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적 인생의 권유 - 최재천 교수가 제안하는 희망 어젠다 최재천 스타일 2
최재천 지음 / 명진출판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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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국의 과학 재단은 한때 연구비의 일부를 반드시 그 연구 결과를 일반에게 알리는 데 쓰도록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과학의 대중화는 시간이 남아돌고 떠들기 좋아하는 몇몇 교수들만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과학자라면 모름지기 누구나 국가의 세금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를 사회에 환원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5쪽

통섭적 인생이 대체 무엇이냐고요? 그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삶의 태도입니다. 첫째는 ‘받은 만큼 돌려주는’ 자연의 법칙대로 사는 태도입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자연을 이야기하고 환경을 이야기하는 속내에는 바로 이러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인간도 결국 지구 위의 작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다른 동물도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겸허한 자세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진정 아름다운 삶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8, 9쪽

두 번 째는 ‘피카소’처럼 사는 태도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방식과 피카소 방식이지요. 두 사람 모두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였지만,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이라는 결정적 한 방으로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반면, 피카소는 엄청난 다작을 통해 천재성을 발휘했습니다. 이를테면 공이 날아올 때마다 너무 재지 않고 방망이를 휘두르다 보면 단타도 치고 때로는 만루 홈런도 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만의 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돌아보건대 피카소의 삶은 지나온 제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이것저것 시도했던 제 삶의 궤적은 여러분에게 권유하는 통섭적 인생 그 자체였습니다. - 9쪽

<대담 -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에서 문예비평가이자 인문학자인 도정일 선생님과 대담하는 과정에서 ‘구라’라는 표현을 끄집어낸 적이 있는데, 구라는 사실 표준어다. 그때 선생님께 ‘동물이 구라 푸는 거 보신 적이 있나요?’라고 여쭤 보았다. 어떤 침팬지도 밤새 구라를 풀며 놀지는 않는다. 구라를 푸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속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어떤 뇌를 가지고 있기에 구라를 풀까. 구라를 푼다는 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표현으로서, 시와 소설을 쓸 수 있고 심지어 신화를 창조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인간의 뇌는 설명하는 뇌라는 것이다. 모든 걸 만들어 내고 설명하는 것, 침팬지의 뇌에는 없는 것, 나는 거기에 결정적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 28, 29쪽

<벌레 먹은 과일 주세요>라는 글에서도 밝혔듯이 약을 치지 않으면 과일은 전부 벌레 먹게 되어 있다. 그런데 보통 상점 진열대에 있는 과일은 흠 하나 없다. 약을 많이 쳤다는 것인데 사실은 좋은 과일이 아니다. 벌레가 너무 뜯어 먹은 과일을 먹을 게 없어 사 먹을 수 없겠지만 벌레 먹은 흠이 조금 있는 것은 ‘벌레가 우리 대신 먼저 맛을 봐 준 것’이라 안전하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소비자가 이것을 이해하고 이런 과일을 찾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과일 가게 주인도 그런 과일을 찾고, 과수 주인들은 농약을 덜 뿌릴 것이다. 소비자들이 의식을 바꿔 이런 선순환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 94쪽

진화생물학에 ‘콩코드 효과’라는 게 있는데, 진화 과정에서 자기가 투자한 것을 아까워하다 보면 멸종한다는 뜻이다. 동물들은 잘못됐다고 판단하면 그 순간에 바로 빠지지만 생각이 많은 인간은 자기가 투자한 것이 아까워서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원전 시장이 형성돼야 원전을 팔아서 수익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일단 이 시장에서 일본과 독일이 빠져나갔다. 시장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인데, 그 시장에 매달려서 돈을 벌겠다는 건 현명한 판단은 아닐 것이다. - 97쪽

1등이 아닌 집단이 1등을 쫓으려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따라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1등이 뒤따라오는 집단과 똑같은 일을 하면 순위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하버드가 한 번도 1등을 뺏기지 않은 건 1등다운 일을 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선택과 집중은 필요하다. 하지만 몽땅 한곳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한 70퍼센트 정도를 투자하고 적옫 20-30퍼센트는 ‘이런 거 정말 해도 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부분에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훗날 그 부분에서 뭔가가 터져 나와 전세를 뒤집는 게 가능해진다. 남이 다 하는 곳에 선택과 집중을 해봤자 소용없다는 말이다. 하버드도 마찬가지다. 30퍼센트의 여력으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끌어냈다. 그래야만 1등에 오래 머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1등만 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1등이 되려고 해 온 일을 1등이 되고 나서도 계속한다면 1등을 유지할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 138, 139쪽

기획 독서가 무엇인가?
몇 가지 분야를 정해 놓고 계획성 있게 공략하는 독서다. 자신의 전문 분야 외에 관심이 가는 분야가 있다면 치열하게 탐닉하라. 자기계발서나 말랑말랑한 책들은 기획 독서가 아니라 취미 독서를 위한 책이다. 진짜 철학책과 과학책을 읽어야 내 자산이 된다. 자기계발서 아무리 읽어 봤자 요령만 익힐 뿐이다. 머리 식힐 겸 해서 필요할 때도 있지만, 늘 읽는 책이 자기계발서라면 차라리 나가 노는 게 낫다. 평소 호기심을 갖고 주변을 관찰하는 습관을 조금만 길러도 기획 독서를 할 분야를 어렵지 않게 정할 수 있다. - 146, 147쪽

독서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기가 막힌 전략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사회적으로 저명한 사람들에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등산 또는 독서라고 답한다. 그러나 독서가를 자처하는 사람치고 책을 제대로 읽는 이는 드물다. 앞서 말했듯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일이다. 독서를 가볍게 여겨 취미 생활쯤으로 생각한다면 책에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대학에 다시 돌아가 학위 과정을 밟을 수는 없으니 그 대안으로 독서를 해야 한다. 직업을 대여섯 번 바꿔야하는 시대에 매번 전공을 바꾸며 공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독서는 가장 스마트한 전략이다. 독서를 통해 해당 분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그 분야와 관련된 직업이 내 눈앞에 닥쳤을 때 겁이 덜 난다. 오히려 자신감이 들어 덤비게 된다. - 152쪽

자식을 낳아 기르는 제1인생을 ‘번식 인생’이라 부른다면 제2인생은 ‘환원 인생(還元人生)’이라고 부를 수 있다. 제1인생이 성공이란 목표를 향해 땀을 흘리며 산을 오른 시기라면 제2인생은 삶의 의미를 찾으며 산을 내려가는 여정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제1인생 세대를 오름 세대, 그리고 제2인생 세대를 내림 세대라고 부를 것을 제안한다. 시인 고은 선생님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 했다. 내림 인생이 훨씬 더 멋질 수 있다. - 179쪽

"나에게 주어진 소박한 일들을 열심히 해 나가면 언젠가는 앞서가는 아인슈타인의 등이 보이지 않겠느냐"는 말에 공감이 간다. - 188쪽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어렸을 때 하고 싶었던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들을 하며 산다. 내일을 위해 단 몇 푼의 돈을 벌려고 현재를 희생하며 산다. 언젠가는 늘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되리라 꿈을 꾸며 산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에게 그 ‘언젠가’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자기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는 너무 늙어 버린 어느 날 ‘지나간 것은 항상 그리워지는 법’이라는 푸슈킨의 시구를 떠올리며 씁쓸한 미소를 머금을 뿐이다. - 189쪽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인간 행동의 변화는 인간 본성의 진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학이 지금까지는 인간의 본성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이제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획기적인 일이다.
앞으로 경제학이 굉장히 세련돼질 것이라고 본다. 지금까지 그저 숫자 집어넣고 그래프만 그렸다면 이제는 그래프 안에 들어가는 점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느냐까지 신경 써야 할 테니 말이다. - 213쪽

모든 환경 문제의 바닥을 짚어 보면 인간의 씨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환경학자들은 낮은 출산율을 반가워한다. 고령화 문제로 또다시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각국의 출산율을 다시 높이는 것은 적절한 대책이 아니다. 출산율이 높은 나라에서 낮은 나라로 인구가 이동하게 해야 한다. - 221쪽

결국 모든 것이 글쓰기로 끝이 난다. 책을 읽지 않고 글을 잘 쓰기란 불가능하다. 많이 읽는 사람이 글도 잘 쓴다. 결국 글을 쓰는 일도 흉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잘 쓰는 능력이 어디에서 나오겠는가. 모두 ‘읽은 것’에서 나온다. 풍부한 책 읽기는 좋은 글쓰기의 전제 조건이다. - 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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