 푼다는 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표현으로서, 시와 소설을 쓸 수 있고 심지어 신화를 창조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인간의 뇌는 설명하는 뇌라는 것이다. 모든 걸 만들어 내고 설명하는 것, 침팬지의 뇌에는 없는 것, 나는 거기에 결정적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 28, 29쪽

<벌레 먹은 과일 주세요>라는 글에서도 밝혔듯이 약을 치지 않으면 과일은 전부 벌레 먹게 되어 있다. 그런데 보통 상점 진열대에 있는 과일은 흠 하나 없다. 약을 많이 쳤다는 것인데 사실은 좋은 과일이 아니다. 벌레가 너무 뜯어 먹은 과일을 먹을 게 없어 사 먹을 수 없겠지만 벌레 먹은 흠이 조금 있는 것은 ‘벌레가 우리 대신 먼저 맛을 봐 준 것’이라 안전하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소비자가 이것을 이해하고 이런 과일을 찾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과일 가게 주인도 그런 과일을 찾고, 과수 주인들은 농약을 덜 뿌릴 것이다. 소비자들이 의식을 바꿔 이런 선순환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 94쪽

진화생물학에 ‘콩코드 효과’라는 게 있는데, 진화 과정에서 자기가 투자한 것을 아까워하다 보면 멸종한다는 뜻이다. 동물들은 잘못됐다고 판단하면 그 순간에 바로 빠지지만 생각이 많은 인간은 자기가 투자한 것이 아까워서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원전 시장이 형성돼야 원전을 팔아서 수익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일단 이 시장에서 일본과 독일이 빠져나갔다. 시장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인데, 그 시장에 매달려서 돈을 벌겠다는 건 현명한 판단은 아닐 것이다. - 97쪽

1등이 아닌 집단이 1등을 쫓으려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따라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1등이 뒤따라오는 집단과 똑같은 일을 하면 순위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하버드가 한 번도 1등을 뺏기지 않은 건 1등다운 일을 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선택과 집중은 필요하다. 하지만 몽땅 한곳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한 70퍼센트 정도를 투자하고 적옫 20-30퍼센트는 ‘이런 거 정말 해도 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부분에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훗날 그 부분에서 뭔가가 터져 나와 전세를 뒤집는 게 가능해진다. 남이 다 하는 곳에 선택과 집중을 해봤자 소용없다는 말이다. 하버드도 마찬가지다. 30퍼센트의 여력으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끌어냈다. 그래야만 1등에 오래 머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1등만 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1등이 되려고 해 온 일을 1등이 되고 나서도 계속한다면 1등을 유지할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 138, 139쪽

기획 독서가 무엇인가?
몇 가지 분야를 정해 놓고 계획성 있게 공략하는 독서다. 자신의 전문 분야 외에 관심이 가는 분야가 있다면 치열하게 탐닉하라. 자기계발서나 말랑말랑한 책들은 기획 독서가 아니라 취미 독서를 위한 책이다. 진짜 철학책과 과학책을 읽어야 내 자산이 된다. 자기계발서 아무리 읽어 봤자 요령만 익힐 뿐이다. 머리 식힐 겸 해서 필요할 때도 있지만, 늘 읽는 책이 자기계발서라면 차라리 나가 노는 게 낫다. 평소 호기심을 갖고 주변을 관찰하는 습관을 조금만 길러도 기획 독서를 할 분야를 어렵지 않게 정할 수 있다. - 146, 147쪽

독서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기가 막힌 전략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사회적으로 저명한 사람들에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등산 또는 독서라고 답한다. 그러나 독서가를 자처하는 사람치고 책을 제대로 읽는 이는 드물다. 앞서 말했듯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일이다. 독서를 가볍게 여겨 취미 생활쯤으로 생각한다면 책에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대학에 다시 돌아가 학위 과정을 밟을 수는 없으니 그 대안으로 독서를 해야 한다. 직업을 대여섯 번 바꿔야하는 시대에 매번 전공을 바꾸며 공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독서는 가장 스마트한 전략이다. 독서를 통해 해당 분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그 분야와 관련된 직업이 내 눈앞에 닥쳤을 때 겁이 덜 난다. 오히려 자신감이 들어 덤비게 된다. - 152쪽

자식을 낳아 기르는 제1인생을 ‘번식 인생’이라 부른다면 제2인생은 ‘환원 인생(還元人生)’이라고 부를 수 있다. 제1인생이 성공이란 목표를 향해 땀을 흘리며 산을 오른 시기라면 제2인생은 삶의 의미를 찾으며 산을 내려가는 여정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제1인생 세대를 오름 세대, 그리고 제2인생 세대를 내림 세대라고 부를 것을 제안한다. 시인 고은 선생님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 했다. 내림 인생이 훨씬 더 멋질 수 있다. - 179쪽

"나에게 주어진 소박한 일들을 열심히 해 나가면 언젠가는 앞서가는 아인슈타인의 등이 보이지 않겠느냐"는 말에 공감이 간다. - 188쪽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어렸을 때 하고 싶었던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들을 하며 산다. 내일을 위해 단 몇 푼의 돈을 벌려고 현재를 희생하며 산다. 언젠가는 늘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되리라 꿈을 꾸며 산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에게 그 ‘언젠가’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자기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는 너무 늙어 버린 어느 날 ‘지나간 것은 항상 그리워지는 법’이라는 푸슈킨의 시구를 떠올리며 씁쓸한 미소를 머금을 뿐이다. - 189쪽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인간 행동의 변화는 인간 본성의 진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학이 지금까지는 인간의 본성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이제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획기적인 일이다.
앞으로 경제학이 굉장히 세련돼질 것이라고 본다. 지금까지 그저 숫자 집어넣고 그래프만 그렸다면 이제는 그래프 안에 들어가는 점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느냐까지 신경 써야 할 테니 말이다. - 213쪽

모든 환경 문제의 바닥을 짚어 보면 인간의 씨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환경학자들은 낮은 출산율을 반가워한다. 고령화 문제로 또다시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각국의 출산율을 다시 높이는 것은 적절한 대책이 아니다. 출산율이 높은 나라에서 낮은 나라로 인구가 이동하게 해야 한다. - 221쪽

결국 모든 것이 글쓰기로 끝이 난다. 책을 읽지 않고 글을 잘 쓰기란 불가능하다. 많이 읽는 사람이 글도 잘 쓴다. 결국 글을 쓰는 일도 흉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잘 쓰는 능력이 어디에서 나오겠는가. 모두 ‘읽은 것’에서 나온다. 풍부한 책 읽기는 좋은 글쓰기의 전제 조건이다. - 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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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 지금 가까워질 수 있다면 인생을 얻을 수 있다
러셀 로버츠 지음, 이현주 옮김, 애덤 스미스 원작 / 세계사 / 201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XYZ라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저의 꿈이며, XYZ라는 회사는 제게 정말 큰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 그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그 회사도 당연히 나를 원할 거라고 생각하는 치명적 오류다. 방금 전 스미스가 한 말 기억하는가? 취업을 원한다면 그 회사의 인간애가 아닌 자기애에 호소해야 한다. 그러니 XYZ라는 회사가 나를 채용하면 왜 좋은지 그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나아가 내가 XYZ라는 회사가 추구하는 목표에 어떤 도움이 될지도 설명하라. 그러면 XYZ가 추구하는 목표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까지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가장 큰 신경을 쓰는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이 사실을 기억해두면, 상대로부터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때 상당한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열정적으로 조언하는 부분이다. 이렇듯 우리는 사는 동안 가끔은, 아니 매우 자주 자신이 우주의 중심인 것처럼 착각한다. - 40, 41쪽

공정한 관찰자란 인간의 상상 속 인물로, 스미스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은 이 공정한 관찰자와의 상호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공정한 관찰자는 우리와 대화를 나누며 우리의 행동이 도덕적인지 확인해주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물이다. 즉, 어떤 행동이 도덕적인지, 어떤 행동이 옳은지 판단해야 할 때 우리는 이 인물과 얘기를 나눈다.
공정한 관찰자는 양심과 아주 비슷해 보이지만, 고맙게도 스미스는 이 둘의 차이점을 친절히 알려준다. 양심은 각자의 가치관이나 종교 등의 원칙이 정한 기준에 어긋났을 때 자극을 받는다. 그런데 이런 기준은 상대적이고 개인적이기 때문에 스미스는 큰 가치를 두지 않았다. 이보다는 어깨 너머로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인간 대 인간으로 나를 심판한다고 상상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 45쪽

하지만 우리가 단순히 동정심을 갖고 추상적으로나마 남들을 신경 쓰기 때문에 바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의견에 대한 스미스의 주장은 이렇다.

우리가 신성한 미덕을 실행하는 것은 이웃과 인류를 사랑해서가 아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나 인류애보다 더 큰 사랑, 더 강력한 애정 때문이다. 그것은 명예롭고 고상한 것에 대한 사랑, 존엄과 위엄에 대한 사랑, 그리고 탁월한 자신의 인격에 대한 사랑이다. - 47쪽

인간이 이기적인 이유, 나아가 잔인한 이유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 중 하나는 이렇다. 일부 사람들이 공정한 관찰자를 상상하지 않거나, 상상할 마음조차 없거나, 아니면 사랑스러워지는 데 관심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얘기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의 생각은 달랐다. 공정한 관찰자가 정한 기준, 혹은 주변 사람들의 기준에 왜 부응하지 못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스미스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 바로 인간이 자기기만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공정한 관찰자가 실은 그렇게 공정하지 않아."라며 스스로를 속인다. 결국 자기애에 취한 나머지 공정한 관찰자이자 `가슴속 그 사람`을 짓눌러버린다는 것이다.

인간은 맹렬하고도 부당하기 짝이 없는 이기적인 욕망에 압도당한 나머지, `가슴속 그 사람`, 즉 공정한 관찰자의 얘기를 제대로 듣지 못한다. 그리고 누가 봐도 옳지 않은 일들을 저지른다. - 91쪽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지녔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은 이렇게 말했다.
"첫 번째 원칙은 자기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자기 자신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이다."
나는 누구인가? 가끔 나는 나를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이 된다. 나 자신이 얼마나 쉽게 속는가는 얼마든지 증명해낼 수 있다. 다른 사람들도 물론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나는 아니다.`라고 착각한다. 그것도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며 이렇게 되뇐다.
`나는 나의 민낯을 정직하게 본다.`
하지만 이런 믿음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자기기만이다. - 94쪽

개인의 이익이 걸려 있으면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스미스는 말한다. 반면 순전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면서 옳은 일을 한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키기는 쉽다. 그러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한 가지 방법은 멘토와 같은 현실에서의 공정한 관찰자를 찾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눈을 자주 멀게 하는 자기기만이란 짙은 안개를 걷어줄 것이다.
자기기만에 대한 스미스의 통찰력을 오늘날 확증 편향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따. 확증 편향은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박하는 증거를 무시하고 내 믿음을 확인시켜주는 증거만을 열렬히 받아들이는 성향을 말한다.
자신이 사랑스럽다고 믿고 싶은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좋지 않은 평가는 잊거나 잘 기억하지 못한다. 반대로 자신의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확인시켜주는 기억은 지나치게 잘 받아들인다. 이런 오류는 대인관계를 넘어서는 영역까지 확대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스미스도 인생에서 겪는 혼란의 절반이 자기기만에서 비롯된다고 했을 것이다. 사실 어쩌면 절반을 넘어설지도 모르겠다. - 105쪽

`우주는 수많은 점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중의 몇 개를 잘 이으면 무엇이든 그릴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당신이 선택한 점들이 왜 그 지점에 있는지가 아니다. 왜 당신이 나머지 점들을 선택하지 않았는지, 그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이런 오류에 빠진다. 자신이 선택한 점들만으로 그림을 그리고는, 자신이 예쁜 그림을 그렸다며 크게 기뻐한다. 나머지 점들로도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다. - 105, 106쪽

우리는 밝은 가로등 아래서만 열쇠를 찾는 술꾼과 다름없다. 열쇠가 밝은 가로등 아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술꾼 말이다. 실은 가로등 아래가 다른 곳보다 밝기 때문에 그 주위만 맴돌며 열쇠를 찾고 있는 것뿐이면서. - 107쪽

마지막으로, 키네아스가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겠느냐고 묻자, 왕은 마지막으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내 소중한 친구여, 우리는 편안하게 살 것이다. 그리고 하루 종일 술을 마시고 즐거운 대화를 나눌 것이다."
그러자 키네아스가 왕에게 일격을 가했다.
"그럼, 지금 폐하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시나이까?"

우리는 우리의 삶을 만족시킬 도구들을 이미 모두 갖고 있다. 삶의 기본적인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이탈리아 반도를 정복할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 내면의 인간다움을 유지하고 마음속 비열한 생쥐를 짓눌러야 한다.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음미하고 즐기는 기나긴 여정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끈질긴 욕구, 즉 야심이 우리를 삼켜버릴 수 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에 집필되었다. 플루타르크는 자신이 살던 시대보다도 300년 전 얘기를 책에 녹여냈다. 이처럼 돈과 권력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은 실로 오래된 진리다. - 129쪽

인간의 삶이 비참하고 혼란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소유물이 곧 나 자신이라 착각하기 때문이다. - 140쪽

스미스는 우리가 단순히 돈 많고 유명한 사람들을 부러워하는게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보다 더 나은 운명을 맞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어떤 면에서 죽음은 그들에게 걸맞지 않는 옷이다. 그들의 죽음은 우리가 갈망했던 완벽한 결론에서 벗어난 암울한 잔혹 동화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람들은 유명인의 죽음에 평균 이상으로 과하게 슬퍼한다. - 151쪽

스미스에게 야심, 즉 부자가 되거나 유명해지거나 아니면 둘 다가 되려는 욕망은 인생에 있어 반드시 피해야 할 독약이다. 페달에 일단 발을 올리고 나면, 멈추지 않고 계속 밟아야 하니까.

궁정에서의 화려한 노예 생활을 과감히 버리고, 자유롭고 두려움 없이 독립적으로 살겠다고 진지하게 결심했는가? 그 고결한 결심을 지킬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아니, 오로지 이 방법 밖에 없다. 한 번 들어가면 되돌아 나온 사람이 거의 없는 그곳, 야심의 소굴로 절대 들어가면 안 된다. 그리고 세상 거의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지배자들과 자신을 절대 비교해서도 안 된다. - 158,159쪽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 위한 더 훌륭한 방법으로, 스미스는 미덕을 갖춘 삶을 권했다. 미덕, 이 애매한 단어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스미스가 생각하는 미덕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그중 그가 가장 강조한 세 가지가 있으니, 바로 신중, 정의, 선행이다. 이를 갖춘 인간은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어 주위 사람들에게 존경과 칭찬을 받게 된다. 즉, 이 세 가지는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 위한 자격요건인 셈이다.
신중 = 자기 자신을 돌본다
정의 =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선행 = 다른 사람을 선한 마음으로 대한다 - 199쪽

<도덕감정론>에서도 밝혔지만 스미스가 가장 경멸한 사람은 `시스템에 갇힌 사람`이었다. 시스템에 갇힌 사람이란, 특정 설계나 비전에 따라 사회를 다시 세우려 하는 지도자를 뜻한다. 그런 사람들은 이상적인 사회를 그리기 위한 비전에 너무 빠져든 나머지, 그것이 이상적 상태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 한다. 자신이 만든 비전에 파묻힌 그들은, 그로인해 자칫 피해를 입게 될 사람들이나 계획의 실행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사람들 역시 보지 못한다.
시스템에 갇힌 몽상가는 그 일에 몰두해버린 채, 계획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며 의도치 않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 뿐만 아니라 그 계획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힘이 도사린다는 사실도 잊어버린다.
스미스에 따르면, 시스템에 갇힌 사람은 체스판의 말을 움직이듯 사람들도 쉽게 움직일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은 체스의 규칙을 무시해버리곤 한다. 시스템에 갇힌 사람은 게임의 규칙 안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말의 이동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여기저기에 말을 갖다 놓는다. - 265, 266쪽

시스템에 갇힌 사람은 이 거대한 사회의 구성원들을 자기 멋대로 쉽게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체스판의 말들을 손으로 배열하는 것처럼 말이다. 체스판의 말들은 오직 사람의 손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그러나 인간 사회라는 거대한 체스판에서는 모든 말 하나하나가 자율성을 갖고 있다. 즉 입법 기관이라는 외부적 힘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율성과 외부적 힘, 그 두 가지가 서로 일치하고 같은 방향으로 작용한다면, 인간 사회라는 게임은 편안하고 조화롭게 진행될 것이다. 게임의 결과 또한 행복하고 성공적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두 가지가 서로 반대되거나 다르다면 인간 사회라는 게임은 순조롭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 사회는 최악의 무질서 상태에 처할 것이다. - 266, 267쪽

복잡한 이 세상에서 사람들의 행동을 법률로 제정하려는 사람이라면, 인간이 태생적으로 각자 특정한 욕구와 꿈이 있음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 267쪽

우리는 체스판의 말들을 마음대로 옮길 수 있다고 착각한다. 또한 나 자신에게 무엇이 가장 좋은지 스스로 잘 안다고 착각한다. 설사 자신과 타인에게 무엇이 가장 좋은지 잘 알고 있어도, 가끔은 그냥 내버려두라고 스미스는 조언한다. 그것이 때로 가장 좋을 수 있다고 덧붙이면서.
우리의 노력이란 실패의 가능성을 항상 품고 있다. 또 때로는 남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그러니 국가와 사회라는 무대에서 멀리 떨어져 나올 필요도 있다. 국가와 사회라는 체스판보다 더 작지만 더 훌륭한 일상을, 그 소소한 목표를 생각하는 것이 가장 좋을 수도 있다. - 277, 278쪽

<도덕감정론>은 <국부론>과 단지 초점이 다를 뿐이다. <도덕감정론>은 인간의 본성이나 행동 방식에 대한 색다른 이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성에 대해 낙관적인 시각도 제시하지 않는다. 이 책은 인간의 관계 맺기에 대한 색다른 영역을 다루고 있다.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는 실제 사람들의 행동 방식 그 자체에 관심을 두었다. 이렇게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 행동을 다뤘기에, 두 책에서 말하는 인간의 성향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가까운 사람간의 관계를 다룬 <도덕감정론>과 상품의 생산과 교역을 다룬 <국부론>에 나타난 사람들의 행동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결론적으로 이 두 책에서 말하는 영역은 삶에서 서로 아주 다른 범위에 있다. - 293쪽

우리 삶에는 이렇게 두 개의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두 세계의 차이를 받아들일 준비를 미리 하지 않는다. F.A. 하이에크가 자신의 저서 <치명적 자만(The Fatal Conceit)>에서 지적했듯이,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동시에 두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 하이에크에 따르면,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가족생활처럼 만들고 싶어 한다. 가족의 평등한 문화를 사회 전체로 확대함으로써, 사회와 경제를 또 다른 버전의 가족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주장이다. 하이에크는 그러면서 사회를 가족처럼 만들려는 시점에 바로 독재가 탄생한다고 경고했다.
스미스가 하이에크의 경고에 동의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1759년에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없던 시대였으니까. 그러나 스미스는 인간이 가까운 관계를 넘어서 자신의 사랑과 관심을 확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 298, 299쪽

스미스가 하이에크와 생각을 같이 한 부분도 있다. 인간이 유력한 지도자들을 우러러보고 존경하며, 자신의 운명을 맡기고자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붙, 그리고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면서부터 부모 같은 존재와 안전을 갈망한다. 문제는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사람들이 절대 우리의 부모가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런 사람들은 우리를 자식처럼 사랑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의 그런 열망을 악용한다. 스미스와 하이에크는 바로 이 점을 경고했던 것이다. 정치적 유력자를 향한 우리의 열망이 얼마나 위험한지 말이다. - 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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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책이 아무리 많더라도 책장에 꽂아두는 한 언제든 검색할 수 있는 듬직한 ‘지적 조력자’다. 하지만 책장에서 비어져 나와 바닥이며 계단에 쌓이는 순간 융통성 없는 ‘방해꾼’이 된다. 그러다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범람은 결국 ‘재해’로 치닫는다. 아직은 책의 범람이 지하에 머물러 다행이지만, 이윽고 1층을 잠식하고도 성이 차지 않아 계단을 따라 2층까지 밀고 올라오면 정말이지 ‘대참사’가 따로 없다. - 19쪽

그래도 역시 책은 팔아야 한다. 공간이나 돈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꼭 필요한 책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해 원활한 신진대사를 꾀해야 한다. 그것이 나를 지혜롭게 만든다. 건전하고 현명한 장서술이 필요한 이유다. 초판본이나 미술서처럼 수집할 가치가 있는 책들만 모아 장서를 단순화하는 방법도 있지만, 대부분 책이 너무 많이 쌓이면 그만큼 지적 생산의 유통이 정체된다. 사람의 몸으로 치면 혈액순환이 나빠진다. 피가 막힘없이 흐르도록 하려면 현재 자신에게 있어 신선도가 떨어지는 책은 일단 손에서 놓는 편이 낫다. - 31쪽

앞으로는 이렇게 하면 된다. 어쨌거나 누구 책이든 이것저것 다 사 모을 필요는 없다. 꼭 필요한 책 한 권만 갖고 있으면 그걸 숙독하고, 그래도 마음이 벅차오른다면 영역을 넓히면 된다. 2013년 봄에 나는 쉰여섯 살이 되었다. 히틀러도, 전설적인 스모 선수 후타바야마도, 포크송 가수 다카다 와타루도, 여성 추리소설가 구리모토 가오루도 이 나이에 세상을 떴다. 덮밥을 두 그릇이나 먹을 나이도, 역 계단을 한 번에 두 개씩 뛰어오를 나이도 아니다. 지적 욕구로 허세를 부리는 일도 어지간히 쇠했다. 슬슬 장서를 엄선하고 응축하는 데 마음을 써야 할 때가 아닌가. - 37쪽

아마도 `명장정궤‘라는 사상 속에는 책장이 없는 듯하다. 어떤 의미에서 서재는 책장을 갖는 순간부터 타락하기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책장이 있으면 책을 꽂아두고 싶다는 소유욕이 생기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서재에 한해서다. 뭐든 이상적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 60쪽

책을 필요 이상으로 끊임없이 쌓아두는 사람은, 개인차가 있긴 하겠으나 멀쩡한 인생을 내팽개친 사람이 아닌가 싶다. 생활공간 대부분을 거의 책이 점령하는 주거란, 일반 상식에서 보면 아무리 잘 봐주려 해도 멀쩡한 정신은 아니다. 쌓고 무너뜨리기를 반복하는 일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있는 것은 그저 한도 끝도 없이 갖고 싶은 책이 눈앞에 아른거려 계속 살 수밖에 없는 비틀어진 욕망뿐이다. 게다 그에 대한 반성마저 별반 없다. - 65쪽

여러 정황으로 보아 요시다의 장서는 일관되게 적었다. 그저 정말 필요한 5백 권, 피와 살이 되는 5백 권만 지니고 있었다. 시노다 하지메가 말하는 ‘5백 권의 가지’는 이랬다.
책 5백 권이란 칠칠치 못하다거나 공부가 부족하다는 것과는 다르다. 어지간한 금욕과 단념이 없으면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를 실행하려면 보통 정신력으로는 안 된다. 세상 사람들은 하루에 세 권쯤 책을 읽으면 독서가라고 말하는 듯하나, 실은 세 번, 네 번 반복해 읽을 수 있는 책을 한권이라도 더 가진 사람이야말로 올바른 독서가다. - 149, 150쪽

굳이 이래저래 말을 늘어놓지 않더라도 ‘전자서적’에 대한 나의 곱지 않은 시선을, 여태껏 이 책을 읽어주신 분이라면 이해해주시리라 믿는다. 책은 내용물만으로 구성되는 건 아니다. 종이질부터 판형, 제본, 장정 그리고 손에 들었을 때 느껴지는 촉감까지 제각각 다른 모양과 감각을 종합해 ‘책’이라 불리는 게 아닐까. -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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