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쉰 살밖에 안 됐어. 내가 담배와 술을, 그래, 술과 담배를끊는다면 책 한 권쯤은 쓸 수 있을 거야. 몇 권 더 쓸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단 한 권이 될 거야. 나는 이제 깨달았네, 루카스,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독창적인 책이건, 보잘것없는 책이건, 그야 무슨 상관이 있겠어.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 - P302

"잊어버리게 인생은 그런 거야. 모든 게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게 마련이지 기억은 희미해지고, 고통은 줄어들고, 나는 사람들이 어떤 새나 꽃을 기억하듯이, 내 아내를 기억하고 있지. 그녀는 인생의 기적이었어. 그녀가 사는 세상은 모든 게 가볍고, 쉽고, 아름다웠지. 처음에는 내가 그녀 때문에 이곳에 오곤 했는데, 이제는 주디트, 살아 있는 여인 때문에 이곳에 오네. 자네가 보기엔 우습겠지, 루카스, 하지만 난 주디트를 사랑해." - P316

"노인께서 방금 말했듯이, 기억은 희미해지고, ‘고통은 줄어들고있지요.
불면증 환자는 눈을 뜨고 루카스를 바라본다.
"희미해지고, 줄어들고, 그래, 내가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사라지지는 않네." - P306

"마지막 날 저녁에 그가 내게 말했네. ‘내가 죽을 거라는 건 알겠는데,
페테르, 이해는 못 하겠어. 내 누나의 시체 하나만으로는 부족해서 거기에 내 것까지 보태야 하는 건가? 하지만 누가 그 두 번째 시체를 원하는 거야? 신, 그는 분명히 아닐 거고 그는 우리의 육신을 필요로하지 않아. 그러면 사회가 원하는 건가? 사회는, 나를 살려두면, 아무에게도 소용없는 시체 한 구 대신에 한 권이나 또는 여러 권의 책을얻게 될 텐데."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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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스는 머리를 하얀 담벼에 기댄 채 정원에 있는 벤치에 앉아있다. 햇살이 눈부시다. 그는 눈을 감았다.
"이제 어떻게 한다?"
"예전처럼 아침이 되면 일어나고, 밤이 되면 자고,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일을 하면 되는 거지."
"오래 걸릴 거야."
"어쩌면, 평생 동안."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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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나타내는 말들은 매우 모호하다. 그러므로 그런 단어의 사용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고, 사물, 인간, 자기 자신에 대한 묘사,
즉 사실에 충실한 묘사로 만족해야 한다. - P35

장님 역은 단지 시선을 자신의내부로 돌리면 그만이고, 귀머거리 역은 온갖 소리에 귀를 닫아버리면 그만이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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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믿음에 많은 것을 투자할수록, 그러니까 그 신념을 위해 희생한 것이 많을수록 사람은 실수라고 말하는 증거에 강하게 저항한다.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몰두한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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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라. 마음이 뭘 말하는지를 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마음은 기억일까요, 어떤 데이터 뭉치일까요? 또는 외부자극에 대응하는 감정의 집합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뇌나 그것을 닮은 연산 장치들이 만들어내는 어떤 어지러운 환상들일까요?" - P164

"안타깝지만 법은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입니다. 새롭게 등장하는 것에 대해 법은 대체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요. 아까도 보셨지만 법원은 현행 법률에 따라서만 판단할 거예요. 법을 바꾸시든가, 법을 지키시든가 둘 중 하나를 하셔야 해요." - P187

막상 몸이 사라지고 나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몸으로해왔는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몸 없이는 감정다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볼에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이 없고, 붉게 물든장엄한 노을도 볼 수가 없고, 손에 와 닿는 부드러운 고양이 털의 감촉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채 동이 트지 않은 휴먼매터스 캠퍼스의 산책로를 달리던 상쾌한아침들을 생각했다. 몸이 지칠 때 나의 정신은 휴식할 수 있었다. 팔과 다리가쉴새 없이 움직일 때, 비로소 생각들을 멈출 수 있었다는 것을몸이 없어지고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 P242

인공지능이 인간적 요소들을 흡수한 반면, 나는 오히려 최박사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나의 의식이인공지능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고, 내가 원하기만 하면 영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나는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여기고 있을 때 즐기던 것들에 흥미를 잃어갔다. 더이상 소설을읽지 않고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것들은 모두 필멸하는 인간들을 위한 송가였다. 생의 유한성이라는 배음이 깔려 있지 않다면 감동도 감흥도 없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이 한 번뿐이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는 모든 것이 절실했던 것이다. 이야기는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삶을 수백 배, 수천배로 증폭시켜주는 놀라운 장치로 ‘살 수도 있었던 삶‘을 상상속에서 살아보게 해주었다. 그러니 필멸하지 않을 나로서는점점 흥미가 떨어졌던 것이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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