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 박범신 장편소설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4월
구판절판


나는 그녀를 사랑했던 것일까.
내가 사랑한 것이 사랑이었는지, 아니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분별없는 끌림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의 우행(愚行)이 사랑'이라면 결혼은 '장기간에 걸친 우행'이라는 니체의 말을 나는 결혼 전부터 언제나 숭상했다. 서른일곱이 될 때까지 결혼하지 않았던 것도 그 잠언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다. 2년여에 걸친 결혼 생활은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진실로 사랑한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 온갖 것들이 내 속에 들어와 본래의 가름을 넘어 해낙낙 해낙낙 한통으로 섞이는 뜨거운 열락의 순간도 시시때때 있었다. 문제는 내 마음 깊은 곳에선 '우행'이라는 그 확신이 계속 유지됐었다는 점이었다. 혼자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실려 있을 때, 개수대에 모아놓은 지저분한 빈 그릇들을 무연히 내려다볼 때, 혹은 빅뱅의 오르가슴을 만나고 숨을 고르기 위해 그녀로부터 잠시 돌아누워 있을 때, 난데없이 쭈뼛해지며 그 '우행'이라는 낱말이 떠올랐다. 결혼할 때부터 이렇게 다른 방향으로 떠날 날이 오리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던 것도 같았다.-25-26쪽

"달고 시고 쓰고 짜다 인생의 맛이 그런거지
아, 사랑하는 나의 당신 달고 시고 쓰고 짜다
달고 시고 쓰고 짜다 나는야 노래하는 사람
당신의 깊이를 잴 수 없네 햇빛처럼, 영원처럼."-70쪽

"꼭 대학까지 다녀야겠냐?"라고 묻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었다. 치사하고 치사했다. 어디 나뿐이겠는가. 어둠 속에 귀를 열어놓고 있으면 밤낮없이 사람들이 아우성, 아우성치는 거대한 소움이 이 고요한 호숫가에까지 들리는 듯했었는데, 그 역시 세계의 모든 아버지들이 중얼거리는 "치사해, 치사해, 치사해!"의 장대한 합창이었던가 보았다. 애비들이 치사하면 세싱이 모두 치사해진다는 아버지의 말은 하나도 그른 데가 없었다. 치사한 아버지들과 치사함을 견뎌내는 아버지들에겐 모두 '새끼'들이 딸려 있었고, 아버지들의 소망과 달리, 그 새끼들 역시 치사하게 살아가며 "치사해, 치사해, 치사해!"를 대물림받는 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76-77쪽

"3월은 일종의 공백기 같아요."
그녀가 말했다. "겨울의 권력은 레임덕을 맞고 있지만 아직 봄의 권력을 다 장악한것도 아니니깐."-220-221쪽

예전의 삶이 부랑이었다면 그즈음의 삶은 유랑이었고, 자유였고, 자연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역시 참된 단맛이었다. 누가 인생에 대해 묻는다면 그는 말할 참이었다. "인생에 두 개의 단맛이 있어. 하나의 단맛은 자본주의적 세계가 퍼뜨린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에서 빨대로 빠는 소비의 단맛이고, 다른 하나는 참된 자유를 얻어 몸과 영혼으로 느끼는 해방감의 단맛이야." 그가 얻은 결론은 그랬다. 이가 썩어가기 마련인 단맛에서 새로운 생성을 얻어가는 단맛으로 그 자신의 인생을 극적으로 뒤바꾼 것이었다.-253-254쪽

아버지들은 근엄했지만 아무 힘이 없었다.
체제에 편입돼 과실을 따 오는 대표 선수로서 그럴듯해 보이긴 했지만, 가족들이 거대한 소비 체제에 들어 있는 한 아버지에겐 그 체제를 방어할 항거 능력이 전무했다. 핏줄에게 빨리고 핏줄의, 핏줄의, 핏줄에게도 빨렸다. 핏줄이라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명분으로 삼은 저들이 자신들의 깔때기를 채우기 위해 그 구조를 전적으로 허락하고 돕기 때문이었다. 성장한 자식을 독립시키겠다고 해도, 핏줄이므로 아버지만이 비난받는 이 구조는, 체제의 입장에선 양보할 수 없는 규범이었다.
-333쪽

그 대신 자식들은 늙은 아버지를 돌볼 필요가 없었다.
여력도, 시간도 없다고, 그러니 늙은 아버지는 체제가 돌봐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노인 요양원을 더 많이 지어 자식들의 짐을 덜어야 한다는 주장을 복지라고들 불렀다. 철저히 불공정한 비윤리적 거래였으나 아버지들은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 모든 것에 침묵하는 게 최선의 미덕으로 간주됐다. 늙은 아버지의 죄는 더 이상 생산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생산성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늙은 아버지들은 '폐기품'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간편히 처리해야 이미 성장해 또 다른 자식들을 거느린 자식 출신의 젊은 아버지들을 체제가 마음놓고 부려먹을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가리켜 역사 발전이라고 말했다.

거대한 고리(高利)의 구조가 바로 역사 발전이었다.-333-3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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