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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아킴 데 포사다 지음, 이의수 옮김 / 인사이트북스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한때 자기계발서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특히 특정한 행동패턴을 열거하며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듣기 좋은 혹은 선문답 같은 한 두 문장을 던지며 시종일관 그와 유사한 말만 되풀이 하는, 그러면서 적당한 삽화로 승부하는 그런 책들은 정말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런 책을 만들기 위해 희생된 나무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니 차츰 무뎌지는 것인지 너무 그렇게 빡빡한 기준으로 독서를 안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전혀 읽지 않는 것보다는 그런 책이라도 읽는 게 낫다는 생각도 한다.
사람마다 책을 읽는 이유나 효용이 다양하겠지만, 내게 이와 같은 얇은 자기계발서는 일종의 '슬럼프 극복용'이다. 그런데 그 슬럼프라는 것이 삶의 슬럼프가 아닌 독서 슬럼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거나 중간에 읽던 책을 다시 펴기가 싫을 때에는 다 포기하고 새로운 책을 찾을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 묵직하고 신경써서 읽어야 하는 책을 고르기보다는 가볍고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있는 것을 찾게 된다. 독서라는 습관을 멈추지 않아도 되고 어찌되었던 한 권을 다 읽었다는 행위의 완료는 독서에 대한 성취감과 함께 다시 다른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내게 여유와 동기를 부여해준다.
삶을 대하는 태도나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게 과연 학습될 수 있는 것일까? 자기계발서를 대할 때면 나는 종종 그런 의문이 든다. 물론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하라'라든가 '현재를 살아라' 같은 어떤 상황에 쓰여도 통용될 수 있을 것 같은 말들도 있긴 하지만, (굳이 '주의(ism)'를 선택하라면 경험주의자임을 주장하는 나는)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이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기는 아무래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물론 '변해야 겠다'는 생각을 갖기 위한 간접적인 계기는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한 권이 아닌 몇 권의 책을 통하여 스스로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여야 가능한 일이다.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성공한다는 것은 모두 현재의 틀을 깨야만 가능하다고들 한다. (자기계발서는 대부분 개인을 둘러싼 현재의 상태를 뭔가 부족하고 불만족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것 쯤으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갇혀 있는 현재라는 틀을 깨기 위해서는 (뻔한 진리이지만)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아야 한다. 내가 즐길 수 없는 일은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속하지 못하면 성공이고 뭐고 없다. 그런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이것은 학습을 통해 알아낼 수도 없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것이어서, 오로지 자기만의 방식으로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은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나 책을 읽은 후의 감상들이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핵심은 본문에 등장하는 이 질문이다. “100미터라 가정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면 몇 미터를 파야 할까?” 대부분 나를 알기 위해서는 더 깊이 파고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답이 고작 1미터라는 것을 들으면, 이 질문이 how much 보다 더 중요한 의문사 where를 생략해버린 반쪽짜리 질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1미터만 파더라도 자신을 온전히 알 수 있으려면 '정확한' 지점을 파야 한다. 즉 이 질문의 숨겨진 핵심은 자기를 알고자 함에 있어서도 무조건 열심히 노력해서 깊이 파들어가라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지점을 포착하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섣부른 행동들은 크고 작은 좌절의 연속이라는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무턱대고 알을 깨려고 하기 전에 조금 더 자신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아니, 그 전에 현재라는 알을 깰 필요가 있는지부터 고민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모두들 '변화'를 말하지만, 그 변화라는 것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델에 나 자신의 스펙을 기계적으로 맞추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 이상적인 모델은 결국 나의 이상일 뿐이니, 따지고 보면 변화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제대로 알고 내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숙고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한편의 짧은 이야기 속에서는 주인공인 올리버의 재능을 우연히 알게 된 필란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드디어 올리버가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세상 밖으로 나서게 된다. 비록 현실의 우리에게 이런 행운이 함께할 리는 없겠지만, 부족한 상황과 배경 가운데에서도 진심으로 나를 위로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하고, 그들의 조언을 가벼히 여기지 않으며, 내 욕망과 그들이 발견한 내 모습이 일치하는 지점을 탐색하는 것만으로도 (성공까지는 아니어도) 충분히 좋은 삶을 기대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 인간은 전부 고독해. 남을 잘 모르기 때문이지. 또한 나 자신도 잘 모르기 때문이지. 하지만 인간의 고독감은 삶의 공포일 뿐이야." - 20쪽
"왼발은 단순한 방문객이고 오른발은 손님이라고 했잖아. 병원은 너에게 단순한 곳이 아니라는 뜻이야. 그곳에 있는 죽음은 사실 우리 모두에게 익숙해져야 할 것이지. 우리는 어둠 속에서 태어나 잠시 밝은 세상에서 살다가 결국 다시 어둠으로 돌아가지." 머리가 지끈거렸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짧은 순간에 어떻게 살 것인가야. 그것이 우리의 숙제이지." - 24쪽
"그런 어리석은 질문은 하지 마. 네 가슴의 깊이는 몇 미터일까?" 나는 그런 생뚱맞은 질문에는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100미터라 가정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면 몇 미터를 파야 할까?" "적어도 50미터는 파야 하지 않을까?" "틀렸어. 단 1미터만 파면 돼." - 48쪽
"배운다는 것은, 그런 말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돼.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아야 해. 깨달은 뒤에는 행동을 해야 하지. 하지만 나는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행동 할 수 없었어." - 57쪽
"그것이 무엇이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네 마음을 속여서는 안 돼. 특히 사랑은 속이기 어렵지. 사랑은 꽃과 같은 거야. 그 향기가 반드시 퍼지기 때문에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지. 하지만 그 꽃을 따기 위해서는 벼랑 끝까지 갈 용기가 있어야 해." - 58쪽
"올리버, 가장 중요한 것이 뭔지 아니? 나 자신을 정확하게 알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란다." - 107쪽
"우리 인생에는 적어도 세 번의 기회가 있다고들 하지. 하지만 그 말은 틀렸단다. 기회는 백 번이 올 수도 있고, 천 번이 올 수도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그 기회를 알아보는 것이야. 더욱더 중요한 것은 그 기회를 내 자신이 만드는 것이지." - 119쪽
우리가 실제로 인정하는 일들과 성공으로 평가하는 일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두려움보다 긍정적 마음으로 시작한 일들이 성공을 가져온다. 불가능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할 때 성공은 시작된다. 실패하는 사람은 성공의 문턱에서 포기할 때가 많다. 오늘 나의 삶이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핑계는 끝이 없다. 하지만 내가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 하나를 찾으면 나의 발목을 붙잡는 허다한 이유들은 자취를 감춘다. - 170, 171(역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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