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단어 -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절판


결국 그는 미국 교육은 '네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궁금해 한다면 한국 교육은 '네 안에 무엇을 넣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고 했습니다. 바깥에 기준점을 세워놓고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있는 고유의 무엇을 끌어내는 교육을 이야기한 것이죠.-26쪽

"현상은 복잡하다.법칙은 단순하다. ... 버릴 게 무엇인지 알아내라."-43쪽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가리고 있다는 말을 자주합니다. 우리는 첨성대를 알고, 비발디를 알고, 도스토예프스키를 압니다. 하지만 진짜 알까요? 잘 생각해보세요.-86쪽

존 러스킨이라는 영국의 시인은 "네가 창의적이 되고 싶다면 말로 그림을 그려라"라고 했습니다. 누군가가 "뭘 봤니?"라고 물었을 때 그저 "풀"이라고 대답하지 말고, 풀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었고, 잎이 몇 개 있었는데 길이는 어느 정도였고, 햇살은 어떻게 받고 있었으며 앞과 뒤의 색깔은 어땠고, 줄기와 잎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는지 등 자세하고 소상히 그림 그리듯 말하라는 것이었죠. 이것은 즉, 들여다보라는 겁니다.
앙드레 지드도 <지상의 양식>에서 "시인의 재능은 자두를 보고도 감동할 줄 아는 재능이다"라고 했습니다.-113쪽

호학심사(好學深思), 즐거이 배우고 깊이 생각하라. 이 말에서 더욱 깊이 새겨야 할 것은 심사(深思)입니다. 너무 많이 보려 하지 말고, 본 것들을 소화하려고 노력했으면 합니다. 피천득 선생이 딸에게 이른 말처럼 천천히 먹고, 천천히 걷고, 천천히 말하는 삶. 어느 책에서 '참된 지혜는 모든 것들을 다 해보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개별적인 것들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끝까지 탐구하면서 생겨나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읽었습니다. 이게 지금의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길거리의 풀 한 포기에서 우주를 발견하고, 아무 생각 없이 먹는 간장게장에서 새로운 세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깊이 들여다본 순간들이 모여 찬란한 삶을 만들어낼 것입니다.-126쪽

만약 삶은 순간의 합이라는 말에 동의하신다면, 찬란한 순간을 잡으세요. 나의 선택을 옳게 만드세요. 여러분의 현재를 믿으세요. 순간순간 의미를 부여하면 내 삶은 의미 있는 삶이 되는 겁니다. 순간에 이름을 붙여주고, 의미를 불어넣으면 모든 순간이 나에게 다가와 내 인생의 꽃이 되어줄 겁니다. 당신의 현재에 답이 있고, 그 답을 옳게 만들면서 산다면 김화영의 말대로 '티 없는 희열'을 매 순간 느낄 겁니다.-149쪽

"다른 문화를 접할 때 우리에겐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호기심과 존중. 그리고 윗사람이 될수록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재능을 사는 일입니다. 프랑스 속담에 '재능은 다른 사람들의 재능을 발견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죠."-162쪽

'동의되지 않는 권위에 굴복하지 말고 불합리한 돈의 힘에 복종하지 말자'-172쪽

미국에서 대학원 다닐 때 논문을 쓰기 전에 우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딱 한 줄로 정리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걸 세 개의 패러그래프로 써보고, 그걸 다시 챕터 별로 나눠서 논문을 만들죠. 예외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보면 됩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게 일곱 단어로 정리되지 않는 건 아직 내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겁니다.-207쪽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공부하는 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마라.
수행하는 데 마가 없기를 바라지 마라.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마라.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마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기를 바라지 마라.
공덕을 베풀려면 과보를 바라지 마라.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마라.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마라.

- 보왕삼매론 -218쪽

"기필(期必)을 버려라"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살면서 늘 기필코 이루어내라는 말만 들어본 제게 기필을 버리라는 말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요, 인생은 기필코 되는 게 아닙니다. 뭔가를 이루려 하지 말고 흘러가세요.-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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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로 산다는 것 - 우리 시대 작가 17인이 말하는 나의 삶 나의 글
김훈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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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소설은 그 자체 내에 스스로를 입증할 수 있는 이야기의 문법을 지닌다. 이것은 작가 자신의 창작 방법과도 연관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작품 자체가 추구하는 서사 원리를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작가들은 왜 쓰는가의 문제를 놓고 존재론적 고심에 빠지기보다는 어떻게 쓸 것인가에 매달린다. 말하자면 작가로서의 실천에 대해 글쓰기의 방법을 놓고 고심한다는 뜻이다. - 권영민-5쪽

주인공에 대한 작가의 인식론적 우위는 작가의 외재성에 근거한다. 주인공을 삼킨 미로르 조감하는 작가의 위치에너지야말로 '주어진 현실'을 '창조된 현실'로 재구성하는 미학적인 원동력이다. 바흐찐이 일찍이 "식견의 잉여"라고 명명한 주인공에 대한 작가의 인식론적 우위를 소설 내에서 구현하는 장치가 바로 화자다. 소설의 역사는 화자의 발명으로 시작되었고 소설의 영욕은 화자의 부침과 함께했다. 오늘날 화자라는 중개 장치는 득세하는 영화로부터 소설이 가까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낼 수 있는 최후의 보루다. 소설의 미래는 소설의 기원을 초월할 수 없기 때문이다. - 김경욱-18쪽

음악은 언제나 내게 다른 리얼리티를 꿈꾸게 만든다. 삶은 잠이고 사랑은 꿈이다. 자는 동안에는 계속 꿈을 꾸고 싶다. 음악은 내게 그런 말을 한다.-53쪽

퍼즐을 맞추는 재미는 그 퍼즐의 완성된 그림에 대한 매혹이 아니다. 완성된 퍼즐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같은 것은 적어도 퍼즐을 맞춰나가는 동안에는 상상하지 않는다. 상상하는 것은, 최후의 퍼즐을 손에 집어들 때의 쾌감이다. 마지막 한 조각이 빈틈없이 채워지는, 구멍을 메우는 순간! - 김인숙-62쪽

나는 3인칭 주어를 거의 쓰지 못한다. 나는 그것이 무섭고 낯설다. 가끔씩 3인칭 주어를 끌어다놓고 문장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 3인칭 주어를 뒷받침할 만한 술어를 찾아내기란 대체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내가 쓴 3인칭 문장은 그 허우대만 3인칭일 뿐 결국은 1인칭에 불과하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하는 수 없이 원고를 편집자에게 넘긴다. 이게 아니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면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다. 가장 절망적인 장벽은 그 3인칭 인물의 이름을 지어야 하는 일이다. 허구의 고유명사를 지어내는 일은 그 인물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감당해내야 하는 일일 터인데, 내 언어의 힘으로 그 일을 감당해낸다는 것은 말짱 개수작으로 느껴진다. - 김훈-84-85쪽

책을 몇 권 읽기는 했지만, 기댈 만하지는 않았다. 눈을 혹사하는 직업에 오랫동안 종사해서 그런지, 시력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담배를 줄여야 하듯 책을 줄여야 할 때다. 남은 시력을 아껴서 써야 할 때가 왔다. 돋보기를 쓰고까지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왠지 사람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 김훈-85-86쪽

언어는 이 세계의 불완전성의 소산일 뿐이다. 그래서 모든 언어는 다른 언어에 의해 부정당해 마땅한 것이고 부정당하기를 거부하는 언어는 이미 언어가 아닐 것이다. 언어에게 소통 기능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부정당하는 운명을 수락하는 그 불완전성 안에 있는 것이 아닐까. 듣는 자가 없는 시대의 말하기란 말이 아니라 재앙이다. - 김훈-86쪽

삶은 늘 느낌의 절박함으로서 나에게 다가온다. 그 절박함은 몸과 마음의 절박함인데, 그것을 글로 들이밀자면 말의 모호성에 부딪힌다. 그래서 내 글쓰기란 그 절박함과 모호성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는 파행인 것이다. 나는 글 전체에 어떤 지향성을 설정하는 일을 감당해내지 못한다. 내가 단지 말과 느낌 그 자체를 겨누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하는 회의에 빠질 때 소설 쓰기는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진다. - 김훈-88쪽

글이 잘 풀리지 않는 밤이면, 나는 노트북을 덮고 눈을 감은 채 이런 말을 중얼거린다. '잊지 말자, 한 번에 한 단어씩!' 그러면 초조했던 마음이 조금 느긋해진다. 이 말을 내게 알려준 사람은 스티븐 킹이다. 토크쇼 진행자가 스티븐 킹에게 어떻게 글을 쓰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 번에 한 단어씩 쓰죠.' 진행자는 그 대답에 당황했을지 모르지만, 스티븐 킹은 그 말을 농담으로 한 게 아니었다. 그는 '한 페이지짜리 소품이든 <반지의 제왕> 삼부작 같은 대작이든 간에, 모든 작품은 한 번에 한 단어씩 써서 완성된다.'는 소박한 원칙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한 번에 한 단어씩'이라고 포스트잇에 적은 다음 책상 위에 붙여 놓았다. - 윤성희-144쪽

<레고로 만든 집>을 쓸 동안, 벽에는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꾼다."라는 문장을 적은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문학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뛰던 시절에 나는 최승자 시인의 저 한마디에 위안을 받았다. - 윤성희-144쪽

"만약에~?" "왜~?" "과연~?" 이제 막 소설 쓰기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내게 어떻게 하면 소설을 잘 쓸 수 있는지를 묻는다면, 쪽지에 이 세단어를 적어줄 것이다. "만약에" "왜" "과연" 이 질문들만 제때 던질 줄 안다면,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다. 아니,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고 바꿔 말하자. - 윤성희-150쪽

처음 소설을 쓸 무렵, 언어들은 이방인들의 창문처럼 나를 유혹했다. 내가 그 이름을 부르면 스르르 열리며 내부를 보여주는 언어들... 무한한 밤처럼 무한한 창문들, 무한한 빗방울들, 무한한 바다와 무한한 배들, 무한한 장미, 무한한 타인들과 무한한 안개와 무한한 나... 단어들의 무한함 때문에 수식어가 필요했고 수식어를 위해 나의 사적인 삶이 필요했다. 그리고 타인들의 사적인 사랑과 슬픔과 열망과 괴로움과 상처와 미움. 세상의 창문들을 열기 위해서는 그 창문에 맞는 단 하나의 경험을 가진 사적인 언어가 필요했던 것이다. - 전경린-205쪽

흔히 소설에는 정답이 없다고 말들 하지만, 나는 소설에도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답은 은유이다. 소설의 공간이 무엇을 은유하는가, 인물은 무엇을 은유하는가, 에피소드들과 정황들은 무엇을 은유하는가, 내가 쓰는 것들의 부분과 전체는 무엇을 은유하는가, 그 모든 것에서 일관성 있는 은유가 이루어지면 나는 답을 찾은 것이다. 말하자면 내가 쓰는 전체를 한 단어로 은유할 수 있는가, 한 문장으로 표명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 전경린-208쪽

도시에서 살기 때문에 욕망과 만나고, 그렇기 때문에 우울하고, 우울하기 때문에 웬만한 책임은 피할 수 있는 소설이 무심코 책을 펴보면 만날 수 있는 내용의 대부분이다. 대중 속의 고독도 사람의 일이라 작가가 그곳으로 손을 뻗지 않으면 안 되지만, 너무 많이들 어두운 카페로 걸어들어가버렸다. 개인의 우울이 사회의 비참보다 더 크고 강렬해져버린 것. 이른바 문학적이다. 그러나 문학을 키우는 것은 비문학적인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 한창훈-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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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마법의 순간
파울로 코엘료 지음, 김미나 옮김, 황중환 그림 / 자음과모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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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시여, 우리를 눈뜨게 하소서.
인생에서 그저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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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순간 (양장)
파울로 코엘료 지음, 김미나 옮김, 황중환 그림 / 자음과모음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믿을 수가 없다. 코엘료가 이 따위 책을 펴냈다니... (혹은 출판사의 영악한 전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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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 박범신 장편소설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4월
구판절판


나는 그녀를 사랑했던 것일까.
내가 사랑한 것이 사랑이었는지, 아니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분별없는 끌림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의 우행(愚行)이 사랑'이라면 결혼은 '장기간에 걸친 우행'이라는 니체의 말을 나는 결혼 전부터 언제나 숭상했다. 서른일곱이 될 때까지 결혼하지 않았던 것도 그 잠언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다. 2년여에 걸친 결혼 생활은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진실로 사랑한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 온갖 것들이 내 속에 들어와 본래의 가름을 넘어 해낙낙 해낙낙 한통으로 섞이는 뜨거운 열락의 순간도 시시때때 있었다. 문제는 내 마음 깊은 곳에선 '우행'이라는 그 확신이 계속 유지됐었다는 점이었다. 혼자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실려 있을 때, 개수대에 모아놓은 지저분한 빈 그릇들을 무연히 내려다볼 때, 혹은 빅뱅의 오르가슴을 만나고 숨을 고르기 위해 그녀로부터 잠시 돌아누워 있을 때, 난데없이 쭈뼛해지며 그 '우행'이라는 낱말이 떠올랐다. 결혼할 때부터 이렇게 다른 방향으로 떠날 날이 오리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던 것도 같았다.-25-26쪽

"달고 시고 쓰고 짜다 인생의 맛이 그런거지
아, 사랑하는 나의 당신 달고 시고 쓰고 짜다
달고 시고 쓰고 짜다 나는야 노래하는 사람
당신의 깊이를 잴 수 없네 햇빛처럼, 영원처럼."-70쪽

"꼭 대학까지 다녀야겠냐?"라고 묻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었다. 치사하고 치사했다. 어디 나뿐이겠는가. 어둠 속에 귀를 열어놓고 있으면 밤낮없이 사람들이 아우성, 아우성치는 거대한 소움이 이 고요한 호숫가에까지 들리는 듯했었는데, 그 역시 세계의 모든 아버지들이 중얼거리는 "치사해, 치사해, 치사해!"의 장대한 합창이었던가 보았다. 애비들이 치사하면 세싱이 모두 치사해진다는 아버지의 말은 하나도 그른 데가 없었다. 치사한 아버지들과 치사함을 견뎌내는 아버지들에겐 모두 '새끼'들이 딸려 있었고, 아버지들의 소망과 달리, 그 새끼들 역시 치사하게 살아가며 "치사해, 치사해, 치사해!"를 대물림받는 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76-77쪽

"3월은 일종의 공백기 같아요."
그녀가 말했다. "겨울의 권력은 레임덕을 맞고 있지만 아직 봄의 권력을 다 장악한것도 아니니깐."-220-221쪽

예전의 삶이 부랑이었다면 그즈음의 삶은 유랑이었고, 자유였고, 자연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역시 참된 단맛이었다. 누가 인생에 대해 묻는다면 그는 말할 참이었다. "인생에 두 개의 단맛이 있어. 하나의 단맛은 자본주의적 세계가 퍼뜨린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에서 빨대로 빠는 소비의 단맛이고, 다른 하나는 참된 자유를 얻어 몸과 영혼으로 느끼는 해방감의 단맛이야." 그가 얻은 결론은 그랬다. 이가 썩어가기 마련인 단맛에서 새로운 생성을 얻어가는 단맛으로 그 자신의 인생을 극적으로 뒤바꾼 것이었다.-253-254쪽

아버지들은 근엄했지만 아무 힘이 없었다.
체제에 편입돼 과실을 따 오는 대표 선수로서 그럴듯해 보이긴 했지만, 가족들이 거대한 소비 체제에 들어 있는 한 아버지에겐 그 체제를 방어할 항거 능력이 전무했다. 핏줄에게 빨리고 핏줄의, 핏줄의, 핏줄에게도 빨렸다. 핏줄이라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명분으로 삼은 저들이 자신들의 깔때기를 채우기 위해 그 구조를 전적으로 허락하고 돕기 때문이었다. 성장한 자식을 독립시키겠다고 해도, 핏줄이므로 아버지만이 비난받는 이 구조는, 체제의 입장에선 양보할 수 없는 규범이었다.
-333쪽

그 대신 자식들은 늙은 아버지를 돌볼 필요가 없었다.
여력도, 시간도 없다고, 그러니 늙은 아버지는 체제가 돌봐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노인 요양원을 더 많이 지어 자식들의 짐을 덜어야 한다는 주장을 복지라고들 불렀다. 철저히 불공정한 비윤리적 거래였으나 아버지들은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 모든 것에 침묵하는 게 최선의 미덕으로 간주됐다. 늙은 아버지의 죄는 더 이상 생산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생산성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늙은 아버지들은 '폐기품'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간편히 처리해야 이미 성장해 또 다른 자식들을 거느린 자식 출신의 젊은 아버지들을 체제가 마음놓고 부려먹을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가리켜 역사 발전이라고 말했다.

거대한 고리(高利)의 구조가 바로 역사 발전이었다.-333-3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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