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아지와 옹아지
아키야마 타다시 글.그림, 김윤수 옮김 / 키득키득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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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났음일까. 콩아지가 동생이 생겨 부쩍 많이 자란 것 같다. 아이에게 동생이 생긴다는 것은 자신이 이루어 놓은 모든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전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여동생이 태어나고 어른들이 보지 않을 때 눈을 찔렀다는 것을 보면 어린 마음에 동생이 나보다 더 이쁨 받는 것에 시샘을 느꼈었나 보다. 이렇듯 동생이 생긴다는 것은 자기 것을 빼앗길 수 있다는 생각에 아이는 위기감을 느낄 수 있겠다. 콩아지는 엄마 젖을 물고 있다 바닥으로 쿵! 떨어지는 충격을 받는다. 게다가 악몽까지 꾼다. 알려주려면 젖이나 다 먹은 뒤에 콩아지에게 알려주지 젖을 맛있게 먹고 있던 콩아지가 얼마나 상심이 컸을까. 안쓰럽다.

 

"내가 형이나 오빠가 된다구?" 아무래도 콩아지는 믿어지지가 않는다. 엄마의 코 위에 앉아 땀을 삐질 흘리기까지 한다. 일단은 동생에게 젖을 빼앗기는 꿈을 꾸는 콩아지, 녀석에게 엄청난 큰 사건임에 틀림없다. 어부바 해 달라는 여동생 꿈을 꾸는 건 좀 과한 것이구. 벌써 동생과 지낼 생각에 잠을 설치는 콩아지, 그런데 바로 옆에서 새근새근.......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으악! 이게 소리까지 지를 정도였나? 오빠에게 기대 편안하게 잠든 여동생인데 옹아지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동생이 생겼구만 좋은 일인데 말이다. 이게 이게 정말 큰일일까? 오빠! 하면서 달려드는 옹아지의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이제부터 콩아지는 옹아지와 모든 것을 함께 한다. 사각사각 사과도 같이 먹고 우적우적 고구마도 함께 먹는다. 코딱지 파는 놀이는 하지마 에비, 에비~~ 옹아지는 오빠에게 지고 싶지 않다. 벌써부터 오빠를 이겨먹으려고 하는 것이 귀엽다.

 

돼지 친구의 등을 함께 긁어주고 엄마에게 그 날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귀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들려주는 콩아지와 옹아지를 보니 나도 즐거워진다. 콩아지는 옹아지와 함께 하고 싶은 것이 많은가 보다. 동생을 돌보는 의젓한 모습까지 보인다. 엄마 앞에서는 아직 어리기만 하지만 동생으로 인해 부쩍 커 버린 느낌이다. 앞으로 동생 옹아지와 어떤 일을 해 나갈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역시 형제가 있어야 하는가 보다. 이렇게 즐거워 보이니 말이다. 하나만 있으면 외롭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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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쥐 가족의 새집 에코그림책 1
이인 지음, 우덕환 그림 / 어린른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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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쥐에게도 가족이 있구나. 이 책을 읽었을 때 제일 먼저 하게 된 생각이다. '쥐'는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그런지 쥐에게도 가족이 있다는 생각을 늘 잊게 되는 것 같다. 하양쥐 가족을 보니 가을이 지고 있지만 아직은 풍성한 먹을 거리가 있어 책을 읽는 동안 쥐들이 굶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하게 된다. 숲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쥐들에게도 대단히 험난한 일이다. 사람들 가까이에서 살아가면 간혹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주워 먹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살아갈 순 있겠지만 그만큼 생명의 위협을 받으니 숲에서 살아가는 것이 낫겠다.  
 
더덕, 도토리, 돌배를 보며 쪼르와 미르는 신이 난다. 아침거리를 넉넉하게 마련하여 아이들을 먹일 수 있어 엄마랑 아빠 쥐는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모른다. 그 때 들리는 "쿵쾅쿵쾅!" 요란한 소리, 무언가가 하양쥐 가족의 터전을 위협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위해 들어선 놀이기구들을 만들기 위해 공사중인데, 조금씩 조금씩 숲에 사는 동물들의 터전이 사라져 가는 것 같다.
 
영역 싸움이라고 할까, 쥐들에게도 그런 것이 있는 모양이다. 맛있는 먹을 거리들이 널려 있는 곳에 이른 하양쥐 가족에게 위협을 가하는 깡쥐들을 보니 먹고 사는 문제는 이들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인 것 같다. 깡쥐라, 깡패가 연상된다. 몸집도 하양쥐 가족의 두배 쯤 되고 아주 포악해 보인다. 자연이 주는 선물만으로도 충분하다며 깡쥐들에게서 벗어나 숲으로 다시 돌아가는 하양쥐 가족들, 역시 현명한 생각이다. 사람들이 던져 놓은 먹잇감에 의지하지 않아 안심이다.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예가 더 많으니 말이다.
 
먹잇감을 찾아 몰려든 쥐떼들의 모습은 우리 인간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더 좋은 집을 짓고 이것을 빼앗으러 온 깡쥐들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계획은 딱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들에 몰려든 쥐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이게 끝이 아니다. 낙원이라 생각했던 곳에 순식간에 어둠이 드리운다. 죽음의 위협에 살아남기 위해 이들이 가야할 곳이 있을까.
 
자연은 늘 모든 이들을 품어준다. 꽃이 피어있는 숲은 보금자리를 잃은 쥐들을 따뜻하게 맞아준다. 앞으로 하양쥐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은 인간들의 곁에서 살아가는 것보다 행복할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인간들의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일 것이다. 무차별적으로 파괴되어 가는 동물들이 터전을 잘 지킬 수 있도록 노력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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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엄마 찬양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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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새엄마 찬양"의 배경은 리고베르토의 집, 등장인물은 리고베르토, 그의 부인 루크레시아, 리고베르토의 아들 알폰소, 그리고 집 안 일을 도와주는 후스티니아나 이렇게 네 사람이다. 리고베르토의 아내 루크레시아를 향한 '사랑'을 담고 있는 맹목적인 육체적인 욕망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불편하기 보다 그가 루크레시아와 사랑을 나누기 전, 정성을 들이는 '세정식'때문에 그의 욕망은 하나의 예술로 여겨진다. 그에게는 최근에 결혼한 아내 루크레시아만이 진정한 사랑이며, 온 세상이며, 하나의 거대한 우주다. 이런 그에게 위기가 닥친다면 어찌 될까.  

 

의붓아들 알폰소와 루크레시아와의 사랑은 아이가 죄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여 순도 백 프로의 순수함을 담고 있진 않다. 루크레시아는 아이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 의붓아들과 함께 사랑을 나누는 것이 어떤 형태의 결말을 가져올지 알고 있으며 아이에게 느끼는 자신의 욕망이 잘못된 일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이 욕망의 늪에 깊이 발을 들여 놓음으로써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들게 된다.

 

의붓아들과 새엄마의 사랑이야기라니, 독자들은 아마도 거북하여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간, 중간 그림과 함께 곁들여 있는 글들을 읽으면 재밌는 옛 이야기를 듣는 것 같기도 하고, 리고베르토와 루크레시아의 전생(?)이야기 인 듯도 하여 등장인물들의 욕망에 대한 것이 그저 하나의 옛 이야기속에 버무려진 가벼운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하지만 난데없이 "순수하다" 믿은 사랑 뒤에 드러나는 추악한 진실이 눈 앞에 드러나게 되면 부도덕한 사랑에 대해 질타를 하고자 하는 열의마저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사랑이라면 사랑일 수도 있는 이 일의 최대 희생자는 누구인가 따져보게 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네 인물의 관계도를 처음부터 다시 그려 보면 '사랑'과 '욕망'의 이면에 자리한 순수한 감정은 이미 증발해 버리고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알폰소의 새엄마에 대한 찬양의 글에는 아주, 아주 대단한 계획이 숨겨져 있어 리고베르토와 루크레시아는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새 엄마에 대한 감정의 진실성에 대한 답은 오직 알폰소만이 쥐고 있어 알폰소의 진정한 속내가 궁금해지지만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려 독자들의 힘을 빼 놓는 폐해도 결코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문제라 리고베르토와 루크레시아의 상처에 관심을 가질 여유도 생기지 않는다.  

 

욕망의 탈을 쓰고 있는 사랑이 그 어떤 이름으로 바뀌든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리고베르토의 루크레시아에 대한 감정은 아닐 것이다? 천만에, 그가 선택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여기에도 '사랑'은 존재하지 않고 그저 욕망만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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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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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배고픔에 책 속의 글자들을 꼭꼭 씹어 삼켜 보지만 열일곱 살 소년 레오폴트 아우베르크가 말하는 배고픈 천사를 만날 수 없었다. 소련 강제수용소로 떠나기 전 십칠 년을 함께 지낸 집 안 곳곳의 물건들은 레오폴트에게 처음부터 속하지 않은 것처럼 그를 내동댕이쳤지만 수용소에서 늘 함께 했던 배고픈 천사는 레오가 살아가는 내내 그 자취를 감추지 않는다. 벽에서는 레오의 숨그네가, 가슴에서는 심장삽이 똑딱 소리를 낼 때 배고픈 천사도 늘 레오와 함께 했다.

 

배고픔은 인간의 이성까지 마비시킨다. 감정의 무덤덤함은 나, 와 다른 이들간의 다름을 만들었고 살아 있는 내내 대리형제 로베르트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너는 돌아올거야"란 할머니의 말을 가슴속에 늘 간직하고 살았지만 아주 작은 행운이라도 놓칠까, 갑자기 죽음에 성큼 다가서게 될까, 누구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니까 이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들을 기다리는 한 여인이 준 손수건이 자신을 집으로 데려다 줄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은 레오에겐 가장 큰 소망이 되어 간다.

 

은초록색 명아주가 타오르는 듯한 붉은색을 띠면 사람들의 눈빛에는 참을 수 없는 그리움을 담고, 배고픈 천사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의 어깨에 내려 앉는다. 죽음의 냄새가 풍기는 수용소의 일상이 왜 이렇게 처연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일까. 레오의 혀 끝에서 밀려 나오는 그만이 알 수 있는, 그만이 느꼈을 삶의 진짜 모습이 레오의 꿈이 맴돌았을 수용소를 더 끔찍하게,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수용소의 단조로운 일상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가 쌓여 가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자신에게 찾아온 쥐들을 통해 레오가 삶의 끝을 놓지 않기를 바랐던 독자들이라면(나는 그랬다.) 레오의 행동에 숨이 막혔을 것이다. 하지만 곧 그가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이렇게 표현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결코 이성이 마비되어 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가 있는 수용소와 내가 있는 이 안락한 집과의 거리는 아주 까마득한 거리로 바뀌어 버리게 된다. 막일을 하러 지하로 가는 길, 스쳐가는 모든 것들에게 고향의 냄새를 만들어주면서 일상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 레오는 구번 다음 오번이 오는 뒤죽박죽인 것이 행복이라는 이발사 오스발트 에니예터의 말에 "너는 돌아올거야"라고 말한 할머니의 말을 생각하며 '나는 행복해져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시킨다.

 

레오 안의 모든 혈관들은 수용소에 있을 때나 1950년 1월 초 집에 돌아온 때나 늘 어김없이 살아 있다. 항상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틈에 자리한 레오는 덮쳐 오는 '자유'에 흠뻑 젖는다. '축음기 상자 트렁크'에 짐을 싸던 그 때 동성애자 레오는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 때 레오는 '나를 모르는 곳'이면 수용소든 어디든 상관 없었다. 지금 레오는 수용소가 아닌 자신이 십칠 년 동안 살았던 곳으로 돌아왔지만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없는 곳'이 되었 버렸다. 레오에게 과거 수용소에 있었던 시간은 허상이었을까, 현재 자신의 모습이 허상인 것일까.  

 

'숨그네'는 심장의 팔딱거림과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네가 홀로 '끼익끼익' 움직이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숨이 차오르는 느낌을 고스란히 그리고 있는 '숨그네'는 배고픔에 이성까지 마비되어 본 사람만이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지금 나의 숨구멍은 누가 막아 버렸을까. 숨이 막혀 '꺽꺽' 발버둥치지만 아무도 구해주지 않는다. 레오가 수용소에서 느꼈을 죽음의 공포를 책을 덮고 나서야 느끼는 것인가. 내 안의 숨그네만이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하지만 삶은 지독하게도 나를 철저하게 내 안에 가둬버린다. 레오가 지난 과거를 결코 놓아 버릴 수 없듯이, 손수건을 손 안에서 놓아 버릴 수 없듯 나는 내 안에서 결코 밖으로 빠져나갈 수가 없다. 심장의 팔딱거림만이 내가 아직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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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시계공 1
김탁환.정재승 지음, 김한민 그림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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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년 뒤 2049년에 이런 세상이 된다는 것은 너무 가까운 미래라 그런지 오히려 더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 같다. '설마, 39년 뒤에 이러겠어?'라는 생각으로 가슴을 쓸어 내린다. 불과 20년 전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며 이웃간의 '정'이 돈독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내게 기계와 인간이 몸을 섞는 이런 시대를 상상하는 것은 글쎄, 의학과 과학의 발달로 인간 수명이 늘어났다고 해도 솔직히 너무 무섭다. 인간까지 기계화 되는 세상이라니, 이런건 판타지 소설에서나 등장하는 거 아니었나.
 
"눈먼 시계공"은 과학자 정재승과 소설가 김탁환의 만남으로 이미 출간 전부터 꽤 유명해진 책이다. 과학분야에 대해서는 그 분야 지식인이 아니면 접근하기 어렵고, 일반 사람들은 단어의 생경스러움과 낯선 세계의 거북함때문에 사실 '과학'이라는 말만 들어가도 급 피로해지면서 책장을 넘길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는데 이렇듯 맛깔스럽게 글을 버무려 독자들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김탁환과 함께 과학이라는 재료가 녹아드니 정말 맛있는 한 편의 책이 완성되었다.     
 
현재나 가까운 과거,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책이 만들어졌다면 그 배경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을 것인데 '눈먼 시계공'은 30년 뒤의 아주 가까운 미래를 담고 있지만 내가 느끼기엔 아주, 아주 먼 미래의 일인 듯 까마득하여 책 속에 들어있는 내용을 완전하게 이해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그리하여 작가가 독자들을 너무 배려한 나머지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용어에 대한 설명, 2049년의 시대적 배경,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하다 보니 이건 소설책을 읽는 것인지, 과학 잡지를 읽는 것인지 모호해지고야 만다. 어쩌면 이것이 과학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책 속으로 잠깐 들어가 보자면 서울 뒷골목에서 뇌를 탈취당한 시체들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이것만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범인은 누구인지 밝혀내는 것에 관심을 가져 빠르게 책장을 넘겼으면 좋겠으나 로봇 격투기 대회, 살인 사건을 쫓는 은석범 검사의 개인적인 상황 등에 걸려 사건은 물론 책장을 넘기는 손길조차 더디게 진행된다. 2권에 이르면 모든 사건이 해결되겠지만 그 전까지 넘어야 할 산이 여러 개라 잠시 호흡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
 
분명 아주 먼 미래에는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을 것이다.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반면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정'을 전혀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이런 미래가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지만 모든 근본은 '인간다움'에 전제를 두고 미래상을 그리고 있기에 로봇이 만들어지고 우리의 생활 깊숙히 들어와 있다고 해도 연쇄살인사건을 쫓는 것만으로 독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닌  인간과 기계를 통해 '진화'에 대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거대한 음모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어느새 이런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고 지금 나의 삶을 좀 더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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